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투명한 시간들

The Translucid Moment

2023.6.7-6.30 / 연우갤러리

Rain

비(Rain), 좋아하는 것을 꼽으라면 가장 먼저 생각난다. 비 냄새를 맡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비가 내리는 세상은 평소보다 아름답게 보인다. 자연은 더 생생해지고, 도시는 한 톤 가라앉은 모습으로 얌전해진다. 우산을 쓴 이들의 종종거리는 발걸음은 작은 새들의 몸짓 같다.

 

비 오는 거리에 서면 다른 세상이 우연히 열린다. 불균일하게 떨어지는 빗소리, 색을 내려놓은 희색 빛 하늘, 골목 사이사이 숨어 있는 빗방울의 모습들을 바라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창이 조용히 열리고 다른 세계를 비춰준다.

 

언제부터인가 비가 오면 밖으로 나가 카메라를 들고 풍경을 담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다. 나만이 가지고 있던, 숨겨놓았던 장면들을 이번 전시를 통해 공유하려고 한다. 보는 이들은 어떤 감정을 느낄지 궁금하다. 경계와 경계 사이 존재하는, 비 오는 풍경들에 숨겨진 소중한 장면들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오현경

 

Votre

카메라를 들고 혼자 여행을 다니는 것은 한때 가장 좋아하던 일이었다. 낯선 곳에 가서 익숙하지 않은 공기를 마시면서 새로운 것들을 지켜보는 것.

 

처음에는 그곳의 공기가, 다음에는 그곳의 소리가,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곳의 냄새가 익숙해진다.

 

그 시간 안에서 그 공간을 다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만, 카메라에 담기는 것은 한순간의 장면뿐이다. 그러나 이미지로 옮겨진 기억들은 하나의 프레음으로 남아 과거와 미래를 잊고 현재로 남는다.

 

나는 ‘당신들의(Votre)’ 순간을 훔쳐 내 기억으로 만든다.

 

LENA

 




지난 15일 정영신씨를 통해 사진가 오현경씨로 부터 오찬 초대를 받았다.
지난 번에 전시한 ‘그림자를 지우는 비’ 사진전에 참석해 준 인사라는데, 살다보니 이런 일도 다 있네.

십 수년을 사진 찍어 올리며 전시리뷰를 써 왔으나 이런 인사받기는 처음이었다.

당시 카메라에 이상이 생겨 사진도 찍지 못하고 몇 줄의 전시소식만 올린터라, 송구스러웠다.






인사동에서 오현경씨를 만나 ‘사동집’에 들렸더니, 주인 송점순씨가 죽은 사람 만난 것처럼 반가워했다.

전골에다 귤전까지 잔뜩 시켰는데, 써비스 음식까지 갖다주어 그 날 저녁식사는 생략해도 될 것 같았다.

낮 술은 가급적 피하지만, 맹숭맹숭하게 밥만 먹을 수 없어 막걸리도 한 병 시켰다.






오현경씨는 지나치다 더러 만났지만, 식사를 함께하기는 처음이었다.

웃는 모습이 너무 매혹적인데, 인사성까지 밝은 줄은 미처 몰랐다.

마주 앉아 얼굴도 못 들고, 정영신씨와 나누는 이야기를 엿들으며 음식만 허겁지겁 먹었다.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비오는 풍경을 열심히 찍었다는 고백에, 그 사진들이 더 가슴에 와 닿았다.

전시할 생각은 없었으나, 주변에서 부추기는데다 초대전 기회가 생겨 했다는 사정 이야기도 했다.






즐겁게 식사 한 후,  인사동 거리를 스냅하며 걷다보니 너무 많이 가버렸다.
남인사마당에서 헤어져 되돌아왔는데, '툇마루'에서 저녁 모임이 있어 집에 갈 수도 없었다.





남는 시간은 '정독도서관'에서 정선 가느라 못한 일을 하려고 노트북까지 챙겨 왔으나,

막걸리 한 병에 곤죽이 되어 만사가 귀찮아졌다. 이젠 아무래도 술과의 인연도 끝내야 할 것 같았다.





드러누워 쉬려고 '정독도서관' 대신 '백상사우나'로 간 것이다.

모처럼 뜨거운 물에 들어 앉아 자성의 시간을 가졌는데, 오현경씨의 따뜻한 배려가 일깨운 바가 컸다.

