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출판사' 창립 35주년 기념 북페어 우리 마음속의 사진과 책 한 권

지난 22일부터 인사동 갤러리 인덱스에서 열리고 있다.

 

35년 동안 눈빛에서 출판해 온 사진 책 600여 종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책에 따라 10%에서 50%까지 할인하여 판매하니, 좋은 사진들을 두고두고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된다.

 

더구나 중견과 신예 작가들의 포트폴리오를 중점적으로 엮어온 눈빛사진가선시리즈

71권을 통해 한국사진의 흐름도 가늠해볼 수 있다.

눈빛 아카이브로 나온 사진집은 지금 발행하면 도저히 그 가격으로 구할 수 없는

책이라 싸게 구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특히 눈빛이 소장하고 있는 책 속의 사진들도 관람할 수 있다.

구와바라 시세이, 이경모, 김한용, 김기찬, 힌정식, 김영수, 이창성, 전민조,

김문호, 엄상빈, 김보섭, 우명률, 조숙진, 정영신, 이정희, 임재천, 이규철 씨 등

작고 및 원로 현역 사진가들의 주옥같은 사진들도 책과 함께 전시되고 있다.

 

비록 사진을 하지 않는 분이라도 곁에 두고 틈틈이 볼 수 있는 추억의 사진집이 많다.

작품성을 강조한 난해한 사진보다 갓구워낸 군고구마처럼 한 장의 사진이 따스한 추억을

모락모락 불러들여 마음을 훈훈하게 녹여 줄 좋은 사진집이다.

 

예를 들면 최민식의 인간이나 김기찬의 골목안 풍경은 모르는 분이 없겠지만,

작고 작가인 이해선, 이형록, 이경모 사진집과 김한용 희망연대기‘, 정도선 회령에서 남긴 사진집도 있다.

 

그리고 눈빛에서 엮은 한국사진의 작은 역사 지금까지의 사진에서부터 크리스 마커의 북녁 사람들’,

구와바라 시세이 내가 바라본 격동의 한국“, 박옥수 시간여행‘, 안장헌 소소한 일상‘,

전민조 역사를 말하는 사진‘, 신복진 광주발사진종합‘, 권태균 노마드‘, 김운기 어머니, 그 고향의 실루엣‘,

정영신 어머니의 땅도 지난 시절을 새록새록 불러들일 추억 속의 사진집이다.

또한 오랜 병영 생활을 되 돌아 볼 수 있는 이한구의 군용과 장종운의 젊은 날의 초상등을 추천한다.

 

진열대에 올린 사진집만도 이렇게 좋은 책이 많은데, 꼼꼼히 살펴보면 더 좋은 사진집도 부지기수다.

 

이왕이면 오늘 1125() 오후 4시에 들리면 오랫동안 묵언 잠적했던 이규상 대표의 강연회가 있으니,

도랑치고 게 잡는 일이 아니겠는가?

 

아래는 눈빛출판사이규상 대표 글이다.

 

책은 오랫동안 지식의 전달과 영감(靈感)의 원천이었다. 그러나 정보의 전달과 저장이 종이에서 디지털로 바뀌면서 수천 년 이어온 책의 위상은 나날이 퇴색돼 가고 있다. 불과 2-30년 사이에 불현듯 가해진 이러한 변화는 가히 혁명적이다. 산업혁명이 인간 삶의 근본적 변혁을 몰고 왔듯이 디지털 문명의 출현은 또 다른 삶을 예고하고 있다. 우리는 수천 년의 습관을 순식간에 바꿔야 하는 가공할 디지털 혁명기에 살고 있다. 그에 따른 인문의 위기는 곧 출판의 위기다. 이번 행사는 사옥 짓기보다 사진으로 사진집을 지어온 눈빛출판사의 35년 발자취를 집약한 전시를 겸한 북페어다. 최근 전시를 통해 책의 확장을 새롭게 모색하고 있는 눈빛출판사는 급변하는 출판환경에 대응하고 인문과 예술의 위기 속에 다 각도로 출판의 방향과 역할을 모색해오고 있다.”

 

북페어는 오는 124일까지 열리니, 인사동 가는 걸음에 꼭 들리시길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정영신의 혼자 가 본 장항선 장터 길이 지난 23일 인사동 갤러리인덱스에서 성황리에 막을 올렸다.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더니, 오후 무렵에는 장대비가 쏟아졌다.

찾아 주신 손님께는 죄송스럽지만, 술 마시긴 좋은 날이었다.

 

전시장에 올라갔더니, 안미숙관장과 이다 군이 전시 디피를 멋지게 해 놓았다.

 

마치 장터에 늘린 장돌뱅이 사진 난장 같았다.

 

 전시장에 올라가니, 화가 송창, 미술평론가 김진하, 사진가 하재은씨가 와 계셨다

 

많은 분의 성원에 힘입어 배당 받은 사진집 200부도 무난히 소진하였.

둘째 날에는 소품도 여섯 점 팔렸고, 몇몇 분의 후원도 따랐다.

 

그리고 정영신씨 조카 심지윤씨가 오프닝 음식을 준비해 왔는데, 너무 깔끔하고 맛있었다.

 

봄에실농장에서 따온 불루베리도 등장했고, 안원규씨가 옥수수까지 삶아왔다.

