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모처럼 인사동에 나갔다.

 

지난 달 물대포를 쏘며 강제철거 논란이 일었던 인사동 소재 복합문화공간 '코트' 전시장에

또 다시 승합차 두 대를 전시장에 밀어넣어 재점거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한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하러 나간 것이다.

 

안국역에서 내려 인사동 큰길로 들어가니, 구세군 종소리가 연말분위기를 풍겼으나,

왠지 쓸쓸한 인사동 풍경이 낮 설게만 느껴졌다.

 

곳곳에 대포 맞은듯, 구멍 뚫린 빈 점포가 자리잡은 음산한 풍경이야 익숙하지만,

인사동 사거리 대로변에 들어서는 식당의 대형 간판이

마치 정육점 같은 벌건 고기 덩어리로 장식되고 있었다.

 

건물철거 등으로 곳곳에 출입통제 막이 쳐져 있었고,

남인사마당 공연장 앞에는 바닥교체 작업으로 어수선했다.

 

해마다 년 말이 가까워오면 지자체에서 남은 예산을 탕진하기위해

멀쩡한 바닥을 교체하는 장면은 이제 연례행사나 마찬가지다.

 

문제를 일으킨 복합문화공간 '코트' 전시장은 문이 굳게 잠겨있었다.

유리창으로 들여다보니, 벽면에는 ‘깨어진 땅’이라는 제목의 김지욱, 함형렬씨 사진들이 걸려있었고,

바닥에는 텐트와 승용차가 들어 차 있었다.

 

지난 4일, 건물 입주민들을 향해 물대포를 쏜 철거용역업체 직원들이

특수폭행 혐의로 입건돼 분쟁이 일단락 되는 듯 했지만,

이날 추가로 점거 사태가 일어나면서 분쟁이 재점화된 것이다.

 

'코트'는 예술인들에게 작업 공간을 저렴하게 제공하고,

전시 및 공연 장소로도 활용하는 복합문화 공간이다.

현재 다큐멘터리 감독, 디자이너, 사진가 등

약 30여 명이 2층에 머물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전시장을 치우고 승용차를 끌어들이는 용역업체 직원들 [사진, 점포주제공]

법정분쟁이 마무리될 때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지만,

돈 앞에는 예술도 상도의도 필요 없는 무지막지한 요지경 세상을 언제까지 지켜보아야만 할까?

엉뚱하게 피해 보는 전시작가들이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돈이 인사동 고유의 전통문화와 예술가를 말살하고 있다.

인사동이 위태롭다. 이대로는 안 된다.

 

사진, 글 / 조문호

 

가끔 인터넷 신문에서 오늘의 운세를 찾아본다.

띠별로 몇 줄 적어 논 운세를 믿지는 않으나 재미로 보는 것이다.

운세가 나쁘면 그만이지만, 행여 좋은 운세라도 나오면 괜히 기분 좋아지기 때문이다.

그 날은 "좋은 일은 있으나 끝이 좋지 않다"는 좋다 마는 김빠지는 운세였다.

 

지난 주말은 녹번동 정동지 집에서 개겼는데, 뜻밖에 손녀 하랑이가 찾아왔다.

아들 햇님에 안겨 온 손녀 하랑이가 그 날따라 사진 포즈는커녕 눈 맞추기도 싫어했다.

땡초 처럼 머리를 빡빡 민 할애비가 낯설기도 하지만, 무서웠던 것 같았다.

그러다 이내 잠들어 버렸다.

 

잠든 손녀의 천진한 모습에 빠져 행복감에 젖었는데,

손녀 빰에는 하랑이라 적힌 스탬프 도장이 찍혀 있었다.

 

며칠 전 페이스북에 아들이 올린 하랑이 춤추는 사진을 보아

춤추는 멋진 손녀 사진 한 장 찍고 싶었는데, 결국 자리가 파할 때 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잠자는 손녀를 안고 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닭 쫓던 개처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들 내외가 가고 좀 있으니, 미술평론가 최석태씨가 찾아왔다.

요즘 고 김용태씨 DMZ작품의 바탕을 이루는 미군부대 주변 사진관에서 수집한 기념사진들을

스캔 받는 작업을 정영신씨와 같이 해 녹번동에서 술 한 잔 할 기회가 잦다.

 

그 날은 정영신씨의 장터 기획전에 대한 반가운 소식을 물고 와 스캔 받는 일은 뒷전이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중에 우리나라 현대미술의 야사에 대한 강의가 한 시간 가량 진행되었다.

