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날씨에 술을 마셔 그런지 제 정신이 아니었다.

그리 많이 마시지도 않은 편이지만 도저히 못 견뎌 물을 덮어썼는데,

몸만 식히지 죄 없는 머리는 왜 밀었는지 모르겠다.

 

지난 토요일 술 한 잔하자는 김명성씨 연락을 받았다.

일전에 최옥영씨 대지미술 보러가자며 연락해도 몸이 아파 못 간다더니 이제 좀 살만한 모양이었다.

 

그날은 전화기를 꺼 두어 정영신씨를 통해 연락을 받았으나, 약속된 ‘마포나루’에는 아무도 없었다.

전화기가 없어 무작정 기다렸더니, 조해인시인과 뒤늦게 나타났다.

뭔가 엇갈려 여지 것 엉뚱한 곳에서 기다렸다고 한다.

 

모처럼 소라 멍게 등 해산물을 안주로 한 잔 마셨는데, 그동안 몰랐던 소식을 많이 듣게 되었다.

자기가 무슨 명탐정이라고 허구한 날 방구석에 처박혀

위장한 친일파 찾는다고 독립운동사 뒤져가며 살더니 몸이 못 버텨낸 것 같았다.

오십견에 버금가는 곤욕을 치루며 앓아누웠다고 한다.

 

그동안 별일도 많았더라.

어느 날 갑자기 에어컨 호스가 터져 온방에 물벼락을 맞았는데, 억대가 넘는 병풍이 젖어 난리를 쳤다는 것이다.

요즘은 표구기술이 좋아 감쪽같이 원상복구는 되었으나 표구 값이 칠백만원이나 나와 겨우 오백만원으로 깎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표구 값을 친동생인 김효성씨가 냈다고 한다.

여지 것 동생한테 도움 받아 본지가 없어 그런지, 그 날은 동생이야기를 많이 했다.

하기야! 요즘 효성씨가 신단수란 필명으로 신문에 운세를 연재하며 정치인 운세로 뜬다는 소문은 들었으나 그 정도인지는 몰랐다.

잘 나가는 상업 출판사와 10만부를 예상하는 출판계약을 맺었는데, 표구 값을 낸 것도 그 계약금 받은 돈이라고 했다.

 

동생은 한 번도 화내는 일이 없다는데, 맞는 말이었다.

자기가 어려울 때도 남 도와주기를 꺼리지 않았는데, 그 복을 이제사 받는 것 같았다.

그보다 더 귀가 번쩍 뜨이는 소식은 누워 있는동안 엄청난 생각을 해낸 것이다.

아직 공개할 때가 아니라 말은 못하지만 미술시장을 뒤집을 기획안이었다.

아무도 생각할 수 없는 김명성씨만의 사업이기도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도 모르게 취해 버렸다.

술집에서 나와 커피 집으로 옮겼으나, 여섯시가 넘어 두 사람 이상은 안 된단다.

커피를 사들고 무더운 햇살아래 마셨는데, 날씨가 장난이 아니었다.

간다는 소리도 않고 도망쳐 나와 더위 먹은 개처럼 헉헉거렸다.

 

집에 오자마자 샤워실에 들어가 물부터 뒤집어썼는데,

무슨 병이 도졌는지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가위로 자른 후 신통찮은 면도기로 밀었는데, 위험천만의 일이었다.

나이가 많아 절에서 받아주지도 않을 텐데 땡초가 되고 싶었을까?

 

간신히 치워놓고 나니 그때서야 집 주인이 나타났다.

무장 해제된 상태에서 사정없이 총을 갈겨 본색을 들키고 말았다.

바람 넣은 볼작을 똑똑 두드리며 선처를 바랬다

나무관세음보살~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조문호

 

전염병으로 한 겨울처럼 꽁꽁 얼어붙었지만,

인사동 전시장에는 따뜻한 훈풍이 불었다.

 

‘마루아트’ 2층에서는 한센촌 주민들이 기록한 ‘만종’이 열렸고,

3층에서는 사진가 양재문씨의 ‘舞夢’이 열렸다.

 

양재문씨의 환상적인 ‘비천몽’은 여러 차례 보았지만,

"처용 나르샤" 시리즈는 처음 보았다.

 

오방색 치맛바람 휘날리는 사진들은 언제보아도 설렌다.

꿈결 같은 춤 자락이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일깨웠다.

 

양재문씨 말로는 갑작스레 이루어진 전시라 했다.

빈 공간을 메워준 전시였지만, 두 점이 팔리는 작은 성과도 있었다.

 

‘무몽’은 20일까지 열리고, ‘만종’은 23일까지 열린다.