나이를 생각하지 않고 너무 사방 팔방 쫓아 다니며 나부댄 것 같았다.





내가 좋아서 했던 일이지만, 이제 전시장 찾아다니며 사진 찍고 글 올리는 짓은 그만두어야 겠다.

때로는 하기 싫은 일을 무슨 사명감처럼 일했는데, 정작 당사자들은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전시를 하면 보도 자료를 만들어 언론사에 돌리지만, 요즘은 보도 자료도 만들지 않았다.

자료가 없어 전시된 작품을 찍어야 했고, 유리에 반사되면 도록을 사서 스캔 받아 올리기도 했다.

아마 전시 홍보를 하지 않겠다는 심사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돈 들여 전시는 왜 하는지 모르겠다.






때로는 언론사에 전시리뷰를 투고해 신문에 게재하는 열성까지 보였으나 다들 묵묵부답이었다.

신문기자가 올리는 기사야 월급 받고 하는 일이라 그냥 지나칠지 모르나, 난  다르지 않은가?

작가를 배려해 나쁜 면은 감추고 좋은 면만 내 세우는 쪽팔리는 리뷰라 때로는 얼굴이 간지러울 때도 많았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 갚는다는 말이 있듯이 고맙다는 댓글 한 줄이 그렇게 어려울까?

자기가 잘 나거나 전시가 좋아 올린다고 생각하면 할 말이 없지만...





아무래도 물러 날 때가 훨씬 지난 꼰대가 아직 꿈을 깨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왜 쓸데없는 일에 개고생하며 열 받는지, 이제 생각하니 한심한 생각이 든다.





앞으로는 작가의 초대가 없는 전시장 개막식은 일체 가지 않기로 했다.
젊은 사람 모임에 늙은이가 끼이면 불편할 수 있다는 생각을 왜 못했을까?





그리고 평소 신세졌거나 가까운 분의 부탁이면 모르겠으나, 전시장 사진을 찍거나 글 쓰는 일도 없을 것이다.

남을 배려하기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철저한 개인주의자가 되어야겠다.






이제 죽을 때가 되었는지, 사람 좋아하던 내가 사람이 점점 무서워진다.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르는 낯선 사람이 더 좋다.



사진, 글 / 조문호












사진가 오현경씨의 ‘그림자를 지우는 비’가 지난 3월 21일부터 인사동 ‘마루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개막식이 열린 21일 오후6시 무렵 들린 전시장에는 사진가 오현경씨를 비롯하여

이규상, 박재호, 석재현, 남 준, 권 홍, 정영신, 하춘근씨 등 많은 사진가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박순경사진


처음 본 오현경씨의 사진을 꼼꼼히 살펴보니, 꿈결같은 시상이 떠올랐다.

아마 작가가 사진을 찍었을 때 느꼈던 시어로, 작가의 마음속에 도사린 욕구와 감정을 사물을 통해 풀어낸 것 같았다.

어쩌면 제목처럼 그림자에 작가의 뜨거운 욕구를 감추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못이 박혀 깨진 유리의 균열에는 절망적인 분노가 담겨있고,

가로등에 비치는 빗줄기에는 우울한 작가의 고뇌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물위에 아롱진 잔영으로 스스로를 위안하기도 했다.

때로는 사군자 같이 드리워진 나뭇잎으로 또 다른 감성의 서정적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작가가 보여주는 이미지는 직설적으로 풀어낸 기록사진을 넘어 심상적 시로 승화시키고 있었다.

가끔 독해를 요구하는 이해되지 않는 이미지도 있었지만, 대부분 보는이로 하여금 울림을 주었다.





오현경씨의 작업노트에 적힌 부분이다.

"복잡한 현실과 고민들을 그림자 속으로 집어넣었고, 감추고 싶던 아픔 혹은 현실적 처지와 어려움을 대변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리고 여자로서 감당해야만 하는 감정의 원칙과 형식의 정렬들... 내가 사진 속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바로 '자유'였다.

움직이는대로 변하고 형성되는 그림자... 나만의 사진 놀이이자 자유로운 외출이다."





오현경의 ‘그림자를 지우는 비’는 작가의 감정을 그림자에 숨기고 싶은 자기성찰이며 자화상이다.





이 전시는 '마루갤러리'[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35-4 마루 / 신관3층 C관]에서 3월 29일까지 열린다.



