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이 다가오면 반갑기보다 술병 날 걱정이 앞선다.

솔직히 말해, 돌아가신 부모님께 죄송스럽지만, 어릴 적부터 생일을 유난히 싫어했다.

내가 싫어하는 음식인 미역국을 먹는 것에서부터 나를 위해 떠벌리는 자체가 싫었다.

집에서 나와 객지로 떠돌며 생일 챙긴지 오래되어 음력생일도 잊어버렸다.

 

그러나 정동지를 만나며 사정이 달라졌다.

주민등록증에 적힌 양력 생일만 되면 제삿날처럼 기억해 내, 그냥 넘어가는 날이 없었다.

그리고 페이스북을 가까이하며 더 이상 숨길 수도 없었다.

생일을 나팔 불어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축하 인사받느라 민망스럽기 짝이 없다.

태어난 자체가 악업인데, 축하받을 일인가?

 

그 중 주변 사람 불러 모아 생일잔치 여는 것은 딱 질색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미리부터 촬영 여행을 떠나기로 약속했.

정동지와 생일 전날 여수로 출발하여 다음 날 돌아올 계획인데,

안되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듯, 태풍 온다는 일기예보로 그마저 취소되었다.

 

마침 페이스북에 판화가 류연복씨가 인사동에 나왔다며 훌훌 털고 나오라는 댓글이 달렸다.

마침 나무화랑에 전해 주어야 할 숙제 같은 문제도 있어 겸사겸사 술 동네 나들이에 나선 것이다.

 

나무화랑에 있어야 할 류연복씨는 술집 유목민에 있었다.

이름도 모르는 미인 두 분을 앞자리와 옆자리에 모신 채, 이미 술에 젖어있었다.

그리고 연극배우 이명희와 장경호, 이기만, 김발렌티노 등 조연도 많았다.

뒤늦게 나타난 최석태, 정영신까지 어울려 술판이 한창 무르익는데,

그 자리에서 정동지가 천기누설을 하고 말았다.

 

내일이 조문호 생일이다고 나팔 분 것은 떡 본김에 제사 지내겠다는 말이다.

졸지에 술자리가 생일잔치가 되어 생일 케익을 대신한 그득한 생일 팥빙수가 올라오는 등

술자리가 갑작스레 소란스러워졌다.

홀짝홀짝 마신 술에 맛이 가 결국 돼지 멱따는 소리까지 하고 말았는데,

아무리 다짐에 다짐을 해도 술만 취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똥오줌 못 가릴 정도로 취했으면, 그냥 자빠져 잘 것이지 컴퓨터는 왜 켤까?

술 취해 떠 오른 이루어질 수 없는 꿈같은 글에다 알몸사진 한 장 올려놓고,

아는 분 포스팅에 댓글까지 달고 쓰러져 잤는데,

새벽에 일어나 생각해 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컴퓨터를 열어 보니 다행스럽게도 검열에 걸려, 그 포스팅은 삭제되고 없었다.

그러나 볼 사람은 다 보았을 것이다. 쪽팔려 미치겠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댓글 또한 무례한 관람자 나무라는 말이 작가를 탓하는 글로 비칠 수도 있었다.

오죽하면 정동지 십팔 번이 제발 아는 채하지 마라는 말이겠는가?

 

속은 쓰려 죽겠는데, 생일이라고 일찍부터 손님이 찾아왔다.

정동지의 동생 정주영씨와 딸 소영이가 온 것이다.

아산 마인팀의 양햇살양이 보내 준 생일 케익에다 정동지가 준비한 새우 안주가 술상을 가득 채웠다.

진짜 생일 술은 해장술로 마신 것이리라.

점잖게 마셔야 하는 가축적인 분위기라 술맛은 어제보다 못했다.

 

연이은 생일 술에 치어 며칠을 낑낑거렸으나, 이번에는 추석인데 어찌 그냥 넘어갈 수 있겠는가?

죽을 때 죽더라도 '먹고 죽은 귀신 화색도 좋다'치 않던가.

전라도 아낙이 끊인 경상도식 탕국을 술안주로 술이 술술 넘어간다.

보름달 뜨면, 달 파먹지 않을까 걱정이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인사동 엔틱페어 포스터

 

'2022 인사동 엔틱 & 아트페어’'831일부터 925일까지 인사동 문화지구 일대에서열린다.

