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정영신의 장터순례⑻전남 영암 독천장 (2013.4.15)

온갖 씨앗 펼쳐놓은 좌판 둘러앉아 ‘두런두런’

원래 신북면 용산리에 서던 장
풍수지리설 따라 옮겨왔다고…
터미널 앞 좁은 골목길 따라가면
어물전·과일전 등 눈에 들어와
인근엔 영암장·신북장·시종장 등도
 

 

“독천장은 쩌그 용산 마실서 독천으로 옮겼다고 합디다. 옛날이야기제. 거 뭐시냐 풍수지린가 뭔가 해쌌드만 음기가 세다고 합디여. 일가들끼리 응큼한 일이 자주 일어나 장을 이리 옮겼제.”
 “어째 그 이야기는 뺀단가이. 우시장을 맹글어야 마실이 좋아진다고 하천에다 우시장을 열었었제. 소시장 없어징게 지금은 거기다 차들 세우고 그라제.”
 

 

전남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 독천장에서 만난 장씨 할머니와 김씨 할머니가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가 한창이다.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원래 신북면 용산리에 서던 장을 이곳 독천리로 옮기게 된 사연이다.

 지금 장터의 북쪽이 명당이라 어느 집안에서 거기에 묘를 썼는데, 과연 자손이 번창했으나 친족끼리 간통이 잦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묏자리를 옮길 수는 없어 용산리에 서던 장을 묘지 앞으로 옮겼다는 것. 남자들이 많이 모이는 장터를 열면 음기를 가라앉힐 수 있다는 풍수지리설을 따른 것이다. 이런 전설이나, 마을의 평화를 위해 우시장을 만들었다는 내력이나, 모두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 살아가는 이야기다.

 입대를 앞둔 손자에게 먹이려고 장에 나와 기러기오리(사향오리)를 사 가는 박안임 할머니(76) 눈가에 봄 햇살이 지나간다. “요것이 오리보다 맛나다고 허요. 그래서 샀는디 손지가 먹을지 모르겄소. 시상이 좋아져 군대가 나아졌다고는 헌디, 그래도 새끼 보낼려고 허니 맴이 짠허요.”

 봄에는 씨앗을 파는 곳이 많아진다. 온갖 종류의 씨앗을 펼쳐 놓은 이기림 할머니(78) 좌판 옆으로 인근에서 놀러온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농사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씨 할머니는 스물두살 때부터 보따리를 이고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면서 장사를 했다. “새끼들 배꼬리나 채워 주려고 시작했는디, 시방은 적게 먹어야 오래 산다고 티비에서 그럽디다. 시상 참 많이도 변해뿌렸제.” 할머니들 옆에 앉아 이야기를 듣다 보면 동문서답이 많다. 듣는 사람 없는 혼잣말도 잘한다. 상추씨 1000원어치를 산 구씨 할머니(73)도 마찬가지다. “땅은 보물 창고여. 콩농사해서 가을이면 솔찬히 돈을 만진당게. 똑같은 밭뙈기에서도 쑥쑥 자란 놈이 이쁘제.” 구씨 할머니 밭에는 오늘 장터에서 나눈 이야기들이 들어갈 것이다. 바람 소리, 풀 소리, 물 소리도 비밀이 되어 밭 속으로 들어간다는 게 구씨 할머니 이야기다.

 웅장한 월출산과 널따란 들녘이 수채화처럼 펼쳐진 영암은 2200여년의 역사를 지닌 고장이다. 일본에 천자문과 백제 문화를 전해준 왕인 박사, 풍수지리의 대가인 도선 국사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좋은 일은 서로 권하고 어려운 일은 서로 돕는 구림마을의 대동계는 500년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다. 새로운 계원을 받아들이려면 만장일치가 되어야 하기에 계원의 자식이면 아무것도 묻지 않고 혼사를 치렀다고 할 만큼 전통 있는 모임이다.

 이 유서 깊은 고장에서, 4일과 9일이 드는 날이면 독천장이 선다. 독천터미널 앞으로 좁은 골목길을 따라가면 어물전과 과일전, 농기구 파는 곳이 눈에 들어온다. 삽을 사서 둘러메고 가는 안정일씨(73)는 옛날 장터가 그리운 표정이다. “뻘이 살아나면 영암이 훨씬 좋아지제. 옛날 소시장 있을 때는 씨름판도 열고 각설이패들 장단에 춤도 추고, 볼거리가 참 많았는디…. 그때 생각하면 시방 장은 장도 아니여.” 열여덟살 때부터 장에서 농기구를 판다는 박일수씨(71)가 한마디 한다. “아따, 아재! 지금은 독천낙지 먹으러 사방 군데서 옵디여. 시류에 맞춰 살아야제 어쩌겠소. 아재는 뻘밭은 잊어뿌리고 농사나 잘 짓시오.”