글 / 조문호





그날 찍은 기념 사진은 카메라 조작 실수로 망쳐놓았는데, 뒤늦게 포토샵에서 몇장 구제했다.
복구 못한 작가의 인물사진 및 작품사진 몇 점은 페북에서 스크랩했다











28일까지 갤러리브레송에서 열려...    




['오마이뉴스'에서 스크랩]

노회찬의원 장례식장에서 침통한 표정의 심상정의원 옆에 유시민씨가 오열하고 있다



이 무슨 날벼락인가?

전시리뷰를 작성하려 컴퓨터를 열어보니, 노회찬의원 자살 소식이 떴다.

눈을 의심했으나,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사실이었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우리나라에 그만한 정치인이 과연 있었더냐?

 

지난 일요일엔 여야 원내대표 다섯 명을 싸잡아 욕하기도 했다.

미국을 방문한 원내대표들이 워싱턴DC 의사당 앞에서

연예인들처럼 뜀박질하는 사진을 보았기 때문이다.

연출시킨 사진기자 탓으로 여기며, 잘 다녀오기를 바랬는데,

어찌 이런 일이 생겼더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온 종일 밖에 나가 공원을 싸돌아다녔으나

도저히 슬픔에서 헤어날 수가 없었다.

어찌 좋은 사람은 먼저 데려가고, 나쁜 놈들이 잘 살게 할 수 있는가?

세상을 원망하며 분노했으나, 아무 소용없었다.

 

난 노무현 전대통령이나 노회찬씨를 정치인으로 보지 않고 지도자로 본다.

정치를하는 장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하기에,

인간적으로 가슴이 따뜻한 분들은 그러질 못한다.

 

이제 그 분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할 때.

이 기회에 정치자금법의 대수술과 함께 정치개혁을 이루어 내야 한.

슬픔은 뒤로하고, 우리모두 냉정을 되찾자.




당신이 추구해온 가치가 꼭 실현되길 바라며,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산사견록'에 참여한 사진가 / 좌로부터 정남준, 문진우, 김동진씨



부산 사()견록전이 지난 20일 충무로 갤러리브레송에서 개막되었다.

부산의 중견 사진가 김동준, 문진우, 정남준씨 등  세 사람이 각기 다른 생각의 시선으로 바라 본 부산이다.

 



김동진의 '해운대'


 

머지않아 사라지게 될 범5동 매축지의 골목풍경을 찍은 문진우의 매축지

마치 죽음의 그림자처럼 짙은 어둠이 깔려 있다.

정남준의 영도 수리조선소조선소 노동자들의 삶을 통해 노동의 의미을 일깨운다.

삶의 본질을 비틀지 않고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김동진의 해운대는 소외, 외면, 박탈, 욕망, 갈등 등 사회의 비정상적인 모습을 자기만의 목소리로 기록했다.

각기 다른 삼색의 부산사견록갤러리 브레송’ 3-3시리즈 두 번째 기획전이다.



문진우의 매축지



부산사견록이란 제목 차체가 부산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추진한 '부산참견록'을 떠올리게 한다.

'부산참견록'은 매년 중견사진가 한 명을 선정해 부산의 역사성과 지역성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기록하는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개인적 친분에 의한 작가선정으로 결과가 들죽 날 죽 할 수 밖에 없었다.

거기서 태어나고 자란 부산의 사진가가 철저히 배제되어 왔다는 사실은 지역작가들의 소외감을 살 수도 있지만,

자칫 뿌리 없는 사진일 수도 있다.



정남준의 노동자



때로는 외지인의 낯선 시선이 필요할지 모르나, 바닥에 뿌리내린 자의 익숙한 눈빛에 따르지 못한다.

문진우의 매축지의 소시민들과 해변에서 잡아 낸 김동진의 부조리한 장면,

정남준이 찍은 조선소 노동자 정면사진은 또 다른 부산의 모습이다.

각기 사진들이 갖는 의미나 우열은 풀이하는 바에 따라 다를 수 있겠으나

일단은 부산참견록을 의식한 전시라는 느낌도 든다.

전시 기획자는 사견록의 자가 생각 사()자라 했다.

생각하고 보고 기록한다는 의미로 세 사람의 작품 성격을 한 마디로 나타내고 있다.