인사동 문화복합몰 '안녕인사동' 지하1층 센트럴뮤지엄을 비롯한 인사동 일대에서 열리는

엔틱페어를 시작으로, NFT, 메타버스, 비디오아트, 청년작가전, 명품 차·공예 박람회 등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한 달 가까이 이어진다.

 

행사를 주관하는 신소윤(인사전통문화보존회)회장은 "인사동은 조선 초기 한양 천도 이후

600년간 한결같이 수 많은 예술가들의 아지트였고 전통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였다"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인사동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이 행사를 개최한다"고 말했다.

날이 갈수록 전통과는 거리가 먼 장사들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하여 인사동 본래의 전통문화가

점점 밀려나고 있는 현실에서, 인사동의 정체성을 살리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나전구관문연상  28.5x40x28cm

 

지난 31일 오후 4, ‘안녕인사동센트럴뮤지엄에서 개막한 엔틱페어에서는 고미술, 표구, 지필묵 등

전통문화 관련 전시를 비롯하여 여러가지 시연 행사와 국악 공연이 다채롭게 진행되었다.

 

'2022 인사동 엔틱 & 아트페어에는 인사동 문화지구 내에 위치한 고미술 업체들은 물론,

'한국고미술협회' 소속 업체들도 참여한다. 지난해 좋은 평을 받은 고미술 전시행사를 제대로 보여주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미술 페어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한다.

특별전에 전시된 나전칠기와 주칠 공예품은 많은 관람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주칠사각반   36x35x24.5cm

 

'한국표구협회'에서는 엔틱페어기간 동안 표구 전시와 시연 행사 외에도 지필묵이나 문방사우 등 다양한 품목들을 내놓았다.

그리고 인사동 전통차음식 단체인 인사동 식구들은 전통차와 전통 한정식 홍보를 하고 있다.

 

강국진, 점(Dot), Water paint on hemp wallpaper, 46 x 46 cm, 1974

 

98부터 18일까지 열리는 2부 행사 ‘NFT & 아트페어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NFT·메타버스·비디오아트·화랑 전시가 열린다.

기성 작가만이 아니라 신진 청년 작가나 대학생에게도 전시 기회가 주어졌.

 

NFT 전시를 통하여 미래의 예술 산업이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하는, 시대 흐름에 발맞춘다.

 

김순협 , 감귤나무  E2234 Gold leaf, oil on canvas112x112 2022

 

921부터 25일까지 열리는 3부 행사에는 ·공예 박람회가 열린다.

여러 가지 차와 아기자기한 공예품들을 구경하며, 소박한 일상 속의 행복을 찾을 수 있다.

 

924일 토요일에는 인사동의 매력을 말하는 소설가 김홍신의 특별강연과 시낭송회도 진행할 예정이다.

그뿐 아니라 인사동 문화지구 내 각 분야별 전문가나 장인, 명장 등의

강연과 시 낭송회, 국악 공연·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2022 인사동 엔틱 & 아트페어 행사 메인 포스터

 

 

 

 

마지막 인연의 끈을 내려놓지 못하는 곳이 동자동과 인사동이다.

한 곳은 삶의 전쟁터고 한 곳은 마음의 고향이다.

동자동도 인사동도 빨간불이 켜진지 오래지만, 어쩌겠는가?

세월 따라 변하는 것이 세상 이치인 것을...

 

지난 수요일은 동자동 빈민들 생수 나누어 주는 날이었다.

쪽방 더위를 견딜수만 있다면, 한 시간 쯤 땡볕에서 줄 서는 것이야 할수도 있다.

더위에 지친 이들의 갈증에 불만도 따랐으나, 고마운 배려였다.

 

사소한 일로 목소리가 높아진 두 젊은이는 죽일 듯 주먹을 치켜세웠다.

 "씨발놈아~", "오로새끼!"만 서로 반복하며, 주먹은 계속 허공을 맴돌았다.

매값을 훤히 알고 있으니, 어찌 성질대로 하겠는가?

 

지루함을 메워주는 퍼포먼스처럼 한참을 싸우더니,

물이 도착하니 약속이라도 한듯 싸움을 끝냈다.

 

작은 생수 스무 병 묶음이 일사불란하게 분배되었다.

삼백 명 한정이라 외출을 하지 않는 늙은이는 몰라서도 못 얻지만,

힘없는 노인들은 높은 곳까지 들고 가기도 힘들다.

가난한 사람 중에서도 매번 늙고 힘없는 사람만 소외된다.

 

 '공정'이란 말을 혁명 공약처럼 내 세우는 분들이시여!

