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렬 정부 취임 1주년을 맞았지만, 동자동 공공개발은 한 치의 진전도 없이 아예 손을 놓고 있다.

 

지난 해  5월 대통령직인수위는 국정과제의 열 번째로 촘촘하고 든든한 주거복지 지원 안을 내 놓으며,

취약계층에 대한 안정적 주거환경 보장을 발표했다.

 

그리고 국토부는 연 초 보도자료를 통해 ’쪽방촌은 현재 추진 중인 사업 속도를 높이고,

쪽방촌 정비사업과 공공임대 이주지원은 조속히 추진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라 발표했으나.

모두 입에 발린 소리라 하나도 실행에 옮긴 것은 없다.

 

공공주택을 기다리다 지친 빈민들이 힘을 모았다.

‘동자동공공주택사업추진주민모임‘,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동자동사랑방’ 등 여러 모임에서

반 빈곤 사회운동 시민단체가 모인 ‘홈리스행동’과 연대하여 거리로 몰려나왔다.

 

윤석렬 대통령 취임 1년을 맞은 지난 16일 오후2시, 용산 전쟁기념관 상징탑 앞에서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추진을 촉구하는 '주거권 행진’ 기자회견을 열어,

“약자 주거복지 빵점!”이라며 정부를 규탄하고,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의 신속한 추진을 촉구했다.

 

동자동 재개발을 발표한 후로 주민들의 주거 상태는 더욱 열악해져 사람 살 곳이 아니다.

죽어 나가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는 현실이라, 하루속히 주거권을 보장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자동 공공주택 사업추진 위원회’ 김영국 위원장은 “국토부는 2021년 2월 서울역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주택 및 도시재생사업 추진계획을 통해 공공주택 임대 1250호,

분양 200호와 민간분양주택 960호를 건설함과 동시에 임시 거주지를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사업 시행을 위한 첫 단계인 ‘공공주택지구의 지정’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동자동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최갑일 이사는 “동자동 쪽방 주민은 1년에 약 50명이 죽어 가고 있는데,

최근 일부 쪽방 건물주들이 보수공사를 이유로 주민에게 퇴거를 요구하는 일도 빈번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2021년 말 동자동 주민 수가 1063명에서 지난해 말 886명으로 약 17% 감소했다며,

서울시에서 조사한 실태조사를 근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이처럼 공공주택사업이 ‘멈춰진 시간’은 쪽방에서 주민들을 하나 둘 내모는 ‘퇴거의 시간’이 되고 있다.

 

이들은 국토부가 3년 전 내건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 약속을 하나도 지킨 것이 없다며,

공공주택 사업 추진이 지연되는 사이 주민들은 보수도 해주지 않는 열악한 쪽방에서 ‘희망고문’을 당한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이 끝난 후, 동자동 공공주택 사업의 ‘첫삽’을 뜨라는 ‘첫 삽’ 증정식 퍼포먼스를 열었다.

 

‘공공주택 첫 삽 떠라’는 문구가 적힌 모형 삽을 윤석렬 대통령에게 전달하기 위해 대통령실로 향했으나

경찰이 제지하며 대신 전달해 주기로 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후 지하철 삼각지역과 한강대교를 지나, 동작구 본동에 위치한

원희룡 국토부 장관 자택까지 향하는 ‘쪽방 주민 주거권 행진’이 시작되었다.

“헌집 새집 손수레”와 손 피켓이나 현수막을 펼쳐들고 거리 행진에 나선 것이다.

 

선두에는 종이로 만든 쪽방 모형을 앞 세웠는데, 국토부장관에게 쪽방을 전달하는 퍼포먼스였다.

 

그러나 연세가 많은 주민들이 많은데다, 그날따라 날씨마저 더워 사고라도 날까 걱정했으나,

악에 받쳐 그런지 쓰러지는 분은 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다.

 

국토부장관 자택이 있는 노들역 주변의 아파트 앞에서 행진을 마무리하고,

결의대회를 열어 국토부의 공공주택지구 지정을 재차 촉구했다.

 

동자동 주민들이 차례대로 나와, 사람 살기 어려운 여건이나 연대발언과 투쟁 결의문도 낭독했다.

 

마지막으로 ‘헌집 새집 손수레’를 국토부장관에게 전달하는 퍼포먼스가 진행되었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를 바꾸어 ’희룡아 희룡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를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내 나이가 어때서’ 노래가사를 아래처럼 바꾸어 불렀다.

 

“야-야-야- 공공주택 어때서

발표하고 나몰라라 하-나-요

사람은 하나요. 우리도 국민인데

공공주택 약속 왜 안지키나요

눈물이 나네요, 나몰라라 하니까

공공주택사업 딱 좋은 계획인데

원희룡 장관님 집은 정말 좋군요

우리 집은 쪽방 단 한 칸, 건물주야 비켜라

우-리가 주민이다. 내 주거권 내가 지킨다“

 

아래는 그날 낭독한 투쟁결의문이다.

(투쟁결의문)

지난 5월10일, 윤석렬 정부는 취임 1년을 맞았다. 취임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110대 국정과제의 열 번째로 “촘촘하고 든든한 주거복지 지원”을 내세우며 “취약계층에 대한 안정적 주거환경 보장”을 공언하였다. 그러나 우리 동자동 쪽방 주민들의 주거 상태는 더욱 더 바닥으로 치닫고 있다. 오늘, 국토교통부 장관은 취임 1년을 맞는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초 보도 자료를 내 “쪽방촌은 현재 추진 중인 사업 속도를 높이고, 쪽방촌 정비사업, 공공 임대 이주지원 등은 조속히 추진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라 하였으나, 동자동 쪽방 공공주택사업은 단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고 있다.