다들 도와 주셔서 큰 걱정은 덜었으나, 이 원수를 생전에 갚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날 장대비를 뚫고 참석하신 분으로는 갤러리인덱스안미숙관장을 비롯하여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 공윤희, 김진하, 송 창, 김정업, 최유진, 하재은, 장종운, 박옥수,

신상덕, 박춘화, 김문호, 최연하, 곽명우, 김수길, 남 준, 정명식, 박순규, 김이하, 장경호, 윤범모,

조신호, 조경석, 김진열, 서인형, 김상현, 송일봉, 유진오, 안원규, 김 구, 김발렌티노, 임태종, 신단수,

정복수, 최석태, 노광래, 김정남, 조준영, 한상진, 양상용, 전인미, 이정선씨 등

많은 분이 오셔서 전시를 축하해 주었다.

 

그러나 성함이 기억나지 않거나 미처 만나 뵙지 못한 분도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세심하게 살피지 못한 점 양해해 주시 길 바란다.

 

그날 준비한 술로는 와인 외에 몰래 숨겨 둔 대마불사주상황버섯주까지 꺼내 왔다.

술 고픈 축축한 날이라 개막 시간까지 기다릴 수 없어, 맛본다며 홀짝홀짝 마신 술에 일찍부터 취해버렸다.

 

뒤풀이는 유목민으로 정해 두었는데, 두 패로 나뉘어 일부는 인사동16번가에 진을 쳤다.

이쪽저쪽 옮겨 다니느라 혼자 바빴는데, 숨이 차서 차에 들어가 자버렸다.

 

그 다음 날은 늦게 일어나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있는데,

실버넷뉴스운현선기자가 갤러리에 왔다는 전화가 걸려 왔다.

아마 같이 식사하려고 일찍 온 것 같은데, 이미 늦어버렸다.

 

급히 전시장으로 달려갔더니, 운현선기자를 비롯하여 큰나무갤러리김문경대표,

실버넷뉴스앵커 김석출씨, 김유나씨 등 여러 명이 와 계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정영신씨 인터뷰하는 틈을 이용해 화장실부터 가야 했다.

전날 마신 술 때문인지, 식사에 문제가 있었는지, 연이어 물 대포를 쏟아 댔다.

'쌈지길' 화장실을 몇 번이나 들락거리다 올라가니, 손님은 가버리고 안 계셨다.

 

결례가 걱정되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을 어쩌겠는가?

그런데, 첫날 찍은 사진도 이제 사 올리는데, 운기자가 취재한 영상물은 벌써 방송을 타버렸네.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를 클릭하면 볼 수 있다.

 

몸이 불편해 곧바로 동자동 쪽방에 가서 누워 버렸다, 완전 걸어 다니는 송장 수준이다.

 

그런데,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정동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인천 사는 사진가 김보섭씨가 아픈 몸을 이끌고 전시장에 왔다는데, 어찌 누워 있겠는가?

 

병문안도 못 가본 김보섭씨 내외를 전시장에서 어렵사리 만날 수 있었는데,

수술 결과가 좋다는 말에 다소 안도할 수 있었다.

 

김보섭씨 외에도 김정헌, 김진하, 오현경, 김정명, 양성은씨 등 반가운 분을 여러 명 만나 뵐 수 있었다.

 

손님을 보낸 후 전시장 있기가 불편해 차에 드러누워 전시 끝날 시간만 기다렸다.

전시장 문 닫은 후 정동지를 대동하여, 어제 정산하지 못한 뒤풀이 비용 때문에 유목민에 갔다.

 

뒤풀이 비용은 임태종, 김상현, 신상덕씨가 조금씩 부담해 남은 액수가 얼마 되지 않았다.

 

전시 오프닝 때 책을 전해주지 못한 신단수씨를 만나 소주 몇 잔 얻어 마셨다.

안쪽에서 마시던 장의균씨를 우연히 만났는데, 한 번 간첩은 영원한 간첩이었다.

 

내일은 누굴 만날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전시가 끝날 때까지 술 상무로 살아남기 위해 동자동에서 대기 중이다.

 

눈빛출판사이규상씨가 쓴 정영신 소개 글 일부로 정영신 전시소식 1탄을 마무리한다.

 

‘40년 가까이 장을 돌고 돌았으니 사진계 보다는 장터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그에게 장터는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마트가 아니라 정이 있는 고향이다.

난전에 앉아 있는 이름 없는 할매와 아짐들의 말동무요 장꾼들의 누이요 동생이다.

사라지는 것을 사진 찍는 일은 함께 울어주는 일이다.

진심을 다해 사진을 찍으니 누구 하나 거부하는 사람이 없다.

이생에서의 복은 박하지만 아주아주 먼 훗날,

후생에 그가 무엇이 되어 세상을 도와 나갈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찾아 주신 분들, 고맙고 고맙습니다.

