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 너머: 강릉관노가면극

구본창展 / KOOBOHNCHANG / 具本昌 / photography 

 

2022_0602 ▶ 2022_0904 / 월요일 휴관

 

구본창_탈 너머: 강릉관노가면극展_강릉시립미술관_2022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강릉시립미술관 기획展

주최 / 강릉시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강릉시립미술관

GANGNEUNG MUSEUM OF ART

강원도 강릉시 화부산로40번길 46(교동 904-14번지) 제2전시실

Tel. +82.(0)33.640.4271

www.gn.go.kr/mu

 

 

강릉시립미술관 기획전시 『구본창 – 탈 너머: 강릉관노가면극』展은 한국 현대미술의 지형도를 바꾼 사진작가 구본창의 「강릉관노가면극」 시리즈를 선보이는 전시다. 구본창은 독일 유학 후 1980년대 작업에서 사진 매체를 통해 조형성을 실험하며 예술의 표현방식을 확장하였다. 그는 2000년대 초반부터 '탈', '조선백자'와 같은 한국 고유의 소재를 특유의 회화적 기법으로 프레임 안에 담아내면서 세계적 작가로서 자리매김하였다.

 

구본창_강릉관노가면극 GNC 02 (양반광대, 소매각시)_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13×90cm_2002
구본창_강릉관노가면극 GN 13-1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13×90cm_2002

구본창의 「탈」 시리즈는 강릉관노가면극을 비롯하여 가산오광대, 양주별산대놀이, 하회탈놀이, 봉산탈춤 등 조선 연희극의 가면을 중심 소재로 다룬 작업으로, 주로 2000년대 초반에 촬영한 사진이다. 구본창은 「강릉관노가면극」 작품으로 2003년 강원다큐멘터리 작가상을 수상하였으며, 해외에서도 크게 주목받았다. 이번 전시는 기존에 알려진 작품 외에도 미공개 작품 19점 가량을 최초로 선보이며 「강릉관노가면극」 작품을 대거 감상할 수 있는 자리다. 관노가면극은 강릉단오제의 연희극의 탈로서 한국 전통 가면극 중에서 유일하게 대사가 없는 무언극이다. 극의 등장인물인 양반광대와 소매각시, 시시딱딱이, 그리고 장자마리의 가면과 몸짓에는 많은 이야기가 함축되어 있으며, 그만큼 이미지의 상징성이 강하다. 이러한 특징은 대상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구본창의 작업과 맞닿아 있다.

 

구본창_강릉관노가면극 GN 09 (장자마리)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13×90cm_2002
구본창_강릉관노가면극 GN 08 (시시딱딱이)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13×90cm_2003

구본창이 담아낸 강릉관노가면극의 장면은 본래의 극의 모습과는 다르다. 사진 속의 탈을 쓴 사람들은 그가 연출한 상황에 놓여 있다. 그 프레임은 관노가면극을 위해 작가가 깔아놓은 또 하나의 판인 셈이다. 탈의 이미지에 내재된 고뇌와 해학은 구본창 특유의 방식을 통해 드러난다. 그들은 어딘가 모르게 기괴하거나 어색하다. 특히 사진의 하단, 인물의 발 부분은 초점이 흐릿한데, 이 때문에 몸이 붕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그의 사진은 익숙한 소재를 낯설게 만들어 초현실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진은 다른 조형예술과 달리 사람이 발 딛은 현실에서 출발하는 매체이기 때문에 역으로 초현실적 감각을 담아내기에 가장 효과적이기도 하다. 그는 사진 매체의 역설적인 속성을 활용하여 탈이라는 소재 너머의 정신성에 주목한 것이다.

 

구본창_강릉관노가면극 GNC 13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39×58cm_2003
구본창_강릉관노가면극 GN 11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13×90cm_2003

또한 그의 「탈」 시리즈는 주로 흑백으로 인화된다. 이러한 형식은 소재를 기록하는 것이 아닌 내면세계를 투사하기 위함이다. 탈은 얼굴을 가리고 개인의 정체를 숨기는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사회집단의 성향, 공동의 정신세계를 드러낸다. 따라서 탈의 이미지는 그 자체로 무의식과 욕망에 대한 상징이다. 구본창은 탈이라는 문화의 근원적인 형태를 통해 인간의 본질에 대해 탐구한 것이다.

 

구본창_탈 너머: 강릉관노가면극展_강릉시립미술관_2022
구본창_탈 너머: 강릉관노가면극展_강릉시립미술관_2022
구본창_탈 너머: 강릉관노가면극展_강릉시립미술관_2022

한편 이번 전시에서는 탈에 가려진 얼굴이 공개된다. '강릉관노가면'뿐 아니라 다른 '탈' 연작에서도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그들은 당시 강릉관노가면극 보존회(現 강릉단오제 보존회 산하)의 회장을 비롯한 회원들이다. 구본창은 탈을 쓰는 사람을 일종의 박제품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존재로서 바라보았다. 감춰져 있었던 그들의 민낯은 탈의 본연의 기능을 강조하며 실재와 가상의 경계를 일깨운다. 또한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지켜온 수많은 사람들과 그로 인한 유구한 역사를 상기시킨다.

