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끊긴 인사동, 날릴 파리도 없다.

 

화랑들은 건물주 눈치만 보고

작가들은 희멀건 하늘만 본다.

 

세말의 구세군 종소리조차 처량하다.

 

그 와중에 골목골목 포스터가 나붙었네.

나서는 자 제대로 된 작가 보지 못했다.

 

똥파리들 몰리니 똥은 많은 모양이다.

 

코로나야! 코로나야! 너는 누구 말만 듣니?

하나님이냐? 부처님이냐? 신령님이냐?

 

신도 손쓰지 못하는 걸 보니, 말세는 말세로다.

 

사진, 글 / 조문호

 

판형 : 150x180mm / 내지면수 : 192 

정가 : 18,000원

강310-망치반가사유 Dismiss the President 75 X 53cm Digital print 2020

 

 

예술가 박건의 40여 년 간에 걸친 작업과 작품을 수록한

한국현대미술선44 ‘박 건’이 지날 달 ‘헥사곤‘에서 출판되었다.

 

며칠 전 인사동 ‘나무아트’에서 열리는 최경태 전시회에 갔다가

우연히 박건씨를 만나 새로 나온 그의 작품집을 선물 받은 것이다.

 

작품집에는 1980년부터 2020년까지 40년 동안의 작업과 작품 160여점이 수록되었는데,

작품 중간 중간에 작가노트를 비롯하여 공선옥, 김진하, 김용익, 류병학, 성완경, 양정애,

원동석, 장석원, 전준엽, 정정엽, 조혜령, 하일지, 홍성담씨 등 많은 분들의 비평이 실려 있어

작품과 작가의 예술세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조그만 책자지만, 무겁고 부담스러운 대형도록보다 훨씬 알차게 편집되었더라.

 

쪽방에 사는 나로서는 책 보관할 곳이 없어 침대 밑을 서고로 사용하는데,

일단 그 밑에 들어가면 폐품으로 끌려 나가기 십상이다.

대개 사진집이나 도록이 그에 해당되는데, 본인으로서야 소중할지 모르지만

책을 보고 난 입장에서는 무거운 짐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요즘은 시리즈로 출판되는 눈빛사진가선이나 ‘한국현대미술선 등

작은 판형의 책이 아니면, 집에 들이지도 않는다.

다들 얼마나 돈이 많고 가오가 중요한지 모르지만, 한 번 생각해 볼 문제다.

 

난, 박건씨의 작품은 80년대 발표된 판화와,

2017년 이후에 발표된 작품과 공산품 아트 밖에 아는 것이 없다.

작가도 한 때 전교조 활동으로 작업에 공백기가 있었지만,

나 역시 2000년대는 강원도 정선에서 두메산골 사람들과 소통하느라

세상과 등 돌리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건씨의 작품집을 보니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절감했다.

내가 몰랐던 작품이 더 많았는데, 눈이 번쩍 뜨이는 좋은 그림도 있었다.

'까마귀’, ‘부엉이’, ‘빈방’, ‘탁족도’, ‘또 다른 나’, 얼굴 없는 나‘ 등

푸른 색깔이 주조를 이룬 2010년대 그림에서 작가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한 것이다.

 

빈방 An empty room 16x23cm Acrylic on canvas 1996

 

가랑이를 쩍 벌린 여인의 도발적인 자세나 푸른빛에 드리운 음산한 분위기에 푹 빠져 들었다.

그친 터치로 형상화한 여체가 마치 유령처럼 다가왔는데, 유령이 왜 친숙하게 느껴질까?

작가의 사유적 깊이나 미적 감성이 압권 이었다.

 

박건씨는 80년대부터 ‘꽝’, ‘코카콜라’, ‘강’ 등 미니어처 작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바 있으나

2017년부터 공산품 아트란 새로운 깃발을 내세우며 당당하게 복귀했다.

틀에 갇히지 않으려는 자유로움과 왕성한 창작력이 바탕 되어 기발한 작품을 만들어 냈다.

흔하고 값싼 사물에 작가의 혼을 불어넣어 또 다른 세상으로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까마귀 Mount Baekdu Crow 120x360cm Acrylic on blackboard 2007

부엉이 Owl 10X 20X 2,5cm Acrylic on paint box 2010

 

 

한 예로 부러진 망치 위에 해골 미니어처를 앉혀 생각에 잠기게 한 ‘망치반가사유상’이 있다.

