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부상 축제’인 '보부상, 문화를 전하다'의 마지막 행사가 지난 29일 ‘논산 강경대흥시장’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는 보부상 맥을 이어가고 있는 충남 보부상단인 예덕상무사와 저산팔읍상무사, 원흥주육군상무사가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신명난 판을 벌였다.

사물놀이패를 앞세운 보부상단 길놀이에는 엿장수와 독장수, 비단장수, 어우동, 등의 옛 보부상 차림의

사람들이 제각기 물건을 지게와 등짐에 메고 그 시절 모습을 재현했다.






또한 조선시대 보부상에는 없었지만, 저산팔읍상무사의 윤태순씨가 분장한 등짐 북도 눈길을 끌었다.

길놀이 외에도 우리소리와 줄타기공연도 있었고, 보부상체험프로그램, 청년보부상단의 프리마켓 등

다양한 체험행사가 진행돼 현대화된 시장문화에 전통을 접목시키는 문화장터를 선보였다.






이번 ‘보부상, 문화를 전하다’ 마지막 행사가 열린 강경대흥시장은 조선후기에 번성한 장으로

평양, 대구와 함께 조선의 3대 내륙시장이었다.

충청도 내륙지방의 산물들이 금강 뱃길 따라 강경으로 흘러 왔는데,

장이 서는 날이면 여러 지방의 특산물을 실은 돛단배들이 줄지어 몰려들었다고 한다.

1890년대에는 군산항이 열려 외국과도 교역하게 되므로 외제 물품까지 강경으로 들어왔다.






논산강경은 전국에서 몰려드는 물산을 곳곳에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하였는데, 충남 보부상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었다.

장날이면 봇짐장수 등짐장수는 물론 뱃사람과 우마차를 끌고 온 농부들로 장터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옛 영화는 사라졌지만, 지금은 젓갈시장으로나마 알려져 김장철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지역특산물인 젓갈로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강경발효젓갈축제’를 매년 10월마다 열기도 한다.






‘2017 문화가 있는 날, ‘보부상, 문화를 전하다’ 축제는 지난 3월 예산 덕산장을 시작으로

4월 에는 홍성시장, 5월에는 부여시장, 그리고 6월에는 보령중앙시장과 서천장항시장, 7월에는 천안성환 이화시장,

8월에는 청양시장, 9월에는 금산인삼시장과 서산해미시장, 10월에는 당진시장과 아산 온양온천풍물시장으로 이어졌고,

11월의 마지막 행사를 강경대흥시장에서 치루는 아홉 차례로 그 막을 내렸다.






조선시대의 보부상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던 인간 띠였다.

단순히 물건을 팔아 이윤을 얻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민족 기층문화를 이어주는 인간 고리 역할을 하며 항상 역사의 중심에 서 있었다.

또한 보부상은 단순한 물건 교환을 넘어 경제발전의 주역으로 상거래를 이끌어왔다.

이들은 솜뭉치를 단 패랭이를 쓰고, 등짐과 봇짐으로 고개를 넘나들며

마을에서 벌어지는 각종 이야기를 전달하는 우체부 역할을 했다.






장터는 세상만물이 다 모이는 움직이는 박물관이나 마찬가지다.

살 것도 많고, 볼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아 남녀노소 막론하여 모두가 좋아하는 날이 장날 아니던가?

예전에는 장마당에서 농기구도 직접 만들어 팔았었다.

그래서 장터는 단순히 물건만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우리민중 문화가 모두 어울린 곳이다.

세상 돌아가는 여론과 당대의 유행풍습까지 장터에 모인 사람들의 귀와 입을 통해 퍼져 나갔다.





요즘 장에 가면 전통시장 활성화라는 이름아래 국적불명의 축제가 종종 열리는 것을 보게 된다.

