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사람들이 한 달에 한번 만나는 지난 셋째 수요일은 봄비가 부슬부슬 내려 술 맛 나게 만들었다.

그 전날은 이청운 화백 문병 온 울산의 오세필씨를 만나 한 잔했는데,

사람 핑계에다 날씨 핑계까지 대며 매일같이 술 마실 핑계를 찾는다.




먼저 이명희씨가 출연하는 ‘기타리스트’ 리허설 사진 찍으러 갔으나,

인사동에서 죽치고 있을 오세필씨 생각에 리허설이 끝나자 바로 달려갔다.

서울 온 김에 셋째 수요일의 만남에 함께하려는 마음이 얼마나 고마운지...




인사동 ‘시골밥상’으로 갔더니 무용가 이재은씨 내외와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재은씨 내외는 너무 오랜만의 만남이었다. 한 때는 정선 만지산 작업실까지 온 적이 있었다.

근황을 물었더니, 토종씨앗 지키는 일에 몸 바치고 있단다.

토종 씨앗을 파종한 마을을 찾아다니며 잘 자라도록 춤도 춘다는데, 기회가 되면 한 번 보고 싶어졌다.




좀 있으니 정영신, 공윤희씨가 나타나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손님을 젊은 층으로 바꾼다는 전활철씨의 이야기를 들은 바 있지만, 다들 아는 장소라 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만나는 장소를 어디로 정해야 할지 걱정스러웠다.




생태탕이 맛있는 ‘부산식당’이 좋겠지만, 수요일엔 전시뒤풀이가 많아 앉을 자리가 없다.

그리고 ‘풍류사랑’은 골목 깊숙이 있어 오가며 들리기가 까다로워 들어가는 초입에 있는

‘사동집’과 ‘풍류사랑’ 두 곳을 연계하면 어떨까 생각되었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집약해 보기로 했는데, ‘유목민’에는 윤강욱, 김기영씨 일행이 자리잡고 있었다.




좀 있으니, ‘나무화랑’에서 열린 강행복씨 오프닝에 참석한 분들이 줄줄이 들어왔다.
강행복씨를 비롯하여 김진하, 손기환, 홍성미, 이태호, 김 구, 한상진씨가 나타났고,

나중에는 장경호, 안완규, 김윤기, 박세라씨도 왔다.
그런데 좀처럼 빠지지 않는 김명성씨와 이인섭선생이 보이지 않았다.




그 날의 술상 안주는 화가 손연칠씨였다.

얼마 전 ‘서울문화투데이’에 인터뷰기사가 실렸는데, 문화대상을 수상했다는 것이다.

축배라도 들어야 할 것 같아, 오세필씨가 전화로 왜 나오지 않았냐고 추궁을 했다.

그 또한 나처럼 미투의 언저리를 들락거리지만, 별 탈 없는 요시찰 인물이다.




술이 취하니 피로가 몰려와 먼저 일어났는데. 정영신씨 했던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내일은 오늘 못 가본 강행복씨 전시와 사진전 오프닝 두 군데 가려면 바쁘게 되었다는 걱정에 돌아 온 말이다.

“누구를 위해 사냐? 제발 스스로를 위해 살아라”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주말 인사동 거리에 우리나라 최고의 광대 패거리가 몰려왔다.
이 날 ‘광화문광장’의 19차 촛불집회에서 ‘옳’ 퍼포먼스를 벌인 후,
헌법재판소를 거쳐 갑자기 인사동으로 진로를 바꾼 것이다.

비주류 예술가 유진규 패거리의 인사동 행진으로 모처럼 활기가 넘쳐났다.
지나치는 관광객들과 상인들의 눈길을 한 곳에 끌어 모았으나,
‘옳’ 퍼포먼스 뜻이나 제대로 아는지 모르겠다.
주말에도 불구하고 관광객 수는 평소의 삼분지 일도 안 되더라.

세상에 옳지 못한 곳이 어디 한 두 곳이겠느냐마는,
인사동은 돈으로 섞어 문드러진 동네다.
전통문화나 예술과 낭만 따윈 아무 필요 없고, 오로지 돈이다.

관청은 물론, 이름만 그럴사한 ‘인사전통문화보존회’도 장사꾼들 손아귀에 논다.
하기야 “인사전통문화보존회”란 조직 자체가 인사동 장사꾼들로 모인 단체가 아니던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설쳤으나 중국 관광객이 물러나니, 이제 닭 쫓던 개신세가 된 것이다.