비단 미술계뿐 아니라 잘 알려진 정사보다 뒷이야기인 야사가 더 흥미로운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눈이 번쩍 뜨일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았는데,

그런 내용을 책으로 묶는다면 대박날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스마트협동조합서인형 이사장과의 약속시간이 되어 그만 일어나야 했다.

 

스마트협동조합가까이 있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푸짐한 안주에다 사무실에서 공수해 온 보드카로 술자리가 걸판졌다.

그러나 독주가 목구멍에 들어가니 금방 돌아버렸다.

 

평소에 마시는 진로를 주량에 맞추어 천천히 마셔야 하는데,

좋은 술이라며 홀짝홀짝 마시다보니 제풀에 간 것이다.

술이 취해 할 말과 안할 말을 가리지 못하고 콩팔 칠팔 지껄인 것은 물론

술집 주인아주머니에게 큰절을 올리는 추태까지 부린 것이다.

 

내 딴에는 만들어 준 술안주도 좋았지만,

가져 온 술을 영업집에서 마신데 따른 죄송함의 큰절이었으나

그만 몸매에 대한 칭찬까지 곁들이는 오버를 해버린 것이다.

절 받는 분의 마음이 결코 편치 않았던 것 같았다.

 

뒤늦게 정동지로부터 이야기 들어 알았지만,

필름이 끊겨 중간 중간 기억 나지 않는 부분도 많았다.

제 버릇 개주지 못한다는 정동지의 푸념에 감 잡을 뿐이었다.

 

다 같이 녹번동 집으로 돌아와서 손님들 앞에 대마불사주를 꺼내놓고 잠자리 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찍힌 사진을 보니 같이 앉아 이야기 나누는 사진도 있었다.

그 이튿날 정동지에게 물어보니, 내복차림으로 한참 주접 떨다 잤단다.

 

아이쿠! 고려장 할 나이에 이 무슨 추태던가?

그 날 아침에 본 오늘의 운세가 딱 들어맞았다.

 

"좋은 일은 있으나 끝이 좋지 않다"

 

사진 :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물대포 이은 전시장 내부 차량 점거
입주자 측 "당장 오늘 전시 어떡하나"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인사동 소재 복합문화공간 건물에서 철거 용역 업체가 전시장 내부로 승합차를 들여보낸다

이달 초 물대포까지 등장해 강제철거 논란이 일어났던 서울 종로구 인사동 소재 복합문화공간 전시장에서 30일 오전 철거 용역 업체가 승합차 2대를 동원해 재점거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종로경찰서는 아침 7시께 복합문화공간 코트(KOTE) 본관 전시장을 점거한 철거 용역업체 직원들을 영업 방해 혐의로 입건했다.

코트 전시장 외부 CCTV에는 쪽문 진입 방향으로 우산 쓴 남성 네 명이 접근하는 모습이 찍혔다. 전시장으로 진입한 이들이 차량이 들어올 수 있도록 앞문을 열자 대기하던 검정 승합차가 진입했다. 해당 남성들이 주변 전시물을 치운 뒤 검정색, 회색 승합차 두 대가 전시장 내부 깊숙이 멈춰서 정차했다. 확인된 영상에서는 채 2분도 걸리지 않아 운전자를 포함한 6명의 남성이 곧바로 우산을 챙겨 유유히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전시관 점거를 주도한 용역업체를 고용한 인물은 코트 측 임차인 A씨로 파악됐다. 앞서 A씨는 이달 초 철거용역 업체를 동원해 코트 입주민들을 물대포로 위협하며 철거를 시도했다.

A씨는 지난달 종로구청에 해당 건물에 대한 철거를 접수한 상태인 반면 전대차 계약을 맺은 코트 대표 B씨는 "계약기간이 내년 11월까지"라고 반발하고 있다.

지난 4일 건물 입주민들을 향해 물대포를 쏜 철거용역업체 직원들이 특수폭행 혐의로 입건돼 분쟁이 일단락되는듯했지만 이날 추가로 점거 사태가 일어나면서 분쟁이 재점화 되는 양상이다.


코트 대표 B씨는 "전시관을 점거한 승합차에 대해 경찰은 견인조치 할 권한이 없으니 구청에 연락해보라고 했다"며 "구청에 연락하자 사유지에서 일어나는 일을 담당하는 팀이 없다며 따로 방법이 없다고 한다"고 토로했다.

