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2.1

사진가 정영신의 장터순례(2) 경북 경주 건천장 (2013.1.15)

-짐보따리 늘때마다 이야기보따리도 술술~

슬레이트 지붕·함석 미닫이문…
전통시장의 맛과 멋 고스란히
닷새마다 한번씩 침묵을 깨우는
할머니들의 생기가 넘치는 곳

포토뉴스

 

 

 

“아지매, 무슨 소리 합니꺼. 오늘 새벽에 바로 가져온 거라예. 마, 사기 싫으면 사지 마소.”
채소 파는 박씨 아저씨가 흥분을 한다.
“아, 그기 아이고, 함 물어 보는 거 아입니꺼. 물어 보지도 못하는기요.”
물건을 사려는 손씨 아주머니도 지지 않고 대꾸한다. 한푼이라도 싸게 사려고 물건에 트집을 잡아 보려다 들킨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기어들어간다.
“좀 깎아 주이소. 아이마 좀 더 넣어 주든가.”

박씨 아저씨는 덤과 함께 마음까지 봉지 속에 담는다. 장터에선 물건을 사는 사람들은 값을 깎거나 더 달라고 조르고, 파는 사람은 남는 게 없다며 입씨름을 하는 풍경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러다가 정이 들면 서로 단골이 되어 장날마다 만난다는 게 경북 경주 건천장 채소 장수 박씨 아저씨 이야기다.

닷새마다 경북 경주시 건천읍 건천리 신경주농협 사거리 50m 안쪽에 장이 펼쳐진다. 1914년에 개설된 건천장이다. 이 장터는 옛날 장옥을 지금껏 유지하고 있어 전통의 멋과 맛이 그대로 묻어난다. 장옥을 덮고 있는 슬레이트 지붕과 함석으로 된 미닫이문은 시간을 뒤로 거슬러 가는, 일부러 만들어 놓은 풍경처럼 보인다.
하지만 닷새마다 찾아오는 장날이면 지금도 함석문 여는 소리가 회색으로 번지며 잠들어 있던 들녘의 침묵을 깨우고, 장터는 이윽고 사람들 사는 이야기로 생기가 돈다.

누군가가 꾹꾹 눌러 뒀던 콩이며 깨를 들고 나와 장터 한쪽 양지바른 곳에 펼쳐 놓았다. 주인은 온데간데없고 물건이 손님을 맞이하고 있는 것 같다. 그새 나타난 김씨 할머니(78)가 “이 할마이보다 이놈들이 더 잘나 보이제” 하며 빙긋이 웃는다. 할머니는 드넓은 밭에 콩을 심어 놓았는데, 어느 고랑에서 순이 가장 먼저 돋아나고 어느 콩대에 마지막으로 해가 스며드는지 훤히 안다고 한다. 장날이면 그 햇살도 김씨 할머니 보따리에 숨어 따라 나온다.
날도 추운데 집에서 쉬지 장에는 왜 나오셨냐는 물음에, 할머니는 “지구가 꽁꽁 얼어붙어도 장에는 나온다”고 답한다. 짐 보따리와 함께한 세월이 많이도 흘렀다는 할머니는 “장에 나오는 것이 낙”이라고 한다. 할머니 옆에서 시골의 흙과 나무에서 흘러나왔을 법한 푸르디푸른 이야기를 쪼그리고 앉아 들었다.

 집에 혼자 있기 싫어 농사지은 것 몇가지 들고 나온다는 시골 할머니들. 그들이 소일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장터다. 할머니들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해서는 안 되는 것이 사람 사이의 끈끈한 정”이라면서, 빙 둘러앉아 점심을 먹는다. 그러면서 고단한 인생사를 털어놓기도 한다.

시골 장터에 있으면 고향에 온 것 같다. 고향을 지켜 온 사람들, 그들이 만들어낸 시간이 오롯이 살아 있어서다. 옷가지와 버선을 파는 한씨 할머니(80)는 장터 함석문을 여닫은 지 벌써 53년이다. 53년째 단골로 오다 정이 들어 장날마다 놀러오는 친구도 여럿이다. 오늘은 콩 두어대를 갖고 나온 단골 할머니 손님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동년배 할머니들 취향에 딱 맞는 물건을 갖추어서인지, 한씨 할머니 가게는 이 동네 할머니들의 사랑방이 되기도 한다. 이곳에 앉아 있다 보면 요즘 참깨 한되가 얼만지 콩 한되가 얼만지는 대번에 알 수 있다. 할머니들 입에서 많은 이야기꽃이 피었다 사라지고, 몇몇 이야기는 바람 따라 건넛마을까지 전해지기도 한다.

 여자들의 외출이 자유롭지 못하던 옛날, 우리네 어머니들은 방물장수라 불리던 여자 행상에게 물건을 사면서 바깥세상 돌아가는 소식이며 이웃 동네의 잡다한 사건·사고를 접했다. 건천장에서 만난 싹싹한 총각 이효준씨(28)는 그 옛날 방물장수처럼 온갖 화장품을 짊어지고 농촌 마을과 시골 장터를 찾아다닌 지 올해로 2년이란다. 효준씨는 생선 파는 이씨 아주머니 입술에 빨간 립스틱을 칠해 주면서 서비스라고 했다. “장터 아주머니들과 친해지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며 말끝을 흐리는 효준씨. 그의 미소가 건강해 보인다.

 파장 무렵이 되자 어물전에서는 여인네들이 모여 소주 한잔씩을 주고받는다.
“몸과 속이 퍼졌을 때 이만한 기 없데이.”
장을 지키는 사람들이나 장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장날은 여전히 축제날이다.

사진가 정영신의 장터순례(1) 경남 거창장 (2013.1.5)

"저 호랑이 담요 속에는 뭐가 있을까?"

지리산·덕유산 자락에 위치
옷걸이엔 꽃처럼 걸린 곶감
길 위엔 무말랭이·깻잎절임…
언몸 녹이며 ‘따뜻한 정’ 팔아

포토뉴스
 

동이 트기 시작한 장터 바닥에 경운기가 들어서더니 길바닥 위로 빨간 담요가 눕는다. 담요 위에는 노부부가 기른 배추가 장보러 나와 다소곳이 앉아 있다.
배추가 얼까봐 호랑이가 그려진 담요를 덮어 주는 이씨 할머니(73)는 전문 장사꾼이 아닌 지역 주민이다. 장날이면 영감님 경운기를 타고 농산물을 갖고 나오는 것이다. 장터는 이렇게 땅과 더불어 살아가는 농민이 주인이다. 새벽 장을 준비하는 모습에서 그 지방 정서가 묻어나는 진짜 삶을 엿보게 된다.

 1968년 거창공설시장이 들어서면서 상설시장과 오일장이 함께 열리는 거창장(경남 거창군 거창읍 중앙리)이 영호강 둔치를 따라 펼쳐진다. 난장에는 장돌뱅이보다 지역 주민의 농산물이 더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겨울날 장터는 추위와 싸우는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쓰다 버린 양철 냄비 등에 갈탄 몇개 담아 놓고 불을 껴안고 있는 게 전부다. 이곳 난장에서 장사하는 할머니들도 양철통 밑에 촛불 두어개 켜 놓고 앉아서 물건이 팔릴 때까지 견딘다. 다른 이들은 장에 나와 있으면서도 물건을 섣불리 풀려고도 하지 않아 보따리가 수직으로 서 있다. 보통 때는 해도 뜨기 전에 할머니들이 나와 자리다툼으로 언성을 높이곤 하는데, 추운 날에는 할머니들이 많이 나오지 않아 서로 난로를 빌려 주기도 하고 촛불 의자에 번갈아 앉아 있기도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지리산과 덕유산 자락에 위치한 거창장은 다른 장과 다르게 계절별로 장 색깔이 뚜렷하다. 그러나 겨울철에는 아껴 두었던 농산물을 조금씩 갖고 나올 뿐이다. 겨울에는 ‘장터의 꽃’으로 곶감이 많이 나온다. 시골 농가에서 말린 곶감들은 꽃봉오리처럼 옷걸이에 걸려 있다.

 거창읍 양평리에서 사과 농장을 하는 성씨 아주머니(59)는 사과와 밭에서 기른 채소를 갖고 나왔다. 감이며 우거지 말린 것과 무말랭이를 펼쳐 놓고 모닥불이 있는 곳만 찾아다닌다. 주인이 없어도 난전에 펼쳐져 있는 물건에 손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장사가 목숨줄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소일거리 삼아 나오는 사람도 있다. 우두커니 혼자 집에 있자니 사람이 그리워 장터로 나온다.

 대구에서 온 부부 장돌뱅이는 새벽부터 나와 손님들을 맞는다. 부부는 옷가지 등을 5000원에서 8000원에 파는데, 보따리를 풀기도 전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잘만 고르면 횡재할 수 있어 장날이면 일찍부터 나와서 기다린다는 젊은 친구도 있다.

 시골 장터를 찾는 재미는 뭐니 뭐니 해도 그 지역의 농산물을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또한 그 지역의 역사와 전통이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기도 하다.

 장날이면 자연도 할머니 보따리에 숨어 나와 사람들을 만난다. 내가 어렸을 적 장날은 마을의 축제였다. 동구 밖을 나서는 동네 어르신들 뒤로 아이들도 하나둘 따라가곤 했다. 엿장수 가위질 소리에 맞추어 동요도 부르고, 약장수 옆에 쪼그리고 앉아 신기한 동물들을 구경하다가 엄마를 놓칠 때도 있었다. 이렇듯 옛날 장터는 시골 농가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물건들과 많은 사람들을 접할 수 있는 복합적인 문화공간이었다.

 지금 우리는 집에 앉아서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고파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어느 동네나 마트나 편의점들이 있어 필요한 물건은 언제든 살 수 있다. 그러나 시골 장터에 가면 사람과 사람이 나누는 끈끈한 정이 살아 있다. 아흔을 넘긴 할머니가 간장에 절인 깻잎 한 통 갖고 나와 사람들을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거창장이 열리는 1, 6일이면, 자연의 소리가 사람들이 살아가는 소리로 바뀌어 장터 속으로 스며든다. 

 ●정영신:1958년 전남 함평 출생으로, 1987년부터 전국의 시골 장터를 기록해 온 사진가이며 소설가이다. 개인전 <정영신의 시골 장터>(2008, 정선아리랑제 설치전), <정영신의 장터>(2012, 덕원갤러리) 및 다수의 단체전을 열었다. 지은 책으로는 <시골 장터 이야기>(2002, 진선출판사), <한국의 장터>(2012, 눈빛)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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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생각" 1월호(24일 목요일)에 게재된 정영신의 글입니다.

