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흘러도 변치않는 것이 장터 인정이여”

 
끝자리가 4·9일 날에 열려
참깨·땅콩 등 특용작물 많고
주변에 간석지 있어
특산물 남양소금·해산물도 풍성

 


손수 키우고 거둔 호박·콩·마늘 등을 들고 장에 나온 할머니들.

카메라를 갖다 대니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장터 인정”이라고 한다.(위 사진)

                                              어느 장터에서나 볼 수 있는 약초. 이 난전의 주인은 가시오갈피와 인삼을 들고 나왔다.(아래 사진)

 

잿빛 하늘을 무겁게 인 파라솔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삽상한 난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가을 끝자락에 선 화성 조암장에는 장꾼들이 산과 들에서 갖고 나온 온갖 곡식과 열매들이 알맞게 영글어 다소곳이 앉아 있다.

 처연한 사물의 형상에 콧등이 시큰거려 서리태를 다듬는 어느 할머니에게 다가가 콩 농사가 잘되었냐며 인사를 건넸다. 고씨 할머니(79)는 “도시 사람들은 책상머리에 앉아 가을 타령들을 하지만 시골에서는 한가롭게 가을 이야기 할 여유가 없다”며 웃는다. 수확철만 되면 깡통을 매달아 두드리며 새도 쫓아야 한단다. 요즘 참새들은 배짱이 두둑해져 허수아비를 우습게 알고, 먹을 것만 있으면 마구 덤벼들어 바쁜 일손을 더더욱 바쁘게 만든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콩을 까다가 대뜸 말을 잇는다.

 “요것들은 엊그저께 서리 맞고 영근 것이라 갖고 나왔구먼. 해콩 사다 밥 해묵으면 맴도 영근다고 했어. 한사발 사 갖고 가?”

 고를 틈도 없이 장에 갖고 나와서는 정리해가며 서리태를 까는 할머니 모습이 집 마당에서 일하는 모습 그대로다.

 무더위와 장마에도 꿋꿋하게 여물면서 지난한 시간을 건너온 온갖 곡식들이 기특하게 보인다. 늦가을 서리가 내린 후에야 수확한다는 서리태의 순정한 빛깔도 예사롭지 않다. 지난여름 그 뜨거운 햇살 아래 몸부림치면서 자라온 것들이 저절로 붉어질 리 만무하다. 분명 그 안에는 바람과 비와 햇볕이 스며들어 이렇듯 자연스러운 색깔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1929년 3월에 개설된 조암장(경기 화성시 우정읍 조암리)은 끝자리가 4일과 9일에 열리는데, 버스터미널 뒷길로 길게 이어진다. 초창기에는 음력 칠월 백중날이면 일대의 농사꾼들이 몰려와 낮부터 밤늦도록 씨름 대회를 열어 난장판을 벌이면서 주민들을 모았다고 한다. 이렇게 형성된 조암장에는 쌀ㆍ고추ㆍ배추ㆍ무ㆍ파ㆍ마늘ㆍ당근ㆍ시금치 등의 일반 농산물과 참깨ㆍ들깨ㆍ땅콩 같은 특용작물이 많이 나온다. 근처에 간석지가 있어 특산물인 ‘남양소금’과 굴ㆍ꽃게 등의 해산물도 풍부하다.

 김두진 할아버지(83)는 고무신 구멍 때우는 신기료장수, 라이터돌 파는 장돌뱅이, 돼지기름으로 부침개 부치며 술 파는 아낙네 등이 많았던 예전의 장이 더 좋았다고 한다. 김씨 할아버지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은 뻥튀기 장수와 선거철만 되면 한표라도 더 얻으려고 악수하러 다니는 높은 양반들”이라고 한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이날 장터는 화성갑 보궐선거를 하루 앞두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확성기 소리로 요란했지만, 장에 나온 사람들은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인다.