 

사진, / 조문호

 

 

혼자 가본 장항선 장터길 The Traditional Market in Korea

정영신/ JUNGYOUNGSHIN / 鄭暎信 / photography

2023_0823 2023_0904 / 화요일 휴관

정영신_서천 비인장_202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210923b | 정영신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23_0823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화요일 휴관

 

정영신 장터길 에세이 출판기념

주최,주관 / 갤러리 인덱스_눈빛출판사

 

갤러리 인덱스

GALLERY INDEX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45 인덕빌딩 3

Tel. +82.(0)2.722.6635

www.galleryindex.co.kr

 

정영신은 누구나 인정하는 장돌뱅이 사진가다. 그가 사진을 시작한 지 40년이 다 돼오지만 그의 카메라 렌즈는 언제나 전국 팔도의 오일장을 향해 있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하듯 전통 장인 오일장도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더구나 코로나로 장터로 향하는 발걸음은 거의 끊겼었다. 그 길고 고통스러웠던 팬데믹 기간 동안 정영신은 혼자 장항선 기차를 타고 장옥이 녹슬어가는 장터를 찾아갔다. "장항선 작업은 순전히 나만을 위한 여행이었다. (...) 하루만이라도 스마트폰을 잠그고, 내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배낭을 챙겨 떠났다. 2년여 동안 일주일에 두어 번 장항선 기차를 타고 다니면서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장터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기록했다." (작가의 말에서)

 

정영신_장항선 들판 풍경_2022
정영신_예산장_2023
정영신_보령 웅천장_2012
정영신_천안 아우내장_2013
정영신_천안 입장장_2022
정영신_천안 성환장_2013
정영신_보령 대천장_2012
정영신_온양온천역장_2022
정영신_서천 비인장_2014
정영신_천안 아우내장_2022
정영신_예산역전장_2012
정영신_예산 광시장_2023
정영신_서천 판교장_2012

사진이 모두 예술로 돌아선 지금 그는 여전히 변해가는 것들에 주목해 기록을 선택했다. 천안역에서 장항역까지 충남 내포 지역 스물 한 곳에서 열리는 오일장은 역마다 서는 느린 장항선을 타고 모두 둘러볼 수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그는 몇 년 전에 만났던 이제는 세상을 등졌거나 장터를 떠난 할매와 장꾼들을 찾아 장터를 돌고 돌았다. '고향'이니 ''이니 하는 말을 아직도 가슴에 품고 사는 사진가의 뜻밖의 자신만을 위한 여정이었다. 그래도 카메라는 여전히 이타적인 기물이어서 언제나 ''을 향해 있고, ''은 온전히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따라서 그는 마치 '거울 앞에 돌아와 선 누이' 처럼 장항선 기차에 올랐으리라. 휴대폰 전원을 끄고 차창에 이마를 기댄 채 오일장을 향해, 장항선 기차 헤드라이트처럼 혼자서 갔던 것이다.

 

정영신_혼자 가본 장항선 장터길_224쪽_눈빛출판사_2023

에세이 출판을 기념해 열리는 이번 전시는 장항선 내포지역 장터 21곳과 주변 지역의 명소를 찍은 컬러사진과 그의 대표 오일장 흑백사진을 볼 수 있다. 눈빛출판사

 

장항선 오일장

천안 입장장(4, 9) 천안 성환장(1, 6)

천안 아우내장(1, 6) 온양온천역 풍물오일장(4, 9)

아산 둔포장(2, 7) 예산장(5, 10) 예산역전장(3, 8)

예산 덕산장(4, 9) 예산 광시장(3, 8) 예산 고덕장(3, 8)

예산 삽교장(2, 7) 홍성장(1, 6) 홍성 갈산장(3. 8)

홍성 광천장(4, 9) 보령 대천장(3. 8) 보령 웅천장(2, 7)

서천 판교장(5, 10) 서천 특화시장(2, 7)

서천 한산장(1, 6) 서천 비인장(4, 9) 서천 장항장(3, 8)

 

Vol.20230823h | 정영신/ JUNGYOUNGSHIN / 鄭暎信 / photography

 
 

정전 7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나를 울린 한국전쟁 한 장면” 사진전이

지난 21일부터 26일까지 인사동 ‘갤러리 인덱스’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된 한국전쟁 특별전은 20여 년 전 소설가 박도 선생께서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을 여러 차례 방문해 발굴해 낸 사진이다.

 

어둠 속에서 잠자던 사진을 찾아와 여러 권의 사진집을 펴내

우리가 몰랐거나 잊었던 6.25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주었다.

 

그 사진은 한국전쟁에 참여한 미국 종군사진가에 의해 기록된 사진이지만,

소설가 박도씨가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칠 수밖에 없었던 중요한 사료들이다.

 

우리는 긴 세월 동안 몇 되지 않는 국내 종군 기자들의 사진이나

정부에서 공개한 사진으로 전쟁을 바라보며 기억해야 했다.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눈 아픔에 앞서, 정부에서 내 세운건 오로지 승전과 반공이었다.

 

6.25를 이념의 편향에서 벗어나 사실 그대로 바라보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빨갱이란 말을 노골적으로 내뱉는 현실에서 어쩌면 두려운 일일 수 밖에 없었다.

정전 70주년을 맞이했건만, 아직도 국민의 인식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번에 마련된 6.25 특별전은 그동안 펴낸 사진집에서 골라낸 사진들이다.

나이 어린 북한 소년병이 미군에게 조사받는 장면에서부터

부역자로 몰려 죽임을 당한 비참한 장면 등 그날의 아픔을 되새기게 하는 장면들이다.

 

소설가 박도 선생은 발굴한 사진으로 사진집만 펴낸 것이 아니라, 소설 ‘전쟁과 사랑’도 펴낸 바 있다.

그 소설은 “사랑의 정동이 감동적으로 그려진 차원 높은 전쟁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전쟁과 사랑 / 박도 장편소설 / 387면 / 눈빛출판사

지난 6월 21일 오후 5시에 개막된 한국전쟁 특별전에 박도 선생의 개막기념 강연이 있었다.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를 비롯하여 안미숙관장, 미술평론가 최석태, 사진가 정영신, 곽명우,

장병국, 박기서, 김성식, 이성호, 박정호씨 등 20여 명이 자리했다.

