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부터 30일까지 아라아트센터


무주장 (1989) 디지털프린트 400x270cm(사진=정영신)


[아시아경제 임온유 기자]


사진가 겸 소설가 정영신이 1980년대 시장 풍경을 담은 사진전 '장날'을 연다. 오는 24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 5층에서 열린다.

정영신은 지난 30년간 전국의 오일장 600여 개를 돌며 시골 사람들의 가난하지만 인정미 넘치는 삶을 사진과 글에 담아왔다. 

이번 사진전은 1980년대 초창기 사진들로 이루어졌다. 사람 사는 정에 전시의 초점을 맞췄다. 정영신은 "장터에 가면 고향의 냄새와 맛, 소리와 감촉까지 느낄 수 있다"며 "오일장들이 대형마트에 밀려나며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장날은 지역경제의 모세혈관"이라고 했다. 


남원장(1988) 디지털프린트 400x270cm(사진=정영신)


사진 속에는 물건 파는 일보다 사람 만나는 일이 즐거워 장에 나온다는 할머니, 장바구니 사이로 목을 내민 강아지의 정겨운 모습이 꿈틀거린다. 자기 몹집보다 큰 봇짐을 머리에 얹고 다닌다거나 따가운 햇살에 양산을 받쳐 들고 앉은 모습은 정겨우면서도 눈물겹다.

오래된 사진에서는 묵힌 장맛이 난다.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사진들은 각박하게 살아가는 오늘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사라져가는 우리 문화에 대한 안타까움과 잃어버린 이웃을 향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정영신은 "대형마트에서 느낄 수 없는 생생한 사계절을 장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며 "장에 가서 마트에서 주는 포인트 대신 사람의 손으로 건네주는 덤을 체험해 보라"고 권한다.

 

임온유 기자 ioy@asiae.co.kr




 

정영신의 장터순례(38)·청주 미원장

 

어르신들 말소리 웃음소리로 아직도 떠들썩~

4·9일 들어간 날에 장 열려
인근에 평야 발달…쌀 등 농산물 풍부
 

 

7월1일 청원군과 청주시가 통합되면서 미원장도 ‘청원 미원장’이 아니라 ‘청주 미원장’이 됐다. 미원장은 예부터 ‘쌀안장’이라 불렸다. 쌀이 떨어지지 않는 고을이라 ‘쌀안’이라 했다지만, 상당산성 안쪽에 있어 ‘산안’으로 불리다가 ‘쌀안’이 됐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미원(米院)이라는 지명은 이를 한자로 옮겨 쓴 것이다.

 미원장(충북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미원리)은 아직도 촌로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이제 장바닥에 떠도는 이야기라고 해봐야 잘나갈 때 무용담밖에 없다”는 이씨 할아버지(83)의 막걸리잔 위로 지나가버린 시간이 흔들리고 있을 뿐이다.

 우체국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이야기 삼매경에 빠진 수산리 박씨 할머니(90)의 사정도 비슷하다. “닷새마다 돌아오는 장날 나들이가 유일한 외출이유. 장에 나와야 사람 얼굴도 보고 얘기도 하고 웃기도 혀유.” 할머니는 장에서 만나는 사람은 모두 친구라며 웃는다.

 30년째 곡물장사를 하는 조덕님 할머니(78)도 얼굴이 환하다. “아무리 흉년이 들어도 쌀이 떨어지는 벱이 없는 동네였어유. 다른 디는 가물어도 여그 동네는 물이 마르지도 않아유. 헌디 요샌 잡곡이 좋다고 쌀은 쳐다도 안 봐유. 세상 참 많이 변했시유.” 됫박 위로 쌀을 수북이 담는 조씨 할머니 손잔등에 햇빛이 살포시 내려와 앉는다.

 이맘때 장터는 색의 향연이다. 텃밭에서 금방 수확해 온 여러 채소와 온갖 과일이 알록달록 펼쳐져 있다. 모양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오이와 호박의 수줍음은 초록으로 번진다.

 잿물과 폐기름으로 만든 빨랫비누를 길 위에 펼쳐놓은 이씨(67)가 지나가는 여인네만 보면 소리소리 지른다. “마트에서 파는 세제는 이 비누 못 따라와유. 하나만 사다 빨래해 봐유. 다음 장에 또 사러 오구만유. 한장에 천원이유~!” 아무리 외쳐도 반응이 신통치 않다. 그러나 길 한가운데 펼쳐진 만물상에는 모기장을 사려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모여든다. 잣대를 대고 크기를 재는 표정들이 사뭇 진지하기까지 하다.

