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정영신의 장터순례⑽ 인천 강화장
화문석·꽃방석·꽃삼합…왕골공예품 즐비
고려땐 천도한 이후 생겨
일찍이 외국과 직물·도자기 등 무역
상거래 활발해지자 보부상들 몰려
전등사 전설 등 숱한 이야깃거리
인삼막걸리·밴댕이회 ‘일품’
고소한 순무김치도 입맛 자극
장터 맛은 사람 맛이다. 사람들이 어울려 형성되는 것이 장인데, 그중에서도 사람 중심의 장이란 느낌이 강하게 와 닿는 곳이 바로 강화장(인천 강화군 강화읍 갑곳리)이다.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만들어 왔고, 볼거리와 먹거리 또한 넘치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다섯번째로 큰 섬인 강화도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할 정도로 문화 유적지가 많아 역사가 숨 쉬는 곳이기도 하다.
옛날에는 강화읍내 동락천을 중심으로 웃거리장과 아랫거리장이 있었고, 새벽녘이면 아랫거리장 옆에 화문석장이 열렸다. 강화장은 고려 때 강화로 천도한 이후 생겼다고 한다. 외국 무역이 일찍 이루어졌기에 직물이나 화문석·도자기가 거래되기도 했다. 상거래가 활발해지자 보부상들이 하나둘 강화도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오일장이 서게 되었고, 1960년대에 상설시장과 함께 장터가 생겼다. 1993년에 강화장의 중심인 동락천이 복개되면서 이곳으로 100여명의 지역 주민들이 농산물과 특산품을 싸 들고나와 난장을 펼쳐 장을 만들어 갔다. 지금은 2일과 7일이 드는 날마다 오일장이 열린다.
김포에서 강화대교를 건너면 강화장의 파라솔이 사람들을 반긴다. 봄날 장터를 둘러보면 할머니들 보자기 위에 들판이 통째로 마실 나온 것 같다. 사람들 발자국 소리에 놀란 듯 나물들이 고개를 바짝 곧추세우더니 할머니 손길이 닿자 어느새 제 모양을 갖춘다. 시집가는 색시처럼 들떠 있는 색색의 나물에서 고향을 만난다.
“화문석 하나 만드는 데 60만번의 손길이 닿아야 한다”는 유의순 할머니(80)를 화문석 파는 가게에서 만났다. 송해면에서 온 유씨 할머니는 30년 동안 화문석을 짜 왔기에 요즘도 장에 나오면 화문석부터 구경한다면서 “그 시절 장날은 사람들 솜씨 구경하는 재미도 있지만 매겨지는 값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날이기도 했다”고 회고한다. 토산품매장에는 화문석과 꽃방석·꽃삼합 등 손으로 만든 완초(왕골) 공예품들이 즐비하다. 화문석 매장을 운영하는 김영숙씨(73)는 지금도 인근 마을에서 화문석 만드는 사람들로부터 물건을 받아 ‘강화 화문석’만 판다고 한다.
“내가 장아찌 만드는 일에만 매달렸으면 대한민국 돈은 전부 내 주머니에 들어왔을 것”이라며 큰소리치는 김화자씨(74)가 쑥으로 만든 송편과 장아찌를 펼쳐 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들어 맛을 보인다. 맛보기로 건네준 송편을 받아먹던 어느 할머니가 대뜸 “전등사에서 벌거벗은 여인이 추녀를 떠받들고 있는 것을 보았느냐”고 묻는다. 전등사 전설의 한토막으로, 사랑하는 여인이 자신을 버리고 도망치자 절을 짓던 목수가 그 배신에 대한 노여움으로 벌거벗은 여인상을 조각해 평생 추녀를 이게 했다는 이야기다. “여편네들이 모이는 장터는 그런저런 이야기들을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해. 그러니 이거 말고도 숱한 이야깃거리가 떠돌고 있지.” 전등사 나부상 이야기를 꺼낸 박씨 할머니의 귀띔이다.
강화는 북한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한국전쟁 이전에는 이곳 사람과 북한 사람이 결혼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곳곳에서 북한 사투리가 묻어나는 말씨가 들리기도 한다. “빨리 오시겨” 하는 지인의 소리에 놀란 박씨 할머니가 총총걸음으로 사라지는 장터 안 풍경이 살아 꿈틀대듯 정겹다.
지푸라기에 엮여 온 달걀에서는 병아리가 뛰쳐나올 것 같고, 갓 쓴 엿장수의 가위 소리에 놀란 사물들은 춤을 추듯 출렁거린다.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삼랑산성 밑에서 자란 쑥은 역사를 이야기해 주고, 보자기에 펼쳐진 돌미나리는 새초롬하게 초록을 내뿜고 있다. 물동이 일 때 쓰는 똬리와 물 푸는 데 쓰는 표주박, 수수 줄기로 맨 빗자루까지 옛날 시골에서 사용했던 물건들이 모두 나와 있어 마치 장터가 이동 박물관 같다.
장옥 2층에는 먹거리도 풍성하다. 인삼막걸리와 밴댕이회도 일품이지만, 강화 특산품인 자줏빛 동그란 순무를 듬성듬성 썰어 밴댕이젓갈로 양념한 순무김치의 고소함 또한 입맛을 자극한다. 음식 장사를 한 지 40년이 넘었다는 방씨 할머니(78)가 “이 짓이라도 하고 있어 내가 살지, 언제까지 할지는 나도 모르갓시다” 하며 또 음식을 만든다. 방씨 할머니도 다른 장꾼들도 모두 살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 쉬지 않고 일하기 위해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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