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背景 the Backgrounds

민재영展 / MINJAEYOUNG / 閔才暎 / painting 

2022_1111 ▶ 2022_1130

민재영_범람 이후 Ⅰ After the Flood Ⅰ_한지에 수묵채색_86×135cm_2022

 

초대일시 / 2022_1111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30am~06:30pm

 

이 전시는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의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후원 / 서울특별시_서울문화재단

 

 

인디프레스_서울

INDIPRESS_SEOUL

서울 종로구 효자로 31(통의동 7-25번지)

Tel. 070.7686.1125

indipress.modoo.at@indipress_gallerywww.facebook.com/INDIPRESS

 

배경 아닌 배경 ● 언젠가 핵전쟁 이후 세상의 모습을 CG로 시뮬레이션 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는데 여기서 보여준 가상의 장면은 모든 것이 파괴된 후 남은 석조 잔해들 위로 무성하게 자라나는 식물들로 온 도시가 뒤덮이는 풍경이었다. 같이 보던 모두들 수긍했다. 식물은 정말 어디에나 있으며 어디로든 퍼질 수 있고, 생명력이 강인하니까. 근방의 탄천변을 걷다가 일정량의 태양광과 수분만 충족되면 하루가 다르게 번성하는 풀들을 보면서 이렇게 언제나 어디에나 존재하면서 삶의 근간을 지탱하는 식물에로 전보다 관심을 갖게 된지는 오래이다.

 

민재영_범람 이후 Ⅱ After the Flood Ⅱ_한지에 수묵채색_86×135cm_2022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은 산지가 전 국토의 70%를 차지하는 산악지형이고 구릉성 야산이 많은 탓에 대도시의 주거/생활공간도 대부분 산과 함께 흐르는 하천변, 숲에 인접한 특징을 갖고 있다. 초중고등학교, 대학의 캠퍼스는 대부분 산자락에 위치하고 교가의 가사에는 반드시 그 학교의 배경인 강이나 산이 등장한다. 유학을 다녀온 어느 작가로부터 다른 나라의 풍광에서 학교 건물 뒤로 산이 보이지 않는 시야에 초현실적인 낯설음을 느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익숙하고 가까운 자연과 (단기 고속성장의 표본이 될 정도로) 밀집한 산업사회의 구조물/건물들이 섞여 공존하는 생활권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민재영_비 온 뒤에 After the Rain_한지에 수묵채색_50×200cm_2022

첫 개인전 이후 이제까지의 작업의 큰 기조는 "체험해 온 범주 안에서 타인과 공감할 수 있는 지점", 그리고 "일회성의 특이하거나 진기한 장면이 아니라 이어붙여보면 그 누구의 이야기도 될 번한 한국-대도시 거주생활의 전형성, 그 단면을 드러낸 장면들에서 각자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를 기대"한 것이어서, 작업의 무대는 주로 도시의 생활공간과 거리였다. 이러한 그 동안의 작업들은 행동 반경을 구성하는 물리적인 동선(動線)에 조응하는 내재적인 동시대 체험풍경으로서의 이미지를 채집하고 그것을 재현하려는 시도들이었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 오랜 시간 사용해 온 전통재료를 가지고 필법의 기본단위인 중봉선과 필획으로 화면에서의 구축성을 실현할 수 있는가에 대한 모색이었다. 그림 속에서의 자연이나 식물은 언제나 도시에 모여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양식의 배경으로, 찰나적인 연두나 초록으로 등장하는 정도였다.

 

민재영_작업실의 추석 the Studio on a Full moon night in Autumn_한지에 수묵채색_100×80cm_2022

2021년 가을에 지난 작업과정을 돌아보는 전시를 열었고, 연계 행사로 작가대담이 있었을 때, 주로 도시(라는 삶의 터전)에서 생활하고 관계 맺어온 시간들, 그리고 도시의 군상과 생활상을 그려온 까닭에 대해 나누면서, 체험의 교집합적(공통)요소를 창작자가 미지의 관객과 공유한다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하다가 한 편으로 과거 전통미술에서 보편적이었던 산수화라는 장르는 예술 향유자에게 어떤 의미와 기능을 했을지, 지금은 생활 속의 자연에 대한 작가들의 표현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질 수가 있었다. 일부러 찾아나서지 않아도 우리는 어느 동네를 가도, 고층빌딩 사이로도 산이나 숲을 볼 수 있는 환경에 있다. 멀리 있지 않고 항상 생활속 시야에 들어와 있는 자연. 행동 반경을 그려온 삶의 동선에서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으나 당연하게 지나쳐 온 나무와 풀들은 나에게 무엇일까. 작가 대담에 참석한 어느 관객에게서 전시작 중 드물게 작은 숲의 나무를 그린 그림 (2017년작 「은신隱身 A Shelter 한지에 수묵채색 100x80cm 2017」)에 대한 피드백을 받게 된 일을 계기로 생활의 장과 체험, 동선에서 비껴갔던 소재로서의 자연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 그림은 오래전 어느 창작 레지던시에 머물던 시기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 조용히 쉬어가곤 하던, 실재했던 특정 장소를 그린 것이었는데, 도시의 군상이나 생활상을 주로 그리던 필치로 그려본 경험 속의 자연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관객이나 지인의 반응을 통하여 이것을 한 점의 그림으로 흘려보낼 것이 아니라 경험의 범주 안에 있어 온 생활 속 자연을 그려보리라 생각하게 되었다.

 

민재영_작업하는 H_H's Studio Window_한지에 수묵채색_61×82.5cm_2022

그래서 내가 자주 보아 왔거나 가까운 생활반경 안에서 공존하며 눈에 들어온 식물과 자연의 편린을 그림에 담는다. 그 모습은 우리 눈에 익숙한 '배경背景(the Backgrounds)'으로 들어올 수도 있지만, 살아가는 근간 즉 현실의 기반이기도 하다. 사전적 의미에서 배경은 '경치'이기도 하지만 사건이나 환경, 인물을 둘러싼 주위의 정경이자 '뒤(背)'에서 돌보아 주는 힘이고 시대적, 사회적 환경이나 장소를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무대 뒤의 장치라는 의미도 있다. (2022.11) ■ 민재영

 

Vol.20221111d | 민재영展 / MINJAEYOUNG / 閔才暎 / painting

은폐된 잉태

 Concealed Conception

박설미展 / PARKSEOLMI / 朴雪美 / photography

 2022_1116 ▶ 2022_1122

박설미_은폐된 잉태 26_피그먼트 프린트_172×115cm_2022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일요일_12:00pm~06:30pm

 

 

갤러리 그림손

GALLERY GRIMSON

서울 종로구 인사동10길 22(경운동 64-17번지)

Tel. +82.(0)2.733.1045

www.grimson.co.kr

 