 

오래된 것, 사라지는 것, 또는 감춰진 것에 대한 애틋한 시선은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다. 대상의 어떤 불완전한 속성은 그의 사진을 통해 영속성을 부여받고 온전한 지위를 갖게 된다. 한국 전통문화 유산의 미적 가치를 새로이 담아내고, 강릉의 지역성 및 역사성을 재해석한 구본창의 작품 「강릉관노가면극」은 한국 사진사의 업적이자, 강릉의 또 하나의 기념비로 남을 것이다. ■ 임은우

 

 

Vol.20220605e | 구본창展 / KOOBOHNCHANG / 具本昌 / photography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 쪽방촌을 찾아 "약자와 동행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모습.

[주장] 단발성 대책 아닌 '쪽방촌 공공임대주택' 등 근본 대책 필요

 

불볕 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장마까지 겹치며 높아진 습도에 몸을 조금만 바삐 움직여도 금세 땀에 젖는다. 평년보다 이른 더위에, 기상청은 향후 3주는 평년보다 기온이 높을 것으로 전망해 폭염으로 인한 고통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나 쪽방과 같은 더위나 추위에 취약한 주거에 사는 이들에게 있어 폭염은 더욱 다루기 힘든 고통으로 다가온다.
  
매해 5월이면 서울시는 '여름철 노숙인·쪽방주민 특별보호대책'을 발표한다. 이 대책의 핵심은 쪽방상담소나 노숙인시설 등에 에어컨을 놓고 '무더위 쉼터'를 열거나, 야외 무더위 쉼터를 설치해 더위를 피하게 하는 것이다. 올해 역시 서울시는 5월 26일, 같은 대책을 발표해 노숙인 시설 10개소, 쪽방 지역은 14개소에 무더위 쉼터를 설치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 쉼터는 전체 쪽방 주민의 6%밖에 품지 못하는 규모, 감염병 전파에 취약한 집합 시설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자신의 주거지를 떠나 혹서기를 보내도록 권한다는 점이 가장 문제다. 무더위 쉼터를 택할 경우 시원할 수는 있겠지만, 자기 생활이 깃든 '방'은 통째로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기존 폭염 대책은 쪽방 주민을 마치 '계절적 이재민'으로 간주하는 것과도 같았다. 이런 정책이 현장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약자 동행' 주장하는 오세훈 서울시장, 그가 내놓은 폭염 대책의 한계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1일, 취임식 뒤 첫 행보로 서울 '창신동 쪽방촌'을 찾았다. 오 시장은 취임 이틀 전에도 '돈의동 쪽방촌'을 찾았던 터라, 일주일 새 두 차례나 쪽방촌을 방문하는 이례적인 일정이었다. 아마도 "약자와의 동행"이라는 자신의 서울시 정책 브랜드를 강조하고 드러내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오 시장은 이 자리에서 '노숙인·쪽방 주민을 위한 3대 지원방안'을 발표했는데, 그 중 하나가 쪽방 주민 폭염 대책이었다. "쪽방 주민들 생활환경 개선을 위해 시 예산과 민간후원을 활용해 에어컨 150대 설치와 추가 전기요금을 지원(7~8월 중 추가요금, 가구당 5만 원 한도)"하고, "여름철 침구 3종 세트도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150대라는 물량은 서울지역 쪽방 건물의 절반도 채 안 되는 것으로, 나머지는 폭염 대책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에어컨이 설치될 건물도 각 실(방)별 설치가 아닌 건물별/층별 설치로, 냉방 효과를 크게 기대하긴 어렵다. 오 시장 스스로도 6월 29일 돈의동 쪽방촌을 방문해 에어컨이 설치된 것을 보고는 "크게 시원하지는 않겠는데 (...) 에어컨 하나로 한 8개 방을 같이 쓰다 보니 턱없이 용량이 부족할 것 같다"라고 한 바 있다. 그럼에도 이틀 뒤 아무런 개선 없이 똑같은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이 살인적 폭염을 다루는 데 적합한 장치가 에어컨이라 하더라도, 여기에만 의존한 폭염 대책은 분명 한계가 있다. 서울지역 쪽방 건물 중 '목조' 건물은 43.2%(2021년 서울시 실태조사)에 달한다. 건물이 노후화해 발생하는 안전 문제와 건물주들의 저항, 내부 전력의 문제 등을 함께 고려할 때 에어컨 설치 대책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주거 대책 빠진 폭염 대책은 임시방편

 

▲남대문로5가 쪽방 복도에 설치된 벽걸이 에어컨. 쪽방 12개가 이 에어컨 하나에 의지하고 있다.

