화사한 봄날, 인사동 ‘통인화랑’에 감성의 꽃이 피었다.

 

'통인화랑'에서 김제민, 허보리, 신수진, 이창남, 김정선,

이광호, 이만나, 한수정, 이정은씨 등 아홉 작가의

꽃 그림을 초대해 ‘화론’전을 개최한다.

 

작가들의 꽃은 과거에서 유래한 아름다움에 대한 기억의 일부이자

회화적 지속성의 구실이며 현실의 투영이다.

 

김정선의 확대된 꽃들은 심리적인 기억을 되 뇌이게 한다.

 

이만나의 '기둥'은 두렵기도 하고 저항할 수도 없는 생명의 거대한 집합체다.

 

김제민의 그림은 무성한 잡초를 그려 식물과의 교감을 다루고 있다.

 

신수진이 추구하는 이미지는 자연의 근원적 힘에 맞닿아 있다.

그 어느 씨앗 못지않게 수많은 꽃잎과 생의 단위들을 정연하게 생산 한다.

 

이광호는 섬뜩하도록 앙증맞은 선인장 꽃 봉우리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탐스러운 사과 한 바구니와 화병 속의 꽃을 그린 이정은의 정물화는

갈색고양이 한마리가 화면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이창남의 그림은 잊을 수 없는 심리적 감성이 깔려 있다.

단순한 슬픔이나 황홀감이 아니고 복합적 감수성이다.

 

한수정은 확대된 꽃과 주변부 묘사를 통해

현실과 허구의 공간을 넘나들며 우리의 시선을 기만한다

 

꽃과 잎으로 화면을 채운 허보리는 진화된 새로운 지점을 찾아 나선다.

애써 인식하지 않는 것처럼 무심하거나 무던하다.

 

계절 따라 자연에서 피어나는 꽃구경도 좋지만,

작가마다 다른 감성을 드러내는 '화론' 꽃그림은 또 다른 울림을 준다.

꽃 그림 보러 인사동 가자.

 

전시는 4월11일까지 열린다.

 

사진, 글 / 조문호

 

MOVES
이진숙展 / LEEJINSOOK / 李珍淑 / photography
2017_1018 ▶ 2017_1023



이진숙_Moves 19_사진_70×140cm_2015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진숙 페이스북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7_1018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6:00pm



갤러리 라메르

GALLERY LAMER

서울 종로구 인사동5길 26(인사동 194번지) 라메르빌딩 2층

Tel. +82.(0)2.730.5454

www.gallerylamer.com



이진숙이 춤을 바라보며 아름다움을 추적하는 방식은 움직임 자체에 대한 몰입, 즉 춤을 추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인물 위주의 접근 방식을 배제함으로써 무용수의 얼굴이나 표정을 드러내지 않고 무대의 연극적 요소들을 최소화하였다. 오로지 운동감 위주의 사진들만을 선택하고 무대 전체에 대한 조망을 강조한 사진들은 무대 위의 주인공을 허용하지 않는 대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함께 춤을 추는 듯한 동적인 명상 체험을 유도한다. 이진숙은 자신의 사진 속에서 스스로 안무가이며 연출자이며 무용수인 것이다. 이렇게 그녀는 자신의 춤을 이어가고 있다. ■ 신수진


이진숙_Moves 41_사진_110×73.2cm_2014

이진숙_Moves 34_사진_110×73.2cm_2011

이진숙_Moves 9_사진_70×35cm_2015


평생 할 줄 알았던 춤을 쉬게 된 후 어떤 방법으로든 나의 춤을 추고 싶었다. 나의 선택은 사진을 통해서 춤을 추는 것이었다. 하지만 카메라를 들고 춤과 장단, 무용수의 호흡, 동작을 아는 것 만으로 사진을 표현하기에 부족함을 느껴서 늦었지만 상명대 대학원에 진학을 해서 사진을 공부하게 되었다. 움직임을 렌즈를 통해서 잡는다는 것이 생각보다는 어려웠지만, 카메라를 들고 촬영이 시작되는 순간 렌즈를 통해 춤을 추고 있는 행복한 내가 있다. 단 한번 밖에 없는 아름다운 움직임을 나만의 방식으로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다. 렌즈를 통해서 신명 나게 나만의 춤을 추고 싶은 것이다. ■ 이진숙


