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과 종로구 창신동 쪽방촌의 모습. 좁은 골목 안에 낡은 건물이 밀집돼 있다. [이가람 기자]
"너무 답답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개발이 잘 된다면 집다운 집에서 살 수 있어 좋겠지만 또 쫓겨나면 이만큼 저렴한 가격에 몸을 누일 수 있는 곳이 없거든. 이런 어려움을 나라에서 잘 살펴 줬으면 좋겠어."
여름에는 실내보다 실외 생활이 더 나을 정도로 극심한 폭염에 시달리고, 겨울에는 난방은 커녕 수도가 동파돼 씻지도 못하는 1평 남짓한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쪽방촌. 노후 건물을 촘촘하게 쪼개 한 달에 15~30만원 수준의 월세를 받는 쪽방촌은 지옥고로 불리는 반지하·옥탑방·고시원보다 더 열악한 주거시설이다.
현재 서울에는 비슷한 시기에 형성된 다섯 개의 쪽방촌이 존재한다. ▲영등포 쪽방촌 ▲동자동 쪽방촌 ▲양동구역 쪽방촌 ▲창신동 쪽방촌 ▲돈의동 쪽방촌 등이다. 과거 1960년대 급격한 도시화·산업화 과정에서 밀려난 빈곤층이 모여들면서 조성됐다.
지난 16일 오후에 찾은 서울 쪽방촌들은 벌써 몇 년째 지역개발 이슈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최근 영등포 쪽방촌 정비사업이 본격화되면서 나머지 쪽방촌들에 대한 개발논의 활성화 기대감이 나오고 있지만, 거주민들과 소상공인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아직 개발사업이 진척되거나 구체적인 보상 및 이주 대책도 마련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20년 넘게 쪽방촌을 전전하고 있다는 A씨는 "어디나 비슷할 것"이라며 "공용이 아닌 개인 화장실을 써 보고 싶었는데 죽기 전에 가능할지 모르겠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오르막길 안쪽에 걸터앉아 연신 부채질을 하던 B씨는 "창문이 고장 나서 열 수 없고 곰팡내도 좀 나서 밖으로 나와 쉬고 있다"며 "재개발이 될 거라고 하니 주인이 돈을 들여 집을 고쳐 주지도 않는다"라고 토로했다.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스케줄대로라면 국토교통부가 진작 개발 플랜을 제시했어야 했지만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며 "선진국에서는 공청회나 이벤트 등을 통해 주민들하고 논의하는 시간을 오래 가지는데 우리나라는 커뮤니케이션적인 부분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쪽방촌. 최근 공공주택지구 사업시행을 위한 지구계획이 승인·고시됐다. [사진 제공 = LH]
특히 쪽방촌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동자동 쪽방촌은 공공개발과 민간개발로 소유주 간 갈등이 심화하면서 아직 지구지정도 되지 못했다. 쪽방촌 입구에는 '사유재산 빼앗아서 공공주택 만드는 게 공익이냐'는 문구가 적힌 검은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쪽방촌 주민들을 도와주는 센터에서 일하는 C씨는 "공공개발을 하면 우리가 입주할 수 있는데 민간개발이 되면 쫓겨날 게 분명하다는 사람들과 빠르게 착수할 수 있는 민간개발을 선택하되 서울시의 조율이 필요하다는 사람들이 있다"며 주민들 사이에서도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고 전했다.
종교시설에서 식사를 받아가던 D씨는 "돈도 없고 갈 데도 없어서 버티고 있다"며 "한 달에 20만원 주면서 살 수 있는 곳은 여기밖에 없다"고 손가락으로 한 건물을 가리켰다. 폭이 50㎝가 될까 싶은 좁은 입구와 깨진 외벽이 눈에 들어왔다. 전기 설비가 오래되고 전선이 뒤엉켜 안전사고에 그대로 노출된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화재 발생 시 소방차 진입도 불가능해 보였다.
작은 슈퍼마켓을 운영 중인 E씨는 "그래도 정부에서 신경 쓰겠다고 말했으니 변화가 있을 것 같다"면서도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또 희망 고문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이어 "어떤 방향이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내보내지만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7월 취임식을 마친 뒤 곧장 쪽방촌을 찾은 바 있다. 동행식당 지정 및 운영, 노숙인 공공급식 확대 및 급식단가 인상, 에어컨 설치 등 지원을 약속했다. 지난 추석 연휴에도 쪽방촌 곳곳을 돌며 주민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했다.