 “쇠똥 먹고 자란 옥수수 좀 사가유~!” 지나가는 사람만 보면 외치던 이분순씨(61)가 마르면 맛이 없다며 부대에 옥수수를 주섬주섬 담는다. 영 안 팔리는 눈치다. 그런데 큰길가 트럭에 쌓인 옥수수는 순식간에 팔려나간다. 옥수수를 고르던 권태영 할아버지(87)의 말씀이다. “사람도 제각각이듯이 옥수수 맛도 다 달라유. 햇빛 많이 본 놈이랑 이슬 많이 받은 놈 맛은 전혀 다르구먼유.”

 미원면 지역은 길게 뻗은 구룡천과 미원천 유역으로 평야가 발달했고, 산간에서는 고랭지채소가 잘된다고 한다. 그래서 쌀을 비롯해 옥수수·감자·수수·고구마·청결고추와 은행·표고·산나물·대추·은행 등이 생산된다. 매년 9월에는 미원면 주민들의 화합을 위한 ‘쌀안축제’도 열린다.

 과거 청원군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인 ‘소로리볍씨’의 고장으로 유명했고, 친환경 농산물의 명산지로도 이름 높았다. 특히 <청원생명쌀>의 명성은 전국에 알려졌으며, 청원생명쌀 마라톤대회(올해는 9월28일 개최)도 있을 정도다.

 이제 청원이라는 지명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4일과 9일이 들어간 날이면 미원리 우체국 옆길에는 여전히 장이 들어선다. 보은군에서 이곳으로 오는 버스와 여기서 청주시내로 가는 버스가 연결돼 다들 보은장이나 청주장을 찾으면서, 이제 미원장은 예전의 활기를 잃고 있기는 하다.

그래도 장날이면 인근 마을에서 나온 어르신들의 말소리와 웃음소리로 아직은 떠들썩하다. 행여 아는 얼굴이라도 만날까 정거장에서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이 쓸쓸해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함께 살아가는 정을 느끼게 한다.

 미원장 외에 과거 청원군 지역에서 열리는 장은 대청호 인근의 포도로 유명한 문의장(상당구 문의면, 1·6일), 가까이 오송생명과학단지가 있는 옥산장(흥덕구 옥산면, 3·8일)과 오창과학산업단지가 있는 오창장(청원구 오창읍, 3·8일), 초정약수로 유명한 내수장(청원구 내수읍, 5·10일)이 있다.

 

정영신의 장터순례(37)제주 세화장



“은갈치 참말로 좋수다”
직접 낚시질해 좌판에 좍~

세화해변 옆에서 5·10일마다 장 열려
옥돔·우럭 등 싱싱한 해산물 풍부
70여년 장에서 산 할망…“사람 소리 없으면 못 살 것 같아”

 

 

 

“매일 보는 바다지만 영감하고 바닷가로 달리니 참말로 좋수다.” 경운기에서 내리는 고씨 할머니(73)의 웃음소리가 제주 바다를 닮아 푸르기만 하다. 영감님이 드라이브 가자고 하면 만사 제쳐놓고 따라나선다는 고씨 할머니는 오늘도 경운기를 타고 해안도로를 따라 장에 나왔다. 바다로 둘러싸인 섬답게 제주 세화장 어물전에는 자리돔·옥돔·우럭·조기·갈치 등 해산물이 풍부하다. 특히 갈치는 은빛을 뽐내며 좌판에 일렬로 누워 있다.

 제주도는 잘 알려진 대로 돌·바람·여자가 많은 삼다도다. 키가 워낙 커서 한라산을 베개로 삼은 ‘설문대할망’이 제주를 창조했다고 한다. 제주 창제 신화에 따르면 설문대할망이 치마로 흙을 날라 제주도를 만들었는데, 한라산을 쌓던 중에 터진 치마 틈으로 떨어진 흙이 오늘날 숱한 오름(한라산에 딸린 기생화산)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오름의 능선이 보여주는 곡선미는 엄마의 너른 품처럼 완만하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거기 담긴 제주 여인의 삶이 여행객에게 말을 걸어온다.

 코발트빛 맑은 세화해변이 지척인 세화장은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서 5일과 10일이 드는 날에 열린다. 고선아씨(45)는 이곳에서 15년 동안 제주 갈치만 팔았다. 세화해변에서 멀지 않은 성산포의 갈치를 알아준다는데, 고씨는 이걸 잡으려고 밤낮없이 낚시를 한다. 봄 갈치는 아침부터 해 질 때까지 낚고 가을 갈치는 밤에만 낚는다고. “어둠을 뚫고 올라오는 은색 갈치의 꿈틀거리는 모습이 바로 예술입니다” 하는 고씨 옆에서 옥돔을 손질하던 박씨 할망이 “야야, 이제 갈치 박사 다 됐네” 하고 거든다. 그 순간 여인네들의 웃음소리가 장옥을 건너 바다로 스며든다.