제발 밑바닥 인생, 작은 것부터 공정하게 해 주세요.

 

오후 늦게는 모처럼 인사동 나갈 일이 생겼다.

한때 인사동에서 작은 뜨락을 운영한 노인자씨가 추억이나 까먹자는 연락이 와서다.

 

먼저 인사동 골목부터 돌아보았다.

죽을 때가 되면 이곳 저곳 돌아본다던데, 죽을 때가 되었을까?

콧수염으로 불리던 사진가 김영수씨가 오르내리던 작업실 골목도 갔다.

 

깐죽대던 강용대가 김영수의 군화발에 차여 처박힌 곳에서부터,

10원짜리 동전을 펼쳐 놓고 일원 짜리와 바꾸어주는 돈장사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화가 강용대 유적지가 가장 많이 떠올랐.

금방이라도 머리를 풀어 헤친 까딱이가 고개를 까딱이며 나타날 것 같았다.

 

실비대학’으로 불린 '실비식당'은 개털의 소굴이었다.

물주 기다리다 잠든 어디엔들 머물 곳이 없으랴의 땡초시인 적음도,

유일한 물주였던 한국일보 사진기자 김종구도 이제 모두 저세상 사람들이다.

 

노동자시인 김신용의 '조빠하'란 시어가 안주가 되던 그런 시절이었다.

알몸으로 난장판 된 실비대학 결혼식 뒤풀이 등

끊어지고 뒤엉킨 추억의 실타래를 되 감는다.

 

소설가 배평모를 만나 이박 삼일동안 한자리에서 죽쳤던 레떼도 생각났다.

죽이 맞은 술친구보다, 주모 이점숙의 갈까보다’ 노래가 발목 잡았다.

 

사진쟁이들이 많이 들락거린 꽃나라흑백현상소보다

그들과 어울려 술잔 나누던  뚱뚱이 삼겹살 집이 더 그립더라.

 

천상병시인의 아지트였던 귀천만 자리를 옮겨 살아남았을 뿐,

‘실비집'에서 부터 ‘누님칼국수’, 수희재',  '하가', '춘원', '평화만들기' 등

많은 주막과 찻집이 종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때 이야기를 아는 분도 별로 없겠지만,

세대 따라 인사동에 대한 추억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40대의 한 분처럼 추운 겨울날 호떡 하나 사 먹기 위해

한 시간 가까이 떨며 기다리다 호떡을 사고보니 입이 얼어 호떡 맛을 알 수 없었다는 분에서 부터,

 쌈지에 대한 추억이 많은 30대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른 추억을 떠올린다.

 

 노인자씨가 운영한 작은 뜨락도 한 때는 인사동 참새들의 방앗간이었다.

마신 만큼 자진 납부하는 콧구멍한 대폿집이라 매상도 신통찮은데다,

그마저 외상 하는 골패들이 늘렸으니, 어찌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약속장소인 유목민 본래의 카페도 떠올랐다.

그땐 ’이란 카페였는데, 착 가라앉은 술집 분위기가 연애걸기 딱 좋았다.

그곳에서 들었던 킹크림슨의 아일랜드‘가 아직까지 귓가에 맴돈다.

 

유목민에는 이대훈, 노인자 내외와 정영신 동지가 기다리고 있었고,

안쪽에는 화가 유준씨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두 내외를 몇 년 만에 만났는데, 노보살은 살이 포동포동한데 반해 이대감은 나처럼 비쩍 말라 있었다.

 

노보살만 드시고 이대감은 굶겼을까도 생각했는데,

진짜 단식원에 집어넣어 모질게 십키로나 살을 뺏다고 한다.

그러고도 술과 인연을 끊지 못해 빨간딱지나 찾고 있으니. 이 일을 어쩌랴!

 

주거니 받거니 하는 '유목민' 주인장 역시 술은 독약이지만,

술을 너무 사랑해 목숨 걸고 마시는 것이다.

 

 오늘도 술에 절어 '미워도 다시 한번'을 곱씹는다.

 

인사동은 마음의 고향이 아니라 술의 고향이던가?

 

사진,  / 조문호

 

 

 

 

지난 토요일 인사동에 나갔다.

 

인사아트프라자앞에서 열리는 '우크라이나 난민 어린이 자선 공연'에 들리기 위해서다.

 

보름 전에 사진은 찍어 올렸으나, 그때 돈이 없어 모금에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날 자선 공연은 열리지 않았다.

 

더 이상 나설 뮤지션이 없었을까?

