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초상사진 찍다 별 일을 다 겪는다.

노숙하거나 쪽방에 살면 누구던지 찍는 것이 아니라

찍을 대상의 기준을 정해두었으니, 마땅한 대상을 찾기가 쉽지 않다.

 

가난하게 살아도 당당하게 사는 사람이 흔치 않은데다,

술 마시지 않은 온전한 정신 상태에서 본인이 요청해 오기란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없다.

더구나 일체의 연출이나 보정 없이 있는 그대로를 노출하는 사진이라 잘 나서지 않았다.

 

대개의 사람들이 사진 찍히기를 싫어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모든 것을 지우고 싶은데 사진은 남겨 무엇 하냐?'는 것이다.

그리고 쪽방주민들은 대부분 영정사진을 만들어 놓은데다,

노숙인은 사진 둘 곳이 없어 찍어 줘도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접근방법을 달리하여 찍어달라고 할 때까지 기다리며, 스스로를 광고했다.

그동안 언론사 인터뷰 요청까지 거절해가며 동등한 위치임을 자랑삼았으나, 쪽팔려도 약력을 까 발렸다.

기존 영정사진과 달리 한 장의 초상사진으로 영원히 남기겠다는 각오로 임했다.

아무리 사람을 찍어 왔지만, 짐승보다 못한 인간은 찍지 않는다며, 어깨 힘도 주었다.

 

어차피 전시가 끝나면 사진은 본인에게 돌려줄 것 이지만,

이중으로 돈 들여 사진 찍는대로 인화해 준 것이 소문이 난 것 같았다.

요즘은 나의 뜻에 동조하는 사람이 하나 둘 늘고 있다.

아무리 모델로서 그럴싸해도 자격을 갖추지 않으면 찍지 않았다.

 

그리고 이 일은 지속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 서둘 일은 아니었다.

량이 아니라 질이 중요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작품성보다 당사자의 정신력이 더 중요하다.

 

며칠 전에는 음악이 좋아 통기타 하나 챙겨들고 떠돌다

쪽방에 입주한 위수범씨를 우연히 만났는데,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사진보다 자신의 삶에 자긍심을 갖는 일이 우선이라 길바닥에 퍼져 앉아 이야기부터 나누었다.

 

거지처럼 사는 것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며,

돈 번 사람보다 돈을 벌지 못했기 때문에 더 잘 살았다는 위안에 그만 울고 말았다.

울음을 멈춘 후 사진을 찍었으나 슬픈 표정 즉 감정이 노출되어 실패했다.

사진은 나중에 다시 찍으면 되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잘 살았다는 자긍심을 갖는 게 초상사진 찍는 목적이기 때문이다.

초상사진은 당당하게 스스로를 내 세울 수 있어야한다.

 

그 다음 날은 김상진씨를 만나 찍었으나, 그 역시 눈물이 고였다.

돈 때문에 가족을 잃었지만, 잘못 산 인생은 아니라는 것이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 같은 돈벌레 보다 얼마나 인간적이냐?

 

사진이야 다시 찍으면 되고, 그것도 아니라면 만족할 때까지 찍으면 된다.

돈 벌기 위해 하는 일이라면 할 수 없겠지만, 이렇게 사는 것이 좋다.

일이 아니라 나의 놀이며 내가 가야 할 길이다.

 

사진, 글 / 조문호

 

30여년 동안 가족과 떨어져 일하며, 생계비 보내는 원용희씨(56)

지난 해 부터 서울역주변 노숙인과 동자동 쪽방사람을 대상으로 ‘서울역전 사람들’의 입상사진을 찍고 있다.

 

밀양에서 태어나 고아처럼 떠돌다 20년만에 안착한 박희봉씨(70)

 작업 시한은 동자동 쪽방이 재개발 되는 날 까지의 기록을 책으로 엮을 것이라 서둘 것 없이 시름시름 작업하면 되는데, 지난달 예술인 협동조합인 ’스마트협동조합‘으로부터 ‘서울문화재단’에서 ‘2023년 원로예술지원금을 신청 받는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부자처럼 낙천적으로 사는 신문황씨(81세

지원액이 300만원이라 전시지원이나 출판지원이라기 보다, 살기 어려운 원로예술인들의 생계비를 보조하는 것으로 알고 신청했다.