"시금치 할머니"

눈이 내린 겨울장터는 장작불의 훈훈한 공기가 바람 길을 따라 장터 안으로 들어간다. 예산역전장을 찾았을 때도 눈발이 듬성듬성 내리는 영하의 날씨였다. 농번기철이 아닌 겨울에는 사람들이 장터로 모여들기 때문에 활기가 넘친다. 새벽부터 장터입구에 장작불을 지펴놓고 전을 피면서 몸을 녹이는 모습은 겨울에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길이 미끄러워 아들의 리어카를 타고 나온 이씨(83세)할머니는 마당에 가득 쌓인 시금치를 팔기위해 장터에 왔다. 수레에 방석을 깔아놓아 편안하게 장에 나올 수 있었다며 아들자랑이 대단하다. 장세 몇 백 원이면 해 질 때까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장날이면 새벽부터 집안이 부산하다며 소녀 같은 미소를 띤다.

이씨 할머니는 비나 눈이 오는 날에는 아들이 장에 데려다 주지 않아, 장터풍경을 떠올리며 오늘은 장에 누가 나왔을까 궁금해 한다고 했다. 유모차 같은 손수레를 의지한 채 친구가 장터에 나오면 두 손을 붙들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마치 햇빛이 마중 나오는것만 같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비닐봉지에 시금치를 꾹꾹 눌러 담아주는 정성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장에 나오는 할머니들은 장터골목을 끼고 난장에서 장사를 한다. 겨울이면 촛불 두세 개로 난로를 만들어 추위를 이기는 실정이다. 허나 이씨 할머니는 아들이 땅바닥에 이불을 깔고 연탄화덕까지 준비해 줘 따뜻하게 장사한다. 아들이 수레에서 시금치를 가져와 할머니 앞에 펼쳐 놓으면 상점이 만들어진다. 할머니는 연신 아들을 화덕 앞으로 불러 세우지만 할머니 뒤에서 서 있을 뿐이다.

이천 원이면 시금치를 봉지가득 담아 갈 수 있는데도 할머니가 장사하니까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 많다. 장이 끝나갈 때까지 팔리지 않은 시금치는 주위에 있는 장꾼들에게 나누어 준다. 추위 속에서 장사하는 엄마를 위해 따뜻한 물을 건네는 아들의 손등을 어루만지는 할머니모습, 그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이 아닌 마음속에 담아본다. 번듯한 자리는 아니지만 엄마와 아들이 펼치는 노점이 한겨울 장터의 이름 없는 들꽃처럼 아름답다.

파장 무렵이면 아들은 수레에 이불을 깔고 엄마를 번쩍 안아 태운다. 장사가 잘되는 날이면 엄마와 아들이 외식을 한다. 국밥집에서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엄마와 아들을 사진 속에서 훔쳐보고 싶다.

정영신(사진가,소설가)

여기 당신의 어머니·아버지가 보이나요?
 
오마이뉴스|2012.10.28
[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손주놈 오면 줄라고 넉 달 동안이나 시렁에 매달아 놓았는디, 손주놈은 안 오고 돈도 아쉽고 해서 장에 갖고 나왔는디 맛 좀 보시랑게잉, 맛있제이?" - 구례 오일장터에서 만난 곶감 파는 할머니자전거를 타고 섬진강가 여행을 하다 곡성시장, 구례시장, 화개장터, 하동시장을 연이어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렇게 읍이나 작은 도시에서 재래시장을 마주칠 때면 겨울에도 마음이 푸근해지면서이런 시장들 사진을 모아 전시회도 하고 책도 내는 '장터 사진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해보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1987년부터 올해까지 이십 오년간이나 강화도에서 제주도까지 한국의 장터를 찍고 기록해온 사람이 사진집 < 한국의 장터 > 를 냈다. 역시 '인생도처유상수'라더니 먼저 실행하고 앞서가는 고수가 꼭 있다. 아무튼 전국의 전통 재래시장터에 매달려 이십여 년을 찾아가 지속적으로 사진을 찍고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 저자의 애정과 열정이 대단하다. 이런 일에 남녀를 구분하고 싶진 않지만 저자가 여성이란 점도 책속의 사진들 다시 한 번 보게 된다.저자는 처음에 장에 가면 소설의 소재와 주인공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신춘문예를 준비하던 87년 본격적으로 장터를 찾게 됐다고 한다. 기 싸움 하듯 흥정하는 상인과 손님, 놀라운 입담으로 사람들을 웃기는 아저씨 같은 장터를 지키는 사람들을 만나 친해지면서 그곳의 매력에 빠져들었다고.그렇게 전국 각지의 장터를 찾아다닌 지 벌써 25년. 그동안 가본 장터만 300여 곳이고, 장터의 사람과 풍경을 기록한 사진은 줄잡아 4000여장에 달한단다. 사진집 < 한국의 장터 > 엔 그중 추려낸 82곳의 오일장터와 400여 장의 사진들이 등장한다. 소설가라는 또 다른 직업을 가진 여성 작가다운 생생하고 세밀한 장터 묘사도 사진과 더불어 돋보이는 훌륭한 포토에세이집이다.장터에 관한 최초의 인문학적 보고서



▲< 한국의 장터 > 정영신 글·사진, 눈빛아카이브 펴냄
ⓒ 눈빛아카이브

 

장터라는 공간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그 지역의 생활문화를 꽃피우는 무대요, 전국에 흩어진 장터들은 우리가 소중하게 지키고 보존해야할 생활문화 박물관이다. (본문 가운데)저자가 25년 동안 찍어온 장터 사진에는 그 지역 사람들의 생활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마수걸이(맨 처음으로 물건을 파는 일)를 잘 했다며 기뻐하는 아주머니, 혹시라도 장터에서 사돈을 만날까봐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온 할아버지, 힘든 일을 마치고 시장 구석에서 담배를 태우고, 목을 축이는 사람들 등 그의 사진에는 우리네 서민들의 눈물과 웃음이 함께 한다. 탐욕스런 자본주의의 물결이 잠시 멈춘 곳이기도 하지만 대형 할인 마트에 아이들과 젊은 사람들을 뺏겨 버린 침체된 장터의 면면도 볼 수 있다.전국 82곳의 오일장터에서 찍은 400여 장의 사진들과 글을 감상하다보면 장바구니 사이로 목을 내민 강아지의 눈과 마주쳐 저절로 얼굴에 미소가 어리기도 하고, 호박 몇 개 채소 몇 단이나마 팔러 나온 자그마한 체구의 할머니를 보며 애잔한 심정이 들기도 하고, 사라져 가는 우리만의 아름다움과 문화에 대한 안타까움에 책장을 못 넘기고 사진 속에 눈길이 멈추는 순간들이 많아 사진집이지만 쉬이 다 읽기 어려운 책이다.사실 다큐멘터리 사진의 의미는 이런 데 있다. '작품'으로서의 예술성에만 묶이지 않고 진정성이 담긴 기록에 충실할 때 다큐멘터리 사진은 감동과 공감을 얻는다. 그리고 사진의 예술성은 바로 이러한 바탕 위에서 형성된다. 모든 예술이 인간의 삶과 유리되어서는 별 의미가 없지만, 특히 인간과 그 삶의 기록에서 벗어나서는 의미를 얻기 어려운 게 사진일 게다.이 책은 오일장터를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훌륭한 여행 안내서이기도 하다. 전국 오일장을 총 9개 도별로 분류하고, 다시 가나다순의 군 단위로 나누어 정리했으며, 각 장마다 오일장이 열리는 장날과 지역특산물, 저자의 에피소드와 사람들의 사연, 전래 이야기 등을 같이 넣어 독자들이 장터 정보를 쉽고 흥미롭게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크게는 강원도 동해 북평장에서 전라도 보성강가의 시골 석곡장, 배추를 팔면서 점도 봐준다는 제주 서귀포 고성장터 할머니까지 가보고 싶은 데가 한두 곳이 아니다. 저자가 알려준 장터 구경하기 팁 중의 하나로 오일장터는 파장 무렵이 가장 재미있다니 참고할 만하다.



▲삶과 죽음, 즐거움과 애잔함이 모두 공존하는 우리네 장터
ⓒ 정영신

 

흑백의 장터 사진에서 느끼는 삶의 속살장터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다 보면 다양한 삶을 보게 된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것 같다.제주 할망들은 또 다른 우리 엄마들을 이야기한다. 물질을 하고, 밭농사를 짓고, 남은 시간에는 장터에 나와 온갖 것을 팔아 가정경제를 살리고 자식을 교육시킨다. 이 땅의 엄마들이 있기에 산업이 발전해 가고 경제가 살아나고 농촌이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고향을 찾아가듯이 오일장을 찾았다면 고향과 같은 색깔을 만날 것이다. (본문 가운데)책 속 사진들과 글에서 저자는 장터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고달픈 삶을 외형적으로만 관찰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애환에 귀를 기울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 중의 하나는 사진들이 모두 흑백이라는데 있었다. 촬영 초기 1987년의 사진은 물론 2010년대의 장터 사진도 모두 흑백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렇게 흑백사진으로 찍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건 무슨 이유일까?칼라색감을 배제한 흑백사진은 뭔가 본질적이면서도 직관적인 힘을 지녔다. 풍경사진도 그렇고 특히나 인물이 들어간 사진은 그 사람의 겉모습보다는 표정 속에 숨은 내면에 대해 잠시 생각에 빠지게 한다. 풍경은 풍경대로 잔잔한 감동과 울림을 느끼게 되고. 사진을 찍은 후 시간이 한참 흘러도 느낌 있게 감상할 수 있는 '사진 누리기' 하기에 제격이다. 디지털 카메라에 흑백사진기능이 없어지지 않고 계속 남아있는 이유를 알 것 같은 사진집이다.여름이면 따가운 햇살에 양산을 받쳐 들고 겨울이면 손난로에 의지해 떨면서도 떠들썩한 장터 바닥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흑백사진은 정겨우면서도 눈물겹다. 힘든 일을 마치고 장터 구석의 선술집에서 목을 축이는 사람들, 자기 몸집보다 더 큰 봇짐을 머리에 얹고 집을 향해 분주한 발걸음을 옮기는 할머니, 봄에는 분무기를 고치고 여름엔 장화를 수선하며 30년 넘게 장터를 지킨 '맥가이버' 할아버지, 장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람들의 흑백사진은 내 뇌리에 오래도록 잔영으로 남을 것 같다.그런 흑백의 사진들 중 내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무척 힘들게 찍었을 장터에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 사진이 무척 인상적이다. "사람의 얼굴은 하나의 풍경이요, 한 권의 책"이라며 인간의 표정에서 삶을 읽으며 많은 글을 썼던 발자크의 말마따나, 여러 표정과 삶의 흔적 주름이 담긴 얼굴사진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나름대로 상상하는 것도 즐겁고 내 삶을 성찰해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장터에 가면 내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그립고 마음 짠하게 된다.
ⓒ 정영신