유진규씨가 굳이 인사동을 찾아 ‘옳’퍼포먼스 굿판을 벌인 것도,
인사동의 정체성을 돈에 팔아넘긴 그 작태를 꾸짖기 위해서다.
이제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온 나라가 홍역을 치루고 있다.
이 참에 인사동도 본래의 모습을 돌아보아, 제대로 지켜주기 바란다.

이날 인사동 거리에서 인사동 마당발 노광래씨와 퓨전음악인 윤강욱씨를 만나고,
유진규 일행을 취재하러 따라 다니던 영원한 동지 정영신씨도 만났다.
고향 같은 동내에서 고향 같은 사람들 만나니, 그 날이 봄 날이었다.
진정, 인사동의 봄은 오려나?

사진, 글 / 조문호





















 

 

어제는 ‘서울문화투데이’에서 호출령이 떨어졌다.
조사할게 있으니 인사동으로 나오라는 데, 그것도 공범인 아내 정영신과 함께 오라는 것이다.

70년대 취조 당할 땐, 잡힌 현장 부근의 고려호텔에 끌고 가 물고문하였는데,

지금은 적당한 장소를 스스로 선택하라니, 엄청 민주적이란 생각도 들었다.

 

 

 

 

 

 


인사동 거리는 뜨거웠다.
관광버스에서는 중국인들이 쏟아져 나오고, 사람들은 햇볕에 시달리는 가시적인 것보다,

인사동의 정체성이 사라진 현실이 더 덥게 만들었다.

관청이나 인사동보존회의 사려 깊지 못한 관리에다, 돈만 쫓는 상인들 욕심으로

인사동 본래의 문화와 낭만적 정서가 사라진지 오래기 때문이다.

잡화점에 밀려 난 화랑들은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취조 당하기 전에, 그 날 끝나는 ‘아라아트’에서 열리는 황세준선생의 개인전부터 들렸다.

에리베이터에서 내리니, 그 넓은 전시장을 작가 황세준선생 한 분이 지키고 있었다.

작품을 둘러본 후 “좀 팔렸냐?”고 여쭈었더니, 물어보는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다.

스무 차례나 개인전을 연 베테랑작가의 현실이 비참했다.

 

 

 

 

 

 


조영남 대작사건과 이우환 위작사건이 연이어 터진 요즘은 미술거래가 뚝 끊겼다고 한다.
이러다가는 굶어 죽기 십상이라, 모든 예술가들은 국고지원이 따르는 농사나 지어야 할 것 같다.

목구멍에 풀칠하는 게 먼저고 예술은 그 다음이니, 전 국민이 미개인으로 살아야 할 게다.

정치권에서는 이러한 심각한 현실은 아는지 모르는지, 오로지 정쟁에만 눈이 뒤집혀 있다.

 

 

 

 

 


취조시간이 되어 ‘허리우드’로 내려갔다.
경찰서장급인 이은영 기자가 임동현 기자를 대동하고 나왔다.
말주변이 없는 나는 왠 만 한건 모르쇠로 일관했지만, 아내는 조근 조근 말을 잘했다.

묻지도 않는 말까지 실토했다.

난 최민식사진상 문제를 폭로하고, 춘천기획전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거짓 진술은 하지 않았으니, 좋은 판결이 날 것으로 기대한다.

 

 

 

 

 

 

 

 

 

 

술집 “유목민”에서 빨리 오라는 호출이 빗발쳤다.
부리나케 달려갔더니, 노동자시인 김신용씨가 모처럼 인사동 나들이를 했더라.

일찍부터 ‘아라아트’ 김명성씨와 대작해 술이 얼큰하게 취해 있었다.

‘인디프레스’에서 열리는 삼인전 보러 나왔다며 주인공 장경호화백도 불러냈다.

그런데, 생각 외로 김명성 시인의 얼굴이 밝아보였다.

모두들 인사동 마지막 등불이 꺼졌다고 한탄했으나, 모든 걸 내려놓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한 듯 보였다.

그 와중에도 돌아 갈 차비로 신사임당 한 장씩을 나누어 주었다.

 

 

 

 

 



 

반가운 벗들과 맘 편하게 마시니 술이 땡겼다. 모두 주량 초과다.
나는 소주를 두병이나 마셨고, 장경호는 막걸리를 두병 초과했고,

김신용씨와 김명성씨가 마신 맥주는 병을 헤아릴 수가 없었다.
지나치던 퓨전피아니스트 윤강욱씨가 신세진 게 많았던지,

장경호씨를 대접하지 못해 안달이었지만, 더 마실 상황은 아니었다.