 
공조설비가 없는 쪽방의 특성상, 복도에 놓인 에어컨 바람을 쐬기 위해서는 방문을 계속 열어 놓아야 한다. 이럴 경우 안전과 사생활 침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남대문 쪽방 주민인 홍아무개씨는 "그럼 맨날 방문을 열고 살란 말이냐. 사람들이 오며 가며 들여다 볼텐데 어떻게 열어 놓고 살 수 있냐"고 했다. 옆에 있던 주민 박아무개씨는 며칠 전 새벽, 방문을 열고 자던 중 도둑이 들어 도둑 발목을 붙잡았다는 일화를 얘기하기도 했다. 더구나 쪽방촌 여성 주민들에게 '방문 열고 생활하라'는 건, 사생활은 물론 자기 안전을 포기하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모든 쪽방에 작은 에어컨을 달면 문제가 해결될까? 앞서 말했듯, 목조 등 쪽방의 취약한 구조와 낡아 손상된 건물의 상태가 이를 버텨내기 어렵다. 게다가 쪽방의 32.9%는 아예 창문이 없다(2020년 서울시 실태조사). 건물주들에 대한 보상과 대대적 조치를 통해 모든 쪽방에 에어컨을 놓는다 해도 쪽방 주민의 삶은 크게 달라지기 어렵다. 최근 쪽방 주민 이아무개씨는, 최근 손바닥만 한 화상을 입었다고 내게 말했다. 방 안에서 휴대용 버너로 끓인 찌개 냄비를 옮기다 실수로 허벅지에 떨어뜨렸고, 그 일로 꼼짝없이 한 달을 비좁은 방에 갇혀 지내야 했다는 얘기다.

또 다른 쪽방 주민 김아무개씨의 사례는 에어컨 설치가 만능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그는 지난달 관리자에게 요청해 맞은 편으로 방을 옮겼다. 음식을 만들 때 나온 수증기가 방을 못 빠져나가 방 안에 곰팡이가 피고 천정 벽지마저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방을 옮겨 다행이라는 말에, 그는 '옮긴 방도 곧 다시 그렇게 될 것'이라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밥 해먹을 수 있는 별도의 부엌이 생기지 않는 한 이 두 사람이 겪은 문제는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과거 관리자가 살던 내실로 옮겨 넓고 밖으로 난 큰 창문이 있는 동자동 쪽방에서 살게된 이아무개씨을 만났다. 그에게 넓은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좀 견딜만하지 않느냐 물었다. 그러나 창틀 밖 벌어진 틈으로 비둘기들이 들어와서 깃털과 배설물은 물론 얼마 전에는 알도 두 개 낳았다고, 그래서 창문을 닫고 산다고 했다. 에어컨은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언제까지 단발성 대책만 낼건가... 쪽방촌 공공주택 등 근본책 고민해야
 

▲서울역 인근 한 쪽방 주민의 방. 살림에 필요한 물품들을 수납하기 너무 좁다.


단발성, 프로그램식 폭염 대책으로는 쪽방 주민들의 주거 고통을 해소할 수 없다. 낡은 데다 구조적으로도 취약한 쪽방 건물은 개보수한다 해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서울시는 2012년~2014년까지 영등포 쪽방촌 리모델링 사업을 진행했고, 2016년부터 쪽방을 임차해 개보수한 후 재임대하는 '저렴 쪽방' 사업을 진행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쪽방의 주거환경 개선 효과는 미미하게 나타났고, 결국 이 사업은 실패한 것으로 평가받으며 마감되었다.

대안은 있다. 쪽방을 헐고 그 자리에 임대주택을 지어 주민들이 재정착하도록 돕는 '선(先)이주 선(善)순환' 방식의 대안이 그것이다. 2020년 1월 20일, 영등포 쪽방을 시작으로 해 정부-지자체 합동으로 이 방식이 제시되었고 주민들에게서 환영받고 있다. 근거 법령과 주체에 따라 방식은 공공주택사업(영등포 쪽방, 동자동 쪽방), 도시정비형 재개발(남대문로5가 쪽방-양동 지구, 창신동 쪽방)로 나뉘나, 둘다 현 쪽방 위치에 공공주택을 짓고, 쪽방 주민이 다시 살게 한다는 것에서 공통점이 있다. 이런 개발은, 기존 쪽방을 전면 철거하고 원 쪽방 주민을 강제퇴거 시켰던 폭력적인 개발 역사와 단절한다는 점에서도 과거로부터의 전환이라고 할 만하다.

문제는 건물주들의 저항이다. 동자동 쪽방 공공주택사업은 건물주들 반대로 발표 이후 첫 단계인 공공주택 지구지정조차 못하고 있다. 그동안 양동 쪽방 주민들은 계획발표 당시 472명이던 숫자가 작년 1월 230명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창신동 쪽방 역시 계획이 발표되기 시작한 2020년 388명이던 주민이 2021년 말 235명으로 40% 가량 줄었다. 공공임대주택 등 세입자 대책을 '비용'으로만 인식하는 건물주들에 의해 쪽방 주민들이 퇴거 당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쪽방 건물주들은 공공주택사업을 반대하거나, 주민들을 내쫓는 방식으로 '선 이주 선 순환' 쪽방 개발을 가로막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서울시나 자치구의 대응책은 아무것도 없다.


  
폭염 대책 넘어 주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7월 12일, 서울시청 앞에서 서울지역 쪽방 주민 등이 기자회견을 열고 오세훈 시장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폭염 대책만으로는 쪽방 주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쪽방'이라는 한계적 주거 자체를 바꾸는 정책이 필요하다. 쪽방 지역에 대한 공공임대주택 건설과 주민 재정착을 위한 공공주택사업, 도시정비형 재재발 사업의 흔들림 없는 추진은 폭염 대책을 포함한 쪽방 대책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쪽방 주민들이 한결같이 내왔던, 굳이 오세훈 시장이 쪽방에 방문하지 않더라도 들을 수 있었던 쪽방 주민들의 요구이자 목소리다.