 

이런 전통 재래시장들이 지역은 물론 나라의 내수 경제 활성화와 도시와 마을의 공동체 붕괴 방지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임을 잘 아는 서유럽 국가들에서는 도시에 대형마트가 마구 들어서는 것을 규제하는 것은 물론 유명 관광지를 제외하곤 기존의 대형마트나 백화점들도 주말과 공휴일에는 개점을 하지 않는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어떤가. 책을 읽다보니 동네에서 가까운 서울 망원동 월드컵시장 상인들이 떠오른다.수년 전 생겨났던 대형할인마트가 인근에 또 들어서려 해 주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재래시장이 타격을 받을 것이 자명하자, 이에 맞서 시장 상인들이 저항하고 있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2003년 이후 7년 사이에 전통 재래시장은 178곳이 문들 닫았고, 기업형 수퍼마켓이 695곳 늘었다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다.일제 강점기 때인 1914년 일본은 우리나라 각 면소재지에 시장을 1개씩 개설하라는 시장 규칙을 공포하였다고 한다. 일제는 우리나라의 지역 경제를 살려 물산을 착취할 목적이었다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사회적 약자인 서민들을 보호하고 지역경제와 마을 공동체를 살리는데 있어 일제 강점기시대만도 못한 것인지 안타까울 뿐이다.덧붙이는 글 |< 한국의 장터 > (정영신 글·그림 | 눈빛 아카이브 | 2012. 08 | 2만 9,000원)

 

 

지난 9월 2일 KBS월드 문화공감 '이광용의 색깔있는 만남'에 정영신씨의 장터가 소개되었습니다

이 방송은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 아랍어, 스페인어,프랑스어, 독일어, 인도네시아어,

베트남남어 등 11개 언어 국제방송입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아래 주소를 크릭하면 동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orld.kbs.co.kr/korean/program/program_fieldinterview.htm?No=275

 

2012.9.7

한국의 장터-발로 뛰며 기록한 전국의 5일장ㅣ정영신 지음ㅣ눈빛출판사

이 책은 1987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한국의 시골 장터를 기록해 온 정영신의 사진 중 모두 430여 장을 선별해 엮은 눈빛 아카이브 사진집이다. 사진가이자 소설가인 정영신은 지난 25년간 전국의 오일장을 돌며 그곳 사람들의 가난하지만 인정 넘치는 삶을 사람냄새 나는 흑백사진과 맛깔스런 글에 담아 왔다.
이 책은 사진을 통해 전국 장터의 어제와 오늘을 읽는 사진집이면서, 전국 팔도의 대표 오일장 82곳의 장터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인문학적 자료집이기도 하다. 책은 전국 오일장을 총 9개 도별로 분류하고, 다시 가나다순의 군 단위로 나누어 정리했으며, 각 장마다 장이 열리는 장날과 지역특산물을 게재해 독자들이 장터 정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
생산자이자 판매자인 사람들이 만나 자연스럽게 난전을 이루고 상업과 문화를 일궈 살아가는 장터는 사람살이가 살아 숨 쉬는 삶의 터전이자 정을 나누는 광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형 할인 마켓과 홈쇼핑, 인터넷 쇼핑 등이 발달하면서 전국의 재래시장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다.
“장터에 가면 고향의 냄새와 맛, 소리와 감촉까지 느낄 수 있다”라고 말하는 정영신의 사진과 글에는 그 지역 사람들의 생활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물건 파는 일보다는 사람 만나는 일이 즐거워 장에 나온다는 할머니, 혹시라도 장터에서 사돈을 만날까 싶어 가장 좋은 옷을 꺼내 입고 나온 할아버지, 첫 마수를 잘 했다며 기분 좋게 웃는 아주머니, 뛰어난 입담으로 사람들을 웃기는 아저씨가 사진 속에 살아 있다. 여름이면 따가운 햇살에 양산을 받쳐 들고 겨울이면 손난로에 의지해 떨면서도 떠들썩한 장터 바닥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삶은 정겨우면서도 눈물겹다. 힘든 일을 마치고 장터 구석의 선술집에서 목을 축이는 사람들, 자기 몸집보다 더 큰 봇짐을 머리에 얹고 집을 향해 분주한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람들의 모습은 무심코 지나치기 쉽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고향의 풍경이다. 장바구니 사이로 목을 내민 강아지의 눈, 바쁜 틈을 타 장터 바닥에서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의 가슴, 신명나게 들려오는 육자배기 노랫소리는 언제고 한번쯤은 마주쳤을 법한 한국의 표정이다. 울고, 웃고, 춤추고, 노래하고, 싸우고, 흥정하는 장터 모습은 마치 묵혀진 장맛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의미가 진해진다. 이 책은 한국의 오일장이 자본주의 물결 속에서 걸어온 발자취를 살피고, 사라져 가는 우리 문화에 대한 안타까움과 잃어버린 이웃에 대한 그리움, 기층 민중에 대한 애정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마련한다. 그리고 빈자리만 있으면 보자기를 펼쳐 호박 한 덩이를 팔아도 행복했던 시절로 되돌아가는 시간 여행을 할 수 있기를 권한다.
책 발간과 함께 8월 8일부터 서울 인사동 덕원갤러리에서는 한국의 장터 모습을 정돈된 흑백사진으로 만나볼 수 있는 <정영신의 장터> 사진전이 열린다

 

사진으로 찾아가는 우리 시골장터 (MBC뉴스)

대형 상점들이 전국 구석구석을 파고들면서 정겨운 시골 오일장이 점점 사라져가는 추세다.
사진가이자 소설가인 정영신은 도시화와 자본주의 물결 속에서 설 곳을 잃어가는 우리 시골 장터의 생생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가 1987년부터 25년간 전국의 오일장을 돌며 찍은 사람냄새 폴폴 풍기는 흑백사진들과 글을 엮어 사진집 '한국의 장터'(눈빛출판사)를 펴냈다.
시끌벅적하지만 정겨운 전국의 대표적인 오일장 82곳을 직접 뛰어다니며 찍은 사진, 장이 서는 날짜와 지역특산물 소개 등 장터 관련 정보를 수록했다.
그의 사진과 글에는 장터를 찾는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물건 파는 것보다 사람 만나는 재미에 장에 나온다는 할머니, 뛰어난 입담으로 사람들을 웃기는 아저씨, 흥정하는 상인과 손님, 고단한 일과를 마치고 선술집에서 목을 축이는 사람들처럼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정겨운 얼굴들이 보인다.
작가는 사진집 출간에 맞춰 오는 21일까지 인사동 덕원갤러리에서 사진전 '정영신의 장터'도 연다.
480쪽. 2만9천원.

 

 

사진으로 찾아가는 우리 시골장터 [연합뉴스] 2012.08.10

대형 상점들이 전국 구석구석을 파고들면서 정겨운 시골 오일장이 점점 사라져가는 추세다.
사진가이자 소설가인 정영신은 도시화와 자본주의 물결 속에서 설 곳을 잃어가는 우리 시골 장터의 생생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가 1987년부터 25년간 전국의 오일장을 돌며 찍은 사람냄새 폴폴 풍기는 흑백사진들과 글을 엮어 사진집 '한국의 장터'(눈빛출판사, 480쪽. 2만9천원)를 펴냈다.
시끌벅적하지만 정겨운 전국의 대표적인 오일장 82곳을 직접 뛰어다니며 찍은 사진, 장이 서는 날짜와 지역특산물 소개 등 장터 관련 정보를 수록했다.
그의 사진과 글에는 장터를 찾는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물건 파는 것보다 사람 만나는 재미에 장에 나온다는 할머니, 뛰어난 입담으로 사람들을 웃기는 아저씨, 흥정하는 상인과 손님, 고단한 일과를 마치고 선술집에서 목을 축이는 사람들처럼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정겨운 얼굴들이 보인다.
작가는 사진집 출간에 맞춰 오는 21일까지 인사동 덕원갤러리에서 사진전 '정영신의 장터'도 연다.

 

 

왁자지껄한 시골장터…가슴 따뜻한 이야기 [한국경제] 2012.08.09

한국의 장터 / 정영신 지음 / 눈빛출판사 / 480쪽 / 2만9000원

“아 따메, 나한테는 공짜로 주지 마씨요. 이빨이 성치도 안해 먹지도 못하는디 안 살라요.” “아 따메, 누가 사라고 그라요. 그냥 맛만 보랑께.”
전라남도 곡성장의 풍경이다. 맛보기 엿을 받아 먹으면 1000원어치라도 사야 하는 시골 장터의 인심. 이가 성치 않아 엿을 못 산다는 할머니와 안 사도 좋으니 맛만 보라는 엿장수의 대화가 훈훈하다.
《한국의 장터》는 저자가 1987년부터 지금까지 전국 방방곡곡을 날래게 뛰어다니며 한국의 5일장을 기록한 사진첩이다. 500쪽에 달하는 두툼한 책 속에는 보기만 해도 가슴 한 쪽이 따뜻해지는 흑백사진들이 빼곡하다. 호박 두 덩이를 보자기 위에 얹어놓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할머니, 허름한 선술집에서 탁주 한 잔을 들이켜는 할아버지, 자기 몸집보다 더 큰 봇짐을 머리에 얹은 사람들의 사진 속에서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이 겹친다.
소설가이기도 한 저자는 중간중간 토막글을 넣어 책을 더 풍성하게 했다. 전국 팔도의 5일장 82곳의 장터 정보는 물론 저자가 시골 인심을 접하며 겪은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그중 마수걸이(맨 처음 물건을 파는 일)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저자는 “장사꾼들은 간혹 안경 낀 여자가 ‘바지락 1000원어치만 주세요. 된장국 올려 놓고 왔어요’ 하면 숨어버리고 싶다고 한다”고 전했다. 앞으로도 계속 1000원짜리 손님만 온다는 징크스가 있기도 하지만 옛날부터 안경 낀 여자가 마수하면 하루 운세가 좋지 않다는 낭설이 있기 때문. 마수걸이는 그만큼 장사하는 사람에게 하루의 운을 가늠하는 중요한 의식이라고 한다.
정선 5일장이 지역경제를 창출하는 대들보가 된 사연도 눈길을 끈다. 정선장은 1966년 2월17일에 처음 열려 오늘에 이르고 있는 시장. 인구가 감소해 장이 쇠퇴할 무렵인 1999년 3월17일 구세주가 찾아왔다. 정선 5일장 관광열차가 개통한 것이다. 정선군은 정선 5일장을 관광상품으로 개발했고, 휴일이면 서울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장사꾼들은 “주말이면 장 안에 있는 약초가 다 팔려 나간다”며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다문화시대는 장터 풍경도 바꿔놓았다. 삼척 도계장에는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온 샤니와 알리가 있다. “장터를 돌아다닌 지 2년이 됐다”는 그들은 고국에서 가져온 보석과 가방을 판다. 시골 장에 푹 빠져 장날이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여기저기 다닌다. 시골 아낙네들은 농사일로 거칠어진 손가락에 반지도 껴보고 목걸이도 걸어보며 멋을 부린다.
저자는 “외국인이라는 낯선 얼굴을 대하는 우리네 여인들이 정겹다”며 “시골 장터의 얼굴도 점점 변하고 있다”고 전한다.