 

사진을 발굴해 온 과정에서부터 한 장의 사진에 영감받아 쓰게 된 소설

‘전쟁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한 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그 귀중한 사진전 개막식에 사진가가 세 사람밖에 참석치 않았다.

사진 만드는 사진작가는 차고 넘쳐도, 기록하는 사진가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말이다.

사진가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의 기억에서도 ‘한국전쟁’이 서서히 잊혀져 가는 현실이 더 슬펐다.

 

전쟁을 겪은 그 당시 사람들은 대부분 돌아가셨다 치더라도,

그 후손이 동족상잔의 아픔을 잊거나 관심에서 멀어져 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사실, 그 자리에 참석한 분도 박도 선생이나 몇몇만 한국전쟁 직전 세대지, 대부분 전후세대였다.

 

나 역시 네 살 적 일이라 그 기억은 미미하지만,

육이오를 떠올리면 희미하지만 잊을 수 없는 가슴 떨리는 일이 있다.

 

북한군들이 고향인 경상남도 영산까지 밀고 내려왔을 때의 일이다.

낙동강 전투의 최후 보루인 내 고향은 피비린내 나는 전장의 한복판이었다.

남산에는 유엔군이 진을 치고 북쪽 영축산에는 북한군들이 포진하여 혈전을 벌였다.

마을 사람들은 전장을 피해 뿔뿔이 흩어졌다.

 

한국전쟁2 / 768면 / 박도 엮음 / 가격29,000원 /눈빛출판사

전쟁 포화가 잠잠해질 즈음 나를 들쳐업은 어머니가 살던 집을 찾아 나섰다.

남산 아래 미나리꽝 뚝 길로 지나갈 무렵이었다.

피를 흘리고 쓰러진 군인이 물을 달라며 갑자기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움켜잡았고,

옆에 있던 군인은 그냥 가라며 총부리로 위협했다.

 

한국전쟁1 / 768면 / 미해외참전용사협회 엮음 / 가격 29.000원 / 눈빛출판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두려움에 떨던 어머니의 받쳐 업은 두 손이 내 몸을 꽉 조였다.

간신히 군인의 손을 뿌리치긴 했지만, 혹시 뒤에서 총을 쏠까 등에 업힌 나를 가슴에 안고 뛰었는데,

어머니의 온몸은 땀으로 흥건히 젖었다.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 / 글: 김원일외 3명, 사진편집: 박도 / 가격18,000원 / 눈빛출판사

그때 느낀 어머니의 거친 숨결과 전율감은 숱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생생한데,

이것이 내 기억에 남은 유일한 한국전쟁의 잔상이다.

 

정전 70주년 육이오 맞아, 인사동에 사진전 보러가자.

여의치 않다면 책이라도 구해보자.

누가 말했는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사진, 글 / 조문호

 

장종운 '젊은 날의 초상' 사진집 표지 / 168면 / 눈빛출판사 / 28,000원

사진가 장종운씨가 소대장 시절 찍은 국내 최초 병영기록 사진집 ‘젊은 날의 초상’이 ‘눈빛출판사’에서 나왔다.

사진전은 지난14일부터 20일까지 인사동 ‘갤러리 인덱스’(02-722-6635)에서 열린다.

 

전시된 사진들은 ROTC 25기로 임관한 장종운씨가 전방부대 박격포 화기 소대장으로 배치받은

1987년부터 전역한 1989년까지 기록한 생생한 병영기록이다.

 

사진가 장종운

군대 사진으로는 이한구, 이규철, 조성기, 강재구 등 여러 명의 사진가가 발표한 바 있지만,

소대장이 부대에 암실을 차려놓고 찍은 사진도 처음이지만, 그중 오래된 또 다른 기록이라데 의미가 있다.

 

전시가 시작된 지난 6월 14일 오후4시 무렵 갔더니, 작가 장종운씨를 비롯하여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

'인덱스' 안미숙 관장, 사진가 김문호, 정영신, 이 다, 곽명우,씨 등 반가운 분이 많았다.

 

 

작가로부터 당시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이런저런 군대 이야기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사진집에는 전시된 사진 외에도, 또 다른 추억을 떠올리는 사진이 많았다.

 

아래는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의 ‘젊은 날의 초상’사진집 서문에서 발췌했다.

 

인연

이 사진집에 수록된 사진들을 나는 35년 전인 1989년에 본 적이 있다. 장종운 중위가 전역하고 고향으로 내려갈 때인지 아니면 전방에서 잠시 외출을 나온 것인지는 불분명하나 그는 어느 날 우리 출판사를 방문해 이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1989년이면 막 출판사(1988년 창립)를 시작할 무렵이었고, 한두 권 책을 냈을 때였는데 그가 어떻게 우리 출판사를 알고 찾아왔는지 몰라도 고마운 일이었다. 당시는 한국 사회가 민주화를 향해 몸살을 앓고 있었지만 아직 군부독재의 잔재가 남아 있던 시기였다. 우리 출판사의 첫 책 크리스 마커의 북한 사진집 『북녘 사람들』마저도 억울하게 북쪽을 찬양하는 도서로 분류돼 마포경찰서 정보과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사무실을 이전해 짐을 풀고 나면 반갑지 않은 담당 요원이 제일 먼저 방문하곤 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그들의 정보력은 놀라운 것이었다. 이런 서슬 퍼런 공안정국도 이유였고, 군 관계 사진은 보안이 필수인데 찍힌 지 얼마 안 된 따끈한 사진을 바로 출판하면 촬영자에게도 불이익이 돌아갈 우려가 없지 않았다. 또 창업 초기라 출판사 경영도 녹록지 않아 원고를 반려하고 나중을 기약했다.