매일경제 / 고보현, 박홍주 기자

성원해 주신 덕에 ‘인사동 이야기’ 출판기념전을 잘 마쳤습니다.

 

그러나 코로나가 설치는 때이기도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편치 않은 전시임은 틀림없었다.

한 달 전의 민폐가 체 가시기도 전이라 염치없는 짓이었다.

 

책이라도 좀 팔려는 욕심의 신중하지 못한 결정임을 뒤늦게 후회했으나

이미 전시안내를 올린 터라 빼도 박도 못할 처지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보도자료에서 부터 일체의 전시홍보를 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일기처럼 매일 올리는 중계방송까지 멈추고, 한 분이라도 알게 될까 전전긍긍한 것이다.

그러나 다녀간 분들의 페북 연결로 알만한 분은 다 알게 되어버렸다.

 

그 벌은 전시장을 지켜는 내내 고스란히 받아야 했다.

아는 분이 오시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으니, 고문도 그런 고문은 없었다.

심지어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 중에 자기가 왜 빠졌냐며 원망하는 지인까지 여럿 있었다.

그래서 정동지에게 맡겨둔 채 전시장 비우기를 밥 먹듯 했다.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만, 한정된 지면에 어찌 다 수용할 수 있겠는가?

11년 전 초판 나올 때 찍은 분도 다 게재하지 못한 상황에서 추가 촬영까지 했으니 쩔쩔 맨 것이다..

하다못해 사진 질에 따라 선정하라며 출판사 편집자에 위임해 버렸다.

 

예전에는 만나는 대로 촬영했으나 이번에는 사정이 좀 달랐다.

친분보다 인사동과의 관계성에 중점을 두어 신중하게 선택했지만, 이 또한 갑 질에 다름 아니었다.

 

내년에 출판될 인사동 책에는 개인 입상사진보다 인사동 행사장을 비롯한

특정 공간에서 찍은 단체사진을 많이 할용해 당시의 현장 이야기까지 곁들일 생각이다.

많은 분이 참여할 수 있는 책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할 것도 약속드린다.

 

이번 전시로 인해 많은 분들에게 민폐는 끼쳤지만, 더 좋은 책을 준비하는 수업료로 여긴다.

그 덕에 ‘인사동 이야기’ 책도 100여권이나 팔았고, 사진도 여러 점 판매해 손해는 보지 않았다.

 

그런데, 대전에 계시는 사진가 박순규씨는 전시 때마다 먼 길을 찾아주는 것도 고마운데,

마치 자식 챙기듯, 올 때 마다 농산물이나 음식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와 송구스럽게 만들었다.

 

어려운 사정에도 불구하고 전시장을 찾아 주신 많은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전시 첫날인 24일은 ‘유목민’에서 간단한 뒤풀이를 했는데,

이한성씨가 술값으로 백만원을 술집에 맡겨주는 통에 지난 전시 때와 달리 술값 걱정은 덜게 되었다,

그 날은 조해인, 김수길, 정동용, 김 구, 김제홍, 장경호, 임경일, 이명희씨와 함께 마셨다.

 

그 다음 날인 25일에는 마지막 들린 황정수씨 내외와 한 잔했는데,

먼저 술집으로 안내해 드린 화가 김정헌, 이태호씨도 자리 잡고 있었다.

술자리에서 황정수씨와 사진가 양승우씨가 친하게 된 경위와

서지학자 김영복씨와 오랫동안 함께 했던 관계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셋째 날인 26일은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와 조준영씨가 전시장 문 닫을 무렵에 나타나

모처럼 ‘부산식당’에서 생태찌개를 먹을 기회가 생겼다.

 

오랜만에 들린 ‘부산식당’은 방에서 의자로 실내장식이 바뀌었으나

13년 전 찍어 준 조성민씨 사진은 그대로 걸려 있었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아들이 물려받았는데,

마치 부친의 입상사진이 ‘부산식당’ 트레이드 마크처럼 벽면을 지켰다.

 

27일 늦게는 판화가 류연복씨, 사진가 김문호씨, 화가 신상덕씨가 나타나

전시장에서 와인으로 목을 축이다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겼다.

 

술 마시는 중에 신상덕씨와 ‘귀천’에 모과차 마시러 갔더니 목영선씨가 반겼다.