 

허름한 좌판·선술집… 쇠락해가는 5일장 풍경 [문화일보/ 2012.08.10]

한국의 장터 / 정영신 글·사진 / 눈빛출판사

시골 장터만큼 ‘사진적인 풍경’이 또 있을까. 장터마당에 손바닥만한 좌판을 깔고 물건이래야 고작 호박 네댓 개를 앞에 두고 있는 할머니, 허름한 선술집에서 막걸리를 들이키는 노인, 뻥튀기의 폭발음에 잔뜩 겁을 먹고 귀를 막고 서있는 아이들…. 이런 풍경들은 정작 맨눈으로 보았을 때는 별 느낌이 없지만, 한 장의 사진 속에 담겨지면 그 이미지는 더없이 강렬해진다.
사진가의 애정 어린 시선이 색채를 덜어낸 흑백의 질감과 합쳐지면서 장터가 보여주는 생생한 삶의 모습과 사라져가는 것들의 애잔함이 마치 마술처럼 되살아는 것이다. 시골 장이 사진가들의 단골 소재가 됐던 것은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이 책은 25년 동안 줄곧 한국의 시골장터를 기록해온 사진가이자 소설가인 저자의 사진집이다. 저자가 전국의 여든 두 곳 장터를 돌면서 담아낸 사진들이 책 속에 빼곡하게 실려 있다. 저자의 관심사는 당연히 5일장에 모여드는 사람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인물들과 눈을 맞추고 찍은 사진은 드물다. 강렬한 이미지의 의도화된 사진들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저자는 구태여 구도를 계산하거나 이미지를 의도하지 않고 목격자의 시선으로 장터에 카메라를 들이댄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마치 스냅사진을 찍듯이 자연스럽게 시골장터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봤다. 이런 시선은 아마도 저자가 사진작업의 결과물을 ‘작품’으로 내세우는 게 아니라, 쇠락해가는 장터의 모습을 기록하는 쪽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인 듯하다.
책을 잡으면 사진집이라 응당 사진에 먼저 눈이 가겠지만, 이 책의 미덕의 절반 이상이 사진에 얹은 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는 전국의 82개 5일장을 도별로 분류하고 다시 가나다 순의 군 단위로 쪼개서 하나하나 장의 분위기와 특산물 등을 소개하고 있다. 편집이 백과사전식이라 문장도 건조한 사전식 소개 위주일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의 장터 목격담은 생생하고 세밀하다. 예를 들어 충남 청원의 미원장을 ‘농사일만 해온 노인들은 따로 취미가 없어 장날이면 버스에서 내리는 아는 얼굴이라도 만날 셈으로 노상에 앉아있는 노인들이 많다’고 소개하고, 평창의 진부장을 두고는 ‘한산한 장터에서 바둑 삼매경에 빠진 장꾼들은 소일거리가 있어 다행’이라고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렇게 그려내는 이미지가 어찌나 생생한지 눈앞에 쇠락한 5일장의 나른한 풍경이 떠오르는 듯하다.
시골장을 이야기하면서 사람 이야기도 빠질 리 없다. 나주 공산장을 소개하는 대목에서는 낙지를 팔러 나온, 영산포 노래를 구성지게 부르는 서금순(74) 할머니가 등장하고 무안 일로장에서는 승합차에 카세트테이프를 잔뜩 싣고 왔다가 손님이 없어 혼자 발장단만 맞추고 있는 노점상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소설가답게 간결하고 명료한 문장도 문장이지만, 부지런한 발과 사람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 풍부한 감성, 꼼꼼한 기록 등이 거기 더해졌다. 이 책이 시대를 반영하는 사진집이면서 전국의 시골장을 아우르는 백과사전, 풍부한 감성의 에세이, 혹은 기층민의 삶의 기록을 담은 인문학 자료집처럼 드넓은 경계를 넘나들면서 읽히는 것은 이 때문이겠다.

 

장터에 스민 고향, 사진에 담다[매일경제] 2012.08.10

한국의 장터 / 정영신 지음 / 눈빛출판사 펴냄

1987년부터 한국의 시골 장터를 기록해온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을 엮은 작품집. 저자는 지난 25년간 전국 5일장을 돌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난하지만 인정 넘치는 삶을 사진과 글로 담아왔다. 이 책은 전국 장터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할 수 있는 역사적 사료이자 전국 팔도 82곳에 있는 장터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자료집이기도 하다. 저자는 "장터에 가면 고향의 냄새와 맛, 소리와 감촉까지 느낄 수 있다"며 장터에 대한 애착을 드러낸다. 대형마트와 온라인 쇼핑에 밀려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장터의 인간적 면모와 그 발자취를 감상할 수 있다.

 

한국의 장터 [한국일보] 2012.08.10

정영신 글ㆍ사진. 1987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의 시골장터를 기록한 소설가 겸 사진작가 정영신의 사진집. 사진 430여장과 함께 5일장 82곳의 정보를 함께 실었다. 눈빛출판사ㆍ480쪽ㆍ2만9,000원.

 

한국의 장터(정영신 | 눈빛출판사) [경향신문] 2012.08.10

사진가이자 소설가인 저자는 1987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의 시골 장터를 누비며 카메라에 담아왔다. 이 책은 전국 장터의 어제와 오늘을 읽어내는 사진집이면서 5일장 82곳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자료집이다. 대형 마트와 인터넷에 밀려 설 자리를 잃어가는 재래시장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2만9000원

 

 

한국의 장터(정영신 글, 눈빛 펴냄) [서울신문] 2012.08.11

책장마다 ‘발꼬랑내’가 무럭무럭 피어난다. 1987년 이후 지금까지, 이제는 사라져 가는 시골 장터를 찍은 사진 가운데 430장을 엄선한 사진집이다. 21일까지 서울 인사동 덕원갤러리에선 사진전도 연다. 2만 9000원.

 

사진에 담은 5일장 풍경 [동아일보] 2012.08.11

마수걸이에 성공해 입이 찢어지는 아주머니, 몸집보다 큰 봇짐을 진 짐꾼, 고된 하루를 마치고 선술집에서 목을 축이는 사람들…. “장터에 가면 고향의 냄새와 맛, 소리와 감촉까지 느낄 수 있다”는 저자가 1987년부터 지난해 12월까지 한국의 5일장 82곳을 다니며 기록한 사진집. 사라져가는 장터 문화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책을 읽다보면 ‘우리나라에 이렇게 시골 장터가 많았던가’ 하고 놀라게 된다. 장이 서는 날과 지역 특산물 등 장터 정보도 꼼꼼히 적었다. 책 발간에 맞추어 서울 인사동 덕원갤러리에서는 ‘정영신의 장터’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한국의 장터(정영신 글·사진|눈빛|479쪽|2만9000원) [조선일보 / 2012.08.11]

노부부가 각각 등에 짐을 둘러메고 장터로 향한다. 꼬마들은 강아지들이 담긴 상자 앞을 떠날 줄 모르고, 장꾼들은 '상주가 첫 마수를 해주면 재수 있다'는 말에 상주에게 서로 물건을 팔려고 나선다. 지난 25년간 전국 82곳의 5일장을 누비며 촬영한 '살아있는' 흑백 사진 430여장을 모았다.

 

 

장터 25년, 앵글에 차곡 [한겨레신문 / 2012.08.12 ]

정영신씨 사진집 ‘한국의 장터’ 5일장 82곳 담아…사진전도

사진 속 시골 장터는 고향이었다. 배추 팔면서 점까지 쳐주는 제주 서귀포 고성장 할머니들, 깨를 바랑에 지고 달걀까지 엮어온 성남 모란장 할아버지, 화롯불에 함께 밥해 먹는 횡성 장터 사람들 모습이 사람살이의 내음을 전한다. 사진가이자 소설가인 정영신(54)씨의 사진집 <한국의 장터>(눈빛·2만9000원)는 대형 마트의 기세 앞에 사라져가는 전국 5일장터 82곳을 발로 뛰며 앵글에 담은 기록들이다. 1987년부터 지금까지 찍은 장터 사진들을 망라한 이 사진집은 생생한 사진들뿐 아니라, 전국 5일장을 9개도, 군 단위로 분류하고, 장날과 특산물 등도 소개한 인문학적 보고서이기도 하다. 작가에게 장터라는 광장은 “두꺼운 책처럼 펼쳐 보면 지혜가 들어 있는 말하는 박물관”이며, 장터 기행은 “사물들이 눈을 뜨고, 말을 걸어오고,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색으로 들릴 때 중간에서 시간을 잘라내는 놀이”가 된다. 사진집 출간을 맞아 21일까지 서울 인사동 덕원갤러리(02-723-7771)에서는 사진전 ‘정영신의 장터’도 열리고 있다. 노형석 기자

 

정영신 25년간 찍은 팔도 서민의 삶"한국의 장터"출간 [중앙일보] 2012.08.14

정영신 사진가가 1991년 전북 남원장에서 찍은 강아지 사진. [사진 눈빛]

  전국의 장터 82곳을 흑백 사진과 글로 기록한 『한국의 장터』(눈빛출판사)가 출간됐다. 사진가이자 소설가인 정영신(54)씨가 1987년부터 최근까지 기록해온 장터 사진 중 430여 컷을 선별했다. 한국 장터의 어제와 오늘을 읽어낼 수 있는 인문학적 자료집이자, 풍족하진 않지만 인정 넘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현장르포다.
 저자가 25년 동안 찍어온 장터 사진에는 그 지역 사람들의 생활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마수걸이(맨 처음으로 물건을 파는 일)를 잘 했다며 기뻐하는 아주머니, 혹시라도 장터에서 사돈을 만날까봐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온 할아버지, 힘든 일을 마치고 시장 구석에서 담배를 태우고, 목을 축이는 사람들 등 그의 사진에는 우리네 서민들의 눈물과 웃음이 공존한다. 대형 할인 마켓과 홈쇼핑 등에 젊은 사람들을 뺏겨 버린 침체된 장터의 얼굴도 볼 수 있다.
 책은 전국의 5일장을 9개 도별로 분리해서 정리했다. 장의 유래, 장이 열리는 날짜, 지역 특산물 등의 정보는 덤이다. 책 발간과 함께 21일까지 서울 인사동 덕원갤러리에서 ‘정영신의 장터’ 사진전도 함께 열린다.