 

만 2년이 지난 2021년 2월5일, 국토교통부는 “서울역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주택 및 도시재생사업 추진계획”을 통해 동자동에 공공임대주택 1,250호를 건설함은 물론, 공사기간 중에 머물 임시 거주지를 제공하기로 했다. 당시 발표한 일정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공공주택 건설이 시작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국토교통부는 소유주들의 반발을 핑계 삼을 뿐, 사업 시행의 첫 단계인 ‘공공주택지구의 지정’조차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일하기를 멈춘 사이, 동자동 주민들은 낡아만 가는 쪽방에서 위태로운 삶을 부여잡고 ‘희망고문’을 당하고 있다. 한 해에 수십 명의 주민들이 가난과 취약한 주거환경 속에서 세상을 등지고 있다. 서울시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1,083명, 2021년 1,063명이던 주민은 2022년 886명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최근에는 일부 쪽방 건물주들이 건물 공사 등을 빌미로 주민들에게 재계약 거부와 퇴거를 요구하고 있다. 주민들을 내몰고 부동산 개발이윤을 쌓는 일, 이것이 건물주들이 하겠다는 “아름다운 민간개발”의 본질이다.

 

우리는 오늘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취임1년을 맞아 장관의 집을 찾았다.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이 집이 보금자리이듯, 우리에게 동자동 쪽방과 그곳에서 일군 이웃들과의 관계들 역시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것임을 말하기 위해서다. 대통령과 국토교통부 장관 취임 1년, 우리 쪽방 주민들에게는 기념할 것 없는 배제와 설움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생명과도 같은 우리의 주거권을, 부동산 개발 이익을 위한 건물주들의 탐욕에 결코 헌납하지 않겠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약자 주거복지 빵점 1년을 속죄하고, 동자동 쪽방 주민의 주거권 보장을 위한 공공주택 사업에 당장 나서라.

 

쪽방 주민 주거권 보장, 공공주택사업으로 응답하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공공주택사업 시행하라!

2023년 5월16일

“쪽방주민 주거권 행진” 참가자 일동

사진, 글 / 조문호

 

[2023.5.23작성]

조계종 사노위, 반빈곤 단체 등, 무연고 사망자 합동 추모

17일 경기도 파주에 있는 서울시립승화원 제1묘지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집에서 열린 합동 추모제. ⓒ김수나 기자

무연고 사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이들의 죽음과 장례에 대한 사회보장을 촉구하는 합동 추모제가 열렸다.

대한불교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등은 17일 경기 파주에 있는 서울시립승화원 제1묘지 100구역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 집에서 추모 의식과 문화제를 진행했다.

이날은 유엔이 정한 세계 빈곤 퇴치의 날로, 무연고 사망자 합동 추모제는 2017년부터 매년 이날 열리고 있다. 빈곤 운동 단체 등은 홀로 죽음을 맞고 장례를 치러줄 이마저 없는 무연고 사망을 단지 연고자가 없는 죽음이 아닌 빈곤으로 인한 인권 문제로 본다.

이들은 특히 추모제가 열린 서울시립승화원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 집이 일반 봉안시설과는 달리 실질적으로 유골함을 일시 보관하는 창고 역할에 그치고, 상시가 아닌 추모제 날 하루만 개방되는 등 진정한 추모의 공간이 아니라는 점을 큰 문제로 지적했다.

추모객들은 이 창고에 갇힌 죽음에 대해 “불평등하게 살다, 죽어서도 존엄은 없다”면서 “이들은 잊진 존재가 아닌 기억돼야 할 존재이며, 누구든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권리를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용혜인 국회의원(기본소득당)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아 지난 5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무연고 사망자는 2012년 1025명에서 2021년 3488명으로 지난 10년 동안 3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무연고 사망자는 모두 2만 906명에 달한다.

 

(오른쪽) 지몽 스님 등 무연고 사망자를 위한 기도법회를 하고 있는 불교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소속 스님들. ⓒ김수나 기자

이날 지몽 스님(대한불교 조계종 사회노동위원장)은 추모사에서 “살아서 고독하고 가난했던 이들에게 죄송한 마음”이라며 “장사법 일부 개정으로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공영장례의 길이 열렸지만 갈 길이 멀다. 하루빨리 무연고자 장례에 관련된 미비점과 현장 실태를 파악해 존엄을 담보할 수 있는 매뉴얼이 갖춰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무엇보다 행정실무 담당자는 물론 국민 모두 무연고자 공영장례에 대한 온정주의와 시혜적인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현재 1인 가구 및 다양한 가족 형태가 늘고 있어, 가난과 관계 단절에서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기에 무연고 사망자 장례는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지몽 스님은 “차갑고 창고 같은 건물 속에 있는 유골을 외면하지 말고, 서울시와 서울시장은 유골 보관 창고가 아닌 무연고 사망자를 추모하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누구나 애도 받고 애도할 수 있는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고 존엄하게 이생을 마무리할 수 있는 사회보장제도로서 공영장례가 자리매김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백광헌 부위원장(동자동공공주택사업추진주민모임)은 “이 건물을 봐라, 여기가 추모하는 공간인가. 내가 죽어도 (추모의 집에 봉안된)이천 명 중 한 명, 누가 나를 기억할까”라며 “간판이 없어 찾아오기도 어렵고, 여기가 어디인지 몇 번이나 왔지만 놀랐다. 기억도 안 하고 추억도 없는데, 마지막 가는 길이라도 행복하게 조금만 더 신경 써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동자동, 양동 쪽방촌 등지에서 온 이웃들이 참배하고 있다. ⓒ김수나 기자

지난 6월 22일부터 시행된 장사 등에 관한 개정 법률(약칭: 장사법)에 따르면, 시장 등이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존엄하고 표준화된 장례 절차를 제공하기 위해 장례비용을 국비로 지원하고, 지원 기관으로 장사지원센터를 두도록 했다. 현재 장례 절차 지원은 한국장례문화진흥원에 위탁했으나 예산과 인력, 기능과 역할 등과 관련한 구체적 과제들이 남은 상태다.