 

최근에 작가로부터 당시 사진집을 내고 보도사진계로 진출하고 싶었다는 얘기를 듣고 그에게 사진이 절실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게 그런 힘이 있었는지 몰라도 그때 사진가로의 길을 터주지 못한 것에 대한 일말의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사진가의 길은 가시밭길이고 그때나 지금이나 사진은 돈이 되지 않는 매체이니 사진의 길로 인도하지 않은 것은 어쩌면 그와 그의 가족을 위해 다행스러운 일이 아닌가 싶다. 어쨌건 그는 전역 후 고향에 내려가 한평생 보험업계에 투신하여 2023년 4월 정년퇴임을 했다. 비록 그때 사진집을 내지는 못했으나 우리는 종종 전화 통화로 서로의 안부를 묻곤 했다. 그는 우리 출판사에서 나오는 사진집들을 사보며 취미 삼아 사진을 오랫동안 해올 정도로 그의 인생에서 사진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다. 이제 고대하던 사진집을 내게 되었으나 원고를 돌려주며 그때 기약한 ‘나중’이 일제강점기와 맞먹는 35년이나 될 줄은 작가나 나도 몰랐던 일이다. -중략-

 

군에서 공식적으로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병사는 정훈병이다. 1970년대-80년대에는 고된 훈련과 근무에서 벗어날 수 있으므로 사진병으로 군 복무를 하기 위하여 사진학원을 다니는 장정들이 많았다. 사진병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전통을 따랐는지 통신병과에 소속되어 있다가 2014년 정훈병과로 바뀌었다고 한다. 사진병은 주로 간부들을 따라다니며 군대내의 공식 행사 및 교육훈련 장면을 찍는다.

 

군에서 홍보용 화보집을 만들거나 보도기관에 배포하는 사진들은 신형 탱크나 자주포 등 현대화한 군 장비와 난관을 뚫고 용맹 무쌍하게 진격하는 부대의 훈련상황 등을 찍은 공식적인 홍보용 사진들이다.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사진이 유산지에 덮혀 맨 앞쪽에 배치하고 이어서 국방부장관, 육군참모총장의 사진이 역시 유산지에 덮혀 머리말이나 격려사와 함께 나온다.

 

사진병은 아니지만 사진 전공자 가운데 군 복무를 하며 사진을 찍은 사진가로는 이규철, 이한구 등이 있다. 이들은 휴가 복귀 중 카메라를 몰래 영내에 반입하여 선임들의 묵인하에 내무 생활을 촬영해 전역 후 전시를 하거나 사진집 (이한구 ‘군용’)을 통해 공개하였다. 1990년대 초에 울산지역 해안초소에서 근무했던 이규철은 신병 군기 잡기, 얼차려 등 내무 생활 중 벌어지는 군대 폭력을 사진을 통해 보여주었고, 이한구는 군용품으로 다뤄지는 병사의 인권 문제를 사진으로 제시했다. 사진 전공자이며 부사관(중사)으로 복무한 특이한 이력의 사진가 조성기는 301특공여단의 교육훈련 과정을 다큐멘트해 1993년 군에서 전시회를 가진 바 있다. 여단장의 허락을 받아 촬영한 공식 사진이지만 고된 교육훈련에 지친 훈련생의 모습과 휴식, 장비 점검 등 훈련의 이면을 기록하였다.

 

장종운 소대장의 사진에는 용감하고 늠름한 병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역시 대대장의 허락하에 카메라를 영내에 반입해 사진을 찍었다지만, 그의 앵글은 군의 공식 사진과는 거리가 멀다. 대학 동아리에서 사진을 익히고 임관 전 전시회를 했듯이 카메라를 다루는 그의 능력은 수준급이었다. 일반인들은 다루기 힘든 마미야 중형카메라를 사용하고 독신 장교 숙소인 BOQ에 필름을 현상 인화할 수 있는 암실을 마련했을 정도로 그는 사진에 빠져 있었다. 초상사진을 찍으며 군용담요를 배경막으로 사용한 것도 이채롭다. 특히 빼당(페치카 당번병), 이발병, 사역병 등 병사들의 사진은 독일의 사진가 아우구스트 잔더(August Sander)가 독일인들을 직종별로 분류해 남긴 사진 기법을 떠올리게 한다.

 

정종운 소대장은 소대원들을 찍되 훈련상황보다는 청춘을 반납하고 혹독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병사들의 일상과 내면에 주목했다. 그는 전지적 서술자(Omniscient narrator)로서의 시점을 시종일관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서술자는 인물의 내면이나 인물 간의 관계를 파악한 뒤 이야기를 서술한다. 그는 소대장실에서 소대원들의 신상 명세서를 보았을 것이고, 또 전임자나 내무반장으로부터 소대원 개개인의 특성을 전해 들었을 것이다. 앞의 이규철과 이한구가 내무 생활자로서 직접 보고 목격한 1인칭 시점을 유지하고 있는데반해 장종운 소대장은 간부(장교)라는 3인칭 시점에서 1980년대 후반의 병영생활과 병사들의 모습을 사진기록으로 남겼다.