불분명한 생성적 사진  1. 어둡고 침침한 화면에는 희미한 빛 그리고 희박한 색채들이 안개처럼 자욱하다. 뭉개진 색채의 더미 같기도 하고 대상이 지워진 모종의 흔적을 애매하게, 조바심 나게 안기는 사진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사진이 지닌 명료한 지시성이나 재현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도 유심히 들여다보면 검은 덩어리, 유선형의 흔적이 어렴풋하게 화면의 어느 면을 채우고 있거나 그것들이 기우뚱거리면서 돌아다니는 듯한 착시가 인다. 이른바 둥근 달걀을 촬영한 사진임을 사후적으로 깨닫게 된다. 작가는 이 사진이 닭이 알을 낳으면 보이지 않는 깊숙한 둥지의 내부로 손을 밀어 넣어, 손의 감각만으로 더듬거리면서 따스한 알을 꺼내던 어린 시절의 흥미로운 경험, 기억의 소환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그 유년의 기억이 상당히 강렬하게 작가의 무의식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완벽한 형태를 지닌 둥근 알, 생명체의 따뜻한 온기, 둥근 알을 조심스레 움켜쥐던 촉각적 경험 등이 오래 살아남아 여전히 작가의 어느 기억과 심성의 자리를 만들어 놓았던 모양이다. 우리는 유년의 경험과 기억으로 형성된 존재들이라 여전히 과거에 의해 자리 매김 된 현재를 사는 이들이다. ● 작가는 어린 시절 친구의 집에 놀러 가서 달걀을 둥지에서 꺼내던 추억을 되살려 이를 작업했다. 그러니 이 사진은 사실 무엇인가를 재현하기 무척 곤란한 작업이다. 유년의 기억을 이미지로 사진으로 보여준다는 것이 가능할까? 이때 사진은 그런 흔적으로만 어렴풋하게 문질러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달걀을 손에 잡았을 때의 원초적인 감각, 가장 민감하고 깨지기 쉬운 생명의 벽인 달걀 껍질에 대한 조심스러움과 공포심, 닭으로부터 알/새끼를 훔친다는 죄 의식 등 여러 혼재된 감정이 얼룩진 기억이자 경험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 복합적이고 불분명한 것을 사각형의 프레임 안에 명확한 대상으로 고정시키는 일반적인 사진으로는 분명 부족했다고 여겼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좀더 자유로운 표현법을 찾는 한편 중첩된 감정과 생각의 타래를 겹쳐놓기에 다중노출 촬영이 효과적이고 손쉬운 방법론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박설미_은폐된 잉태 05_피그먼트 프린트_172×115cm_2022

2. 둥근 알의 형태에는 무엇보다도 시각적인 밀도가 있다. 단단하고 둥글고 매끄럽고 무색인 달걀은 물체성을 최대한으로 살린 조각의 기원이 된다. 둥근 구체에 가까울수록 보다 물체성이 강해지며 시각적으로 단순명료한 것 역시 물체성이 그만큼 강하게 인지된다. 불가침입적으로 불투명성을 띠어야 하고 촉각성이 강하고 검거나 희거나 무채색일수록 물체성이 높아지는 편이라고 한다. 달걀이 그렇고 달항아리가 그렇다. 아마도 작가에게는 이 알이 주는 시각적인 밀도 높은 형태미가 원초적인 미감으로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알이 지닌 이 형태의 완벽함과 밀도는 깨지기도 쉬워서 매우 역설적인 편이다. 양면성을 지닌 알의 순수한 모순이다. 그와 동시에 알은 생명의 기원이다. 이 신비함은 사실 모든 자연현상에 적용되겠지만 작가의 경우 달걀을 손에 쥔 체험으로 인해 그 경이로움은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다고 본다. ● 작업 과정을 살펴보면 우선 작가는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흔적을 구하기 위해 달걀 대신 오리알을 사용하거나 혹은 플라스틱 모형에 점토를 덧붙이고 채색을 입히는 등의 처리를 통해 둥근 알의 형태를 만든다. 여기에는 회화적이며 조각적인 행위가 구현되고 있다. 그리고 이를 대략 오전 12시 전후의 시간대의 자연광에서 촬영하면서 빛의 파장을 섬세하게 담아내고자 했다. 배경으로는 부드럽고 온화한 분위기를 차분하게 자아내며 흡수성이 강한 한지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전체적으로 흐릿하고 모호한 사진 안에서 구분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이러한 흔적은 또한 앞에서 언급한 의도의 불가피한 결과물이다. 동시에 달걀에 대한 작가의 추억은 생명에 대한 인식으로도 파생되어 나간다. ● "생명의 온기는 응축된 생성의 에너지이자 모든 존재의 시작이다. 또한, 혼돈과 단절의 처절한 고통 속에서도 발아되는 삶의 역동이다. 자연의 경험으로 싹틔워진 온기는 즉각성의 밀도를 띤 아름다운 감정을 솟구치게 하며 내가 가장 인간다운 모습으로 살아 있음을 감지하게 한다." (작가노트) ● 닭이나 오리 혹은 모든 새의 자궁으로부터 나온 알은 깨어져야 하는 것으로 운명지어졌다. 그래야 하나의 생명체가 가능하며 그것이 존재한다. 작가는 어린 시절 손에 쥐어진 갓 낳은 달걀의 온기가 자신에게는 신비로운 체험이었으며 이는 생명체가 지닌 존재의 의미가 급속하게 사라지고 생태계의 위협과 인공지능, 유전자조작과 생명 복제 시대로 치닫는 오늘날 인간의 욕망에 대한 반성과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의미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었음을 상기시킨다. 그런 여러 생각들이 지금의 작업을 태동시킨 원인이 된 셈이다.

 

박설미_은폐된 잉태 07_피그먼트 프린트_172×115cm_2022

3. 작가는 불분명하지만 분명히 감성으로 느끼는, 형태 없는 그 무엇을 재현대상으로 삼았다. 물론 그 매개는 알이다. 그렇다고 알 자체를 보여주는 일은 결코 아니다. 달걀로 인해 전해진 온기와 생명의 신비, 그리고 그로인해 번지는 여러 상념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명확하게 대상화할 수 없는 감성적 대상을 특정한 매체를 통해 재현하는 것이 예술이고 사진일 수 있다. 여기서 사진은 희박한 과거의 기억과 그 기억 속에 또렷이 남은 감각의 상처, 무의식적이고 직감적인 작가의 감성에 의해 포착된 내재적 존재를 문제 삼는다. 사진은 그 미묘한 작가의 감성적 톤을 떠내는 작업이 된다. 사진적 방법을 이용하는 창작행위를 통해 그것을 실행하는 일이 작업이 되는 것이다. 그 결과 사진은 어떤 조짐이나 기미, 흔적을 지닌 징후로서의 사진이 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사진은 불안한 경계로 나뉘고 흔들리며 중첩된 흔적들로 자욱하다. 약간의 차이를 지닌 색들이 불길한 어둠을 가르고 출몰한다. 검은 덩어리를 연상시키는 물체가 설핏 등장하거나 시야를 가로막거나 모서리에 걸쳐있거나 진동하는 듯하다. 통상 사진이 대상을 고정시키는 데 반해 이 사진은 유동적이고 암시적인 모종의 기운으로 채워져있다. 작가가 경험한 신비스러운 느낌의 재현을 위한 모호한 실루엣이고 빛이고 색채이자 덩어리이다. 따라서 관객이 볼 때 이 사진은 알 수 없는 난해한 자취이자 수수께끼일 뿐이다. 여기서 사진은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 자리한다. 작가가 사용하는 다중노출 기법 역시 하나이자 모두인, 하나이기도 하고 여럿이기도 한 이미지를 한 자리에 중첩 시킨 것이자 동시에 이질적인 시간과 공간이 한 화면에 지층처럼 포개진 흔적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작가의 사진은 과거와 현재, 기억과 상상, 부재와 현존, 보이는 영역과 비가시적 영역이 공존하는 표면이 부유하고 있는 상태를 보여주는 사진, 이른바 생성적인 사진이다. ■ 박영택

