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서술한 인간 속성에 관한 문학 “따마스”(인간은 악이다)가 ‘눈빛출판사’에서 발간되었다.
총 열두 챕터로 나누어진 첫 장의 제목은 '태초의 바다'이고 마지막 장의 제목은 '따마스‘ 인간은 악이다.
그 사이에 열 개의 장이 있는데, 각 장의 제목을 통하지 않고는 각각의 내러티브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넓은 의미로는 다큐멘터리 사진집이지만, 바꾸어 말하면 이미지로 읽는 역사고 문학이다.
일단 그 책에 실린 사진들을 살펴보면 사진의 형상보다 색감이 갖는 운동성에서 강한 욕망이 꿈틀거린다.
그 운동성을 지닌 이미지의 힘이 보는이로 하여금 사유의 늪으로 끌어들이게 만든다.
각자 나름의 세계를 해석하고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 스토리텔링은 각 사진 한 장 한 장이 단편적으로 갖는 지시성과 그 위의 의식이 차지하는 바도 중요하지만,
옆 사진 혹은 다른 사진과 어우러져 메시지가 연결되는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다.
전시형식으로 열린 특강에서 저자가 실제로 사진을 옮겨가며 느낌이 달라지는 것을 보여주었는데,
이미지와 이미지의 연결이 중요한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특정 인간이 특정 사회에서 행한 행위를 산문으로 기록한 것이 역사라면 고대 인도에는 역사가 없다.
그들은 인간의 행위를 기록하지 않고 신의 행적을 시로 노래했으니,
그건 역사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전설일 뿐이다.
그들은 시로 역사를 서술하고,신의 이야기로 인간의 역사를 이야기했으니,사진에서 말하는 이미지 전유다.
사진집을 접한 처음에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보고 또 보고, 앞에서도 보고 뒤에서도 보며 무작위로 이미지 끼리 연결하며 관찰하다 보니
어렴풋이 나만의 이야기가 정리되었으나, 객관성은 있는지 모르겠다.
책에서 이미지를 여러 차례 살펴 보았지만, 신전처럼 사진을 늘어놓은 전시장에서 보는 느낌은 또 달랐다.
오래전 성행한바 있는 여러 장으로 엮는 연작사진이 단편이라면, '따마스'는 장편인 셈이다.
어제는 책 리뷰를 쓰려고 '따마스'사진집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는데,
칙칙한 붉은 색의 이미지들이 주는 느낌에서 욕망으로 들 끓는 인간의 속성을 엿볼 수 있었다.
정말 인간의 욕망이란 무서웠다.
죽는 날만 기다리는 자가 '따마스'처럼, 이미지로 스스로의 사유를 엮고 싶은 욕심이 생긴 것이다.
작품집 제목 '따마스'처럼, 진짜 인간은 악이다.
사진으로 말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지만, 신선한 접근법이 아닐 수 없다.
사진인은 물론 사진에 관심 있는 모든 분이 보아야 할 사진문학이다.
'따마스(tamas)'는 산스끄리뜨 어휘다. 힌두철학에서 가장 오래된 한 분파 철학인 상키야 (Sankhya)학파에서 말하는 인간의 세 가지 본질 속성 중 하나다. 그 고대의 현자라 불린 그 사람들은 인간은 따마스 즉 어둡고, 무기력하며, 무관심한 속성을 갖는데, 도를 닦고, 열심히 노력하면, 다음 단계로 올라가고, 이후 또 노력하면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 궁극의 해탈에 이르게 된다고 했다. 전형적인 이원론의 세계 안에서 사회 안정에 이바지한 도덕 목적 담론이다. 난, 그 스승들의 가르침에 일부 동의하지만,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못한다. 인간의 속성은 따마스다. 그들이 보았듯, 나도 그렇게 본다. 그렇지만, 그 따마스, 악의 속성은 바뀌지 않는다. 과실이 열린 듯 보이지만, 뿌리는 여전히 따마스다. 인간이기에 그렇다. 밝음도 결국 어둠으로 가고, 삶도 결국 죽음으로 간다. 열정도 무기력으로 가고, 사랑은 미움으로 간다. 해탈이란 없다. 해탈로 보이지만, 마야(幻)일 뿐, 본질이 아닌 이미지일 뿐이다. 해탈은 욕망이고, 욕망은 배신이며, 배신은 보복이고, 보복은 저주이다. 모든 것이 하나인 일원론의 세계다.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왜 이미지로 말하려 하는지, 그 열린 해석의 세계가 어떻게 따마스로, 그 따마스가 어떻게 '인간은 악이다'로 규정되는지, 사진의 세계에서 말하려 한다. -이광수(서문에서 발췌)-
한국전쟁 이후의 삶을 취재, 기록했던 구와바라 시세이 선생의 ‘다시 돌아본 한국’사진전이 지난13일부터 오는18일까지 인사동 ‘갤러리 인덱스’에서 열렸고, 19일부터는 “부산식당” 옆에 새롭게 개관한 ‘갤러리 안터’에서 열린다.
전시된 사진들은 구와바라 시세이 선생이 일본의 화보 잡지인 ‘태양’ 특파원으로 한국에 왔을 당시인 60년대 사진이 주종을 이루었다. 한국을 찍은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청계천 사진을 비롯하여 민주화 운동의 시위현장과 미군기지촌 여성 등 한국 사진가들이 방치한 우리 사회의 이면사를 깊숙이 기록하여, 사십 여년에 걸쳐 십 만장이 넘는 방대한 사진을 남겼다.
