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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잘 못 만나 거리로 내몰린 박종근(41)

내가 사는 옆방에 온 지가 2년 가까이 되었다.

동자동 오기 전만 해도 거리를 떠돌던 노숙인이었다.

오랜 노숙 생활로 생겨 난, 뇌 질환 선고를 받고야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쪽방에라도 입주할 수 있었다.

 

중학교 다닐 무렵, 아버지가 알콜 중독으로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자식을 버리고 어디론가 도망쳐 버렸단다.

부모 찬스는 커녕, 부모 잘 못 만나 버려진 인생이다.

 

학교를 중퇴한 종근이는 년 년 생인 동생을 데리고

거리를 떠돌았으나, 몇 년 전 동생마저 목메어 자살해 버렸다.

가족을 다 잃은 종근이는 이제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

 

한 번도 희망을 품어보지 못해 바라는 것도 없단다.

여태 취미생활 한 번 즐겨본 적 없어

수급비가 생겨도 돈 쓸 줄도 몰라 대부분 담배값으로 날린다.

 

동자동 온 후로는 온종일 쪽방에 틀어박혀 티브이만 끼고 산다.

 동자동 사랑방에 들려 일 돕는것이 유일한 외출이다.

내성적이라 평소 말은 없으나, 인정은 많다.

 

한평생 누구처럼 사랑 한 번 받아 보지 못했고,

짐승처럼 살 수밖에 없던 비참한 삶이 누구의 죄이던가?

그 억울한 삶을 보상받을 수는 없을까?

 

사진, / 조문호

 

 

 

쪽방촌도 봄 바람은 분다.

아침부터 ‘동자동 사랑방’ 김정호씨로 부터 연락이 왔다.

카메라 작동이 안 된다는며 좀 봐 달랜다.

 

세수하러 나갔더니, 밥 푸던 박종근씨가 ‘밥 좀 드릴까요?’라고 묻는다.

라면만 끓여 먹는 게 안 서러운지, 다들 나만 보면 밥타령이다.

 

공원에는 벚꽃과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었더라,  

이리 좋은 날, 어찌 방구석에 처박혀 있겠는가?

 

몇몇은 봄바람 맞으며 햇볕을 즐겼고, 몇몇은 술에 젖어있었다.

 

이남기는 상민이 한테 괜히 심각한 척 말거는데,

누군가 빙그레 웃으며 다가오는 사내가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하여 자세히 보았더니,

한 때 왕래가 잦았던 김창현씨였다.

아마 본지가 이 삼 년은 족히 된 것 같았다.

 

어디 갔다 왔느냐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개인적인 신상만 물어보면 횡설수설하는 창현이 버릇을 알기 때문이다.

아무튼 건강한 모습이라 반갑더라.

 

‘동자동 사랑방’ 사무실 앞에는 김정호이사장이 기다렸다.

짐작한데로 카메라 조작을 잘 못한 게 아니라, 고장 난 카메라였다.

용산의 소니코리아 AS점에 가라고 전화번호 주었다.

 

골목은 도시락 배달하는 봉사원들의 발 길이 분주했다

‘동자동 사랑방’에서 운영하는 ‘식도락’앞엔 많은 사람이 기다렸다.

얻어먹으려고 기다리는 것처럼 비참한 건 없지만, 어쩔 수 없다.

먹어야 사니까...

 

2년전만 해도 ‘식도락’은 점심 같이 먹던 곳인데,

코로나 때문에 도시락 나누어주는 곳으로 바뀐 것이다.

줄 옆에 앉아 있던 이기영씨는 영정사진 한 장 찍어 달랜다.

 

오년 전 동자동 성민교회 다섯 쌍 결혼식에서

결혼사진 찍어주었는데, 오년 만에 영정사진이라니,

너무 빨리 가는 건 아닌가?

 

서울역광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점심때라 그런지, 그곳도 컵라면 타려고 긴 줄이 서 있었다.

술 마시는 노숙인은 밥도 필요 없다.

 

술 기운으로 버티며 천국행 열차를 기다린다.

어디가 아픈지. 웅크려 자는 노숙인 밥을 비둘기가 훔쳐 먹었다.

문둥이 코 구멍에 마늘을 빼먹지...