이진숙_Moves 1_사진_70×140cm_2015

이진숙_Moves 15_사진_35×70cm_2015


이진숙_Moves 21_사진_70×140cm_2016

이진숙_Moves 4_사진_70×140cm_2016

이진숙_Moves 17_사진_35×70cm_2011



Vol.20171018b | 이진숙展 / LEEJINSOOK / 李珍淑 / photography

신수진의 사진 읽기

 앨프리드 스티글리츠가 촬영한 조지아 오키프, 1918년.


미국의 예술계에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커플을 꼽으라면 사진가 앨프리드 스티글리츠(Stieglitz·1864~1946)와 화가 조지아 오키프(O'Keeffe·1887~1986)를 빼놓을 수 없을 거다. 20년이 넘는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연인이며 배우자, 예술적 동반자로서 특별한 사랑을 이어갔다. 스티글리츠가 82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2만5000통에 이르는 편지가 그들이 30년간 이어온 사랑의 역사로 남았다.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스티글리츠는 뉴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진작가이며 기획자였고 오키프는 그의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여는 행운을 얻은 텍사스 출신 무명 화가였다. 오키프의 독특한 작품 세계와 인간적 매력에 사로잡힌 스티글리츠는 그녀를 여성으로 느끼기 시작했고 "당신 손을 찍고 싶다"는 고백을 하기에 이른다. 강력한 카리스마의 소유자였던 스티글리츠의 카메라 앞에서 오키프는 두려움과 설렘으로 그의 지시에 따라 자세를 잡았다. 그녀의 눈빛에선 이제 막 화가로서 이름을 가지기 시작한 오키프의 자기애와, 그녀를 통해 자신의 상처받은 영혼을 달래려 했던 스티글리츠의 욕망이 교차한다. 또한 기묘하게 얽힌 그녀의 손은 안락한 사랑의 둥지를 꿈꾸던 오키프의 철없는 기대와, 결국은 그 모든 것을 채워줄 수 없었던 이기적 예술가인 스티글리츠의 자의식이 충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의 사랑은 그렇게 팽팽한 긴장감으로 잉태된 것이었다.

결혼 생활을 시작하고 5년 만에 오키프는 홀로 뉴욕을 떠나 뉴멕시코로 이주한다.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만의 세계를 꽃피울 만한 작품 소재와 색을 찾아냈고, 수많은 동료와 후원자를 만났으며, 다시는 스티글리츠의 곁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것이 사랑과 예술과 결혼을 공존시키기 위한 그녀의 유일한 해결책이었던 것이다.

 

신수진 / 사진심리학자



 

로버트 프랭크, 영화 시사회, 할리우드, 1955 ~1956 /한미사진미술관 제공


중앙 여배우 대신 뒤편 관객에 초점
스스로 중요한 것 선택하는 용기가 젊은 사진가를 전설로 만들어


인생에 진리를 찾아주는 강연이 유행이다. 수년 전부터 다양한 그룹을 대상으로 한 강의가 많이 생겨나더니 이젠 방송에서도 흔한 프로그램이 되었다. 평소에 강의할 일은 많아도 들을 기회는 드문지라 우연하게라도 다른 사람의 강연을 대하면 나도 모르게 집중하게 된다. 세상엔 참 내가 모르는 것도 많고 지혜도 많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런데 정작 내가 강연 방송을 보면서 가장 즐기는 부분은 청중의 반응이다. 어떤 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하고, 또 어떤 이는 딴생각에 빠져드는 것을 숨기려고 애쓴다.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평범함과 특별함 사이에서 고군분투 중인 우리의 초상을 본다.