 구두를 수선하거나 톱이나 칼을 갈아주러 50년째 장에 나온다는 김씨 할아버지는 장날이면 가방 하나 둘러메고 이곳 조암장을 포함해 화성의 발안장ㆍ사강장, 오산의 오산장, 평택의 안중장 등 인근 다섯 오일장을 하루도 안 빼놓고 돌아다니는 장돌뱅이다. 일감이 없을 때는 하모니카로 유행가 한자락 뽑는 맛으로 산다는 김 할아버지의 차곡차곡 쌓아올린 시간들이 소중해 보인다.

 할머니 세분이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이 정겨워 카메라를 들었다. 사진을 찍는 내게 조암리에 산다는 박씨 할머니(82)가 한마디 보탠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 바로 장터 인정이여! 가까운 사람 안부를 묻기도 하고, 같이 모여 숟가락 부딪히며 음식도 나누어 먹고, 물건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서로 한동네 사람처럼 지내고….”

 문득, 경상도 장터에서 만난 젊은 장꾼의 너스레가 생각난다. “아지매요, 밑지고 팔아도 정 하나 달랑 남으면 되는 기라예.”

 할머니 따라 나온 은행과 호박, 콩들이 속삭이는 소리에 귀 기울여본다. 자연이 빚어놓은 색깔과 땅의 냄새, 그리고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들이 장터 속으로 흘러든다. 그 정겨운 풍경들이 카메라 속에서 손짓한다.

 조암장 외에 화성에서 열리는 오일장은 바지락ㆍ꽃게 등이 나오는 남양장(1ㆍ6일), 인근 바다에서 잡은 해산물이 많은 발안장(5ㆍ10일), 임금 수라상에 올랐다는 ‘남양석굴’로 유명한 사강장(2ㆍ7일)이 있다. 남양석굴은 알은 잘지만 맛이 좋은데, 토질병(土疾病ㆍ풍토병)에 약이 된다고 해서 해방 전까지는 병을 고치려는 사람들이 이를 사러 겨울철만 되면 몰려들었다고 한다. 



 

 

 

 


 

 

