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거리는 항상 사람들이 붐비지만 전시장은 대부분 비어 있다.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겠으나 사람들을 전시장으로 끌어들일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오래전부터 인사동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소식을 인사동관광안내소에 비치하라는 등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했으나, 담당 공무원에게는 쇠귀에 경 읽기였다.

 

종로구청문화관광과 담당 공무원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인사동 상인들 모임인 인사전통보존연구회만 믿는지 모르지만,

서로의 돈벌이를 먼저 생각하는 상인들 모임에서 무슨 전통문화를 보존한단 말인가?

 

인사동 큰 길가의 매장들도 많이 바뀌어 있었다.

사거리에 있던 전통 한지 가게가 ‘BLING BOX’로 변신해 있었고,

곳곳에 대규모 모자가게가 들어서 있었다.

 

인사동에서 기존 전통 가게가 살아남기는 힘들어졌다.

거리는 대부분 관광객인데, 그날따라 잼버리에 참가한 스카우트 대원들 모습도 많이 눈에 띄었다.

인사동이 한국의 대표적 관광코스는 되었으나, 인사동 고유의 특색은 보기 힘들어졌다.

 

그나마 버스킹 나선 연주자들이 삭막한 분위기에 윤활유 역할을 해주는데,

젊은 퍼포머들을 끌어들여 다양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은 어떨까?

 

복잡한 거리에서 탈 사람도 없는 관광용 아띠인력거를 운영하는 것보다는

옛날 약장수나 극장 포스터를 붙여 등짐 북을 치고 다니던 것처럼, 등짐 북을 재연하면 어떨까?

 

오랜 향수를 끌어들이는 재미도 있지만,

그날 열리는 인사동의 중요한 전시 포스터를 붙여 거리에서 등짐 북을 치고 다닌다면,

유독 전시장이 많이 몰린 인사동 홍보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뿐 아니라 거리에 전시 현수막이나 다양한 홍보물을 설치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

 

문제는 그 많은 전시 중에 볼만한 전시 한두 개를 선택하는 방법에 있다.

그 전시 광고를 신뢰할 수 있게 만들려면, 전문가가 나서야 한다.

절대 특정 개인이 개입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미술평론가 몇 분으로 구성된 선정위원회를 만들면 될 것이다.

홍보하는 전시를 신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다.

인사동 고유의 전통문화나 전시문화를 소개하는데, 전문가 개입 없이는 빛 좋은 개살구다.

 

작품성도 작품성이지만, 그때그때 사회적 이슈가 될만한 좋은 전시를 알려준다면,

이보다 더 유익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사실, 인사동에서 전시를 보려고 해도 어디에서 좋은 전시가 열리는지 몰라 방황할 때가 많다.

 

인사동에서 열리는 좋은 전시를 알릴 수 있는 선정위원회를 잘만 운영한다면,

인사동 전시문화도 살릴 수 있고관광객에게 좋은 정보까지 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 복잡한 거리에 트럭이 들어와 수박을 팔고 있었다.

차량 출입을 통제하는 인사동 거리에 몰래 비집고 들어왔으나, 큰 착각이었다.

 

사람이 많아 잘 팔릴 것으로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인사동 관광 나와 누가 그 큰 수박을 들고 가겠는가?

차라리 변두리 주택가를 도는 것이 훨씬 나을 것 같았다.

 

머리가 안 돌아가면 돈도 못 벌고 몸만 고생시킨다.

그 수박 장사꾼만이 아니라 종로구청 담당자도 마찬가지다.

 

/ 조문호

 

 

 

인사동 엔틱페어 포스터

 

'2022 인사동 엔틱 & 아트페어’'831일부터 925일까지 인사동 문화지구 일대에서열린다.

인사동 문화복합몰 '안녕인사동' 지하1층 센트럴뮤지엄을 비롯한 인사동 일대에서 열리는

엔틱페어를 시작으로, NFT, 메타버스, 비디오아트, 청년작가전, 명품 차·공예 박람회 등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한 달 가까이 이어진다.

 

행사를 주관하는 신소윤(인사전통문화보존회)회장은 "인사동은 조선 초기 한양 천도 이후

600년간 한결같이 수 많은 예술가들의 아지트였고 전통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였다"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인사동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이 행사를 개최한다"고 말했다.