 

그런데, 엊그제 YTN뉴스에서 노숙인 현황을 상세히 소개하더라.

‘홈리스행동’에서 대통령인수위에 제공한 자료라는데,

일정한 거처가 없는 노숙인과 쪽방주민이 전국에 1만4천여명이란다.

그 중 노숙인은 9천여 명으로 5년 전보다 21% 줄었다고 한다.

 

문제는 여성 노숙인이 점차 많아진다는데 있었다.

노숙인 네 명 중 한 명이 여자라는데,

남자보다 여자의 노숙이 더 힘들다는 것은 말해 뭐하겠는가?

 

새 정부에서 ‘노숙인 없는 대한민국’ 좀 만들어다오.

무대뽀 대통령이라면 그 것 쯤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진, 글 / 조문호

 

 

춘 삼월이 다 가건만 꽃구경은커녕, 마음은 한 겨울처럼 얼어붙었다.

이년 넘게 끌어온 코로나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는데다

무차별 살상하는 우크라 전쟁시국이라 뉴스보기도 무섭다.

 

그리고 대선이 끝나 돌아가는 우리나라 정세는 어떤가?

대형 산불로 피해 입은 이재민들은 살길이 막막한데,

대권 잡은 윤석렬씨는 청와대를 국방부로 옮기겠다고 우긴다.

 

그 밑에 달라붙어 부채질하는 정치 파리 떼가 더 밉다.

백발의 능구렁이까지 끼어 알랑방귀 뀐다.

 

하필이면 북한이 미사일을 쏘아대는 상황의 국방부에 가려는 속내가 궁금하다.

청와대 터가 무서운가? 아니면 선제타격에 앞장서겠다는 건가?

 

그렇게도 용산에 살고 싶다면, 내가 사는 쪽방촌으로 오라.

빈민들 사는 걸 보면 그 따위 허튼 소리는 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대통령 복이 없는 나라지만, 해도 해도 너무하다.

도둑놈 대통령에다 바보 대통령까지 나오더니, 이젠 무대뽀 대통령까지 만들었다.

군인 정치에 몸서리를 쳤는데, 검찰 권력이 정권을 잡은 것이다.

 

지난 16일은 일주일 만에 코로나 증상이 사라져 외출을 했다

사비나갤러리에 들려 그림 구경도하고 모처럼 외식까지 했는데,

다시 검사를 받아보니 양성이 나와 또 격리해야 된다네.

가만 있었으면 괜찮을 일을, 귀가 얇아 문제를 만들었다.

 

22일 오후 무렵, 격리된 정동지 집을 나와 동자동에 복귀했다.

 열흘 만에 찾아 간 쪽방이지만,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쪽방 관리하는 정선덕씨는 할멈 염색해 주느라 정신없었다.

 

오랜만에 나를 본 정씨가 죽은 서방 만난 듯 반겼는데,

코로나에 격리되어 있다 왔다니까 눈이 둥그레 진다.

다 나았다고 했으나, 그래도 검사 한 번 받아 보란다.

 

정씨는 벌어먹기 위해 까탈스럽게 굴어도 인정스러운 사람이다.

라면만 끓여 먹는 게 안 서러워 수시로 방문을 열어 먹을 것을 챙겨준다.

다들 혼자 사는 쪽방에 그 이만 할멈과 오순도순 살아간다.

 

정신장애가 있는 옆방 상민군의 방안을 들여다보니 만물상처럼 펼쳐놓았더라.

사진 한 장 찍었더니, 자기가 찍은 사진이 더 멋지다며 자랑이다.

 

걱정하는 정씨 말이 마음에 걸려 서울역광장으로 코로나 검사받으러 갔다.

출 퇴근 시간에는 사람이 몰려 줄이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오후 세 시 무렵이라 그런지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검사를 마친 후 서울역 주변의 사진 몇 장 찍고 돌아왔다.

 

동자동 새꿈 공원에는 처음 보는 전도사가 듣는 사람도 없는

텅 빈 마당에서 열심히 설교하며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

 

때 마침 옆 골목의 봉사단체 이에수즈 핸즈에서 밥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시장 끼가 돌아 끼어 섰는데, 그 날의 메뉴는 버섯 덮밥인지 버섯 죽인지 헷갈렸다.