 

군대라는 시공간의 제약에서 벗으나 비교적 자유롭게 촬영한 그의 사진은 대한민국 건군 사상 간부가 찍은 최초의 병사들에 관한 기록이라는데 그 의미와 가치가 있다. 그런데 아무리 객관적 기록이라해도 사진은 촬영자의 주관을 거치게 된다. 징집된 젊은 영혼들이 모여 있는 한 소대를 책임졌던 소대장의 연민과 안타까운 시각이 사진에 묻어난다. 계급을 떠나 카메라를 매개로 병사들의 불안과 상처를 감싸안고 그들과 하나가 되었다. 그도 말한 바 있지만 그것은 병사들이 그를 형이나 친구처럼 따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리 소대장일지라도 군림하려 들면 병사들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사진집 ‘젊은 날의 초상’은 지난날 병사들이 처해 있던 환경과 일상 그리고 그들의 내면세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소중한 기록이다. 이러한 기록이 군을 폄훼하거나 평가 절하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병영생활의 진실을 보여줌으로써 군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과 개선의 필요성을 새롭게 유도한다. 실사구시와 진실은 망각과 환상만을 불러일으키는 경직된 사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제시할 때 비로소 바로 볼 수 있게 된다.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했지만 젊은 날의 병사들은 현실을 받아들이며 이를 잘 참고 견뎌냈다. 지금은 초로에 접어들었을 이 사진집에 등장하는 소대원이나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에게 장종운 소대장의 사진은 추억 이상의 것을 말해준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고난의 군대였지만 그때는 그래도 청춘이었다. 청춘은 언제나 그립고 아쉬운 법이다.

 

이등병 월급이 3천원에서 60만원대에 이르기까지 정말 오랜 세월이 흘렀다.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앞으로 군의 사정도 점차 나아질 것이다. 35년 전에 이 책이 나왔다면 아마 나는 상처 치유와 위안 그리고 생명 복원력이 있는 세월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 이규상 (출판인)

 
교통통제 중인 시민군. 이창성 사진 / 눈빛 제공

이창성씨의 ‘나는 시민군이다’사진전이 인사동 ’갤러리 인덱스‘에서 열리고 있다.

’5·18 기념재단‘과 ’눈빛출판사‘가 5,18, 43주년을 기념하여 선 보이는 생생한 기록 사진전이

지난 17일 오후4시 개막식을 가졌다.

 

금남로에서 교통 통제하는 시민군. 이창성 사진

슬픈 역사적 기록이 40년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 광주 외는 한 번도 전시회를 가진 적이 없다는

사실도 믿기지 않지만, 그 첫 전시가 인사동에서 열려 더 반가웠다.

 

시민군들. 이창성 사진

사진전 개막 시간에 맞추어 갔으나 이미 전시장은 관람객으로 북적였다.

보도 사진가 이창성씨를 비롯하여 당시 시민군 방송 요원이었던 차명숙씨와

'금남로 광수 1호'로 지목되었던 화제의 인물 차복환씨도 와 계셨다.

 

교통통제 중인 시민군. 이창성 사진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와 '인덱스갤러리' 안미숙관장을 비롯하여 전민조, 장남원, 김문호, 김녕만,

윤세영, 정영신, 곽명우, 김 헌, 이명옥씨 외는 모르는 분이 더 많았다.

 

전시 작품은 중앙일보 사진 기자였던 이창성씨가 광주에 투입되어 찍은 흑백 30점과 컬러 10점이었다.

5·18 전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시민군’으로 압축되었다.

 

방석모와 총기로 무장한 시민군. 이창성 사진

관람객 틈 사이로 사진들을 들여다보니, 눈물이 나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처음 보는 사진들도 많은데, 누가 그들을 폭도라 할 수 있겠는가?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꽃다운 청춘이라 더 가슴이 미어졌다.

 

의사가 동승한 시민군 구호 지프가 광주 시내를 돌고 있다. 이창성 사진

시민군은 훈련된 군사 조직이 아니라 계엄군 과잉 진압에 맞선 자위 조직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사진들은 계엄군이 물러간 이후의 기록이었는데,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

논란이 되어 온 북한군 투입설이나 불온 세력, 부랑 집단이라는 억지를 단숨에 불식시켰다.

 

취재 중인 이창성 기자, 광주 1980. 5

지금까지 외국 기자들의 활동은 영화 등을 통해 널리 알려졌지만, 정작 국내 기자들의 취재 활동에 대해서는 평가절하된 것도 사실이다.

특히 이창성씨가 찍은 사진이야말로 5·18에 머물지 않고, 시민군의 활동상을 기록하였다는 점에서 더 높게 평가된다.

 

이창성씨는 개막식에서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야간 교전중이라 기자들이 숙소에서 나갈 수가 없었다며, 당시의 현장을 지키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고 했다.

새벽녘에야 시민군 지휘부를 찾아가 설득한 결과 어렵사리 취재 허락을 받아 냈다고 한다.

시민군 지휘부로부터 허가를 받아 현장에 뛰어든 공식 시민군 사진가가 되었는데,

역사적 현장을 기록해야겠다는 투철한 사명감이 그를 사지로 내몬 것이다.