날이 갈수록 전통과는 거리가 먼 장사들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하여 인사동 본래의 전통문화가

점점 밀려나고 있는 현실에서, 인사동의 정체성을 살리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나전구관문연상  28.5x40x28cm

 

지난 31일 오후 4, ‘안녕인사동센트럴뮤지엄에서 개막한 엔틱페어에서는 고미술, 표구, 지필묵 등

전통문화 관련 전시를 비롯하여 여러가지 시연 행사와 국악 공연이 다채롭게 진행되었다.

 

'2022 인사동 엔틱 & 아트페어에는 인사동 문화지구 내에 위치한 고미술 업체들은 물론,

'한국고미술협회' 소속 업체들도 참여한다. 지난해 좋은 평을 받은 고미술 전시행사를 제대로 보여주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미술 페어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한다.

특별전에 전시된 나전칠기와 주칠 공예품은 많은 관람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주칠사각반   36x35x24.5cm

 

'한국표구협회'에서는 엔틱페어기간 동안 표구 전시와 시연 행사 외에도 지필묵이나 문방사우 등 다양한 품목들을 내놓았다.

그리고 인사동 전통차음식 단체인 인사동 식구들은 전통차와 전통 한정식 홍보를 하고 있다.

 

강국진, 점(Dot), Water paint on hemp wallpaper, 46 x 46 cm, 1974

 

98부터 18일까지 열리는 2부 행사 ‘NFT & 아트페어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NFT·메타버스·비디오아트·화랑 전시가 열린다.

기성 작가만이 아니라 신진 청년 작가나 대학생에게도 전시 기회가 주어졌.

 

NFT 전시를 통하여 미래의 예술 산업이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하는, 시대 흐름에 발맞춘다.

 

김순협 , 감귤나무  E2234 Gold leaf, oil on canvas112x112 2022

 

921부터 25일까지 열리는 3부 행사에는 ·공예 박람회가 열린다.

여러 가지 차와 아기자기한 공예품들을 구경하며, 소박한 일상 속의 행복을 찾을 수 있다.

 

924일 토요일에는 인사동의 매력을 말하는 소설가 김홍신의 특별강연과 시낭송회도 진행할 예정이다.

그뿐 아니라 인사동 문화지구 내 각 분야별 전문가나 장인, 명장 등의

강연과 시 낭송회, 국악 공연·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2022 인사동 엔틱 & 아트페어 행사 메인 포스터

 

 

 

 



며칠 전만 해도 황야의 무법자가 휩쓸고 간 택사스의 황량한 풍경처럼
적막감에 휩싸였던 인사동이 봄바람 실은 온정에 서서히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손님 잃은 가게들을 위해 임대료를 안 받거나 감해주는
건물주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어제는 감기에 걸려 목이 퉁퉁 부었지만, 방구석에 처박혀 있을 수만 없었다.
떠나기 전에 처리할 일도 많지만, 봐야 할 전시들이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마스크로 무장하고 나선 인사동 나들이에 반가운 현수막들이 반겼다.
거리에 걸린 플래카드에는 ‘건물주님 감사합니다’, ‘착한 임대료 운동 지지합니다’라고 적혀있었다.



닫혔던 가게들이 다시 문을 열고, 길거리에도 드문드문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거리의 악사가 들려주는 바이얼린 소리가 인사동의 침묵을 걷어내고 있었다.






인사동에서 옷가게를 하는 차모씨가 지난 2월 한 달 치 임대료를 내지 않았다고 했다.
건물주가 전화를 걸어 “이번 달 임대료를 받지 않겠다”고 했단다.
서울의 최상위에 속하는 인사동 상권에서 벌어진 이례적인 일이었다.
차씨는 “지난해 11월 가게를 오픈한 이후 내리 장사가 안 된 데다 코로나까지 덮쳐
막막하던 차에 주인이 먼저 연락 줘 깜짝 놀랐다”며“ 이 가게 열기 전부터
5년이나 인사동에서 장사를 해 왔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낙원떡집 인사동점’이 입점한 건물도 3~5월 임대료를 20%정도 인하할 계획이란다.
낙원떡집 주인은 “지난달 매출이 급감해 적자가 난 상황이라 고마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 외에도 곳곳에서 ‘착함 임대료’ 바람이 일고 있었다.
‘인사전통문화보존회’ 사무국장의 말에 의하면 “구체적인 수치는 알 수 없지만,
상당수 건물주가 자발적으로 임대료 인하에 동참하고 있다며,
착한 임대료 운동에 참여하는 건물주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 도심 상권에서 임대료 인하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부동산업을 하는 한 전문가는 경기 불황을 이유로 건물주가 자발적으로 임대료를 내려 받은 적이 없단다.
‘임대료 불변의 원칙이 깨져 차후 임대업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도 말했다.