받아들고 방으로 돌아와 식사를 했으나, 입맛에 맞지 않아 몇 술 떠다 말았다.

 

문제는 다음 날 양성판정이 나왔다는 통보를 받게 된 것이다.

또 다시 일주일동안 격리되어야 한다는 말에 눈앞이 캄캄했다.

 

쓸데없이 돌아다니며 일 만들지 말고, 방구석에 처 박혀 푹 쉬라는 말이었다.

 

아무도 없는 방안에 갇혀 독수공방 하려니, 좀이 쑤셔 못 견디겠다.

사진 몇 장 꺼내 놓고 콩팔칠팔 지껄임을 널리 양해하시길...

 

사진, / 조문호

 

쪽방 촌에는 명절만 다가오면 선물을 나누어 준다.

대개의 선물은 특정한 사람에게 감사의 표시로 전달해주지만,

동자동에서는 일방적으로 줄 세워 주는 선물이다.

 

선물을 주고받는 것이 아름다운 풍속이긴 하나 사람대접하지 않는 선물은 선물이 아니다.

이건 선물 이름을 단 배급에 불과하다.

 

줄을 서서 기다리게 하므로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심한 자괴감을 안겨준다.

그동안 ‘줄 세우지 마라’고 줄기차게 외쳐왔지만 시정되지 않았다.

 

누군 ‘배가 덜 고파 하는 말’이라고 나무랄지 모르지만,

배고픔 보다 받는 사람의 마음이 편해야 고마움도 우러난다.

 

허구한 날 줄서서 얻어만 먹다 보니 선물의 고마움조차 잊어버리고,

선물이라기보다 자존심 상하는 일상으로 여길 뿐이다.

 

그리고 명절이 되면 쪽방 주민들은 심한 외로움과 소외감에 시달린다.

가족이 없어 만날 사람도 없지만, 밥도 사 먹을 수 없다.

쪽방에 홀로앉아 라면 국물을 안주삼아 한 잔술로 적적함을 달랜다.

 

며칠 전에는 ‘이에수스 핸즈’선교회에서 팥죽을 나누어 주었다.

동짓날만 되면 서울역광장에서 열리는 ‘홈리스추모제’에서 팥죽을 나눠 줬지만,

코로나 때문에 2년째 팥죽 맛을 보지 못한 터라 반갑기 그지없었다.

홍보하지 않은 자선이라 밖으로 나온 몇몇만 팥죽 맛을 즐겼으나,. 다들 고맙게 먹었다.

 

다음 날은 ‘케이티’에서 보내 온 명절선물을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나눠줬다.

오전10시로 정한 한 시간 전부터 긴 줄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코로나 방역을 위해 물러서라고 외칠 뿐, 나눠 주는 시간을 앞 당 길 생각은 하지 않았다.

 

빈민들에게 주는 명절선물은 식료품이 주종을 이룬다.

햇반과 라면, 김 등 지난 년 말 선물과 빼 닮았다.

이제 줄 세워 주는 선물은 그만 끝내기를 거듭 부탁드린다.

'대 주고 빰 맞는다'는 말처럼, 올 해는 범한테 물린다.

 

사진, 글 / 조문호

 

 

간밤에 눈이 내렸다.

며칠 전에는 노숙인이 거리에서 얼어 죽었다.

코로나 감염이 두려워 합숙소를 기피해서다

요즘 들어 노숙인과 쪽방촌 사는 빈민들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다.

없는 자에게 코로나는 더 가혹하다.

 

난, 송년회 술타령하다 정초부터 헤매고 있으나

잘 곳이 없어 생사를 헤매는 노숙인들도 많다.

 

서울역 광장엔 밤새 내린 눈이 서서히 녹고 있었고, 노숙하는 분은 몇 명 보이지 않았다.

서울역 ‘다시서기센터’에 들어가 몸을 녹이는데, 조해인씨로 부터 전화가 왔다.

 

'제주에서 변순우씨가 올라와 ‘응암동콩나물국밥’에 있다"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핸드폰이 꺼져버렸다.

금방 방전되는 고물 핸드폰이라 공짜 폰으로 바꾸라지만, 그냥 쓴다.