 영암호가 생기기 전에는 낙지의 주산지가 독천 옆에 있는 미암마을이었다. 영암 들녘에서 월출산을 올려다보면 누워 있어야 할 산이 꼿꼿하게 서 있다.

 영암에는 독천장 외에도 달맞이쌀과 월출산토마토, 황토고구마로 유명한 영암장(5·10일), 장수풍뎅이 등 곤충의 삶을 살펴볼 수 있는 신북장(3·8일), 달맞이 풍경이 좋은 시종장(2·7일), 왕인박사축제가 열리는 구림장(2·7일)이 있다.

전국 은행연합회 웹진 '금융' 4월호 연재 (2013.4.2)

 

 

 

 

 

사진가 정영신의 장터순례(7) 강원 정선장 (2013.4.1)

 

 마수걸이 기분 좋아  ‘정선아리랑’ 한가락 뽑고…

 

인구감소로 쇠퇴하다가 1999년 관광열차 운행으로 부흥
휴일엔 서울 사람들로 ‘북적’
산나물 등 특산물, 곤드레밥 등

음식 입소문 타고 전국으로…

 

 

 

“첫 손님이 마이 사 오늘 장사는 잘했드래요.”
 북평면 나전리에서 왔다는 이옥분 할머니(70)가 마수걸이 턱으로 <정선아리랑>을 한가락 뽑는다.
 “정선읍내 물레방아는 물살을 안고 비빙글 배뱅글 잘도 돌아가는데 우리 집에 저 멍텅구리는 나를 안고 돌 줄을 왜 모르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 주게.”

 200여년 전, 정선읍에 살던 스무살 처녀가 여덟살밖에 되지 않은 소년과 결혼했다. 새댁은 혼인하고 2년이 지나도록 부부의 정을 알지 못해 조양강에 빠져 죽으려고 했다. 그러다 눈앞에 보이는 물레방아가 물살을 안고 빙글빙글 도는 것을 보고 마음을 고쳐먹으며 한 많은 아리랑 가락을 쏟아 냈다. 한민족의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어 온 <정선아리랑>은 ‘신이 부르는 소리’로 평가받고 있지만, 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손에서 일이 떠나지 않던 여인네들의 한이 만들어 낸 소리다.

 “초가지붕이던 정선장에 강냉이 가지고 댕기미 장사했드래요. 반평생을 산과 정선장에서 보낸 기래요.” ‘신토불이증’을 목에 걸고 농산물을 팔고 있는 이씨 할머니는 열아홉살에 시집와서 시작한 장사를 지금도 하고 있다. “중국산을 팔다 적발되면 벌금도 많이 내지만 이 자리까지 뺏겨. 군에서 장날마다 조사 나와 농사진 것만 팔고 있드래요.” 정선의 두가지 자랑 중 하나가 산이고 하나는 정선장이라는 이씨 할머니의 말이다.

 자연과 사람과 문화가 어우러진 정선장(강원 정선군 정선읍 봉양리)은 2일과 7일이 들어간 날이면 정선농협과 봉양파출소 앞에 선다. 봉양파출소 앞에서 새총과 짚신 등을 팔고 있는 지영만 할아버지(76)는 정선장에 나온 지 4년째다.

 “무좀 있으면 이 짚신 한번 신어 보드래요.”
 한 젊은이가 짚신 더미를 뒤적거리다 장 안으로 들어간다. 짚신 위로 찾아든 한낮의 봄볕이 수직으로 서 있다.
 정선장은 1966년에 개설됐다. 인구 감소로 인해 쇠퇴하던 장이 전기를 맞은 것은 1999년 3월17일 ‘정선오일장 관광열차’가 운행되기 시작하면서다. 정선장이 지역 경제를 일으키는 인기 관광상품이 된 것이다. 지금도 휴일이면 관광열차를 타고 온 서울 사람들이 정선장의 약초를 다 사 갈 만큼 인산인해를 이룬다. 정선읍 귤암리에서 온 최영규씨(67)는 콩 두어말을 지고 구불구불한 고갯길 삼십리를 넘어 병방치를 지나 정선장에 다녔던 게 엊그제 같다고 한다.