그리고 휴업 상태나 마찬가지인 갤러리 임대료도 면제나 삭감이 뒤따라야한다.
가진 자들의 온정이 확산되어 인사동이 다시 제자리를 찾았으면 좋겠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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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인사동에 들려 어느 외국관광객 팀을 따라 다니며 유심히 지켜보았더니,

대부분 큰 길가에 있는 잡화상만 기웃거리며 군것질만 하다 돌아갔다.
아무 매력을 느끼지 못한 듯 한데, 그런 사람들이 두 번 다시 인사동을 찾겠는가?




날이 갈수록 변질되어 가는 인사동을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

전통과 예술의 거리로 살려 낼 방법을 다 같이 찾아내야 한다.
정체성을 잃고 잡상들만 득실댄다면, 인사동의 유명세를 언제까지 유지하겠는가?




인사동은 우리 전통과 함께 예술가들의 발자취가 담긴 곳이다.




먼저, 인사동의 역사부터 한 번 살펴보자.
조선 건국으로 수도가 된 한양은 창덕궁이 있는 북촌 주변에
고관들의 집과 양반들의 저택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멀리 떨어진 북악산과 남산자락에 모여 살던 양반들이 이곳으로 옮겨 왔다고 한다.




이후 북촌은 조선의 역사와 함께 500년의 역사를 지켜왔지만,
1900년대 초 일제에 의하여 왕조가 무너지고 신분제가 사라지며,
북촌 양반들의 가세는 하루가 다르게 기울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먹고 살기 막막해진 지체 높은 양반들이 집안의 귀중한 물건을 내다 팔기 시작하며
북촌주변이 점차 골동품시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한다.




일제는 1914년 관인방 일대의 이름을 인사동으로 바꾸었다.




해방 후에는 전통과 현대의 모습이 뒤섞인 매력에 끌려 예술가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전통찻집과 전시장들이 생겨나며 전통과 낭만의 거리가 형성된 것이다




인사동에 화랑과 표구점이 많이 들어서며 미술인의 출입이 꾸준히 늘어났다.
60년대 명동을 거점으로 모이던 문인들이 관철동을 거쳐,

70대 후반 인사동으로 옮겨오며 '사루비아'다방을 거점으로 인사동 문화가 꽃 피우게 된다. 
80년대 초반에 생긴 천상병시인의 찻집 ‘귀천’과 '누님칼국수'로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들었고,

'실비집'과 '하가'는 물론 피맛골'에 박종수시인이 문을 연 '시인통신'도 많은 예술가들이 더나들었다.

90년대 들어 이해림씨가 개업한 '평화만들기'에는 예술가들과 기자들이 많이 출입하기도 했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인사동에 시인들과 관련된 자리가 많았다는 점이다.

63년 김상옥시인이 '아자방'이란 골동품점을 차려 문인들의 교류처가 되었고,

목순옥씨가 차린 '귀천'에 이어 84년도에는 정동용시인이 교장으로 있던 '시인학교'도 개업했다.

그 이후에는 '순풍에 돛을 달고'에서 이생진시인이 정기적인 시낭송회를 가졌으며,

음유시인 송상욱씨가 인사동에 집필실을 차리기도 했다.

그리고 2014년 소리시인 이춘우씨가 시 낭송회를 위한 업소 '시가연'을 개업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시공간이 몰려 있어 미술인들의 출입이 많았던 반면, 문인들의 출입도 이에 못지않았다.
그 이후 '귀천'의 천상병선생과 목순옥여사를 비롯하여 민병산, 박이엽, 강 민, 심우성선생 등

인사동을 사랑하던 많은 분들이 돌아가시고, 살아계시는 분마저 몸이 불편해 잘 나오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제 대형건물이 여기 저기 들어서고 새로운 가게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며
옛 모습은 오간데 없이 사라지고, 예술가들의 발길마저 서서히 끊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인사동에 애정을 쏟아 붙는 사람들도 여럿 있다.

천상병기념사업회’ 이사장 김명성씨는 긴 세월 동안 사재를 털어 인사동 예술가들을 지원해 왔다.

틈틈이 모임을 주선하여 예술가들의 판을 만들고, 원로들에게 여비까지 챙겨주는 애정을 보였다.