특히 이 지원센터가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단순 지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충분한 추모와 애도가 이뤄지는 과정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참가자들은 이날 결의문을 내고 “고인들의 마지막을 추모하는 것에 그칠 수 없다. 빈곤을 만드는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추모만으로 어떠한 사회적 변화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들에 따르면, 2021년 전국 무연고 사망자는 3600여 명으로 이 가운데 연고자가 있지만 병원비, 장례비 등으로 시신 인수를 포기해 무연고 사망자가 된 이들은 2500여 명에 달한다. 실제로 연고가 전혀 없는 사망자는 전체 무연고 사망자의 30퍼센트를 넘지 않는다. 이들이 무연고 사망자가 되는 원인을 연고 유무가 아닌 빈곤으로 보는 까닭이다.

 

스님들과 참배객들이 위패를 모시고 봉안시설 안에서 추모의식을 진행하고 있다. ⓒ김수나 기자

 

이들은 또 “누군가의 애도를 위한 상징적 장소는 물론, 추모의 집에 봉안된 이들을 상시 추모할 수도 없다”면서 “서울시는 유골 반환이 있을 때를 빼고 추모의 집을 상시 폐쇄하고 있다. 기억과 추모를 금지할 권한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추모의 집 안에 설치된 선반에는 공간 구분도 없이, 빼곡히 유골함이 놓여 있다. 현실적으로 많은 유골을 보관하기에 최적화된 곳일 뿐”이라며 “외부에는 이곳이 추모의 집이라 알 수 있는 안내판이나 현판도 없고 봉안된 고인을 확인할 수도 없다. 서울시는 추모의 집다운 공간으로 시설을 확충, 운영하라”고 촉구했다.

법 제도의 미비점도 지적됐다. 지자체에 공영장례 도입이 늘고 있고, 사망자의 생전 자기결정권 보장을 위해 연고자가 아니어도 연고자 지정 및 장례 주관을 할 수 있도록 무연고 사망자 장례 제도가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지만, 의료법 등 관련법은 개정되지 않거나 예산 문제 등으로 실행되기 어렵다면서 법,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무연고 사망은 연고자가 없거나 연고자를 알 수 없는 경우, 연고자가 있어도 시신 인수를 포기한 경우의 사망을 포함하지만, 장사법에 따르면 연고자가 시신 인수를 포기한 경우의 무연고 사망자는 추모의 집에 봉안하지 않는다.

 

서울시립승화원 제1묘지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집. 표지판이나 안내문 등이 전혀 없는 창고처럼 생긴 건물로 일반인은 봉안시설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김수나 기자

이날 합동추모제가 열린 서울시립승화원의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 집에는 현재 유골 약 3000위가 봉안돼 있다. 이 유골은 장사법 시행령에 따라 최장 5년 동안 봉안되는데 이 기간 연고자가 나타나면 반환되고 나타나지 않으면 장사시설 내 화장한 유골을 뿌릴 수 있는 시설에 뿌려지거나 자연장한다. 애초 봉안 기간은 10년이었으나 2020년 개정돼 5년으로 줄었다.

‘공영장례’란 법정 공영장례 지원 대상자가 숨질 경우, 법정 장례비 및 지자체 조례가 정하는 내용에 따라 장례 절차가 진행되도록 지원하는 공공장례를 말한다.

이날 합동 추모제는 1017빈곤철폐의날 조직위원회가 주최하고 나눔과나눔,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동자동사랑방, 빈곤사회연대, 홈리스행동, 화우공익재단이 주관했다.

 

17일 경기도 파주에 있는 서울시립승화원 제1묘지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집에서 열린 합동 추모제. ⓒ김수나 기자
17일 경기도 파주에 있는 서울시립승화원 제1묘지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집에서 열린 합동 추모제. ⓒ김수나 기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해마다 밤이 가장 긴 동짓날이 되면 서울역광장에서 홈리스 추모제가 열린다.

한 해 동안 거리나 시설, 쪽방과 고시원 같은 열악한 곳에서 죽어 간 이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자리다.

 

홈리스의 죽음을 추모하는 자리는 올해로 21년째다.

빈곤사회연대, 홈리스행동, 동자동사랑방 등 많은 단체가 연합한

'홈리스 추모제 공동기획단'에서 마련한 행사다.

 

올해는 비명에 죽어 간 무연고자가 모두 395명이라고 한다.

이 숫자는 시민단체에서 파악한 비공식 집계로,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 수는 알 수도 없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달부터 서울 곳곳의 노숙인시설과 쪽방, 고시원 등에서 코로나 집단 감염으로

확진자가 번져가고 있으나 방역당국은 그 규모조차 공개하지 않는 다는게 추모제기획단의 설명이다.

아마 그동안 치뤄 온 홈리스 추모제 중 가장 많은 숫자로 추정된다.

 

작년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는 집 없는 노숙자나 가난한 자들에게 더 가혹했다.

정부의 전염병 대책은 안정적 거처를 전제로 한 자가격리와 재택치료인데,

노숙자는 집이 없으니 정부 대책에 포함될 수가 없는 것이다.

고시원과 쪽방엔 주방이 없고 화장실도 한 층에 하나밖에 없어 다들 함께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대개의 쪽방에는 창문 없는 방이 많아 환기를 위해 방문을 열어놓을 수밖에 없으니

자가격리나 재택치료라는 말은 허황한 지침에 불과하다.

 

지난 11월, 단계적 일상회복이 시작한 후 용산구의 한 고시원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했다.

확진자가 생활치료센터에 들어가지 못해 방치되는 사이, 바이러스가 고시원 전체에 번져버린 것이다.

나중에는 확진자보다 걸리지 않은 사람을 찾는데 혈안이 되었다고 한다.