지난 13일, 서울 동자동·양동·돈의동 등지의 쪽방 주민들과 단체활동가들은 서울시청 앞 기자회견을 열고 "'약자와의 대화' 없는 '약자와의 동행'은 허구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쪽방 주민 등 홈리스 당사자와 면담하고 대화하라!"며 오 시장 면담을 요청했다. 또한 오는 20일까지 답변을 줄 것을 요구했다. "약자와의 동행"이라는 오세훈 시장의 정책 기조가 과연 진실인지는, 곧 확인될 것이다. 

 

오마이뉴스 / 이동현기자

한정식선생께서 고요의 선계에 편안히 잠드셨다.

 

부음 받은 지난 23일 장례식장을 찾아 선생의 명복을 빌었으나,

떠나시는 선생을 배웅하고 싶다는 정동지 채근에 25일 새벽을 서둘러야 했다.

장례식장 변두리를 뒤덮은 호박꽃이 선생님 가신 극락세계 연꽃인양 반기더라.

 

장례식장에는 유족들과 이일우씨만 발인을 서두르고 있었고,

조문객으로는 강용석, 곽명우씨 등 서너 명의 사진가만 보였다.

뒤이어 '사진예술' 발행인 이기명씨 등 제자 몇 명이 찾아와 운구에 힘을 실었지만,

한국 사진 교육계 거목이 떠나는 상여길 치고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타 예술단체에 비해 사진인들의 선배에 대한 존경심이나 예의가 소홀한 것은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수많은 제자를 배출한 선생의 장례식이 이럴진데,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는가?

 

먼 길 떠나는 원로사진가 영전에 잠시 모여 추모사로 위업을 되새기거나,

떠나시는 선생을 위해 살풀이라도 한 번 추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이번 장례식에는 제자 이일우씨가 시종 차고 앉아 사진인을 맞았지만, 가족들은 인사도 안 했다.

선생께서 그동안 말씀은 안 하셔도 마음고생 많이 했겠더라.

아들 셋보다 딸 하나가 더 좋은 세상을... 

 

요즘 사진판에 짚고 넘어가야 할 심각한  문제는 가족들의 사진에 대한 무관심이다.

돈 되지 않는 사진에 메 달려 온 선친에 대한 원망스러움은, 사진이란 말조차 듣기 싫은 것이다.

그러니 당사자가 돌아가시면 사진에 관한 모든 자료들이 쓰레기로 사라진다.

 

사진이고 뭐고 죽고 나면 다 부질없는 짓이라는 선생의 평소 말씀에 공감 하지만,

그래도 살아 남은자의 도리는 지켜야 하지 않겠나?

 

사진, / 조문호

 

이 사진은 홍순태선생 마지막 전시회에서 찍은 원로사진가들의 기념사진인데,

 이제 살아계신 분보다 돌아가신 분이 더 많군요, 

좌로부터 주명덕, 강운구. 이완교, 황규태, 홍순태, 김한용, 한정식선생

 

원로 사진가 한정식(86)선생께서 지난 723일 오전6시 무렵 운명하셨습니다.

‘’서초요양병원에서 치료받던 중 폐렴 증상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40일전 병문안 갔을 때만 해도 댁으로 돌아가 사모님 곁에서 눈을 감고 싶다던 선생께서

기어이 소원을 이루지 못한 채 돌아가셔서 더 가슴 아픕니다.

 

선생께서 인사동 ’SK오피스텔에 계실 때는 인사동 사람들(전 창예헌)‘고문으로 함께하며

인사동을 무척이나 좋아하며 사랑하셨습니다.

사진으로서 만이 아니라 사진 교육자로서 후진 양성에도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사진가들은 물론 인사동 사람들도 고인의 명복을 빌어 주시기 바랍니다.

 

선생의 극락왕생을 빕니다.

 

배우자 : 숭수연

아들 : 한계영, 한계륜, 한계림

며느리 : 이종희, 박소영, 정보라

손주 : 한동운, 한세운, 한채운, 한사다운, 한빛다운

 

빈소 : 삼성서울병원장례식장 17

발인 : 2022725(월요일) 오전930

장지 : 서울추모공원

 

고 한정식선생 약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과 졸업

일본대학 예술학부 예술연구소 수료(사진전공)

동국대학교 대학원 연극영화학과 졸업

서울, 보성, 휘문고 교사역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사진학과 교수, 대구예술대학교 석좌교수 역임

 중앙대학교 및 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개인전)

1977 "나무" 니콘살롱, 일본동경

1988 "나무" 공간화랑, 서울

1988 "거울" 스즈키야화랑, 일본동경

1986 "한정식 사진전" 서울갤러리, 서울

1992 "" 한가람미술관, 예술의전당 서울

1997 "풍경론" 한가람미술관, 예술의전당 서울

1999 "한정식 사진전" camera Obscura갤러리, 프랑스 파리

2002 "고요" 금호미술관, 서울

2007 "이렇게 들었사오니"초대전, 동강사진박물관. 영월

2008 "고요" 초대전, 고은미술관, 부산

2017 “고요과천 국립현대미술관

2022 ’고요서울 '스페이스22' , 'KP갤러리'