  • “할아버지이~ 가까이 가서 한번 만져 보고 싶어.” 외할아버지 따라 장 구경 나온 신환(4세)이가 장 뒤쪽에 열린 가축 전으로 박경훈(61세) 씨의 손을 끌어당기고 있다. 병아리를 낳은 어미 닭을 비롯해 토종닭, 고양이, 개 등 갖가지 가축들이 좁은 우리 안에서 뒤뚱거리는 모습이 신기한지 쳐다보는 눈망울이 초롱초롱하다. 마치 작은 동물원 같은 풍경이다. 가축 전 끝머리에는 주인 따라온 장 닭 두 마리가 한낮인데도 하늘을 올려다보며 꼬~끼오 꼬~끼오를 연발하고 있었고, 그 옆에서 어미 품을 떠나온 백구형제가 우두커니 쳐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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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천장의 이분택(70세) 씨는 35년째 가축을 팔아 왔는데, 우리 토종닭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 안타깝다고 한다. “내 얼굴이 장 닭 닮았다고 허대유.” 이 씨가 얼굴 가까이 장 닭을 갖다 대며 웃는 모습이 흑백사진 속 고향집 마당 같이 정겹다. 여름날이면 쑥으로 모깃불을 피워놓고, 평상에 앉아 닭이 닭장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추억은 지금도 서랍 속에 가지런히 앉아있는 풍경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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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1년 9월 읍내리 장터거리에 개설된 진천장은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의 백곡천 주변과 시가지 동쪽 공터에 날짜 끝자릿수가 5일과 10일이 되면 들어선다. 장날이 되면 지역 상인들과 장돌뱅이는 물론 시골 할머니들이 산이나 들에서 수확해온 갖가지 농산물들을 고만고만하게 펼쳐놓아 향수 어린 진풍경을 자아낸다. 가을이 시작된 요즘 장터에는 제철인 밤과 호박, 콩, 고추, 무, 가지 등이 저마다의 색깔을 뽐내며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가축 전 옆에는 20여 가지의 곡식 보따리가 정물화처럼 앉아있고, 장터 한쪽으로는 국밥집이 주욱 늘어서 있다. 장옥 없이 난장으로 길게 늘어선 진천장은 옛 장터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할머니들은 콩을 까면서도 옆 할머니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푹 빠져 있다. 가을 들판 소식을 콩속에 가득 담아 와 좌판을 펼친 김형언(77세) 할머니는 “병원 옴서 콩하고 도라지 갖고 왔어유. 내 손으로 농사 진 거라 팔리기만 하면 쏠쏠허구먼유”라며 가슴이 부풀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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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훈훈한 정이 좋아 5년째 진천장 나들이를 한다는 지암리의 공인식(72세) 할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진천 자랑 좀 해 달랬더니 소녀처럼 웃기만 하신다. 대신 옆에 있던 김 씨 할머니가 신이 난 듯 농다리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돌다리구먼유. 지네가 기어가는 것처럼 보여 옛날에는 지네 다리라고 했지유.” 문백면 구곡리에 있는 돌다리 진천농교(鎭川籠橋)는 고려 때 만들어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8호다. 농다리라고도 불리는 이 농교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다리에 속한다. 천 년 세월 동안 전해 내려온 물과 관련된 오랜 이야기들이 지금도 마을 어르신들에 의해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2000년부터 천 년의 신비를 지닌 문화유산을 알리기 위해 매년 ‘농다리 축제’를 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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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장 무렵, 배낭에 밤을 가득 채워와 장바닥에 펼쳐놓은 이성명(69세) 할머니는 산에서 곧장 장으로 왔다고 한다.
      “가을볕이 좋아 산에 올라 갔구먼유. 요즘 산에 가면 밤이 지천에 떨어져 널렸어유.” 말하기에도 지친 듯 땅바닥에 주저앉아 주섬주섬 밤을 펼쳐놓는다. 이 씨 할머니는 “혼인날 폐백 때 시부모님이 치마폭에 던져준 밤을 먹어서인지 자식이 많아유.” 설핏 웃는 모습이 왠지 애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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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날이 기다려 지구먼유, 팔 게 없을 때는 산에 나가 팔릴만한 것을 만들어유. 차비만 벌면 되니께유.” 살아가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할머니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숭고하기까지 하다. 좌판에 펼쳐 놓은 물건은 몇천 원에 불과하지만 밤 한 톨도 허투루 하지 않고 귀하게 여긴다. 밤은 선조를 잊지 않는 나무라 하여 제사상에도 빠지지 않고, 폐백 올릴 때는 시부모가 아들을 많이 낳으라며 며느리 치마폭에 던져주는 풍습도 있다.

     

     

     

  • 한쪽에서는 구절초가 굴비처럼 엮어져 가을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약재상을 운영하는 박 씨(58세)는 “요즘 들어 여자들이 부인병에 좋다고 사러오기도 하고 향이 좋아 베갯속에 넣는다며 사가는 사람도 있네유”라며, 마디가 아홉이라는 구절초는 꽃과 줄기, 잎과 뿌리를 음력 9월 9일에 채취해야 약효가 가장 좋다고 한다. 장날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나온다는 권점선(82세) 할머니가 옆에서 듣고 있다 끼어든다. “냉장고가 없는 옛날에는 떡 시지 말라고 구절초 잎을 얹어 며칠씩 먹기도 했지유. 말려서 좀이 슬지 않도록 옷장에 넣어두기도 하고….” 상처가 났을 때 구절초 잎을 찧어 붙이면 곪지도 않았다고 한다. 약이 귀했던 옛날에는 산에서 나는 약초의 쓰임새가 컸을 것이다. 요즘 시골 장터에는 웰빙이라는 이름으로 검증되지 않은 잡초가 약초로 팔려나가 안타깝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흔한 풀이었는데, 올여름부터 약초로 팔리는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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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씨 할머니는 장날마다 나오기에 장사하는 할머니들을 거의 알고 있었다. 흰 저고리와 까만 치마에다 꽃고무신이며 목걸이, 귀걸이까지 온갖 멋을 잔뜩 부렸는데, 허리가 기역으로 굽어 손수레 없이는 걷기가 힘들다고 한다. 좌판에 들러 쉬면서 말참견으로 싸우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목소리로 이긴다는 권 씨 할머니가 지난 장날 열린 ‘생거진천문화축제’ 이야기를 꺼내자 초청된 가수 노래가 좋았느니 안좋았느니 할머니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중심이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 이야기가 나오는 TV 드라마에 열을 올리는 경우가 많다. 