 곧 무너질 것만 같은 낡은 장옥에서 반가운 얼굴, 김옥순 할머니(83)를 만났다. 김씨 할머니는 3년 전 고성장(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에서 만났을 때 채소와 과일을 팔면서 점까지 봐주고 있었다. 염주알을 돌리고 쌀과 작은 종지를 뿌리면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예시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일곱살에 글을 깨친 후 장에 나와 장사하다가 말문이 트여 점을 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난겨울 여기서 잘 아는 할망이 이것저것 묻기에 점괘 따라 말해줬더니 그 이후로 할망 얼굴이 보이질 않아.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무서워지기 시작해 그만뒀어.” 70여년을 장에서 살다 보니 사람 소리가 없으면 못 살 것 같다는 할머니의 미소가 밀짚모자에 숨는다.

 “어디에서 와시냐?” 하고 묻는 송씨(60)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친 김에 제주도에는 논이 안 보이는데 벼농사를 짓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물이 빠지는 현무암 지대라 논농사는 못 짓고, 대신 ‘산듸’를 심어 제사도 지내고 잔치할 때도 쓴다는 답이 돌아온다. 산듸는 밭에 씨를 뿌려 키우는 찰벼인데, 파종과 밭매기가 힘들어 부지런하지 않으면 경작할 수도 없다고 한다.

 송씨가 대뜸 제주 4·3사건을 다룬 <지슬>이라는 영화를 보았냐고 물어온다. 제주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 4·3사건의 아픔이 눅눅하게 배어 있는 땅이다. <지슬>은 제주 사람이, 제주 땅에서, 제주 토박이말로 만든 독립영화로, 1948년 3월부터 한라산 통행금지령이 풀린 1954년 9월까지 7년7개월 동안 이어진 4·3사건의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슬은 감자를 뜻하는 제주 방언이다.

 세화장 외에 제주에서 열리는 장은 감귤과 갖은 채소가 많이 나는 함덕장, 성산포 은갈치와 성산 겨울무로 유명한 성산장, 대정 암반수 마늘로 유명한 모슬포장(이상 1·6일), 은갈치·옥돔·대장간이 이름난 제주민속장, 성읍민속마을과 제주민속촌이 가까운 표선장(이상 2·7일), 옥돔·갈치·고등어가 많은 중문장(3·8일), 열매를 먹으면 백살까지 산다는 백년초 군락지가 있는 한림장, 제주의 대표 축제인 들불축제와 노천탕이 있는 고성장, 자리돔 축제가 열리는 서귀포장(이상 4·9일) 등이 있다.

 

[스크랩 / 농민신문]

 

 




(36)경기 평택 안중장

“덤이 바로 정이고, 정 없는 장은 장이라 할수없지~”

골목골목 장이 들어서는 골목장…1·6일이 드는 날 열려
난전엔 앵두·오디 등이 다소곳이…
100개 노점갖춘 민속 5일장 개장 활기
주변에 평택항 있어 제철 해산물 많아

 

 

안중장은 경기 평택시 안중읍 안중리 안중버스터미널 주변에서 1일과 6일이 드는 날에 열린다. 이 장은 골목골목 장이 들어서는 골목장이다. 여름이면 나무가 무성하게 잎을 매달듯 장날이면 골목마다 울긋불긋한 파라솔 행렬이 장날임을 알린다.

 안중은 서해안 개발붐 덕분에 최근 활기를 띠기 시작했지만 이곳 장의 역사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래됐다. 처음에는 안중 남쪽에 있는 현덕면 황산리에 장이 섰는데 인근에서 규모가 가장 컸다고 한다. 아산만을 가로지르는 방조제가 없던 그때, 보부상들은 만에 물이 빠지면 걸어서 황산리로 왔다. 수로와 육로의 교차점인 황산리 일대가 조선시대 보부상의 길목이 되자 이들의 왕래로 마을이 번잡해졌다. 그러자 마을 터줏대감인 정씨 일가가 장꾼들을 쫓아냈고, 삶의 터전을 잃은 보부상들이 북쪽에 있는 지금의 안중으로 장을 옮겼다고 한다.

 안중버스터미널 주변에 형성된 골목 난전에는 보기만 해도 탐스러운 앵두부터 보리수·복분자·오디에 청솔방울까지 이름표를 내걸고 할머니들 앞에 다소곳이 앉아 있다. 텃밭에서 따왔음 직한 호박과 마늘종은 싱그러운 초록을 뽐내고, 한창 물오른 매실의 향긋한 내음이 지나가는 여인네의 발길을 붙든다.