전시를 볼려면 서둘러야 할 것 같다.

 

전시장을 나오다 사진가 권양수씨와 김효성씨를 만났다.

신단수란 필명을 가진 김효성씨는 알아주는 역술가인데,

이번에 자신을 모델로 한 영화를 만든다는 소식도 주었다.

 

축하주를 한 잔 했으면 좋으련만, 차를 끌고 나와버렸다.

오래 마스크를 쓸 수 없어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못하는 부자 병에 걸린 탓이다.

 

인사동에서 주차비가 가장 싼 대일빌딩에 세웠지만,

꾸물대면 밥 한 끼가 통 채로 날아간다.

정확하게 한 시간 10분 걸렸는데, 주차비는 3500원이었다.

 

돌아서는 내 발길만 무거운 게 아니라 지나치는 노작가의 발길도 무거워 보였다.

늙어가는 설움에 무거운 게 아니라 외로움의 설움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0일 저녁 무렵, 내연의 여인이 인사동으로 떴다는 정보가 접수되었다.
찜통 같은 쪽방에 처 박혀 있으려니 속에 천불이 나, ‘유목민’으로 나갔다.
그 때 그 사람은 보이지 않았지만, 전활철씨와 시원한 콩국수에다 소주 한 잔 했다.
좀 있으니, 아니나 다를까 정영신씨와 김정희씨가 등장했다.
약속이나 한 듯 장경호, 김효성, 공윤희씨도 차례로 나타났다.






장경호씨는 마석에서 박불똥씨와 한 잔 하고 온 처지라 혀가 약간 꼬였다.
걱정은 되었지만, 일단 그가 싫어하는 사람이 없어 안심했다.
장경호씨는 처음 보는 김정희씨 더러 막걸리 한 병 사달라는 구걸을 하더니,
오히려 두 군데 술값을 선불로 내 버리는 호기를 부렸다.






술벗에다 그윽한 여인네들 까지 어울리니, 술맛 좋고 분위기 좋았다.
김효성씨는 힘들어 하는 자기 형 이야기에 눈물까지 흘리더니,
핸드폰에 저장된 손자의 재롱에는 낄낄대는 순정파였다.
그런데, 술판이 무르익으니 판을 바꾸고 싶었던지, 2차를 가잔다.
다 같이 따라 나섰는데, ‘노래하는 ’아리랑‘으로 가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아리랑’이란 술집은 ‘월하의 공동묘지’로 기억된다.
오래전 밤늦게 술 취해 들어갔는데, 국악 하는 한복 입은 여인들이
푸른 조명을 받고 앉아 있는 모습이 마치 귀신같았기 때문이다.
그 ‘아리랑’이 ‘국악 라이브’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주인은 그대로였다.
노래방을 운영하며 틈틈이 국악공연을 보여주는데, 춤보다는 소리가 좋다.






난 목소리가 쉰데다 이빨까지 빠져, 이제 노래인생은 끝나버렸다.
다른 사람이 부르는 십팔 번 따라 마셨으니, 술이 술술 넘어갔다.
옆 자리에 앉은 성악가가 부른 ‘칠갑산’에는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자정이 가까워 오니 한 사람 한 사람 사라지기 시작했는데,
결국 장경호씨가 김정희씨를 울리고 말았다.

무슨 내용인지 모르지만, 말 한 마디에 자존심이 엄청 상한 모양이다.
에고~

사진 : 김정희,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김효성씨 딸이 시집간다는 기별에 정선에서 새벽부터 설쳤다.

이태원의 크라운호텔 예식장에서 신부를 처음 보았는데, 너무 예뻤다.
나처럼 지지리도 못 생긴 지네 아버지에서,
어쩌면 저렇게도 예쁜 딸이 나왔을까 신기했다.

예식장에서 반가운 사람들도 여럿 만났다.
그의 형 김명성씨 가족은 물론이고, 서양화가 강찬모, 연극배우 이명희,

성악가 이경오, 가수 신현수, 인사동지킴이 공윤희씨를 만나 함께 식사 했다.

급히 오느라 아침밥도 거른 상태라 허겁지겁 먹어 치우고는
무의식 결에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 것이다.
붙인 김에 한 모금 길게 빨고는 불을 끄려는데, 종업원이 소리친다.

“어르신 여기서 담배 피면 큰일 납니다.”
“아이구! 지송함니더. 촌에서 금방 와, 잘 몰라 그렇심더”
장초를 버렸으나 엉겹 결에 피운, 그 한 모금의 담배 맛이 진짜 좋았다.

역시 실수도, 수는 수로구나.

2015, 10, 10

사진,글 / 조문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