  • ‘생거진천문화축제’는 진천군 대표 축제다. ‘전통과 현대의 어울림! 소통하는 생거진천’을 주제로 백곡천 둔치에서 열린다. 생거진천(生居鎭川)은 천혜의 자연환경과 비옥한 농토, 후덕한 인심에서 붙여진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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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곡천이 끝나는 길목에서 호박과 마늘을 갖고 나온 도리원의 신천호(78세) 할아버지와 장복순(75세) 할머니를 만났다. 노부부가 농사지어 가져온 것들을 사람 왕래가 뜸한 곳에 펼쳐 놓아 파장이 돼가는데도 마수도 못했다며 울상이다. 경운기에 싣고 나온 물건을 다시 주섬주섬 담는 모습을 차마 지켜볼 수 없어 발길을 돌렸다. 외국에서 가이드 하다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찾아 장돌뱅이로 나섰다는 성기원(38세) 씨는 여주 말린 것을 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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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의보감, 약초본까지 들먹이며 여주가 당뇨에 좋다는 설명을 늘어놓지만 물어만 보고 가버리기에 지칠 때도 있단다. 그러나 할머니들의 풋풋한 인심과 인정에 끌려 장이 서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갈 것이라고 한다. 처음 장에 왔을 때 느낌이 어땠느냐는 물음에 “할머니들 삶이 굉장히 치열하면서도 인정이 넘쳤어요. 그리고 농촌경제가 장에서 이루어진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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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8년도 진천장에서 만난 등에 북을 맨 아저씨의 난전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기억이 난다. 북쟁이 아저씨의 구수한 입담에 웃으며 박수들을 치는 바람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는데, 유행가를 한 가락 뽑아 가며, 배꼽을 거머쥐는 그의 입담에 사람들이 자리를 뜨지 못했다. “이불 하나에 단돈 만 원”하고 구성진 노래를 부르다가도, 호주머니를 뒤적이는 사람만 눈에 띄면 재빨리 이불을 보여주었다. 

    • 장이라는 공간은 사람과 사람의 다리가 되어, 윗마을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잊어버렸던 친척을 만나기도 한다. 홍시감 몇 개 갖고 나온 박 씨(81세) 할머니는 홍시만 한 붉은 무게로 앉아 “사람들 보고 싶어 나왔구먼유.”라고 말한다. 사람들 사이로 정(情)도 붉게 익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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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천장 외에 열리는 장은 거봉포도, 돌실사과, 꿀수박, 생거진천쌀, 진천장미, 그리고 덕산약주로 불리기도 하는 천년주가 나오는 덕산장(4일, 9일), 쌀, 이월장미, 이월관상어, 시설채소가 특산물로 나오는 이월장(1일, 6일), 관상어와 장미가 많은 광혜원장(3일, 8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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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충남 부여장

    넓은 공터에 난전 벌여놓고… “이것 좀 사 가봐유”


    1916년 개설…100년 전통 자랑
    버스터미널 가까워…보령서도 방문
    표고버섯·양송이버섯 곳곳에…
    할머니의 호객 행위 부담스럽지 않아
    시골 오일장에서 느낄 수 있는
    사람 사는 냄새가득

