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진의 사진 읽기] 

 

시각적 혁명이 만들어낸 혁명적 시각

알렉산드르 로드첸코, 나팔 부는 개척자, 1930

예술이 지니는 사회적 기능에 대한 예술가들의 자각이 가장 두드러졌던 시대와 장면을 꼽는다면 아마도 혁명기의 러시아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알렉산드르 로드첸코(Aleksandr Rodchenko·1891~1956)는 예술가의 사회적 책무와 새로운 미학적 시도라는 두 토끼를 모두 잡은 작가로 꼽힌다. 그는 사진과 그래픽 디자인, 조각 등 다양한 표현 매체를 섭렵하면서도 기하학적 표현 양식이나 천장에 매다는 설치 조각 등 획기적 구성주의(constructivism) 실험에 매진했다.

로드첸코의 인물 사진은 사회 구성원이 시대에 맞는 시각을 가지게 하기 위한 자극제이자 활력소가 되고자 했던 작가의 의지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그가 사용한 방법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만큼 단순하면서도 명료하다. 위와 아래를 뒤집는 간단한 방법으로 변화를 주도하는 새로운 질서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인물 사진은 정면 얼굴을 찍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시절에 그는 과감하게 카메라를 턱 밑으로 들이댔다. 눈높이에서 수평적으로 바라보는 대신 수직적 시각으로 미학적 혁명을 시도한 것이다. 턱 밑에서 올려다보니 배경이 단순해지고, 단순해진 배경은 인물의 존재감을 부각했다. 익숙한 것을 다르게 보는 시도만으로도 시대의 개척 정신을 웅변적으로 드러낼 수 있음을 확인해 준 것이다.

그가 찍은 인물 사진에서 주인공은 모두 이 사진 속 소년처럼 평범한 사회 구성원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시도한 적이 없는 과감한 시점의 선택으로 사진 속 인물은 '개척자'가 되었다. 그의 사진이 비록 사회주의 혁명의 안정화에 기여하는 선전선동에 동원되었다고는 하지만, 이와는 무관하게 그의 '새로운 시각(new Vision)'이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동시대 독일 바우하우스의 주역들은 물론이고 후대의 수많은 예술가가, 평범하고 일상적인 대상을 전혀 다른 방향과 환경에서 바라보려는 시도야말로 이 세계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그의 신념과 실천에 공감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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