서울시 쪽방촌 상담소 관계자는 "최대한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데 주력할 예정"이라며 "공동이용시설 리모델링이나 상담을 통한 보호시설 입소 등도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지난주 영등포 쪽방촌 공공주택지구 개발사업 시행을 위한 지구계획이 승인·고시됨에 따라 본격적으로 정비사업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오는 2026년 말까지 공동주택 782채를 건설해 쪽방민과 신혼부부, 청년층에게 양질의 역세권 아파트를 공급하겠다는 목표다. 동시에 공공사업자들이 주도하는 최초의 쪽방촌 개발사업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됐다.
영등포 쪽방촌을 제외하고는 그나마 양동구역 쪽방촌이 서울시가 지난해 10월 민간주도로 재정비를 추진한다고 발표하면서 공공임대주택·사회복지시설·업무용오피스시설 등을 짓는 내용으로 정비계획을 확정한 상태다. 임대주택 건설이 시작되면 주민들은 임시 이주 공간으로 이동하게 된다.
우리 곁에 있는 우주의 깊숙한 곳● 허유진의 작품들을 누가 봐도 별이 가득한 신비로운 우주의 이미지로 가득하다. 무엇을 찍어서 그렇게 보이는지는 나중의 일일만큼 압도적인 유사성을 가진다. 별을 보며 하는 생각은 일상과는 다소 다르다. 일상의 잡다함을 털어내는 초월적 경지로 누군가에게는 황홀한 도피처가 되기도 한다. 밤하늘을 보는 것은 낭만적이다. 알베르 베갱은 『낭만적 영혼과 꿈 : 독일 낭만주의와 프랑스 시에 관한 시론』에서 낭만주의자들이 추구했던 것은 우주적 무한과의 소통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별빛 가득한 밤하늘을 응시하는 것은 종교가 없는 사람도 종교를 떠올릴만한 근본적 차원에 몰입하게 한다. 종교는 하루 이틀, 일년 이년, 십년 이십년의 시간이 아닌 억겁의 시간에 걸친 진리와 지혜를 말한다. 허유진의 전시 부제 『Flowing Moment-순간은 밤하늘의 별과 같다』에는 시간에 대한 키워드가 여럿 들어가 있다. 그것은 별이라는 작품 소재와 관련된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작가의 주요 매체인 사진도 그렇다.
작가가 '순간'을 강조하는 것은 사진이 시공간의 절편을 담아내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우주를 볼 때 인간은 영원을 생각한다. 물론 우주 또한 생성과 소멸을 겪지만, 워낙 관찰자인 인간의 시간관념을 뛰어넘는 시간을 전제하기에 영원처럼 느껴진다. 길어야 100년 남짓한 인생은 우주적 시간에 비한다면 거의 순간에 해당된다. 순간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지금 자기 눈에 닿은 별빛으로 그 별이 아직도 존재하는지 확신하지 못한다는 것에서도 온다. 먼 거리를 생각할 때 그 별은 이미 없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지속이 아닌 순간만이 확실하다. 중학교 때부터 사진을 찍어온 허유진에게 몸의 연장이나 다를 바 없는 카메라는 무엇보다도 순간을 포착한다. 별을 품고 있는 우주는 그 자체로 존재할 것이지만,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별 그 자체 보다는 그것을 보고 생각하는 주체다. 작가는 『Flowing Moment』 전의 사진들이 '나라는 사람을 예술적 표현으로 보여준 사진이고 나의 세상이고 우주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주적 풍경처럼 보이는 작품은 그것이 세차 구정물이라는 점에서, 그 낙차에서 오는 충격이 있다. 자동차 세차장에서 발견한 비눗물은 빛이나 날씨의 조건에 따라 약간씩 차이는 나지만, 전시되는 대다수의 작품에서 우주적 풍경이 느껴진다. 최초의 발견은 우연이었지만, 작가는 집중적으로 한 주제에 매달려 작품 형식을 가다듬어 왔다. 현재까지는 자동차 창에 비춰진 거품이 중심을 이루지만 앞으로 넓혀가려 한다. 아직 20대니까 충분히 가능한 목표라고 본다. 이 시리즈가 시작된 것은 고등학교 때부터였으니, 최소 7-8년은 넘게 붙잡고 있으면서 심화, 확장 시키는 주제이기도 하다. 그 밖에 작가가 관심을 가진 소재로는 동굴이 있다. 동굴 또한 구체적인 자연이면서도 추상적인 느낌으로 확장될 수 있는 소재다. 우주나 (아직 발표는 안된) 동굴 이미지는 허유진의 관심이 자연의 이미지에 있음을 알려준다. 과학자들의 도구인 현미경이나 망원경은 자연을 확대하여 분석한다.
