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날이, 밤마다 Day by day, Every Night

 

서정배展 / SEOJEONGBAE / 徐正培 / drawing 

2022_0323 ▶ 2022_0410 / 월,화,공휴일 휴관

 

서정배_멜랑콜리일기 Melancholy Diary: 검은태양 Black Sun_ 하드보드지에 유채_54.8×39.5cm_2011~22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1:00pm~07:00pm / 월,화,공휴일 휴관

 

 

스페이스 로

Space LO

서울 종로구 필운대로7길 12(옥인동 62번지) 2층

Tel. +82.(0)spacelo.net

 

스페이스로(Space LO)는 서정배 작가의 드로잉 작품전 나날이, 날마다(Day by Day, Every Night)를 기획 전시로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는 살아간다는 것 속에서 누구나 한 번쯤 되새기는 질문일 수 있는 '삶과 생활'의 의미에 대한 실존적 고민을 담은 감정의 경험의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 10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제작된 드로잉 작품들에서 보이는 시각적 서사는 인간이라는 한 개인의 특별한 서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인간 존재의 평범하고 보편적인 특성으로 귀결되는데, 이러한 인간적 경험에 대한 조형적인 서사는 결국 모든 사람에 대한 존엄성을 드러내는 시작이 되기도 합니다. ● 자아로부터 시작된 감정, 그리고 타자와의 관계는 결국 모든 사람들이 안고 있는 문제이나, 바라보는 시선과 감정과 관계의 과정들은 사람마다 각자 힘겹게 겪으며 해결해나갑니다.

 

서정배_멜랑콜리일기 Melancholy Diary:키키들 The Kikis_ 하드보드지에 잉크펜_유채_39.5×54.8cm_2011~22

이번 전시에서는 이전의 서정배 작가의 전시와 다르게 작가의 페로소나 키키가 문학적인 극을 이끌며 시각적 조형의 이미지를 전면에서 진행하지는 않으나, 키키라는 가상의 인물로 표현하고자 하는 일상 속 감정의 배경이 무엇인지 섬세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 꾸준한 작품 활동에도 자칫 선보여지기 쉽지 않은 작가의 드로잉 작품들을 모아 전시되는 기회로, 기존의 서사에 기반한 서정배 작가의 작품 세계를 보다 더 내면 깊숙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 성정원

 

서정배_멜랑콜리일기 Melancholy Diary: 겨울밤 Winter Night_ 하드보드지에 유채_54.8×39.5cm_2011~22

'키키(Kiki)'라는 인물은 '예술'을 통해 드러낼 수 있는 '현실과 가상' 또는 어떤 일에 대한 '진실과 거짓'을 시각예술에 담고 싶은 나의 조형적 실험으로, 소설에서 부여하는 나이, 국적, 외형의 설명이 없는 '관념의 오브제'로서 내 작업 속에 존재한다. 하지만, 내가 궁극적으로 이 인물을 통해 그려내고 싶었던 것은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살아있기에, 그래서 느끼고, 지각할 수 밖에 없는 무수한 감정을 이 인물의 이름아래 담아내고 싶었다.

 

서정배_멜랑콜리일기 Melancholy Diary: Eva et Espoir_ 하드보드지에 유채_54.8×39.5cm_2011~22

나는 스케치를 하듯 키키라는 인물을 통해 일상에서 느낀 뜻하지 않은 기쁨, 슬픔, 우울,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마주하는 외로움과 고독, 그리고 때때로 찾아오는 절망과 기다려도 올 것 같지 않은 희망에 대해 일상 속 에피소드들을 나의 경험과 타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글로 썼고 에피소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언어만으로 표현될 수 없는 복잡한 내면의 '풍경'은 그림으로 그린 '문장'처럼 다시 그려졌고, 미완의 드로잉으로 남겨졌다. 이것의 일부는 때때로 '멜랑콜리 일기(Melancholy Diary)'라는 이름으로 보여지기도 하였다. 지난 10여년 동안 발표한 완성된 형태의 설치와 회화들은 이 미완의 기록속에서 나왔다.