아니면 모금이 신통찮아 그만두었을까? 별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나 자선음악회가 있다고 나팔 분 것이 문제였다.

행여 그 글을 보고 나왔다면 얼마나 원망하고, 실없는 사람으로 보겠는가?

주최 측에 재확인하지 못한 탓이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헛걸음 한 모든 분에게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몇 푼 되지 않는 후원금은 후원계좌를 찾아 보내기로 하고,

비참한 심정을 달래려 벽치기 골목으로 들어갔다.

 

벽치기 딱 좋은 좁은 골목을 들어서니, 반대편에서 장춘씨가 걸어왔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유목민에는 전활철씨 3-40년전 친구들이 모여 있었다.

그중에는 안면 있는 분도 여럿 있었는데, 술 장사에 찌든 활철씨가 제일 많이 삭았더라.

 

다행히 그날부터 유목민에 새 지배인이 들어와 활철씨도 편하게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전활철씨의 해방인지, 아니면 사장에서 회장으로 승진한건지 분간 안 간다.

 

담배 피우기 딱 좋은 술집 입구에 술상을 차렸는데,

장춘씨에 이어 강남에 전시 보러 간다던 정동지도 돌아오고,

갤러리시네노광래 관장과 불화가 이인섭선생 등 줄줄이었다.

 

덕분에 정성진, 안지현씨 등 미녀들도 알현할 수 있었다.

 

노관장은 전시 중인 “Funny Art, Money Art’ 리플렛 한 장 내놓았다.

 

719일까지 열리는 이번 기획전에는 돌아가신 민병산, 김구림, 변우식, 임창렬,

이존수, 강용대, 김지하시인에서 부터 요즘 잘 나가는 최울가, 강찬모에 이르기까지

22명의 작품을 모은 전시로 소품 위주라 마음에 들면 소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생각지도 못한 술자리가 만들어져 술은 취했으나, 씁쓸함은 지워지지 않았다.

기레기나 다를 게 뭐 있나?

 

덕분에 반가운 분들 만나 잘 마셨다.

인사동에서 그리운 분들 만나 전시 보아가며 좋은 시간 만들자.

남는 건 그리움의 추억뿐이다.

 

사진, / 조문호

 

 

 

! 이게 얼마 만이더냐?

그놈의 코로나에 발목 잡혀 못 만난 지가 2년을 훌쩍 넘었다.

조준영 시인의 사발통문으로 모처럼 인사동 골통들이 다 모인 것이다.

 

인사동 풍류를 사랑하는 예술가 패거리가 생겨난 지도 오랜 세월이 흘렀다.

7-80년대 목순옥여사가 운영하는 귀천을 아지트 삼아, 거리의 철학자 민병산선생을 비롯하여

천상병, 박이엽, 강 민, 신경림, 황명걸, 구중서, 민영 시인 등 많은 문인들이 인사동 풍류를 이끌었다.

 

그러나 세월 따라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자 후배들이 그 뒤를 이어받았다.

지금은 소식 끊긴 구중관, 배평모를 비롯하여 김종구, 강용대, 최정자, 이청운,

강찬모, 조해인, 최울가, 박광호, 전강호, 김신용, 석파, 적음, 김용문씨 등 많은 풍류객이

만들어 낸 사연들이 소설 한 권은 족히 될것이다.

그중에는 김명성씨가 있었다.

 

지금은 잘 나가는 화가도 더러 있으나, 예전엔 다들 개털이라 술값 낼 물주가 필요했다.

김명성씨가 창예헌이란 모임을 만들어 인사동은 물론,

지방까지 예술축제를 개최하여 지역 예술가들을 규합했다.

그러나 김명성씨가 인사동에 세운 아라아트건물이 빚더미에 올라

중국 자본에 넘어가자 창예헌도 힘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는 조준영 시인이 주선하여 유목민에서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져왔는데,

인원은 십여 명 밖애 모이지 않았지만, 터줏대감들의 유지는 이어 온 셈이다.

그것도 형식상으로 일 인당 만 원을 거두지만,

주태백이 술값으로는 턱없이 부족하여 항상 제 주머니를 털어 온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오랜만에 모임을 규합하기 위해 봉화 사는 신동여화백을 불러 온 것이다.

신화백은 인사동에서 전시했던 4년 전에 보고 처음이니, 다들 얼마나 반갑겠나?

, 신동여씨만 생각하면 돌아가신 전우익선생이 생각난다.