목순옥여사가 운영했던 ‘귀천’을 조카 목영선씨가 물려받았는데, 벌써 23년의 세월이 흘렀단다.

다섯 살짜리 아들이 스물여덟의 청년이 된 것이다.

 

28일은 ‘진인진출판사’ 김태진대표가 꽃다발과 축하선물까지 사 오셨다.

오래전 부터 인사동에 관한 출판 계약을 한 상태에서 같은 주제의 사진집 복간 기념전을 열었으니,

죄송스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고마운 분이다.

 

그 날은 마지막 들린 화가 이인철씨와 어울려 불편한 마음을 위안했다.

 

전시 철수 전 날인 29일은 최석태, 장경호씨 등 여러 명과 어울려 자리를 옮겨가며 마셨다.

 

전시장에선 매일 주눅 들어 지내지만 문 닫기가 무섭게 술집에서 지냈다.

 일주일 내내 술독에 빠지는 즐거운 비명을 질러야 했다.

 

그런데 전시 끝나는 날 이한성씨가 다시 나타났다.

맡겨두고 간 술값이 소진될만하니 다시 찾아 온 것이다.

그 날은 장경호씨 앞으로 술 값 백만원을 맡겨두고 간 것이다.

 

이한성씨는 20여 년 전 인사동 주막 ‘작은뜨락’을 자주 찾았는데,

늘 가난한 예술가들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자선 사업가다.

재산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 야박한 현실이 아니던가?

이런 분들이 인사동 풍류객의 주체로 버티는 한 인사동 앞 날은 결코 어둡지만 않을 것이다.

 

전시를 철수하는 날은 전시 디피에서부터 마무리까지 도와 준 김진하관장과 한 잔 했는데,

김수길, 전활철, 임경일, 노광래씨와 어울려 마지막 술잔을 들었다.

 

그동안 전시장을 비워 만나 뵙지 못한 분들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해 아쉽지만, 아래 방명록에 적힌 성함이라도 오래 동안 기억하렵니다.

"고마웠고, 미안합니다"

 

조해인, 이명희, 한배규, 석은미, 김인재, 박경하, 이종승, 전강호, 양시영, 박홍순, 노광래, 박상희, 변정대섭,

편근희, 손기환, 전태수, 양상용, 김이하, 정영철, 나종희, 조정애, 김재홍, 황영선, 우문명, 곽숙경, 공윤희,

박옥수, 박서연, 박상희, 박 건, 조경연, 박불똥, 임태종, 서인형, 박태종, 김진하, 박서호, 안정희 ,최인기,

임경일, 안동해, 정동용, 김 구, 김수길, 박은태, 변성진, 박찬원, 성기준, 현영애, 박순규, 최효준, 이종구,

김발렌티노, 이태호, 김정헌, 황정수, 이만주, 김윤기, 최연하, 이규상, 조준영, 최영호, 이기정, 이성은,

김지연, 곽명우, 최태만, 양정애, 최동락, 박종면, 고 헌, 송주원, 전민조, 김문호, 유광식, 신상덕, 류연복,

이승곤, 양재문, 이병진, 김태진, 이인철, 문성식, 박순영, 이한복, 서정란, 임정희, 강찬모, 이상훈, 최석태,

금보성, 하형우, 이태호, 임동은, 고영준, 전활철

 

사진 :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은행잎이 인사동을 금칠 한다

또 한 해의 끝자락이 몰려온다.

 

세월따라 가겠지만 모두 바뀐다.

인사동 거리도 변하고 생각도 변한다.

 

복면의 시대라 사람도 잘 몰라본다,

사람이 사람 만나기를 겁낸다.

 

더 큰 건물 지으려고 ‘지리산’을 철거한다.

인사동의 기억을 지운다.

 

풍류객 잔당들의 마지막 저지선 '벽치기골목' 

 

‘유목민’에 모여 앉아 음모 꾸민다.

이름하여 ‘풍류 쿠테타’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0일은 인사동 나무아트에서 

인사동이야기사진전을 준비하는 날이다.

 

승용차에 가득 싣고 간 사진액자를 4층까지 올리기가 만만찮았다.

5분이 초과하면 주차위반으로 카메라에 찍힌다기에

숨 쉴 틈도 없이 바쁘게 들어 올렸다.

 

너무 많이 준비한 액자 때문에 걸 일이 걱정되었으나

차를 주차장에 옮겨놓고 돌아오니 김진하관장이 적절히 자리를 잡아놓았다.