 “옛날엔 빈 땅만 있으면 괭이로 파서 스슥(조)을 심는 사람들이 많았드래요. 또 몰래 나무하려고 한밤중에 통행금지 사이렌 소리에 맞춰 나무를 베었드래요.” 최씨는 시집가는 누나에게 주려고 30리 길을 걸어 꽃신을 사 온 것도 장날이었다고 말한다. 평범한 우리 이웃들의 근력과 근성이 역사를 만들어 왔다는 것을, 최씨의 미소와 장터의 활기에서 배운다.

 화전에 의존하던 30~40년 전까지만 해도 정선에서는 감자와 옥수수, 메밀이 주된 양식이었다. 어려운 시절 메밀 반죽으로 해 먹던 게 콧등치기국수인데, 지금은 이것이 지역 경제에 일조하는 먹거리가 됐다. 정선의 자랑인 산나물·황기·더덕 같은 특산물과 전통 음식인 곤드레밥·메밀전병·수수부꾸미 등도 풋풋한 산골의 정취를 담은 채 입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퍼지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정선에서 바라보는 하늘이란 마치 깊은 우물에 비치는 하늘만큼이나 좁다’고 기록돼 있다. 하지만 송천과 골지천이 합류하는 여량면의 아우라지 물결은 멀리 한양까지 닿았다. 물끼리 몸을 비비며 만나듯, 이 나루에서 뗏목을 타던 사공과 나물 캐던 처녀가 주고받은 짙은 그리움 또한 <정선아리랑>에 흠씬 배어 있다.

 정선에는 정선장 외에도 곰취·민물고기·삼베·아우라지막걸리로 유명한 여량장(1·6일), 곤드레·고추·마가 나오는 증산장(4·9일), 고추·황기·마늘·옥수수가 많은 임계장(5·10일)이 있다.

사진가 정영신의 장터순례(6) 충남 천안 아우내장터 (2013.3.15)

 

 

먹으면 애국시민 되는 된장 팔아유~”

 

1918년 개설…‘만세운동’ 유명
60년째 장터 지킨 ‘떡할머니’
손님 옷차림만 봐도 대소사 훤해
인근 대로변 ‘병천순대’ 식당엔
맛보려는 사람들 길게 늘어서

 “애국 시민 여러분! 아우내장터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던 유관순 누나가 이 된장 먹고 살았어유. 이 된장 먹으면 애국 시민 되는 거예유.”

 10년째 순된장(간장을 빼지 않은 된장)을 팔고 있는 홍성혁씨(48)가 시장이 쩌렁쩌렁하게 울리도록 소리치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된장을 맛보인다. 매년 3월1일이면 태극기를 걸고 장사한다는 홍씨는 “이렇게라도 해야 아우내장터를 찾는 사람들에게 유관순 누나를 알리지유” 하며 질항아리에서 된장을 푼다.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병천리의 아우내장터는 유관순 열사가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독립 만세를 외친 역사 깊은 곳이다. 1919년 3월1일 서울과 평양 등 전국 6개 도시에서 동시에 독립 만세 운동이 시작됐다. 한달 후 장날이던 4월1일(음력 3월1일) 아우내장터에서 터져 나온 독립 만세 함성은 비폭력 만세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기폭제가 되었다. 전 국민의 성금에 힘입어 1987년 천안시목천읍에 독립기념관이 문을 열면서, 유관순 열사의 사당을 등지고 선 아우내장터에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렇듯 자랑스러운 역사를 간직한 아우내장터를 찾았다. 독립의 열기로 뜨거웠을 94년 전의 장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둘러보니, 바람에 펄럭이는 장꾼들의 천막이 흡사 그때의 태극기 물결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우내장터는 1918년에 개설됐다. 지금은 1일과 6일이면 아우내슈퍼를 기점으로 난장이 펼쳐진다. 투박한 질항아리 같은 소박함이 묻어나는 좌판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이 오늘만큼은 애국자로 보인다.

