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전 7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나를 울린 한국전쟁 한 장면” 사진전이
지난 21일부터 26일까지 인사동 ‘갤러리 인덱스’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된 한국전쟁 특별전은 20여 년 전 소설가 박도 선생께서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을 여러 차례 방문해 발굴해 낸 사진이다.

어둠 속에서 잠자던 사진을 찾아와 여러 권의 사진집을 펴내
우리가 몰랐거나 잊었던 6.25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주었다.

그 사진은 한국전쟁에 참여한 미국 종군사진가에 의해 기록된 사진이지만,
소설가 박도씨가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칠 수밖에 없었던 중요한 사료들이다.

우리는 긴 세월 동안 몇 되지 않는 국내 종군 기자들의 사진이나
정부에서 공개한 사진으로 전쟁을 바라보며 기억해야 했다.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눈 아픔에 앞서, 정부에서 내 세운건 오로지 승전과 반공이었다.

6.25를 이념의 편향에서 벗어나 사실 그대로 바라보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빨갱이란 말을 노골적으로 내뱉는 현실에서 어쩌면 두려운 일일 수 밖에 없었다.
정전 70주년을 맞이했건만, 아직도 국민의 인식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번에 마련된 6.25 특별전은 그동안 펴낸 사진집에서 골라낸 사진들이다.
나이 어린 북한 소년병이 미군에게 조사받는 장면에서부터
부역자로 몰려 죽임을 당한 비참한 장면 등 그날의 아픔을 되새기게 하는 장면들이다.

소설가 박도 선생은 발굴한 사진으로 사진집만 펴낸 것이 아니라, 소설 ‘전쟁과 사랑’도 펴낸 바 있다.
그 소설은 “사랑의 정동이 감동적으로 그려진 차원 높은 전쟁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6월 21일 오후 5시에 개막된 한국전쟁 특별전에 박도 선생의 개막기념 강연이 있었다.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를 비롯하여 안미숙관장, 미술평론가 최석태, 사진가 정영신, 곽명우,
장병국, 박기서, 김성식, 이성호, 박정호씨 등 20여 명이 자리했다.

사진을 발굴해 온 과정에서부터 한 장의 사진에 영감받아 쓰게 된 소설
‘전쟁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한 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그 귀중한 사진전 개막식에 사진가가 세 사람밖에 참석치 않았다.
사진 만드는 사진작가는 차고 넘쳐도, 기록하는 사진가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말이다.
사진가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의 기억에서도 ‘한국전쟁’이 서서히 잊혀져 가는 현실이 더 슬펐다.

전쟁을 겪은 그 당시 사람들은 대부분 돌아가셨다 치더라도,
그 후손이 동족상잔의 아픔을 잊거나 관심에서 멀어져 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사실, 그 자리에 참석한 분도 박도 선생이나 몇몇만 한국전쟁 직전 세대지, 대부분 전후세대였다.

나 역시 네 살 적 일이라 그 기억은 미미하지만,
육이오를 떠올리면 희미하지만 잊을 수 없는 가슴 떨리는 일이 있다.

북한군들이 고향인 경상남도 영산까지 밀고 내려왔을 때의 일이다.
낙동강 전투의 최후 보루인 내 고향은 피비린내 나는 전장의 한복판이었다.
남산에는 유엔군이 진을 치고 북쪽 영축산에는 북한군들이 포진하여 혈전을 벌였다.
마을 사람들은 전장을 피해 뿔뿔이 흩어졌다.

전쟁 포화가 잠잠해질 즈음 나를 들쳐업은 어머니가 살던 집을 찾아 나섰다.
남산 아래 미나리꽝 뚝 길로 지나갈 무렵이었다.
피를 흘리고 쓰러진 군인이 물을 달라며 갑자기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움켜잡았고,
옆에 있던 군인은 그냥 가라며 총부리로 위협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두려움에 떨던 어머니의 받쳐 업은 두 손이 내 몸을 꽉 조였다.
간신히 군인의 손을 뿌리치긴 했지만, 혹시 뒤에서 총을 쏠까 등에 업힌 나를 가슴에 안고 뛰었는데,
어머니의 온몸은 땀으로 흥건히 젖었다.

그때 느낀 어머니의 거친 숨결과 전율감은 숱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생생한데,
이것이 내 기억에 남은 유일한 한국전쟁의 잔상이다.

정전 70주년 육이오 맞아, 인사동에 사진전 보러가자.
여의치 않다면 책이라도 구해보자.
누가 말했는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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