 

“나는 역사의 기록자로서 현장에 있었을 뿐이다. 혼신의 노력을 쏟았던 것은 1980년 5월이 내게 부여한 의무였다.

마지막 모습이 되고 만 시민군 사진들은 대부분 젊은이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는 순전히 그들의 희생 덕분이다.”고 말했다.

15년 전 '눈빛출판사'에서 '28년만의 약속'이란 사진집을 펴낸 것도 전민조씨의 권유와 소개로 성사되었다며,

찍은 사진 2300컷 중 공개하지 못한 사진을 보완하여 다시 사진집을 출간하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당시 동료였던 고래 사진가 장남원씨는 '전시된 사진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숨어 찍은 사진이 아니라 대부분 정면에서 찍은 사진'이라며, 이창성씨의 투철한 기자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그리고 당시 방송요원이었던 차명숙씨는 발표된 사진 대부분이 외국 기자가 찍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찍어도 내놓을 수 없는 엄격한 상황에서 당당히 발표한 용기가 대단하다고 했다.

 

한때 북한에서 남파된 '광수1호'로 지목되었던, 실제 인물 차복환씨도 나와 그날을 회고했다.

기관총으로 무장된 페퍼포그 차량에 올라탄 채 카메라를 째려보는 문제의 사진은,

당시 이창성 기자에게 사진을 찍지 말라며 화를 낸 장면이었다고 했다.

 

금남로 광수 1호로 지목되었던 시민군 차복환 씨 1980. 5. 22 광주. 이창성 사진

2008년 이창성 사진집 ‘28년 만의 약속’을 펴낸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는 인사말에서

“그동안 논란 되어온 북한군 투입설이나 불온세력이란 억지를 불식하는 전시가 될 것이다. 그리고 5,18은 광주만의 행사가 아니라 전 국민의 행사가 되어야 한다"며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듯 모든 진상은 사진 속에 다 있다고 했다.

 

한 장의 사진이 백 마디의 말보다 더 많은 진실을 알려 주었다.

 

전시는 5월 29일까지 열린다. 꼭 관람하시어 그 날의 아픔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사진, 글 / 조문호

 

이창성'28년 만의 약속' 사진집 표지/ 눈빛출판사/ 가격35,000원

 

5,18 영령을 추모하는 날이라 뒤풀이는 생략했지만, 전시관계자들은 '부산식당'에서 만찬의 시간을 가졌다.

 

 

[2023,5,19작성]

삭막한 세상을 꽃피우는 고) 김기찬 선생의 대표사진선집 골목안 풍경이 출판되며,

‘Again 골목안 풍경 속으로사진전이 개막되었다.

 

지난 34일부터 인사동 갤러리 인덱스에서 열리는 김기찬선생의 골목안 풍경

보면 볼수록 정겹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아련한 추억을 불러 들이는 이토록 정겨운 사진을 어디서 볼 수 있겠는가?

지난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골목 안 풍경은 사진인 만이 아니라

그 시절을 살아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감을 느낄 수 있는 우리의 역사다.

 

더구나 권력 중심이나 가진 자들의 역사가 아니라 이름 없는 서민의 역사라 더 애착이 가고,

압축 성장에 의해 읽어버린 것들을 보여주는 터라 그 의미는 더 커다.

 

만약 김기찬 선생께서 서울의 골목을 기록하지 않았다는 것을 가정해보니, 한 순간 아찔해 진다.

그 많은 사진가들은 어디서 뭘 찍었을까?

 

35년 동안 오로지 서울의 골목풍정을 기록해 온 김기찬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도 어느 듯 십 팔년의 세월이 흘렀다.

 

모처럼 김기찬 선생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전시라 개막하기가 무섭게 찾아가 보았는데, 처음 보는 사진이 더 많았다.

그동안 골목 안 풍경 사진집을 여러 권 펴 내 대부분의 작품을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 사진들은 어디 갔다 이제 왔을까?

 

아마 선생께서 사진을 고르며 비 컷으로 분류되어 누락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내가 보기로는 여태 선정된 사진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는 좋은 사진이었다.

 

바둑판을 지켜보는 강아지의 귀여운 모습이나, 강아지를 안고 뛰어가는 소녀의 모습에서

그때나 지금이나 강아지가 가족처럼 친근한 존재임을 말해주며, 정겨움과 따뜻함까지 더해준다.

 

회초리를 들고 있는 아낙과 그 앞에서 우는 어린이의 모습을 보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사랑의 매라는 체벌이 일상화된 당시의 모습은, 지금으로서는 생각치도 못할 일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리어카에 달라붙어 짐을 옮기는 장면은 골목이라면 어쩔 수 없는 흔한 일이었지만,

정겨운 풍정에 가려 걱정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가파르고 계단이 많은 골목을 통해 이삿짐도 나르고, 서민의 필수품인 연탄이나 생필품을 옮기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급한 일이 생기면 소방차는 물론 구급차도 들어오지 못하는 열악한 상황이 아니던가?

 

그러한 열악한 조건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의 인정만은 넓은 아파트나 대궐 같은 저택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어린이들이 뛰 노는 정겨운 추억의 공간이기 이전에 서민들의 서러움이 담긴 공간이라는 것을 이 사진들이 잘 말해준다.

 

주옥같은 골목 사진들은 당시의 상황이나 애잔함을 직접 들려주는 것처럼 다정하고 생생하게 다가오며,

선생의 따사로운 온기가 느껴졌다. 그것은 지나치며 찍은 사진이 아니라 골목 사람들과 함께했기 때문이다.