허유진의 도구인 사진은 그 연장선 상에 있다. 복잡한 자연적 현상에서 질서 있는 패턴을 찾아내는 방식은 과학과 예술에 공통적이다. 전시된 작품은 자연에 내재한 심미적 차원을 활용한다. 거품이 자아내는 우주적 풍경은 모두 물질과 에너지의 패턴과 관련된다. 가령 기하학자라면 불규칙적인 거품의 형태에서도 규칙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시오반 로버츠는 기하학자 콕세터의 평전 『무한 공간의 왕』에서 '모듈화된 공간의 컴팩트화'에 대한 연구의 예를 든다. 이 평전의 주인공은 '최밀 충전과 거품 덩어리'에 대한 강의에서 '거품 덩어리에서 하나의 거품과 접촉하는 거품의 수를 공식화'한다, 과학자가 공통의 규칙을 찾는다면 예술가는 보다 직관적인 시각적 비유법을 구사한다. 허유진의 작품에서 비누 거품과 우주는 시각적인 유사성(resemblance)으로 연결된다. 유사성은 시각예술에서 의미가 확장되는 중요한 연쇄 고리가 된다.
미셀 푸코는 『말과 사물』에서 유사성은 16세기 말까지 서구문화에서 지식을 구성하는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땅은 하늘을 반영했고 사람의 얼굴에는 창공의 별이 반영되어 있었다. 그리고 회화는 공간의 모방이었다. 푸코에 의하면 표상은 반복의 형태로서, 즉 인생의 무대나 자연의 거울로 이루어졌다. 『말과 사물』은 유사성과 공간과의 연쇄에 의해, 말하자면 유사한 사물들을 한데 모으고 인접한 사물들을 동화시키는 힘에 의해 세계는 마치 하나의 사슬처럼 서로 연결된다고 서술한다. 그러한 방식으로 각각의 사물에 주어진 장소를 극복한다. 인간의 그의 지혜를 통해 세계의 질서를 닮아가고, 세계의 질서를 자신의 내부로 전위시킴으로서, 자기의 내면의 창공 속에서 저편의 다른 하늘의 움직임을 재창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비는 보편적인 적용영역을 갖게 된다. 전 우주의 모든 형상들은 유비에 의해 한데 모여들게 된다. 어느 방향으로든지 길이 나 있는 이 공간상에는 하나의 특권을 가진 중심점이 존재하는데, 이 지점은 바로 인간이다.
대우주의 질서를 반향하는 소우주로서의 인간상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비트루비우스 인간』(1490)으로 유명하다. 푸코에 의하면 인간은 모든 상응 관계에 있어서 위대한 중심점이다. 모든 관계들은 이 중심부으로 집중되며 다시 그 중심부에 의해 새롭게 반사된다. 그렇게 해서 소우주와 대우주와의 조응관계가 성립된다. 푸코에 의하면 소우주라는 개념은 만물의 위계 질서 내의 자기보다 더 높은 등급 속에서 자기의 거울상과 대우주적 정당화를 발견한다. 역으로 말하면 가장 높은 천구의 가시적 질서는 지상의 가장 어두운 심연 속에서도 반영된다는 것이다. 자동차 창유리의 거품 세제의 흔적에서 대우주의 이미지를 보는 허유진의 작품 또한 푸코가 이론화한 것과 같은 유사의 연쇄고리를 따라간다. 작품이 암시하는 바에 의하면, 설거지통 속에도 우주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나의 기원도 품고 있는 저 숭고한 우주의 광경이 그렇게 하찮고 더러운 것이었다니. 하기야 저기 빛나는 별 또한 내 발치에 채이는 돌멩이와 비슷하지 않겠나.