 

전국 장터 25년 누빈 정영신 사진작가 “우리네 정을 찍었죠” [경향신문 / 2012.8.17]

-인터뷰- 글 김윤숙 기자·사진 이상훈 선임기자 yskim@kyunghyang.com

“장삼이사의 애환과 삶의 지혜가 널려 있는 곳, 바깥세상의 소식들이 물물교환하듯 자연스럽게 섞이는 곳, 고샅고샅을 돌아나온 마을과 마을의 이야기가 왁자한 곳, 우리네 장터는 그렇게 정이 살아 숨쉬는 박물관입니다.”

사진가이자 소설가인 정영신씨(55·사진)가 최근 전국 오일장의 25년 기록을 담은사진집 <한국의 장터>(눈빛)를 펴냈다.
전국 면소재지마다 서던 무수한 장들이 사라져 안타깝다는 정씨는 “장은 없어져도 장바닥은 남아 있다면서 장터를 꿋꿋이 지키고 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사연들을 기록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고 말했다.텃밭에서 수확한 채소와 농로에서 잡은 미꾸라지 한 그릇을 가져온 할머니가 생산자이면서 판매자가 되는 곳이 장터고, 난전을 펼쳐놓고 장구경을 다녀도 주인 없는 물건에 손대는 사람이 없는 곳이 시골장터다.
정씨는 “시골 장터는 어딜 가나 고향 같다. 배추 팔면서 점까지 쳐주는 제주 서귀포 고성장 할머니들, 깨를 바랑에 지고 달걀까지 엮어온 성남 모란장 할아버지, 화롯불에 함께 밥해 먹는 횡성 장터 사람들 모습에서 사람의 냄새를 맡는다”고 했다.
정씨는 취미로 배운 사진기를 들고 다니다 장터의 일상을 담게 됐다. 문득, 장터에선 사람이 세상의 중심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이후 생생한 삶의 현장을 누볐다.
“손주 오면 주려고 넉 달 동안이나 시렁에 매달아 놓아 둔 곶감을 돈이 아쉬워 갖고 나온 할머니의 곶감은 얼마나 귀한 곶감이겠어요. 대형마트에서는 살 수 없는 곶감이지요.”
정씨는 장터에는 문화가 흐른다고 했다. 그는 “옛 장터는 남사당놀이와 소리꾼들이 사람들을 불러놓고 판소리 공연을 하는 등 농민들의 복합 문화공간이었다”면서 “어느 할머니 얼굴에서는 아쟁소리가 들리고, 어느 할아버지의 얼굴에서는 남도의 육자배기가 들렸다”고 했다.
“무엇보다 시골장터에는 그 지역 특산물과 독특한 문화가 있어요. 정부나 지자체에서 우리의 전통 5일장을 보존 발전시켜 500년의역사를 자랑하는 터키 이스탄불의 그랜드바자르처럼 전 세계 사람들이 찾는 장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정씨의 사진집에는 제주지역을 비롯해 300여개의 장터를 촬영한 방대한 사진들 중 선별한 430여 장이 실렸다. 전국 5일장을 총 9개 도·군별로 분류해 실은 ‘손대지 않은’ 사진들은 담백하면서도 생생하다.
정씨는 책 출간과 함께 인사동 덕원갤러리에서 오는 21일까지 ‘정영신의 장터’ 사진전도 갖는다.

 

■한국의 장터―발로 뛰며 기록한 전국의 오일장 [세계일보 / 2012. 8,18]
(정영신 글·사진, 눈빛출판사, 2만9000원)=사진가이자 소설가인 저자가 도시화와 자본주의 물결 속에서 설 곳을 잃어가는 우리 시골장터의 생생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시끌벅적하지만 정겨운 전국의 대표적인 오일장 82곳을 직접 뛰어다니며 찍은 사진, 장이 서는 날짜와 지역특산물 소개 등 장터 관련 정보를 수록했다

 

[한장면] 안쓰럽다고요? 금방 팔릴거예요. [부산일보 / 2012. 8. 18]

지난해 이맘때 강원도 삼척 호산장에서 소설가이자 사진가인 정영신이 찍은 사진이다. 할머니는 신문지 두어 장 깔고, 호박 한 덩이, 마늘 몇 쪽만으로 전을 폈다. 뙤약볕을 막아주는 양산 하나 들고 호박 임자만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언제 호박이 팔려 자리를 털고 일어설지 모르지만, 용케 그걸 다 팔아도 몇천 원 손에 쥘 수 있을까? 호박 한 덩이 팔아서 빨랫비누 한 장 살 수 있을까? 집 담장에 심었음 직한 호박 한 덩이 갖고 나와 텅 빈 장터를 지키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쇠락해 가는 장터 풍경을 웅변하는 것 같아 서글프다.
시골 장터엔 장꾼이 아닌데도 이 할머니처럼 손수 산에서 캔 약초나 농사지은 오이 몇 개 펼쳐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노인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약초 판 돈으로 저녁상에 올릴 간고등어 한 손 사기도 하고, 집에서 기른 닭 한 마리 판 돈으로 손주 운동화 한 켤레 사기도 한다. 생산자와 판매자의 구별이 사라지는 곳도 장터다. 인심이 예전 같지 않지만, 난전을 펼쳐 놓고 장 구경을 다녀도 주인 없는 물건에 손대는 사람이 없는 곳이 시골 장터다.

'한국의 장터'는 1987년부터 25년 동안 전국의 시골 장터를 기록해 온 정영신의 사진 430여 장과 글을 담았다. 전국 팔도의 대표 오일장 82곳의 장터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인문학적 자료집이기도 하다.  정영신의 사진과 글에는 장터 풍경이 날것으로 살아 있다. 약초 몇 뿌리 배낭에 넣고 산골 마을에서 온 노부부, 새벽부터 한복을 차려입고 와서 장이 파할 때까지 사람 구경하고 돌아가는 할아버지, 봄에는 분무기를 고치고 여름엔 장화를 수선하며 30년 넘게 장터를 지킨 '맥가이버 할아버지', 밭에 심은 달래와 부추를 뜯어와 팔면서 백 살까지만 장사하겠다는 아흔한 살의 할머니….
정영신은 발품 팔아 몇 번이나 갔던 장터를 다시 가면서 스스럼없이 장터 사람들에게 말을 건넸다. 하긴 익명의 고객만 존재하는 대형할인점과 달리 시골 장터는 배추 한 단 사고팔더라도 말이 오가는 공간이다. 장터를 지키는 사람이 나이 들수록 장터도 점차 쇠락하는 게 마음 아프긴 하지만.
정영신의 말을 빌리면 장터는 '두꺼운 책처럼 펼쳐 보면 지혜가 들어 있는 말하는 박물관'이다. 정영신 글·사진/눈빛출판사/480쪽/2만 9천 원. 이상헌 기자 ttong@

 

뉴스 >동아일보 오피니언 2012-08-20 (월)
[동아 에세이/정영신]

"장터에는 사람의 정(情)이 있다"

 

도란도란 무슨 얘기를 나눌까 전남 구례의 한 장터 사진이다. 장터에 팔 물건을 자전거에 싣고 가던 한 할머니가 잠시 멈춰 서서 이웃 할아버지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정겹다.

 

우산 받쳐 들고… 비가 내리는 어느 날 전북 무주의 작은 마을에 장이 섰다. 보자기를 펼쳐 고추며 가지를 늘어놓고는 우산을 받쳐 들고 손님을 기다리는 할머니들. 필자 제공

정영신 / 사진가, 소설가

 

“아따메 징허게 덥네이, 뭔 놈의 날씨가 이런당가, 논매다가 영감이 더위 먹어 보신시켜 줄라고 닭 사러 왔네, 자네는 뭐 사러 왔능가?”
장에 나온 여인네들의 말속에서 고향을 만난다. 장 뒤쪽에서 손수 고른 닭을 손질하는 동안 아는 얼굴을 만나는 풍경이다. 이렇듯 장터풍경은 자연과 사귀는 시간이 되어간다. 장에 가면 땅이 주는 선물들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번듯한 장옥(長屋·거리 양쪽에 세운 상점) 대신 장터 골목 어귀에서 농사지은 것들을 갖고 나온 여인네들은 물건을 팔 생각보다는 이웃 동네 소문에 열을 올린다. 윗마을 동산댁 영감님이 농기구에 다쳐 병원에 있다는 소식에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가 주머니 속에서 나오는 풍경은 장에서만 볼 수 있는 따듯하고 정겨운 모습이다.