 

서정배_멜랑콜리일기 Melancholy Diary: I am the girl with golden hair_ 종이에 유채_39.5×54.8cm_2011~22

얼마전 부터 나 스스로에게 '키키'라는 이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이 이름은 타자와 더불어 살아가는 '나'라는 존재를 객관적으로 보고 싶은 바람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 이름과 함께 표현했던 감정의 풍경에는 사실, 나 자신만이 알고 있고, 어느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은, '진실'을 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런 감정의 체험을 통한 진실은 나뿐만이 아니라 삶을 살아내는 누구나가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정배_Sentimental Cube Story, Drawing Book 중에서_ 종이에 연필, 펜과 색연필_21×27cm_2017~22

이 '진실'을 마주하는 과정이 또한 스스로를 알아가는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을 내 작업을 통해 제시해보고, 또한 이와 같은 가상의 이름이 예술의 형식을 통해 가져다주는 의미를 되새겨 보지만, 미완으로 남겨졌던 드로잉들처럼 여전히 내 안에 질문처럼 남아있다. (2022) ■ 서정배

 

 

Vol.20220323e | 서정배展 / SEOJEONGBAE / 徐正培 / draw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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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나무화랑’에서 한상진씨의 드로잉전 ‘스침’이 열리고 있다.
먹물로 사물의 스침을 표현한 한상진씨의 드로잉 작업은 앙상하게 마른 낙엽처럼, 부서질 듯 애잔하다.
좀처럼 눈길 받지 못하는 하잘 것 없는 사물을 통해 현대인의 고독감이나 소외감을 말하고 있다.
특히 쓸쓸한 한기를 끌어내는 담백한 표현이 압권이다.
작가는 “사물과 나, 풍경과 나 사이에 틈입한 찰나의 촉감‘이라 적고 있다.
3,27일까지 연장 전시되니, 놓치지 말고 관람하기 바란다.


사진,글 / 조문호




















충무로에 있는 사진전문갤러리 ‘브레송’에서 색다른 전시 하나 열렸다.

바로, 화가 김기호씨와 사진가 권 홍씨가 보여 준 암울한 시대의 초상이다.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두 사람의 작품들은 많은 여운을 남기게 했다.
어디로 갈지 모를 표류하는 배처럼, 막막한 현실을 말했다.

다들, 카메라와 연필이라는 도구만 달랐을 뿐이지,
오늘의 시국을 안타까이 바라보는 기록이고, 하나의 시어였다,
직설적인 표현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김기호씨의 드로잉 작업은 현실을 우화적으로 꼬집었고.
권홍의 사진은 다중노출이나 팬닝기법으로 현실을 비껴가며,
아픈 기억들을 끌어내고 있었다.

또 다른 ‘시대의 기록 전’ 이었다.






이인전에 부쳐 송효섭씨가 쓴 글의 일부를 옮긴다.

“김기호는 주로 연필로 한 드로잉 작업을 보여준다. 작은 화면에 매일 떠오르는 생각들을 그 때 그때 그린 것들이다. 드로잉은 모든 조형작업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는 무한한 미래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드로잉을 보는 재미는 미완결 된 것처럼 보이는 작업 앞에서 앞으로 펼쳐진 수많은 조형적 가능성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따라서 드로잉은 그 자체로 ‘날 것’이라 할 수 있다. 지나친 가공을 거치지 않은 날 것의 상태는 전문적인 기법이나 기교 이전의 것으로 삶의 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작가는 지금의 기록이다”라고 외치는 드로잉 작품은 마치 시절인 으로서의 자기선언처럼 보인다. 그의 작업에 등장하는 일상적 사물들은 그가 살고 있는 현재 속에서 교묘하게 뒤틀려 제시된다.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많은 것을 말하는 방식이 바로 이것이다.