지혜의 가르침을 찾는 것은 자신의 평범함을 받아들이는 일에서 시작된다. 내가 지금 겪는 어려움이나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누구나 피해갈 수 없어서 누군가는 분명히 그에 대한 답을 찾았으리라고 믿고 싶은 것이다.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그들이 전해주는 지혜를 따라가면 나보다 앞서간 사람들이 오랜 시간 동안 찾아낸 답이 내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자신을 특별하다고 여긴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문제가 아무리 평범하고 하찮은 것이라도 그 앞에서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이유는 그게 바로 하나밖에 없는 '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모르는 인생의 초보자인 것을, 만고의 진리가 무슨 소용이랴. 결국 나를 특별하게 만들려면 나만의 고통을 나만의 방법으로 이겨내는 수밖에 없다.

사진가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 1924~)는 1950년대에 촬영한 '미국인들'이라는 연작(連作)으로 역사에 이름을 새겼다. 스위스 태생의 이민자였던 그는 2년간 미국 전역을 돌며 자신의 눈에 비친 낯선 미국인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지금은 말 그대로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지만 당시 서른을 갓 넘긴 나이였던 그는 이미 슬하에 두 아이를 둔 가장이었고 자신의 미래에 대해 아무런 확신도 가질 수 없는 청년이었다.

평범한 그에게는 고통스러운 현실과 처절하게 싸워야 할 삶이 있었을 뿐이다. 그의 고통은 그의 사진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그가 찍은 사진에서 단시간에 세계의 주인공으로 성장한 미국의 자부심이나 기회의 땅에서 희망을 찾은 미국인들의 성취감은 찾아볼 수 없다. 그 대신 성장과 성공의 이면에 남은 이들의 모습이 담긴 것이다.

할리우드의 영화 시사회장에서 촬영한 이 사진 속 주인공은 영화배우가 아니다. 화면 중앙에 크게 자리 잡은 여배우는 초점이 맞지 않아 흐려졌고 로버트 프랭크의 시선은 저 너머 뒤편 관객들을 향했다. 어찌 보면 그리 대단할 것도 없어 보이는 이 시선에 그를 거장(巨匠)의 반열에 올린 비밀이 숨겨져 있다. 남들이 주인공이라고 여기는 사람을 지나쳐서 다른 곳을 바라보는 눈은 스스로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고 선택하는 용기를 만나서 그만의 특별함을 만들어냈다.

그는 카메라를 들고 여러 곳을 돌아다녔지만, 아마도 세상보다는 자신의 불안한 현재와 소외된 고독감에 더 집중했을 것이다. 그가 단지 세상에만 관심이 있었다면 남들이 보고 싶어 하고 남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찍을 수 없었을 것이다. 철저하게 자신의 고통에 집중함으로써 그 아픔만큼 특별한 '나'를 만든 것이다. 무엇을 바라볼 것인지, 어디에서 답을 찾을 것인지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여행지에서 사진 찍기는 그 순간을 기억에 들여
나만의 歷史를 만들고 나를 주인공으로 새겨 넣는 일이다.


신수진 사진심리학자

 

본격적인 찜통더위가 시작되니 만나는 사람마다 여름휴가 계획을 물어온다. 머뭇거리는 사이 요즘 새로 뜨는 여행지를 권해주기도 하고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여행법을 전수해주기도 한다. 이미 다녀본 곳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더라도 나는 잠자코 듣고 있는 걸 좋아한다. 누군가의 여행담을 듣는 것은 여행지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그 사람의 세계로 들어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가지고 싶어하는지, 원하는 것을 어떻게 취하는지, 누구와 즐거움을 나누는지 등 여행에 대한 기억은 한 사람의 역사에 관한 기대 이상의 정보를 지니고 있다.