상인문화의 뿌리를 물어야 할 만큼 상품만이 아니라 민속놀이조차 우리의 정체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이번에 마련된 ‘보부상전통문화축제’의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이번기회에 오일장 문화콘텐츠를 보부상과 연결하여,

전통시장만의 새로운 민속축제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사진, 글 / 조문호



























































 

세계 아리랑축전이 열린 첫 날 정선읍내 시가지에서 정선군 각 읍면 팀들이 참여한 길놀이가 진행되었다. 많은 팀들이 보여 준 다양한 가장행렬들이 있었으나 이미 오랜동안 보아온 진부한 소재이거나 수동적인 동작이었음에 비해 정선읍 아리랑시장의 보부상단 행렬은 참신함과 함께 활달한 몸짓을 보여 구경나온 군민들의 눈길을 가장 많이 끌었다. 풍물패를 앞세워 엿장수, 새우젓장수, 옹기장수 등 다양한 분장의 조합원들이 참여한 길놀이는 정선아리랑시장에 걸 맞는 컨셉일 뿐 아니라 참가자들의 연기 또한 열성적이었다. 엿장수로 분장한 이윤광조합장의 튀는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돗자리를 짊어진 우임직씨의 코믹한 표정이나 각설이 조명숙씨, 계란장수로 분한 이옥분씨의 열정도 돋보였다. 그 뿐 아니라 보부상들을 이끄는 풍물패들의 신명나는 장단 또한 분위기를 압도하였다. 최덕화씨의 꽹과리, 민병만씨의 징, 정춘경씨의 북을 비롯한 모든 분들이 맡은 역활을 잘 소화해주어 성공적인 길놀이가 되었다. 



이 보부상단들의 가장행렬을 지켜보며 보부상들의 재미난 이야기를 극본화해 정선아리랑시장 무대에 올렸으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새로움에 대한 관심보다 장사꾼에 대한 친근감으로 고객들의 호응이 좋을 것 같은데, 몇몇 조합원들은 이미 전문가 못지않은 연기와 열정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태백산 황지에서부터 시작해 부산을숙도까지 1300리를 흐르는 낙동강 줄기에

이 시대 마지막 주막이었던 ‘삼강주막이 자리 잡고 있다.


그 곳은 안동 하희마을을 돌아 나온 낙동강과

봉화에서 시작해 희룡포를 휘감고 뻗어 온 내성천,

그리고 문경 죽월산에서 흘러 내려 온 금천,

렇게 세 줄기의 강이 만나기에 삼강(三江)이라 불린다.

 
1900년대까지만 해도 장날이면 하루에 30번 이상 나룻배가 오가며

사람들이 드나들던 교통의 요충지였다.

 

보부상들과 사공들이 사용했던 숙소들은 1934년 대홍수 때 모두 떠내려갔다고 한다.
삼강주막은 오랫동안 삼강나루를 더나드는 객들에게 허기를 면하게 해주었고

보부상들의 숙식처로 때론 시인 묵객들의 유상처로 이용되기도 한 집인데,

지금은 그 것을 보러 오는 관광객들이 옛 시절을 회상하며 흥청대고 있다.

옛 보부상들의 애환이 서린 삼강주막에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실제 주모가 살아 있었다고 한다.

2005년에 돌아가신 유옥연 할머니는 여든아홉살까지 주막을 지켜 왔는데,

글씨를 몰랐던 주모가 손님들의 외상거래를 자신만 알 수 있도록 부엌 벽에다 표기해 두어

삼강주막을 찿는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에 위치한 이 주막의 규모는 작지만 그 기능에 충실한

집약적 평면구성의 특징으로 경북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주모가 부얶 벽에다 자신만 알 수 있도록 표시한 외상장부

 

 

 

주막 앞에 있는 이 '들돌'은 일반적으로 농촌의 청년이 장성하여 어른으로서 인정받는 의례에서 생겼다.

나루터와 주막을 중심으로 많은 물류의 이동에 따라 인력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이 돌을 들 수 있는 정도에

따라 품값을 책정하는 도구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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