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이 다가오면 반갑기보다 술병 날 걱정이 앞선다.

솔직히 말해, 돌아가신 부모님께 죄송스럽지만, 어릴 적부터 생일을 유난히 싫어했다.

내가 싫어하는 음식인 미역국을 먹는 것에서부터 나를 위해 떠벌리는 자체가 싫었다.

집에서 나와 객지로 떠돌며 생일 챙긴지 오래되어 음력생일도 잊어버렸다.

 

그러나 정동지를 만나며 사정이 달라졌다.

주민등록증에 적힌 양력 생일만 되면 제삿날처럼 기억해 내, 그냥 넘어가는 날이 없었다.

그리고 페이스북을 가까이하며 더 이상 숨길 수도 없었다.

생일을 나팔 불어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축하 인사받느라 민망스럽기 짝이 없다.

태어난 자체가 악업인데, 축하받을 일인가?

 

그 중 주변 사람 불러 모아 생일잔치 여는 것은 딱 질색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미리부터 촬영 여행을 떠나기로 약속했.

정동지와 생일 전날 여수로 출발하여 다음 날 돌아올 계획인데,

안되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듯, 태풍 온다는 일기예보로 그마저 취소되었다.

 

마침 페이스북에 판화가 류연복씨가 인사동에 나왔다며 훌훌 털고 나오라는 댓글이 달렸다.

마침 나무화랑에 전해 주어야 할 숙제 같은 문제도 있어 겸사겸사 술 동네 나들이에 나선 것이다.

 

나무화랑에 있어야 할 류연복씨는 술집 유목민에 있었다.

이름도 모르는 미인 두 분을 앞자리와 옆자리에 모신 채, 이미 술에 젖어있었다.

그리고 연극배우 이명희와 장경호, 이기만, 김발렌티노 등 조연도 많았다.

뒤늦게 나타난 최석태, 정영신까지 어울려 술판이 한창 무르익는데,

그 자리에서 정동지가 천기누설을 하고 말았다.

 

내일이 조문호 생일이다고 나팔 분 것은 떡 본김에 제사 지내겠다는 말이다.

졸지에 술자리가 생일잔치가 되어 생일 케익을 대신한 그득한 생일 팥빙수가 올라오는 등

술자리가 갑작스레 소란스러워졌다.

홀짝홀짝 마신 술에 맛이 가 결국 돼지 멱따는 소리까지 하고 말았는데,

아무리 다짐에 다짐을 해도 술만 취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똥오줌 못 가릴 정도로 취했으면, 그냥 자빠져 잘 것이지 컴퓨터는 왜 켤까?

술 취해 떠 오른 이루어질 수 없는 꿈같은 글에다 알몸사진 한 장 올려놓고,

아는 분 포스팅에 댓글까지 달고 쓰러져 잤는데,

새벽에 일어나 생각해 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컴퓨터를 열어 보니 다행스럽게도 검열에 걸려, 그 포스팅은 삭제되고 없었다.

그러나 볼 사람은 다 보았을 것이다. 쪽팔려 미치겠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댓글 또한 무례한 관람자 나무라는 말이 작가를 탓하는 글로 비칠 수도 있었다.

오죽하면 정동지 십팔 번이 제발 아는 채하지 마라는 말이겠는가?

 

속은 쓰려 죽겠는데, 생일이라고 일찍부터 손님이 찾아왔다.

정동지의 동생 정주영씨와 딸 소영이가 온 것이다.

아산 마인팀의 양햇살양이 보내 준 생일 케익에다 정동지가 준비한 새우 안주가 술상을 가득 채웠다.

진짜 생일 술은 해장술로 마신 것이리라.

점잖게 마셔야 하는 가축적인 분위기라 술맛은 어제보다 못했다.

 

연이은 생일 술에 치어 며칠을 낑낑거렸으나, 이번에는 추석인데 어찌 그냥 넘어갈 수 있겠는가?

죽을 때 죽더라도 '먹고 죽은 귀신 화색도 좋다'치 않던가.

전라도 아낙이 끊인 경상도식 탕국을 술안주로 술이 술술 넘어간다.

보름달 뜨면, 달 파먹지 않을까 걱정이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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