서울역에서 노숙하는 어떤 이는 코로나19에 확진된 후에도 갈 곳이 없었단다.

광장에 머물며 사람들이 다가오면 ‘확진됐으니 다가오지 말라’며 손사래를 쳐야 했다.

감염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개인의 몫일 뿐 이었다.

 

추모제가 열린 지난 22일에는 서울역광장 ‘홈리스 기억의 계단에 무연고사망자의

이름만 적힌 사진 없는 액자 앞에 장미 395송이가 빼곡히 놓여있었고,

 2021 홈리스 인권 10대 뉴스와 홈리스 추모제 핵심요구안이 적힌 가두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홈리스 추모제가 열리는 동짓날에는 동지팥죽을 끓여 나누어 주었지만

코로나 여파로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팥죽 없는 조촐한 추모제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코로나 때문인지 노숙하는 이들의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추모제가 열리는 오후 6시가 가까워오니 서울역 광장으로 추모객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차례대로 나와 빼곡이 나열된 영전에 추모했다.

 

주장욱 아랫마을 홈리스야학 교사의 사회아래

춤꾼 이삼헌씨의 위령무 춤사위가 시작되었다.

비통한 몸짓 속에 떨어지는 꽃잎은 그들의 넋인 냥 처연했다.

 

추모발언에 나선 동자동 정대철씨는 유영기이사장을 기억하며 그리워했다.

정씨는 좀처럼 쪽방 밖으로 나가지 않고 혼자 지냈으나 유영기씨 덕에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주민들을 만나고, 사랑방 소식지를 나누어 주는 등의 봉사활동에 보람을 느꼈단다.

집에만 있을 때보다 몸도 덜 아프단다.

 

‘양동쪽방주민회’에서 장례위원을 맡고 있는 이차복씨는

한 해 동안 양동 쪽방촌에 살다 돌아가신 분이 29명이나 된다고 했다.

전체 주민 400여명에서 29명이 죽었다는 것은 뉴스에 나올 법도 하지만,

아무도 모르게 외롭고 쓸쓸히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 분들 평균 연령은 48세란다.

이건 병사가 아니라 정부와 사회가 죽인 살인이나 다름없다..

 

‘빈곤사회연대’ 정성철 사무국장은 안타깝게 죽어 간 주광석의 사연을 풀어놓았다.

방을 구하거나 병원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등 각별히 챙겼지만,

고시원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는 부고를 받았단다.

그의 형이 시신 인수를 포기했다는 소식을 보름 전에 들었어나 아직 공영장례 공고가 나지 않아

두 달 가까이 그의 장례를 치루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연고자가 나타나기만 기다리는 시간은 기약이 없다,

죽어서도 영안실 냉동고에 누워 하염없이 장례 치루어주기만 기다려야 하는가?

죽은 신체에 관한 권한은 혈연 가족만이 소유할 뿐,

그가 살아 생 전 맺은 숱한 관계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민중가수 박준 씨가 나와 ‘전태일 다리에 서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아랫마을 홈리스야학 학생인 로즈마리와 꺽쇠 씨가 나와 ‘우리가 만든 홈리스 권리선언문’을 낭독했다.

“홈리스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 문제이며,

치료다운 치료, 존중받는 밥상, 애도할 권리 등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요구했다.

 

추모제가 끝날 무렵, 홈리스추모제 참가자들이 권리선언문이 적힌 종이를

비행기로 접어 정부와 서울시를 향해 날렸다.

그 종이 비행기에는 눈물겹게 죽어 간 395명의 넋이 실려 하늘나라로 날아갔을 것이다.

 

부디 극락왕생하여 차별 없는 세상에서 영생을 누리소서!

 

사진, 글 / 조문호

 



가족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아 죽어 간 홈리스 추모제가 지난 22일 서울역광장에서 열렸다.



거리에서 쪽방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지만, 어느 누구도 관심두지 않았다.

뒤늦게 열린 추모제에 300여명의 추모객들이 그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2019 홈리스 추모제’는 '홈리스행동'을 비롯한 40개 사회단체가 주축이 된 ‘홈리스 추모제 공동기획단’에서 마련했다.

매년 동짓 날, 서울역광장에서 열리는 이 추모제는 올해로 열 아홉번째다.



현수막에는 “거리와 시설, 쪽방, 고시원 등의 열악한 거처에서 삶을 마감한 홈리스를 기억 한다”는 글이 적혔고,

사진도 없이 이름만 적힌 166명의 홈리스 영정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거처도 없이 떠도는 홈리스가 영정사진을 어떻게 가질 수 있으며, 있어도 어디다 보관하겠는가?



추모제가 열리는 중에도 서울역 주변 곳곳에 홈리스들이 떨고 있었다.

말로만 민생복지, 민생복지 나발 불지, 다들 마음은 콩 밭에 가 있다.



올해 숨을 거둔 홈리스 사망자 숫자도 사회 활동가들이 확인한 것으로, 정부는 사망자 전수조사에 손을 놓았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조사에 따르면 2005년 서울에서만 300명, 2009년엔 350명이 사망했단다.

아마 연고자 없는 홈리스가 매년 300명 이상 운명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추모제가 열리기 전에는 서울역 주변 홈리스들에게 동지팥죽을 나누어 주었다.

다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팥죽으로 허기를 달래며, 오랜 추억에 젖었다.

동짓날만 되면 팥죽 먹으러 서울역으로 온다는 노숙자도 있었다.



추모제는 춤꾼 이삼헌씨의 위령무 공연으로 시작되었다.

떨어지는 꽃잎이 흩뿌려진 그들의 넋인 냥 처연했다.



위령무 공연이 끝난 후, 동료 홈리스를 떠나보낸 친구들의 추모사가 이어졌다.



홍난이씨는 고 정금안씨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다.