 해마다 매실청을 담근다는 신덕자 할머니(71)가 지난해에 비해 값이 너무 싸다며 매실을 고르자 사람들이 몰려든다. 매실을 파는 과일장수 김득수씨(52)도 해마다 생산량이 많아져 가격이 내리는 것 같다고 말한다. “매실에 우리 신체의 생존 에너지를 생성하는 물질이 많이 들어 있다는 정보가 알려지면서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그러면서 재배하는 사람도 너무 많아졌다”는 게 김씨의 이야기다.

 스물다섯 ‘꽃각시’ 시절에 장사를 시작했다는 김씨 할머니(76)는 올해로 51년째 직접 농사지은 것들을 안중장에 내다 팔고 있다. 반평생을 장에서 살다 보니 만나는 사람이 다 식구 같다면서 “여기가 살기 참 좋은 곳이여. 좋은 쌀도 많이 납니다” 하고 안중 자랑을 한다. 안중장에서 덤 많이 주기로도 소문난 김씨 할머니는 “덤이 바로 정이고, 정 없는 장은 장도 아니지” 하며 “땅이 주는 선물을 나누어 먹을 수 있으니 장이 참 좋다”고 덧붙인다.

 장터 한쪽에서는 물놀이로 더위를 쫓는 어린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인근에 현대·기아는 물론 외국의 완성차업체에까지 납품하는 자동차부품 공장들이 있어 다른 장보다 젊은 사람들이 많고 어린애들도 더러 나온다는 게 이유식 할머니(80)의 말이다. 이씨 할머니는 “농사짓기가 힘들어 장에 나온 지 31년이나 됐는데 그동안 돈도 못 벌고 몸만 늙어버렸다”면서, 지금은 오히려 농사짓던 그 시절이 그립다며 푸성귀 같은 초록빛 웃음을 건넨다.

 장터를 다니면 다닐수록 이런 생각이 든다. 전국 어디든 전통시장이 활성화되려면 현대적인 아케이드를 설치하는 일보다 제철 식재료를 비롯한 다양한 상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도록 구색을 알차게 갖추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 이를 깨달았음인지 평택시도 기존의 안중전통시장 내에 100여개의 노점을 갖춘 민속 5일장을 개장하고 6월11일 개장식을 가졌다. 이제 장날이면 안중전통시장 일대가 더욱 활기를 띨 것이다.

 안중장은 또 평택항이 가까이 있어 싱싱한 제철 해산물도 많이 나온다.

 어물전이 몰려 있는 곳 옆에는 뻥튀기 가게가 있어 인근 어르신들의 사랑방 역할까지 한다. “뻥!” 하는 소리에 문득 든 ‘우리네 정을 뻥튀기 하면 그 크기가 얼마나 될까’ 하는 의문을 지나가는 바람에게 물어보며 발길을 돌린다.

 안중장 외에 평택에 서는 장은 서정장(2·7일), 안정장(3·8일), 송북장(4·9일), 통복장(5·10일) 등이 있다. 또 평택 송탄관광특구의 심장부인 신장쇼핑몰도 미군 부대를 기점으로 한 신장동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어 나라 안팎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35)전남 진도 십일시장

밭일하던 여인네도, 장터에서 마주친 여인네도…
틈만 나면 흥얼흥얼…삶을 노래로 승화시켜

열흘 간격 장 들어서 마을이름 ‘십일시’…지금은 4·10·14·20·24·30일에 열려
인근섬 사람들 드나들어 어물전 지천

 

 

진도에는 유달리 한(恨)의 노래가 많다. 삶의 희로애락에서 비롯된 소리들이 이어지는 것이 마치 유장하고 애절한 아쟁 가락 같다. 삶과 노래가 따로따로가 아니게 느껴지는 것은 “오메!” 하는 장터 여인네의 추임새 때문일까. 그 소리에 한바탕 어깨춤을 추면 푸르디푸른 남도 가락이 흥얼흥얼 장터 안으로 흘러가다 멈추어 선다.

 얼마 전 십일시장을 찾았을 때는 무거운 안개가 내려앉은 듯 장 안에 활기가 없었다. 농번기이기도 하지만 온 나라를 깊은 슬픔에 잠기게 한 참사 현장인 팽목항이 장터에서 10여분이면 닿는 거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시방 진도가 초상집이여. 영감이 잡아오는 생선 팔아 가용으로 쓰고 병원 댕기고 하는디, 요샌 뭍에도 못 나가. 장이 쪼까 휑하지라? 젊은 여자들은 모다 팽목항으로 봉사 갔어. 첨엔 장바닥에 퍼져 앉아 ‘아까운 새끼들 어짜 쓰까’ 함서 막 울고 그랬제. 어쩌겄는가. 이렇게 꼼지락거리면서 이겨내야제. 슬픔이 이 늙은이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된다는 것을 이참에 배웠당께.”