제일 눈길을 끄는 사진은 한쪽 전시벽면을 가득 메운 기지촌 주변에서 살아가는 속칭 ‘양공주’로 불리는 미군 위안부 사진이었다. 이 사진들은 본 지 오래되었지만, 보면 볼수록 가슴이 미어지는 치욕의 역사다.
위안부 문제는 고려,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일로, 당시 중국 채홍사를 통해 우리나라 처녀를 수천 명씩 데려갔다고 한다. 기력이 쇠진해져야 고향으로 돌려보낸다고 해서 환향녀라 불렀다는데, 그 말이 욕설로 쓰이는 화냥년으로 바뀐 것이다.
그 이후 2차 대전에 동원된 일본군위안부와 한국전쟁으로 파생된 미군위안부에 이르기 까지 전쟁마다 따라다닌 위안부 문제는 여성 최대의 잔혹사였다. 미군위안부를 양공주 또는 양갈보라 불렀던 소싯적에는 허영에 들떠 바람난 여자들로 알았다. 하이힐에 짙은 화장을 하고 껌을 짝짝 씹는 화류계 여성의 대명사로 각인된 건, 청년 시절 본 신상옥감독의 ‘지옥화’라는 양공주를 소재로 한 영화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전시된 미군기지촌 여성들을 살펴보니, 그 자책에 따른 부끄러움에 고개 들 수 없었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기지촌에 뛰어 들었거나 어쩔 수 없이 팔려 온 순박한 우리들의 누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군위안부에 대한 자료도 찾아보게 되었고, 그 가슴 아픈 실상에 치를 떨었다.
미군위안부는 미군을 상대로 몸을 파는 여성을 말하지만, 일종의 정신대나 다름없었다. 더 귀가 막힌 사실은 1951년 정부에서 한국군 위안소를 직접 운영했다는 기록도 있었다. 이 한국군 위안소는 국군과 유엔군 장병들이 이용하는 사창가였는데, 특수위안대, 제5종 보급품으로 불렀다 한다. 그 당시 드럼통에 위안부를 한명씩 넣고 트럭에 실어 최전선까지 투입했다는 기록에는 할 말을 잃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이들을 달러벌이, 애국자, 민간외교관으로 치켜세워, 62년 한 해 동안 2만 명 이상의 미군위안부가 65,000명의 미군을 상대했다. 65년과 80년 사이는 동두천에만 평균 2,900명의 미군위안부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중요한 건 그들에게 인권이란 찾아 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 당시 미군 천 명당 성병 발병자가 700여명에 달할 정도로 성병이 창궐하자 성 접촉자를 추적해 속칭 밍키하우스라 불리는 낙검자수용소에 완쾌될 때 까지 감금했는데, 약물을 과다 투여해 페니실린 쇼크로 사망한 환자가 속출했다는 것이다.
그 뿐 아니라 미군에게 성폭행 살해된 사건을 법원에서 영장을 기각해 용의자인 병사를 출국시켜 수사를 미궁에 빠트리기도 하고, 인신매매로 들어 온 소녀가 탈출해 파출소에 신고를 해도 경찰이 다시 그 곳으로 데려 주는 등, 인간의 탈을 쓴 짐승들도 득실거렸다.
그러한 문제점을 알면서도 방관했던 것은 바로 돈 때문이었다. 1960년대의 기지촌 성매매 수입이 국민총생산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미군 위안부가 한국 경제에 큰 기여를 했다고 한다. 1970년대에는 청와대 관리가 정기적으로 기지촌에 가서 미군 위안부 여성들을 모아놓고 국익을 위해 봉사함을 격려 했으며, 1973년에는 민관식 문교부 장관이 조국 경제 발전에 기여해 온 소녀들의 충정은 진실로 칭찬할만하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킨 적도 있다는 것이다.
1971년 박정희 정권이 정부 각 부처 차관들을 모아 기지촌 활성화 정책을 만든 것은 주한 미군 철수를 막기 위함이란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몸 파는 걸 수출까지 할 수 있는 나쁜 놈들이다. 이런 나라에서 태어나고, 이런 위정자들 아래 살아왔다는 게 슬프다. 지금도 기지촌 주변에서 할당된 쥬스를 팔기 위해 몸을 파는 위안부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그 역할을 필리핀 등지의 외국인들이 대신 하지만, 아직도 그들은 인권 사각지대에 있다. 속아서 한국에 들어오고, 미군과 동거해 자식까지 낳아도 본국으로 도망쳐 버리는 미군이 많다고 한다.
지구상에 인간이 살아 있는 동안은 어떠한 방법이든 성매매가 끊임없이 이루어 질 것으로 생각된다. 인간의 본능과 자본주의 속성이 만들어 낸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더 이상 인권이 유린되는 일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구와바라 시세이선생의 말처럼 “역사는 반복된다지만, 다큐멘터리 사진에 있어서 그와 같은 비유는 무의미하다. 지나간 버린 하나의 사실과 현장은 두 번 다시 재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전시는 지난 15일 보았지만, 충무로에서 ‘따마스’ 전시를 끝낸 이광수교수를 모시고 다시 보러갔다. 마침 전시장에는 구와바라 시세이선생 내외분과 ‘눈빛’ 이규상 대표, 곽명우씨 등 반가운 분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눈빛출판사’에서 ‘갤러리인덱스’에 이어 개관한 ‘갤러리안터’도 구경할 겸, 꼭 구와바라세세이 선생의 ‘다시 돌아본 한국’을 감상하시라. 시간을 낼 수 없다면 ‘눈빛출판사’에서 발간한 구와바라 시세이의 ‘내가 바라본 격동의 한국’사진집을 구해 보셔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