밖에 나올 때만 사용하는데, 솔직히 없는 게 편하다.

 

응암동 콩나물국밥집으로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변순우씨도 모처럼 왔지만, 전화가 끊겨 오해할 소지가 있었다.

갔더니, 변순우, 조해인씨 외에 김수길씨도 있었다.

그 사이 소주를 여섯 병이나 깠더라.

 

변두리시인에게 무슨 변수가 있었던 걸까?

만난 지가 한 오 육년은 된 것 같은데, 더 젊어보였다.

30여년을 동생처럼 지냈으나, 멀리 떨어져 살다 보니 어떻게 사는 지도 모른다.

근황을 묻고 싶었지만, 사는 게 다 그렇지 별것 있겠나?

 

팔 년 전에는 정동지의 제주 장터 탐방 길에 들려 신세도 졌다.

항상 윗사람에게 싹싹하고 아래로는 의리를 챙기는 정 많은 친구다.

 

그런데, 모처럼 제주에서 출두하신 변사또 신년 하례연에

수청들 기생이 없다니! 세상이 변해도 너무 변했다.

 

낯 술에 취해 노래방 가자는 이야기까지 나왔으나 갈 수 없었다.

고질병으로 헉헉거려가며 정초부터 악쓸 수야 없지 않은가?

 

새해 첫 만남이었으나, 방석집 추억을 곱씹으며 물러나야 했다.

다들 새해에도 재미있는 일 많기를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해마다 년 말이 되면 빈민을 돕는 온정의 손길이 이어진다.

그러나 온정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부작용이 따른다.

선물을 전해주기 위해 줄 세우는 것은 빈민을 길들이는 나쁜 관습이다.

물건을 얻기위해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당사자의 자괴감을 한번 생각해 보았는가?

그 쪽팔림이 싫어 줄서지 않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하루 전에 붙인 벽보를 보고 줄을 서야하니

몸이 아파 밖에 나오지 못하는 분은 주는 것조차 모르고 지나칠 때가 많다.

정작 구호품이 필요한 분은 혜택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전해주는 물품들은 중복되거나 당장 필요 없는 물건이 많아 좁은 방에 쌓아두는 불편도 따른다.

‘공짜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속담처럼 무조건 받고 보는 나쁜 관습에 길들어 점점 뻔뻔해진다.

항상 당당하지 못하고 주는 갑의 눈치를 살피게 되는 것이다.

 

쪽방 사는 몇 년 동안 주구장창 물고 늘어진 게 빈민들 줄 세워 길들이지 말라는 문제였다.

줄 세울 때 마다 SNS에 까발려 담당 실장과 불편한 관계가 되었지만,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사실 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공원에 쌓아놓고 줄 세워 주는 것이

빠른 시간에 처분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일 것이다.

그 많은 물건을 사무실에 들여 보관하는 일도 만만찮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가 확산되며 가급적 줄세우는 것을 자제 하는 듯 했으나,

지난 년말 나눔에는 물품 부피가 커서 그런지 다시 재연되었다.

 

지난 24일 오전11시부터 동자동 새꿈공원에서 전기장판과 생필품을 나누어 준다는 벽보가 나붙었다.

30분쯤이나 지나서야 공원에 나갔는데, 이미 주민들이 선 줄은 돌고 돌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공원에는 나누어 줄 물품 박스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먼저 받은 분 물품 박스를 확인해 보니 컵라면 열 개에다 된장과 고추장이 담겨 있었다.

가벼운 컵라면 부피에 된장 무게를 보탠 빛 좋은 개살구였다.

전기장판은 해마다 나누어주는 품목이라 남아돈다.

 

줄서기를 포기하고 사진만 몇 장 찍고 돌아갔다.

두 시간쯤 지난 뒤 다시 공원에 가보니 그 길었던 줄과 많은 물건들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몇몇 사람만 남아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다.

예년과 달리 받아야 할 분들의 신분이 전산화되어

주민등록증을 등록기에 대면 확인되므로 나누어주는 시간이 대폭 줄어든 것이다.