 

노숙자의 대부로 통하는 홈리스자활센터 최성원목사(78세)

웬만한 지원금은 신청절차가 까다롭고 선정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 거들떠 보지 않은 지  꽤 오래되었다. 그러나 이번 지원금은 나이 많은 예술가들의 생계비 보조라는 생각에 관심을 가졌는데, 번거로운 신청절차도 ’스마트협동조합‘에서 대신 해 주었다.

 

동자동의 굳은 일을 도맡아 김반장으로 통하는 김정길씨(76세)

그동안 ’스마트협동조합‘에서 코로나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많은 예술인에게 도움을 주었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예술인복지 사업의 여러 정보를 알아내어, 일 자리를 마련해 주는 등 가난한 예술인들이 지원받을 수 있는 여러가지 일을 주선해 왔다.

 

쪽방에서 반세기를 살아온 동자동의 원로 이상준(79세)

우리나라의 대표적 예술단체로 꼽히는 ’예총‘과 ’민예총‘도 있지만, 여태 이권이나 자리다툼에 연연했지, 가난한 회원들의 복지를 위해 노력한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온몸이 종합병원이라는 강석남씨(70세)

그동안 예술가들의 얇은 호주머니 털어가며, 회원을 위해 한 일이 도대체 무엇인가? 그들이 못하는 일을 창립된 지 3년밖에 되지 않은 조합원4-5백 명에 불과한 예술인 협동조합에서 해 낸 것이다.

 

서울역 주변에서 생활한지 10년이 넘은 노숙인 김지은씨 (57세)

이번 ‘서울문화재단’에서 실시한 원로예술지원금도 '스마트협동조합'의 도움을 받아 쉽게 접수할 수 있었는데, 복권 당첨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 같았다. 나만 운이 좋아 선정 되었지, ‘스마트협동조합’에서 신청한 많은 원로 예술인들이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지원 받은 극 소수의 예술가들은 좋을지 모르지만, 선외로 밀려 난 많은 원로예술가의 실망감이나 자괴감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았는가? 그동안의 실적과 사업계획서를 어렵사리 제출했는데도 밀려났으니, 얼마나 열 받겠나? 쥐꼬리만 한 돈으로 창작을 지원한다는 것도 우습지만, 지원하는 생색만 내고 원로예술인들 엿 먹이는 처사다.

 

지난 14일, ‘서울문화재단’에서 지원금 교부신청 하라는 통보를 받아  '서울시민청 태평홀'로 찾아 갔다. 지정한 장소에는 대상자 40여명이 모여 있었는데, 아무리 돌아보아도 아는 예술가는 한 명도 없었다. 서울의 원로예술가가 많기야 하지만, 어찌 이토록 생소한 분만 선정되었을까? 누가 심의를 했는지, 선정한 심사기준이 뭔지 모르겠다.

 

더 웃기는 일은 1시간 30분 동안 늙은이들 모아 놓고 성폭력 예방교육을 시키는데,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  창작지원과 성교육이 무슨 관계가 있으며, 요즘 세상에 그 정도 모르는 늙은이가 어디 있겠나?

오래전 정관 수술하면 예비군 훈련 면제해 주던 생각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타고난 괴으름으로 꼼짝도 하기 싫다는 이정회씨(62세)

아무튼, 제 기능도 못하는 성교육 한 번 잘 받고 접수 순서대로 신청했는데, 보름 후에 세금을 공제한 금액을 입금시켜 준 단다. 그러나 300만원에 대한 사업 결과보고를 연말까지 제출하지 않으면, 지원금을 반납해야 한다는 말도 덧 붙였다.

 

'새꿈공원'앞에서 구멍가게 운영하는 강재원씨(65세)

나야 하던 작업을 그대로 추진하면 될 것으로 여겼으나, 연말까지 정산하려면 전시계획을 바꿀 수 밖에 없었다.  그동안 작업한 사진으로 치룰 수도 있지만, 전시내용을 바꾸어야 할 사정도 생긴 것이다.

 

아름다운동행' 식권이 생겨 굶어 죽을 일은 없다는 임백수씨(68세)

얼마 전 찍은 입상 사진을 당사자에게 전해 주었더니, “이런 사진 말고 얼굴만 크게 나오도록 찍어 달라”는 것이다. 아마 방에 걸어 두었다가 영정사진으로 활용할 생각인 것 같은데, 그들 생각이 훨씬 현실적 이었다.