 

박설미_은폐된 잉태 10_피그먼트 프린트_172×115cm_2022

생명의 온기는 응축된 생성의 에너지이자 모든 존재의 시작이다. 또한, 혼돈과 단절의 처절한 고통 속에서도 발아되는 삶의 역동이다. 자연의 경험으로 싹틔워진 온기는 즉각성의 밀도를 띤 아름다운 감정을 솟구치게 하며 내가 가장 인간다운 모습으로 살아 있음을 감지하게 한다. 어린아이의 손에 쥐어진 갓낳은 계란의 온기는 신비이며 관조로 상상된 세계의 위대함 앞에서 두 생명체의 존재 물음이 사라진 내밀한 결합으로 무한으로 향한다. 몸에 흐르는 기억은 삶의 지층이며 무의식의 수맥이 되어 세계를 상상 속에서 체험할 수 있게 한다. ● 현재적 기억은 감정과 감각의 동반이다. AI의 변곡점을 넘어서 일상성에 Al와 함께 호흡하는 지금, 전 인류와의 네트워크 사이에서 오히려 고독해졌다. 고독과 소외에 휩싸여 외로운 군상 속에 내던저져 있음을 인식할 때 기억은 더욱 선명해진다. 평온의 가치와 의미를 잃고 편리를 쫒은 세계는 회색화 되어 불안으로 드러낸다. 불안은 피할 수 없는 고통으로써 인간실존의 본래성과 고유성을 찾아 삶을 통찰하게 한다.

 

박설미-은폐된 잉태 15_피그먼트 프린트_172×115cm-2022

메마른 감성, 굳어가는 심장을 본다. 인간의 편리를 위해 시작된 AI 기술은 급속히 진화한다. 인간과 Al가 공생한다는 이상 아래 AI는 인간의 복제물이 되어가고 있다. 인간의 욕망은 AI로 인한 인간의 육체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을 넘어 AI에 감각과 감정을 배양하려는 시도에 이르렀다. 이러한 시도는 인간의 영혼과 감정을 실제, 가상, 모의, 인조의 다중세계로 이끈다. 인간의 정체성과 존엄성은 물론 아무런 목적없이 무심히 운행하는 장엄하고 아름다운 자연 섭리까지 위협한다. AI에 대한 성과가 거듭될수록 인간은 환호하지만, 은폐에는 칠흑 속의 악몽이 도사리고 있다. ● 인간은 고유의 시각과 세계를 지닌 의식과 무의식의 존재이다. 인간은 예측 불가한 상황에서도 판단과 추론을 가능하게 하는 유연성이 있다. 삶, 감정의 흔적을 채우는 숭고한 미지의 여백이 있다. 그것은 인간이 사유, 고뇌, 깨달음으로 얻은 묵직한 눈물로 붓칠을 하더라도 죽음의 순간까지도 다 채울 수 없는 미완성의 성역이다. 인간은 AI에 의해 감각과 지각의 잠식으로 인간의 존엄과 신성한 영혼을 점령당하는 것은 아닐까? ● 오늘날 인간은 AI를 잉태하고 AI는 인간을 잉태하고 있다. ■ 박설미

 

박설미_은폐된 잉태 25_피그먼트 프린트_172×115cm_2022

Obscure Generative Photography  1. On the dim screen, faint light and sparse colors resemble a thick fog. Like a pile of crushed colors, a photograph vaguely shows certain traces of the subject being erased. It is far from the clear referentiality or reproducibility of usual photographs. Still, if you look closely, you feel an optical illusion as if black masses or traces of some streamlined shape are vaguely filling a corner of the screen, or they are wandering around in an oblique shape. We realize later that this is a photograph of a so-called round egg. Seolmi Park says that this photograph originates from the recall of memories, an interesting experience from childhood of a chicken laying an egg. She pushed her hand into the invisible, deep inside of the nest, and fumbled with her hand to pull out the warm egg. It seems that childhood memory was deeply ingrained in her subconscious. The perfect oval shape of the egg, the warmth of a living thing, and the tactile experience of carefully grasping the egg—all this has persisted and still lingers in traces of the artist's memory and corners of her heart. We are beings formed by our childhood experiences and memories, still living in the present, set by the past. ● Seolmi Park worked on the photo by recalling her childhood memories of going to a friend's house to play and taking eggs out of the nest. Therefore, it is difficult to say that this photograph is actually a reproduction of something. Is it possible to communicate childhood memories with images or photographs? Perhaps the photograph can only dimly embody traces of reality. It must have been a memory and experience with mixed emotions, such as the primordial sense of holding an egg in one's hand, caution and fear for the eggshell, the most sensitive and fragile covering of life, and the guilt of stealing the egg/baby from the mother hen. Hence, may she not have thought that an ordinary photograph is not up to the job of capturing the complex and ambiguous phenomenon as a distinct object in a square frame? In the process of searching for a method of more free expression, the multiple exposure technique has become an effective and easy methodology for overlapping threads of multi-layered emotions and thoughts.

2. The shape of a round egg has visual density above all else. Hard, round, smooth and colorless eggs are the origin of the sculpture that makes the most of objecthood. The closer it is to a round sphere, the stronger the objecthood becomes, and visually simple and clear things also have a strong objecthood. It is said that imperviously opaque, strongly tactile, and black, white, or achromatic colors tend to have higher objecthood. Eggs and moon jars are just like that. Perhaps to Seolmi Park, the morphological beauty and high visual density of this egg is regarded as the original aesthetic sense. However, the perfection and density of the egg's shape are easy to break, which makes them paradoxical. It is a pure contradiction of an egg with two sides. At the same time, eggs are the origin of life. This mystery actually applies to all natural phenomena, but for Seolmi Park, her wonder seems to have endured long after holding an egg. Looking into the work process, the artist first models a round egg shape by using a duck egg instead of a chicken egg to obtain the desired image/traces, or by adding clay to the plastic model and coloring it. A pictorial and sculptural act is involved here. And she shoots it in natural light around noon to capture the wavelength of light delicately. For the background, hanji, Korean traditional handmade paper with good absorbency, is used to create a soft, gentle atmosphere. But it is difficult to distinguish all of these in the overall blurry and ambiguous photograph. Nevertheless, these traces are also an inevitable result of the aforementioned intentions. At the same time, the artist's memories of eggs are also linked to her perception of life. ● "The warmth of life is the condensed energy of becoming and the beginning of all beings. Also, it is the dynamism of life that germinates even in the terrible pain of chaos and separation. The warmth sprouted from the experience of nature spurts out beautiful emotions with the density of immediacy and makes me feel that I am alive in the most human form." (Artist's Notes) ● Eggs from the wombs of chickens, ducks, or any bird are doomed to be broken. Only then is it possible for a living being to exist. The artist reminds us that the warmth of a newly laid egg held in her hand as a child was a mysterious experience, and this provided an opportunity to reflect on human desires and the dignity of life in today's era of threats to the ecosystem, artificial intelligence, genetic manipulation, and cloning, because of which the meaning of the existence of living things is in rapid decline. Such contemplations have become the background for the present work.