‘통인가게’ 김완규회장은 무료 판소리공연을 정기적으로개최하여 우리문화를 알리는데 힘 써 왔으며,

‘나무화랑’을 운영하는 미술평론가 김진하씨는 좋은 전시들만 유치하여 인사동 전시문화에 기여한 바가 크다.

그리고 작고한 김수영시인이 찍힌 판화를 담벼락에 붙이는 Street Art를 펼치는 이태호교수 같은 분이 있기에

인사동은 아직 희망이 있는 것이다. 내가 몰라 그렇지, 어디 이 뿐이겠는가?




지금이라도 전통과 낭만의 거리를 되찾기 위해 많은 분들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
먼저 인사동에 몰려 있는 전시장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만들자.




그 첫 번째 시도로 인사동 전시 소식을 알려주는 간단한 주간지를 만들어 안내소에 배치하자.
미술평론가 한 분을 선정하여 전시 소식지를 만들고 좋은 전시를 집중적으로 소개하자.
또한 인사동에서 전시되고 있는 다양한 전시를 홍보하므로서, 명실상부한 전시문화의 본거지로 만들자.




둘째, 예술가들이 다시 인사동으로 모여들게 만들어 인사동 낭만을 부활시키자.
천상병시인, 민병산선생, 박이엽선생, 중광스님 등 돌아가신 분들의 동상을 골목에 세우는 등

인사동에 예술혼을 불어넣자.




인사동의 매력은 이리 저리 얽힌 수 많은 골목이 아니던가?
골목마다의 특징을 살려 문학의 거리나 미술의 거리로 지칭해
예술가들이 한 곳으로 모여들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찻집이나 술집, 어디를 가도 반가운 예술가를 만날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모여 들 것이고,
예술가들이 뿜어내는 멋이 낭만의 거리로 자리 잡게 할 것이다.




기존의 ‘인사전통문화보존회’는 상인들의 모임이라 기득권을 지키려 하고.
‘종로구청’ 또한 그들의 눈치나 보는 탁상행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제 인사동을 사랑하는 예술가들이 힘을 모아 나서는 길 밖에 없다.
다 같이 지혜를 모아 종로구청과의 협의체부터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

인사동을 사랑하는 많은 분들의 관심과 협력을 부탁드린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31일 오후3시 무렵 인사동 남인사마당에서 화려한 궁중의상 한복 패션쇼가 펼쳐졌다.






'인사동 국제문화 박람회' 부대행사인 한복패션쇼는 우리나라 시대별 궁중의상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로,

인사동을 찾은 관광객들이 가장 관심 있게 지켜본 박람회 행사였다.

드라마에서나 보아 왔던 화려한 궁중의상을 만나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뜻밖에 볼거리를 만난 외국관광객들은 “원더풀”을 연발하며 사진 찍기에 바빴다.

인사동에서 궁중의상 패션쇼가 처음 열린 것은 아니지만, 인사동 박람회 중 가장 돋보이는 행사였다.






'인사전통문화보존회’ 주관으로 열린 '인사동 국제문화 박람회'는 8월 29일부터 9월 2일까지 5일 동안 인사동 전역에서 열렸다.

첫 날 '비빔밥 행사'를 시작으로 열린 전통음식 축제', 도예 및 전통 장식품 만들기 체험,

'취타대 퍼레이드', 인사동의 고미술과 현대미술로 이루어진 아트페어 등 다양하게 치러졌으나

홍보부족으로 박람회를 보기위해 찾아 온 관광객은 더 물었다.






박람회 기간동안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북인사마당에서 전통 장식품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도 열렸다.

전통도예와 장명루, 솟대, 장승, 노리개, 엽서, 한지, 연꽃 등 다양한 전통문화 체험이 열렸으나, 관광객의 관심은 저조했다.





정오부터 오후 4시까지 '인사아트센터' 앞에서 열린 전통 차 음식 행사는 공짜라 그런지  인기를 끌었다.

향긋한 차 내음을 맡으며 다양한 전통음식을 시식 해 볼 수 좋은 기회였지만, 대기한 사람의 줄이 너무 길었다.

동자동에서 수시로 줄 세우는 것에 진절머리난 나로서는, 배가 고팠지만 포기해야 했다. 






이번 인사동 박람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사동에 있는 갤러리의 작품을 ‘인사아트센터’전관에 집약시킨 특별전이다.

