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돌뱅이 사진가 정영신씨가 10여년 전에 전라도 영암장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저울에 걸린 물건이 무엇일까요? 추가 자리한 위치로 보아 좀 무게가 있는 것 같습니다.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사진입니다.

 

 

 

 

장에서 만난 넉넉함, 정영신의 장터 중<저울을 든 아낙>

 

물건을 달고 잰 저울이 아닌 정성과 인심을 매달던 추정터에는 많은 전포가 있다. 예컨데 쌀을 파는 싸전에서도 쌀 됫박을 잡고 쌀을 퍼 담되 나무잣대로 깍아내리지 않고 손바닥으로 쓸고 한줌 더 덤을 넣어 야박하지 않게 정을 나눈 곳이 바로 우리네 장터였다. 우리는 장터를 그저 물건을 주고 받고 내다파는 장소라는 생각보다 풍성함에 대한 기억과 함께 5일을 기다린 모두의 생산적 장소로 추억한다. 제각기 3일, 5일장을 경험 한 사람은 그곳에서의 훈훈한 인간미를 한 두 개씩 간직할 것이다.

정영신이 지금으로부터 23년 전 찍은 이 <저울을 든 아낙>은 동양의 천칭저울의 원형을 보여준다. 그것은 불과 30년 전까지 우리가 써온 비정형의 과학을 상징하는 것이다. 가로막대의 양끝에 저울을 달아, 서양과 달리 우수(右手)엔 달 물건을, 좌수에는 일정한 무게의 추를 놓고 수평을 측정하여 무게를 재는 저울로 천평칭(天平秤) 혹은 천칭으로 부른 것이다. 그 역사가 2233년 전 진시황의 도량형 통일로부터 정영신의 사진에 이르기까지 전해져온 것이 포착된 찰나이다.

기원전 2500년경 이집트에서 시작된 저울사용은 서양의 법정신을 상징하는 그리스여신 '디케(Dike)'이며 정의이다. 눈을 가린 채 우측엔 양팔 저울을, 좌수에게는 법전을 들고 규칙과 기준, 그리고 형평을 따졌던 여성은 근엄하거나 시장에서 가까이 하기 힘든 도시깍쟁이 같다.

지렛대의 원리를 응용한 저울로 매달림저울 혹은 수평저울로 불린 천칭(Weighing scale)은 시간이 흐르며 기계식·전자식의 정밀함으로 변해갔다. 요즘 바늘 하나의 무게까지 재는 기능에 비하여 어눌하기 짝이 없는 정영신의 <저울을 든 아낙>은 상당한 가치에서 접근이 가능하다.

오른손으로 팔아야 하는 물건을 들고 입술을 앙다물며 아마도 숨도 쉬지 않은 채 저울질에 매진하였을 아낙의 억척과 가난함이 동시에 묻어 나오는 것이다. 이미 저 노파의 마음엔 기준 가격은 정해져 있었으며 얼마에 팔것인지 저 찰나의 순간에 가격을 내 뱉었을 것이다.

좌와 우로 기울기전에는 사는자나 파는자나 마음을 졸이다가 막상 수평에서 불러지는 가격은 아낙의 심성이다.

저 저울은 사실 지구의 무게를 잴때 사용한 것으로 애매함과 정확함의 기로에 선 측정기구이다.

요소비료 포대에 닮겼으니 먹는 것이나 그리 값나가는 물건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미 시장주변은 하오로 기울어 내다 파는 속도가 나기 시작한 터였을 것이다. 분주히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오가는 이들은 들리지 않는 시장의 시끌벅적한 소리까지 채색하고 있다.

이 사진이 주는 힘은 이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게 만들고 기억 속으로 스멀스멀 안내하는 묘한 힘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리얼리티다. 시쳇말로 요즘 유행하는 시장바닥의 ‘레알인생’을 비춘 것이다.

그러면서 찰나를 기록한 사진의 기본정신이 배어있으며 거친 얼굴에 드러난 아낙의 순박함이 묻어 있다. 정확한 가격을 불렀으되 그 가격을 다 줄리 만무하였던 시절에는 시장 속에서 경험하고 체득한 인정이라는 무게와 저울에 더 의지하였을 것이므로 더욱 특이한 사진이 되는 것이다.

정영신의 시간자르기<장터>는 그런 면에서 장소의 공간성에서 공감을, 시간성과 우리네 심성에서 동감을 불러 일으킨다. 풍각쟁이나 약장수의 뱀쇼나 불쇼는 물론, 차력사도 동원되는 그런 시간으로 타임머신을 몰고 간다. 그것은 아련한 추억이며 동심의 눈을 뜰 때 더 자세히 보인다.

 

글 / 강익모 (문화평론가)

BC카드에서 발행하는 "비타민씨 BC" 6월호 스페셜 테마에
정영신씨의 순창 장터 이야기가 첫페이지를 장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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