부러진 망치로 ‘부러진 권력’을 상징했는데,

이 하잘 것 없는 기물로 권력의 무상함을 절묘하게 표현한 것이다.

 

‘나무아트’ 김진하씨는 박건의 ‘비상업적 상업성’ 복제 멀티플 작품의 유(소)통 실험이라며,

1980년대 이래로 작업방식과 문법뿐만 아니라,

작품의 개념과 존재방식까지도 기존의 제도적 틀로부터 탈주를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소 장르와 권위에 얽매이지 않는 작가의 자유분방한 예술적 태도는

서민과는 거리가 먼 귀족적 예술에 똥침을 날렸다.

백남준의 ‘예술은 사기다’란 말을 실감나게 하는 대목이다.
손바닥만 한 작품으로 요지경 세상을 펼쳐 보이며

대중예술과 고급예술에 대한 기준과 가치를 허물고 있는 것이다.

 

공장노동자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인 공산품아트는 기존에 만들어진 것을

요리 조리 변형 시켜 동시대에 걸맞은 시각언어로 이끌어낸다.

버려지거나 값싼 재료가 그의 손바닥 안에서 예술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버림받거나 고장 난 물건들을 보면 연민이 든다.

나도 언젠가 그랬고 앞으로 그렇게 될 동질감을 느낀다.

쓸모 잃은 동시대 재료들을 서로 결합시키면서 일상과 시대의 정서를 끌어내거나 밀어 넣는 재미가 좋다.

요즘 공산품을 보면 놀랄 때가 많다. 값이 쌀 뿐 아니라 정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쉽게 사고 쉽게 버린다. 이런 편리한 소비가 환경과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

일상과 사랑, 자본과 노동, 문명과 역사는 나의 예술에서 외면하기 힘든 주제다.

공산품들이 그런 말을 작심하고 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 거 같다.”고 작업노트에 밝히기도 했다.

 

‘강’은 조각이라기보다 이야기나 만화에 더 가깝다.

이 작품은 바이올린을 켜는 소녀의 부러진 목과 핏빛을 이룬 강의 폭력적인 내용이 달콤한 음악적 선율에 가려졌다.

 

 

화가 전준엽씨는 작가를 ‘금지된 장난의 연출가’라 말할 정도로

사회적 내용을 연극 무대 꾸미듯 만들어 간다.

하나의 모형도를 제시하는 장면 연출솜씨가 탁월하다고 말했다.

미니멀한 작업으로 종말론적인 분위기를 끌어내거나

인간만이 향유할 수 있는 질탕한 놀이까지 담아내는 거침없고 탁월한 솜씨를 발휘한다.

 

박건씨는 1957년 부산에서 출생하여 81년에 서울로 이사할 때까지 줄곧 그곳에서 살았다.

학교도 그곳의 동아대학교 미술학과를 나와 성암여자상업고등학교에 재직하였다.

대학 재직시절에 두 차례의 발표전을 가졌을 만큼 작가활동은 일찍부터 해 왔다.

전시장에서 작가 자신의 몸으로 어떤 사건이나 개념을 직접 연출하여 보여 주는

이른바 ‘행위미술’이라고 부르는 계열의 작업이었다.

 

일상에서 예술 만들기가 생활화된 박 건씨는 못하는 게 없는 전방위 예술가다.

그동안 작가, 교사, 전시기획, 출판 미술기획, 시민기자, 아트프린트제작, 퍼포머 등

다양한 직업에서도 알 수 있지만, 예술도 회화에 국한되지 않았다.

판화와 조각, 사진, 문학, 행위예술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문명과 욕망, 일상과 성을 주제로 한 다양한 작업을 해왔다.

 

 

81년 이후 망가진 인형이나 장난감 자동차, 마네킹의 머리, 플라스틱으로 된 미니어쳐 병정등을

독특한 방식으로 재처리, 재결합하여 특이한 상황을 연출해 보여주는 ‘오브제’류의 작업을 해왔다.

81년의 ‘오브제, 12인의 현장‘전(부산)을 비롯하여 , 82년의 ’의식의 정직성, 그 소리‘전(서울),

83년의 ’인간‘전, ’젊은 의식’전, ‘시대정신’전, ‘잡음, 혼선, 소란‘전, ’횡단‘전(이상 모두 서울) 등

여러 그룹전에서 발표된 것들이 이에 속한다.

