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매화
성태훈展 / SEONGTAEHUN / 成泰訓 / painting
2022_0325 ▶ 2022_0410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한벽원미술관
HANBYEOKWON ART MUSEUM
서울 종로구 삼청로 83(팔판동 35-1번지)
Tel. +82.(0)2.732.3777
성태훈의 회화: 상실된 꿈과 인간화 과정 ● 성태훈(成泰訓, 1968-) 작가는 역사와 사회를 그렸다. 단순히 역사의 사건을 화면에 재현한 것이 아니라, 특정 시간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했다. 급기야 인간의 역사는 무엇인지 묻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고 인간의 의미를 묻기 시작했다. 작가는 미술대학교에서 붓을 들고 지면과 마주치는 사건으로는 인간의 의미를 알 수 없다고 생각하여 철학을 배웠다. 『예기(禮記)』를 보아 인간의 제도를 보고, 사서(四書)를 보아 인간의 마음을 보고, 『사기(史記)』를 보아 인간의 사건을 통찰했다. 작가는 인간의 길이란 정기성(情其性)에서 성기정(性其情)으로 가는 부단한 노력이라는 것을 알았다. 정기성은 내가 살면서 배운 욕망으로서의 습(習)이 선(善)으로서의 본성을 처참하게 누른 것을 말한다. 반대로 성기정은 선한 본성이 회복되어 욕망의 정을 아주 여유 있게 극복한 것을 말한다. 인간의 길을 우리는 흔히 도리[道]라고 부른다. 도리는 선한 본성의 회복에 있다. 내가 선한 본성을 회복하면 그다음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작게는 가사(家事)를 가지런하게 하고 더 나아가 공동체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 공동체의 생명력 넘치는 활기는 국가에 혈류를 돌게 하고 나아가 천하(세계)를 기쁘게 한다. 여민동락(與民同樂)의 꿈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도리를 아는 사람[君子]은, 따라서 경세(經世)를 향한 책무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욕망을 종용하고 고인(古人)이 물려준 가치를 철저히 부정하는 자본주의, 그리고 더욱 처절해진 후기자본주의의 폭주는 본성의 회복[復其性]을 허언(虛言)이자 망상(妄想)이라고 부추겼고, 우리는 그대로 세뇌되다 급기야 그것의 노예가 되었다. 우리는 원래 선한 본성을 모두 공유하면서 기운 부분을 서로 괴면서 완전한 전체를 세우며 살고자 했다. 완전한 전체가 이루어진 때도 있었고, 그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에 준한 시절이 있었다.
성태훈 작가는 2012년부터 「날아라, 닭(Fly, Roosters)」 연작을 그렸다. 작가는 경기도 외곽 시골 작업실에서 키우던 닭을 보고 가슴 울렁이는 깨우침이 있었다고 한다. 작가는 우리에 모여 사는 닭 중에서도 수탉(rooster)에 유달리 관심이 갔다. 수탉을 뜻하는 'rooster'의 어원 'roost'는 '횃대(架)’나 '쉬다’라는 뜻을 지닌다. 수탉은 날면서 광활한 영역을 오가며 사냥하고 새끼 기르던 시절을 망각한 존재이다. 지금 우리[圈]의 횃대에서 편안히 쉬는 것을 안락해하며, 더욱이 많은 암탉을 다루는 지위에 자부심을 느낀다. 작가는 수탉의 본성, 즉 하늘을 나는 능력과 수탉의 욕망, 즉 현재의 처지에의 안주를 화면에 극화시킨다. 「날아라, 닭」 연작은 많은 실험을 거치다 2013년부터 형식적 완결성에서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옻칠로 그린 화면은 칠흑같이 까만 어두운 밤이나 이른 새벽을 극적으로 나타낼 수 있었다. 불에 탄 나무의 물질적 특성을 드러내기에도 좋았다. 따라서 「날아라, 닭」 연작이 가리키는 말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불에 타고 있는 세상에서 타죽지 않고 나는 법을 기억해내라." "남들이 부산하게 움직여서 난리법석이 되는 한낮이 되기 전 새벽녘에 날아서 떠나라.(남들보다 먼저 깨달아라.)"