 

(사진집)

"나무" 열화당, 1990

"" 사진예술사, 1992

"풍경론" 눈빛, 1997

"고요" 열화당, 2002

"흔적" 눈빛" 2006

고요2‘ 한스그라픽 2013

고요3‘ 눈빛 2015

한정식국립현대미술관 2017

마구간 옆 고속도로눈빛 2020

가을에서 겨울로눈빛 2021

 

(저서)

"사진예술개론" 열화당, 1986. 4개정판, 눈빛, 2004

"사진의 변모" 1996. 개정판

"사진- 시간의 아름다운 풍경" 열화당, 1999

사진과 현실" 눈빛, 2003

현대사진을 보는 눈" 눈빛, 2004

예술로서의 사진눈빛

"사진, 예술로 가는길" 눈빛, 2006

"사진 산책" 눈빛, 2007

 

사진계의 큰 별이 떨어졌습니다.

지난 23일 한정식선생께서 운명하셨다는 부고를 받으며,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습니다.

언젠가는 가야하는 것이 인생이지만, 산다는 게 너무 허무할 뿐입니다.

정영신씨를  만나 강남 '삼성서울병원'을 찾아갔습니다.

장례식장에는 유족과 이일우씨가 조문객을 맞고 있었는데,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사진가 전민조씨만 와 계셨습니다.

 

 이일우씨로 부터 그간의 경위를 들어보니, 일찍부터 돌아가실 준비를 하신 것 같습니다.

한정식선생의 모든 사진 관리는 제자인 이일우씨에게 위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중앙대에서 퇴임할 즈음 사진가들로 부터 사들인 작품은

모두 한미미술관에 기증하셨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 숫자가 무려 800여 점이나 된다네요.

 

뒤 따라 사진가 최광호씨가 딸과 함께 조문을 왔습니다.

최광호씨로부터 육명심 선생의 근황도, 돌아가신 이완교선생의 몰랐던 사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육명심 선생은 의사소통이 되지 않을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고,

이완교 선생은 항암치료가 너무 힘들어 스스로 모든 의료 기구를 걷어냈다고 합니다.

유서에 최광호, 진동선씨 등 사진가 몇 명을 거론하며, 모든 사진은 그분에게 맡기라고 쓰셨답니다.

사진을 모르는 가족들이 당사자가 돌아가시면, 모든 걸 폐기하는 현실을 우려한 것 같습니다.

 

정부가 사료를 수집 관리하지 못한다면 민간단체라도 관리하는 곳이 빨리 만들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나 마찬가지인 귀중한 사진 자료들이 가족들의 무지로 사라지는 현실입니다.

 

뒤늦게는 동강사진축제에 다녀오신 사진가 구자호씨도 만날 수 있었는데,

'동강사진상'을 수상한 김녕만씨 작품만이 아니라 구자호, 고명진, 최재영씨 등의 보도사진도

함께 전시 된답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관람 바랍니다.

 

고인의 마지막 떠나는 길을 배웅해 드리며 명복을 빌어 주시기 바랍니다.

 

사진, 글 / 조문호

 

아래 사진은 한정식선생의 지난 기념사진을 무작위로 모았습니다.

사진이 너무 많지만, 선생의 지난 날을 돌아보며 추억해 주십시요.

 

사진 / 정영신. 조문호

1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설치된 야외무더위쉼터에 주민들이 모여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너무 덥잖아. 낮이고 밤이고 방에 있으면 돈 없고 임도 없으니 여기 앉아서 놀아."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 오른편에 시작하는 후암로60길은 남대문5가 경로당까지 130여 미터(m) 이어진 오르막길이다. 경로당 맞은편에는 낡은 건물이 10여채 모여있다. 이곳은 동자동쪽방촌 또는 서울역쪽방촌이라 불린다.

기상청이 서울에 폭염경보를 내린 4일 오후 동자동쪽방촌 주민들은 대다수가 방 밖에 나와 있었다. 오후 1시 서울의 기온은 섭씨 31도를 웃돌았지만 방안에는 습도가 높아 견디기 어려운 탓이다. 기상청 예보에 따르면 이날 서울의 최고기온은 35도에 이른다.

30년 이상 서커스배우로 활동하다 이곳에서 10년째 생활하고 있다는 A씨 역시 남대문5가 경로당 인근 옹벽 아래 앉아있다. 옹벽 아래에는 쿨링포그가 설치돼 있어 불과 한두 걸음 바깥쪽 길가보다 시원했다. 쿨링포그는 물안개를 분사해 주변 온도를 낮추는 장치다. 기온이 26도가 넘으면 자동으로 물안개를 뿜는다. 이날은 오전부터 물안개를 뿜어내고 있었다.

A씨는 서울시립 남대문쪽방상담소(쪽방상담소)에서 나눠준 여름이불과 간편식을 받으러 나온 길이었다. 물품은 챙겼지만 다시 방으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는 "방이 너무 더워 낮이고 밤이고 밖에 나와 있다"고 했다.