 

불심검문과 압수수색이 수시로 벌어지던 암울한 시절을 떠올리게하는 ‘소지품검사’도 눈길을 끈다.

 

 

기질의 일관성, 작업과정이나 행위의 물질적이고 구체적인 특성, 결정적 사건의 연출, 주제의 현실성 등은

앞서 열거한 여러 그룹전의 작가들(그중에서도 특히 주목되는 그룹전인 ‘시대정신’, ‘젊은 의식’,

‘횡단’의 작가들) 속에서도 특히 그의 작업은 눈길을 끄는 것으로 만들고 있다.

 

(1984년 성완경씨의 비평 중에 작가를 소개한 글이다.)

 

책머리에 쓴 박건씨의 헌사에서 힘들었던 성장 환경도 유추할 수 있었다.

“이 책을 굴곡진 시대를 피난민으로, 독립된 여성으로, 당당하게 살다가 불꽃처럼 가신

어머니(임민희 1933-1991), 이념 전쟁의 후유증으로 옥살이를 하고,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지내다 세상과 일찍 결별하신 아버지 (박영기 1928-1970)

영전에 바친다.”고 썼다.

 

글 / 조문호

 

행위-페트롤카 Patrol car 45x 45x 40cm Mixed media 1982

박건의 입체작품은 이야기구성을 위한 소도구에 지나지 않지만, 현실에 대한 감정이나 비판 정신이 강하다.

1985년 한강미술관의 3인의 시선에서 보여 준 박건의 ‘구토’

긁기80-2 Scratch80-2 53x45cm Oil on canvas 1980

79년 부마항쟁 때 남포동에서 시위를 하다 경찰에 연행되어 당한 고문의 고통을 ‘긁기’ 연작으로 풀어내기도 했다.

이 작업은 독제정권이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 단색화에 대한 저항이라고 한다.

 

출판사로 책을 주문하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

https://forms.gle/8dj5YLLZ4oJzAXoZA

지난 주에는 정영신의 전시 핑계로 술 마실 일이 많았다.

 

27일 저녁에는 '한국스마트협동조합' 팀들이 정영신씨 녹번동 집으로 들이 닥쳤다.

해적도 아니면서 참치 한 덩어리를 들고 왔더라.

 

이사장 서인형씨와 최석태, 이미경씨가 왔는데,

집구석이 얼마나 넓은지, 다섯 사람이 앉으니 꽉 찼다.

사실, 춤 출 일 없으면 술 마시는 데는 좁을수록 술맛난다.

코로나놈 알면 큰 일 나겠지만...

 

스마트협동조합으로 몰려든 젊은 예술가들, '일자리가 급하다'

 

서인형씨는 내일 키움 일자리 채용을 비롯하여 일이 많아 요즘 얼굴보기 힘들다.

'내일 키움 일자리'는 예술인들에게 2개월 동안 최저임금을 주는 사업인데,

300명 채용에 700명이 넘는 인원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었다.

이사장과 황경하씨가 하루 17시간 가까이 일한, 주 100시간 넘는 일을 해냈다.

 

신청인원이  너무 많아 10여명씩 동시에 면접 심의를 하는 장면

 

그 짧은 기간에 사람 모아 분류하여 심사하는 등 완전 한 판 전쟁을 치룬 것이다.

믿기지 않는 일을 해 냈으나, 심의 기준에서 제외된 분들이 안타까워 추가 모집을 협의 중이란다.

예술가들의 삶이 힘들다는 방증인데, 고생은 하지만 조합원으로서 보람을 느꼈다.

 

그런데, 안주로 가져 온 냉동 참치가 녹아 식칼로는 먹히지 않았다.

칼로 자르는 것이 아니라 톱으로 자르는 것 같았다.

주방장 솜씨 탓이 아니고 연장 탓이지만, 어쨌든 회는 맛있었다.

한 점만 넣어도 입안이 그득했으니까... 언제 이렇게 먹어 본 적이 있었더냐.

우물우물 맛있게 먹은 생각을 하니 입안에 군침이 돈다.

양조장 술까지 잘 익어 그 날 밤은 애들 말로 해피한 밤이었다.

 

그 다음 날인 토요일엔 경의선 책거리 ‘예술산책’에서 김수길씨를 만났다.

오랜만에 김보섭씨도 만나, 김수길씨는 응암동에서 다시 만나기로 한 것이다.