 서문예 할머니(87)는 60년째 아우내장터를 지키고 있는 장꾼이다. 지나가는 사람들 옷차림만 봐도 ‘내일 저 집 잔치하겠구나’ ‘저 집은 오늘 제삿날이구나’ 등 주변의 대소사가 훤하단다. 할머니는 손수 만든 떡이 맛있기로 유명해 ‘떡할머니’란 별명으로 불리지만, 손맛이 담긴 메주도 함께 팔아왔다. 그런데 이번엔 좌판에 메주가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 작년에 잊어버렸던 메주는 찾으셨어요?”하고 물었더니 고개를 흔들면서 잠자코 떡을 썬다.

 지난해 왔을 때 할머니 좌판에서 한판 소동이 일어났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메주가 사라진 것이다. 장터를 돌다 보면 연세 많은 노인을 속이는 사람이 간혹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들은 여전히 덤도 듬뿍 얹어주고, 손수 농사 지은 것들에 대한 자긍심도 대단하다.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않기 위해 장사한다고 하지만, 다들 돈맛보다는 사람 사귀는 맛으로 장에 나오는 분들이다.

 장터 부근 대로변에서는 병천순대를 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선 풍경을볼 수 있다. 아우내장터의 몇몇 식당에서 팔던 순대가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지더니, 1998년에는 천안의 특색음식으로 지정됐고 지금은 순대골목을 이루었다.

줄지은 장꾼들의 파라솔 행렬 틈으로 음악 테입 장수가 틀어놓은 스피커에서 이미자의 '동백아가씨'가 구성지게 울려퍼진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라는 이미자의 동백아가씨가 흘러나오고 있다. 좌판 앞에는 장을 다본 할머니가 테이프를 들여다보고 있다. 농촌에서는 마당이나 하우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유행가라도 틀어놓고 아는 노래를 따라 부르다 보면 일이 즐거워진다는 할머니는 좋아하는 노래를 한동안 고르고 있다. 땅끝 1cm에서부터 올라온다는 봄 햇살 한줌이 할머니등 뒤의 보따리 속으로 들어가 할머니를 따라간다. 사람의 온기가 있기에 장터가 산다는 홍씨의 질박한 항아리 속에는 우리조상들의 지혜가 살아 있고, 생생한 우리네 삶이 묻어있다.

천안에서 열리는 장은 병천 순대로 유명한 아우내장(1,6일), 거봉포도로 유명해 ‘거봉포도축제’가 열리는 입장장(4,9일), 취나물이 유명한 성환장(1,6일)이 있다.

광주은행 사보인 "향기있는 나눔" 3월호에 게재된 정영신의 글과 사진입니다.

- "예술로 만나는 남도" 오일장 기행 -은 12월까지 연재됩니다.

 

 

 

 

 

 

사진가 정영신의 장터순례(5)경기 안성장 (2013.3.1)

그 많던 보부상·놋그릇 자취 감췄지만…

대이어 정직 지키는 채소장수, 오백원짜리 무 한개에도 숨은 이야깃거리 한보따리
민초들 소통하는 Y자형 장터, 전국 3대장 명성 옛말이라 해도 토박이 발길은 오늘도 여전

 

 

어린 시절, 명절이 다가오면 마당 한쪽에 멍석을 깔아놓고 앉아 짚에 기왓가루를 묻혀 놋그릇(유기)을 닦는 아낙네들의 입은 쉴 사이가 없었다. 여인네들이 나누던 이야기가 장터에선 웃음보따리가 되어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았다. 동산댁 딸내미 궁합 본 이야기, 우무치댁 영감이 윗마을 아무개를 짝사랑했었다는 케케묵은 이야기….

 아낙들이 질펀한 소문을 묻혀 가며 빛나게 닦던 놋그릇들은 이곳 안성장에서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안성장은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대구장·전주장과 함께 3대장으로 불릴 만큼 규모가 컸다. 조선 후기 박지원이 쓴 소설 <허생전>에도 남산골 서생 허생이 과일을 매점매석해 안성장에서 큰돈을 벌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구한말까지도 전국에서 보부상들이 몰려오던 곳이 안성장이다. 그러고도 오랫동안 전국 최대의 놋그릇 거래시장으로 이름 높았다. 그러나 요즘 안성장에서는 놋그릇을 사고파는 풍경을 볼 수 없다. 장터를 주름잡던 보부상들의 역할을 지금은 장돌뱅이 150여명이 대신한다.

 세월 따라 장터의 모습도 바뀌고 규모도 줄었지만, 여전히 이 지역 농촌 사람들은 장날이면 안성장으로 모여든다.