인류가 기억하고 기대하는 가장 매력적인 여행지 중 하나는 아마도 달이 아닐까 싶다. 1969년 7월, 3인의 우주인이 탑승한 미국의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다. 닐 암스트롱(Neil Amstrong·1930~2012)이 전인미답(前人未踏)의 땅에 첫발을 내려놓는 장면은 텔레비전 카메라에 찍혀서 온 지구인에게 목격됐다. 달 표면에 찍힌 최초의 인간 발자국은 암스트롱 자신이 남긴 명언처럼 "한 인간으로선 작은 발걸음에 불과했지만 인류에겐 거대한 도약"으로 받아들여졌다. 이후에 달 착륙에 관한 진실 공방이 있다고는 하나, 중요한 것은 당시 전 세계 5억명 이상의 사람들이 함께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목격한 것은 한 사람의 달나라 여행이 아니라 모든 지구인의 영토가 우주까지 확장되는 역사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닐 암스트롱이 달에 남긴 최초의 인간 발자국, 1969년 7월 20일.

 

그날 이후 암스트롱의 족적은 끝을 알 수 없는 미지 세계로의 멈추지 않는 도전과 개척 정신의 상징이 되었고 그 위대함의 상징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게다가 이 사진에 대한 설명엔 항상 '달에는 바람이 없으니 닐 암스트롱의 발자국은 백만년이 지나도 남아 있을 것'이라는 추정이 따라다닌다. 지워지지 않는 족적이라니, 근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45년간 달에 다녀온 사람은 여전히 손에 꼽을 만큼 적고 본격적인 우주여행 시대는 기대했던 것보단 훨씬 더디게 다가오고 있다. 비록 우주 관광의 대중적 실현 가능성이 아직 요원한 듯하지만, 달은 더 이상 토끼가 방아를 찧는 동화 속 세계만은 아니다. 우리는 보름달을 쳐다보며 소원을 빌기도 하지만 언젠간 저 곳으로 휴가를 갈 수 있다는 생각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한 장의 사진은 우리에게 달에 관한 더 많은 상상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다.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한 개인의 역사와 기억을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어떤 이는 늘 가던 곳에서 빈둥거리면서 휴가를 보내고 어떤 이는 한 번도 가지 않은 곳을 순차적으로 점령하듯 휴가를 보낸다. 어디에서 무얼 하든 여행은 비일상적인 경험을 일시적으로 소유하게 해줄 뿐이지만, 그 경험을 오랫동안 자신의 것으로 기억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바로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이다.

여행의 시간과 장소는 제한적이며, 그 경험은 내가 아닌 누군가에 의해 또다시 점유되고 소유되며 소비된다. 하지만 나의 카메라로 기록된 여행에 대한 기억은 나를 영원한 주인공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이 파리의 에펠탑, 포카라의 사원, 몽골의 초원에서 사진을 찍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 순간을 자신의 기억 속으로 끌어들여 자신만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신세계가 아니면 어떤가. 내 인생에서 절대 지워지지 않을 만한 발자국을 기억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신수진의 사진 읽기] 

 

시각적 혁명이 만들어낸 혁명적 시각

알렉산드르 로드첸코, 나팔 부는 개척자, 1930

예술이 지니는 사회적 기능에 대한 예술가들의 자각이 가장 두드러졌던 시대와 장면을 꼽는다면 아마도 혁명기의 러시아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알렉산드르 로드첸코(Aleksandr Rodchenko·1891~1956)는 예술가의 사회적 책무와 새로운 미학적 시도라는 두 토끼를 모두 잡은 작가로 꼽힌다. 그는 사진과 그래픽 디자인, 조각 등 다양한 표현 매체를 섭렵하면서도 기하학적 표현 양식이나 천장에 매다는 설치 조각 등 획기적 구성주의(constructivism) 실험에 매진했다.

로드첸코의 인물 사진은 사회 구성원이 시대에 맞는 시각을 가지게 하기 위한 자극제이자 활력소가 되고자 했던 작가의 의지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그가 사용한 방법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만큼 단순하면서도 명료하다. 위와 아래를 뒤집는 간단한 방법으로 변화를 주도하는 새로운 질서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인물 사진은 정면 얼굴을 찍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시절에 그는 과감하게 카메라를 턱 밑으로 들이댔다. 눈높이에서 수평적으로 바라보는 대신 수직적 시각으로 미학적 혁명을 시도한 것이다. 턱 밑에서 올려다보니 배경이 단순해지고, 단순해진 배경은 인물의 존재감을 부각했다. 익숙한 것을 다르게 보는 시도만으로도 시대의 개척 정신을 웅변적으로 드러낼 수 있음을 확인해 준 것이다.