또 시골마을에서 온 버스가 차부(車部·차의 집합소)에 도착하면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의 보따리를 서로 차지하려고 밀고 당기는 실랑이가 벌어진다. 녹두 다섯 되와 결명자 석 되를 갖고 나온 할머니는 저울눈금이 맞지 않다며 이천 원 때문에 금방 싸울 것처럼 언성이 높아진다. “아따 성님, 내가 언제 속입디여 쪼까 믿으씨요.”
한참 실랑이 끝에 서로 천 원씩 양보하기도 한다. 팔 것만 있으면 좌판을 차려놓고 질펀하게 앉아, 속고쟁이 쌈지 주머니 속에서 나온 찢어진 천 원짜리에 밥풀이 붙어있어도 채근하지 않는다. 두세 시간 걸려 펼쳐놓은 좌판에서 개시도 못한 사내가 안주 없는 강소주를 병째 나발 불어도 탓하지 않는 곳이 장터다.
난전을 펼쳐놓고 장구경을 다녀도 주인 없는 물건에 손대는 사람이 없다. 사람들을 만나고 싶을 때 빗자루 몇 개 둘러메고 장터 안을 돌아다니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면 국밥집으로 들어가 할아버지가 장사를 끝내도 되는 곳이 장터다. 리어카와 됫박을 45년 동안 사용하고 있는 할머니는 금이 간 됫박을 옥양목으로 감아 줄 때마다 함께 늙어가는 친구 같다고 한다. 덤과 정이 묻어있는 됫박의 소리와 색깔을 살아있는 시간으로 만날 수 있는 곳이 장터인 것이다.
순박한 여인네들의 얼굴에서는 경쟁이 없어 좋다. 그러나 해가 바뀔 때마다 소중한 것들이 소멸되어 가는 것은 안타깝다. 장터 골목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다 보면 어렸을 적 기억이 일제히 일어나 나를 향해 걸어온다.
약장사와 엿장수 좌판은 아이들 놀이터로, 처음으로 보는 원숭이며, 엿장수 가위질 소리에 맞추어 고무줄놀이까지 했었다. 한쪽에서는 새끼 돼지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붙들고 있던 삼식이, 털이 숭숭 달린 복숭아를 광주리에 담아온 순덕이네, 주근깨투성이인 깨순이가 이고 온, 소금물에 우린 감을 베어 먹던 얼굴은 저장해둔 시간이 아니라 살아있는 시간으로 다가온다. 어렸을 적 장날은 축제날이었다. 곱게 차려입은 한복에 짚으로 깨끗이 닦아 토방 위에 올려놓은 하얀 고무신을 신고 동구 밖을 나서는 동네 어르신들 뒤로 아이들도 하나둘 따라가곤 했었다. 그런데 요즘 장터에 가보면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장터에 가면 생활과 문화가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이들이 엄마 손을 잡고 장터에 나와 자연과 흙과 나무에서 흘러나온 푸르디푸른 사람살이의 이야기가 숨어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중심은 사람이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 장터이고, 장터로 통하고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물결은 장터에서 잠시 멈춘다. 돈보다 귀한 사람의 정(情)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온 가족이 함께 사람 사는 정을 만나러 장터에 가자.

※ 정 작가의 사진전 ‘정영신의 장터’는 21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덕원갤러리에서 열린다.

 

한국의 장터’ (정영신 글·사진, 눈빛출판사 펴냄, 2만9000원, 480쪽)
[CNB저널] 2012.08.20

사진가이자 소설가인 저자는 지난 25년간 전국의 5일장을 돌며 그곳 사람들의 가난하지만 인정 넘치는 삶을 사람 냄새 나는 흑백 사진과 맛깔스런 글에 담아 왔다.
이 책은 사진을 통해 전국 장터의 어제와 오늘을 읽는 사진집이면서, 전국 팔도의 대표 5일장 82곳의 장터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인문학적 자료집이기도 하다. 책은 전국 5일장을 총 9개 도별로 분류하고, 다시 가나다순의 군 단위로 나누어 정리했으며, 각 장마다 장이 열리는 장날과 지역특산물을 게재해 독자들이 장터 정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
또한, 한국의 5일장이 자본주의 물결 속에서 걸어온 발자취를 살피고, 사라져 가는 우리 문화에 대한 안타까움과 잃어버린 이웃에 대한 그리움, 기층 민중에 대한 애정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마련한다.

 

 

"도 대표 전통시장 정보 여기 있네” [강원도민일보 / 2012.08.18]
정영신 씨 ‘한국의 장터’… 정선장 등 소개
전국 5대장으로 꼽히는 동해 북평장을 비롯해 삼척장, 정선장, 태백장, 평창장, 홍천장, 횡성장 등 도내 대표적 장터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책이 출간됐다.
사진가이자 소설가인 정영신이 쓴 ‘한국의 장터’ 는 지난 25년간 도내를 비롯해 전국의 오일장을 돌며 그곳 사람들의 가난하지만 인정 넘치는 삶을 사람냄새 나는 흑백사진과 맛깔스런 글로 채워넣은 책이다.
이 책은 사진을 통해 전국 장터의 어제와 오늘을 읽는 사진집이면서, 전국 팔도의 대표 오일장 82곳의 장터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인문학적 자료집이기도 하다.
책은 전국 오일장을 모두 9개 도별로 분류하고, 다시 가나다순의 군 단위로 나눠 정리했으며, 각 장마다 장이 열리는 장날과 지역특산물을 게재해 독자들이 장터 정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
생산자이자 판매자인 사람들이 만나 자연스럽게 난전을 이루고 상업과 문화를 일궈 살아가는 장터는 사람살이가 살아 숨 쉬는 삶의 터전이자 정을 나누는 광장이기도 하다.
이 책은 한국의 오일장이 자본주의 물결 속에서 걸어온 발자취를 살피고, 사라져 가는 우리 문화에 대한 안타까움과 잃어버린 이웃에 대한 그리움, 기층 민중에 대한 애정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마련한다. 그리고 빈자리만 있으면 보자기를 펼쳐 호박 한 덩이를 팔아도 행복했던 시절로 되돌아가는 시간 여행을 할 수 있기를 권한다. 눈빛. 480쪽. 2만9000원. 최경식기자

 

25년간 장터를 누벼 만든 책, '한국의 장터' [NEW DAILY / 2012. 8. 25]

정상윤기자

1987년부터 25년 간 한국의 시골 장터를 기록해 온 사진집 ‘한국의 장터(눈빛출판사)’가 출간됐다.

사진가이자 소설가인 정영신은 25년간 전국 오일장을 돌며 사람들의 가난하지만 인정 넘치는 삶을 흑백사진과 글로 담았다. 전국 오일장을 총 9개 도별로 분류하고, 다시 가나다순의 군 단위로 나누어 정리했으며, 각 장마다 장이 열리는 장날과 지역특산물을 게재해 독자들이 장터 정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

"장터에 가면 고향의 냄새와 맛, 소리와 감촉까지 느낄 수 있다"

물건 파는 일보다는 사람 만나는 일이 즐거워 장에 나온다는 할머니, 혹시라도 장터에서 사돈을 만날까 싶어 가장 좋은 옷을 꺼내 입고 나온 할아버지, 첫 마수를 잘 했다며 기분 좋게 웃는 아주머니, 뛰어난 입담으로 사람들을 웃기는 아저씨가 사진 속에 살아 있다.

한국의 오일장이 자본주의 물결 속에서 걸어온 발자취를 살피고, 사라져 가는 우리 문화에 대한 안타까움과 잃어버린 이웃에 대한 그리움 및 서민들에 대한 애정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마련한다.

발간과 함께 8월 8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인사동 덕원갤러리에서는 한국의 장터 모습을 정돈된 흑백사진으로 만나볼 수 있는 <정영신의 장터> 사진전이 열린다.

 

 

"장터는 지역 문화 꽃 피우는 박물관" [한국일보 / 2012.8.25]

인터뷰 / 손효숙기자

소설가 겸 사진작가 정영신씨 사진집 '한국의 장터' 출간
25년간 300여곳 순례·기록
"잊혀져가는 애환 계속 담을 것"

 

장터는 지역의 생활문화를 꽃피우는 곳입니다. 지역 특유의 냄새, 맛, 소리와 사연을 접하려면 5일장 만한 곳이 없습니다." 정영신씨 제공

떡메로 쳐서 찹쌀떡을 만드는 아낙, 직접 캐온 나물과 약초을 좌판에 놓고 기다리는 노인들, 장터 곳곳을 누비며 벌어지는 풍물놀이패의 신명나는 놀이판 ….

 

소설가 겸 사진작가 정영신(54)씨의 최근 사진집 <한국의 장터>에 나오는 삶의 현장들이다. 사진집에는 정씨가 1987년부터 전국의 시골장터를 돌아다니며 찍은 430여장의 흑백 사진들이 들어 있다. 장터의 유래와 지역 특산물 등 발품을 팔지 않으면 얻기 힘든 소중한 정보들이 사진과 함께 소개돼 있다.
정씨는 24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장터라는 공간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그 지역의 생활문화를 꽃피우는 무대"라고 정의했다. "전국에 흩어진 장터들은 우리가 소중하게 지키고 보존해야할 생활문화 박물관"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시골(전남 함평) 출신인 탓에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장터를 드나들었다는 그는 신춘문예를 준비하던 87년 본격적으로 장터를 찾게 됐다. "장에 가면 소설의 소재와 주인공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흥정하는 상인과 손님, 놀라운 입담으로 사람들을 웃기는 아저씨 같은 장터를 지키는 사람들을 만나 친해지면서 그곳의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소설을 쓰기 위해 찾아갔던 장터에서 사람에 매료돼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그렇게 전국 각지의 장터를 찾아 다닌 지 벌써 25년. 그동안 가본 장터만 300여곳이고, 장터의 사람과 풍경을 기록한 사진은 줄잡아 4,000여장에 달한다. <한국의 장터>엔 81곳의 장터가 등장한다.
"장터 사진만 사반세기 고집한 사람은 드물 겁니다. 한 길을 걸어왔더니 어느새 '장터 사진작가'라는 별명이 붙어있더라고요. 언제부턴지 몰라도 단순히 기록만 할 것이 아니라 사라져가는 장터에 대한 민속학적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어요. 사진과 더불어 장터에 대한 글을 엮어 정리한 것도 이 때문이지요."
정씨는 "이곳 저곳 돌아다니면서 곳곳에 숨어 있는 사람이야기와 사연을 듣다보면 시골 장터의 가치를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전국 장터는 대략 600여 곳. 소설가보다 사진작가가 더 어울려보이는 그는 아직 가보지 못한 장터 300여 곳에 대한 기록을 이어가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인터뷰] ‘한국의 장터’ 펴낸 사진가 정영신 [농민신문 2012.8.29 문화.생활]