     

    어릴 적 추억을 일깨워준 한국식 바나나 ‘으름’(아래 오른쪽 사진), 장에 내다 팔려고 온 종일 텃밭을 일구고 나물을 캐는 시골 할 머니들의 삶을 만날 수 있다(아래 왼쪽 사진), 부여장은 대부분 의 장꾼들이 공터에 난전을 벌여놓아 난 장의 특성이 잘 드러난다.(위 사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부여장터의 풍경은 울긋불긋한 축제장같이 화려하다. 마치 들판 한쪽을 뚝 잘라온 듯 온갖 농산물들이 어지럽게 널렸지만 전혀 수선스럽지 않다. 장옥 밖에 펼쳐놓은 천막 주변에서 분주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장꾼들의 모습은 삶에서 느끼는 또 다른 경이로움이다. 그들이 펼쳐놓은 보따리 보따리에는 싱그러운 자연이 스며 있고, 농민들이 살아온 시간의 자취가 숨 쉬고 있다.

     부여장은 1916년 개설돼 100년 가까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끝자리가 5일과 10일이 되는 날이면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에서 장이 선다. 시외버스터미널이 지척에 있어 규암면·장암면·은산면·남면·구룡면·내산면·외산면 주민들은 물론이요, 인근 보령시 미산면에서도 장을 보러 온다.

     남면 송학리에서 요즘 제철인 밤을 갖고 온 장주연 할머니(79)는 밤을 펼쳐놓자마자 마수걸이를 했다며 신이 나 있다.

     “내가 나이보담 젊어 뵈지유? 고란사 약수 먹어서 그려유. 한바가지 먹을 때마다 3년은 젊어진대유.”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말에 할머니는 이렇게 말하며 밤 몇톨을 손에 쥐여준다. 나이와 상관없이 여자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머리가 백발인 김재연 할머니(78)도 마찬가지다. “나도 처녀 때는 예쁘다고 따라다닌 총각들이 많았어유. 꽃구경 가자며 추근댄 남정네도 있었당께. 딸도 나 닮아 그런지 모두들 이쁘다고 난리여유.”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신민정 할머니(70)가 한마디 쏘아댄다. “백발 머리를 하고 이쁘단 소리가 나온갑네유. 그 머리나 염색허든가. 듣기 민망스러워 죽겠네유. 콩이나 빨리 까유.” 김재연 할머니도 지지 않는다. “냅둬유. 내 입으로 하고 자픈 얘기 못하면 병 나구먼유.” 두 할머니가 토닥거리자 주위 사람들은 또 시작이라며 빙그레 웃는다. 두 할머니는 장날마다 이렇게 옥신각신하면서도 점심 먹을 때 맛있는 반찬이 있으면 서로 챙겨준다고 한다.

     부여장에서는 표고와 양송이를 많이 볼 수 있다. 부여에서 나는 표고와 양송이가 전국 생산량의 4분의 1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또 부여장은 고추와 마늘을 비롯해 생선·약초·잡화 등을 파는 장꾼들이 대부분 넓은 공터에 난전을 벌여놓고 자리 잡아 난장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부여장에 다닌 지 5년째라는 청양군 정산면의 우정숙 할머니(75)는 집에서 장까지 거리가 멀어 장날 하루 전에 집에서 나와 부여에 있는 동생 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온단다. 콩과 호박, 그리고 도시에서는 보기 어려운 으름을 펼쳐놓은 할머니는 “옛날에는 화장품이 귀했지유. 그때도 으름 속살로 손등을 문지르면 손이 고와졌어유” 하며 으름 자랑이 대단하다. 어렸을 적이 생각났다. 으름 알맹이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 씨앗을 뱉어내면 목으로 넘어가는 건 거의 없었지만 입안에 넣었을 때의 그 달콤함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어여 와봐. 이것 좀 사 가봐유.”