그가 찍은 인물 사진에서 주인공은 모두 이 사진 속 소년처럼 평범한 사회 구성원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시도한 적이 없는 과감한 시점의 선택으로 사진 속 인물은 '개척자'가 되었다. 그의 사진이 비록 사회주의 혁명의 안정화에 기여하는 선전선동에 동원되었다고는 하지만, 이와는 무관하게 그의 '새로운 시각(new Vision)'이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동시대 독일 바우하우스의 주역들은 물론이고 후대의 수많은 예술가가, 평범하고 일상적인 대상을 전혀 다른 방향과 환경에서 바라보려는 시도야말로 이 세계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그의 신념과 실천에 공감했던 것이다.

중앙일보

사진예술의 풍경들
진동선 지음
문예중앙, 464쪽
2만4000원


사진가의
우울한 전성시대
박평종 지음, 달콤한책
335쪽, 1만8000원


사진 전성시대다. 사진을 소수의 작가들만 하는 순수예술이라고 생각하든 매일 올리는 SNS의 양념이라고 생각하든, 사진이 현대인의 일상과 떼려야 뗄 수 없다는 도구가 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순 없을 것이다. 아쉬운 건 사진가는 넘쳐나는데 이른바 ‘사진현상’에 대한 성찰과 글쓰기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사진평론가 진동선(55)과 박평종(45)이 나란히 내놓은 두 권의 평론집은 각기 성격은 다르지만 사진 글 가뭄 속에 단비 같은 책이다.


서양 사진 역사에서 최고 누드작으로 꼽힌 에드워드 웨스턴의

1936년 작품 ‘누드’. [사진 문예중앙]



 진동선의 『사진예술의 풍경들』은 19세기부터 현대까지 예술로서의 사진의 역사를 훑는다. 예술사진을 “화살의 과녁처럼, 사격의 표적판처럼 오로지 눈과 심장과 손으로 대결하는 의미의 격발이고 감성의 관통”이라 푸는 감각적인 서술 속에 소위 ‘전설’이라 할 만한 작가들의 작품이 연대기 순으로 펼쳐진다.

 저자의 관심은 당시의 사회문화적 배경 속에서 각각의 작품이 어떻게 새로운 표현과 미학을 구축하였는지에 집중된다. 목표 지점은 ‘사진으로서의 예술’이다.

 진씨는 사진을 “예술이 끝없이 그 모습을 바꾸게 하는 장본인”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그 증거들을 차례로 제시한다. 특히 현대사진을 다루는 부분에서 표현과 미학에 집중하는 저자의 관점이 더 잘 드러난다. 무표정한 인물사진의 새로운 미학이나 패션사진의 사회적 메시지를 활용하는 방법, 디지털 홍수 속에서도 자연주의를 표방하는 작업의 의미 등을 문화적 맥락에서 알기 쉽게 설명한다.

 1826년 무렵 니엡스부터 2006년 구이도 모카피코까지 더듬은 그는 사진예술의 두 가지 모습을 제시한다. 기록 중심인가, 표현 중심인가. 거울의 방인가, 창의 방인가. 어느 쪽을 고르느냐가 당신 사진의 정체성이 될 것이라며.


사진가 노순택의 2009년 ‘좋은, 살인’ 연작. 사진 평론가 박평종은 이를 두고

“생명주권을 빼앗긴 야생인류의 생태학”이라 부른다. [사진 달콤한책]



박평종의 『사진가의 우울한 전성시대』는 이미 책 제목에 풍부한 의미를 담고 있다. 사진의 과거보다 현재에, 서양사진보다 한국사진에 초점을 맞췄기에 더 절실하다. 한성필·구성수·노순택·강용석·노상익·김규식·최봉림 등 한국의 사진가들을 매만진 애정 어린 작가론, 사진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각종 제도와 행사를 향한 신랄한 평가, 디지털 환경에서 급변하는 사진문화에 대한 고찰 등 사진비평가의 현재진행형 고민을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풀어 놓았다. 2010년 『한국사진의 자생력』에서 보여주었던 문제의식을 대중과 함께 이야기하고자 애쓴 마음이 읽힌다.