신춘문예 낙선 소식에, 스물아홉의 소설가 지망생은 장터를 떠올렸다. ‘아직 사람을 보는 눈이 부족한 거야.’ 그는 고향인 전남 함평을 시작으로 전국의 오일장을 찾았다. 그게 올해로 27년째. 최근 사진집 한국의 장터(눈빛출판사)를 낸 사진가 정영신씨(55·사진) 이야기다.
“처음 1년은 장터 할매들과 사귀었어요. 갈 때마다 양손에 주렁주렁 얻어 왔죠. 제가 한 거라곤 이것저것 물어보고 담배 한갑 사 드린 것밖에 없는데…. 이 정 많은 장터를 기록으로 남겨야겠다 싶었습니다.”
사진집엔 그렇게 찍은 오일장 304곳의 사진 430컷이 도별로. 다시 시.군별로 정리돼 실려 있다. 각 장의 역사와 장터 사람들에 대한 기록도 더했다. 서문을 쓴 한정식 중앙대 명예교수는 이를 두고 “장터에 관한 최초의 인문학적 보고서”라고 평했다.
479쪽이나 되는 두툼한 사진집을 작가와 함께 들춰봤다. 초기 사진엔 저고리 입고 쪽찐 할머니. 두루마기 차림에 갓까지 쓴 할아버지가 제법 보인다. “요샌 그런 분들 못 봐요. 아. 고창장의 그 할아버지! 사진 찍는다고 얼마나 혼났는데요.” 보따리 밖으로 고개 내민 강아지도 여럿 된다. “팔러 나온 사람도 있고. 사서 가는 사람도 있어요. 시골에선 개가 식구예요.”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시골 장터에 와 있는 듯하다.
“호박 한개 들고 와선 하루 종일 앉아 있는 할매들 보면 맘이 짠해요. 그러면서도 정은 어찌나 많은지 덤이 반이지요. 평생 함께한 기계를 어루만지는 뻥튀기 할아버지들의 눈빛은 또 얼마나 맑은지요.”
사진집 출간을 즈음해 가졌던 전시회도 21일로 끝났다. 작가는 다시 일주일에 3~4일은 장터로 향할 것이다.
“더 안타까운 건 장터가 사라지고 있다는 거예요. 지역 농민이 아닌 외지 상인이 주인 행세를 한다. 현대화된 시설이 오히려 불편하고 어색하다는 이야기도 나오고요. 이용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해 바꿀 건 바꾸되 지킬 건 제대로 지켰으면 합니다.”
손수정 기자 sio2son@nongmin.com

 

전국 장터의 깨알 같은 표정 [한겨레21] 2012.09.07
1987년부터의 시골장을 기록한 <한국의 장터>

즐비하게 늘어놓은 말린 생선이며 과일이며 힘센 콧김을 내뿜는 소까지 사진만 들여다봐도 배가 부르다. 어디 먹을거리뿐인가. 달랑 혼자 청양 화성장에서 장사를 하는 장씨 아주머니, 달랑 당근 4개만 가지고 나와 지나는 사람 얼굴 보려고 좌판을 벌인 할머니, 보석과 가방을 팔며 삼척장을 돌아다니는 인도와 파키스탄 사람들 등 사람 이야기는 더욱 푸짐하다. 정영신씨가 1987년부터 전국 시골장터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한 <한국의 장터>는 전국 장터의 깨알 같은 사연을 성실히 담았다. 장터 사이로 기차가 지나가는 광양 옥곡장, ‘바우덕이 축제’가 열리는 안성장터 등 사라져가는 장터문화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정영신 글·사진, 눈빛 펴냄, 값 2만9천원.

         
 
여기 당신의 어머니·아버지가 보이나요? 오마이뉴스|2012.10.28
 
[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손주놈 오면 줄라고 넉 달 동안이나 시렁에 매달아 놓았는디, 손주놈은 안 오고 돈도 아쉽고 해서 장에 갖고 나왔는디 맛 좀 보시랑게잉, 맛있제이?" - 구례 오일장터에서 만난 곶감 파는 할머니자전거를 타고 섬진강가 여행을 하다 곡성시장, 구례시장, 화개장터, 하동시장을 연이어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렇게 읍이나 작은 도시에서 재래시장을 마주칠 때면 겨울에도 마음이 푸근해지면서이런 시장들 사진을 모아 전시회도 하고 책도 내는 '장터 사진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해보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1987년부터 올해까지 이십 오년간이나 강화도에서 제주도까지 한국의 장터를 찍고 기록해온 사람이 사진집 < 한국의 장터 > 를 냈다. 역시 '인생도처유상수'라더니 먼저 실행하고 앞서가는 고수가 꼭 있다. 아무튼 전국의 전통 재래시장터에 매달려 이십여 년을 찾아가 지속적으로 사진을 찍고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 저자의 애정과 열정이 대단하다. 이런 일에 남녀를 구분하고 싶진 않지만 저자가 여성이란 점도 책속의 사진들 다시 한 번 보게 된다.저자는 처음에 장에 가면 소설의 소재와 주인공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신춘문예를 준비하던 87년 본격적으로 장터를 찾게 됐다고 한다. 기 싸움 하듯 흥정하는 상인과 손님, 놀라운 입담으로 사람들을 웃기는 아저씨 같은 장터를 지키는 사람들을 만나 친해지면서 그곳의 매력에 빠져들었다고.그렇게 전국 각지의 장터를 찾아다닌 지 벌써 25년. 그동안 가본 장터만 300여 곳이고, 장터의 사람과 풍경을 기록한 사진은 줄잡아 4000여장에 달한단다. 사진집 < 한국의 장터 > 엔 그중 추려낸 82곳의 오일장터와 400여 장의 사진들이 등장한다. 소설가라는 또 다른 직업을 가진 여성 작가다운 생생하고 세밀한 장터 묘사도 사진과 더불어 돋보이는 훌륭한 포토에세이집이다.장터에 관한 최초의 인문학적 보고서. 장터라는 공간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그 지역의 생활문화를 꽃피우는 무대요, 전국에 흩어진 장터들은 우리가 소중하게 지키고 보존해야할 생활문화 박물관이다. (본문 가운데)저자가 25년 동안 찍어온 장터 사진에는 그 지역 사람들의 생활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마수걸이(맨 처음으로 물건을 파는 일)를 잘 했다며 기뻐하는 아주머니, 혹시라도 장터에서 사돈을 만날까봐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온 할아버지, 힘든 일을 마치고 시장 구석에서 담배를 태우고, 목을 축이는 사람들 등 그의 사진에는 우리네 서민들의 눈물과 웃음이 함께 한다. 탐욕스런 자본주의의 물결이 잠시 멈춘 곳이기도 하지만 대형 할인 마트에 아이들과 젊은 사람들을 뺏겨 버린 침체된 장터의 면면도 볼 수 있다.전국 82곳의 오일장터에서 찍은 400여 장의 사진들과 글을 감상하다보면 장바구니 사이로 목을 내민 강아지의 눈과 마주쳐 저절로 얼굴에 미소가 어리기도 하고, 호박 몇 개 채소 몇 단이나마 팔러 나온 자그마한 체구의 할머니를 보며 애잔한 심정이 들기도 하고, 사라져 가는 우리만의 아름다움과 문화에 대한 안타까움에 책장을 못 넘기고 사진 속에 눈길이 멈추는 순간들이 많아 사진집이지만 쉬이 다 읽기 어려운 책이다.사실 다큐멘터리 사진의 의미는 이런 데 있다. '작품'으로서의 예술성에만 묶이지 않고 진정성이 담긴 기록에 충실할 때 다큐멘터리 사진은 감동과 공감을 얻는다. 그리고 사진의 예술성은 바로 이러한 바탕 위에서 형성된다. 모든 예술이 인간의 삶과 유리되어서는 별 의미가 없지만, 특히 인간과 그 삶의 기록에서 벗어나서는 의미를 얻기 어려운 게 사진일 게다.이 책은 오일장터를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훌륭한 여행 안내서이기도 하다. 전국 오일장을 총 9개 도별로 분류하고, 다시 가나다순의 군 단위로 나누어 정리했으며, 각 장마다 오일장이 열리는 장날과 지역특산물, 저자의 에피소드와 사람들의 사연, 전래 이야기 등을 같이 넣어 독자들이 장터 정보를 쉽고 흥미롭게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크게는 강원도 동해 북평장에서 전라도 보성강가의 시골 석곡장, 배추를 팔면서 점도 봐준다는 제주 서귀포 고성장터 할머니까지 가보고 싶은 데가 한두 곳이 아니다. 저자가 알려준 장터 구경하기 팁 중의 하나로 오일장터는 파장 무렵이 가장 재미있다니 참고할 만하다. 흑백의 장터 사진에서 느끼는 삶의 속살장터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다 보면 다양한 삶을 보게 된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것 같다.제주 할망들은 또 다른 우리 엄마들을 이야기한다. 물질을 하고, 밭농사를 짓고, 남은 시간에는 장터에 나와 온갖 것을 팔아 가정경제를 살리고 자식을 교육시킨다. 이 땅의 엄마들이 있기에 산업이 발전해 가고 경제가 살아나고 농촌이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고향을 찾아가듯이 오일장을 찾았다면 고향과 같은 색깔을 만날 것이다. (본문 가운데)책 속 사진들과 글에서 저자는 장터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고달픈 삶을 외형적으로만 관찰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애환에 귀를 기울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 중의 하나는 사진들이 모두 흑백이라는데 있었다. 촬영 초기 1987년의 사진은 물론 2010년대의 장터 사진도 모두 흑백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렇게 흑백사진으로 찍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건 무슨 이유일까?칼라색감을 배제한 흑백사진은 뭔가 본질적이면서도 직관적인 힘을 지녔다. 풍경사진도 그렇고 특히나 인물이 들어간 사진은 그 사람의 겉모습보다는 표정 속에 숨은 내면에 대해 잠시 생각에 빠지게 한다. 풍경은 풍경대로 잔잔한 감동과 울림을 느끼게 되고. 사진을 찍은 후 시간이 한참 흘러도 느낌 있게 감상할 수 있는 '사진 누리기' 하기에 제격이다. 디지털 카메라에 흑백사진기능이 없어지지 않고 계속 남아있는 이유를 알 것 같은 사진집이다.여름이면 따가운 햇살에 양산을 받쳐 들고 겨울이면 손난로에 의지해 떨면서도 떠들썩한 장터 바닥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흑백사진은 정겨우면서도 눈물겹다. 힘든 일을 마치고 장터 구석의 선술집에서 목을 축이는 사람들, 자기 몸집보다 더 큰 봇짐을 머리에 얹고 집을 향해 분주한 발걸음을 옮기는 할머니, 봄에는 분무기를 고치고 여름엔 장화를 수선하며 30년 넘게 장터를 지킨 '맥가이버' 할아버지, 장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람들의 흑백사진은 내 뇌리에 오래도록 잔영으로 남을 것 같다.그런 흑백의 사진들 중 내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무척 힘들게 찍었을 장터에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 사진이 무척 인상적이다. "사람의 얼굴은 하나의 풍경이요, 한 권의 책"이라며 인간의 표정에서 삶을 읽으며 많은 글을 썼던 발자크의 말마따나, 여러 표정과 삶의 흔적 주름이 담긴 얼굴사진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나름대로 상상하는 것도 즐겁고 내 삶을 성찰해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이런 전통 재래시장들이 지역은 물론 나라의 내수 경제 활성화와 도시와 마을의 공동체 붕괴 방지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임을 잘 아는 서유럽 국가들에서는 도시에 대형마트가 마구 들어서는 것을 규제하는 것은 물론 유명 관광지를 제외하곤 기존의 대형마트나 백화점들도 주말과 공휴일에는 개점을 하지 않는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어떤가. 책을 읽다보니 동네에서 가까운 서울 망원동 월드컵시장 상인들이 떠오른다.수년 전 생겨났던 대형할인마트가 인근에 또 들어서려 해 주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재래시장이 타격을 받을 것이 자명하자, 이에 맞서 시장 상인들이 저항하고 있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2003년 이후 7년 사이에 전통 재래시장은 178곳이 문들 닫았고, 기업형 수퍼마켓이 695곳 늘었다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다.일제 강점기 때인 1914년 일본은 우리나라 각 면소재지에 시장을 1개씩 개설하라는 시장 규칙을 공포하였다고 한다. 일제는 우리나라의 지역 경제를 살려 물산을 착취할 목적이었다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사회적 약자인 서민들을 보호하고 지역경제와 마을 공동체를 살리는데 있어 일제 강점기시대만도 못한 것인지 안타까울 뿐이다.덧붙이는 글 |< 한국의 장터 > (정영신 글·그림 | 눈빛 아카이브 | 2012. 08 | 2만 9,000원)