정씨는 남편 폭력에 견디지 못해 서울에 도망쳐 와 노숙생활을 했단다.

장애가 있으나 빈 병이나 폐지를 주워 모아 어렵게 살면서도

홍씨에게 라면이나 담배를 사주는 등 인정 많은 언니라고 추억했다.




이름대신 ‘행복’이라 밝힌 한 남자는 고시원에서 숨진 고 나승욱씨를 추억했다.

2년 전 나씨와 홈리스 야학에서 만나 같이 컴퓨터도 배우고 도배학원도 다니며 동거 동락한 추억을 떠 올렸다.

숨진 후 오랫동안 고시원 방에 방치됐다는 사실이 너무 가슴 아프다고 했다.




고 연영철씨의 상주를 맡았던 동자동 쪽방촌 송범석씨는 ‘빈민들이 사람답게 살 권리’를 호소했다.

대부분의 쪽방 계단이 좁고 가파른 데다 조명조차 없는 열악한 환경에 사고를 당했는데,

돈도 없어 제 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목숨을 잃게 되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아랫마을 홈리스야학’ 노래 교실 수강생들이 나와 ‘떠나가는 배’를 불렀고,

가수 정태춘씨는 홈리스 사망자를 위해 ‘서울역 이씨’를 불렀다.

이 노래는 정태춘씨가 2005년 홈리스 추모제 참석을 위해 급히 지은 자작시인데,

그 뒤 곡을 붙여 ‘서울역 이씨’로 앨범에 담았다고 한다.



정태춘의 ‘서울역 이씨’


서울역 신관

유리 건물 아래 바람 메마른데

그 계단 아래 차가운 돌 벤취 위

종일 뒤척이다

저 고속전철을 타고

천국으로 떠나간다.

이름도 없는 몸뚱이를 거기에다 두고

예약도 티켓도 한 장 없이

떠날 수 있구나

마지막 객차 빈자리에 깊이 파묻혀

어느 봄날 누군가의 빗자루에 쓸려

소문도 없이 사라져 주듯이



모던한 투명 빌딩

현관 앞의 바람, 살을 에이는데

지하철 어둔 돌계단 구석에서

종일 뒤척이다

저 고속 전철을 타고

천국으로 떠나간다.

바코드도 없는 몸뚱이를

거기에다 두고

햇살 빛나는 철로

미끄러져 빠져 나간다.

통곡 같은 기적소리도 없이

다만 조용히

어느 봄날 따사로운 햇살에 눈처럼

그 눈물처럼 사라져 주듯이

소문도 없이 사라져 주듯이





정태춘씨는 노래에 앞서 “이 비만과 빈곤의 어이없는 공존. 저 모든 거짓과 환상과 그 역겨운 문명과 시스템,

사회로부터 버려져 쓸쓸히 죽어간 모든 이를 추모 한다”고 말했다.



이어 추도사를 올린 홍난이, 행복, 송범석씨가 함께 나와 권리선언을 낭독했다.

“홈리스로 살게 하는 조건에 눈 감는 세상, 홈리스의 존재를 부정하는 세상,

자립과 자활만을 강요하는 세상, 부실하고 불충분한 지원만을 내세우는 세상이야말로

홈리스를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원인임을 우리는 안다”며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할 권리와 추모와 애도를 누릴 권리, 집다운 집에 살 권리,

제 때 적절한 치료를 받을 권리,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라”고 주장했다.



몇 년 전 홈리스 당사자가 한 말을 한 번 들어보라.


“우리에게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느냐고 묻지 마십시오.

그 질문은 네가 잘못 살아 거리 잠을 자게 된 거 아니냐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그 질문에는 개인의 불행에 대한 사회의 책임이 빠져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서 요구하는 것은 최소한의 잠자리와 일자리, 치료받을 권리입니다.

그것은 모든 국민에게 동등하게 주어져야 하는 당연한 권리입니다“



추모제가 끝난 후, 166명의 사진없는 영정이 새겨진 플랜카드를 든 추모객들이

서울역 주변과 지하철 2번 출구부터 13번 출구까지 행진했다.

행진하는 중에도 서울역 주변은 노숙자들이 여기 저기 웅크려 떨고 있었다.



죽음을 방관하는 이 야만의 세상에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국민들이 뽑은 국회의원들은 밥그릇 싸움에 눈이 뒤집혔고.

복지부동의 공무원들은 돈 생기지 않는 일은 알아도 모른 채한다.

가진 자들은 더 많이 가지려고 약자를 짓밟는데, 가난한 빈민들에게 세계 경제 11위가 무슨 소용이냐?



돈이 남아 돌아 쓸데없는 곳에 낭비되는 돈이 얼마나 많은데,

그 만분의 일이라도 빈민 복지에 사용하면 어디가 덧나냐?

토목공사를 벌이거나 비싼 무기나 수입해야 떨어지는 게 있지,

남는 게 없는 빈민들 복지에 왜 신경 쓰겠나? 


 

“에이~ 천벌 받을 놈들, 하늘이 무섭지 않나”

제발, 사람답게 살고 사람답게 죽을 수 있도록 하라.


사진, 글 / 조문호











































































































이삼헌씨가 위령무를 추고 있다.


연고 없이 세상 떠난 이를 추모하는 ‘홈리스 추모제’가 지난 동짓 날, 서울역광장에서 열렸다.


동자동 조인형씨가 추모제단에 국화를 헌화하고 있다.

정부에서 사망자 전수조사에 손을 놓고 있어, 빈곤 활동가들이 집계한 올 해 사망자만 166명이란다.
실제론 서울에서만 300명 이상이 죽어가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추모제단


동자동 쪽방에 거주한 열여덟 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영정사진도 남기지 못한 채, 이름만 남겼다.