 저자는 유명하기는 하나 대접은 잘 받지 못하는 ‘B급 작가’를 주목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진 작품의 가치가 생겨나는 과정을 들여다본다. 이론과 실제, 이상과 현실을 아우르는 전개로 설득력을 높였다. 해외 유명작가 중심의 전시, 소위 주체적 관점이 결여된 사진문화를 경계하면서 언제 우리는 전시를 수출하는 나라가 될 수 있을지 묻기도 한다. 한국사진에 대한 저자의 속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사진은 더 이상 작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제 사진에 관한 생각도 확산돼야 한다. 스마트폰이든, 전문가급 카메라든, 기기(器機)의 성능 문제가 아니다. 사진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을 베껴내는 것이 아니다. 생각을 담아내는 도구다. 이 두 책은 사진 한 장으로도 우리가 얼마나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지를 넉넉하게 보여준다. 한국 사진평론도 이렇게 성숙하고 있다.

 

◆신수진 / 연세대 인지과학연구소 교수
시각심리학과 사진이론을 접목한 사진심리학 연구자.

예술로서의 사진을 과학으로서의 심리학, 즉 마음의 관점으로 살핀다.

 

[신수진의 사진 읽기] 

눈의 한계를 뛰어넘다, 시간의 틈새를 메우다

사진이 눈에 보이는 것만 보여주는 도구였다면 오늘날 우리가 사진에 주목하는 것의 의미는 훨씬 축소됐을 것이다. 사진 발명 초기부터 사진 기술은 우리가 볼 수 있는 것 이상을 추구해왔고, 그 결과 사진은 인간의 눈을 변화시켜 왔다. 눈은 뛰어난 감각 기관이지만 한계를 갖고 있다. 아주 작거나 거대한 것, 매우 느리거나 빠른 것처럼 눈이 볼 수 없는 대상에 관심을 갖는 일은 말 그대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시도였다.

 

                                                         이드위드 머이브리지, 생물의 운동기능, Plate 167(부분), 1887

이드위드 머이브리지(Eadweard James Muybridge·1830~1904)는 사진을 통해 눈으로 볼 수 없는 순간을 잡아내기 시작한 장본인이다. 그는 1880년대부터 생명체들의 '동작'을 찍기 시작했다. 말이나 사람의 동작을 정교하게 촬영하기 위해선 대략 1000분의 1초 이하의 짧은 순간을 찍을 수 있어야 하는데, 유리 원판을 사용하는 '콜로디온 습판'이란 당시의 기술 수준으로는 적어도 10초 이상의 노출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후원자들을 설득해 비용을 마련하고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해 셔터와 감광유제 등의 기술적 한계를 개선했다. 그리고 1887년 2만장이 넘는 남성, 여성, 어린이, 조류를 포함한 동물의 동작 사진을 담은 '생물의 운동기능(Animal Locomotion)'이라는 전설적 업적을 출간한다. 그 안에는 인류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시간의 틈새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후 마르셀 뒤샹, 프랜시스 베이컨을 비롯한 화가들의 작품은 물론이고 영화 매트릭스의 동작 묘사에서도 그의 시각적 선구성은 확인되고 있다.

그의 작업은 사진이라는 기술이 어떻게 인간의 인식을 확장시켜갈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의 시도가 지닌 역사적 의의는 처음 이 사진을 본 사람들과 130여년이 흐른 지금 이 사진을 보는 우리의 반응 차이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오늘날 누구도 이 장면이 충격적이거나 믿을 수 없을 정도라고 여기지 않는다. 다시 말해 시간의 틈새를 익히 보아 알고 있는 것 자체가 그만큼 우리의 눈이 달라졌다는 것을 말해준다. 좋은 작품은 볼 수 없던 것을 볼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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