 

그러나 필요한 물품이 필요한 사람에게 골고루 나누어질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고쳐지지 않는 것은 온정을 보내는 방법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적은 돈이지만 현금을 개인별 구좌에 입금시켜 주는 것이 가장 편리한 방법이지만,

상품을 현금으로 바꿀 수가 없다, 그리고 현금은 가급적 지양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가난으로 고생한 사람들이라 습관적으로 돈을 쓰지 않는다.

먹는 것까지 아끼는 그 꼬불치는 습관은 고칠 수가 없는 것이다.

죽고 나면 아무 쓸데없는 돈을 누굴 위해 이불밑에 묻어둔단 말인가?

 

제일 좋은 방법은 보내 온 구호물품 일체를 관할 푸드마켓으로 보내

정기적으로 필요한 물품을 골라가게 하거나, 아니면 상품권으로 나누어 주는 것이다.

그럴려면 무엇보다 온정을 보내주는 분들의 생각부터 바뀌어야 한다.

번거롭게 선물 꾸러미를 준비할 필요도 없이 상당의 현금을 동사무소에 기부하면 된다.

 

줄세우는 관습을 고민하다 어저께는 지인 모임에서 그 문제를 꺼냈다.

경영학을 전공하는 조준영 교수께 좋은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어쩔 수 없단다.

상품의 다량구매로 기업끼리 상부상조하기도 하지만,

전해주는 물건의 부피에 따라 받는 사람 기대도 부풀 수밖에 없으니, 상대적으로 덩치가 커진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줄 세우는 문제는 기어이 끝내야 한다.

길들이는 일제의 잔재를 세상이 바뀐 지금까지 답습할 수야 없지 않은가?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서라도 기부하는 방법에 대한 의식의 대전환이 시급하다.

 더 이상 없는 사람 쪽팔리게 하지마라. 

 

사진, 글 / 조문호

 

요즘 느닷없는 ‘인사동 이야기’ 사진전 준비하느라 똥줄이 탄다.

며칠동안 정신없이 지내다 액자를 맡긴 이제사 한시름 놓았다.

 

뭐보다 머리가 아픈 건 그 많은 사진에서 무엇을 보여주느냐 하는 선택의 문제였다.

오늘의 인사동을 말할 수있는 '묵시록'에 걸맞는 이미지를 골라

흑백으로 바꾸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 건 아니다 싶었다.

 

흑백으로 전환하면 사진의 리얼리티를 훼손하기도 하지만,

그 장면에 따른 컬러의 독특한 분위기가 사라져서다.

다시 스트레이트한 본래의 사진으로 바꾸었더니, 훨씬 감이 좋았다.

이제 사진자료들을 정리하여 알리는 일만 남았다.

 

돈 버는 일을 이렇게 열심히 했더라면 강남에 아파트라도 한 채 생겼을까?

돈을 우습게 여긴 스스로의 업이니 누굴 탓하랴 마는 평생 해온 일에 후회는 없다.

 

이제 정부에서 주는 돈으로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으니, 또 다시 일을 저지른 것이다.

그러나 점점 힘들어지는 것을 보니, 일을 줄여야 할 때는 된 것 같다.

 

모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 지난 이야기라도 끌적일 여유가 생긴것이다.

 

며칠 전에는 일손이 잡히지 않아 바깥 나들이를 했다.

'동자동 사랑방'에 커피 한잔 얻어 마시러 갔더니,

회의 중인지 사람들이 많아 새꿈공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낙엽을 머리에 이고 고독을 씹던 가을남자 이대영씨가 반겨주었다.

혼술을 즐기는 이씨가 그 날따라 분위기에 쏠렸는지 술 잔을 권했다.

 

그렇게 시작된 술자리는 짹짹이 아낙의 술 공수로 한 병 두병 늘어 갔는데,

영등포에서 동자동으로 이사오기로 한 차씨 아주머니의 등장과

눈 먼 권관수씨 등 술꾼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권씨는 기자들이 몇 명 찾아와 인터뷰를 하고 갔다며 떠벌렸다.

현금을 안 주고 통장에 넣어준다고 불평 했지만, 인터뷰료 들어 올 건수 생겼다는 자랑인 셈이다.

 

요즘 케이비에스에서 연말 특집 제작한다며 동자동을 헤집고 다니는 모양이다.

오전에는 내방에도 찾아와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갔다.