 안성장은 2일과 7일이 드는 날, 경기 안성시 서인동 안성중앙시장 주변에 ‘Y’자 형태로 들어선다. 평상시에는 자동차가 다니는 길이지만 장날만큼은 장꾼들에게 개방된다.

 얼마 전 정월대보름을 앞두고 안성장에 갔다. 장터에는 호두와 땅콩 같은 각종 부럼들이 좌판 가득 펼쳐져 있었다. 정월대보름은 예부터 마을이 함께 치르는 명절이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묵나물과 오곡밥을 나누어 먹었다. 대보름 하면 둥근달이요, 이 달은 우리네 농경 문화와 떼려야 뗄 수가 없다.

 “달과 땅은 여자와 같다”는 정예숙 할머니(82)는 올해로 32년째 안성장에서 채소를 팔고 있다. 정씨 할머니는 “어쩌다 장에서 커서 장에서 이렇게 늙어가는 것을 보면 사람의 일이란 뜻대로 안 되나 보다” 하며 웃는다. 태어나고 죽는 것도 내 의지가 아니요, 처음부터 끝까지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은 없다는 것을 장터 바닥에서 배웠다는 것이다.

 집에 돈 떨어지면 간간이 엄마를 찾아와 도와주던 것이 지금은 살아가는 일이 되어 버렸다는 할머니는 아직까지도 낭자머리에 비녀를 꽂았다. 할머니의 친정어머니는 “장사는 정직해야 오래간다”는 말씀을 자주 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장터지만 일부러 먼 길을 걸어 찾는 단골이 다 따로 있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장터에서 만나는 한사람 한사람에게는 모두 저마다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어떤 비밀이 있기에 입을 꽁꽁 다물어 버린 사람이 있는가 하면, 쉴 틈 없이 말해 속내까지 훤하게 보여 주는 사람도 있다. 이런 저런 사람들이 오래도록 얼굴 맞대고 어울려 가꾸어온 장터이기에, 이곳에 있으면 돈의 흐름보다 더 귀한 것이 사람 사이의 소통임을 알게 된다. 장에서는 오백원 하는 무 하나를 사고팔 때도 얼굴과 얼굴을 마주봐야 한다. 그러면서 서로의 정이 오간다.

 장터에서는 언제나 우리네 어머니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자식들 배를 곯지 않게 하기 위해 어둑한 새벽부터 수십리 황토길을 걸어 장터에 나와 보따리를 펼쳤던 어머니들, 그들의 순수한 원형을 지금도 만날 수 있다.

 자리도 없이 도로변에 쪼그리고 앉아 메주와 보름나물을 펼쳐 놓고 파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임씨 할머니(87)는 직접 쒔다는 메주 세개에, 손수 농사지은 무 몇 개와 말린 가지나물 보따리를 펼쳐 놓고 있었다.

 임씨 할머니가 파는 말린 가지나물 속에는 지난 여름과 가을, 겨울이 오롯이 들어 있다. 할머니는 “봄 되면 꼭 한번 더 와” 한다. 봄나물 뜯을 때를 기다린다는 할머니의 이마 주름 위로 겨울 끝자락 햇살이 살금살금 퍼진다.

 터미널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보따리 가득 장터 이야기를 담아 집으로 가는 사람들이다. 집 앞까지 마중 나온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보따리에 눈독을 들이고, 이윽고 안방에서는 보따리 풀자 쏟아져 나오는 온갖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울 장면이 눈에 선하다.

사진가 정영신의 장터순례(4) 충남 예산장 (2013.2.15)

“많이 줄게, 들여 가유” 봉지마다 푸성귀가 가득

소고기국밥 한그릇 놓고
막걸리잔을 부딪히는 할아버지
연탄화덕에 얹힌 찌개와 냄비밥을
나누어 먹는 아낙네들
추억을 찾아
밥 한술의 행복을 찾아
오일마다 장터는 북적북적

 “쉬는 날유? 비 오는 날은 쉬지유.”
예산장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김성근씨(63)는 3대째 국수를 만들고 있다. 햇살과 바람에 몸을 내맡긴 뽀얀 국수 가락의 하늘거리는 춤사위가 발길을 붙잡는다. 국수를 만드는 사람에게서도, 국수를 만드는 기계에서도 어쩔 수 없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다.