권홍은 사진작업을 보여준다. 일상생활 속에서 포착된 형상들을 단지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그 때 그 때 떠오른 정서에 따라 적절히 가공한다. 그가 자주 사용하는 다중노출의 패닝기법은 있는 그대로의 형상에 마치 수묵과도 같은 번짐과 모호함을 주어, 시간 속에서의 기억을 축적시키는 역할을 한다. 하나의 풍경은 지금의 풍경이기도하고, 또한 바로 이전의 풍경이기도 하다. 우리의 느낌이 시간의 기억을 토대로 하듯, 권홍의 사진에서 드러나는 형상은 이러한 기억을 불러일으켜 현재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 촛불광장을 그려내는 방식 도한 사실적 제시를 목적으로 한 다큐멘터리가 아닌, 그것에 대한 공감을 표현하는 주관적이고 정서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광장의 촛불은 시절인으로 그가 경험한 매우 사적인 것이며, 그래서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이들 두 작가가 격변의 시대를 사는 시절 인으로서의 삶의 체험을 각기 다른 매체를 통해 담담하게 그려낸다. 

시절 인으로서의 관객이 이들 작업을 통해 예술적 열락에 쉽사리 감염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지난 5일 오후6시 ‘브레송’에서 열린 개막식 풍경은 평소와 사뭇 달랐다.
전시 축하객들의 면면이 사진하는 분에서 미술인으로 바뀐 것이다.
내가 아는 사진가로는 전시작가와 김남진 관장, 박영환씨 밖에 보이지 않았고, 대부분 안면 있는 화가들이었다.
장경호씨를 비롯하여 배인석, 천호석, 이재민, 최석태, 김영중, 송효섭, 양상용, 탁영호, 정영철, 이승완,

변대섭, 이원석, 최연택, 강기욱, 안창길씨가 보였고, 정동용 시인도 왔었다.

그리고, 다른 일에 빠져 개막식에서 찍은 사진을 그동안 깜빡 잊고 있었다
뒤늦게 올리게 되었는데, 지인이나 전시 보실 분들은 서둘러야겠다.

이번 토요일(14일)에 끝나는 ‘빛과 선으로 시절을 그리다’를 잊지 마시라.

사진,글 / 조문호







































































식민지 시대는 그곳을 창경원이라고 불렀다. 조선왕조의 왕궁을 놀이터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궁에 동물원과 식물원이 들어섰다. 봄날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이를 즐기고자 상춘객들은 대거 몰려갔다. 아, 그런데, 창경원에서 소싸움도 했다고? 금시초문이다. 해방을 맞이한 1948년 여름, 창경원에서는 소싸움을 구경시켜 주었다. 당시 소싸움은 대중용 볼거리였던 모양이다. 창경원에서의 소싸움, 이런 사실을 알려준 것은 고암 이응노이다. 젊은 시절의 고암은 숱한 드로잉을 남겼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문제의 소싸움 그림이었다. 현장에서 속도감 있게 연필로 그린 소싸움 장면이 시대를 증거하고 있다. 현재 창경원은 본명인 창경궁으로 바뀌었고 동물원과 식물원도 이전되었다. 소싸움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술은 시대의 산물인가 보다.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개최된 ‘고암 이응노 드로잉 1930-1950년대’(1.27-3.1) 전시, 참으로 획기적이다. 이들 드로잉은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발굴 작품이다. 드로잉은 무려 600장 가량, 아니 앞 뒤로 그린 것 까지 포함하면 약 800장 정도의 대량이다. 그것도 1940년대 드로잉이 다수를 차지한다. 이렇듯 많은 드로잉을 남긴 화가가 이 땅에 있었던가. 감동 그 자체일 따름이다. 이들 그림을 통하여 우리는 젊은 시절 고암의 족적을 확인할 수 있다. 고암은 치열하게 정진했던 작가였다. 드로잉의 현장은 농촌의 자연풍경으로부터 도시 뒷골목에 이르기까지, 사실적인 인물화부터 누드 크로키까지 고향 홍성에서부터 일본 명승지까지, 종횡무진 다양한 소재를 보여주고 있다. 더욱 고마운 점은 상당수의 그림에 제작일과 제작 장소를 표기했다는 점이다. 이 기록 때문에 우리는 고암의 발자취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더불어 과거라는 시대 상황을 짐작할 수도 있게 되었다. 창경원에서의 소싸움 장면도 그 가운데 하나가 된다.