 

신경림시인의 간고등어시에도 소개되었지만,

봉화에서 인사동으로 올라오시면 항상 안동 간고등어를 들고 오셨다.

신화백도 같은 봉화 살지만, 삶의 철학이 비슷하다.

신화백 역시 예전에는 간고등어 대신 약초를 갖다주었다.

 

전우익선생 말씀대로 재미있게 사는게 최고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그럴려면 저어기 무인도에나 가서 살어.

별로 재미없는 세상 재미나게 살아가야제. 안 그려?

비잉신처럼 굴지말고 학실히 살다 가. 알았냐?”

 

인사동 모임은 지난 금요일 오후 여섯 시로  잡혔는데,

전시 리뷰 하나 전송하고 나가려다 시간이 지체되어 버렸다.

인사동에 도착하니 삼십 분쯤 늦었는데, 이미 유목민벽치기 골목은 대목장이었다.

 

봉화에서 올라온 신동여씨를 비롯하여 조준영, 임태종, 조해인, 이명희, 김상현,

장경호, 전강호, 정복수, 노광래, 유근오, 김수길, 김 구, 임경일, 정영신, 노박사,

이인섭, 최유진, 김민경, 전활철씨 등 이 십여 명이 술판을 벌이고 있었는데,

양산에 있는 공윤희씨도 와 있었다.

 

반갑다는 인사대신 카메라부터 들이댔는데, 찍고 빠느라 정신없었다.

여기서 한 잔 저기서 한 잔 걸치다 보니, 가랑비에 옷 젖듯 슬슬 취했다.

술맛 좀 날 만 하자, 일찍 마신 술꾼들은 도망갈 준비부터 했다.

 

한 사람 두 사람 사라지니, 바톤 받듯이 임헌갑, 서인형, 류연복, 최석태, 안원규,

발렌티노 김이 뒤를 이었는데, 한때 인사동 밤안개로 불린 이두엽까지 나타났다.

아직 인사동 밤안개가 나올 시간은 아닌데...

 

기분이 좋으니, 시간은 더 빨리 갔다.

요새 한꺼번에 반가운 사람들 만나는 날이 자주 생긴다.

그제는 김문호씨의 '풍리진경' 사진전이 인사동에서 열려,

부산에서 이광수교수까지 올라 와 코가 비틀어지도록 마신 것이다.

 

갈 시간이 되었다는 정동지 눈치에 먼저 선수를 쳤다.

나 오늘 신 화백하고 빨다 잘 테니, 먼저 들어가

술 취하면 간이 배 밖에 나온다는 말이 딱 맞다.

모셔드려야 할 밤늦은 시간에, 어찌 동지의 서약을 헌신짝처럼 내버릴 수 있단 말인가?

 

늦게 온 술꾼들마저 사라지는 걸 보니, 이미 파장이었다.

평소 문 닫을 때 까지 마신다는 장경호씨도 보이지 않았다.

신화백까지 사라져 활철씨에게 물어보니, 너무 취해 여관에 갔단다.

활철씨 안내로 '한흥장'을 찾아가니, 이미 신화백은 뻗어 있었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신화백이 먼저 일어나 있었다.

인사동 거리는 사람 청소를 했는지, 사람이라고는 한 사람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나저나, 속이 쓰려 죽을 지경이나 인사동에 해장할 곳이 마땅찮다.

아침 식사되는 곳은 이문설렁탕뿐이라 그곳을 찾아간 것이다.

반주도 없이 급하게 설렁탕을 퍼 넣는데, 전활철씨가 해장국 끓어 놓았다는 기별을 했다.

 

술이 깨기도 전에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시원한 국물이라 소주가 술술 넘어가 단숨에 한라산 세 병을 까고서야 일어섰다.

활철씨는 영천시장에 장 보러 가는 동안 녹번동 정동지 집으로 쳐들어간 것이다.

전화를 받지 않는 게 마음에 걸렸으나, 간 크게 택시를 잡아탔다.

 

모처럼 시골 영감이 상경했는데, '대마불사주' 맛이라도 좀 봐야 하지 않겠나?

이미 해장술에  제정신이 아니라, 활철씨가 찔러 준 신사임당 두 장을 꺼내 놓았다.

외상이 아니라는 투로 주모에게 대마불사주와 안주를 주문한 것이다.

 

대마 나물과 대마불사주가 나왔는데, 시골 영감이 너무 빨리 마시는 것 같았다.

불광동 사는 장춘씨까지 불러냈으나, 이미 정신이 풀려버렸다.