    


김동진의 '해운대'



문진우의 사진은 부산의 아주 오래된 마을, 아직도 그 옛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매축지라는 장소를 기록한 것이다. 문진우가 기록한 그 장소성은 사람이 이 땅에서 추방되어야 하는 슬픔을 기록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그림자 안에 있거나 온전치 않은 형태로 나타난다. 사진가의 슬픔이 배어 있으니 슬픔으로 읽어내지 않을 도리가 없지만 그 읽기는 과학적 읽기가 아닌 문학적 읽기다.


정남준은 노동자의 삶을 담았다. 인간은 일 하는 기계가 아닌 살아 있는 사람임을 말하는 전형적인 사회 다큐멘터리 작품이다. 노동이 정당하게 인정되지 않은 이 세상에서 사는 노동자의 모습을 어둡게 그리지 않은 것은 역설적이거나 그들이 세계의 주체임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 것이다.


김동진의 사진은 역사 인식이 강한 사진이다. 세상은 일반적인 모습으로 보이는 게 아니고 개별적으로 보인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보편이란 과학성을 숭모하다 보니 사람이 소외되고 세계가 비정상이 되어 감을 말하고자 한다. 그래서 다른 이들은 세계를 그렇게 보지만 나는 세계를 이렇게 본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그의 사진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진의 문법으로부터 벗어나 있음은 바로 그런 그의 역사 인식 때문이다.”사진비평가 이광수교수가 서문에 적고 있다.




문진우의 매축지



지난 20일 오후630갤러리브레송에서 열린 개막식에는 김동진, 문진우, 정남준씨 등

부산에서 상경한 사진가들을 비롯하여 많은 서울 사진가들이 함께 어울린 사진축제의 자리였다.

김남진 관장을 비롯하여 사진가 김문호, 안해룡, Area Park, 강제욱, 고정남, 권 홍, 임종선, 노은향, 오현경

이동준, 권병준, 신락선, 이수철, 박춘화, 김 헌, 남 준, 최인기, 곽명우, 곽윤섭, 이규철, 석재현씨 등이

충무로 조방낙지로 알려진 해물탕집에서 마셨고, 이차는 해나루’에서 보냈.




정남준의 영도 수리조선소



이 전시는 28일까지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02-2269-2613)에서 열린다.

 

 

사진, / 조문호

 

























































































일하다 늦잠에 빠진 지난 6, 강민 선생님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오랜만에 얼굴 한 번 보자는 것이었다.

마침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리는 박병문씨 사진전도 있어 서둘렀다.

연휴를 맞은 인사동 거리는 봄비가 보슬보슬 내렸으나 사람들은 분주했다.

울긋불긋한 우산 행렬이 인사동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거리를 지나치다, 페친이라는 오현경씨의 반가운 인사도 받았다.

요즘 전시장이나 거리에서 페친이라며 반기는 분들을 자주 만난다.

늙은 주제에 오현경씨 같은 미인을 친구로 두고 있으니, 늦복이 터진 것이다.


꼽꼽하게 비가 내려 술 땡기는 날씨라, 술 한 잔 같이 하고 싶어도 쑥스러워 말 못했다.

아마 술을 마셨더라면, 그녀의 소매 자락을 부여잡았을 텐데 말이다.

난 어떻게, 술 마셨을 때와 술 마시지 않았을 때가 이렇게 180도로 다른지 모르겠다.

 

혼자 쓴 웃음 지어며, 강민 선생님과의 약소장소인 인사동 사람들에 갔더니,

정승재씨도 와 있었다술집 문이 열리지 않아 커피로 시간 죽이고 계셨다.

뒤늦게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겼으나, 그때까지 문은 잠겨있었다.

주인장 전활철씨에게 전화해 자리에 앉았더니, 노광래씨도 왔고 이수호선생도 오셨다.

 

그런데, 강 민선생께서는 막걸리를 따뜻하게 데워 드신다.

난 따뜻한 술은 빨리 취해 좋아하진 않지만, 전시 뒤풀이에 가면 또 마실일이 있었다.

딱 두 잔만 마셨는데도, 얼큰하게 취기가 올랐다.


때 마침 스피커에서 박인수의 봄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절규하듯 부르는 노래가 마음을 슬슬 건드려 나를 슬프게 했다.

나를 울려주는 봄비가 아니라, 나를 죽여주는 봄비로 들렸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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