 

일사불란하게 설치하는 김관장의 디피 솜씨는 장인의 경지에 달해 있었다.

그 많은 액자를 짜임새 있게 걸어주어 우려를 덜었다.

조명 조정까지 잘 마무리했다.

 

김진하, 장경호, 전활철씨와 어울려 유목민에서 저녁식사를 겸해 술 한 잔했다.

전시는 30일까지니, 시간 나시면 관람하시길 바란다.

 

사진, / 조문호

 

 

인사동의 전통문화가 퇴색되고 예술가들의 풍류가 사라진 지 오래다.

인사동이 관광지로 바뀌며 점차 황폐화되어가는 현실을 말하고 싶어 ‘인사동 이야기’ 사진전을 마련한다. 

이 전시가 인사동 반세기를 정리하는 서곡이기도 하다.

 

2009. 80x50cm. 디지털프린트

인사동은 긴 세월 많은 사람에게 예술적 영감을 일깨워온 곳이다. 어찌 보면 예술을 공유하는 장터나 마찬가지다. 장에 갔다가 반가운 사람 만나 즐기듯이, 다들 뒷골목 주막에 모여앉아 정 나누어 온 장소다. 혁명을 외치고 사랑과 예술을 노래하며 꿈을 펼친 곳이다.

이제 문화 특구로 내세울 만한 예스러움이나 인사동 풍류는 오 간데없다. 더러는 인사동이 끝났다는 절망적인 이야기도 한다. 그러나 인사동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 이상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전통 가게나 문화공간들이 어려워도 군데군데 버텨나갈 것이고, 예술가들도 작품을 펼쳐 놓고 어느 골목 주막에 모여앉아 담론으로 꽃 피울 거다. 그래서 인사동 노래를 부르기로 작정한 것이다.

 

2006. 65x40cm. 디지털프린트

이번 전시는 20년 이전에 촬영한 흑백사진을 제외한, 그 이후에 촬영된 컬러사진에서 골라냈다. 인사동의 변해가는 풍경을 년 대별로 보여주는 작품 30여 점을 주축으로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 입상 사진 20여 점도 함께 전시한다.

 

2010. 33x20cm. 디지털프린트

인사동 이야기에 비켜선 입상 사진을 내건 것은 인사동이야기사진집의 많은 지면을 인사동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기도 하지만, 본래 의도한 제목도 인사동 이야기가 아니라 인사동 사람들이었다. 비단 인사동만이 아니라 장소에 앞서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에는 언제나 변함이 없다. 어쩌면 그 사람들이 인사동을 지켜나갈 전사이기도 하다.

 

2016. 33x20cm. 디지털프린트

'인사동 사람들' 작업은 15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2007공화랑에서 개최한 인사동, 그 기억의 풍경사진전과 2010북스갤러리에서 개최한 인사동, 봄날은 간다사진전에 이은 세 번째 전시다. 인사동을 사랑하는 예술가들을 각자가 추억하는 특정 장소에서 촬영하여 지난날을 되새기게 했다. 앞으로도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촬영은 계속 이어지겠지만, 이 전시를 계기로 그동안 기록한 인사동 사진들과 사료를 정리하기로 했다.

 

2011. 65x40cm. 디지털프린트

길고 긴 인사동 이야기를 들추려니 오랜 세월을 거슬러 올라야겠다. 조선시대에는 궁중 화가들의 작업실인 도화서가 인사동에 있었다고 한다, 연암 박지원과 율곡선생도 인사동에 살았고, 400년 된 회화나무와 명성황후의 조카 민익두 대감의 옛 저택인 민가다헌’, 박영효 대감댁이었던 경인미술관한옥도 인사동 유적이다.

 

2012. 33x20cm. 디지털프린트

19세기 말 개화 바람이 불면서 인사동 일대는 교회, 요릿집, 병원 등이 들어서며 신식 동네로 변해갔다. 태화관 터, 천도교 수운회관, 숭동교회, 해정병원 등이 다 그 때 생긴 것이다. 1924년 김정환 옹의 통인가게가 생기면서 고미술 관련 상가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1934년에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책방, 산기 이겸노옹이 운영한 통문관도 들어섰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고가구나 고미술품 등 골동이 인사동으로 쏟아져 들어오며, 1960년대까지 고서점, 고미술상, 필방, 표구점 거리가 되었다. '구하산방'과 수도약국도 그 때 생겨난 것이다.