3. Seolmi Park has taken as the object of representation something that is formless and unclear yet clearly felt. Of course, the medium is an egg; however, that does not mean she is simply depicting the egg itself. What she intends to express is the warmth transmitted through eggs, the mystery of life, and the various thoughts that arise from it. Art and photography can depict, through specific media, emotional objects that cannot be clearly objectified. Here, photography is concerned with the faint memories of the past, the scars of the senses that remain in those memories, and the inner being captured by the photographer's unconscious and intuitive sensibility. Photography is the work of retrieving the subtle emotional tone of the artist. In other words, the art of photography is practiced through a creative act using the photographic method. As a result, photography becomes a medium for expressing signs with certain forebodings, indications, or traces. As mentioned earlier, photography is divided by unstable boundaries, thick with swaying and overlapped traces. Colors with slight differences cut through the ominous darkness. An object reminiscent of a black mass seems to appear briefly, obstruct the view, sit on the corner, or vibrate. Whereas a photograph usually fixes an object, this photograph is filled with a kind of fluid and suggestive energy. It is an ambiguous silhouette, light, color, and mass for the reproduction of the mysterious feeling that the photographer experienced. Therefore, to the audience, this photograph is only an abstruse trace and an indecipherable mystery. Here, photography is located at the boundary between meaning and meaninglessness. The multiple exposure technique used by the artist is also a superimposition of images in one place, creating images that are simultaneously one and all, one and several images. At the same time, it can be seen as a trace of heterogeneous time and space stacked on one screen like geological strata. Therefore, Seolmi Park's photographs are so-called generative photographs, which show the floating state of the surface where the past and present, memory and imagination, absence and presence, and the visible and invisible coexist. ■ Youngtaik Park

The warmth of life is the condensed energy of becoming and the beginning of all beings. Also, it is the dynamism of life that germinates even in the terrible pain of chaos and separation. The warmth sprouted from the experience of nature spurts out beautiful emotions with the density of immediacy and makes me feel that I am alive in the most human form. The warmth of a newly laid egg held in a child's hand is a mystery, and in the face of the greatness of the world imagined through contemplation, the question of the existence of the two living beings disappears, leading to infinity in an intimate union. Memories flowing through the body are the stratum of life and become the veins of the unconscious, allowing us to experience the world in our imagination. ● Present memory is accompanied by emotions and sensations. ● Now that we have passed the early stages of AI and breathe with Al in our daily lives, we have become rather lonely in the network that connects mankind around the world. When we recognize that we are thrown into a lonely crowd surrounded by loneliness and alienation, our memories become clearer. The world, which has lost the value and meaning of tranquility to pursue convenience, is desaturated and exposed as anxiety. Anxiety is an unavoidable suffering that leads us to insight into life in search of the intrinsic nature and uniqueness of human existence. ● I see dry emotions and hardening hearts. ● AI technology, which started for human convenience, is rapidly evolving. Under the ideal that humans and Al can coexist, AI is becoming a human clone. Beyond the desire to overcome the limits of the human body by using AI, human desire has led to an attempt to cultivate senses and emotions in AI. These attempts lead the human soul and emotions into multiple real, virtual, simulated, and artificial worlds. This threatens not only human identity and dignity but also the majestic and beautiful providence of nature that runs without aim. The more successful AI-related achievements are, the more humans cheer. But a nightmare in pitch black lurks behind the cover. ● Humans are conscious and unconscious beings with their own perspectives and worlds. ● Humans have the flexibility to make judgments and reasoning in unpredictable situations. There is a sublime unknown blank space that fills the traces of life and emotions. It is an unfinished and sacred realm that cannot be filled even at the moment of death, even if human beings paint it with tears laden with contemplation, agony, and realization. Wouldn't AI, by engulfing our senses and perception, encroach on human dignity and our sacred souls? ● Today, humans conceive AI, and AI conceives humans. ■ Seolmi Park

 

Vol.20221116b | 박설미展 / PARKSEOLMI / 朴雪美 / photography

 

BALANCE

김광표展 / KIMKWANGPYO / 金光標 / painting 

2022_1102 ▶ 2022_1114

김광표_Balance_캔버스에 혼합재료_91×72.7cm_2022

               

초대일시 / 2022_1102_수요일_04:00pm

관람시간 / 11:00am~08:00pm

 

구구갤러리 인사동

GUGU GALLERY Insa-dong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20(인사동 30-1번지) 1층

Tel. +82.(0)2.734.9991

guguent.com@gugu_gallery

 

덕수궁의 돌담길을 연인과 걸어본 적이 있는가? 그 돌담이 던져주는 안정감이 그들의 데이트를 한층 더 멋지게 만들어 주지 아니한가? 이번 구구갤러리 인사동 「숨어 있는 보물 화가 발굴 프로젝트」의 당사자는 김.광.표! 작가다. ● 김광표작가는 불규칙한 물감 파편들을 모자이크식으로 화면에 꼴라주한 후 조각조각의 틈사이에 물감을 넣어 색상을 맞추고 작품을 완성해간다. 마치 석공들이 성에 돌담을 쌓듯이 고되고 정성스럽게 하나하나씩 쌓아간다. 김광표 작가가 소박한 돌담을 하나하나 쌓아가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직접 보고 느끼고 다듬고 하는 과정 속에서의 균형감각이다. 인생에도 균형감이 필요하듯 작품속에서의 균형감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전시의 타이틀도 'Balance' 이다.

 

김광표_Balance 2202_캔버스에 혼합재료_163×130.3cm_2022

"그림을 그려 오면서 많은 조형적 실험적 시도를 해 왔습니다. 거친 추상과 함께 팝아트 이미지에 경도된 시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욱 단순화된 조형성을 추구하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더 무언가를 말하는 것보다는 말하고 싶은 것을 절제하고 비우고 체념하며 만들어 낸 작업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복되는 돌담을 바라보며 우리 조상들의 단순하고 소박한 美에 관해 새로움을 발견합니다. 자연이라는 원리와 세월이라는 키워드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좋아합니다" 라고 김광표작가는 말한다. ● 시간의 흐름과 함께 손길이 닿는 가구들이 정이 들 듯 그림 또한 쓰다듬는 손길 안에서 생명력을 키워간다. 더 새로운 것은 더 단순한 것이라는 결론을 김광표는 규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단순하고 소박하다. 소박한 돌담이 주는 세련미가 그의 작품의 관전 포인트가 되는 것이다.