 

서울에 폭염경보가 내려진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쪽방촌에 설치된 쿨링포그가 물안개를 뿜어내고 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경로당 앞 야외무더위쉼터에도 주민 6~7명이 모여있었다. 쪽방상담소에서 자원봉사 중인 양동일씨(47)는 야외무더위쉼터천막 아래 테이블을 펴놓고 주민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양씨는 더위에 지친 동네 주민들이 오면 아이스박스에서 얼린 생수병을 꺼내 준다. 쪽방상담소는 야외무더위쉼터를 찾는 동네주민이라면 누구나 장부에 이름과 주소를 적고 얼음물을 받아갈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 B씨는 "두 세 시간 이상 선풍기를 틀면 선풍기가 열을 받아 뜨거운 바람이 나온다"며 뙤약볕이 내리쬐는 오후 1시에 야외무더위쉼터에 나와 앉아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동자동쪽방촌 건물은 보통 한 층에 0.5~2평 크기 방 8~15개와 화장실 1개가 있다. 건물이 4~5층 규모여서 살고 있는 주민은 20~50명에 이른다. 선풍기가 과열되면 주민들은 층마다 한 개씩 있는 화장실에서 샤워를 한다. 샤워 후에는 선풍기가 식기를 기다리는 동안 야외무더위쉼터나 쿨링포그 아래로 모인다.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쪽방촌의 모습. 남대문5가 경로당 맞은편에 10 여채의 낡은 건물에 180~250 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무더위가 계속될수록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이곳 주민들에게는 최근의 물가상승이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주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라면을 사 먹거나 커피를 사서 나눠 마신다. 낮부터 막걸리나 소주를 마시기도 한다. 동자동쪽방촌에 2개 남은 '구멍가게'에서 가장 잘 팔리는 품목 역시 소주, 막걸리, 라면 등이다.

10년째 이곳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박규언씨는 "밀가루값이 오르면서 과자, 라면 등 안 오른 게 없다"며 "과자는 이제 너무 비싸서 잘 안 가져다 놓는다"고 했다. 박씨 가게의 하루 매출은 3만~5만원 수준이다. 그나마 기초생계비가 지급되는 매달 20일부터 2~3일간은 하루 매출이 10만원까지 오르기도 한다.

쪽방상담소 관계자는 "이곳 주민의 3분의 2가량은 기초생활수급자"라며 "매달 82만원 남짓의 지원금을 받는다"고 했다.

쪽방촌의 월세는 25~35만원 수준이다. 전기세와 수도요금 등 공과금은 월세에 포함된다. 한때 동자동쪽방촌에는 450여명이 살았지만 재개발을 앞둔 현재 180~200여명의 주민만 남았다.

기상청은 폭염과 열대야가 6일까지 이어지다 전국에 장맛비가 예고된 7일부터 한풀 꺾일 것으로 전망했다.

 

머니투데이 / 정세진 기자 (sejin@mt.co.kr)

 

굴뚝에 관한 보고서-산업유산 풍경

김인재展 / KIMINJAE / 金仁在 / photography 

 

2022_0712 ▶ 2022_0721

 

김인재_조선내화 벽돌공장_피그먼트 프린트_60×80cm_202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6:30pm

일,공휴일_11:00am~06:00pm

 

 

갤러리 브레송

GALLERY BRESSON

서울 중구 퇴계로 163(충무로2가 52-6번지) 고려빌딩 B1

Tel. +82.(0)2.2269.2613

gallerybresson.com

 

김인재, 〈굴뚝에 관한 보고서〉 ● 사진을 찍는다는 일은 보는 일이고, 보는 일은 바라봄과 해석함이 연속되면서 일어나는 일이다. 이를 사진가 김인재는 작가 노트를 통해 상상이 현실을 창조한다는 것이라 말한다. 그가 지난 2년간 바라보는 대상으로 삼은 건 '근대산업문화유산'이다. 그는 '굴뚝'으로 상징되는 근대의 유산을 바라보았고, 그것을 자신의 상상으로 해석하여, 어떤 현실을 창조하려 한다. 굴뚝으로 상징된 그 흘러간 시간의 오브제를 바라보는 일이란, 누구나 보는 어떤 분명한 객관성을 가지지 않는다. 관(官)이나 학문의 언어는 그것을 근대문화유산으로 일반화시키지만, 사진가는 그런 획일의 언어로 규정하려 하지 않는다. '산업유산(industrial heritage)'이라는 용어로 치환하여 사진으로 재현하는 것은 그 언어가 담는 품이 너무 좁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 관이나 학문의 언어가 담지 못하는 어떤 상상의 세계를 사진가가 끄집어내고 독자가 그것을 자신 개인만의 기억과 이야기로 창조하였으면 하는 것이다.