 

2013. 65x40cm. 디지털프린트

일제강점기에 형성되었던 골동품 상점들은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 초까지 성시를 이루었는데,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먹고살기 힘들어 많은 골동품이 인사동으로 몰려들었다. 미군 장교 출신 막 뮐러가 골동품을 몇 트럭이나 사들여 번 돈으로 천리포수목원도 만들었고골동상들도 때 돈을 벌었다그리고 사기 사건도 성행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가짜 고서화사건, 금당 살인사건이다.

 

2014. 80x50cm. 디지털프린트

인사동이 갤러리 타운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다. 박명자씨의 현대화랑이 관훈동에 문을 연 것을 기점으로 1974'문헌화랑', 1976'경미화랑' 등 상업 화랑들이 속속 모여들어 미술문화의 거리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박주환씨가 '동산방'1976년 열었고, 1977년에는 김창실씨가 '선화랑'을 열었다. 1983년 이호재씨의 가나화랑과 공창호씨의 공창화랑’, 김완규씨의 '통인화랑', ‘관훈갤러리’, ‘학고재’, ‘경인미술관등이 개관하므로 인사동은 명실상부한 화랑가로 자리를 굳힌 것이다. 그 후에도 김진하씨가 운영한 나무화랑을 비롯하여 많은 화랑이 생겨났다. ’나무화랑그림마당 민에 이은 민중미술의 교두보로 자리 잡았다.

 

2015. 65x40cm. 디지털프린트

상업화랑이 생겨나기 이전인 1959년에는 종군사진기자 임인식선생이 관훈동에 사진전문화랑인 '신한화랑'을 차린 적도 있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김영섭화랑과 이순심씨가 운영한 나우와 룩스가 생겼으나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최건수씨가 '룩스'를 인수하여 인덱스’로 개명한 것이 인사동의 유일한 사진화랑으로 남았다.

시인들의 아지트로는 84년 정동용 시인이 운영한 시인학교를 시작으로 이생진 시인의 단골 모임터 순풍에 돛을 달고’, 김여옥 시인이 운영한 시인 과 강고운시인의 '무다헌'이 운영되다 문을 닫았고몇 년 전 문을 연 이춘우 시인의 시가연만 남아 있다.

 

2016. 80x50cm. 디지털프린트

인사동은 예술단체들이 모여 있었다는 점도 또 하나 특징이다. 조선 전기 금속활자 1600여점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자리에는 초창기 예총회관이 있었고, 80년대 중반에는 민미협이 창립한 데 이어 88년에는 민예총이 창립되어 건국빌딩에 사무실을 차렸다. ‘민미협 창립과 함께 그림마당 민이 생겨나는 등 인사동이 민중미술의 본거지가 된 것이다. 그리고 99년에는 민사협이 북인사마당 입구에 둥지를 틀었다.

 

2017. 65x40cm. 디지털프린트

인사동에 예술가들의 풍류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로 알려지고 있다. 명동을 주 무대로 모이던 문인들이 종로 관철동 시대를 거쳐 인사동으로 옮겨오며 시작된 것이다. 거리의 철학자로 불리는 민병산 선생을 앞세워 천상병, 박이엽, 민영, 신경림, 강민, 구중서, 신동문, 박재삼, 황명걸, 방영웅씨 등 많은 문인들이 인사동으로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2018. 65x40cm. 디지털프린트

인사동에 예술가들이 모이는 곳은 주로 기원이나 찻집, 그리고 대폿집이었다. 천상병 시인의 부인 목순옥씨가 차린 귀천과 장문정씨의 수희재’, 최정해씨의 초당같은 찻집, 그리고 술집으로는 실비집이나 고갈비 양푼집 등 이름도 없는 대폿집이 주 무대였다. 실비대학이라 불린 '실비집'은 항상 빈털털이 예술가들이 우글거렸다.  하가'레떼', '춘원', '누님칼국수등이 연이어 생겨났고, 전시 뒤풀이 장소였던 부산식당에 많은 작가들이 어울렸다. 그 이후 생겨 난 전유성의 학교종이 땡땡땡과 사진가 김수길의 '구름에 달 가듯이', 노인자의 뜨락이나 ‘소설’, 이해림의 평화만들기’ 이미례 영화감독의 여자만’, 송점순의 사동집’, 유재만의 아리랑가든’, 박중식 시인의 툇마루같은 술집이나 밥집에 많은 예술가들이 드나들었다. 그 뒤에는 최동락씨가 운영한 풍류사랑’과 전활철씨의 유목민’, 최일순씨의 푸른별 이야기도 생겨났고, ’풍류사랑은 김용태 미망인 박영애씨가 이어받았다.