 

김광표_Balance_캔버스에 혼합재료_163×130.3cm_2021

이번 전시를 주관하는 구구갤러리 구자민대표는 "다양한 시각 전시물들 중에서 우리는 어떤 것을 보고 어떤 감흥을 얻을수 있는가? 다양한 작품들의 홍수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작가와 작품들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 우리는 그 보물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건 분명 우리에게 손실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김광표를 주목해야 한다. 그의 소박하지만 묵직한 돌담같은 작품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더 새로움을 향한 그의 단순함! 돌담의 소박한 절제미를 꼭 감상해보길 적극 권한다" 라고 전했다. ● 김광표 화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MBC미술대전 대상과 대한민국 미술대전 우수상을 수상한 실력파 화가이다. 전시는 11월 14일까지 인사동 구구갤러리에서 진행된다. ■ 구구갤러리

 

김광표_Balance 2105_캔버스에 혼합재료_163×130.3cm_2021
김광표_Balance 202001_캔버스에 혼합재료_130.3×194cm_2020

소박한 단순미 ● 그림을 그려 오면서 많은 조형적 실험적 시도를 해 왔습니다. 거친 추상과 함께 팝아트 이미지에 경도된 시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욱 단순화된 조형성을 추구하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더 무언가를 말하는 것보다는 말하고 싶은 것을 절제하고 비우고 체념하며 만들어 낸 작업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반복되는 돌담을 바라보며 우리 조상들의 단순하고 소박한 美에 관해 새로움을 발견합니다. 자연이라는 원리와 세월이라는 키워드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좋아합니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내 손길이 닿는 가구들이 정이 들 듯 그림 또한 쓰다듬는 손길 안에서 생명력을 키워 갑니다.

 

김광표_Antique 201811_캔버스에 혼합재료_162×300cm_2018
김광표_Antique 20180206_혼합재료_97×145.5cm_2018

더 새로운 것은 더 단순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단순함은 힘들고 고된 작품의 완성을 추구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 한 점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3개월이란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이러한 시간들은 작은 물감 조각들을 수십번에 걸쳐 물감을 입히고 깎아서 만든 결정체입니다. 손톱이 닳고 손마디가 쑤시는 수고도 즐거운 시간들입니다.

 

김광표_The poem of Seoul_캔버스에 혼합재료_162×130cm_2018

현재는 좀 더 작품에 집중하는 시간들이 많길 바라고 새로움을 추구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 무한한 시각적 현대 미술들이 넘쳐나고 있는 시대에 나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라 생각합니다. ● 작업실에 안에서의 삶은 일하는 노동자와 다를 바 없습니다. 움직이고 일하고 만들고 깎는 작업의 일환이며 이런 작업이 반복될 뿐입니다 이런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작품으로 태어나는 것이 뿌듯한 즐거움입니다. ● 앞으로의 작업은 더욱 성숙한 작업이 되길 바라며 작품에 매달리는 행복한 시간이 더욱 오래되길 바랍니다. (2018. 7. 23.) ■ 김광표

 

Vol.20221104h | 김광표展 / KIMKWANGPYO / 金光標 / painting

지난 주말은 지옥 같은 하루를 보냈다.

이태원 참사 소식으로 온 종일 일손을 놓고 가슴 태웠다.

 

젊은이들이 무슨 죄가 있어, 날벼락에 깔렸는지 모르겠다.

지긋지긋한 공부에 얽매어 살다, 모처럼 축제 한 번 즐기러 나갔다가 목숨 잃은 것이다.

대비는 물론 늦은 대처로 더 많은 인명을 잃게 한 정부의 무능에 할 말을 잃었다.

 

더 이상 슬픔에만 빠져 있을 수 없어, 다음 날 집을 나섰다.

인사동 북인사마당에 마련되었다는 합동 분향소를 찾아 간 것이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추모객은 많지 않았으나, 덕원스님 모습이 보였다.

비명에 숨져 간 청춘들에게 고개 숙여 명복을 빌었다.

 

인사동 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소와 다름없었다.

 

가게에 걸린 상품은 안타까운 희생을 애도하는 조화처럼 보였고,

목 없는 한복 마네킹은 희생자의 넋인 냥 비통함을 더했다.

 

이재민씨의 이것은 돌이다전시 보러 나무화랑'에 갔다.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작가가 반갑게 맞아주었는데,

전시작은 여러 가지 형태의 돌이 그림과 병치되어 있었다.

 

불안감을 조성하는 허공에 뜬 돌은,  무의식의 세계를 현실 공간에 끌어들인 것 일까?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작가 마그리트가 연상되는 작품이었다.

실물인 돌을 그림과 연결시켜 이야기를 전개한 것이다.

 

꿈과 실제의 구분을 허문 작품들은 돌 덩이에 의한 중량감으로

화면에 팽팽한 긴장감을 불러 일으켰다.

작가의 철학적 사유를 감지할 수 있었다.

 

작품에 등장한 돌의 형태 또한 기묘했다.

때로는 섬이 되거나 산이 되어 서사적 의미를 더했다.

 

그날따라 이재민씨의 돌이 무겁게만 느껴졌던 것은

비명에 떠난 청춘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한 몫 했으리라.

 

이 전시는 오는 118일까지 열리니, 추모기간 동안 많은 관람을 바란다.

나무화랑은 인사동 합동 분향소와 백 미터 지점에 있다.

 

다 같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추모합시다.

 

사진, / 조문호

 

 

-이달에 볼만한 전시-

 

이건희컬렉션전: 이중섭/ 2022.8.12.-2023.4,23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최우람전 / 2022.9.9.-2023.2,26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임옥상전 여기 일어서는 땅’/ 2022.10.21.-2023.3.12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문 신전/ 2022.9.1.-2023.1,29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까레이치, 고려사람전 / 2022.9,7-2022,11,7 / 국립민속박물관

강익중전 / 2022.11.4-12.11 / 갤러리현대

이기봉전 / 2022.11.17-12.31 / 국제갤러리

이동환전 표면의 이면’ / 2022.11.3.-2022.11.13 / 금호미술관

최원준사진전 / 2022.11.30-2022.12,31 / 학고재

강경구전 / 2022.11.1-2022.12,4 / 앤팩토리갤러리

강경구, 김성호, 김을, 안창홍전 어게인 그리스‘/ 2022.11.2-2022.11.22 / 나마갤러리

강동주 드로잉전 / 2022.11.10-2022.11,30 / 에이라운지

차종례전 ‘Recall and afterimage’ / 2022.10.20-2022.11,20 / 갤러리진선

이만나전 / 2022.11.25-12.24 / 선갤러리

양현모사진전 / 2022.11.9-12.4 / 통인화랑

김대영전 그 존재의 가벼움으로’ / 2022.11,16-2022.11.22 / 더스타갤러리

이재민전 이것은 돌이다’ / 2022.10.26-2022.11.8 / 나무화랑

조명환사진전 / 2022.11.16.-11.22 / 인사아트프라자3

김익영전 보와 궤’/ 2022.11.2.-12.18 / 갤러리 밈 5-6전시장

안두진전 리듬 속에 그 춤을’ / 2022.11,2-2022.11.22 / 이화익 갤러리

황윤하전 때를 다라 아름답게’ / 2022.11.2.-11.22 / 희수갤러리

박형근 사진전 / 2022.11.9.-2023,1,4 / 일우스페이스

고경빈사진전 귀로’ / 2022.11.1-2022.11.10 / 갤러리 브레송

이선주사진전 “UNTOLD”/ 2022. 10. 27- 11, 16 / KP갤러리

 