1층에 ‘인사동 고미술 아트페어’, 2층에 인사동 공예 아트페어, 3, 4층에 ’인사동 현대미술 아트페어‘, 5층에 ’인사동 국제문화전‘ 등

인사동 문화의 핵심을 보여주는 특별전이었으나, 홍보부족으로 관람객의 발길을 끌어 모우는 데는 실패했다. 



 


아프리카미술 전문가인 정해광씨를 ‘통큰 갤러리’ 부스에서 만나기도 했는데,

인사동 아트페어를 성공적으로 이끌지 못함이 못내 아쉬웠다.

결국은 작가들의 협조와 전문가들의 자문아래 이루어진 치밀한 기획전이 아니라는 것이다.

행사를 위한 행사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인사동의 정체성을 알리는 박람회전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이제 인사동을 위해 다 같이 머리를 맞대는 지혜가 절실한 시점이다.
인사동에 흩어진 수많은 갤러리들의 특성화, 전문화가 요구되기도 하지만,

인사동 전 구역을 연결하는 인사동 갤러리 지도를 만들자.

좋은 전시를 소개하는 홍보물을 매주 발행하여 홍보안내소에 비치하는 것은 어떨까?

뭘 알아야 전시장을 찾을 것 아닌가.

사진, 글 / 조문호






















































































달이 바뀌면 제일 먼저 하는 일 중의 하나가 인사동 나가는 일이다.
‘서울아트가이드’를 얻어와 한 달 동안의 인사동 전시일정을 알리기 위해서다.






지난 1일은 정선에서 죽도록 고생만하고 돌아와, 이틀 날 정오 무렵에야 인사동에 들렸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아라아트’ 건물 전면에 걸린 대형 현수막이었다.

매번 텅텅 비어있던 ‘아라아트’ 전시장에 모처럼 대형전시를 하나 유치했더라.






‘보헤미안 랩소디 퀸 월드투어’전이 7월7일부터 3개월 동안 열리는데, 

 ‘인터파크’에서 입장권을 판매하는 흥행전이라 관람객은 제법 몰릴 것 같았다.






김명성씨가 만든 ‘아라아트’가 중국자본에 넘어간 지가 몇 해가 되었건만,

그동안 7개 층의 대형 전시장에 전시 한 두 개가 있으면 많은 편이었다.

경매에 넘어가기 전에는 전시장을 놀리지 않고 볼만한 초대전을 계속 유치했지만

지금은 오로지 대관전에 목을 매니, 볼거리도 갈 일도 별로 없었다.

예술에 관심없는 장사꾼이 하는 일이라 걱정할 필요는 없으나, 두고 볼 일이다.






그 아래 있는 ‘H갤러리’의 쇼케이스에는 김정열씨의 산이 두 개 매달려 있었다.

일단, 지나치는 이의 눈길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인사동 큰길로 들어서니, 몰려 다니는 관광객들의 행렬이 여전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예향으로 꼽히는 인사동을 찾는 관광객들이

곳곳에 늘린 전시장에 들려 작품 감상 하는 일은 왜 그리 인색한지 모르겠다.





관광객들의 예술에 대한 무관심도 문제이긴 하지만,

대외적으로 인사동을 알리는 홍보에도 큰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종로구청'이나 '인사전통문화보존회'나 다들 제사보다 젯밥에만 관심이 있는 듯하다.





거리는 안내책자를 보거나 사진을 찍는 등,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관광객들로 부산하다.

더러 골목 식당가를 기웃거리는 여인네 동창 모임도 종종 볼 수 있는데,

남정네들의 동창 모임은 별로 없다는게 특징이다.

있어도 한 둘 술집에 모여 회포를 푸는게 고작인데, 주눅 들어 사는 사내들의 현실이다.






매장 부근으로 모여드는 비둘기 쫓느라 분주한 가게 주인 모습이 인상적이다.
“훠이~ 훠이~ 인사동에 잡귀는 물러가라!”



사진, 글 / 조문호


























인사전통문화축제가 지난 9일부터 15일까지 인사동 전역에서 펼쳐졌다.

주말을 맞은 12일은 거리퍼레이드와 개막공연으로 인사동거리가 흥청거렸고,

대취타와 풍물소리에 맞춘 길놀이 행열은 초가을의 인사동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나들이 나온 시민들과 외국 관광객들은 들뜬 기분으로 개막공연이 이어지는

남인사마당으로 따라들었으나 공연장 좌석은 이미 자리 잡은 어르신들로 꽉 찼다.