추모객들

거리에서 죽은 노숙자는 시신이라도 제 때 수습되었지만,
방안에서 외롭게 죽어 간 사람은 시신 섞는 악취로 알게 되었다.


동자동 송병섭씨가 연영철씨에 대한 추모글을 읽고 있다.

동자동에선 가파른 계단에 굴러 떨어져 죽은 두 사람 외에는 대부분 술 때문에 죽었다.

독약인줄 알지만 이승에 무슨 미련이 있겠는가?


동자동 조인형씨가 잘가라고 손을 흔들고 있다.

서둘러 떠난 그들을 기억하러 서울역광장에서 열리는 추모제에 갔다.
무대 앞 현수막엔 올해 죽은 홈리스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꼼꼼이 살펴보니, 아는 분도 여럿 있었다.
더구나 연영철씨는 옆방에 살던 후배가 아닌가.
4층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떨어져 척추를 다쳐 전신이 마비되었는데,
돈이 없어 수술시기를 놓쳐 병원에서 고생만하다 올 여름 세상을 떠났다.


연영철씨가 입원한 중앙병원에 병문안 간 정선덕씨 2018. 4

병문안은 여러차례 갔지만, 서둘러 화장해 장례를 지켜보지 못했다.
살아 생전 더 따뜻하게 손잡아 주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방문 앞에 앉은 연영철씨. 2017. 9

요리사 출신이라며, 언제가 맛있는 음식 한 번 만들어 대접하겠다는 말을 여려차례 했지만,

재료도 주방도 없는 쪽방에서 뭘 한단 말인가?


방에서 식사하는 연영철씨. 2018, 7

유달리 연예인들과 미녀들을 좋아해, 비좁은 방안에는 캘린더의 미녀사진을 덕지덕지 붙여 놓았다.
이제 부질없는 미련일랑 다 버리고 홀연히 먼길 떠나셨네요.


사진가 노은향씨가 보낸 내의를 전달받는 연영철씨. 2017.12


당신이 좋아하는 가수 정태춘씨가 불러 준 ‘서울역 이씨’는 잘 들었는가요?
부디 모든 것 잊고 편히 잠드소서!


가수 정태춘씨가 홈리스추모제에서 '서울역 이씨'를 부르고 있다.


그 옆에는 지난 달 심장마비로 죽은 정용성씨의 영정사진도 있었다.
착하기 그지없는 녀석인데,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다.
어미는 어쩌라고 혼자 가버렸는가?



처음 만났을 땐, 사진만 찍으면 돈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몇 번은 주었으나, 사진인들이 길들인 버릇 같았다.
그 이후부터 있어도 못 준다고 했더니, 더 이상 손 내밀지 않았다.


방안에 앉은 정용성씨. 2018, 9

항상 말은 없지만 잔정이 많아 만나기만 하면 배시시 웃었다.
술자리를 같이 하면 안주도 먹으라며 사과조각을 쥐어주기도 했다.
어머니와 술친구가 되어 어지간히 술에 쩔어 살았는데,
옥탑방으로 오르다 수 없이 넘어져 상처 아물 날이 없었다.


아래 층에 사는 정재헌씨가 살아 온 이야기를 나누다 설움에 북받쳐 울고 있다.

좌로부터 황춘화. 정용성, 정재헌씨 2018, 10


그런데 이 녀석은 나이가 아들 햇님이 또래인데, 날더러 늘상 행님이라 부른다.
하기야! 어미를 옆에 두고, 아버지라 부를 순 없지 않은가?


정용성씨 어머니 황춘화씨, 2019, 5


젊은 나이에 장가는 커녕 세상 맛도 모르고 갔으니, 더 슬픈 것이다.
갑작스럽게 죽어 장례를 치루고서야 알게 되었다.
빈소에서 아들 죽음이 실감나지 않았는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뒤늦게 만나서는 아들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을 바가지로 쏟아냈다.


2017년 11월 동자동 추석잔치에서,,,

운다고 떠난 자식이 돌아 올 수 있겠냐마는 얼마나 가슴이 미어터지겠는가?
죽은 자식보다 황춘화씨가 더 걱정이었다.
이제 옥탑방에서 살지 말고 낮은 층의 작은 방으로 옮기라고 부탁도 했다.




그런데, 죽은지도 몰랐던 전경희씨의 영정사진도 있었다.
한 동안 보이지 않아 잊었는데, 올 2월 심장마비로 죽었단다.
2년 전 대부도의 ‘아름다운 동행“에 함께 한 적도 있었다.
식당 벽에 붙어 있는 술 광고 속의 미녀를 보며 “이쁜 여자 보니 춘정이 동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더니,
”젊을 때 바람께나 피웠겠다“며 꼬리웃음 치던 모습이 눈에 선한다.


대부도 기념관에서 김정심씨와 기념사진 찍는 전경희씨, 2017.11

그 외 신기식, 이삼석, 최상섭씨를 제외하고는 동자동 살았지만, 모두 낯설더라.
평소 바깥 출입은 않고 방안에서만 살았다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좌우지간, 모르는 분을 포함하여 비명에 간 166분의 이름 앞에 고개 숙였다.


홈리스 야학 합창단이 '떠나가는 배'를 부르고 있다.


부디 아무런 원망말고, 그냥 팔자가 사나워 먼저 떠난다고 여기세요.

이 더러운 세상, 더 살아 무슨 영광을 보겠습니까?

고생스런 이승을 마무리하였으니, 저승에선 잘 산다는 믿음 하나로 위안 삼으시길...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조문호합장



추모객들이 서울역 주변을 행진하고 있다.










































2019 홈리스추모제가 오는 22일(동지) 서울역 광장에서 열려...