[스크랩 : 서울아트가이드 202211월호]

이것은 돌이다

이재민展 / LEEJAEMIN / 李在民 / painting.mixed media 

2022_1026 ▶ 2022_1108

이재민_복제와 전이_캔버스에 돌, 아크릴채색_82×122cm_2022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층

Tel.+82.(0)2.722.7760

 

이재민의 "이것은 돌이다" ● 하나의 현상을 두고 상호 다른 세계를 감지하거나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장자 제물론의 호접몽(胡蝶夢)은 꿈과 실재, 주체와 타자의 구분을 무화시키는 도가적 사유를 보여준다. 이 호접몽을 각색한 듯한 영화 매트릭스(Matrix)는 디지털 가상현실과 현실의 경계를 교란한다. "네오, 너무나 현실 같은 꿈을 꾸어본 적이 있나? 만약 그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면? 그럴 경우 꿈속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어떻게 구분하겠나?" 라는 모피어스의 대사는 바로 이 영화의 핵심이다. 그런가 하면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는 블랙홀과 화이트홀을 연결하는 웜홀(Wormhole)을 통해서 우주와 지구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이야기다. 또 양자역학에서 물질과 에너지의 질량과 위치가 궁극적으로 불확정적인 관계는 또 어떤가. 이런 철학적 관념, 과학적 가설뿐만 아니라 그리스 신화, 중국의 산해경, 우리 단군신화 모두 신계/인간계를 구분하지 않는다. 이런 예는 기존 우리가 알고 있는 공간, 시간, 물질, 사물과 존재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이재민_불안한 중력_캔버스에 돌, 아크릴채색_82×40cm_2022
이재민_아직도 어두운 밤_캔버스에 돌, 아크릴채색_61×82cm_2022
이재민_어떤 풍경_캔버스에 돌, 아크릴채색_38×68cm_2021

이재민의 작업도 화면에 불러들인 실체인 '돌'과, 그 돌'그림'과의 관계항을 주요 모티프로 활용한다. 이미지 공간인 화면 안으로 실제 오브제인 돌이 들어오게 함으로써, 실제의 돌과 그 돌을 정교하게 그린 돌의 이미지를 병치하는 구성이다. 그러면 이 그림 내부 이미지 공간에 위치한 실재의 돌은 과연 사물인가 이미지인가, 라는 의문이 들게 된다. 물론 실재 사물인 돌과 그 돌을 재현한 일류전인 '돌'은 같을 수 없다. 하나는 물질이고 다른 하나는 그 돌의 모사인 환영일 뿐이니까. 그럼에도 이재민은 이 둘을 나란히 제시하면서 "이것은 돌이다"라고 전시 제목으로 선언한다. 주어와 서술어 각 한 단어로 구성된 간단하고도 명징한 문장. 그야말로 「이것=돌」이라는 확정적 명제다. 비유나 서술도 없는 액면 그대로, 돌과 돌 이미지가 자신의 그림에서는 이미 통일된 하나의 실재란 뜻인 것처럼. 그러나 엄밀하게 보면, "이것은 돌이다"라고 선언한 이재민의 미술행위는 결국 그 반대로 파이프를 그려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쓴 마그리뜨의 명제와 같은 구조가 된다. "크레타 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이"라는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처럼, 참/거짓의 논리적 경계를 교란하는 유기적 혼돈구조 말이다. 그러니까 이재민에게 있어서는 실재계(돌)/상징계(모방)가 상호 모순을 드러내되, 결국 "이것은 돌이다"와 "이것은 돌이 아니다"라는 명제는 오히려 같다는 뜻이 된다. 이에 대한 근거로 이재민의 작업노트 한 구절을 보자.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는 것은, (과거 내가) 빠르게 움직이며 살았던 삶의 반증이다." 이 문장은 경험을 기술한 것으로는 논리적이되, 그 기준을 제시할 수 없으므로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비논리적이다. "천천히 흐르는 시간이나", "빠르게 움직이며" 살았던, 이재민의 경험에서 그저 상대적으로 느끼는 이 속도감을 어떻게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을 것인가. "어둠 속에서만 있으면 밝음을 알지 못 한다"는 작가노트도 마찬가지 진술이다. 여기서의 밝음과 어둠 역시 광량과 조도의 문제가 아니라, 굴곡진 인생사의 비유임에랴. 그러니까 이재민의 "이것은 돌이다"라는 선명한 전시명칭은, 이런 그의 의식세계에 대입해보면 결국 "이것은 돌이 아니다"와 같은 맥락으로도 기능한다. 이것과 저것의 분리와 구분이 굳이 필요 없다는 뜻이다.

 

이재민_핵2_캔버스에 돌, 아크릴채색_61×46cm_2022
이재민_핵3_캔버스에 돌, 아크릴채색_46×61cm_2022

실재 작품들을 보자.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한 화면에 특정한 형태의 돌을 꼼꼼하게 재현하고, 그 옆에 재현의 대상이었던 실제 돌을 붙여 놓았다. 오브제와 일류전이 하나의 화면에서 결합한다. 텅 빈 바다와 하늘 풍경에 돌이 떠있는 이런 기법은 초현실주의자들이 즐겨 구사한 전치(轉置, 떼뻬이즈망) 기법인데, 거기에 돌 이미지의 실제 원형 오브제인 돌을 병치시키면서, 다시 전치 효과를 사살하는 묘한 이중구조가 형성된다. 본디 콜라주·아쌍블라주·오브제와 초현실주의자들의 일류전을 통한 전치는, 사물을 익숙하지 않은 때와 낯선 시공간에 위치시킴으로 본래 성질과 기능을 전혀 다른 맥락으로 바꾸는 기법이다. 그런데 이재민의 화면에서는 일류전인 돌과 오브제인 돌이 병치됨으로 인해 오브제와 일류전이 같은 기능을 하게 된다. 즉 돌이 여타의 이미지로 변하는 전치는 되었으나, 한편 오브제인 돌의 등장으로 돌의 이미지가 다른 맥락과 기능의 돌로 전치되지 않고 여전히 돌로 남는다는 뜻이다. 전치효과가 일어나다가 실제 사물과의 연동으로 전치가 교란되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마그리뜨가 파이프를 정교하게 재현한 이미지 아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문장을 쓰면서 재현의 리얼리티에 대한 문제 제기에 덧붙여, 이재민은 그 환영에 실물인 돌을 추가로 첨부함으로서, 이 작품의 돌이 일류젼인지 오브제인지를 다시 되묻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러니까 이재민의 이번 전시 명칭인 "이것은 돌이다"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마그리뜨의 문제제기에, 자신의 회화는 "일류전=리얼리티"가 되기도 하고 안되기도 한다는 입장을 보이는 셈이다. 사실 모든 미술은 시각을 넘어서는 조건에서도 이미지다. 현대미술의 숱한 전위들도 결국은 이미지로 그 주제를 드러낸다. 개념미술의 언어에 의한 연상과 논리와 해석도 언어의 이미지로 귀착되고, 이미지를 거부하며 사물 자체의 리얼리티로 제시된 미니멀도 관객의 기억에는 결국 형태와 질감으로 저장된다. 작가로서 이재민은 채집한 돌(오브제)과 그린 돌(일루전)을 동일시하면서, 그것을 연상으로 이미지화하고, 또 보는 관객들도 그러길 바라는 듯하다. "이것은 돌이다"라는 그의 명제는 결국 이미지/오브제의 구분 너머 그의 주제,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아니라 달이 중요하다는 것이겠다. 기법은 주제를 강화하는 보완재이지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는 뜻과 같다.