이번 고암 드로잉 전시는 가나문화재단의 기획으로 이루어졌다. 고암 전시 이외 권진규, 송영수, 김세중, 문신 등의 근대조소작품전과 변관식, 이상범, 허백련, 김은호의 근대 채묵화 4인전, 엘리자베스 키스, 폴 자쿨레, 릴리안 밀러 등 근대기 외국인 판화가가 묘사한 조선의 풍물, 그리고 해외 현대작가 전시 등이 아트센터 전관을 화려하게 꾸몄다. 썰렁한 겨울에 미술 애호가들에게 안복을 안겨준 전시였다. 지난해 재단법인으로 출범한 가나문화재단은 가나아트 이호재 회장의 원력에 의한 산물이다. 화랑과 옥션을 운영하면서 쌓은 미술의 공공재(公共財)를 사회 환원하기 위해 설립한 재단이다. 재단은 작가레지던시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장흥아틀리에와 파리시떼데자르의 작업장을 작가들에게 무상 제공한다. 벌써 입주작가를 선정하여 그들에게 공간을 제공했다. 전시의 경우, 공립미술관에서 개최했음직한 내용이지만 아직 그런 기회를 마련하지 못한 것들을 다룰 예정이다. 그만큼 컨텐츠의 수준을 담보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러저러한 문화사업을 위하여 이호재 회장은 자신의 부동산, 주식, 소장 미술품 등을 재단에 출연시켰다. 화상 출신의 이와 같은 문화사업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국내 초유의 일로 기록된다. 향후 미술관 건립까지 계획하고 있는 바, 가나문화재단의 역할에 기대를 걸게 한다.


고암 대전, 홍성, 예산 …?
이런 분위기에서 마련된 전시, 고암 드로잉 작품의 발굴 전시는 재단의 성격과 향후 진로를 짐작하게 한다. 다시 고암으로 돌아가 보자. 드로잉 가운데 홍성 생가 마을 풍경이 눈길을 끈다. 고암의 고향논쟁으로 홍성과 예산이 서로 싸운 적 있다. 결국 승소한 홍성은 고암 생가를 복원했고 생가기념관까지 건립하여 지역 문화사업으로 가꾸고 있다. 그런데 추정 복원된 생가와 고암의 드로잉과 차이가 있는 바, 행복한 고민거리 하나가 출현된 셈이다. <자택 마을>을 그린 고암은 지명을 ‘예산군 덕산면’이라고 표기했다. 대전시에는 이응노미술관이 있다. 그러니까 이응노미술관은 ‘고암 담론의 생산 주체’로서의 역할이 주요 업무라고 본다. 하지만 이번 발굴 전시를 보고 대전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번 고암 드로잉 전시는 홍성과 대전을 포함하여 고암 프로젝트의 본격적 발진을 재차 촉구하고 있다고 믿는다. 국제무대는커녕 국내 미술시장에서조차 제대로 대접받고 있지 못하는 고암, 하지만 국제 경쟁력 상위권의 작가, 고암을 다시 봐야 한다. 누가 프로 화가인가. 다량의 드로잉 작품은 후학들에게 많은 생각을 안겨 주었다. 그러고 보니 가나문화재단은 초장부터 작가들에게 커다란 숙제 하나씩을 안긴 셈이다.

드로잉의 정의

황재종展 / HWANGJAEJONG / 黃載鍾 / drawing

 2013_1225 ▶ 2013_1230

 

 


황재종_서울역_파스텔_56×76cm_2013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황재종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3_1225_수요일_04: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갤러리 각GALLERY GAC

서울 종로구 관훈동 23번지 원빌딩 4층Tel. +82.2.737.9963,9965

www.gallerygac.com


황재종의 다섯 번째 개인전이 인사동 갤러리각에서 2013년 12월 25일부터 30일까지 열린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2013년 현재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세계의 리더들의 초상화와 캐리커처, 군상 형식의 누드크로키, 생활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구성한 드로잉 작품을 전시한다. ■ 갤러리 각