작가는 '사진작가의 눈은 다른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을 예민하게 포착하고 무심하게 바라봤던 것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모두가 거리의 문제다. 미학 또한 낯설게 하기 등의 방식을 통해 거리를 활용한다. 현대과학은 시간과 공간의 밀접한 관련을 말하는 만큼, 시간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시대상과의 관련 때문에 객관적이라고 믿어지는 사진 매체가 사실을 다루는 범위는 이렇게도 광대하다. 실제의 우주나 별에 대한 이미지는 고도의 천문학적 기구들이 받쳐줘야 하는 피사체이기는 하지만, 허유진은 사진기 하나로 그러한 효과를 찾아낸다. 이 작품 사진을 천문학자들에게 보여주면 여기가 어디냐고 먼저 물을 듯하다. 전문가들에게는 그들만의 좌표가 있기에 그 수많은 별들에서 어떤 별이 새로운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전문가들만이 차이의 감식안을 가질 수 있다.
허유진은 이번 전시의 작품을 자기만의 분류방식에 의해 여섯 갈래로 나누었다. 가장 많이 출품된 『Fancy』 시리즈는 하늘 저편, 우주의 깊숙한 곳의 풍경 같다. 검은 융단에 보석 가루를 뿌려놓은 듯 아름답다. 관객은 이 찬란한 풍경이 어떻게 비누 거품일 수 있지라고 묻겠지만, 우주의 모양에 대한 유력한 가설 중의 하나가 거품 우주론이라는 사실이다. 비누 구정물로부터 출발한 것일지라도 같은 거품이기에 비슷한 형상이 나온 것이다. 우주의 기원에 대한 가설 중 우주가 양자 거품(quantum foam)에서 시작되었다는 이론은 허유진의 작품에 대한 설득력 있는 해석을 제공한다. 널리 회자되는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양자 거품이란 무정형의 빈 공간으로서, 원자보다 훨씬 작은 물질의 거품이 1조의 1조의 1조분의 1초보다 더 짧은 순간에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되풀이한다'(다음백과, 양자거품 항목). 양자 거품에 의해 생겨나는 막(membrane)은 빅뱅에 의해 탄생한 우주에 직관적 이미지를 제공해 준다.
실제로 우주를 보는 망원경에서 찍은 허블의 거품 성운(NGC 7635)의 이미지는 유명하다. 이 성운만 해도 허블 우주 망원경이 찍었지만, 얼마 전부터 그보다 100배 더 세밀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이 새로운 심우주 영상을 송출하고 있다. 예술과 과학은 자연의 책을 각자의 방식으로 읽는다. 시오반 로버츠는 『무한 공간의 왕』에서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가정한 '우주라는 완전한 책(grand book)'을 소개한다. 그에 의하면 '철학은 이 완전한 책, 즉 우주에 쓰여 있으며 우리가 계속하여 바라볼 수 있도록 되어있다. 이 책은 수학의 언어로 쓰여 있으며 그 글자는 삼각형, 원, 기타 기하학 도형이다. 이러한 글자가 없다면 어두운 미로를 헤매게 된다' 자연의 책을 읽으려는 시도는 위대한 과학자들의 도전이었고 그것은 뉴턴도 마찬가지였다. 제임스 글릭은 뉴턴의 평전 『아이작 뉴턴』에서 자연이라는 책은 질서정연한 양식으로 설계되어 지식을 담는 용기였고, 실재를, 그리고 필경 자연까지도 기호로 부호화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자연이라는 책. 즉 신이 그 책을 썼고 이제 우리가 그것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의 책에 이미 진리가 쓰여 있다는 사고는 창조가 아닌 발견에 방점을 찍는다. 시오반 로버츠는 과학자들이 신봉했던 객관적 진리라는 관념의 선구자로 플라톤의 예를 든다. '참인 모든 것은 언제나 참이었고 사람들은 그저 그러한 것들에 대해 생각하여 참인 사물들을 재구성해낼 뿐이라는 것'이 플라톤의 생각이다. 자연의 패턴에서 보이는 여러 흐름 속에서 '불규칙한 조화가 이루는 변화'를 추적하는 필립 볼의 주장에서도 발견된다. 그는 『물리학으로 보는 사회-임계질량에서 이어지는 사건들』에서 각각의 성장패턴은 독특하게 장식이 되더라도 주어진 성장 조건에서는 우리가 플라톤적 형식이라고 볼 수 있는 필연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세부적인 사실을 다를 수 있지만 형식은 동일하게 유지된다. 전시된 작품 20여점의 규격은 4x3의 비율로 마치 창문같이 바라보는 시점이 전제된다.