 

2018. 33x20cm. 디지털프린트

인사동 술집 곳곳에는 많은 예술가들이 북적이며 개똥철학을 풀어댔다. 그러나 술판의 끝자락은 언제나 소란했다. ‘평화 만들기에 평화가 없던 그때가 인사동의 전성기였는지 모른다.

 

2019. 65x40cm. 디지털프린트

이 전시는 1124일부터 30일까지 인사동 나무아트에서 열린다.

꺼져가는 등불처럼 가물거리는 인사동의 부흥을 위해 다 같이 힘을 모우자.

 

2016. 65x40cm. 디지털프린트

개정판으로 나온 인사동 이야기 사진집에는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 124명의 입상사진을 바탕으로

강민시인을 비롯한 43명의 작가가 쓴 48편의 인사동에 관한 글과 인사동 사진 37점이 소개되어있다

 

눈빛출판사 / 가격25,000원

 

 

 

한국의 채색화 민화’ 전에 나온 19세기 말~20세기 초 화조영모도의 오리 그림. 물고기를 잡아먹으려고 머리를 물속에 처박거나 물고기를 부리에 잡아넣고 삼키는 모습이 익살맞게 그려졌다.

100여년전 병풍에 그려진 동물들의 짓거리가 개그맨을 뺨친다. 천연덕스런 표정의 오리는 헤엄치다가 물 속에 대가리를 처박거나 부리로 덥석 물고기를 물어 막 삼키려는 참이다. 민물 속에서 험상궂은 척만 하는 쏘가리 몰골도 웃음보를 터뜨린다. 입가에 삐죽 튀어나온 날카로운 잔이빨로 물 속에 가라앉는 꽃잎을 우적우적 씹어먹는 모양새라니.

 

이번 주말, 서울의 문화 거리로 손꼽히는 북촌 인사동에 가면 전통 민화의 숨은 명작들과 20세기초 진귀한 근대 생활용품들을 구경할 수 있다. 전시 무대는 인사동 거리 북쪽 들머리에 있는 문화복합몰 ‘안녕인사동’ 지하 1층 센트럴뮤지엄. 여기에 지난 10일부터 18개 고미술업체들의 장터로 열리고있는 ‘2021 인사동 앤틱&아트페어’의 딸림 특별전 ‘한국의 채색화 민화’가 19세기말~20세기초 기기묘묘한 수작들로 입소문 났다.

 

‘한국의 채색화 민화’ 전에 나온 쏘가리 그림. 날카로운 이빨로 물에 가라앉는 꽃잎을 먹고 있는 모습을 해학적인 선으로 그렸다.
 
현대화랑의 문자도 기획전에 나온 제주 문자도. 화면 중간의 문자도를 중심으로 위쪽에는 화초를, 아래쪽에는 바다 속 해물들을 등장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출품된 민화들에는 ‘대체 무엇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의외성의 매력이 여실하다. 얼빠진 듯 익살맞은 오리, 쏘가리, 토끼 등의 자태와 몽글몽글한 소용돌이 선으로 배경의 바위덩이를 묘사한 화조영모도가 압권이다. 새 발자국처럼 대충 끄적거린 흔적으로 나는 기러기 떼를 간략하게 표현한 ‘소상팔경도’, 구성이 재미있는 강원 지역 문자도, 책 읽는 귀부인이 등장하는 근대 책가도 등도 눈맛을 다시게 한다. 올해 처음 차려진 앤틱 페어에선 전통 민예품 말고도 근대기 가정집과 사무실 등에서 쓰던 근대기 그릇과 각종 생활용품, 경성제국대학 교기 등의 유물들이 시선을 끌고있다. 인사전통문화보존회가 주관하는 이번 장터는 14일까지다. 17~21일 같은 장소에서 현대미술품을 파는 장터인 ‘아시아호텔아트페어(AHAF) 서울 2021’이 이어진다.민화 애호가라면 인근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14일까지 선보이는 기획전 ‘문자도 현대를 만나다’를 함께 감상해도 좋다. 백수백복도, 제주문자도, 화조문자도 등의 명품들이 나왔다.

 

한겨레신문 / 글 ·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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