 


황재종_하행선_붓펜_26×28cm_2012


5분의 미학 ● 그림은 고백이다. 그 사람의 마음의 모습을 도화지 위에 최선을 다해 보여준다. 5분 동안의 발언. 5분에 또 5분의 마음을 더하고 포개고 엮고 이어서 연결 짓는다. 그렇게 두 시간 동안 자기만의 세계를 탐험한다. 그림은 무현금(無絃琴), 줄 없는 거문고다. 글자 없는 시다. 저 낱낱의 알몸은 화가의 영혼을 노래한 시어(詩語)다. 아니다. 차라리 그것은 별이다. 오늘날 미학이 부실한 아득한 오밤중에 반짝이는 북극성보다 더 빛나는 이름을 얻지 않은 별꼴이야. ■ 황재종

 


황재종_잉태 孕胎_파스텔_54.5×36cm_2006


마음으로 빚은 삶의 담화, 우리네 이야기 ● 1. 작가 황재종은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쓴다. 인간사에 당신의 마음을 덧댄 에세이를 한권, 두 권 엮어내기도 한다. 수려하면서도 투박한, 그러나 소박함과 정이 듬뿍 배어 있는 그의 글들은 흥미롭고 재미있으며, 구석구석 알알이 새겨진 그림들은 화제(畵題)와 걸맞은 함의를 덧칠한다. 그야말로 내외의 일치이다. 그의 작업들은 어떤 대상에 대한 예민한 묘사를 넘어 '인간의 속'을 담는다. 현실의 리얼리티를 기저로 역사속 사람들을 당대 정직한 기록과 고유의 색깔로 화폭에 투각하고 평범하나 누군가에겐 소중한 이들의 삶을 옮기며 초상을 통해 자신만의 어법을 만들어 간다. 그런 점에선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드로잉도 같은 등선에 놓인다. ● 수없는 선(線)들이 화면을 헤집고, 자유로운 필선들이 흐트러졌다가 모이길 반복하더니 이내 도드라졌다가 사그라지는 드로잉, 그 한 점에서 생성과 소멸, 복잡함과 단순함, 격정과 고요를 본다. 이는 계산된 게 아니다. 무언가의 힘에 이끌려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맞으며, 의식의 대각선에서 펼쳐내는 진원(삶 이면에 놓여 있으나 보이지 않는, 그러나 존재하는)에 대한 탐구의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이 '신체' 외형의 재현이 아닌, '참사람'을 담아내려는 작가적 의지의 투영이라는 것을 부정하기 힘들다. ● 앞서도 거론했듯 오랜 시간 천착한 '사람'은 황재종 작품의 특징이자 변별력이다. 황재종은 그림이라는 'intermediation'을 통해 우리네 삶을 진득하게 포박하고 있다는 것이 옳다. 때문에 작가 황재종을 말하며 인간에 대한 언급을 회피할 수 없음은 그만큼 자주 소환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러나 주목해야할 부분은 그의 모든 작업을 관통하는 예에서처럼 사람자체는 현상, 즉 표현의 전(前)이라는 점이다. 내부에 갇힌 내면-사상 등을 끄집어내는 것이 후(後)이자 표현의 궁극이다. 물론 그의 작품에서 우러나는 향과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의 모체도 실은 그곳에 있다.

 