허유진_Fresh 01_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38.2×51cm_2021
발견할 수 있어야 창조도 할 수 있고 창조적인 사람이 발견도 할 수 있지만, 창조/발견의 입장은 엄연히 다르다. 우주는 내 머리 위에 일단 있는 것이다. 내가 내 의지에 의해 태어난 것이 아니듯 말이다. 세상이 어수선할수록 객관적 실재에 대한 강한 기대치가 있다. 허유진이 일상 속에서 재발견한 우주는 실재에 대한 직관을 상상적으로 보여준다. 일상에서 우주를 발견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앞서 인용된 바와 같은 '자연의 책'을 음미하게 한다. 이 우주는 연결되는 시리즈 작업을 통해 환상부터 멜랑콜리에 이르는 인간적 감정을 표현한다. 통상적인 비눗물과 다른 점은 자동차 유리창을 닦은 물의 순간 이미지라서 빛을 투과했다는 점이며, 육안과 다른 시점을 포착할 수 있는 사진의 힘이다. 허유진의 작품은 가장 사진적인 사진 중의 하나다. 작가는 색감이나 밝기 외에 크게 수정한 것이 없다. 과학자가 찍은 실제의 천체 사진도 보다 선명하게 가시화하기 위해 그러한 보정을 하지만, 둘 다 형태 그 자체는 변형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허유진_Secret 01_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60.9×81.3cm_2021
작가는 창조자보다는 발견자의 입장을 택한다. 나머지 5개의 시리즈도 감성 충만한 제목을 가졌지만, 천체 사진 같은 느낌은 공통적이다. 하지만 약간씩 방점이 다르다. 작가는 이 여섯 개의 시리즈가 모두 시간과 관련된다고 말한다. 시간에 대한 작가의 감각은 무엇을 찍든 모든 사진들이 '찰칵 하는 순간부터 과거'라는 깨달음에서 온다. '하루는 1,440분이고 일 년은 525,600분이다. 매 순간 지나간 시간들 그리고 흘러간 순간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흘러내리는 거품도 반짝이는 별처럼 그 순간에 아름다웠다가 사라져 과거가 된다.' 「Blossom」 시리즈는 다른 시리즈에 비해 색이 더 화려하다. 활짝 핀 꽃이나 그 꽃들이 질 때의 모습을 상상한다. 다른 작품에서 별처럼 보이는 입자는 이 시리즈에서 꽃잎처럼 보인다. 비눗 구정물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색이 뽑혀 나오는 것은 화학용품이 틀림없을 액체의 색감 자체가 화려해서 그렇다. 반면, 이번 전시에서 1점만 발표되는 「Fresh」 시리즈는 하나의 색으로만 이루어졌다.
허유진_chaconne 01_피그먼트 잉크젯 프린트_38.2×51cm_2021
디즈니가 1940년에 만든 애니메이션 판타지아가 떠오르는 제목을 가진 「Fantasia」 시리즈는 입자들이 운율감 있게 배열되어 있다. 음악을 추상화로 표현하면 이런 모습이 될 듯하다. 영화 『판타지아』가 음악과 이미지의 환상적인 조합이었듯이, 추상미술의 탄생에는 이미지와 음악과의 활발한 교감이 있었다. 비밀을 감춘 듯 베일에 감싸인 풍경이 있는 「Secret」 시리즈는 자연에 대한 발견자, 탐사자의 관점이 있다. 자연이라는 책에 쓰여있는 기호들은 그 자체로는 신비하다. 그것은 보는 이가 거듭해서 해독해야 하는 미지의 기호들이다. 허유진의 작품이 모호한 것은 광학적 효과 때문이기도 하다. 원래 자동차 유리창 뒤로 배경이 깔려있지만, 선택과 집중에 의해 약화되었고, 작품은 평범한 풍경을 우주화 했다는 '비밀'을 간직하게 됐다. 푸른 색감 때문에 어둡고 깊은 느낌을 주는 「chaconne」 시리즈는 「Fantasia」 같은 운율을 유지하면서, 희열부터 우울까지 여러 감정을 이끌어낸다. ■이선영
비비안 마이어, 뉴욕, 1953년,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서울=연합뉴스) 김준억 기자
미국의 거리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1926∼2009)는 '천재 사진가'로 추앙받는다. 사후에야 유명해진 예술가들이 없지는 않지만, 마이어처럼 극적인 사례는 드물다.
20세기 미국 사진의 역사를 고쳐 쓰게 만든 사건은 2007년 미국 시카고의 한 경매장에서 비롯한다.