많지도 않은 대마불사주 씨를 말리고서야 일어섰다.

 

술이 취해 몸을 못 가누는 신화백을 부축하여 어렵사리 택시를 잡았는데,

장춘씨가 술 취한 신화백에게 얼마나 잔소리를 해대는지, 듣는 내가 짜증 났다.

처녀로 늙었기에 망정이지, 시집이라도 갔더라면 서방 잡을 것 같았다.

인사동 벽치기 골목 입구에서 내려 유목민으로 돌아오니,

활철씨도 장을 보아 영업준비를 마무리했더라.

 

장춘씨의 잔소리를 안주로 다시 막걸리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옆에 있던 노박사가 안주하라며 시원한 팥빙수 한 그릇을 갖다주네.

입가심으로 마신 막걸리 두 병에 신화백은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활철씨가 여관방을 잡아두었다기에, 그를 부축하느라 술이 깰 지경이었다.

몸에 힘이 풀려버리니, 산송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렵사리 2층 방까지 데려다주고 나오니, 장춘씨도 가버렸다.

그만 막 내리라는 신호였다.

그나저나, 인사동에 방 잡아 놓고 술 마신 지가 얼마 만이더냐?

마지막일지도 모를 오래된 일이라, 소중한 추억으로 접어 넣었다.

신화백이 자리에 눕자, 긴장이 풀어져 다시 취기가 올랐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뻗어버렸다.

한 밤중에 깨어나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고야 정신을 차렸는데, 마음에 걸리는 일이 하나 생각났다.

뉴스 아트에 보내준 전시리뷰를 페북에 걸어놓고 나갔는데, 시간이 없어 교정을 못 본 것이다.

 

컴퓨터를 열어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필요 없는 글이 있었다.

마치 취중에 올린 글 같은 상스러운 표현인데, 이미 볼 사람은 다 봐 버렸다.

 댓글까지 달린 전시리뷰를 내리고, 수정한 인사동 사람들블로그 글을 다시 페북에 링크한 것이다.

 

카메라에 든 이미지를 꺼내 정리하며, 불 꺼진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있으니

'유목민'의 전활철씨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닭죽을 끓여 놓았는데, 신화백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신화백은 일찍 봉화로 내려 간 것 같았다.

만나면 다시 술을 마시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니, 단단히 마음먹은 것 같다.

 

그래! 잘 내려가시게나.

당신이 또 하나의 인사동 추억을 남겨주었구려!

 

선배들에게 물려받은 인사동 풍류, 불 꺼진 창을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다 사라지고 변해버린 삭막한 인사동,

뒷골목 정마저 사라진다면 전우익 선생 말처럼 무슨 재민겨?”

다들 조준영 시인이 부여잡은 인사동 끈을 모두 놓지 맙시다.

 

이상으로 ‘신동여 선생 상경기를 마무리합니다.

 

사진, / 조문호

 

 

 우크라이나 난민 어린이를 돕기 위한 사랑과 평화자선 음악회가

매주 토요일 오후 6시부터 인사동 인사아트프라자앞에서 열리고 있다.

 

이 자선음악회는 사랑과 평화를 지향하는 예술인 모임인 사랑과 평화경성구락부,

장소팔기념사업회에서 공동 주최하고 인사아트프라자에서 주관한다.

 

42일 열린 첫 공연에는 음악극 경성구락부팀의 공연을 시작으로,

어르신들의 향수를 달래는 장광팔, 독고랑의 서울 전통이야기문화 만담 공연이 있었다.

그리고 '서울심포니오케스트라' 단장 임실비아씨가 자선 음악회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 주 열린 버스킹에서는 소프라노 김희정, 테너 김철호, 기타리스트 장윤식,

메조소프라노 김소영, 소프라노 한명성이 참여하여 관람객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고 한다.

 

그냥 지나치다 자선음악회를 만나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놓치거나 미루다, 이번엔 작정하고 찾아 나선 것이다.

 

주말의 인사동 거리는 사람이 많았다.

모처럼 흥청대는 인사동을 거리는 물 만난 고기 같았다.

버스킹 공연이 시작된 인사아트프라자앞에는 발 디딜 틈 없었다.

 

2005년 '인사아트프라자' 앞에서 열린 이목일씨의 호랑이 그림 퍼포먼스

그 장면을 보니, 오래전 그 곳에서 열린 이목일의 호랑이그림 퍼포먼스와

지금은 고인이 된 가수 이남이 공연이 떠 올랐다.