 임회면 석성 인근에 사는 김순단 할머니(76)가 펼쳐놓은 쟁반 위의 문어 두 마리가 조곤조곤 얘기하는 할머니 말을 알아듣는 듯 꿈틀거린다.

 십일시장은 전남 진도군 임회면 석교리의 자연마을인 십일시리에서 열린다. 마을 이름이 십일시(十日市)인 것은 옛날에는 이 시장이 10·20·30일에 열흘 간격으로 열렸기 때문이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15세기 중엽에는 장이 한 달에 두 번이나 세 번쯤 열렸지만, 18세기 이후 상업이 활성화되면서 대부분의 장들이 오일장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오늘날 십일시장은 임회장이라고도 하며, 특이하게도 4·10·14·20·24·30일에 열린다. 고군면 고성리에 서는 고군장(이 장은 십일시장을 피해 1·5일에 열린다)과 장날이 겹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석교천이 흐르는 십일시교를 건너면 장터가 시작되고, 오른쪽 길목으로 들어서면 장옥이 버티고 있다. 그리고 오랜 세월 이어온 장터의 흔적과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십일시장은 인근에 있는 상조도·하조도·각흘도·관매도·가사도·조도군도 등의 섬사람들도 드나드는 장이란다. 장터 바닥은 그야말로 바다를 옮겨놓은 듯 어물전이 지천이었는데, 요즘은 장이 선 이래 가장 조용하다고 한다.

 어물전 멋쟁이로 유명한 김씨 할머니(71)가 “요 꽃게나 사람이나 사는 게 같당께” 하며 꽃게 이야기에 열을 올린다. 꽃게는 달이 작은 그믐때는 많이 먹기만 하고 움직이지 않아 살이 통통하게 올라오고, 반면 달이 밝은 보름에는 활동을 많이 해 살이 오르지 않는단다. 할머니는 “사람이나 꽃게나 많이 움직이면 저절로 살이 빠지는 것은 같은 이치”라며 꽃게를 들어 보인다. 그러면서 45년째 생선을 만지다 보니 소리도 좀 한다며 <진도아리랑> 한 자락을 뽑아낸다. ‘진도 가면 글씨자랑·그림자랑·노래자랑을 하지 말라’는 소리가 괜한 말이 아니다.

 십일시교 앞에는 할머니들이 장보따리를 세워놓고 버스를 기다리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여그는 땅 모양만 갖추어도 밭을 맹글어부러 놀고 있는 땅이 없당께. 진도 땅이 기림져서 뭐든 심기만 허믄 잘돼야. 진도 대파는 한양서도 소문 났드만. 징허게 맛나다고.”

 밭일 하던 여인네도, 장터에서 마주친 여인네도 틈만 나면 절로 터지는 노래로 삶을 승화시킨다. “이년아, 가슴에 저미는 한이 있어야 소리가 되는 벱이여.” 영화 <서편제>에 나오던 대사가 이 장터에선 여인네들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진도에서는 십일시장 외에도 앞서 말했듯 고군장이 1·5·11·15·21·25일에 선다. 구기자·홍주·돌미역·돌김·대파로 유명한 진도장은 2·7일에, ‘돌아온 백구’와 ‘신비의 바닷길축제’로 알려진 의신장은 1·6일에 열린다.

 

[농민신문]

 

 

(34)전남 곡성 석곡장

 

“기러기며 별난것을 다 가져와 잡아달란당께”

1770년 책자에 기록된 오래된 장터
우시장 없어져 ‘한산’…인정은 그대로
“시끌벅적한 씨름판 재미났었는디…”

 

 

 

 

“뺑뺑 돌아라 돌실장 어지럼병 나서 못 본다. 방구 통통 구례장 구린내 나서 못 보고, 아이고 데고 곡성장 시끄러워서 못 본다.”

 ‘돌실’은 전남 곡성군 석곡(石谷)면의 옛 이름이다. 석곡장도 예전엔 돌실장이라 불렸는데, 장돌뱅이들이 부르던 노래에도 나온다. ‘뺑뺑 돌아라 돌실장’의 뜻을, 석곡장에서 만난 양씨 할아버지(83)가 친절히 일러준다.

 “시방은 길이 나서 막 통과하제, 옛날에는 모두 산이었응께 냇가로 돌아 돌아 다녔제. 긍께 돌실이여. 또 보성강 주변이 모다 돌멩이였어.”

 석곡장은 1770년에 간행된 백과전서 <동국문헌비고>에도 기록돼 있을 만큼 오래된 장이다. 지금은 5일과 10일이 드는 날에 곡성군 석곡면 석곡리에서 열린다.