아무튼, 빈민들의 현실이 알려져 희망을 갖고 살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으면 좋겠다,

 

눈먼 권씨는 소주를 패트병에 담아 가슴에 품고 다니며 마신다.

담배 한 가치는 항상 귀에 꼽고 다니는데, 어디 떨구었는지 담배 찾느라 여기 저기 더듬었다.

 

귀가 밝아 비둘기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섭하는 판에

잠바 속으로 담배 떨어지는 소리는 왜 못 들었는지 모르겠다.

 

낙엽이 떨어지는 공원의 술상은 어느 술상보다 멋졌다.

 

"하나님! 전기세 많이 나가니 에어컨 좀 꺼 주세요"라고 이씨가 허공에 외쳤다.

날씨가 점차 쌀쌀해 진다는 소리다.

 

 박씨는 뭐가 그리 눈에 거슬리는지 낙엽 떨어지기가 무섭게 쓸어담았다.

지저분해서가 아니라 소일거리로 하는 일이라 말릴 수도 없었다.

 

권씨는 보이지도 않으면서 짤짤이나 고스톱만 하면 딴다고 자랑질이다.

 

본격적인 추위가 몰려오면 다들 방에 처박혀 살아야하니,

오늘이 가을의 마지막 술상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봄이야 다시 오겠지만, 동자동의 봄은 언제 오려나?

 

사진, 글 / 조문호

 

 

“비러먹을 넘! 아직 배때지가 덜 고파서..”

이 말은 동자동 김씨 영감이 아들 같은 옆방 노씨에게 한 말이다.

엊그제 ‘쪽방상담소’에서 밑반찬을 나누어주었는데,

타러 가자는데 안 간다니 뱉은 욕이다.

 

‘비러먹다’는 말은 ‘빌어먹다’ 옛말로 남에게 구걸해 먹고 사는 것을 말하는데,

반찬 얻으러 가는 자체가 빌어먹는 일 아닌가?

얻으러 가는 놈이 빌어먹는 놈인데,

안 간다는 사람을 왜 빌어먹을 놈이라고 욕하는지 모르겠다.

 

사실 쪽방 사는 빈민 모두가 빌어먹는 사람에 다름아니다.

정부에서 지원금을 받는 것이나 구호단체에서 보내 주는

물품들을 받는 자체가 얻어먹는 일이 아니던가?

 

하기야! 자본주의 세상에서 남의 업체에서 일하는 사람도 다 빌어먹는 사람이다.

‘손바닥만한 땅때기 한 평만 있어도 빌어먹고 살지는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지주와 소작농의 관계에서부터 사장과 종업원에 이르기까지 모두 주종 관계다.

그러니 다들 갑의 자리에 서기 위해 돈 벌려고 눈을 벌겋게 설치지 않는가?

 

그리고 전문 경력이나 기술보다 앞서는 것이 돈이다.

몇십 년을 연구하여 개발해도 창업 자본이 없으면

그 분야에 아무 것도 모르는 자본가한데 빌어먹는 것이 세상 이치다.

가진 자들은 자손 대대로 갑의 위치에 살고, 없는 자들은 대대로 빌어먹는다.

 

없어도 자존심 하나로 살아가는 노씨는 줄 서서 얻는데는 잘 나서지 않는다.

그냥 준다는데도 가지 않으니, 영감 입장에서는 답답한 것이다.

두 달 전부터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2주에 한 번씩 밑반찬을 나누어 주고 있다.

‘대한적십자’에서 보낸 ‘희망풍차’란 밑반찬 나눔인데, 다들 기다리는 품목이다.

 

노씨 대신 같이 가 보니, 의외로 줄 설 정도로 사람이 많지 않았다.

주민들을 격주로 나누어 분산했으니, 줄 세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받은 비닐봉지를 풀어보니, 콩조림과 멸치조림, 짜장이 각각 담겨 있었고,

단감 두 알도 보너스로 들어 있었다.

 

그 정도면 일주일쯤은 라면 신세를 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주방 없는 쪽방 주민으로서는 그보다 고마운 선물이 없다.

 

반찬은 있으나 밥이 없어, 옆방에서 일회용 밥 하나를 빌렸다.

"젠장, 빌어먹는 짓도 가지가지 하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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