역사책을 쓰고 있던 26살 청년 존 말루프는 경매로 산 사진 상자를 살펴보다 보물을 갖게 됐다는 걸 깨닫는다. 상자에는 무명 사진가가 촬영한 네거티브 필름이 가득 들어 있었다. 특별한 사진임을 직감한 그는 이후 경매 등을 통해 마이어의 사진과 필름을 계속 사들였다.
그는 작품을 팔기 위해 마이어의 사진 20장을 골라 사진 공유 사이트 플리커에 올렸다. 이 사진들은 입소문을 타고 세계로 퍼졌으며 미국 주요 언론들의 찬사를 끌어냈다.
비비안 마이어, 센트럴파크 동물원, 뉴욕, 1959년 9월 26일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그러나 마이어와 관련해 알려진 것은 시카고에서 보모로 일하다 2009년 4월 세상을 떠났다는 짤막한 부고가 전부였다. 마이어의 감춰진 재능과 삶을 알리고자 말루프는 다큐멘터리 제작에 나섰다. 2014년 완성한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는 이듬해 아카데미상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작에 선정됐으며 마이어의 작품 가격은 치솟았다.
말루프와 또 다른 구매자인 제프리 골드스타인이 사들인 마이어의 작품은 14만 점이었지만, 인화한 사진은 5%에 그쳤고 현상도 하지 않은 필름도 30%를 차지했다.
20대 중반 이후 줄곧 보모로 일했던 마이어는 카메라를 들고 거리에 나가 사진을 찍었다. 정식으로 사진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그의 작품은 당대 거장들과 비교됐다.
비비안 마이어, 장소 미상, 날짜 미상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산뜻한 상식에 근거한 지성, 놀랍도록 선명한 유머 감각, 우연히 연출된 일상을 순간적으로 포착하는 예리함이 특징"이라고 평가했고, AP는 '천재'라는 수식어를 달았다.
가디언은 "비비안 마이어는 로버트 프랭크, 다이앤 아버스와 같은 이름에 견줄 만하다"고 했다.
마이어는 거리의 쇼윈도나 유리,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도 자주 찍었다. 작가로서의 삶을 숨겼던 그는 역설적으로 '셀피(Selfie)의 원조'로 여겨지기도 한다.
'카메라를 든 메리 포핀스'라는 별명도 붙었다. 보모라는 직업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의 아름다운 순간을 잘 포착하는 능력 때문이다.
비비안 마이어, 캐나다, 1955년 ⓒ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이처럼 비밀스러운 사진가의 작품들을 선보이는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이 오는 4일 서울 성동구 그라운드시소 성수에서 개막한다.
그가 직접 인화한 빈티지 작품과 미공개작을 포함한 사진 270여 점, 그가 사용했던 카메라와 소품, 영상 자료 등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선 비비안 마이어가 1959년 필리핀, 홍콩,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 등을 여행하며 촬영한 사진들이 처음으로 공개된다.
비비안 마이어, 뉴욕공공도서관, 1954년경ⓒEstate of Vivian Maier, Courtesy of Maloof Collection and Howard Greenberg Gallery, NY
아울러 그의 삶을 추적한 "최초의 공인된 전기"라고 평가되는 책 '비비안 마이어'(북하우스)도 최근 번역 출간됐다.
미국 대기업 임원 출신인 앤 마크스는 프랑스 시골 마을과 뉴욕의 문서 보관소 등을 뒤지며 마이어와 관련한 기록을 샅샅이 훑고, 14만 장에 이르는 아카이브에 접근할 권한을 받아 비밀에 싸인 작가의 생애를 기록했다.
저자는 끈질긴 추적 끝에 복잡하게 얽힌 가족사를 밝혀낸다. 가족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비밀스러운 삶을 유지했고, 독립적으로 살기 위해 이 집 저 집을 전전하는 보모 일을 감수했으며 그 와중에도 카메라를 놓지 않았던 한 용감한 여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동자동 사는 신문황씨는 이제 팔순을 갓 넘긴 형님 같은 분이다. 다들 추석이라지만, 갈 곳도 연락할 곳도 없다. 좁은 방을 가득 메운 짐에 치어 누울 자리도 없지만, 항상 싱글벙글 웃으신다. 돈 쓸 줄을 모르니 돈 걱정 없고, 영화를 누려보지 못했으니, 세상 미련도 없다.