     텃밭에서 키운 파와 열무 몇단을 펴놓고 지나가는 사람을 불러대는 할머니의 애처로운 호객도 이곳에서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부여장은 늘 그런 모습으로 시골 오일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사람 사는 냄새를 질펀하게 풍겨낸다. 물론 상권이 인근 도시와 마트에 잠식되면서 예전과 많이 달라졌고, 장옥도 현대식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장에 내다 팔기 위해 온종일 나물을 캐고 텃밭을 일구는 할머니들의 삶은 여전히 자연에 더 가깝다. 그 자연의 삶이 시골 장터를 살리는 최고의 경쟁력이자 희망이라는 것을 오늘도 장터에서 배운다.

     부여장 외에 충남 일대에서 열리는 장은 딸기·토마토·오이로 유명한 홍산장(2·7일), 쌀과 오이가 많은 임천장(4·9일), 사과·배·오이가 많은 은산장(1·6일), 소 방목지인 외산목장이 있는 외산장이 있다. 외산장은 5·10일에서 4·9일로 장날이 바뀌었다.   


         

     

     

     

                                                                    

     

    (20)강원 동해 북평장

     

    갓 잡아온 해산물 가득한 어물전 활기 넘쳐

    역사 200년 넘은 강원도서 가장 큰 장
    오징어·가자미·문어·곰치 등‘눈길’
    갖가지 농산물도 노점에 널려




     

    아침 일찍부터 장을 여는 사람들로 부산스럽다. 열무는 금방 뽑았는지 흙이 채 마르지도 않아 함께 실려온 땅 냄새가 그대로 장바닥에 퍼진다. 인근 마을에서 농산물을 갖고 온 할머니들의 난장에는 가을 들판이 통째 이사 온 듯 없는 것이 없다.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빨간 고무통을 메운 곡식들이 새 주인이라도 기다리는 듯 소곤거린다.

     그 옆 좌판에는 추억의 옛날 사탕이 올라왔다. 많은 사탕 중 유난히 눈길을 끄는 돌사탕.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먼 길을 걸었던, 그래서 ‘십리사탕’이라고도 했던 그 아련한 추억의 돌사탕을 북평장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강원 동해시 북평동의 북평장은 사통팔달로 연결된 도로 덕분에 날로 번창하는 장이다. 전국에서 세번째로 크고 강원도에서는 가장 큰 장이며, 역사도 200년이 넘는다. 3일과 8일이 들어 있는 장날이면 주민들이 직접 심고 가꾼 농산물과 인근 항구에서 갓 잡아온 해산물이 800여개의 노점에 깔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장이기도 하다.

     북평장에서 가장 활기가 넘치는 곳은 아무래도 어물전이다. 가까운 동해안에서 잡혀온 오징어·가자미·곰치 등이 나란히 누워 시집갈 채비를 하고 있다. 엄마 손을 잡고 나온 꼬맹이가 수족관의 오징어를 지켜보는 모습도 정겹다. 북평동에서 장보러 나온 최씨 어르신(74)은 한시간이나 생선 좌판을 돌아다닌 끝에 못생겼어도 시원한 국물을 내는 곰치 한마리를 산다.

     쪽파를 도매상에 넘긴 박씨 할머니(78)는 살아 꿈틀거리는 문어를 살까 말까 망설인다. 그러자 고향이 경상도라는 어물전 주인 김씨(48)가 한마디 건넨다. “할매요, 문어 한마리 무마 전복이랑 꽃게, 가리비를 다 묵는 기나 마찬가지라요. 할매 보니 고향의 울 어무이 생각이 납니더.” 할머니는 김씨의 말재주에 못 이겼다는 듯 “주말에 자식들 오면 삶아주게 암놈으로 한마리 줘봐” 하신다. 김씨의 휘파람 소리에 춤추듯 기어다니는 문어의 꿈틀거림을 풍경처럼 바라본다. 바다의 카멜레온인 문어는 감정 변화나 주변 환경에 의해 몸 색깔을 바꾸기도 하고 자신의 몸을 숨기기 위해 먹물을 뿜어내는 등 지능이 가장 높은 연체동물이다.

