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정영신의 장터순례⑼경남 창원 경화장

난장 위로 흩날리는 꽃비…‘벚꽃장’으로 유명

일제강점기때 감시 쉽도록
경화동에 한국인만 살게해
되레 민족의식 싹트며 장터 날로 커져

채소장사하며 35년간 글쓴 할머니
동의보감 읽으려 한자 공부 할아버지
장터는 ‘살아 움직이는 박물관’
 

 

  해마다 벚꽃이 피는 계절이면 봄의 향연 군항제가 경남 창원시 진해구 전역에서 펼쳐진다.  경화장(진해구 경화동)을 찾은 날은 바람이 불고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려 난장 위로 꽃비가 흩날리고 있었다. 봄에 취하기엔 매서운 날씨였지만, 휘날리는 벚꽃으로 금방이라도 하얗게 물들 것만 같은 처연한 풍경이었다. 장바닥으로 떨어지는 꽃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엔 세상살이가 너무 팍팍하다는 할머니들 말씀에서는 진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진해 벚꽃은 일제강점기에 도시 미관을 위해 벚나무를 가로수로 심은 데서 유래한다. 광복 후에는 일본 나무라며 벚나무를 모조리 베어 버렸다. 하지만 이후 왕벚나무가 우리나라 고유 수종으로 확인됐고, 1960년대 관광도시 계획에 따라 35만여그루의 벚나무를 새로 심으면서 진해는 다시 ‘벚꽃의 도시’가 되었다.

 ‘벚꽃장’으로도 유명한 경화장에서는 일본이 세운 100년 전의 도시계획도 엿볼 수 있다. 일본은 1910년 이후 바둑판 같은 형태의 주거단지를 경화동에 만들었다. 조선 말까지 진해에서 가장 큰 장은 풍호동에 있던 풍덕개장이었는데, 그곳에다 비행장을 만들면서 장터를 한국인 주거단지인 경화동으로 옮긴 것이라고 한다.

 경화동에 사는 김씨 할머니(92)는 17세에 시집와 지금까지 경화장에 나온다. 그러니 이 장의 역사를 훤히 알고 있다.

 “왜놈들이 우릴 감시할라꼬 한국인들만 몰아서 살게 한 기라. 안 그라마 와 한국 사람들만 여다 모았겠노.”

 일본이 경화동에 한국인만 거주하게 함으로써 감시를 쉽게 하려 했지만, 오히려 민족의식과 계급의식이 싹트며 장터가 날로 커졌다는 것이다.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다”고 장터를 자랑하는 김씨 할머니의 모습이 참 의기양양해 보였다.

 채소 상자 골판지를 뜯어 무릎 위에 올려 놓고 한땀 한땀 수놓듯이 글 쓰는 모습을 지켜보다 물었더니 전찬애 할머니(72)가 이렇게 답했다.

 “사람들한테 모욕을 당할 때 힘이 더 납니더. 그때마다 나는 할 수 있다고 글을 썼더니 그기 무기가 되고 자신감도 생기데예. 몇십년 동안 글을 써 보니 이기 행복이구나 싶습디더.”

 할머니는 장사를 하다가도 좋은 글이 생각나면 박스를 뜯어 써 온 지가 35년이 되었다고 한다. 장바닥에서 채소 장사를 하며 장소와 종이를 가리지 않고, 손님만 없으면 웅크리고 앉아 글을 쓴단다. 이렇게 쓴 글을 저녁에 집으로 가져가 원고지에 다시 옮겨 적으며 정리한다. 어릴 적 먹을 것이 없어 구걸했던 부끄러운 기억과 장터를 돌아다니며 겪은 온갖 수모가 글의 소재가 되었다.

 전씨 할머니는 세월이 흘러도 결코 잊지 못할 날이 바로 이런 글을 엮어 만든 책이 세상에 나오던 날이라고 회고한다. 노랗고 빨간 파프리카와 파릇파릇한 풋고추가 펼쳐진 좌판에서 고추를 고르던 박씨 할머니(78)가 한마디 거든다.

 “이 아지매가 경화장에서는 유명 인사인 기라. 책도 내고 여기저기 불려 다니면서 강의도 한다 안 카나.”

 빨갛고 노란 색색의 희망을 써 내려가는 전씨 할머니 어깨 위로 벚꽃 하나가 살포시 내려앉는다.

 장터 한쪽에서는 몸을 잔뜩 움츠린 굼벵이가 반원형의 똬리를 틀고 죽은 척하며 엎드려 있다. 암갈색의 입과 발, 말간 몸통과 감청색 엉덩이를 한 굼벵이가 햇빛을 받자 꼼지락거리며 머리를 박는다. 손가락 끝으로 살짝 건드리니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라도 하듯 굼실굼실 머리를 들고 도망을 친다.

 32년째 굼벵이와 참개구리 등을 팔면서 병에 대한 상담까지 하고 있는 김남권씨(62)는 노점상인회장이기도 하다. <동의보감>을 공부하기 위해 한자 공부도 열심히 한다며 글씨를 쓴 두루마리를 펼쳐 보인다. 장터에 가면 이처럼 장인 정신으로 장사하는 사람들도 여럿 만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장터가 살아 움직이는 박물관이 되기도 한다.

 경화장은 3일과 8일에 선다. 각종 채소와 과일이 특산물이다. 경화장 외에 진해에서 열리는 장으로는 웅천동의 웅천장(4·9일)과 마천동의 마천장(5·10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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