황재종_구구할매_연필_54×38cm_2013


2. 사상의 다른 말은 사실 휴머니즘(humanism)이다. 동시대 절망을 건져내는 유일한 단어는 인간애(humanity)다. 작가 자신의 일상성과 예술을 투영한 질퍼덕한 인간애는 황재종 작업의 종심이요, 그의 글과 그림은 바로 치장되거나 수식되지 않은 이 휴머니티를 각주로 한다. 실제로 작가는 나(Ago)를 인용한 객체지향의 관점에서 현실세계를 이해하고 자신과 같거나 다른 사람들, 또는 인근의 무엇과 구별시켜 주는 특별한 종합의 기반으로 인물이라는 미적 대상을 수용한다. 지금도 운영 중인 '그림패'도 그렇고 '인물화'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들도 그연장이다. 물론 그가 펴낸 책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이들 작품은 현실세계에 대한 인식을 재구성하며 자유로운 심적 평형을 유지하고 있다. 때로 특정 인물만의 고유성과 이미지를 간직하지만 반면 잠잠한, 사유의 틀로도 변형되곤 한다.) ● 조형으로서의 사람, 그 중에서도 인물화는 작은 동작마저 포착하는 섬세한 시선 아래 새 생명을 얻는다. 마치 동양화의 수묵채색과 같은 발색, 역사 속 인물들에서 엿보이던 뛰어난 사실적인 묘사 등, 인물화라는 장르가 안고 있는 특이 사항을 거의 내포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특정인이 지닌 고유의 미와 눈으로 분별하는 미, 인간 내면에서 분출되는 솔직한 감성과 사고의 아름다움에 대한 공감을 끌어내는 미, 정지된 현재와 능동적인 심적 상황이 교묘하게 합일됨은 그의 그림이 지닌 차이를 발견토록 하는 요인으로 자리한다. ● 그의 드로잉은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끼며 살아가는, 삶의 다단한 심상을 복잡함 속 정적으로 치환하는 예술적 도구다. 훌치는 선(線)은 복잡하게 돌아가는 우리네 사회와 닮았고, 그 사이에서 피어난 대상은 그럼에도 질서가 부여되는 현대문명 속 인간사와 흡사하다. 여체가 등장한다하여 요요연연한 것만은 아니다. 그건 차라리 삶에서 느끼는 오만가지 감정을 긍정적으로 애착하는 기나긴 여정의 한 선수(船首)에 해당한다.

 


황재종_누드크로키_수묵_91×61cm_2009


3. 작가가 예술로 어느 지향점을 발견하고 찾아가는 여정은 그리 녹록치 않다. 자신의 관념이 곧 표현이고 그 표현이 다시 그림이라지만, 작가는 예술과 세상사의 교합지점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가 적지 않다. 예술인과 현실인의 괴리, 매 순간의 인생 여정에서 체감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치는 것도 동시대 예술가들에겐 하나의 숙명이다. ● 다만 그 교합지점이 또 다른 어느 지점과 만나 응축-폭발하는 찰나 예술성은 창궐한다. 정확한 이념과 실천력 아래에서만이 향후 과제(課題)는 대비적으로 산화된다. 황재종은 그 키(key)를 인체해부에서 찾는다. 그저 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오감으로 느낀 것을 담는다. 이는 기초적 조형언어의 간극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비시각적 언어마저 끌어들이는 지남철 역할을 한다. ● 지금도 작가는 늘 두어 발 앞서 단발적인 수준에서의 멈춰짐을 꺼려한다. 일련의 만족과 나아감에 대한 욕구가 작가 본연의 미의식과 자아라는 정체성을 움직이고, 내적으로 동시적 관점을 내포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길 희망한다. 그 궁극의 종착지는 우리 사는 세상에선 인간이며 삶이다. 눈과 마음, 글과 그림으로 두루 훑어 토해낸 인간사에 관한 고찰의 성찰이요, 집요한 수련 과정을 통한 언어의 다변화와 확장이다.(이는 지극히 현재적이다) ● 이와 관련해 첨언하자면, 그의 인간에 대한 시각은 한마디로 명쾌하다. 일그러진 역사 속 인물, 자신이 체감한 심상의 이미지를 경쾌하면서도 식격(識格) 있게 드러낸다. 그가 생성하는 인물(역사 속 인물이든「카페열차」로 이름 붙여진 지하철 속에서 우연히 만나 스쳐간 익명의 누군가이든)은 단순한 듯 지나는 것처럼 비춰지지만 해부학연구에 비롯된 예리함을 대리하며, 화폭을 리듬감 있게 채운 드로잉의 미묘한 흐름과 율동, 공간 속에서 변화하는 순간의 양상은 세밀하고 치밀한 표현법을 넘어 거친 자유로움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증명한다.

