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정영신의 장터순례(6) 충남 천안 아우내장터 (2013.3.15)

 

 

먹으면 애국시민 되는 된장 팔아유~”

 

1918년 개설…‘만세운동’ 유명
60년째 장터 지킨 ‘떡할머니’
손님 옷차림만 봐도 대소사 훤해
인근 대로변 ‘병천순대’ 식당엔
맛보려는 사람들 길게 늘어서

 “애국 시민 여러분! 아우내장터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던 유관순 누나가 이 된장 먹고 살았어유. 이 된장 먹으면 애국 시민 되는 거예유.”

 10년째 순된장(간장을 빼지 않은 된장)을 팔고 있는 홍성혁씨(48)가 시장이 쩌렁쩌렁하게 울리도록 소리치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된장을 맛보인다. 매년 3월1일이면 태극기를 걸고 장사한다는 홍씨는 “이렇게라도 해야 아우내장터를 찾는 사람들에게 유관순 누나를 알리지유” 하며 질항아리에서 된장을 푼다.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병천리의 아우내장터는 유관순 열사가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독립 만세를 외친 역사 깊은 곳이다. 1919년 3월1일 서울과 평양 등 전국 6개 도시에서 동시에 독립 만세 운동이 시작됐다. 한달 후 장날이던 4월1일(음력 3월1일) 아우내장터에서 터져 나온 독립 만세 함성은 비폭력 만세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기폭제가 되었다. 전 국민의 성금에 힘입어 1987년 천안시목천읍에 독립기념관이 문을 열면서, 유관순 열사의 사당을 등지고 선 아우내장터에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렇듯 자랑스러운 역사를 간직한 아우내장터를 찾았다. 독립의 열기로 뜨거웠을 94년 전의 장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둘러보니, 바람에 펄럭이는 장꾼들의 천막이 흡사 그때의 태극기 물결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우내장터는 1918년에 개설됐다. 지금은 1일과 6일이면 아우내슈퍼를 기점으로 난장이 펼쳐진다. 투박한 질항아리 같은 소박함이 묻어나는 좌판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이 오늘만큼은 애국자로 보인다.

 서문예 할머니(87)는 60년째 아우내장터를 지키고 있는 장꾼이다. 지나가는 사람들 옷차림만 봐도 ‘내일 저 집 잔치하겠구나’ ‘저 집은 오늘 제삿날이구나’ 등 주변의 대소사가 훤하단다. 할머니는 손수 만든 떡이 맛있기로 유명해 ‘떡할머니’란 별명으로 불리지만, 손맛이 담긴 메주도 함께 팔아왔다. 그런데 이번엔 좌판에 메주가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 작년에 잊어버렸던 메주는 찾으셨어요?”하고 물었더니 고개를 흔들면서 잠자코 떡을 썬다.

 지난해 왔을 때 할머니 좌판에서 한판 소동이 일어났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메주가 사라진 것이다. 장터를 돌다 보면 연세 많은 노인을 속이는 사람이 간혹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들은 여전히 덤도 듬뿍 얹어주고, 손수 농사 지은 것들에 대한 자긍심도 대단하다.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않기 위해 장사한다고 하지만, 다들 돈맛보다는 사람 사귀는 맛으로 장에 나오는 분들이다.

 장터 부근 대로변에서는 병천순대를 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선 풍경을볼 수 있다. 아우내장터의 몇몇 식당에서 팔던 순대가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지더니, 1998년에는 천안의 특색음식으로 지정됐고 지금은 순대골목을 이루었다.

줄지은 장꾼들의 파라솔 행렬 틈으로 음악 테입 장수가 틀어놓은 스피커에서 이미자의 '동백아가씨'가 구성지게 울려퍼진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라는 이미자의 동백아가씨가 흘러나오고 있다. 좌판 앞에는 장을 다본 할머니가 테이프를 들여다보고 있다. 농촌에서는 마당이나 하우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유행가라도 틀어놓고 아는 노래를 따라 부르다 보면 일이 즐거워진다는 할머니는 좋아하는 노래를 한동안 고르고 있다. 땅끝 1cm에서부터 올라온다는 봄 햇살 한줌이 할머니등 뒤의 보따리 속으로 들어가 할머니를 따라간다. 사람의 온기가 있기에 장터가 산다는 홍씨의 질박한 항아리 속에는 우리조상들의 지혜가 살아 있고, 생생한 우리네 삶이 묻어있다.

천안에서 열리는 장은 병천 순대로 유명한 아우내장(1,6일), 거봉포도로 유명해 ‘거봉포도축제’가 열리는 입장장(4,9일), 취나물이 유명한 성환장(1,6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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