     다래와 머루를 갖고 나온 최향자 할머니(74)는 37년째 이 장에서 생산자이자 판매자 역할을 하고 있다. 자연이 키워준 농산물은 할머니의 소중한 종잣돈이 되어 병원 다닐 때나 손자들 용돈 줄 때 요긴하게 쓰인다고 한다.

     그 옆에서 오이와 가지, 호박을 펼쳐놓고 부추를 다듬는 또티호완씨(30)는 5년 전 베트남에서 이 고장으로 시집왔단다. 올해로 3년째 북평장에 나오고 있다는데, 오이를 산 할머니에게 두개나 더 얹어주는 것을 보니 우리나라 덤 문화까지 잘 알고 있는 듯해 정겹다. 베트남의 재래시장은 어떠냐고 물었더니 유창한 한국말로 답한다.

     “베트남 시장도 여기와 비슷해요. 남자들은 놀고 여자들이 돈을 벌기 때문에 시장에 나와 장사하는 사람들도 모두 여잡니다.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보다 파는 사람이 더 많고요. 북평장에 와서 가장 놀란 것은 남자들이 장사하는 거예요.”

     열심히 살아가는 또티호완씨의 미소가 아름답다.

     호박과 열무를 가져온 전씨 할머니(74)는 자릿세 500원을 내고 한평 남짓한 공간에 보따리를 풀었다. 용돈을 만들려고 장 나들이한 지가 8년째에 접어든다고 한다. 할머니가 옆마을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젊은 아낙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들은 땅바닥에 봉지를 펼쳐놓는다. 묵호에서 온 김옥녀 할머니(76)는 32년째 물미역을 팔고 있단다. “어렸을 때 이름에 ‘옥’ 자가 들어가면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한평생 일에서 벗어나본 적이 없다”고 하면서도 할머니는 쉬지 않고 미역을 가르고 자르는 일을 반복한다.

     국밥집에서는 할아버지들이 장에서 만난 친구와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농사 걱정을 부려놓는 중이다. “도시로 나가야 사람 행세하는 세상은 이제 옛날이야기구먼. 자연이 제일이지.” 사계절 자연을 벗 삼아 땅에 의지해 살아온 어르신들의 삶이 오늘따라 더욱 소중해 보인다.

     

     

     

     

     

     


     

     

     

     

     

     

    (19)경북 고령장


    “햇볕에 말린 고추 때깔 좀 보소 , 톡 쏘는 매븐 맛이 쥑인다카이”

    조선시대 장기리에 형성됐다가
    구한말 대홍수 인해 지산리로 옮겨와
    인근 큰 장 없어 성주·합천서도 찾아
    건고추 등 농산물 흥정 ‘시끌벅적’
    쫄깃한 식감 ‘수구레국밥’ 별미




     손수레에 토란대를 가득 실은 이씨 할머니(73)가 희미한 장터 불빛 속으로 들어온다. 새벽 3시 무렵 전등이 일제히 켜지자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한다. 경운기 가득 실려 있던 고추 포대를 내려놓자 도매상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포대를 열어젖히고 맛을 본다. 5시가 지나자 고추를 비롯해 고구마·호박·땅콩 등으로 장터는 붉고 푸른 밭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습이 된다. 농민들의 땀으로 만들어진 풍족한 농산물들이 사람들을 불러 모으며 새벽을 깨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햇볕에 말린 내 고추 때깔 좀 보소. 하루에도 열일곱번이나 변하는 기 고추 아인기요. 혀에 닿으면 달달하고 톡 쏘는 매븐(매운) 맛이 쥑인다카이.”