 

그래서 "서울역전사람들" 전시를 1부와 2부로 나누어 전시하기로 했다.

1부인 "버려진 사람의 초상“은 2023년 12월20일 부터 12월26일까지다.  

 

지원받은 삼백만원이면 사진 제작비와 액자비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목적에 의한 기록성보다 당사자의 필요성이 더 중요한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며칠 전부터 '서울역전사람들" 입상사진과 "버려진 사람의 초상" 작업을 병행하여 추진한다.

사회에서 버림받아 가장 낮은 곳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의 슬픈 초상을 통해

사람에 대한 존중감을 일깨우고 평등한 세상을 위한 외침이다.

전시가 끝난 후 본인에게 증정하게 될 초상은,

사람은 떠나도 그 사진만은 영원히 기억되는 초상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각오다.

 

사진, 글 / 조문호

 

서울문화재단’에서 지원하는 원로예술가 지원사업

 

사업내용 :  ‘버려진 사람의 초상' 사진전

촬영 및 전시 작가 조문호 

촬영대상 : 동자동 쪽방촌 주민 및 서울역전에 머무는 노숙인

촬영일시 : 2023년 220일부터 12월10일까지 / 촬영인원 무제한

전시일시 : 2023년1220일부터 12월26일까지 / 전시작 50점 내외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가 물러가니, 연이어 추위가 찾아왔다.

쪽방은 더위보다 추위가 지내기 쉽지만, 노숙인의 겨울은 죽음의 골짜기다.

노숙인을 위해 안 입는 내복을 얻으러 쪽방 몇 곳을 찾아다녔다.

대부분 단벌이라 여분이 없었고, 정씨는 일찍부터 잠들어 있었다.

박희봉씨 방문을 열어보니, 그는 짐 속에 파묻혀 웃고 있었다.

 

방세가 20만원이라 다른 곳보다 싸기는 하지만, 한 평도 채 되지 않았다.

창문도 없는데다, 사방이 짐으로 둘러쌓여 들어가 앉을 자리조차 없었다.

방문을 열어놓고 밖에 걸터앉으려니, 방으로 들어오라며 손을 내 저었다.

사람이 지나가는 좁은 통로라, 길을 막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좁은 공간에 끼여 앉아 커피한 잔 얻어 마시며, 내복 이야기를 꺼냈다.

안 입는 내복은 있으나 산더미처럼 쌓인 짐을 다 들어내야 해, 이사가기 전에는 손도 대지 못한단다,

많은 짐을 끌어 내리면 다시 쌓아 올릴 수가 없다기에 할 말을 잃었다.

얼마나 공간이 협소했으면, 티브이와 선풍기도 손바닥만 한 것을 사용했다.

 

박희봉(69세)씨는 밀양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객지를 떠돌았다고 한다.

혈육이라고는 형님 한 분 계셨으나 어린 시절 헤어져 지금은 생사조차 알 수 없다.

고생이란 고생은 찾아 다니며 하다, 20년 전에야 동자동에 안착했다.

그동안 모은 짐이 쪽방을 가득 채웠으나, 버리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만약 쌓아놓은 짐이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큰일 날 것 같았다.

 

건강에 문제가 생겨 술은 끊었다지만, 담배는 도저히 끊을 수가 없단다.

담배연기 빠질 곳도 없는 좁은 공간에서, 유일한 낙이 담배라며 담배부터 꺼내 문다.

살아 온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악몽의 세월은 돌아보기도 싫단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죽을 날만 기다리는 것이다.

 

쪽방이 공공 개발되면 방 같은 방에서 한 번 살아 볼 꿈에 부풀었지만,

죽기 전에 이룰 수 없는 진짜 꿈같은 일이 되고 말았다며 한숨을 내 쉰다.

동자동 공영개발이 민영으로 가닥을 잡아가는 오늘의 현실은

동자동 빈민들에게 심한 좌절감을 안겨주고 있다.

 

집에서 가져 온 내의 한벌을 챙겨 서울역광장으로 갔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인지, 서울역광장에 노숙인이라고는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노숙인 응급 잠자리를 운영하는 지하공간은 공사 중이었고,

노숙인이 머물 수 있는 지하도에만 30여명이 몰려 있었다.