 머리에 닿을 것만 같은 대형 현수막을 인 채 각종 씨앗과 약재를 펼쳐놓은 석곡장의 대장 전씨 할머니(85)를 만났다. 수많은 씨앗의 가격을 훤히 깨고 있어 “할머니 천재시네요?” 했더니 할머니가 답한다. “시악시만 알어. 공책에 모다 적어놓고 짬 날 때마다 외우제. 치매도 안 걸리고 좋아라.”

 수줍게 웃던 전씨 할머니가 순천댁 얘기 들었냐며, 지금도 할머니들만 모이면 그 이야기를 한단다.

 “순천댁이 여그 돌실장에서 백반집을 했는디, 인심이 그런 인심이 없었지라. 산골 사람들 새복 장에 이고 지고 오믄 순천댁이 다 사주고 그랬제. 물건 죄다 사주고 뚝배기라도 한 그릇 먹여서 보냈는디, 소문이 안 나겄소. 순천댁 고기 맛볼라고 서울서 오고, 부산서도 오고 난리도 아니었제.”

 이렇듯 장은 물건만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문화가 숨 쉬고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와 그 지역 역사를 두루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곡성은 천혜의 자연과 지순한 인심으로 효와 충이 성한 고장이다. 요즘은 증기기관차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오곡면 오지리의 섬진강기차마을로 유명하다. 기차마을 여행은 어려웠던 시절의 애환과 옛 정취까지 맛볼 수 있어 시간을 거꾸로 달리는 느낌이다. 기차마을 일원에선 효녀 심청의 효심을 새롭게 조명하고 가족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10월이면 ‘심청 효 문화 대축제’도 연다.

 농번기라 그런지 장터 풍경은 시간이 멈춘 듯 한가하다. 장터 맨 끝자리에 있는 ‘석곡닭집’ 앞 닭장에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무너진 채 우리 안에 갇힌 닭들이 졸고 있다. 양동래씨(66)는 낯선 손님만 보면 외친다.

 “촌닭 한 마리 삿시오. 집에서 키운 닭이라 질기지 않고 맛있어라.”

 양씨는 손수레에 닭을 싣고 장터에 나온다. 장에 온 손님들이 닭을 고르면 양씨는 그 자리에서 직접 잡아준다. 양씨는 요즘 기러기를 잡아달라고 갖고 나오는 사람이 많다며 웃는다. “아따, 요새는 테레비가 사람 잡습디다. 장에 나온 사람들이 다 의사랑께. 별난 것을 갖고 와서는 다리 아픈 데 좋으니 잡아 달라 허고…. 잡아주는 삯이야 따로 받제만, 내 닭도 팔아야제.”

 사람들이 없는 한산한 장터는 이웃집 마당에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모습처럼 자연스럽다. “곡성에서 가장 크다는 장인데 사람들이 없네요?” 하며 인사를 건네자 박막동 할아버지(86)가 답한다.

 “우시장이 없어져서 그러제. 그전에는 순천이랑 벌교에서도 소 팔러 석곡장으로 왔제. 소전 있을 때는 날 새기 바쁘게 장에 달라 들더니, 시방은 장도 사람도 끼우러져 불었어라. 백중날이면 소 걸고 씨름판을 열어 영판 재미났는디, 그 맥이 다 끊어졌당께. 여가 전통 있는 장이었는디, 시방은 장도 아니여….”

 말을 마친 박 할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이 흑백사진 속에 숨어 있는 고향 같다.

 곡성에는 석곡장 외에 멜론·사과·토란으로 유명한 곡성기차마을전통시장이 3일과 8일에 열린다. 효녀 심청의 원류를 찾게 해준 관음사와 껍질째 먹는 친환경 사과가 유명한 옥과장은 4일과 9일에 열린다.  

 

 [농민신문 스크랩]


(33) 충남 공주 산성장  

 

 

“밤꽃 냄새에 홀려 반평생 장터 지켜유~”

200년전 형성…1·6일 드는 날에 열려
주변이 우리나라 최대 밤 생산지
밤으로 만든 국수·떡 등 음식 다양
호두 많이 나오는 ‘유구장’도 가볼만…
“덤 없으면 장이 아니어유. 저울 눈금대로 살게 되나유. 말 한마디에 덤도 주고 그러면서 살지유.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도 있지유.”

 박씨 할머니(78)는 밤꽃 냄새에 홀려 장터에 들었다가 반평생을 장 덕분에 버텼다고 한다. 충남 공주시 정안면 월산리 소랭이마을 산자락에 하얀 눈 내리듯 밤꽃이 피면, 박씨 할머니는 창문을 두드리는 비릿한 밤꽃 냄새에 잠을 설칠 때가 많았단다. 그러다 땡볕에서 기른 상추와 오이를 머리에 이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주 산성장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박씨 할머니는, 어수룩한 청상과부를 장터로 불러낸 것이 밤꽃 냄새라고 추억한다.