관광객들은 자연스럽게 공연장 주변으로 모여들었는데,

그만 개막식을 알리는 지루한 인사말들이 축제의 흥을 끊어버렸다.

아주 공식적인 국민의례에 이어 보존회장, 구청장, 구의회의장을 비롯한 내빈 축사까지 이어졌다.

대부분의 시민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지켜보았으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관광객들은

한 사람 두 사람 빠져 나가기도 했다.

 

어느 지역의 축제에 가든 개막식전 행사는 다 한다.

대부분의 축사들이 공치사에 불과해 지루하기 짝이 없지만, 모두들 참고 들어왔다.

이젠 방법을 바꿀 때도 되었다. 더구나 종로구는 정치일번지고 인사동은 문화일번지 아니던가

인사동부터 그러한 전례를 과감히 깼으면 한다.

많은 외국인들이 지켜보는 자리의 국민의례도 그렇거니와 지루한 인사말이란 모두 공염불에 불과하다.

돌아서면 아무도 그 말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젠 처음부터 끝까지의 모든 진행과정을 사회자에게 맡겨 무대를 재미있게 끌어가자.

공연 진행하는 중에 간간히 주최 측 인사들을 불러 박수를 쳐 주는, 생색내는 방법도 달리하면 된다.

공짜로 보여주는데 그것도 못 참느냐?” 랄지 모르지만, 그 돈은 다 국민들의 세금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의 깬 의식을 따라가지 못해, 매번 욕을 얻어먹는 것이다.

 

이날 공연은 박기덕 아나운서의 사회로 한복패션쇼와 광개토사물놀이예술단의 사물놀이,

국악소녀 송소희양의 소리, 그리고 가야금병창 등 볼거리 풍성한 잔치마당이 되었다.

특히 박지현 디자이너의 수려한 품격 뒤에 숨은 화려한 유혹이란 한복패션쇼는 짱 이었다.

궁중의상과 양반 및 기생한복, 그리고 전통한복을 응용한 웨딩한복, 파티한복, 어린이 퓨전한복에

이르기까지 새련미 넘치는 의상들로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밖에도 도자기, 목 가구, 유물 등을 보여주는 내안의 겨레 얼이란 인사고미술잔치,

표구제작체험, 전통음식체험 등 다양한 부대행사들이 인사동 곳곳에서 펼쳐졌다.

 

인사전통문화축제를 더욱 빛내려면, 앞으로 쓸데없는 공치사는 생략하자.

 

사진, / 조문호

    



















































 

 


가을 빛이 한창 무르익어가던 지난 4일 평일 오후 한낮인데도 서울 중구 인사동 거리는 국내외 관광객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각종 기념품과 공예품, 의류, 악세사리 등을 파는 상점엔 손님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었다. 커피와 차, 호떡 등을 파는 간이매점도 바삐 움직였다. 저녁이 되면 직장인까지 몰려 발디딜틈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골목 안쪽의 화랑들에는 파리가 날렸다. 화랑은 물론 골동품, 지필묵점도 적막감이 돌 정도로 한산했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속으로 눈물을 흘리는 이 상반된 모습이 인사동의 현주소이자 맨얼굴이었다.

인사동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구성된 인사전통문화보존회 윤용철 회장(57ㆍ윤 갤러리 대표)은 “인사동의 근본인 전통문화를 살리려 하지 않고 관광에만 초점을 맞춘 정책이 이어진다면 정체성이 상실돼 인사동도 10년 내에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엔 절박함이 묻어났다. 그를 만나 인사동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선시대 문화예술의 메카이자 한류의 본류

윤용철 회장과의 대화는 인사동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한류 열풍과 급증하는 외국인 관광객에서부터 시작됐다. 인사동은 올해 14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외국인 관광객의 절반 이상이 들르는 최고 인기지역이다.

“작년에 멕시코를 방문해 고속도로 휴게소에 잠깐 들렀는데, 현지 학생들이 우리를 보고는 같이 사진 찍자고 달려드는 거예요. 한류가 정말 무섭다는 걸 절감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한국에 오면 당연히 한류의 본류를 찾고 싶어하겠죠. 동대문시장이나 명동, 드라마에 나온 지역에선 화장품이나 옷을 사고 나면 끝이죠. 인사동이 한류의 본류예요. 인사동을 보면 한류가 진공상태에서 뻥 터진 게 아니라 전통에서 나왔다는 걸 알겠죠. 그게 스토리텔링입니다.”