 

내의가 한 벌 뿐이라 잠든 노숙인 머리맡에 슬쩍 내려놓고,

오는 길에  ‘실버넷뉴스’ 운현선 시민기자를 만났다.

나를 만나러 서울역에 왔다는데, 평소 전화를 받지 않아 어렵사리 만난  것이다.

작년 홈리스 추모제에서부터 ‘노숙인 길에서 살다’ 현수막 전시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취재해 갔으나, 모자란 부분을 보충해야 한단다.   

 

여지 것 신문이나 방송기자들의 인터뷰는 극구 사양했지만, 운현선씨만은 거절할 수 없었다.

그동안 정영신의 ‘어머니의 땅’과 나의 ‘인사동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공조했기 때문이다.

별 영향력 없는 매체라 걱정할 필요는 없으나, 마음에 걸리는 일은 틀림없었다.

 

마침 서울시에서 실시한 ‘약자와의 동행’ 식권사업에 대해 물어 흔쾌히 답해 주었다.

독거노인에게 절실한 사안이라 전국적으로 확대했으면 하는 바램에서다.

 

'국토부'는 빈민들의 마지막 희망인 동자동 공영개발을 하루속히 추진하고,

'복지부'는 독거노인에게 하루 한 끼의 식권을 제공하라.

그리고 차디 찬 거리에 방치된 노숙인의 안전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바란다.

약자들의 재난은 정부에서 책임져야 할 것 아닌가?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

 

사진, 글 / 조문호

 

 

동자동 임백수(68세)씨 고향은 장흥이다.

여기저기 떠돌다 동자동에 둥지 튼 지도 수십 년이다.

세상살이에 골병 들어 몸 한 곳 성한 데가 없지만, 가오만은 살아있다.

술을 마시지 않아 멋 부리는 재미로 사는데, 자기 사는 쪽방 방문은 절대 사절이다.

좁은 방에 늘린 구질구질한 것들을 보여주기 싫어서다.

식사는 했냐? 고 물었더니, 오세훈 식권으로 해결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서울시에서 지난 8월부터 시행한 ‘약자와의 동행’에서 쪽방 빈민들에게 하루 한 끼,

본인만 먹을 수 있는 팔천원짜리 식권을 나누어 주었는데, 독거노인으로서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년 말까지 한시적인 프로젝트지만, 기초생계비를 삭감해서라도 전국적으로 확대했으면 좋겠다.

다들 한 끼만은 먹고 싶은 것 골라 먹을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일이 어디있겠는가?

줄 사람도 쓸 곳도 없지만, 수급비 받으면 밥 한 끼 사 먹는 것조차 인색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빈민들의 숙명이 아니겠는가?

먹는 것이 귀찮아도 사라질 돈이 아까워 사 먹게 되어,

독거노인에게 딱 맞는 복지사업이라고 생각한다.

굶는 사람 없을 것이고, 요식업은 활성화될 것이고, 농산물 소비까지 늘어나니,

이게 도랑 치고 게 잡는 일이 아니던가?

“어차피 하루 한 끼 인생이지만, 이제 굶어 죽을 걱정은 없다”는 임백수씨,

갈 곳도 오라는 곳 없으나, 오늘도 전동차에서 대기 중이다.

사진, 글 / 조문호

동자동은 공공-민간개발 갈등에 지구지정도 못해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과 종로구 창신동 쪽방촌의 모습. 좁은 골목 안에 낡은 건물이 밀집돼 있다. [이가람 기자]

 

"너무 답답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개발이 잘 된다면 집다운 집에서 살 수 있어 좋겠지만 또 쫓겨나면 이만큼 저렴한 가격에 몸을 누일 수 있는 곳이 없거든. 이런 어려움을 나라에서 잘 살펴 줬으면 좋겠어."

여름에는 실내보다 실외 생활이 더 나을 정도로 극심한 폭염에 시달리고, 겨울에는 난방은 커녕 수도가 동파돼 씻지도 못하는 1평 남짓한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쪽방촌. 노후 건물을 촘촘하게 쪼개 한 달에 15~30만원 수준의 월세를 받는 쪽방촌은 지옥고로 불리는 반지하·옥탑방·고시원보다 더 열악한 주거시설이다.