 박씨 할머니가 사는 정안면은 우리나라 최대의 밤 생산지로 6월에는 밤꽃축제도 열린다. 밤막걸리·밤국수·밤파전·밤떡을 자랑하는 할머니 목소리에도 밤꽃 향기가 배어 있다.

 200여년 전부터 형성돼 오늘에 이르는 공주 산성장은 1일과 6일이 드는 날이면 공주시 산성동 일대에 선다. 시외버스터미널을 중심으로 장이 열리는 이곳에는 장날이면 크고 작은 난전이 펼쳐지고, 사람들의 표정도 역동적이다.

 버스 정류장 앞에서 고무줄을 길게 늘어뜨려놓고 잡화난전을 차린 김씨 아저씨(67)가 사람들을 향해 외친다. “시방 못 사면 평생 못 사유. 천원이유, 천원~!” 그러자 버스를 기다리던 할머니들이 모여든다. 고무줄을 고르는 오달성 할머니(83)에게 어디에 쓰실 건지 용도를 물어봤더니 할머니 하시는 말씀. “장항아리 묶는 데도 쓰구유, 개미 지나가는 길에도 냅둬유. 장화 신고 밭에 갈 때 바짓단 내려오지 말라고 묶기도 허구만유.” 장터에서 검정 고무줄은 진열 방식이 독특하다. 그냥 툭 던져놓기만 해도 저절로 ‘디스플레이’가 되는 것이다. 마치 꿈틀거리는 생물처럼 짓밟히면서 존재를 드러내기도 한다.

 서해안 시대를 맞아 충남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공주는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교육과 박물관의 도시다. 세종특별자치시도 지척에 있어 자동차로 20여분이면 닿는다.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를 거쳐 원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선조들의 삶의 원형을 만날 수 있는 국립공주박물관은 무령왕릉의 모든 출토품을 전시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또한 계룡산과 금강의 청정 환경을 즐길 수 있는 ‘5도2촌마을’을 운영해 평일 5일은 도시에서, 주말 2일은 공주에서 체험활동을 할 수 있다.

 그래도 공주 땅 자연과 사람의 진면목을 알게 하는 것은 역시 장터다. 자연은 모든 것을 내어주고 다시 거두어간다. 씨앗 한 톨이 흙과 만나는 시간과 그 이후 벌어지는 일들이야말로 자연이 만들어내는 예술임을, 장터 마당에 가면 어렵지 않게 배우게 된다. 장터는 또 사람과 사람의 중심에 서 있다. 이곳에 가면 걸어다니는 시간을 볼 수 있다. 장터에서 만난 더벅머리 총각과 순박한 시골 처녀를 백발의 촌로로 만든 것도 시간이다.

 시대적 환경 변화와 상관없이 43년 동안 시계 고치는 일만 해온 박영철씨(72). 멈춰버린 시계를 장날 하루에 스무개에서 서른개 정도 고친다고 한다. 요즘은 휴대전화가 시계 역할을 대신해 시계 고치는 곳이 점점 없어지고 있지만, 박씨는 오히려 옛날보다 요즘 들어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정직하게 해주니까 단골이 많아지지유. 홍보가 별건가유. 오로지 입소문 하나로 되는 거지유.” 박씨는 말하는 중에도 쉬지 않고 시계를 고친다. “40년이 넘다 보니께유, 믿고 오는 사람이 많아유. 장날이면 누가 보냈다고 손님들이 찾아오는 맛에 홀려 나도 모르게 장에 나오게 되구먼유.” 박씨의 손끝 사이로 늦은 봄바람이 한움큼 바르르 떨고 지나간다.

 공주에는 산성장 외에 고랭지 무와 호두가 많이 나오는 유구장이 3일과 8일에 선다. 유구읍에서는 8월 초순이면 우렁각시축제도 열린다.

 

 

(32)경주 양북장

70여년 애환 녹아있는 고풍스러운 장옥 그대로…



5·10일 든 날 열려
경주 동쪽 해안가에 위치
싱싱한 해물 많아 어물전 커
파종기 종묘상엔 사람들 북적
쇠락의 길 걷지만 인정은 여전


 

 

 

“논두렁에서 캔 씀바귀 좀 사이소. 이거 무마 안 늙는다 카드라. 내 얼굴 좀 보래이. 우리 영감이 지금도 각시 같다 안 카나.”