인사동은 조선시대 이후 문화와 예술의 메카였다. 김홍도나 신윤복 같은 화가들이 활동하던 도화서가 조계사 근처에 있었고, 아래쪽 탑골공원 인근엔 연암 박지원이 살았다. 연암의 제자인 박제가도 이곳에 와서 살다시피 했다. 이들이 탑골공원에 모여 실학을 논의해 백탑파가 나왔다. 이들은 문학이나 철학, 서화에 능통했을 뿐만 아니라 당대의 최고 미술평론가들이기도 했다. 조선후기 영ㆍ정조시대 사상과 문화의 르네상스가 시작된 것도 바로 인사동이었다.

“인사동은 사대부 집안이 많았던 북촌과 맞닿아 있어 조선시대 이후에도 진귀한 골동품이나 그림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고미술이 유명해졌고, 전국의 유명 작품들도 이곳으로 모여들었죠. 매매가 활발히 일어나자 신예 작가들도 여기서 전시회를 해야 인정받을 수 있었죠. 신구의 조화로 문화예술의 메카가 됐던 것입니다.”

인사동이 특히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2년 한일월드컵 때였다. 개발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전통을 잘 간직하고 있던 인사동은 당시 급속히 늘어난 외국인 방문객들의 최고 인기 장소가 됐다. 정부도 인사동을 우리나라 최초의 문화지구로 지정해 개발에 제한을 가하고 그림과 골동품, 공예, 표구, 지필묵 등 다섯 분야를 권장업종으로 지정했다.

 

 

윤용철 인사전통문화보존회 회장은 인사동의 정체성은 고미술과 현대미술, 골동, 서화, 공예, 표구와 지필묵 등 전통문화ㆍ예술이라며 이를 살리는 정책을 추진해야 문화도 살고 관광도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금처럼 관광에 초점을 맞춘 정책으로 정체성이 흔들리면 문화도 죽고 인사동도 죽을 것이라고 정부의 대책을 호소했다. 
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멍드는 인사동

현재 인사동 문화지구에 들어와 있는 점포는 2000여 곳에 달한다. 전통문화 부문에서는 공예가 500여 곳, 화랑과 그림이 300여 곳, 골동품이 200여 곳, 표구가 70여 곳, 지필묵이 30여 곳으로 추산된다. 그림이나 서화를 위해선 붓과 물감이 필요하고, 표구 작업으로 작품을 완성해야 하며, 그것을 애호가들에게 전시ㆍ판매하는 공간이 필요하다. 인사동에는 이런 모든 것들이 하나의 공간에 통합된 곳으로 국내에서 유일하며 이것이 관광객을 끌어들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늘어나는 관광객이 전통 문화ㆍ예술 활동을 해왔던 사람들에겐 독이 되고 있다. 관광객을 겨냥한 상업주의와 올라가는 임대료, 환경 변화와 인사동의 정체성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 등이 이들을 위협하고 있다.

“과거엔 전통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왔지만 지금은 불특정 다수가 몰려와요. 그림이나 골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관광객들이 몰려 오니까 이들을 노린 중국산 제품을 팔고, 화장품 가게가 들어오죠. 인사동이 전통문화 거리가 아니라 관광지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이곳 토박이들은 집세가 올라가고 장사가 안되니 떠날 수밖에 없죠.”

윤 회장은 절박한 어조로 말했다. 온라인 경매회사나 대형 화랑들도 처음엔 인사동에 자리를 잡았지만 지금은 대부분 떠났다. 작가들은 코엑스 같은 곳에서 열리는 아트페어로 가벼려 인사동이 공동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인사동 중심가 400여 개 점포 가운데 최근 몇년 사이 200여 개의 주인이 바뀌었고, 지금도 내놓은 화랑이 많다고 한다.

“올라가는 집세 때문에 지하나 옥상, 골목 뒷편으로 밀려났어도 자존심으로 버티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한계에 도달했어요. 건물을 소유한 사람들은 덜하겠지만, 세 들어 사업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습니다. 부동산 투기업자까지 와요. 이대로 가다간 100년 넘게 걸려 형성된 인사동이 10년 내에 사라자지고 말 겁니다.”

인사동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윤 회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부산에서 화랑을 경영하고 한국청년회의소(JC) 중앙위원을 역임하는 등 활동을 하다 1990년대 중반 인사동에 터를 잡았다. 2011년 인사전통문화보존회 회장으로 선출돼 연임하고 있다. 윤 회장은 자신도 갤러리 문을 닫아야 할지 고민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고 털어놓았다.