 

이재민_휴식_캔버스에 돌, 아크릴채색_122×82cm_2022

그러면 이재민이 오브제와 일류전의 구분을 넘어서서 궁극적으로 말하려는 내용이 중요한데, 그게 무엇일까? 먼저 자연인 바다·하늘·섬·산·대지 등과 같은 배경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돌을 통해서 이재민의 말하려는 내용의 무대다. 거기에 등장하는 돌은 배경과 함께 있는 그대로 "스스로 그러한" 자연이다. 거기에 자연에서 가장 견고한 돌을 그리고, 또 실재 돌을 화면에 부착함으로, '이것'과 '저것'을 구분하고 경계 짓는 개념적 습성의 무용성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각자 "스스로 그렇게" 생긴 대로의 돌로부터 이재민은 유사형상을 발견하고 이미지화 한다. 일종의 아포페니아(Apophenia)이자 빠레이돌리아(Pareidolia)다. 돌이 독도도 되고, 구름도 되고, 산도 되고, 맨드라미도 되고, 섬도 되고, 독수리도 되고, 심장도 되고, 낮과 밤의 이미지도 되고, 공룡의 뼈도 되고, 사람의 얼굴도 된다. 그리고 그렇게 돌이 풍경으로 전치되고 이미지화 되는 사이로, 가끔 핵무기가 발사되는 '반-자연'의 장면을 삽입해서 서사적 내용도 덧붙인다. 이 지점에서 보자면 이재민에게 있어서 '그린다'는 것과 오브제를 '제시'하는 것은, 그가 원하는 형상으로 접근해가는 의지로 귀결된다. 그것은 사물성과 환영이 어떻게 상상의 볼륨을 증폭할 것인가라는 그의 원초적 충동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결국 "이것은 돌이다"라는 명제는, 자연과 자신의 이미저리(imagery)에 정직하게 반응하는 이재민의 감수성과 작업을 표상하는 수사이자, 그에게 있어서의 리얼리티라 하겠다. ■ 김진하

 

 

Vol.20221026e | 이재민展 / LEEJAEMIN / 李在民 / painting.mixed media

두려움 없이

최경선展 / CHOIKYUNGSUN / 崔敬善 / painting 

2022_1005 ▶ 2022_1024

 

최경선_두려움 없이_캔버스에 유채_162×130.4cm_2022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층

Tel.+82.(0)2.722.7760

 

이번 『두려움 없이』展은 크지 않고 나지막한 발성으로 최경선 자신의 회화적 호흡을 확인하는 프로세스인 듯하다. 이 전시타이틀은 최경선이 바라본(혹은 기대하는), 그래서 그림으로 형상화한 아이들의 평화로움에 대한 간절한 기원의 서술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이제야 자기식의 그림을 그릴 수 있겠다는 작가적 내면의 비유로도 보인다. 중국 북경에서 거칠 것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작업을 하다가, 귀국한 지 십 년. 한국에서의 그동안은 자신의 그림을 그리기 어려웠다. 가정주부로서 여러 역할(사업가의 아내, 대입 입시생의 엄마, 시부모의 며느리, 친정엄마 딸, 기타 등등)의 수행과 함께 시간적·경제적·공간적 제약들로 작업에의 집중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신작 개인전도(2015, 2017), 북경에서의 작업으로 구작 개인전(2019, 2020)도 가졌지만, 그가 원한 만큼의 수준이나 성취도에는 이르지 못했던 모양이다.

 

최경선_꽃 피는 첫번째 들판_종이에 수채_40.8×30.8cm_2022

이번 전시작들은 그런 부담으로부터 훌쩍 벗어난 집중의 결과물로 보인다. 그림마다 조형적 의도와 일치하는 그리기 형식이 자신만만하게 결합되어 있고, 집중된 상태에서의 일획의 붓질은 두 번의 덧칠을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로 형상을 단단하게 구축하고 있다. 대상의 재현을 목적으로 한 묘사로부터 일탈해서, 마치 문인화의 담백하고도 긴장된 일획의 필력처럼 직관적으로 자신이 의도한 분위기로 화면을 주조해냈다. 게다가 모든 그림을 다 보아도 같은 유형의 붓질이나 터치가 없다. 각각의 그림과 부분마다 그 맥락과 조형에 꼭 필요한 만큼의 긴밀한 회화적 날것의 표현들이 몸의 직접적 궤적을 생생하게 현전해내면서 말이다. 경쾌하고도 날렵하게. ● 비유하자면, 지속적 주제였던 소외되고 방치된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생명력을 고양하는 존재(자연)임을 확인한 순간의 기쁨으로 드러낸 것이라고나 할까. 아이들이 오히려 작가에게 삶의 에너지를 제공해준다는, 능동적이고도 긍정적인 자기 깨달음을 회화로 증명한 것이라 여겨질 정도로. 뻔하게 반복적으로 그리는 클리셰 없이 작품마다 다르게 전개되는 이런 즉발적 표현성은 긴밀하고도 예민한 회화적 내공이 그 바탕에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최경선_날마다_캔버스에 유채_53×41.2cm_2022

그러나 이런 점은 작가의 지극히 감성적 영역에서의 작업과정이다. 서두에 언급했던, 최경선의 이번 전시작들이 또 다른 큰 변주 직전 자기 확인의 지점 같다는 언급은, 바로 이런 주관적·감성적 표현으로부터 좀 더 넓게 사회화할 수 있는 다음 작업에 대한 기대치에 대한 언급이다. 제도적·구조적으로 "배제된" 아이들이 엄연하게 존재하는 현실에서는, 작가의 내밀한 감수성과 더불어 인식적인 면에서도 좀 더 주제를 사회화할 수 있는 내용적 기제의 창발 또한 작가의 몫이라서 그렇다. 최경선의 회화적 능력을 확인하는 이번 전시에 이어, 더"두려움 없이"자기갱신으로 도전하는 다음 작업들이 그런 내용의 '태풍'같은 소통을 불러일으키기 기대해본다. 작가에게 관객의 기대는 곧 다음 작업에 대한 부담을 지우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부담은 또한 작가의 사회적 책무이기도 한 것이니... ■ 김진하

 

최경선_볕 든 산성_캔버스에 유채_90×100cm_2022

『두려움 없이』란 제목은 한 보도 사진에서 비롯되었다. 뉴스 중에 나온 한 장면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미얀마의 젊은 남성이 아이를 업은 채 장총을 들고 대치 중에 있었다. 두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아이와 위험한 상황을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절박함과, 아이를 지키겠다는 아버지로서의 결연함. 위기에 대처하는 그의 모습에서 숭고함이 느껴졌다. 위기 앞에서 우리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이 장면은 작품 「두려움 없이」의 모티브가 되었다.(그림에서는 총이 아닌 확성기로 그려졌다. 확성기는 언어의 힘에 대한 은유이다.)