생각보다 이야기가 길어진데다 공사 차에 막혀 골목에서 한 참 갇혀 늦어버렸다.

찿아 간 ‘푸른 언덕’에는 김수길씨와 조해인씨, 둘이서 마시고 있었다.

 

기분 좋게 술을 얻어 마신 것만도 고마운데, 조해인씨가 술 한 병을 선물로 주었다.

‘죠니 워카 블루’인데, 독주를 싫어해 선물 받은지가 20년이 넘었다는 것이다

고맙게 받아 녹번동 주막에 맡겨 두었다.

그런데, 그 날은 바쁜 걸음 치느라 권총을 차에 두고 내려 사진 한 장 못 찍었네.

 

일요일 오후에는 김상현씨와 김명성씨가 녹번동으로 찿아왔다.

양조장에 술이야 있지만, 안주 준비를 못해 단감으로 때웠는데,

나야 술만 좋으면 손가락을 빨아도 괜찮지만, 김명성씨가 성이 차지 않은 모양이었다.

 

서부경찰서 뒤에 좋은 횟집이 있다며 끌고 간 것이다.

길이 헷갈려 간신히 찾았는데, 횟집 이름이 ‘마포나루’였다.

네 사람이 여러 가지 회를 양껏 먹었으나, 십 만원 남짓이었다.

가격이 싼데다 맛있고 가까우니 죽기 전에 한번은 더 올 수 있겠다 싶었다.

‘마포나루’ 앞에서 기념사진 한 장 남기고 뿔뿔이 헤어졌다.

 

파장 잔치는 언제 쯤이나 끝날까?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대개의 전시가 시작되는 수요일의 인사동은 길거리에서 쉽게 예술가를 만날 수 있다.

 

지난 25일의 수요일에는 ‘인사아트프라자’에서는 김윤수선생 2주기 추모전이 열렸고,

‘나무아트’에서는 나종희씨의 ‘터널’전이 열렸다.

그래서 인지 두 전시장 사이의 짧은 거리를 지나며 반가운 화가를 여럿 만났다.

 

난 안면은 있지만 마스크에 가려 헷갈릴 때가 많다.

화가 박흥순씨와 두시영씨도 만났고 김재홍씨도 만났다.

 

‘나무화랑’에 올라 가려니, 버스킹 나온 번개가 시비 걸었다.

 

“형은 좋아하는 노래가 뭐요?”

기다렸다는 듯이 ‘봄날은 간다’ 아이가‘ 했더니,

바로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렸다.

 

아무리 갈길이 급해도 청성 맞은 그 노래를 2절까지 다 들었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서에 봄날은 간다.”는 마지막 대목에서 눈물을 짠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5일, 모처럼 정영신씨와 함께 인사동에 나갔다.

'나무아트'에서 열리는 나종희씨 '터널'전을 보기 위해서다.

 

전시장에는 나종희씨를 비롯하여 ‘나무화랑’ 김진하씨,

단양에 사는 설치미술가 김언경씨가 와 있었다.

 

뒤 이어 김재홍씨와 류충렬씨가 나타났다.

 

문명비판적 시각의 나종희씨 작품은 

폐기물인 캔을 납작하게 오려붙여 형상화했다.

알록달록한 발색이 강렬한 시각적 운동감을 주었고,

조명에 의한 반사 각도에 따라 보는 느낌도 달랐다.

 

한 마디로 물질문명에 의해 황폐화된 세상 이치를 말했다.

자본의 똥, 욕망의 바다, 붕괴, 추락, 블랙홀, 혼돈 같은 작품 제목처럼

자본과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내는 블랙홀이자 깊은 터널이었다.

화려함 이면에 도사린 인간성 상실에 대한 메시지였다.

 

난, 형상미보다 고지식하게 이루어낸 노동에 더 의미를 두고 싶다.

예술이란 이름의 화려한 포장보다 사람 사는 노동의 가치 말이다.

민중미술의 한 궤인 비판적 리얼리즘에 초점을 맞춘 그의 작업에서

예술이 먼저냐? 사람이 먼저냐?는 근원적인 질문과도 마주쳤다.

 

반짝거리는 폐기물이 시각적 쾌감을 주었는데,

보는 각도에 따라 변하는 시각성은 또 다른 재미였다.

때로는 바닥으로 떨어지는 인체 형상으로 빈민의 몰락을 상징하거나

똥의 형상으로 자본을 탓하는 등 직설적인 어법을 사용하기도 했으나,

화려함 뒤에 오는 인간의 황폐화를 은유적으로 시사했다.