 

가수 이남이씨가 노래를 부르고, 오른 쪽 아래는 전유성씨가 사진을 찍고 있다.

 김명성씨와 전유성씨 등 인사동 사람들과 축제를 즐긴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십칠 년의 세월이 흘러버렸다

 

공연을 지켜보는 전유성, 이목일, 김명성씨

이날은 인사아트프라자박복신 대표를 비롯하여

만담가 장광팔, 화가 황경애씨 등 아는 분도 여럿 보였다.

 

인사아트프자자 대표 박복신

열한 번째 맞이한  우크라이나 난민 어린이돕기 자선음악회에는

재즈의 여왕 윤희정과 친구들’, 쏘머즈싱어송 라이터,

배수영, 서혜성, 김윤경씨 등 많은 가수들이 출연했다.

 

유명 가수뿐 아니라 학생 밴드의 공연도 있었고, 전시 중인 화가 홍성룡씨가

노래를 부르는 등, 우크라이나 어린이를 돕기 위해 함께 힘을 모았다.

 

화가 홍성룡씨가 열창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적은 돈이나마  많은 분이 동참해야 하는데,

성금함이 가려, 뒤에서는 성금을 내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누군가 모자를 돌려서라도, 난민 아린이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자선 버스킹으로 진행되는 우크라이나 난민 어린이돕기 공연은

매주 토요일 오후 6시부터 인사동 인사아트프라자 앞에서 열린다.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여 불우한 어린이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되어주길 바란다.

 

사진, / 조문호

 

 

 

인사동은 젊은이 천국이지만, 길만 건너면 늙은이 낙원이다.

그래서 동네 이름도 낙원동이다.

 

그 곳은 사회와 가정에서 퇴출 당한 늙은이들 아지트다.

평생 몸 바쳐 돈만 벌며 살았으니, 놀 줄도 모른다.

 

식구들 눈치 보여 별 볼일 없이 지하철 탄다.

공짜 전철로 어디든 못 가겠나마는, 맘 편히 소일 할 수 있는 곳은 탑골공원 뿐이다.

 

탑골공원 담장에는 장기판이 줄을 섰고, 골목에는 대폿집과 국밥집이 줄지었다.

장기판에 훈수 들다 목노주점에서 시간 죽인다.

 

국밥 한 그릇에 추억을 되 세기고, 탁배기 한 사발에 왕년의 무용담이 쏟아진다.

 

그들은 우리 경제를 일으킨 주역이 아니던가?

한 때는 월남전에서 피 흘렸고, 독재정권과 싸운 사람들이다.

 

한 가지 이해되지 않는 것은, 늙은이 대부분이 꼴통 보수라는 점이다.

그토록 보수정권을 지지했으나, 늙은이 복지는 항상 찬밥 신세다.

 

'거리두기로 공원 문이 닫혀도 장기판은 돌아 간다성북동 김씨가 하소연 한다.

 

마누라한테 밥 얻어먹는 것도 눈치 보여요.

돈 없고 힘 없으니, 벌레 취급받기 싫어 나오지요,

해장국 삼천원에다 소주 삼천원, 하루 만원이면 찍 싸요.“

 

이제 친구들이 하나둘 떠나는 게 남의 일 같지 않단다.

덧없는 세월 속에 인생 무상을 체감한다.

 

허리우드에 걸린 영화 간판처럼, 모든 건 바람과 함께 사라질 뿐이다.

 

사진, / 조문호

 

 

모처럼 질퍽한 술자리가 인사동 곳곳에서 벌어졌다.

지난 수요일은 나무화랑에서 이명복의 어멍전이 시작되었고,

인사아트프라자에서는 박옥수의 시간여행이 열리는 날이었다.

 

코로나 규제까지 풀려 모처럼의 해방감에 많은 분과 어울려 바쁜 잔치 판을 오갔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란 말처럼 항상 많이 마셔 탈이다.

 

술 취해 사진은 얼마나 찍었는지, 메모리카드가 찼더라.

요즘 몸도 비실거리지만, 하던 일도 귀찮아 게으름을 피운다.

미루고 미루다 일주일이 지나서야 뒷북치는 것이다.

 

전시가 열리던 날, 안국역에서 가까운나무화랑부터 갔더니

작가 이명복씨를 비롯하여 김진하관장, 박흥순, 이재민, 김구, 홍성미, 김양훈, 양상철, 김성명씨 등

여러 명이 전시를 돌아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제주 사는 이명복씨는 4.3의 한 맺힌 응어리를 형상화하는 작가다.