현재 서울에는 비슷한 시기에 형성된 다섯 개의 쪽방촌이 존재한다. ▲영등포 쪽방촌 ▲동자동 쪽방촌 ▲양동구역 쪽방촌 ▲창신동 쪽방촌 ▲돈의동 쪽방촌 등이다. 과거 1960년대 급격한 도시화·산업화 과정에서 밀려난 빈곤층이 모여들면서 조성됐다.

지난 16일 오후에 찾은 서울 쪽방촌들은 벌써 몇 년째 지역개발 이슈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최근 영등포 쪽방촌 정비사업이 본격화되면서 나머지 쪽방촌들에 대한 개발논의 활성화 기대감이 나오고 있지만, 거주민들과 소상공인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아직 개발사업이 진척되거나 구체적인 보상 및 이주 대책도 마련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20년 넘게 쪽방촌을 전전하고 있다는 A씨는 "어디나 비슷할 것"이라며 "공용이 아닌 개인 화장실을 써 보고 싶었는데 죽기 전에 가능할지 모르겠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오르막길 안쪽에 걸터앉아 연신 부채질을 하던 B씨는 "창문이 고장 나서 열 수 없고 곰팡내도 좀 나서 밖으로 나와 쉬고 있다"며 "재개발이 될 거라고 하니 주인이 돈을 들여 집을 고쳐 주지도 않는다"라고 토로했다.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스케줄대로라면 국토교통부가 진작 개발 플랜을 제시했어야 했지만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며 "선진국에서는 공청회나 이벤트 등을 통해 주민들하고 논의하는 시간을 오래 가지는데 우리나라는 커뮤니케이션적인 부분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쪽방촌. 최근 공공주택지구 사업시행을 위한 지구계획이 승인·고시됐다. [사진 제공 = LH]


특히 쪽방촌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동자동 쪽방촌은 공공개발과 민간개발로 소유주 간 갈등이 심화하면서 아직 지구지정도 되지 못했다. 쪽방촌 입구에는 '사유재산 빼앗아서 공공주택 만드는 게 공익이냐'는 문구가 적힌 검은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쪽방촌 주민들을 도와주는 센터에서 일하는 C씨는 "공공개발을 하면 우리가 입주할 수 있는데 민간개발이 되면 쫓겨날 게 분명하다는 사람들과 빠르게 착수할 수 있는 민간개발을 선택하되 서울시의 조율이 필요하다는 사람들이 있다"며 주민들 사이에서도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고 전했다.

종교시설에서 식사를 받아가던 D씨는 "돈도 없고 갈 데도 없어서 버티고 있다"며 "한 달에 20만원 주면서 살 수 있는 곳은 여기밖에 없다"고 손가락으로 한 건물을 가리켰다. 폭이 50㎝가 될까 싶은 좁은 입구와 깨진 외벽이 눈에 들어왔다. 전기 설비가 오래되고 전선이 뒤엉켜 안전사고에 그대로 노출된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화재 발생 시 소방차 진입도 불가능해 보였다.

작은 슈퍼마켓을 운영 중인 E씨는 "그래도 정부에서 신경 쓰겠다고 말했으니 변화가 있을 것 같다"면서도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또 희망 고문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이어 "어떤 방향이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내보내지만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7월 취임식을 마친 뒤 곧장 쪽방촌을 찾은 바 있다. 동행식당 지정 및 운영, 노숙인 공공급식 확대 및 급식단가 인상, 에어컨 설치 등 지원을 약속했다. 지난 추석 연휴에도 쪽방촌 곳곳을 돌며 주민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했다.

서울시 쪽방촌 상담소 관계자는 "최대한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데 주력할 예정"이라며 "공동이용시설 리모델링이나 상담을 통한 보호시설 입소 등도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는 2026년 말까지 공동주택 782채를 건설해 쪽방민과 신혼부부, 청년층에게 양질의 역세권 아파트를 공급하겠다는 목표다. 동시에 공공사업자들이 주도하는 최초의 쪽방촌 개발사업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됐다.

영등포 쪽방촌을 제외하고는 그나마 양동구역 쪽방촌이 서울시가 지난해 10월 민간주도로 재정비를 추진한다고 발표하면서 공공임대주택·사회복지시설·업무용오피스시설 등을 짓는 내용으로 정비계획을 확정한 상태다. 임대주택 건설이 시작되면 주민들은 임시 이주 공간으로 이동하게 된다.

