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살고 있는 쪽방이 지옥의 전형이 아닌가 싶다.

 

햇볕에 달구어진 옥상의 열기를 받아, 4층은 찜질방을 방불케 한다.

더운 바람만 돌리는 선풍기 소리마저 짜증스럽다.

 

호흡기 질환에 시달리는 나로서는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다.

어지럽고 속도 울렁거려, 차라리 숨을 거두는 것이 나을 상 싶다.

폭염에 시달리는 현장 노동자를 생각하며 위안해야 했다.

 

엊저녁엔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어, '쪽방상담소' 에서 얻어 온 '밤 더위 대피소' 이용권을 활용했다.

 모처럼 남대문사우나에서 편하게 잘 수 있었는데, 생각 외로 활용하는 주민이 적었다.

 

새벽 일찍 나와, 서울역 고가로인 서울로로 들어서니, 별천지에 온 듯하다.

 

갖가지 식물 사이에 아름다운 연꽃이 피었는데, 신기하게 생긴 가시연 잎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서울로를 산책하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호강도 누렸다.

 

그 아래 서울역광장에는 아침부터 노인들이 나와 있었다.

 

노숙인 틈에 끼어 잡담을 나누고 있었는데, 교회에서 동원한 신자 모임인 것 같았다.

 

건너편 동자동에는 잠을 설친 주민들이 바람 통하는 곳곳에 앉아 있었는데,

문 열지 않은 '대우정' 앞까지 터 잡고 있었다.

 

다들 지난밤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 지긋지긋한 더위가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방에 올라와 시원한 생수 한 병으로 식사를 대신했다.

동행식당에서 이른 점심을 얻어 먹으려면, 세 시간은 방에서 지내야 했다.

 

컴퓨터를 열어보니, 정선에서 투병 중이던 소설가 강기희가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로 페북이 도배되어 있었다.

 

어제 새벽에 부고를 받아, 그의 흔적을 모아 올리며 추모했지만, 고통스러운 현실보다 나을 것 같았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아무래도 내가 입주할 때부터 함께 지낸 정든 물건이지만, 선풍기를 바꾸어야 할 것 같았다.

덜덜거리는 소리가 거슬려 온기창고로 갔더니, 일찍부터 주민들로 붐볐다.

 

한 달에 10만원 상당의 물품을 네 차례에 나누어 가져 갈 수 있다기에 선풍기를 가져온 것이다.

줄 서서 차례를 기다리지 않고, 원하는 물품을 가져갈 수 있어 다들 만족한 표정이었다.

 

마침 온기창고를 찾은 쿠키뉴스김은빈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해 왔다.

몇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 후, 매장에 나와 있던 유호연소장을 연결해 주었다.

 

유소장은 쪽방 무더위 해소를 위해 복도에 에어콘을 설치한다지만, 쪽방 특성상 실효를 거둘 수 없을 것 같다.

하루속히 공공개발이 추진되어, 입주할 날을 앞당기는 일 뿐이다.

 

다들 얼마나 살지 모르지만, 사는 동안 열사병으로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진, / 조문호

 

 

빈민들의 자존감을 짓밟아 온, 줄 세우기의 오랜 관행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줄 세우지 않고 나누어 주는 동행스토어 ‘온기창고’가 문을 연 것이다.

 

지난 해 12월 중순 무렵, 줄 세우기 폐지를 요구한 대안으로 기존 남영동 ‘푸드마켓' 형식으로

물건을 배분할 것을 쪽방상담소 유호연 소장에게 제안한 적이 있었는데,

유소장은 서울시의 협력을 얻어 그보다 훨씬 유익하고 편리한 동행스토어 ‘온기창고’를 만들었다.

 

온기 창고 개소식이 열린 날에는 이른 시간부터 매장 주변으로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개소식에 오세훈 서울시장이 참석한다는 소문이 돌아, 공공주택사업을 환영하는

쪽방촌 주민들과 민간개발을 주장하는 건물주 측 사람들이 대치하기 시작했다.

 

건물주 측에서는 ‘남의 가게 장사 안 되게 왜 매장을 만드냐?’고 삿대질을 하며,

온기 창고 개장과 상관없는 쪽방 주민에게 시비를 걸어왔다.

 

쪽방 건물주들은 긴 세월 비싼 방세로 폭리를 취해왔다.

현금으로만 선 월세를 받아 탈세까지 했는데, 방세가 한 달만 밀려도 쫓아내는 돈 밖에 모르는 인간들이다.