길 가다 마음에 드는 그림 주워모아 쪽방을 전시장 만들고, 좋아하는 것들은 다 모아 놓아 백화점을 방불케 한다. 그리움은 액자 속에 넣어두고, 오늘도 살아 있음을 자축한다. 다 부질없고 속절없는 삶이건만, 텅 빈 외로움이 짐이다.
금호미술관은 2022년 8월 5일부터 10월 23일까지 사진작가 한성필의 초대전 『표면의 이면 Inverted Surfaces』을 개최한다. 한성필은 재현과 환영에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 문명과 지구 환경에 이르는 폭넓은 주제를 작업에서 다룬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그동안 세계 각국을 다니며 촬영한 세 개의 연작과 영상 작업을 한 자리에서 선보인다. ● 세계의 여러 도시에서 건축물 복원 현장 앞에 설치된 이미지가 프린트 된 임시 가림막을 촬영하여 가상과 실제의 경계를 드러내면서 '우리가 보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지는 「Façade」 연작, 극지방인 북극해와 캐나다 로키 산맥 등의 모습을 촬영하여 대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자아내는 동시에 과잉 개발로 인해 빙하가 빠르게 녹아 내리는 기후 문제를 보여주는 「Polar Heir」 연작, 그리고 프랑스 소도시의 전원 풍경 한 가운데 원자력 발전소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를 포착한 「Ground Cloud」 연작을 전시한다. 그의 작업은 눈 앞에 놓인 화면의 스펙터클과 장엄함의 이면에 존재하는 확장된 사유의 장으로 우리를 이끈다.
건물 외벽을 일컫는 '파사드(façade)'는 유럽에서 역사적 건축물이나 문화재 복원을 위한 공사현장의 차단막을 가리키기도 하며, 이는 공공미술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오래 전, 영국 런던에서 복원 공사 중이던 세인트 폴 대성당 앞에 성당의 기초 디자인이 그려진 대형 가림막이 세워져 있는 모습을 본 작가는 그간 고민하던 이미지의 재현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발견하였다. 이를 계기로 세계 곳곳을 다니며 파사드와 건물의 벽화인 '트롱프뢰유(Trompe-l'oeil)'를 카메라에 담았다. ● 언뜻 사진 속 가림막의 이미지는 실제 건물의 모습처럼 보이며, 자연광과 가로등의 빛이 섞여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새벽의 하늘색은 그림 같은 장면을 연출한다. 작가를 대표하는 작업 중 하나인 「Façade」 연작은 낮과 밤, 현실과 판타지, 사진과 회화 등 상반되는 두 요소가 한 화면에 혼재해 나타나면서 개념과 개념 사이의 경계를 묘하게 흐리고,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한다.
「Ground Cloud」 연작은 작가가 2005년 프랑스 소도시의 고성 지대에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할 당시 처음 촬영하였다. 사진들은 마치 구름이 피어 오르는 전원 마을을 담은 듯 하지만, 센 강과 루아르 강 인근 원자력 발전소에서 강물을 냉각하면서 발생한 수증기를 포착한 것이다. ● 목가적인 대지의 모습과 발전소에서 내뿜는 수증기가 만들어 낸 생경한 풍경은 대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환경 문제에 대한 고찰을 동시에 이끌어낸다. 작가는 에너지 개발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나 찬반 논쟁을 벗어나 대립되는 것들의 낯선 공존을 차분히 드러내면서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문명과 자연의 상태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활동 초기부터 작가가 관심 가져 온 지구 환경과 자원 개발에 대한 주제는 다른 작업들에서도 지속적으로 다루고 있다.
작가가 최근까지 관심을 가지고 촬영한 극지방의 모습을 담은 「Polar Heir」 연작은 자연과 문명, 지구환경, 자원 개발과 같은 폭넓은 주제를 다룬다. 수년 간의 리서치를 진행한 후 카메라 장비를 들고 극지방을 여행한 작가는 빠르게 녹아 내리는 빙하와 과거 산업 지역 등을 기록하였다.
전시 공간을 압도하는 대형 사진 작업들은 태고의 모습을 지닌 자연의 초월적인 모습인 동시에 수 세기 동안 이루어진 자원 개발의 역사와 자연 개척의 흔적을 여실히 보여준다. 작가는 대자연의 숭고함과 그 이면에 존재하는 환경 문제의 현실을 한 장면에 포착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경외심을 느끼는 한편 인류가 지구환경에 미친 영향을 사유하도록 한다. ■금호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