 

김인재_조선내화 벽돌공장_피그먼트 프린트_60×80cm_2021

어떤 장소와 거기에 있는 오브제가 산업유산이라고 규정하고 전하고자 하는 일은 기록 차원의 일이다. 그 기록을 영상(image)로 남기려면 아무래도 동영상이 더 효율적이다. 그러면 당신은 왜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가? 굳이 맥락이 소거되고, 상황이 은닉되고, 어떤 부분을 배제하면서 네모난 박스 안에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규격화하는 사진 행위를 한다면, 당신은 이미 기록을 넘어 해석의 세계로 들어가 있다고 본다. 이 대목에서 사진가 김인재는 매우 적극적인 해석의 지평 안으로 들어간다. 대상을 과학과 객관으로 범주화하여 그 안에서 어떤 분류와 분석이라는 과학의 일에 머무르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분류를 넘어 섞임의 세계를, 보이는 외형을 넘어 보이지 않는 세계를, 분석을 넘어 해석을 향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사진은 굴뚝과 공장이 있지만, 그것들과 함께 낡고 손때 묻은 기계, 막힌 벽, 깨진 유리창 그리고 사용자와 노동자를 옭아맨 '태극기' 액자가 있다. 사람은 세월의 무게 바깥으로 다 사라져, 카메라로는 담아내지 못하였지만, 그가 담은 그 부재 안에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엄연히 존재한다. 그래서 김인재의 '굴뚝에 관한 보고서'는 기록을 넘어, 소재주의를 넘어, 기억으로 쓰는 사라져 버린 사람들의 역사를 재구성한 것이다.

 

김인재_장항제련소_피그먼트 프린트_40×50cm_2020
김인재_장항제련소_피그먼트 프린트_40×50cm_2020

카메라라는 기계로 대상을 재현하는 일이 기록을 넘어, 해석으로 가는 것은 그 대상이라는 것 자체가 입체적이고 맥락적인데, 그것을 한 평면의 이미지로 고착화해 버리는 무모함을 거부하는 것이다. 무엇이든 대상이라는 것은 인간의 어떤 시공간에서 행위 하는 속에 존재하는 것이고, 그러다 보면 그것이 품는 매우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의미들이 켜켜이 쌓이는 것인데, 그래서 애매모호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 막상 이미지로 드러나는 것은, '굴뚝'으로 대표한 지표뿐이다. 그래서 그 단순화한 지표는 그것을 둘러싸고 벌인 사람들의 여러 행위와 그 행위 속에서 드러나거나 차마 드러내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담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사진가 김인재는 바로 이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그래서 그것을 상상 속으로 연결하고, 그것을 뭔가를 창조하는 일로 연결하고자 한다. 이는 사진가가 벗어날 수 없는 커뮤니케이션의 세계다. 메타(meta)로서의 커뮤니케이션 말이다. 뭔가 분화되지 않는, 규정할 수 없고, 정돈할 수 없는 원초적 세계다.

 

김인재_전남일신방직_피그먼트 프린트_80×60cm_2021
김인재_전남일신방직_피그먼트 프린트_40×50cm_2021

대상이란 그 본질이 무엇이든지, 대상을 대하는 사람 앞에 나타날 때는 그 대상이 눔에 의해 다양한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 대상이 자신의 과거를 공유하는 시간의 축적물이면, 기억의 서사와 흘러가 버린 시간의 슬픔을 자아낼 것이고, 자신이 믿는 어떤 신격체의 상(像)이라면 존귀와 숭례(崇禮)의 현현(顯現)으로 다가서게 할 것이고, 그래서 초월의 소통을 이루게 할 것이며, 그 대상이 자신과 별다른 관계를 갖지 못하는 존재라면, 그저 그렇게 그냥 무의미하게 지나쳐버리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사진가 김인재가 재현하는 저 '굴뚝'으로 표지되는 저 시공 속의 피사체는 무슨 의미로 나타내졌는가? 우선, 사진가에 의해 마치 어떤 행위자인 것처럼 위치하게 되고, 그것을 관찰하는 우리는 그 사진가에 의해 관중의 위치에 서게 된다. 그렇다면, 카메라라는 기계로 우리 각자의 흘러간 기억을 어떤 형태로 박제하여 각 개인 앞에 내놓는 사진가는 기억의 슬픔을 끄집어내는 영매(靈媒)가 된다. 사진가는 무의미하듯 가만히 존재하는 피사체에게 어떤 의미의 옷을 입혀 그 상(像)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새로운 차원의 커뮤니케이터(communicator)가 되는 것이다.

 

김인재_오산 계성제지_피그먼트 프린트_40×50cm_2021
김인재_오산 계성제지_피그먼트 프린트_40×50cm_2021

당신은 사진가 김인재가 재현하여 제시하는 저 '굴뚝'들에 관한 보고서를 통해 무엇을 보는가? 이제 당신이 사진가의 '보고서'에 화답할 일이다. 당신의 화답은 그의 사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당신이 찾는 시간과 우주에 관한 당신의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이것이 사진가와 독자가 소통하는 일이다. 좋은 사진을 만드는 것은 사진가에게만 달린 게 아니고, 독자에게도 달리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것이 사진의 세계다. ■ 이광수

 

Vol.20220712d | 김인재展 / KIMINJAE / 金仁在 / photography

 후두둑 떨어지는 빗물이 낡은 봉창을 두드린다.

반가운 손님일까 반색하지만,

덜덜거리던 선풍기가 아니라고 고개 흔든다.

 

장마철은 쪽방살이에 걱정거리를 몰고온다. 

천장에 물이 새어 이불이라도 젖을까 전전긍긍하지만,

다행히 비새는 곳이 없어 한숨 돌린다.

 

시원하게 내리는 장대비가 쪽방 열기는 식혀주지만,

 뼈마디가 쑤시는 골병은 때 만난듯 고개드는구나.