 

마치 그의 작품에서 깡통처럼 텅빈 인간상을 보는 것 같았다.

이 전시 서문에서 말한 미술평론가 김진하씨의 “Yes i can”이 떠오른 것이다.

한 때 사회에 풍미된 말 “예, 나는 할 수 있습니다”가 아니라

“예 나는 깡통이로소이다”에 빚댄 유모어 같았다.

 

미술평론가 김진하씨는 전시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캔을 집적한 바탕에 작가가 추가한 사람형상이나 여타 풍경과 같은

이미지의 결합으로 구조화된 화면이 이번 전시 작업양식의 대체적 흐름이다.

그러나 내겐 작가가 인위적으로 추가한 소재나 손맛의 서술적 형상 없이,

캔의 배열만으로 상징성을 확보한 ‘터널’이 인상적이었다.

캔의 부착 방향과 크기에 따른 배치, 그로부터 야기되는 무브먼트와 속도감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묵시적인 형상성이 설명이 아닌 울림으로 자연스럽게 다가와서다."

 

버려진 폐품을 소비시대 욕망의 배설물로 비판한

나종희의 ‘터널’은 오는 12월 1일까지 열린다.

 

사진:글 /조문호

 

‘민족미술인협회’가 주최하는 김윤수선생 2주기 추모전 ‘이 시대의 리얼리즘을 위하여’가

지난 25일 인사동 인사아트프라자 1층갤러리에서 개막되었다.

 

김윤수선생의 리얼리즘 미술에 대한 학문적 업적을 기리고,

선생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하여 마련된 추모전에는

민족미술인 100여명이 참여하는 성황을 이루었다.

 

‘민미협’ 이사장 두시영씨는 “85년 민미협의 탄생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민미협’을 아끼고 사랑하신 김윤수선생의 뜻을 마음에 세기고

이 시대의 문화예술적 공헌을 높이 기념하고자 전시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지난 25일 오후4시 무렵, 전시가 열리는 ‘인사아트프라자’를 찾았다.

전시장 입구의 박재동화백 작업실부터 들렸는데,

요즘 경기신문에 연재하는 박재동의 ‘손바닥 아트’ 마감시간이 임박했는지,

열심히 작업에만 몰두하는 박재동씨를 만나 뵐 수 있었다.

 

개막식에 많은 분들이 몰릴 것을 예상하여 한 시간 당겨 들렸다.

다행스럽게 전시장에는 두시영이사장, 김윤수선생 미망인 김정업여사, 박흥순,

변대섭씨를 비롯하여 손병주, 고 헌, 성기준씨 등 몇 몇 분이 전시를 관람하고 있었다.

 

전시공간에 비해 작품이 너무 많아 아쉬웠으나,

손장섭, 주재환씨 등 원로에서부터 신학철, 임옥상, 민정기, 박재동, 황재형, 권용택,

류연복, 김천일, 박진화, 박흥순, 박불똥, 이인철, 이재민, 이종구, 최병수, 류충렬,

김재홍, 나종희, 두시영, 박영균, 박은태, 변대섭, 양상용, 이명복, 최연택, 정세학씨 등

많은 분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 전시는 오는 12월 1일까지 이어진다.

 

사진, 글 / 조문호

 

정영신의 ‘장에 가자’전이 끝나는 날, 신사동 “뮤 아트‘에서 파장 잔치가 열렸다.

 

이 파장 잔치는 뮤지션 김상현씨가 정영신씨의 출판을 기념하는 음악회를 열어준 것이다.

 

고맙긴 하지만 정영신씨가 부담스러워하는데다, 나 역시 옛날 같잖아 몸이 편치 않았다.

더구나 코로나로 바짝 쫄았는데, 누굴 초대하겠는가?

전시 철수한 차를 녹번동에 갖다두고. 정영신씨와 둘이서 '뮤 아트'로 갔다.

 

신사동 5번 출구로 나가니, 미술 평론하는 황정수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분을 기다렸다.

며칠 전 충무로 술자리에서의 초청에 나와 준 것이다.

정영신씨와 나 뿐 인줄 알았는데, 천만다행이었다.

 

‘뮤 아트’에는 김상현씨 혼자 기다리고 있었다.

쿠바 뒷골목의 담배연기 자욱한 어느 선술집 같은 분위기다.