 

 

 

 

 

 

 

 

'다우문화' 김각환 대표도 김명성씨로부터 불려 나왔다.

인사 나눈 김신용씨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장경호씨에게 돈 봉투를 돌려주었다.

지난 번 소래포구에서 장경호씨가 찔러 준 돈 봉투를 그대로 가지고 나왔단다.

아무리 어려워도 벼랑에 선 장경호씨의 돈은 쓸 수 없었던가보다. 정말 가슴 아픈 장면이다.

 

 

 

 

 

 

 



그런데, 술판을 마무리 하는 퍼포먼스가 좀 썰렁하지만 재밋다.
김명성씨가 뒤늦게 나온 김각환씨를 장경호씨에게 소개하자, 김각환씨는 장화백을 잘 안다고 말했다.

그러자 장경호의 시비성 답이 김각환씨 염장을 질런 것이다.
“당신이 날 어떻게 아는 데요?” 그 뒤부터 날 선 말이 몇 마디 오가다 모두들 뿔뿔이 헤어졌다.

그냥 헤어지면 재미 없잖아...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4일 화가 장경호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장안동서 신학철선생과 한 잔하고 무다헌에 넘어 왔으니 빨리 나오소~”

이미 술에 취해 목소리는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어제 마신 술로 주독도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내일도 마실일도 걱정인데, 가만 두질 않았다.

소 도살장에 끌려가듯 인사동에 나갔더니, 일찍부터 술집이 부산했다.

 

신학철선생은 반가워하셨으나, 장경호씨는 김정대씨와 입씨름하느라 아는 척도 안 했다.

금방 한 판 할 것 같은 기세였으나, 술 취하면 부르는 그의 행복한 노래쯤으로 생각하고 앉았다.

그다음엔 나한데 시비를 건다. “어찌 알고 왔어요?” 자기가 전화해놓고도 매사 이런 식이다.

술 취하면 부르는 그의 시비성 노래는 익히 알지만,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좌불안석이다.

나중엔 나죽으면 형이 가마니때기라도 한 장 덮어주소라기에 가마니는 구하기 힘들고

카시미롱 이불은 덮어 줄게라고 말했다.

 

신학철선생께서 처음보는 류제홍박사를 소개했다.

모내기그림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꽤 오랜 교분 같은데, 너무 젊어 보였다.

내가 여자라면, 한 번 꼬셔보고 싶을 정도로 핸섬했다.

명함을 주고 받았는데, 너무 다양하게 바쁜 사람이더라.

사회경제를 통솔한다는 뜻도 가진 ‘planner’라는 글자아래 공공공간연구소 공간력소장이란 직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바닥에 깨알같이 적힌 글을 보니 정신이 없었다.

문화학박사, 정책컨설턴트, 전통시장전략가, 도시마을계획가, 청년도시메이커, 세계대회기획사라 적혔는데,

사짜는 아닌 것 같았다. 점잖았고, 이야기도 진솔했다.

오죽하면 술 취한 장경호씨의 거친 말투가 류박사와 연결되면 곧 바로 공손해 지겠는가?

    















옆 자리에는 요즘 몸이 불편해 잘 나오지 않는 주임마담 강고운시인도 보였다.

언제 왔는지, ‘관객모독을 연출한 기국서씨도 있었다. 그도 한 가닥 하는 주당이다.

말은 별 없지만, 거슬리면 여지없다. 한 때 서정춘시인이 그의 헤딩 한 방에 날아가는 것도 보았고,

도예가 한봉림씨를 향해 늑대처럼 튀어 올라 얼굴을 활키는 것도 봤다.


작은 거인 기국서씨가 반가웠지만, 일행이 있어 인사만 나누었다.

뒤늦게는 미술평론하는 김준기씨가 등장해, 술자리 대화가 갈리기도 했다.

장경호씨의 십팔번 뒷동산 아지랑이~”를 뒤로하며 먼저 도망쳤다.
















돌아오다 습관적으로 유목민에 들렸다. 안국역 옆에 있으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주인장 전활철씨와 박혜영씨는 손님받느라 정신없고,

인사동에서 풍요로움이란 회사를 운영하는 조원희씨가 같은 일가라며 엄청 반가워했다.

김기영씨와 함께 앉았지만, 술을 더 마실 수 없었다.

퓨전피아니스트 윤강욱씨와 노래하는 신현수씨도 있었고, 나오는 길에 노광래씨를 만나기도 했으나

이로서 모두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인사동 술 방랑은 끝났다.

 

씰데없는 술주정 듣느라 고생했슴니더.”

 

사진,/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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