◆“문화가 없으면 관광도, 인사동도 사라집니다”

윤 회장은 인사동을 살리려면 문화지구의 정체성에 맞도록 전통문화를 살리는 정책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시에서 조례를 통해 인사동 문화지구 일대의 건물 높이를 4층 이내로 제한하고 그림과 골동 등 다섯 가지 권장업종을 제외한 업종을 영위할 경우 벌금을 부과하고 있지만, 이것으론 인사동의 위기를 막을 수 없다는 얘기다.

“조례로 묶어 놓았지만 화장품이 들어오고 호텔이 들어오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그냥 벌금 내고 다른 업종이 들어와요. 인사동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다 떠나면 명동과 다를 것이 무엇이 있겠어요? 문화가 있으면 관광도 살지만, 관광 중심으로 가면 문화가 죽고, 그렇게 되면 결국 관광도 죽습니다. 인사동의 정체성을 살려야 합니다.”

그는 지금까지 인사동에 대한 정부나 서울시의 정책이 관광 중심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연을 지원하고, 통역을 늘리고, 차 없는 거리를 조성하는 것 등 모두 관광객 중심이었지, 인사동의 전통을 살리는 정책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그는 삼성화재가 인사동 대성산업 부지에 짓는 호텔 지하에도 처음에는 음악당이 들어설 예정이었으나, 인사동의 정체성은 미술과 골동이라고 설득해 음악당 대신 전시공간을 겸한 컨벤션센터로 바꾸도록 한 일화도 소개했다.

“서울시장이든, 문화관광부 장관이든 인사동에 대한 정체성을 알아야 합니다. 정책 입안자들이 인사동을 모르면서 정체성과 맞지 않는 정책을 펴면 인사동은 망합니다. 세계적인 관광도시 파리에는 관광객 중심의 정책이 없습니다. 문화정책을 펼치는 거죠. 문화가 있으면 관광객은 자동으로 옵니다. 그게 인사동을 살리고 관광을 살리는 길입니다.”

인사동 주변에 들어서는 호텔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호텔이 들어와도 문화 시설을 갖춘 호텔이 들어오면 좋아요. 그런데 아벤트리나 센터마크, 앰버서더 같은 호텔은 전시장은 물론 회의장도 없어요. 인사동과 관계가 없는 거예요. 인사동에 맞게 호텔에 전시장을 만들어서 골동이나 전통예술을 즐기도록 해야 합니다. 그게 호텔도 사는 길이죠.”


◆전통문화 생태계를 복원할 복합문화시설 필요

하지만 정부가 인위적으로 인사동을 재구성할 수는 없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윤 회장은 지난 몇 년 동안 추진되다 서울시와 종로구의 갈등으로 흐지부지된 전통문화복합시설 건립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

서인사마당 공영주차장 터에 전시와 공연 및 창작공간을 갖춘 전통복합문화시설을 짓는 계획으로, 지난해 종로구가 국비와 시비 등 77억원의 예산까지 확보했으나 주차장 용도 문제로 시와 구가 갈들을 빚다 예산을 반납한 사업이다.

“동대문에 디자인센터를 만들어 디자인 메카로 만들듯이, 인사동에도 이런 복합시설을 만들어 전통문화의 메카로 만들어야 합니다. 저렴한 임대료로 권장업종을 유치하면 경쟁력이 생기고, 전국의 고미술과 골동품들이 다시 들어옵니다. 골목에는 공방이나 갤러리 같이 작품을 만드는 곳, 재료를 대주는 곳이 들어서 활성화할 수 있습니다.”

정체성의 위기에 놓인 인사동의 전통문화 생태계를 복원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며 그것이 복합문화공시설이란 얘기다. 윤 회장은 중국의 구완청(古玩城)이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구완청은 중국 정부가 만든 골동품 및 서화 전시ㆍ판매장이에요. 처음엔 베이징에 만들었는데 반응이 좋자 지금은 베이징 6곳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300개가 넘어요. 중국의 전통문화와 예술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실제로 굉장합니다. 이것이 활성화되니까 새로운 작품들도 들어와 전통예술도 살리고 중요한 관광자원도 되고 있어요.”

윤 회장은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 도중 자신의 이야기보다는 인사동 이야기를 써달라며 인사동의 위기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의 말은 30~40년 이곳을 지켜온 많은 인사동 토박이들의 절박한 심정을 대변하는 듯했다.

 

[헤럴드경제 / 이해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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