금방이라도 누군가 쌍권총을 들고 나타날 것 같은 그런 퀴퀴한 분위기....

실내 곳곳에는 김상현씨가 살아 온 오랜 삶의 흔적이 농축되어 있다.

 

좀 있으니, 황정수씨와 오란석씨가 들어 와 술자리가 어울어졌다.

뒤 따라 에쉬와 정태호씨 등 뮤지션들도 속속 등장했다.

 

먼저 김상현씨가 선사한 노래는 “떠날 때는 말없이‘였다.

김상현씨의 십팔번이기도 하지만, 노래의 절절함이 너무 가슴 아프다.

 

“아 그 밤이 꿈이었나

비 오는데 두고두고 못 다한 말 가슴에 새기면서

떠날 때는 말 없이 말 없이 가오리다“

 

두 번째는 정영신씨가 좋아하는 노래 ‘검은 상처의 부루스’를 불러주었다.

나 역시 술만 취하면 정영신이 앞에서 이 노래를 불러대는데,

피를 토할 듯, 돼지 목 따는 소리로 눈물을 짠다.

 

이 노래 또한 스스로가 비참해지는 슬픈 노래다.

 

“그대 나를 버리고 어느 님의 품에 갔나

가슴에 상처 잊을 길 없네

그대여 이 밤도 나는 목메어 운다“

 

김상현씨의 노래에는 깊은 한이 배어있다.

그 한이 30년이 가깝도록 “뮤 아트”에 묶어놓았는지도 모르겠다.

 

그 다음엔 환상의 트리오가 어울렸다.

정태호의 피아노 연주에 Ahreum Ash Hanyo가 노래 불렀다.

 

플롯 선율을 감싸 안으며 부르는 에쉬의 음색은 귀가 막혔다.

마치 솜방망이로 두드리는 것 같은 부드러운 저음의 울림이었다.

 

피아노와 플룻의 조화도 일품이었다.

이 아름다운 음악을 우리만 듣기가 아까웠다.

 

노래가 끝난 뒤 에쉬의 노래가 담긴 씨디 한 장도 선물 받았다.

 

음악들으랴! 박수치랴! 술 마시랴! 바빴는데,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홀짝 홀짝 마신 술에 취해버렸다.

 

자정이 가까울 무렵, 인사동에서 전활철씨로 부터 오겠다는 연락이 왔다.

안원규씨도 따라 붙었는데, 이미 술에 취해 있었다. 

 

술병을 마이크 삼아 노래 부르며 분위기를 잡았는데,

술이 취해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 기억도 안 난다.

 

음악에 취하고 술에 취하고,

너도 취하고 나도 취하고

술 술 취해버린 파장이었다.

 

사진:정영신 / 글:조문호

 

'말하고 싶다' 온라인 전시 동영상 버전입니다.

아래 유튜브 주소를 클릭하면 됩니다

 

youtu.be/d88MiuZ3hoY

 

 

말하고싶다 2020 온라인 전시회를 오픈합니다.

 

-전시 서문-

 

모든 그림은 말을 한다. 나 예쁘죠? 나 아름답죠? 나 새롭죠? 나 놀랍죠? 같이 생각해 보지 않을 래요?......

그러나 다른 말도 있다. 세상에 대한 이야기, 역사에 대한 이야기. 새로운 발견. 현실에 대한 아픔과 분노....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한 편 지금은 이런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세상도 아니다.

 

예술의 전당 개관전 때 일이다 당시 안기부가 이러 이러한 작품을 빼라고 검열을 한데 대항해

당시 윤범모 관장이 사표를 던진 적이 있다.

지금은 안기부가 하던 검열을 일부 언론이 하고 있고 야당이 거들고 있다.

 

사회의 적폐에 대한 지적과 비판을 정치적이라고 몰아가는 자체가 지극히 정치적인 태도이다.

우리는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불합리한 검열로 포기할 수 없다.

비록 하루지만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박재동-

 

참여작가

고경일, 박건, 박영균, 박재동, 성완경, 아트만두, 이윤엽,

이인철, 이하, 조문호, 주홍, 하일지, 홍성담, 레오다브

 

<말하고싶다> 온라인전을 하기까지

 

예술의전당 대관지원사업에 응모하면 어떨까?
성완경, 박재동, 박불똥이 이를 수락하고 함께할 작가를 찾았다. 대체로 들판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모였다. 사진, 만화, 판화, 벽화, 회화, 입체.. 분야도 다채롭다. 예술의전당과 같은 온실과 잘 어울리지 않지만 각자 명분을 찾아 감과 촉각을 세웠다. 말은 안해도 추석선물 같은 만남으로, 빈 집 '스쾃'하자는 심보로, 성완경에 대한 오마주.. 같은 심정이 아니었을까..