16일 낮 2시 서울역 광장에서 홈리스행동 등 41개 단체가 ‘2019 홈리스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여인숙에서, 대합실에서…연고없이 떠난 166명의 영혼을 기리다


1959년생 신아무개씨는 지난 10월30일 서울 마포구의 한 여인숙에서 숨졌다. 공사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던 그가 갑작스럽게 숨진 이유도, 연고자도 알 수 없었다. 동료는 있으나 가족이 없는 그의 죽음은 ‘무연고 죽음’으로 분류되었다. 1959년생 윤아무개씨도 지난달 20일 노량진역 대합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마찬가지로 숨진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가족이 있으나 그의 주검을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윤씨 역시 ‘무연고자’로 세상을 떠났다.


홈리스행동 “홈리스에게 적절한 주거 환경 마련해야”


16일 낮 2시 서울역 광장엔 이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위한 고운 레드카펫이 깔렸다. 카펫 위엔 166개의 액자가 가지런히 놓였다. “1957.12.3~2019.3.4 고 김종용님”, “1982.?.?~2019.4.6 고 신애란님”. 액자 속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1월까지 서울의 거리와 쪽방 등에서 연고 없이 숨진 166명의 이름과 생년월일, 세상을 떠난 날짜와 장소가 적혀 있었다. 살아서 꽃길을 걷지 못했던 이들의 영전엔 166송이의 장미가 놓였다. 2019 홈리스(노숙인) 추모주간을 맞아 설치된 ‘홈리스 기억의 계단’이다.


홈리스행동 등 41개 시민단체가 꾸린 ‘2019홈리스추모제 공동기획단’은 이날 낮 2시 서울역 광장에서 ‘2019 홈리스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한해 열악한 거처에서 삶을 마감한 이들을 추모하고 노숙인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주최쪽은 정부가 홈리스에게 적절한 주거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언에 나선 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지난 10월에 발표된 정부 대책에는 주거취약계층에게 임대주택 2천호를 제공하겠다고 나와 있다. 이는 매년 정부가 책정해온 숫자다”라며 “2018년 인구주택총조사를 보면 비주택 가구가 45만 가구인데 2천호 공급이 주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공급계획이라 할 수 있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6일 서울역 광장에 설치된 ‘홈리스 기억의 계단’


지난 10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과한 중구 양동지구 재개발 사업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양동지구엔 남대문 쪽방촌이 몰려 있다. 이 활동가는 “서울시와 중구청의 양동재개발구역 계획을 보면 쪽방 주민을 위한 계획은 단 한 글자도 없다. 공원이 세워지든 건축물이 세워지든 주민 못 들어가는 건 명약관화다”라고 짚었다. 이어 그는 “쪽방 주민들이 쫓겨나는 개발이 아니라 다시 주거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개발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들은 “양동 쪽방 개발 거주민에 대한 대책 마련하라”나 “양동지역 정비계획보다 쪽방주민 주거대책 우선이다”는 손팻말을 들기도 했다.



지난 한 해 동안 거리와 시설, 쪽방, 고시원 등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 이들을 추모하는

‘홈리스 기억의 계단’이 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서울역 계단에 마련돼 무연고 사망자 등 이름이 적힌

액자 앞에 장미꽃이 놓여 있다. 41개 시민사회 단체의 연대체인 ‘2019 홈리스추모제 공동기획단’은

이날부터 22일까지 ‘홈리스 추모주간’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무연고자 166명 떠나는 길 레드카펫과 장미꽃으로 추모 


기자회견에선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한 ‘명의도용 범죄’ 피해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도희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변호사는 “개정된 전자금융거래법에선 통장이나 카드를 대여해준 이에 대해서도 예외없이 징역형이나 벌금을 매긴다. 명의범죄 피해자들을 가해자 공범으로만 취급하는 국가의 태도가 여실히 드러난다”며 “경제적으로 궁박하고 사회경험이 부족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똑같은 책임을 묻는 것은 실질적 평등이 아니다. 실제로 이익을 보거나 소득을 얻지 않은 사람이 모든 채무 부담을 지고 평생을 국가 빚에 신음하는 결과 또한 정의가 아니다”고 말했다.

올해로 열아홉 해를 맞은 홈리스추모제는 22일 저녁 6시 40분 서울역광장에서 열린다. 추모제에선 추모발언과 노래공연, 홈리스 권리선언 등의 행사가 진행된다.


한겨레 / 강재구 기자 j9@hani.co.kr


 




지난 22일 동지 날은 해마다 서울역에서 홈리스 추모제가 열리는 날이다.

‘홈리스 행동’을 비롯하여 ‘동자동 사랑방’등 40개 반빈곤인권사회단체가 연대한 ‘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에서 추진한 행사로,

무연고 홈리스 사망자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문화제다.






무연고 사망자를 위한 분향소가 마련되어 서울역광장을 오가는 시민들이 헌화하기도 했다.

인간의 권리를 박탈당한 채 가난과 병에 시달리다 죽음에 이른 무연고 사망자들의 죽음을 사회에 알려 추모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야하는 홈리스의 복지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드높았다.






거리나 쪽방에서 외롭게 죽은자를 추모하는 자리지만, 무관심한 사람이 더 많았다.

국민의 복지를 최우선으로 살펴야 한다는 말들은 하나, 말 뿐이다.






얼마 전 술자리에서 지하도에서 연명하는 홈리스 이야기를 꺼냈더니, 한 친구가 핀잔을 주었다.

게으르고 술만 마시는 그들은 어쩔 수 없다며, 신경 쓸 필요 없다고 했다. 너무 열 받아 한 마디했다.

“눈에 비는 거로 판단하지마라. 니가 그 사람들 사정이나 한 번 들어 봤나?

돈이 사람을 망치는 세상의, 한 희생자일 뿐이다. 어쩌면 돈에 길던 니가 더 잘 못 산긴지 모른다.“






세상이 정해놓은 논리에 순응하지 못해 비참하게 죽었는데, 누가 그들의 죽음에 돌을 던질 수 있겠나?