이야기가 있는 시골장터 에필로그

 장터에 가면 호주머니 속에 숨어있던 고향이 사람들 틈 속에서 걸어 나온다. 이른 아침부터 보따리행렬은 생활을 진열하기 위해 장터 속으로 들어온다. 농산물을 가지고 장에 나오는 사람들 모습은 비장하다. 좋은 가격에 농산물을 넘기려는 사람들 표정이 활시위처럼 팽팽하기만 하다. 작은 경제가 일어서는 모습이 장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여인네들의 보따리 속에는 자녀들의 꿈과 희망이 숨어있다. 여인들에게 땅은 보물창고다. 온갖 씨앗에 비밀을 담아 봄이 되면 보물창고에 시간을 심어 넣는다. 바람소리와 풀소리 그리고 물소리마저도 비밀이 되어 땅속에서 만나게 된다. 여름 내내 밭을 매면서 호미끝자락에 비밀을 묻어놓아 가을이 되면 캐내는 것이다. 드넓은 땅에 콩등을 심어 놓고도 어느 밭에서 순이 제일 먼저 돋아나고, 어느 농작물에 마지막으로 해가 스며드는 것까지 알고 있다. 장날이면 자연도 보따리에 숨어 장터까지 따라 나온다. 장터란 이렇게 땅이 있어 장이 서는 광장이다.

장터에 가면 고향의 냄새와 맛, 소리와 감촉까지 느낄수 있다. ‘손주놈 오면 줄라고 넉달동안이나 시렁에 매달아 놓았는디, 손주놈은 안오고, 돈도 아쉽고 해서 장에 갖고 나왔는디 맛좀보시랑게 잉, 맛있제이?’ 곶감을 팔러 나온 할머니다. 이렇듯 장터에는 그 지방 사람들의 생활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장터를 찾아다니다 보면 인간적인 면을 수없이 경험하게 된다. 장꾼이 아닌데도 가지고 나온 물건은 빈자리만 있으면 펼쳐놓는다. 이 물건들은 지난 5일 동안 장터나들이를 위해 마련해 놓은 것들이다. 그래서 잘 차려 놓은 좌판보다는 길모퉁이에서 흥정하는 것을 즐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중심은 사람이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 장터이고, 모든 것은 장터로 통하고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물결은 장터에서 잠시 멈춘다. 돈보다 귀한 사람의 정(情)이 보따리마다 숨겨져 있어 사람들은 장터로 몰린다. 지금도 손수 농사지어 갖고 나온 가지2개와 당근 몇 개를 길 한쪽에 펼쳐놓고 질펀하게 앉아 사람들과 이마를 맞대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장에 나온 사람들 얼굴을 보기위해 앉아 있는 할머니를 네모 안으로 들여보내는 시간이다. 네모 안에 갇힌 시간은 언제든 다시 풀어놓을 수 있다. 그리고 물건을 많이 판 사람이나, 조금 판 사람이나, 고르게 떨어지는 햇살은 똑같이 따뜻하기만 하다.

오백 원 하는 무 하나를 사고, 팔 때도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는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얼굴을 맞대며 고추농사를 걱정하던 노인들은 국밥집에서 마시는 막걸리잔 위에 걱정을 부려놓기도 한다. 집에서 기르던 닭 한 마리 판돈으로 손주 놈 운동화 한켤레 살 수 있는 곳이 장터다. 텃밭에서 수확한 채소와 농로에서 잡은 미꾸라지 한 그릇을 가져온 할머니는 생산자이면서 판매자가 되는 곳도 장터다. 난전을 펼쳐놓고 장구경을 다녀도 주인 없는 물건에 손대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이 장터마당이다. 집에서부터 할머니 보따리를 따라 나온 정(情)은 덤이 되어 사람들 보따리 속으로 들어가는 곳 또한 장터다. 인터넷에는 없는 인간관계가 생겨나 상업과 문화가 만나는 곳이다. 상주(喪主)한테 첫마수를 해 물건이 동티나게 팔렸다며 길 마담을 불러 커피 한잔씩 돌리는 장돌뱅이가 담벼락 속에 숨어있는 고향과 손잡는 시간이다. 이것은 시골장터에서 맛보는 정겨움이다. 장터라는 공간 안에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키는 것은 여인네들의 입소리(口音)다. 내가 만난 할머니얼굴에서 아쟁소리가 들리고, 또 다른 얼굴에서는 남도의 육자배기가 들린다. 자연과 흙과 나무에서 흘러나온 푸르디푸른 이야기가 할머니 얼굴에 숨어 있어 지금도 각 장터를 찾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1987년부터 시작해 사물들이 눈을 뜨고, 말을 걸어오고,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색(色)으로 들릴 때 중간에서 시간을 잘라내는 놀이를 했다. 멈춘 시간이 역사로 남아있기에 지금도 장터를 찾아 나서고 있는 것이다.

농촌이 늙어가고 있기 때문에 시골장터가 쇠퇴해져간다는 이야기는 장꾼들을 통해 듣는다. 유통시장이 개방되고, TV홈쇼핑과 인터넷쇼핑으로 인해 오일장은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IMF외환위기로 인한 실업자들은 장터로 몰려 장에 나오는 사람보다 난장을 펼쳐놓은 장꾼들이 더 많은 경우도 있다. 장터에서 내는 장세는 200원에서 4,000원이다. 장에 도착해 눈독 들였던 난전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아귀다툼은 어느 장에서나 일어나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1914년 일제강점기때 일본은 면소제지에 시장을 1개씩 개설하라는 시장규칙을 공포하였다. 우리자원을 수탈하기 위한 일본의 횡포였지만 재래시장을 확산시킨 긍정적인 면도 있다. 시골장터를 찾아 다니다보면 면소재지에 서는 장이 없어진 곳도 많이 있지만, 마을주민들이 나와 장터를 지키고 있는 곳도 있다. 2003년 이후 7년 사이에 전통시장은 178곳이 문을 닫았고, 기업형수퍼가 695개가 늘었다는 신문기사도 있었다. 그러나 장이 이미 폐쇄 되었는데도 난장을 펼쳐놓고 장사를 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반평생을 장터에서 살았는데 장은 없어져도 장바닥은 남아 있다며, 사람이 있는 한 장에 나온다는 85세 된 할머니도 있었다. 장터에는 우리의 삶이 살아있고, 우리가 만들어낸 시간이 살아있어 고향에 온 경험을 하게 된다.

수천 년의 시간이 머무는 이스탄불에는 500년을 상징하는 그랜드바자르라는 세계최대의 전통시장이 있다고 한다. 전세계 사람들이 4천개의 상점을 가기위해 65개의 거리와 골목을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경제사는 인류최초의 상인이 행상이라고 밝히고 있다. 서동이 신라에서 마장사를 했다는 설은 삼국시대에도 행상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우리나라전통시장은 17세기말무렵인 18세기초에 전라도 나주에서 장이 처음으로 열리기시작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옛 장터에서는 남사당놀이와 소리꾼들이 사람들을 불러놓고 판소리공연을 하는등 농민들의 복합 문화공간이었다. 그러므로 시골장터는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에서 벗어나, 경제와 문화가 만날 수 있는 소통의 공간으로 바뀌어야 한다. 장터에서 생활의 활력과 문화의 충격도 함께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지역사람들이 생계수단으로서의 장터를 넘어, 직접 생산하는 상품에 대한 자긍심을 갖도록 환경의 변화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장터의 주인은 농민들이다. 농촌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로 도시인들이 믿고 살 수 있는 장터로 활성화시켜야 한다. 오죽하면 ‘장꾼들의 숨소리만이 진짜’ 라는 말이 나돌겠는가. 땅은 모든 생명을 만들어 낸다. 지역농산물로 만들어가는 농민장터가 살아나야 시골장터 또한 살 수 있다. 생활문화의 꽃을 피우는 난장에서 농민이 애지중지 기른 농산물을 사고파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시골장터에 가면 이 시대 마지막 역사의 혼이 살아 있다. 두꺼운 책처럼 펼쳐보면 지혜가 들어있는 말하는 박물관이 장터라는 광장이다.

‘고고학’을 접하듯 장터를 관찰하라며 격려해주신 한정식선생님(전중앙대사진과교수)은 장터 속에 가려진 것을 찾아 작업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앞으로 계속해 나가야할 숙제다. 장터사진을 계속할 수 있도록 불을 지펴주신 눈빛출판사 이규상사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이땅에 살고 있는 모든 어머니께 이책을 바친다.

2012년 6월 정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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