 


황재종_누드크로키_수묵_107×77cm_2003


4. 오랜 시간 한 장르를 고집해온 황재종 작품이 갖는 표현언어는, 비록 사실주의에 입각한 드러남일지라도 그 이면엔 (원하던 원하지 않던)작가 자신과 그리드 된 기억과 편린, 인간에 대한 아련한 향수가 밑바탕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외형의 프레임을 이탈한다. 인생의 넓이와 깊이, 주위와의 관계에 의해 공간감을 정위(定位)하는 구도법은 표현되어지기 위한 심연의 상태를 함께 어우를 필요성이 있음을 깨닫게 한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2009년 펴낸 책 『꼴값』을 보더라도 인간을 대하는 깊이와 여백이 단순한 감정이상의 무언가를 말하고 있음은 명약관화해진다. ● 그가 직접 집필하고 그린 이 책에는 사실상 해체되고 재구성한 일상의 단상, 지나갈 혹은 지나간 추억들이 숨 쉬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 기억들 속에 누워있는 시간의 이면들이 하나씩 덤덤하게 솟아 드리워져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 추출된 이미지, 반영으로부터 더 한층 나아가 자신의 시공간성을 이입해보려는 노력이 자신을 또는 그 안의 삶을, 그리고 우리네 지층에 각인되어야 할 휴머니즘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 자체는 아결하다.(참고로 『꼴값』에서 엿보이는 해박한 지식과 경험, 특히 정겹게 묻어나는 우리네 이야기는 주목할 만하다. 필자는 그중에서도 '식사', '동춘아제' '함매' 연작을 추천한다. 사람을 보는 작가의 선연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 황재종의 그림들이 모사(재현)의 수법이나 테크닉에 전적으로 의존되고 있음은 아니다. 그의 작화(作畵)는 데생력과 대상에 대한 통찰력의 일출함이 없으면 가능하지가 않다는 점에서 구상력의 완성을 의미하긴 해도, 쉽게 읽히는 감정들을 쏟아 놓는다는 측면에서 어느 한 방향에서 해석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작가의 구상들은 주변의 생명력을 흡입한 채 공간을 가로지르며, 재료 이면에 놓인 대상의 빛과 공기가 재료라는 물질과 호흡하면서 작품을 보다 명미롭게 만드는 묘한 분위기가 존재한다. 이 모든 것들은 정확한 관찰에 의한 데생력이 가미되면서 생성되는 것으로, 그렇게 완성된 하나의 대상이나 피사체들은 농익은 상태로 화면 속에 고스란히 묻어 나온다.

 


황재종_흑묘백묘 黑猫白猫_유채_60.5×90.5cm_2013


5. 작품에서 뿜어져 부유하는 정감이나 기운은 드러남 이상의 리얼리즘을 뒤쫓게 한다. 그러나 황재종이 주로 다루는 모티브들의 특성은 대상에 대한 존재성을 인식한 후 나타나는 모든 여운들이 집약되어 있다는 것에 방점이 있다. 드로잉이든 인물화이든 매한가지이고, 그건 감성적으로 잡아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라는 점에서 외적 재주에 대한 가치만으로 판단하거나 설명할 수만은 없지 않나 싶다. ● 그가 필자에게 전달한 책과 그림, 글을 덮으며 스민 여운은 한마디로 삶의 숨결, 서정적 추상과 함께 인간적인 것들과 자신을 결합시킨 작품들을 지향하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만약 그게 맞는다면 미술의 본질, 순수한 회화성을, 특정한 양식의 그 어떤 미술형식보다 인간 중심의 그 무언가를 담고자 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에선 소박하지만 자유의 공간으로 가기 위한 예술가의 여백이 느껴진다. 형식이 내용을 누르지 않는 전개와 더불어 '무음언어'가 언형(言形)으로 전도되어 미적 개념으로 나아가는 형국을 목도한다. ■ 홍경한

Vol.20131225a | 황재종展 / HWANGJAEJONG / 黃載鍾 / draw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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