 경북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에 산다는 황정분씨(73)가 나물을 다듬으며 자랑을 한다. 봄날 장터는 산과 들에서 불려 나온 원추리와 돌나물·취나물·머위·부추·달래·냉이·쑥부쟁이·씀바귀·미나리 등이 가득 펼쳐져 마치 나물 전시장 같다. 황정분씨 자랑처럼 장 안은 봄나물의 쌉쌀한 향기로 가득하다. 저 먼 산과 들에서 내지르는 봄나물들의 소리 없는 함성이 신라 천년의 역사가 서린 장터 속으로 스며드는 듯하다.

 경주의 동쪽 해안가에 자리 잡은 양북장은 감포에서 경주 가는 길목인 양북면 어일리에서 5일과 10일이 든 날에 선다. 찬란한 문화유적(문무대왕릉)과 첨단 에너지산업(월성원자력발전소)이 공존하는 양북면은 서쪽으로는 석굴암이 있는 토함산이, 동쪽으로는 문무대왕릉이 있다. 이 밖에도 여러 문화재가 지천이라 선조들의 숨결이 배어 있는 노천박물관이나 마찬가지다.

 1942년에 개설된 양북장은 고풍스러운 옛 장옥을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다. 장터는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장터 입구에서 강아지 두 마리가 새 주인을 만나기 위해 두리번거리자 범곡리에서 온 이군자씨(73)가 그 앞으로 다가간다. 강아지 한 마리를 잡아 암놈인지 수놈인지 구분하려고 치켜든 모습이 마치 자식을 대하듯 다정하다. “식구를 한 명 들이는데 우째 그냥 사겄노? 그런데 이기 암놈 맞나?” 하고 중얼거리며 이리저리 살핀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이씨는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다.

 양북장은 지척에 바닷가가 있어 싱싱한 해산물이 많이 나온다. 자연산 전복을 비롯해 살아 있는 생물이 많아 어물전이 큰 편이다. 생선 눈만 보면 냉동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는 박씨 할아버지(83)는 어물전에서 장사한 지 53년째다. “여가 어일리(魚日里) 아이가. 마을 앞산이 고기 한 마리 뒤집어놓은 것 같아서 고기 어(魚)자를 붙였다 카드라.” 요즘 제철인 도다리와 소라가, ‘고기 박사’로 통하는 박씨의 말솜씨에 꿈틀거린다.

 파종기를 맞은 종묘상 앞에는 사람들이 모여선 강의실을 방불케 할 만큼 귀를 곤두세우고 있다. 이들은 서로 정보를 나누다 이웃이 되고 친구가 되지만, 그 많은 친구들도 이젠 하나둘 떠나가 시골 장터가 점차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장터 모퉁이 모퉁이에는 사람 사는 정이 피어나고 있다.

 “내사 마 봄만 되믄 가슴이 벌렁벌렁 한다카이. 산에 피는 꽃과 나물도 이뿌지만 요새가 일하기 딱 좋은 날씨 아이가. 내가 탯자리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 늘 같은 하늘만 이고 산 토백이라 카이.”

 호암리에서 씨앗을 사러 나온 양씨 할머니(78)의 말이다. 꽃이 피면 힘든 한 해 농사일이 시작되긴 하지만, 꽃밭에서 꽃잎들이 툭툭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씨앗 떨어지는 소리처럼 정겹기만 하단다. “할 일이 없으면 사는 것 같지 않고 일을 해야만 사는 것 같다”는 양씨 할머니는, 분단장한 지가 언젠지 뒤돌아본 적도 없다며 살포시 웃는다. 고추·토마토·하수오·마·도라지·콩·호박 등 온갖 작물을 심고 가꾸는 방법에 대한 양씨 할머니의 강의는 끝이 없다.

 경주 최씨 집성촌인 봉길리에 산다는 최씨 할머니(79)가 “니만 입이가? 나도 좀 하자” 하며 끼어든다.

 “여가 절과 탑이 많은 건 알지예? 절이 얼매나 많으마 하늘의 별만큼 많다고 했겠노. 여가 부처님 세계인기라.”

 도라지는 3년은 돼야 약이 된다는 이야기와, 봄볕이 아까워 흙 묻은 몸뻬 바지 주물러 빨랫줄에 걸어놓고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이 할머니들의 소박한 삶이 눈에 아른거린다. 밭이 자꾸 불러낸다는 최씨 할머니가 호박씨 심어야 한다며 훌훌 털고 가는 길을, 봄도 덩달아 졸래졸래 따라간다.

 경주에는 양북장 외에도 대표적 전통시장인 성동장(2·7일), 인근 마을 사람들이 장을 열어가는 서면장(1·6일), 감포 방파제가 있는 감포장(3·8일), 재미난 그림이 있는 외동장(3·8일), 불국사가 인근에 있는 불국시장(4·9일), 싱싱한 수산물이 많은 안강장(4·9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양남장(4·9일), 옛 장옥이 그대로인 건천장(5·10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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