전시된 어멍전에는 어머니의 초상과 일하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비록 한 사람의 인물을 그렸지만, 그 속에 우리 민중의 한이 서려 있었다.

 

어머니의 주름진 눈빛에서 지난한 세월의 아픔도 읽을 수 있었다.

잠시도 쉬지 않는 부지런하고 강인한 제주 어멍의 모습이었다,

어버이날을 며칠 앞둔지라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리웠다

 

같은 시간에 개막된 박옥수씨의 시간여행‘ 사진전도 보러 갔다.

전시를 기획한 지승룡씨가 개막식을 진행하고 있었다.

 

반가운 분도 여럿 보였다. 박옥수씨 내외를 비롯하여

사진가 김문호, 김녕만, 곽명우, 정영신, 가수 장사익,

연출가 김혜련씨 등 많은 분이 지켜보는 가운데,

장사익씨가 축가를 구성지게 불러 분위기를 띄웠다.

 

사진들을 돌아보니, 아파트가 즐비한 배경으로 쓰러질 듯

자리를 지킨 청계천 판자촌에서 부터 물지게를 지고 가는 어린 소녀들,

창경원에서 휴대 전축을 틀어놓고 춤추는 젊은이를 비롯하여

수많은 사연이 세월을 거슬러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사진가 박옥수씨는 나보다 나이는 두 살 아래지만, 사진은 한참 선배다.

고등학생 때부터 사진 활동을 해, 전시하는 사진들도 65년부터 80년까지의 시대상이다.

사진으로서의 가치는 물론 근현대 사료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녔다.

 

그날 박옥수씨 부인도 처음 뵈었는데, 이토록 아름다운 미녀를 숨겨 둔지 미처 몰랐다.

더구나 연출가 김혜련씨와 절친이라는데, 세상은 넓고도 참 좁았다.

 

뒤풀이가 있는 사동집에도 반가운 분들이 있었다.

전시장에서 뵌 분 외에도 사진가 정장식, 심보겸, 성유나, 조명환씨를 비롯하여

김구, 김이하, 이만주, 노광래씨 등 많은 분이 어울린 술자리가 만들어졌다.

 

사동집 주인 송점순씨가 보이지 않아 찾아보았더니, 주방에서 열심히 전을 부치고 있었다.

손님이 없어 일손을 줄여 쉴 틈도 없다며 바쁘시다.

 

안쪽 자리에는 미술평론가 유근오씨 일행이 마시고 있었다.

 

이 얼마 만에 맛보는 떼거리 술판이던가?

반가운 자리지만 다른 뒤풀이가 궁금해 급하게 마셨더니, 금세 술기운이 올랐다.

 

담배 피우러 나왔다가, 간다는 말도 없이 이명복씨 뒤풀이를 찾아갔다.

 

유목민으로 가다 보니, 길목 사랑채에 자리 잡고 있었다.

길가에 이명복, 장경호, 이재민, 박흥순씨가 나와 있었고,

안에는 손기환, 김진하, 김재홍, 고옥룡, 나종희, 송 창, 류연복씨 등 민중미술가들 판이었다.

 

장경호씨와 유목민‘으로 가보니, 그곳도 북적였다.

 

박성남씨를 비롯하여 임헌갑, 임동은, 이경희, 주홍수, 유준 씨 등 성함이 오락가락하는 많은 분들이 있었다.

 

뒤따라 사동집에 있던 김문호, 정장식, 정영신, 노광래, 김이하씨가 차례로 나타났고,

사랑채에 있던 이재민, 김 구, 김재홍씨도 합류했다

 

김명성, 김상현, 이상훈, 안원규씨 등 줄줄이 사탕이다.

 

! 이 얼마만의 이산가족 만남인데,

그냥 넘어갈 수 있겠냐 마는 다들 시간이 늦어 몸 사린다.

 

인사동에서 좋은 전시 있으면 작품보러 나오는 길에 자주 만나자.

 

 다시 뭉쳐 인사동에 봄바람 날리자.

 

사진, / 조문호

 

이명복 '어멍'전시장 사진 / 나무화랑

 

박옥수 '시간여행' 개막식 사진 / 인사아트프라자2층

 

박옥수 '시간여행' 뒤풀이 사진 / 사동집

 

  이명복 '어멍'전 뒤풀이 사진/ 사랑채

 

'유목민'에서 만난 사진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