 

“국세청은 당장 쪽방 건물주들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하라”

 

벼룩에 간을 빼 먹는 이런 몰염치한 악덕 건물주들 때문에

열심히 노력하여 돈을 번, 선의의 부자들마저 도매금으로 나쁜 사람 취급 받는다.

 

며칠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24만원인 월세를  30만원으로 계약서를 써 줄테니, 월세는 28만원을 내라고 했다.

기초생활수급비 중 주거비는 월세 계약서 금액 따라 책정되는 것을 악용해 방세 올리려는 속셈이었다.

 

말도 되지 않는 소리라며 거절했으나, 더러는 차액이 탐나 승낙하는 사람이 없다고 어찌 장담하겠는가?

살아 온 7년 동안 한 번도 건물 주인을 본 적이 없고, 관리인을 통해서만 방세를 주었다.

하수인에 불과한 건물 관리인은 쪽방 주민이라 더  이상 거론할 필요가 없었다.

이건 분명한 불법이며, 승낙한 빈민까지 범법자로 만드는 범죄행위다.

 

그 뒤 남영동사무소 주거복지 담당자를 찾아갔다.

두 달 전 주거 조사원에게 월세가 만원 인상되었다고 했더니, 변경된 계약서를 팩스로 보내라고 했다.

계약서를 다시 작성하지 않아 본래의 계약서에 금액만 가필하였기에, 다시 정상적인 계약서로 교체하러 간 것이다.

 

두 달 전에 만원을 올려놓고 또 인상하기 위해 편법을 쓰는 건물주를 고발하며

주거비 책정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했는데, 담당자는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란 말을 했다.

 

불법을 그냥 넘길 수 없는 난처한 일이기도 하지만, 공무원이 법 개정에 나설 입장도 아닐 것이다.

기초생활수급비 중 주거비는 계약서 금액 따라 지급할 것이 아니라, 일률적인 금액으로 통일해야 한다.

 

민영 개발을 강요하는 건물주들의 집단 패악질에 열 받아 촛점이 빗나갔는데,

다시 '온기창고' 개장 소식을 전해야 겠다.

 

‘온기창고’ 입구에는 쪽방상담소 전익형 실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현판식 준비하느라 바빴다.

 

온기창고 매장에 들어가 보니, '세븐일레븐'에서 후원 받은 갖가지 생필품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매장 안쪽에는 개소식 준비로 서울시 관계자를 비롯한 많은 분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동행스토어 ‘온기창고’는 창고형 매장으로 쪽방 주민을 위한 수요맞춤형 물품배분 시스템이었다.

 대형 냉장, 냉동고,  전자식 금전등록기 등의 기자재를 준비해두고,

편의점처럼 물품을 편리하게 가져갈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매장에 붙어 있는 이용약관을 살펴보니, 개인이 배정받은 적립 포인트 내에서 물품을 자율적으로 골라가는 방식이었다.

 

이용 대상은 ‘서울역쪽방상담소’ 등록 회원에 한해서다.  

회원에게 적립금 카드를 발부하여,  월 10만점의 적립금만큼 필요한 물품을 가져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지금까지는 공공기관이나 민간기업, 또는 자선단체로부터 후원물품을 전달 받았으나,

대개 물품 수량이 주민 숫자보다 모자라 후원품이 들어올 때마다 줄 세워 선착순으로 배부했다.

 

물품을 배분하는 날은 주민들이 일찍부터 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했는데,

춥고 더운 날씨에 따른 고통은 차지하고라도, 주민들의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혔다.

 

그리고 이미 있는 물품을 이중으로 받는 경우도 많았지만,

비좁은 쪽방에 필요 없는 물건들이 널려 어지럽기 그지 없었다.

또한 거동이 불편한 환자나 노약자들이 배분 과정에서 항상 불이익을 받아왔다.

 

업체에서 보내주는 후원품 외에도 사업 취지에 공감한 ‘세븐일레븐’에서,

원활한 운영을 위해 향후 3년간 월 천만 원 상당의 물품을 후원하기로 했다.

 

여름철마다 쪽방촌 주민들의 여름 나기 물품을 후원해 온 ‘세븐일레븐’의

정기적인 후원을 약속 받으면서, 안정적인 운영의 기반을 확보한 것이다.

 

'세븐일레븐'은 물품 후원 외에도 주민들을 대상으로 저렴한

테이크 아웃 커피전문점인 '세븐카페' 운영을 지원하기로 했다.

세븐카페 운영 수익금은 온기창고 운영에 재투자할 계획이다.

