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정영신의 장터순례⑻전남 영암 독천장 (2013.4.15)

온갖 씨앗 펼쳐놓은 좌판 둘러앉아 ‘두런두런’

원래 신북면 용산리에 서던 장
풍수지리설 따라 옮겨왔다고…
터미널 앞 좁은 골목길 따라가면
어물전·과일전 등 눈에 들어와
인근엔 영암장·신북장·시종장 등도
 

 

“독천장은 쩌그 용산 마실서 독천으로 옮겼다고 합디다. 옛날이야기제. 거 뭐시냐 풍수지린가 뭔가 해쌌드만 음기가 세다고 합디여. 일가들끼리 응큼한 일이 자주 일어나 장을 이리 옮겼제.”
 “어째 그 이야기는 뺀단가이. 우시장을 맹글어야 마실이 좋아진다고 하천에다 우시장을 열었었제. 소시장 없어징게 지금은 거기다 차들 세우고 그라제.”
 

 

전남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 독천장에서 만난 장씨 할머니와 김씨 할머니가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가 한창이다.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원래 신북면 용산리에 서던 장을 이곳 독천리로 옮기게 된 사연이다.

 지금 장터의 북쪽이 명당이라 어느 집안에서 거기에 묘를 썼는데, 과연 자손이 번창했으나 친족끼리 간통이 잦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묏자리를 옮길 수는 없어 용산리에 서던 장을 묘지 앞으로 옮겼다는 것. 남자들이 많이 모이는 장터를 열면 음기를 가라앉힐 수 있다는 풍수지리설을 따른 것이다. 이런 전설이나, 마을의 평화를 위해 우시장을 만들었다는 내력이나, 모두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 살아가는 이야기다.

 입대를 앞둔 손자에게 먹이려고 장에 나와 기러기오리(사향오리)를 사 가는 박안임 할머니(76) 눈가에 봄 햇살이 지나간다. “요것이 오리보다 맛나다고 허요. 그래서 샀는디 손지가 먹을지 모르겄소. 시상이 좋아져 군대가 나아졌다고는 헌디, 그래도 새끼 보낼려고 허니 맴이 짠허요.”

 봄에는 씨앗을 파는 곳이 많아진다. 온갖 종류의 씨앗을 펼쳐 놓은 이기림 할머니(78) 좌판 옆으로 인근에서 놀러온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농사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씨 할머니는 스물두살 때부터 보따리를 이고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면서 장사를 했다. “새끼들 배꼬리나 채워 주려고 시작했는디, 시방은 적게 먹어야 오래 산다고 티비에서 그럽디다. 시상 참 많이도 변해뿌렸제.” 할머니들 옆에 앉아 이야기를 듣다 보면 동문서답이 많다. 듣는 사람 없는 혼잣말도 잘한다. 상추씨 1000원어치를 산 구씨 할머니(73)도 마찬가지다. “땅은 보물 창고여. 콩농사해서 가을이면 솔찬히 돈을 만진당게. 똑같은 밭뙈기에서도 쑥쑥 자란 놈이 이쁘제.” 구씨 할머니 밭에는 오늘 장터에서 나눈 이야기들이 들어갈 것이다. 바람 소리, 풀 소리, 물 소리도 비밀이 되어 밭 속으로 들어간다는 게 구씨 할머니 이야기다.

 웅장한 월출산과 널따란 들녘이 수채화처럼 펼쳐진 영암은 2200여년의 역사를 지닌 고장이다. 일본에 천자문과 백제 문화를 전해준 왕인 박사, 풍수지리의 대가인 도선 국사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좋은 일은 서로 권하고 어려운 일은 서로 돕는 구림마을의 대동계는 500년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다. 새로운 계원을 받아들이려면 만장일치가 되어야 하기에 계원의 자식이면 아무것도 묻지 않고 혼사를 치렀다고 할 만큼 전통 있는 모임이다.

 이 유서 깊은 고장에서, 4일과 9일이 드는 날이면 독천장이 선다. 독천터미널 앞으로 좁은 골목길을 따라가면 어물전과 과일전, 농기구 파는 곳이 눈에 들어온다. 삽을 사서 둘러메고 가는 안정일씨(73)는 옛날 장터가 그리운 표정이다. “뻘이 살아나면 영암이 훨씬 좋아지제. 옛날 소시장 있을 때는 씨름판도 열고 각설이패들 장단에 춤도 추고, 볼거리가 참 많았는디…. 그때 생각하면 시방 장은 장도 아니여.” 열여덟살 때부터 장에서 농기구를 판다는 박일수씨(71)가 한마디 한다. “아따, 아재! 지금은 독천낙지 먹으러 사방 군데서 옵디여. 시류에 맞춰 살아야제 어쩌겠소. 아재는 뻘밭은 잊어뿌리고 농사나 잘 짓시오.”

 영암호가 생기기 전에는 낙지의 주산지가 독천 옆에 있는 미암마을이었다. 영암 들녘에서 월출산을 올려다보면 누워 있어야 할 산이 꼿꼿하게 서 있다.

 영암에는 독천장 외에도 달맞이쌀과 월출산토마토, 황토고구마로 유명한 영암장(5·10일), 장수풍뎅이 등 곤충의 삶을 살펴볼 수 있는 신북장(3·8일), 달맞이 풍경이 좋은 시종장(2·7일), 왕인박사축제가 열리는 구림장(2·7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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