요즘들어 늙어가는 게 하루가 다르다.

 

몸이 편치않아 꼼짝하기 싫지만, 약속 때문에 안 나갈 수도 없었다.

김용철씨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서야 자유로울 수 있었다.

 

'경기여인숙' 입구에서 비 피하던 송범섭씨는 빚쟁이 처럼 독촉한다.

지난번에 찍은 사진은 왜 안 주는 거야?”

한꺼번에 뽑아 줄테니 좀 기다리라고 다독였다.

 

생수 타러 나온 주민들이 서울역쪽방상담소앞으로 몰려들었다.

빗속에 줄 지어 선 모습이 왠지 짠하게 느껴진다.

 

정재은씨를 만나 담배 피우는 중에 반가운 분이 나타났다.

개미 팔자가 아니라 매미 팔자를 타고났다는 기타맨 위씨였다.

 

온몸이 비에 젖었는데, 몸만 젖은 게 아니라 마음도 젖었다.

오늘 새벽에 옆에 살던 양반이 천당 갔어!“

흘러내리는 빗물이 눈물인 양, 슬픈 웃음을 흘린다.

 

어쩌면 편안한 곳으로 갔으니,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살아남은 자들은 비가 추적추적 내려도 긴 줄을 서야 하지만,

모든 원한과 미련을 훌훌 떨치고 세상을 떠났으니, 얼마나 홀가분하겠는가?

 

서울역전은 천국 가는 대기소다.

 

사진,  / 조문호

 

 

 

 

지난 13일 오후 다섯시, 동자동 '새꿈공원'에서 주민들의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폭우 속에 진행된 ‘동자동에 살고 있습니다’ 토크쇼에는 주민 백일장도 열렸다.

 

본 행사는 '동자동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와 빈곤사회연대에서 마련한 자리였다.

 

그날따라 폭우가 쏟아져 거리에 나붙은 벽보마저 속살을 보였다.

우려처럼, 텅 빈 공원은 빗소리만 요란했다.

 

그러나 시간이 가까워오니 폭우를 뚫고 김영국, 김정호, 박종근, 전도영씨가

짐을 나르기 시작했고, 뒤따라 선동수 김정길씨도 나타났다.

 

비를 맞아가며 천막을 치기 시작했는데, 아무리 악천후지만 포기할 일도 미룰 일도 아니었다.

 

좀 있으니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들이 합류하여 일사불란하게 준비를 마무리했다.

 

김장수, 송범섭, 조인형, 정재은, 강동근, 황춘화씨 등 주민들도 한 사람 두 사람 모여들기 시작했다.

 

준비해 둔 수박화채를 나누어 먹은 후, 주민 백일장이 진행되었다.

 

동자동‘, ’지구지정‘, ’열대야등의 글자로 삼행시를 썼는데,

준비한 화선지가 모자랄 정도로 많은 분이 참여했다.

 

얼마나 할 말이 많았던지, 구구절절 고개가 끄떡여지는 글들이 천막에 내 걸렸다.

 

참여한 주민에게 스티커를 한 장씩 주어 제일 좋은 작품에 붙이는, 주민들이 심사위원이었다.

 

영광의 대상은 여덟 개의 스티커가 붙은 김정길씨의 열 받는다‘가 받았.

 

우수상은 네 개가 붙은 김정호씨가 차지했고,

장려상은 세 개가 붙은 송범섭씨와 정재은씨가 각각 주민들로부터 축하를 받았다.

 

김영국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추진주민모임' 위원장이 시상했는데,

다들 절실한 상품이라 입이 벌어졌다.

 

2부의 토크쇼는 한 시간 쉬었다가 오후 일곱시부터 재개되었다.

 

첫 순서로 사랑방합창단에서 나와 모두 다 꽃이야란 노래를 불렀다.

 

이어 김정호 사랑방협동회 이사장의 사회로 토크 콘서트가 진행되었다.

첫 번째 이야기 손님으로는 오계순씨와 임성연씨가 나왔고,

두 번째 이야기 손님으로는 이재모씨는 나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들 쥐나 바퀴벌레와 같이 살아야하는 열악한 주거 환경을 탓하며

동자동 공공주택 지구지정을 조속히 발표하라는 요구가 쏟아졌다.

 

이재모씨는 얼마나 쪽방이 더웠으면, 설치할 자리가 없어 머리에 이고 살더라도

에어콘 하나만 있었으면 원이 없겠다는 하소연도 했다.

 

토크쇼가 끝난 후, ‘빈곤사회연대활동가 이원호씨가 나와

동자동 공공주택이 지연되는 사정과 공공주택의 필연성에 대한 강연을 했다.

 

동자동 공공주택 지구지정을 조속히 발표하여 주민들의 주거권을 보장하라

주민들의 절박한 함성이 빗속으로 울려 퍼졌다.

 

김정길씨를 비롯한 여러 주민이 나와 다양한 요구의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주민 가수 홍홍임씨의 내 나이가 어때서였다.

일절도 모자라 앵콜로 2절까지 부르는 기염을 토했는데, 짝쿵인 이기영씨가 신경 좀 쓰이겠더라.

 

바퀴벌레와 못 살겠다. 지구 지정 빨리하라

 

사진, / 조문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