세월에 의해 숙성된 사진이라 보면 볼수록 정겨워, 몇 차례나 돌아보았으나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골목을 사랑한 김기찬 선생이 더욱 그리워지는 시간이었다.

 

그리움과 더불어 아름다운 추억이 봄 아지랑이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골목 안 풍경 43일까지 열린다.

추억의 보물 창고를 놓치지 마시길 바란다.

 

/ 조문호

 

 

사진가 김보섭의 한국의 화교사진집이 눈빛출판사에서 발간되었다.

 

김보섭 '한국의 화교' / 눈빛출판사 / 양장 288면 / 가격 60,000원

김보섭은 1980년대부터 40여 년간 한국 화교에 매달려 온 사진가다. 그동안 인천의 중국인 집단 거주지인 차이나타운을 기록한 청관한의사 강영재를 출판하는 등 화교에 깊은 관심과 애착을 가져왔다. 이번에 출판된 한국의 화교는 인천에 거주하는 화교에 머물지 않고 전국에 산재한 화교를 비롯하여 화교의 고향인 산동성 까지 찾아다니며, 그들의 삶과 흔적을 추적해왔다. 한국 화교의 역사가 담긴 유일한 사진집으로 평가된다.

 

한국 화교사진집에 실린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의 서문 일부를 옮긴다.

 

김보섭은 인천에서 태어나 자란 사진가이다. 그의 사진 주제는 인천이라는 지역을 벗어나지 않는다. 김보섭은 성장하면서 중국인들이 살았던 청관(차이나타운)의 시대적 사회적 분위기를 체험할 수 있었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그의 사진 작업으로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1995년 첫 사진집 청관에 이어서 2000년 청관의 화교 한의사 강영재를 두 번째 사진집으로 상재하고, 첫 번째 개인전 (삼성포토갤러리,1995)인천 청관으로 할 정도로 화교와 인연이 깊다. ‘청관을 시발점으로 그는 바다사진관’, ‘수복호 사람들’, ‘신포동 사람들’, ‘자유공원등 인천의 여러 장소와 인천 사람들의 삶을 꾸준히 사진으로 기록해 왔다.

 

그가 인천 사람이고 인천만 찍어 온 사진가라는 사실은 명백하지만, 이번 한국의 화교작업을 위해 전국에 흩어져 있는 화교학교와 화교들을 찾아다녔고, 대부분의 한국 화교들의 고향인 산동성까지 다녀왔다. 한중수교 이후인 19951월에 인천에 사는 화교 유연서 할아버지의 고향 방문에 동행했다.

 

그는 귀국 후 그곳은 전형적인 농촌이었는데, 나는 그곳에서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그분들을 찍으면서 푸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고 회상한 적이 있다. 카메라는 그가 세상으로 나가는 창구였던 것이다. 그는 찍어놓은 사진을 보면서 사진 속 사람들의 가족사를 줄줄이 꿸 수 있는 사진가다. 이렇듯 한국의 화교사진은 화교들 과의 끈끈하고 오래된 유대감을 배경으로 나올 수 있었다.

 

(화교들과 그 잔존문화)를 방관자적 입장에서 흥미롭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친구로서, 그들의 사람됨을 사랑하고,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는 참 이웃의 자리에서 그들의 쇠잔을 그러나 아무 과장 없이 침착하게 서술하고 있다. (사진가 한정식의 ‘청관’서문에서)

 

김보섭의 사진은 시간의 기록이라는 단순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해석하고 재현하는 특유의 감성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인물사진에서 그 인물이 살아 온 삶의 궤적이 묻어 나오듯이 건물 사진에서도 그 이력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방치되고 쇠락해 가는 중화 요릿집이나 화교학교는 화교 사회의 부침을 전해준다.

 

특히 작가의 감성이 잘 드러나는 오브제의 처리는 그것을 통하여 그들이 누렸던 삶을 반추하게 한다. 그는 화교 한의사 강영재를 촬영할 때 장롱 서랍을 열어보니 부모님의 물건들, 집주인의 물건들, 사진들, 거울 등...,청관의 과거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그곳에 그대로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우리는 그 청관의 과거를 그가 찍어 온 중화 요릿집의 목재에서 알루미늄으로 변화해 온 배달통, 낡은 도마와 프라이팬 등의 주방 도구 그리고 경극 탈과 소도구 등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인물사진뿐만 아니라 오브제를 통한 우회적 접근법이다. 따라서 그의 사진집은 서사와 서정 그리고 과거와 현재가 맞물려 넘어간다.

 

한 작가가 한가지 테마에 몰두하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다. 40여 년 동안 진행해 온 김보섭의 화교 사진 작업은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거나 피상적으로만 보아왔던 화교 사회의 변천사와 가족사를 보여줌으로써 그들도 우리가 어깨를 마주하고 함께 살아가야 할 우리의 가까운 이웃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는 외국인 이주자들에 대한 오해와 편견의 벽을 부수고 그들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 마음을 열었고, 마침내 그들과 다정한 이웃이 되었다. 오래 기다리며 찍어 온 그의 사진은 역경 속에서도 한국 사회에 뿌리를 내려온 가까운 이웃인 화교들에게 바치는 뜨거운 사랑과 경의의 표현이다."

 

 (출판인 이규상의 ‘한국의 화교 서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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