추모제가 열린 날은 다른 날에 비해 덜 추웠지만, 홈리스의 삶은 일 년 내내 혹한의 겨울이다.






매년, 거리에서 죽어가는 노숙자나 쪽방 촌 빈민들이 300여명이나 된다,

그들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더 절실하지만,

편안히 눈감을 수 있는 장례라도 제대로 치루어 주어야 한다.






그 날 서울역광장에서 한 해 동안 세상을 떠난 빈민들을 추모하며, 살아남은 자들이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주장했다.

그들에게 안정적인 주거와 의료혜택을 제공하고, 죽어서나마 영혼이 구천을 떠돌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다.






그 많은 무연고 사망자 중에 영정사진이라고는 세 사람 밖에 없었고, 다들 이름만 적혀 있었다.

무슨 놈의 팔자가 그토록 기구하여, 죽어가면서도 자기 얼굴 한 장 남기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추모제에서는 각종 범죄에 노출되어 있는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법률상담, 홈리스 사진관 등 여러 가지 행사가 열렸다.

그리고 소리 없는 이들의 삶을 기록한 ‘홈리스 생애기록’이란 책도 출판해 나누어 주었다.

홈리스들은 책 자체도 짐일 뿐인지라, 책보다는 ‘동자동 사랑방’에서 끓여 준 동지팥죽을 더 찾았다.






오후7시부터 시작된 추모제 본 행사에는 다들 촛불을 들고 무연고 사망자들을 넋을 기렸는데,

'동자동 사랑방' 차재설씨가 나와 안타까운 추모사를 낭독했다.

쟁가수 박준씨와 ‘노들장애인야학’의 박경석씨의 노래도 있었지만, 마음에 불을 지핀 건 김가영씨의 추모노래였다.

‘새로운 선택’이란 노래도 마음 아팠지만, ‘오! 자유여, 오! 기쁨이여, 오! 평등이여, 오 평화여’ 라고 열창한 노래에 피가 끓었다.






추모공연이 끝난 후 죽은 홈리스의 은신처이기도 했던 서울역 구내를 비롯한 일대를 한 바퀴 도는 추모행진을 하며 구호를 외쳤다.

홈리스 차별을 철폐하라”, “홈리스 인권을 보장하라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81세라지만, 홈리스의 평균수명은 48세라는 걸 잊지 말자.

홈리스의 죽음은 스스로 택한 죽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방치한 죽음이다.

그들도 인간답게 죽을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이 없어 빈소도 빌리지 못한 채 냉동 보관되다 화장터로 직행한다. 

더 이상 홈리스의 죽음을 방치하면 천벌 받는다.






이 날 추모제에는 '동자동사랑방'의 선동수간사를 비롯하여  김장수, 조두선, 김정호, 차재설, 김호태, 이난순, 유한수,

윤용주,, 박희봉, 홍홍임, 조인형, 유영기씨 등 많은 동자동주민들이 나와 팥죽을 나누어 주는 등 일 손을 도왔다.


우연히 행사장에서 옛 사우 박옥수씨를 만났는데, 요즘은 충무로에서 철수하고 집에서 지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진, 글 / 조문호
























































구하라 아랫마을반 빈곤 운동 후원의 밤이 지난 14일 오후3시부터 10시까지 대학로 육갑에서 열렸다.

 

아랫마을은 빈곤과 차별 없는 세상을 원하는 가난한 이들의 공간으로 5개 단체가 상주하는 곳이다.

빈곤사회연대’, ‘홈리스행동’, ‘금융피해자연대 해오름’,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이다.

이들 단체의 공통된 요구는 빈민들의 주거와 소득문제로 연결된다.

각기 따로 있던 단체들이 안정적 사무공간을 마련하고 홈리스야학을 지속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2010년 함께 모여 아랫마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아랫마을을 찾는 사람들은 다양하다.

파산 상담을 위해, 긴급복지를 신청하기 위해, 기초생활수급 탈락 상담을 위해, 컴퓨터를 배우러,

한 끼 식사를 나누러, 티브이를 보러,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다양한 일을 해결하기 위해 아랫마을로 모여든다.

가족과 사회와 단절된 빈민들의 무너진 관계를 회복하는 소중한 공간인 것이다.

 

그러나 아랫마을은 월세 150만원에 세 들어 있다. 공과금과 기본 운영비도 매달 30~40만원 든다.

5개 단체 모두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고 후원금으로 운영해 재정상태가 열악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아랫마을 1년 나기를 위해 후원의 밤을 마련한 것이다.

 

동자동 사랑방가족들도 '아랫마을' 일일주점 후원행사를 도우러 나섰다.

난, 식도락에 밥 먹으러 갔다가 박정아 대표로 부터 일일주점 행사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날은 광화문광장에서 12차 촛불집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함께하는 광화문미술행동의 인증샷과 기록을 맡아야 했는데, 약속한 오후4시는 가장 바쁜 시간대였다.

정영신씨에게 미뤄두고 참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아랫마을구하는 일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시간 맞추어 대학로 후원주점에 들렸더니, 동자동 사랑방 공제협동조합의 박정아 대표를 비롯하여

허미란, 정도영씨 등 몇 분은 도우미로 일하고 있었다.

좀 있으니 우건일 조합장을 비롯하여 김정오, 최남순, 김창헌 김호태, 선동수씨 등 동자동 식구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일일주점 티켓 만원으로 아랫마을이 한 해를 꾸려갈 수 있도록 다들 동참한 것이다.


그러나 그 자리는 일거양득의 시간이었다.

아랫마을을 돕는 일만 아니라 주민들과 어울려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친목의 자리였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참 좋은 시간이었다.

 

아랫마을이 활동을 이어가려면, 독지가의 후원이 절실하다.

도움 주실 분은 후원계좌(794002-04-068844 국민은행 이동현)를 통해 전달하면 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