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섭 서울대 교수 인사동서 전시

 

[조선일보:이순흥기자]
 
"어떤 학문이든 그 안에만 매몰되면 발전이 없습니다. 새로운 영감을 주는 재료, 저는 그게 '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25일 성탄절 오후 서울 인사동의 한 미술관에서 만난 정종섭(56)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시할 그림들을 배치하느라 분주했다. 이날은 '헌법학자'로 널리 알려진 정 교수가 지난 2년 동안 그려온 그림을 대중에게 처음 선보이는 자리. 30일까지 서울 인사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볼 수 있다.

정 교수는 "전시할 수준인지는 모르겠다"며 쑥스러워하면서도 자신의 그림을 '신(新)문인화'라고 소개했다. '매화(梅花)'를 소재로 한 그림들은 '먹'으로만 그린 기존 문인화와는 달리 아크릴 물감을 사용해 색채가 화려했다. 그는 "'조선시대 문인들이 지금 살고 있다면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면서 "재료는 다르지만 그림이 갖고 있는 의미, 즉 문인들의 지조와 신념만큼은 고스란히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지난 25일 오후 서울 인사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정종섭 교수가 자신이 그린 ‘신문인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수백 년 전 유행했던 문인화가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가질까? 정 교수는 "요즘에는 예술을 하는 학자들이 거의 없지만 조선시대에는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 선생 등 지식인들 대부분이 그림·서예 등 미적 활동도 왕성하게 했다"면서 "그림과 같은 예술 활동을 통해 미적 소양을 기른다면 원래 학문 분야에서 더 큰 가능성, 즉 '영감'을 발휘할 수 있다"고 했다.

정 교수는 40년 이상 서예를 공부하고 최근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효과를 톡톡히 봤다고 말했다. '헌법 개혁' 분야에만 30년 이상 몸담은 그는 "사람들이 나에게 '똑같은 공부 수십 년 하는 게 지겹지 않으냐'고 묻는다"며 "하지만 예술 활동을 통해 얻는 영감들이 내가 연구하는 학문을 더 풍부하고 새롭게 만들어 지겨울 겨를이 없다"며 웃었다.

정 교수는 학생들에게도 미적 활동을 적극 장려한다. 그림이나 서예는 학생들이 당장 시작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는 분야이니, 대신 사진을 찍어보라고 권유한다. 그는 "전공은 법학이지만 제자들과 함께 미학과 관련한 토론도 자주 한다"면서 "이런 과정을 통해 꾸준히 '자극'을 받는 학생들은 기존 틀에서 벗어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갖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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