불교 경전인 『법화경(法華經)』에는 "삼계에는 편안함이 없어서, 비유하면 불난 집과 같다."라는¹ 문장이 나온다. 불난 집은 곧 화택(火宅)이다. 그리고 삼계(三界)란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를 가리킨다. 여기서 욕계는 아수라장을 말하고, 색계는 선정(禪定)을 닦은 사람이 사는 곳이다. 그런데 무색계까지 포함되어 있다. 무색계란 무색천(無色天)과도 같은 말로서 육체와 물질의 속박을 벗어난 정신적인 사유(思惟)의 세계를 이른다. 그런데 지옥‧악귀‧축생‧아수라‧인간‧육욕천이 화택인 것은 알겠는데, 색계와 무색계까지 화택에 포함되는 것이 놀랍다. 그것이 제아무리 정신적 만족을 얻는 삶이라고 할지라도 개인만의 사사로운 만족에 그친다면 화택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성태훈 작가가 묘사하고 있는, 대지가 불타고 하늘이 붉게 물든 화면은 화택을 연상시킨다. 주인공 수탉은 화택을 넘으려 안간 힘을 쓰며 하늘을 난다. 수탉은 우리를 가리킨다. ● 인간화(humanization)라는 말에는 동식물의 인간에 대한 길들여짐(domestication)이라는 말도 있지만, 인간의 인간에 대한 길들여짐(civilization)이라는 말도 포함된다. 그러나 인간의 길들여짐, 즉 문명화라는 말은 함양(cultivation)과는 다르다. 문명화는 인간의 외적 제도에 대한 적응과 관련된다. 반면에 함양은 내면에 깃든 본성의 회복과 관련된다. 동식물에 대한 인간화는 인간의 욕망을 위하여 그들의 본성을 제거한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인간에 대한 인간화를 뜻하는 문명화는 인간의 욕망을 위하여 인간의 본성을 제거한 것을 뜻한다. 문명화가 가장 극단적으로 발현된 것을 후기자본주의라고 하자. 이것은 『법화경』에서 말하는 화택의 대명사이다. 세계를 수량적으로 계측하며 사람을 수량 속에 가둔다. 외부 환경에 폭압을 가하며 왜곡하고 수탈하며 정복한다. 그럴수록 내면의 선함은 어두움에 가려져 저 멀리 달아난다. 성태훈 작가가 전면에 그렸던 수탉의 우화는 우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 올해 2022년 성태훈 작가가 들고 나온 화두는 「웃는 매화」이다. 지붕 위로 빨간 고양이가 서너 마리 노닐고 있다. 지붕 위로 매화꽃이 올라와서 붉게 피어있다. 때때로 참새가 나타나서 소리가 들리는 듯 하며 화면이 노니는 고양이의 정겨운 동태와 새소리, 매화 향기가 섞여서 공감각적이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지붕 위를 설정하고 있다. 지붕은 건축의 외면이다. 지붕만을 묘사한다는 것은 건축의 내부를 완전히 배제한다는 의도를 뜻한다. 내부는 사람의 내면을 뜻한다. 지붕이라는 건축의 외부는 인간의 사회화와 제도를 뜻한다. 여기서 또한 고양이는 독립적이며 자기중심적인 세태를 상징한다. 작가는 후기자본주의라는 극단적인 외부에 적응하여 유유자적 노니는, 그래서 독립적이며 방해받지 않는 자아(自我)를 고양이로 묘사했다. 그러나 이 연작의 제목이 「웃는 매화」라고 되어있다. 「웃는 매화」는 희망을 상징한다. 매화의 향기는 무의식의 하수구에서 썩어 흐르는 욕망‧이기심‧시기심‧나르시시즘‧새디즘의 악취를 옅게 희석해줄 정신성을 은유한다. 그래서 조선 중기의 문신 상촌(象村) 신흠(申欽, 1566-1628)은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오동은 천 년이 되어도 항상 곡조를 간직하며,매화는 평생을 춥게 지내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달은 천 번을 어그러져도 그 본질을 잃지 않으며,버들은 백 번을 꺾여도 새 가지를 돋아낸다.²
성태훈 작가가 묘사하는 매화는 신흠 선생이 말하는 매화와 같다. 희망은 의지에서 비롯된다. 정념의 살을 개의치 않는 의지의 뼈가 그것이다. 오동은 천 년의 곡조를 지니며 매화 역시 의지를 꺾지 않는다. 달은 변하는 것 같지만 변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버들은 강인한 생명력을 잃지 않는다. 인의예지신이라는 오상(五常)이 인(仁)이라는 한 글자에 모두 귀속되듯이 신흠의 사군자는 성태훈 작가의 「웃는 매화」 하나에 모두 포괄된다. 「웃는 매화」는 그래서 희망이다. 빨간 고양이는 우리의 세태를 뜻한다. 후기자본주의 하나, 과학주의 하나, 물질만능주의 하나, 경쟁주의 하나가 그것이다. 현재의 사악(四惡)이다. 그러나 이것은 난공불락의 영원한 요새가 아닐 것이다. 사악은 아주 사소하고 쉬운 것에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다. 매향(梅香)이 그것이다. 사악에 포위되어 노니는 고양이, 화택에 불타기 전 수탉의 우화는 결국 매향을 기억해서 본래의 나를 찾는 과정을 가르쳐주고 있다. ?장자(莊子)?의 「제물론(齊物論)」에도 "오상아(吾喪我)"라는 말이 나온다. "내가 나를 버리다." 혹은 "내가 나를 장사지내다."라는 이 말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함의하는 바는 매우 크다. 살아가며 얻은 습(習)으로 물든 나[我]는 본래의 나[吾]로부터 멀어져 있다. 나[我]는 붉은 고양이이다. 나[吾]는 매화 향기로 말미암아 본연에 도달하려는 나이다. 성태훈 작가의 「웃는 매화」는 따라서 잃어버린 나와 상실된 꿈을 다시 회복하려는 간단하지만 웅대한 서사를 하나의 화면에 응축시키고 있다. 이 뜻을 눈으로 직감할 때 우리의 내면에도 작은 울림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 이진명
¹. 『法華經』: "三界無安, 猶如火宅."². 申欽, 「野言」: "桐千年老恒藏曲, 梅一生寒不賣香, 月到千虧餘本質, 柳經百別又新枝."
Vol.20220322b | 성태훈展 / SEONGTAEHUN / 成泰訓 /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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