[매일경제 / 이가람 기자]

 

동자동 사는 신문황씨는 이제 팔순을 갓 넘긴 형님 같은 분이다.
다들 추석이라지만, 갈 곳도 연락할 곳도 없다.
좁은 방을 가득 메운 짐에 치어 누울 자리도 없지만, 항상 싱글벙글 웃으신다.
돈 쓸 줄을 모르니 돈 걱정 없고, 영화를 누려보지 못했으니, 세상 미련도 없다.

길 가다 마음에 드는 그림 주워모아 쪽방을 전시장 만들고,
좋아하는 것들은 다 모아 놓아 백화점을 방불케 한다.
그리움은 액자 속에 넣어두고, 오늘도 살아 있음을 자축한다.
다 부질없고 속절없는 삶이건만, 텅 빈 외로움이 짐이다.

 

사진, / 조문호

 

쪽방촌은 밥 주고 물주고 옷까지 챙겨주는 공짜천국이다.

기업이나 사회단체에서 보내온 물건을 수시로 나누어 준다.

 

그 일은 '서울시립 쪽방상담소라는 이름조차 별난 조직에서 주관한다.

서울에 쪽방상담소가 있는 곳은 동자동을 비롯하여 영등포, 남대문, 돈의동, 창신동 등 다섯 군데다.

동사무소를 두고도 별도의 조직을 만들었는데, 주된 일이 줄 세워 물건 나눠 주는 일이다.

 

더위가 기승을 부린 지난 달에는 연이틀 동안 나눔 행사가 이어졌다.

명절이나 한더위에 나누어주는 연례행사나 마찬가지다.

이번엔 '서울역 희망공동체',한국가스공사’, 열매나눔재단’에서 보내 온 식료품이었다.

생수에서부터 라면, , , , 통조림, 티셔츠 등 없는 것이 없다.

 

난생 처음 맛보는 인스턴터 식품도 있고, 빨아먹는 죽도 가지가지였다.

주는 것만 잘 챙겨먹어도 누구처럼 뿌옇게 부티가 날 것 같있다.

방부제를 너무 많이 먹어 죽어도 시신 썩을 염려도 없다.

 

선착순 육백 명이라는 벽보 따라 긴 줄을 서야했다.

천 명이 넘는 동자동에 다들 600개만 보냈다는데, 600개란 숫자는 어떻게 산출된 거냐?

평소 줄서는 사람이 600명을 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벽보를 보지 못한 사람이나 힘없는 노약자는 매번 소외된다.

발 빠르고 뻔뻔스러운 자만 얻어먹는 배급인 셈이다.

문제는 모자라는 수량을 핑계 삼아 줄을 세운다는 것이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날씨가 춥거나 무더운 악천후도 신경 안 쓴다.

 

보내온 물품을 나누어주려면 줄 세우는 방법이 제일 쉽기야 하겠지만,

한 편으로는 홍보 효과를 노리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자립심을 잃게 만들어 의존케 하는 빈민 길들이기라며,

줄 세우지 말라고 몇년동안 노래를 불렀으나 쇠귀에 경 읽기였다.

 

줄 세우기는 노약자를 힘들게 하는 것은 물론 심한 모멸감을 준다.

요즘 젊은이들의 줄서기 문화와는 차원이 다르다.

물건을 사기 위해 줄 서는 것과 얻기 위해 줄 서는 차이지만,

배급은 일제강점기부터 국민을 길들여 온 나쁜 잔재다.

 

같은 나눔이라도 동사무소 물품 나눔은 줄 세우지 않는다.

지원하려면 주민 모두에게 공급할 수 있는 량을 요구하여,

동사무소처럼 시간 날 때 찾아가도록 해야 한다.

 

일률적으로 나누어주는 물품에는 본인이 필요 없는 물품도 많다.

소량의 지원품은 용산구에서 운영하는 푸드마켓으로 넘겨

필요한 상품을 골라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푸드마켓도 공짜로 주어서는 안 된다. 시중보다 싼 가격으로 공급하라.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쪽방촌 이외의 빈민들도 똑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을까?

공영임대주택을 배당받아 다른 지역으로 떠난 주민들이 돌아오는 것으로 보아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다들 아는 사람이 없어 외로워 못 살겠다지만, 줄 세워 나눠주는 먹거리에 대한 미련은 없었는지 모르겠다.