     경운기 가득 고추를 싣고 나온 심씨 할아버지(82)의 자랑이다. 저울 눈금이 집에서 단 것과 다르다며 흥정하는 할아버지 목소리가 장바닥을 흥건히 적신다.

     대가야의 숨결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경북 고령은 곳곳에 유물과 유적이 남아 있는 유서 깊은 고장이다. 또 질 좋은 고령토가 많아 우리나라 최초로 가야토기를 재현해낸 곳이기도 하다.

     조선 시대에 고령읍 장기리에 형성된 고령장은 구한말 대홍수로 인해 지금의 자리인 고령읍 지산리로 옮겨왔다. 4일과 9일이 들어 있는 날이면 장이 열리는데 인근에 큰 장이 없어 장날이면 인접한 경북 성주, 대구 달성, 경남 합천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온다. 우곡수박·쌍림딸기·개진감자·성산참외·덕곡토마토 같은 고령 지방 특산품이 장터 가득 펼쳐지기 때문이다. 향부자와 천궁 등의 약용작물, 은은하고 순한 민속주인 ‘국청’, 고령읍 본관리의 향토주인 ‘본관동스무주(本館洞二十日酒)’도 유명하다.

     운수면에서 토란대와 호박을 갖고 나온 김씨(65)와 부인은 달려드는 중간상들을 물리치고 “비료값이라도 건지려면 직접 팔 수밖에 없다”며 자리를 잡고는 한마디 건넨다. “운수벼루 압니꺼? 대평리에서 캔 원석으로 만드는데, 먹도 잘 갈리고 마르지도 않고 글 쓰마(쓰면) 붓도 잘 나가는…. 내가 거기 산다 아입니꺼.” 토란대 팔 생각보다는 마을 자랑에 열을 올리는 김씨의 웃음소리에 논에서 벼 익어가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장터에서 3대에 걸쳐 55년 동안 고령대장간을 이어오는 이씨 부자도 만나볼 수 있었다. “여가 어릴 때부터 울 아부지 따라 일한 데 아이가.” 반세기 동안 일해온 대장간을 집안의 성전으로 생각하는 이상철씨(70)는 지금도 새벽 3시30분이면 어김없이 불을 지펴 하루를 시작한다. 이씨는 “쇠를 다루는 데는 담금질이 제일 중요해. 쪼매마 한눈 팔면 고마 못 쓴다카이” 하며 아들 이준희씨(40)가 구슬땀을 흘리며 낫 두드리는 모습을 찬찬히 내려다본다.

     고령장에서 맛볼 수 있는 별미 중 하나가 수구레(소의 가죽 안쪽의 쫄깃한 아교질 부위)를 넣고 끓인 수구레국밥. 이 고장의 옛 정취를 느낄 수 있어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가을 수확철이 되면 장바닥은 한해 동안 몸과 마음을 바쳐 가꾸고 거둔 농산물 흥정하는 소리로 시끌벅적하다. 지천으로 널린 고추 사이로 만원짜리 지폐가 흔한 종이처럼 오간다. “고추 시세가 좋지 않지만 빌린 농자금 때문에 조금이라도 건지려고 나왔는데 전국에서 고령 고추값이 제일 싸서 걱정”이라는 게 장씨 할아버지(78)의 하소연이다.

     주전자에 미꾸라지를 넣어온 김씨 할머니(87)는 가지와 오이·논우렁·토란으로 좌판을 꾸몄다. 40년째 고령장에 나온다는 할머니가 마수걸이로 미꾸라지 만원어치를 팔았다. 하얀 이가 귀에 걸릴 듯 좋아하던 할머니는 고쟁이 속에서 복주머니를 꺼내 돈을 넣더니 다시 고무줄로 묶는다. 호박 한덩이와 콩 두어되 가지고 사람 만나는 재미로 장에 마실 나오던 옛날 할머니들의 모습을 점점 보기 어렵게 된 게 요즘 시골 장터란 생각에 마음이 조금 쓸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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