여건이 다 좋은 것은 아니었다. 열흘 전시기간에 설치, 철수일 빼고, 개천절, 휴관일 빼면 실제 전시할 수 있는 날은 고작 엿 새? 게다가 공간만 무료일 뿐 그 밖에 비용은 모두 작가 부담 아닌가.
특히, 이번 전시에 애정과 열정을 보인 성완경 비평가가 자신의 노트북 속 사진 수십만장을 정비하여 기습사진을 선 보인다. 가짜 미투로 전 인생을 부정 당하는 위기에서 간신히 벗어나 손바닥아트를 부활시키는 박재동도 말하고 싶다. 교보빌딩 외벽 전면에 독립운동가 초상을 보여준 레오다브가 젊은 작가로 합류하고, 독보적이고 강력한 시사캐리커처를 보여주고 있는 아트만두, 저 마다 삶의 현장에서 거침없이 표출 해 온 작가들의 게릴라 전시인 셈이다.

장마 끝에 불은 저수지에서 '번개' 치고, 각자 무지개를 펼치고 싶었을거다. 8월25일 단톡방이 생기고 논의가 활발히 펼쳐졌다. 8월29일 인사동 '낭만'에서 첫모임을 갖고 전시 제목을 논의했다. 참석못한 작가는 카톡으로 참여했다. 여러 제안이 쏟아졌다.

박재동의 <말하고싶다>가 다수의견 전시명으로 뽑혔다.

그런데 난관은 그 전부터 부딪히고 우여곡절과 청룡열차를 탓다. 첫 난관은 신청서류 접수였다. 십 여명의 작가 정보와 포토폴리오를 모아 기획서를 작성하고 예술의전당에 접수하는 문제였다. 다행이 오미진 기획이 합류하면서 가까스로 마감전에 넣고, 다행이 8월25일 전시 지원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전제조건이 따라 붙었다. 감염병방역조치로 미술관운영중단이 계속되는 상황이었고 무산될 수도 있었다.

변수도 터졌다. 전시가 확정되자 아트만두는 전시 홍보를 위해 자신의 연재 시사캐리커처를 활용한 웹포스터를 만들어 페이스북에 내 걸었다. 이어 조국 전 법무장관이 이 웹포스터를 자신의 페북에 연결하여 붙였다. 조국의 페북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조선일보는 웹포스터에 실린 만평이미지 해설기사를 내 보냈다. 짠 일처럼 이 날 국회 문예위에서 김승수 국민의힘 소속의원은 예술의전당을 대상으로 전시의 부당함을 소명하라는 질의를 한다.

적법한 절차에 따라 승인된 전시를 ‘정치적 중립’을 근거로 전시를 못하게 압박하는 꼴이 되었다. 이어 경향신문(박재동 작가에 대한 가짜미투를 강진구 소속기자의 심층기사를 언론사와 다른 관점에서 보도 했다는 이유로 운영진에 의해 징계조치를 당한 바 있다)과 여성신문(박원순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을 위한 표현물-시사캐리커처에 대해서)도 <말하고싶다>전시를 ‘2차가해’로 몰아붙이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런 이유로 예술의전당측은 전시계약자인 박재동 작가에게 협의를 요청해 왔다. 우리의 입장을 정리하는 와중에 예술의전당에서 코로나로 인한 방역지침이 훅 들어왔다. 10월6,7,8일3일만 전시할 수 있다는 지침이 내려왔다. 이를 할 것인지 말 것인 지를 알려줄 것을 요청해 온 것이다. 이것은 하지말라는 말 아닌가. 우리는 이 지침이 국회 문예위의 압박으로 인한 예술의전당 측의 일방적 조치인 지, 정부 방역지침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인지 헷갈렸다.