 

더러는 자존심을 지키며 줄 서지 않는 주민도 있다.

이준기씨는 줄을 서지 않은 채, 물끄러미 구경만 하고 있었다.

줄 선 내 모습이 한심했겠지만, 똑같이 줄서서 느끼며 기록하는 것이다.

 

나 역시 처음엔 부끄러웠지만, 서서히 길들어 나도 모르게 뻔뻔해졌다.

쪽방 살이를 오래하다 보니, 고맙다는 말조차 잊어버렸다.

비참하게 사는 것도 서러운데, 인성마저 망가졌다.

 

사진, / 조문호

 

 

지난 13일 오후 다섯시, 동자동 '새꿈공원'에서 주민들의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폭우 속에 진행된 ‘동자동에 살고 있습니다’ 토크쇼에는 주민 백일장도 열렸다.

 

본 행사는 '동자동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와 빈곤사회연대에서 마련한 자리였다.

 

그날따라 폭우가 쏟아져 거리에 나붙은 벽보마저 속살을 보였다.

우려처럼, 텅 빈 공원은 빗소리만 요란했다.

 

그러나 시간이 가까워오니 폭우를 뚫고 김영국, 김정호, 박종근, 전도영씨가

짐을 나르기 시작했고, 뒤따라 선동수 김정길씨도 나타났다.

 

비를 맞아가며 천막을 치기 시작했는데, 아무리 악천후지만 포기할 일도 미룰 일도 아니었다.

 

좀 있으니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들이 합류하여 일사불란하게 준비를 마무리했다.

 

김장수, 송범섭, 조인형, 정재은, 강동근, 황춘화씨 등 주민들도 한 사람 두 사람 모여들기 시작했다.

 

준비해 둔 수박화채를 나누어 먹은 후, 주민 백일장이 진행되었다.

 

동자동‘, ’지구지정‘, ’열대야등의 글자로 삼행시를 썼는데,

준비한 화선지가 모자랄 정도로 많은 분이 참여했다.

 

얼마나 할 말이 많았던지, 구구절절 고개가 끄떡여지는 글들이 천막에 내 걸렸다.

 

참여한 주민에게 스티커를 한 장씩 주어 제일 좋은 작품에 붙이는, 주민들이 심사위원이었다.

 

영광의 대상은 여덟 개의 스티커가 붙은 김정길씨의 열 받는다‘가 받았.

 

우수상은 네 개가 붙은 김정호씨가 차지했고,

장려상은 세 개가 붙은 송범섭씨와 정재은씨가 각각 주민들로부터 축하를 받았다.

 

김영국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추진주민모임' 위원장이 시상했는데,

다들 절실한 상품이라 입이 벌어졌다.

 

2부의 토크쇼는 한 시간 쉬었다가 오후 일곱시부터 재개되었다.

 

첫 순서로 사랑방합창단에서 나와 모두 다 꽃이야란 노래를 불렀다.

 

이어 김정호 사랑방협동회 이사장의 사회로 토크 콘서트가 진행되었다.

첫 번째 이야기 손님으로는 오계순씨와 임성연씨가 나왔고,

두 번째 이야기 손님으로는 이재모씨는 나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들 쥐나 바퀴벌레와 같이 살아야하는 열악한 주거 환경을 탓하며

동자동 공공주택 지구지정을 조속히 발표하라는 요구가 쏟아졌다.

 

이재모씨는 얼마나 쪽방이 더웠으면, 설치할 자리가 없어 머리에 이고 살더라도

에어콘 하나만 있었으면 원이 없겠다는 하소연도 했다.

 

토크쇼가 끝난 후, ‘빈곤사회연대활동가 이원호씨가 나와

동자동 공공주택이 지연되는 사정과 공공주택의 필연성에 대한 강연을 했다.

 

동자동 공공주택 지구지정을 조속히 발표하여 주민들의 주거권을 보장하라

주민들의 절박한 함성이 빗속으로 울려 퍼졌다.

 

김정길씨를 비롯한 여러 주민이 나와 다양한 요구의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주민 가수 홍홍임씨의 내 나이가 어때서였다.

일절도 모자라 앵콜로 2절까지 부르는 기염을 토했는데, 짝쿵인 이기영씨가 신경 좀 쓰이겠더라.

 

바퀴벌레와 못 살겠다. 지구 지정 빨리하라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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