 

최경선_일어서는 풀_캔버스에 유채_100×80.2cm_2022

지난 몇 년간 상상조차 못했던 일들을 겪으면서 일상엔 이전과 다른 긴장감이 자리 잡게 되었다. 사실 나는 드러난 위협이라고 할 수 있는 팬데믹보다 왜곡되는 언어들과 부끄러움을 모르는 세태를 양산하는, 보이지 않는 힘에 더 두려움을 느꼈다. 범람하듯 몰려오는 위기 증후는 근본적으로 부조리를 상쇄시켜왔던 인류의 정화 능력이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신뢰를 이루는 언어는 오염되었고, 양육과 책임의 마음을 잃은 인류의 생존방식은 점점 더 비관적으로 보인다. 두렵다. 그러나 견고한 것은 없다고 알려준 위기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일상으로 돌아가게 해 주었다. 폭력적이지 않고 오염되지 않은 것을 찾아 자연을 자세히 보도록 하였다. 낮아질 때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존재의 약함보다 두려움이 삶의 장애가 됨을 알게 된다. 만약 우리가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다면 우리는 회복으로 활성화된 생명의 움직임을 좀 더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생명의 주체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만이 생명적 보탬의 행위로 이어질 것이다. 인간의 긍정성을 믿고 움직였던 사람들로 인해 위기가 극복되어 왔음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최경선_묵묵한 활보_캔버스에 유채_53.3×45.5cm_2021

나는 자연의 메커니즘에서 언어의 순수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연의 일원으로서 스스로의 생명적 가능성을 신뢰할 때 기꺼이 살림의 행동을 할 수 있었다. 잃었던 돌봄의 마음들이 돌아와 사회적 약자들이 행복해지는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메마른 땅에 물과 빛이 닿아 생명이 움트듯 말이다. 이번 『두려움 없이』展은 자연에서 발견한 생명력을 통해 존재의 회복력을 형상화했다. 소재는 주변에서 만난 특별하지 않은 것, 연약한 것, 하찮은 것들이다. 번뜩이는 순간 노출되는 숭고함, 아름다움, 활력과 같은 내력을 느끼고 표현하고자 했다. 보호자가 있는 어린 아이의 안도감, 죽은 듯 누운 풀의 되살아남, 쉼이 없는 땅의 활력이 담기길 바랬다. 개인의 슬픔이 사회적 슬픔으로 연결될 때 회복이 시작됨을 말하고 있는 「슬픔이 들어갈 적절한 자리」, 보호자가 없는 아이들을 생각하고 책임 있는 존재의 중요성을 피력하고자 한 「두려움 없이」의 일련의 작품들, 풀의 생명력을 통해 연약함에 내재된 놀라운 가능성을 보고자 한 「일어서는 풀」, 축적된 보살핌과 성실의 숭고함을 보여주고자 했던 「날마다」 등이 있다.

 

최경선_슬픔이 들어갈 적절한 자리_캔버스에 유채_162×131cm_2021

그리는 방식에도 변화가 있었다. 좀 더 붓질이 강조된 명료한 표현을 선호하게 되었다. 이전보다 안료의 물질감에 대해 자유로워지고 붓의 방향성은 다양해졌다. 형상은 단순화하며 표현성에 집중하였는데, 묘사가 생략된 대상은 마치 콜라주처럼 보이면서도 화면의 다양한 층의 형성하도록 평면화시켰다. 거기에 리듬감과 긴장감을 동시에 드러나도록 시도 했다. 이전보다 빛은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다. 그 결과 더 신중하게 선별한 색은 밝아지고 다양해졌다. ● 나에게 그림은 점차 '미지의 개척지'에서 '주변부와의 화해'의 기능으로 옮겨가는 듯하다. 오염되지 않은 언어로 발언하는 예술가가 되고 싶다. 모두가 함께 겪는 이상 징후 앞에서 공동체 속으로 좀더 들어가야 함을 느낀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 나의 슬픔으로 공감할 때, 인류의 저울 위에 생명의 추 하나가 올라간다고 생각해 본다. 불안한 상황에 굴하지 않고 주변을 살피는 평범한 초인이 오늘도 내 안에서 출현하기를 기다린다. (2022) ■ 최경선

 

Vol.20221005a | 최경선展 / CHOIKYUNGSUN / 崔敬善 / painting

-이달에 볼만한 전시-

 

이건희컬렉션전: 이중섭/ 2022.8.12.-2023.4,23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최우람전 / 2022.9.9.-2023.2,26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문 신전/ 2022.9.1.-2023.1,29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한 여름밤, 신들의 꿈전 / 2022.8,17-2022,10,11 / 국립민속박물관

채성필전 "경계, 흙으로부터" / 2022.9.30-10.23 / 가나아트센터

마티 브라운전 / 2022.9.21-10.23 / 갤러리현대

이승조전 / 2022.9.1-10.30 / 국제갤러리

김신욱전 / 2022.8.17-10.5 / 일우스페이스

올림피아 자그놀리전 / 2022.5.18.-2022.10,4 /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허수영전 / 2022.10.14-2022.11,20 / 학고재

한성필전 ‘표면의 이면’ / 2022.8.5.-2022.10.23 / 금호미술관

임준영 사진전 / 2022.8.5.-2022.10.23 / 금호미술관

최경선전 ‘두려움 없이’ / 2022.10.3-2022.10.24 / 나무아트

이숙자전 / 2022.10.19-11.19 / 선갤러리

송광익전 / 2022.9.21-10.16 / 통인화랑 지하

​이태현전 ’원점에서‘/ 2022.10.5-10.30 / 통인화랑 5층

아르 브뤼 선언전 ’나는 나입니다‘ / 2022.10.1.-10.10 / 인사동5길 ’아르떼 숲‘

허달재전 / 2022.10.5.-2022.10.25 / 이화익 갤러리

김한기 ‘이상한 나라의 과학자’ / 2022.10.5-2022.10.25 / 희수갤러리

성순희전 ‘HARMONY OF LIFE’ / 2022.10.19-10.25 / 갤러리 이즈

임춘희전 ‘너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어’/ 2022.10.5-2022.10.29 / 에이라운지

​권 혁전 / 2022.9.15-2022.10.15 / 아트파크

황석봉전 / 2022.9.23-2022.10.23 / 자하미술관

조은정전 / 2022.10.7-2022.10.23 / 인디프레스

이슈 전 ‘몸시’ / 2022.10.1-2022.10.10 / 갤러리 브레송

Henrik Strömberg전 “대안적 내러티브”/ 2022. 9. 27- 10, 22 / KP갤러리

 

[스크랩 : 서울아트가이드 202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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