 1926년 이래로 매달 5일과 10일, 충남 예산군 예산읍 예산리에서는 예산장이 선다. 장터는 쌍송백이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한눈에 보인다. 평소에는 주차장으로 쓰이다가 장날이면 장꾼들이 펼쳐 놓은 파라솔이 설치미술이 되어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상인들은 저마다 자리를 차지하고 전을 벌이는데, 별다른 장옥 없이 난장으로 펼쳐져 장터다운 맛이 한층 살아 있다.

 보따리만 풀면 그 자리가 좌판이 되고 할머니들의 자리가 된다. 가을에 수확한 콩과 말린 나물, 우거지 같은 것들이 할머니들이 보자기를 풀자 쏟아져 나온다. 계절 따라 파라솔의 모습도 달라진다. 겨울에는 비스듬히 누워 할머니들 등이 시리지 않게 바람막이가 되어 주고, 여름에는 수직으로 서서 햇살을 따라가며 그늘을 만들어 준다. 보잘것없는 것들, 여린 것들, 귀한 것들, 별의별 것들이 장날에는 귀천 없이 어울린다. 이런 친근감 덕분에 장터는 한겨울이지만 훈훈하다.

 사람들이 모이듯이 물건도 흐르고 흘러 모이는 곳이 장터다. 할머니들이 펼쳐 놓은 봉지 봉지마다 구수한 흙 냄새가 짱짱한 햇빛에 농익어 물씬 풍겨 온다.
“이 물건 안 사 가면 후회해유. 많이 줄게, 들여 가유.”
무청을 펼쳐 놓은 허씨 할머니(78)는 추억을 팔러 나온 사람인 양 지나가는 사람 구경에 더 열을 올리고 있다. 어디서 왔느냐고 여쭈니 “넓고 깊은 데서 왔지유” 하며 넌지시 웃는 표정이 마치 고향 마을 느티나무를 보는 듯 정겹다.

 예산장은 소고기국밥집으로도 유명하다. 장날과 그 전날에만 문을 연다. 장날이면 친구들 만나러 장에 온다는 읍내의 박기동 할아버지(74)와 이희덕 할아버지(70)가 국밥집에서 막걸리 잔을 부딪히며 어렸을 적 추억에 푹 빠져 있다. 이희덕 할아버지는 큰 마트가 생긴 뒤로 이렇게 자연스레 만나는 친구들이 줄어들어 안타깝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긴 세월의 이야기들이 남아 있는 장터에 사람들이 많이 와야 할 텐데….”
말끝을 흐린 두 노인의 얼굴에는 발그스레하게 취기가 올랐다.

 장을 한바퀴 휘휘 도는 중에 외진 구석에 전을 편 할머니를 만났다. 손님이 오건 말건, 할머니는 말 안 듣는 손주 다루듯 말라빠진 무청을 다듬느라 정신이 없고, 그 옆에선 콩과 무말랭이가 햇빛에 졸고 있다.

 한쪽에서는 연탄 화덕에 얹힌 김치찌개와 냄비에 담긴 밥을 그대로 나누어 먹는 아낙네들의 모습이 들어온다. 밥 한술에 이토록 찬란한 행복이 숨어 있다는 것은 장꾼만이 아는 비밀이다. “밥이 인생”이라는 것이 생선 장수 박씨 아주머니의 말이다.

 장터에 가면 곡물을 담은 깡통들이 나란히 줄지어 서 있는 풍경을 종종 보게 된다. 요즘에는 호루라기 소리가 “뻥이요!”를 대신하지만, 엄마가 아이의 귀를 막아 주고 어떤 아주머니는 손가락을 귀에 찌른 채 찡그리고 선 모습들이 재미있다. 이 풍경 앞에서 오랜 추억에 젖어들며 사람 사는 맛을 진하게 느낀다.

 예산장의 터줏대감인 삽교읍의 이희천 할아버지(76)는 62년 동안 시계를 고치고 있다. 뻥튀기 장수 앞에 가판대를 차려 놓고 열네살 때부터 지금까지 고장 난 시계를 수리한다. 할아버지는 “62년 단골도 있다”며 자랑이 대단하다. 수십년 같이한 손때 묻은 공구들이 항상 옆에 있어야 마음이 든든하고 잠자리도 편하다고 한다.

 예산 땅의 장이 어디 이뿐일까. 2·7일에는 사과가 유명한 삽교장이, 3·8일에는 고덕장과 역전장과 광시장이, 4·9일에는 마늘과 생강으로 이름 높은 덕산장이 열린다. 이들 장터 어딜 가나 예산의 푸근한 인심과 질 좋은 특산물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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