전례가 떠 올랐다 ‘초창기 예술의 전당 전시에 관해 당시 안기부가 검열을 한데 대항해 관장이 사표를 던진 적이 있다. 지금은 안기부가 하던 검열을 일부 언론과 야당이 거들고 있다. 사회의 적폐에 대한 지적과 비판을 정치적이라고 몰아가는 자체가 지극히 정치적인 태도다. 우리는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불합리한 검열로 포기할 수 없다’ 비록 하루지만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박재동 작가가 서문 초안을 통해 우리의 입장을 밝혔다.

<말하고싶다>10.7하루전을 하기로 했다. 이 결정이 무모하고 섣불렀는 지 이인철, 박불똥 작가가 하차했다. 감염병 예방조치로 전시 기간이 하루로 납작해졌다. 이 마저 같은 조치로 못쓰게 될지 모르고, 그 결정도 하루 앞을 알 수 없는 갑갑한 상황이 이어졌다. 여러 논의 끝에 성완경 작가의 입장이 나왔다.

“<말하고싶다>전의 타이틀과 그 사이 있었던 사태진행의 추이와 이에 대한 항의성, 반박성 테제에 너무 고착되어 우리가 너무 좁은 골목 속으로 우리 자신들을 몰고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많이 우려스럽습니다. 하루라는 악조건하입니다만 그것을 반대로 풀어내는 역발상 또한 긴급해 보입니다. 쉽게 풀어 얘기하면 기존의 자신의 통상적 본격작품을 풀어 내는 일이 긴요하게 요구된다고 봅니다. 물론 하루 전시라는 시공간적 제약과 비용(작품 제작비와 운송, 설치, 철거 등 비용)도 문제입니다. 예술엔 나이가 없다지만 여기 거론된 작가들이 존중받는 이름들이라면 그건 청장년과 노년, 각자의 인생과 예술, 시대의 경험을 자신의 예술 속에 녹여왔기 때문일 겁니다. 한마디로 그것이 예술이고 그래서 주목받고 재미도 있는거죠. 이것부터가 좀 더 진지하게 고려되고 또 우선되어야할 문제라고 봅니다. 하루 전시라도 그 각오가 없으면 전시를 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저 개인의 답은 이미 전시 참여하는 쪽으로 일찍부터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같습니다“

또한 기획업무를 담당하는 실무자의 현실적인 애로도 있었다.

”현재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로 국가기관에서 운영하는 공공 전시장은 모두 휴관 중입니다. 전시장이 재개관하려면 1단계가 되어야 하는데, 이는 1일 확진자 수가 50명 이하로 1주일 이상 지속되어야 하는 전제조건에서 입니다. 주변에 국공립미술관에 근무하는 친구나 전 직장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추석 이후에도 전시장이 재개관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명절이 있기 때문에 예술의전당에 9/29(화)까지 모든 자료를 드려야합니다. 예술의전당 홈페이지 내용업로드, ARS 전화안내문 작성, 주차권 신청, 현수막 제작, 리플릿 디자인 및 제작, 웹포스터 사이즈별 디자인, 그 외 각종 서류 제출 등 현수막(1개 필수)의 경우 명절 전 9/29(화)까지 인쇄해서 걸어야 하고, 명절이 있기 때문에 리플릿 디자인 후 차주 월요일에 인쇄가 들어가야 전시 전에 나올 수 있습니다. 전시를 준비하며 예산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명절 전에 이러한 비용을 다 지불하고 전시를 못하게 될까 우려가 되어 여기에 적어 봅니다”

그러나 이 마저 뒤엎는 방역지침이 9월25일 언론보도로 알려졌다. 예측과는 달리 추석 전후 공공미술관의 전시가 가능하다는 지침이었다. 예술의전당도 3일 사용일정을 바꿔 당초 전시 승인 열흘을 모두 쓸 수 있다는 통보를 해 왔다. 전시 사용일인 9월29일로부터 4일 앞두고 나온 방역지침이었다. 언론 폭격, 국회문예위원의 압력, 예술의전당과 정부방역지침의 차이..들이 뒤섞여 누구를 탓하기 어려운 황당한 상황이 되고 만것이다. 이 전시는 안하거나 못하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고 대안으로 온라인 전으로 재빨리 갈아 타기로 했다.

처음에 사정상 함께 하지 못한 노순택, 이윤엽 작가와 도중 하차한 작가도 온라인전에 함께 하게 되었다. 접근성은 다소 떨어질 지 모르지만 격리 시대의 소통, 작가주도로 지속가능한 업데이트,
연대, 계승, 다목적 아카이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성비 좋은 발견이 되길 바란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