 

그리고 ‘서울교통공사’에서 20,210,000원의 후원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여태 임의로 지원한 물품들은 수량도 부족했지만, 심지어 유효기간이 임박한 식료품도 많았다.

이젠, 후원물품을 보낼 것이 아니라 가급적 ‘서울교통공사’ 처럼, 현금으로 후원하라.

‘온기창고’에서 주민들이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여 비치할 수 있도록 협조해 주길 바란다.

 

그리고 주민들이 가장 절실한 물품이지만, 여태 한 번도 준 적이 없는 상품도 있다.

예를 들어 일회용 부탄가스나 일회용 믹스 커피, 화장지 등인데,

‘온기창고’ 메니저는 주민들이 무엇이 필요한지도 항상 점검하길 바란다.

 

문을 연 ‘온기창고’는 상시 문 열 것을 목표로 하지만, 당분간 주 3회 이상 운영된다.

전담인력(매니저) 1명과 참여주민 2명(공공일자리)이 함께 꾸려갈 예정이다.

 

지난 20일 개소식을 가진 동행스토어 ‘온기창고’의 본격적인 운영은 8월 1일부터다.

 

이날 개소식에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최경호 '세븐일레븐' 대표,

이재훈 '온누리복지재단' 이사장, 강석주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장, 유만희 부위원장,

그리고 쪽방 주민과 기자 등 많은 사람이 참석하여 발 디딜 틈도 없었다.

 

개소식에서 오세훈 서울시장과 최경호 세븐일레븐 대표이사가 업무협약서에 사인한 뒤,

서울시와 ‘세븐일레븐’이 동행 스토어 ‘온기창고’ 운영을 위한 업무 협약식도 가졌다.

 

오세훈 시장은 인사말에서 “자신 있게 말씀드리지만 동행식당이나 온기창고를 주민분들께서

이렇게 좋아하시는데, 다시 원상 복귀시킬 일은 거의 없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이런 변화를 원하시는

좋은 아이디어를 전달해주시면 제가 늘 신경 쓰면서 챙기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날 오세훈 서울시장이 동자동의 공공개발을 공개적으로 약속한 것이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가슴이 벅차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고개 숙이는 오세훈 시장의 자세에서 그의 진심이 읽혀졌기 때문이다.

공공개발만 성사된다면, 더 이상 동자동에 머물 필요가 없다.

 

‘버려진 사람들의 초상’ 작업을 끝낸 후, 당사자들에게 사진집을 전해주는 대로

시골 농장에 빌붙어 죽을 자리 마련할 일만 남았다.

 

그 날 '온기창고' 개소식에 참석한 인사들이 기념식수에 소원 카드를 달기도 했다.

 

그리고 서울시는 오는 9월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 ‘온기창고’ 2호점을 개소할 예정이라며,

두 곳을 1년가량 운영해 본 후, 나머지 3개 지역으로 확대할 방침이라고 했다.

 

한편, 오세훈 서울시장은 동행스토어 ‘온기창고’ 개소식을 끝낸 후,

거동이 불편한 주민을 위해 생필품을 대신 구매하여 쪽방을 방문했다.

 

 윤용주씨 방을 찾아 생필품을 전달하며. ‘약자와의 동행’이란 붓글씨를 받기도 했다.

 

서울특별시 오세훈 시장과 '서울역쪽방상담소' 유호연 소장을 비롯한,

‘온기창고’ 마련에 힘쓴 직원들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린다.

 


이제 더위에 숨이 턱턱 막히는 쪽방의 주거 문제만 남았다.

서둘러 동자동 공공개발을 착수해 주기 부탁드립니다.

 

사진, 글 / 조문호

 

 

빈민 위에 군림해 쪽방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서울역쪽방상담소가 서서히 변하고 있다.

오래동안 고질적인 줄 세우기 관행과 고압적인 불친절에 빈민들의 원성이 높았다.

그래서 쪽방상담소 업무를 동사무소에 통합하라는 주장을 해 온 것이다.

 

'서울역쪽방상담소'

 서울시립 '서울역쪽방상담소'2018년부터 '온누리 복지재단'에 위탁되어 운영되었다.

쪽방에 거주하는 취약계층의 생활 안정을 돕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많은 일을 해 왔으나,

그곳에서 하는 일의 하나가 기업체나 자선단체에서 보내 온 지원품을 나누어 주는 일이었다.

 

카드 발급 받으러 줄 선 모습, 서류작성에 의해 지체되었으나, 마지막 줄세우기 사진이길 바란다.

문제는 지원품을 나누어 줄 시간을 정하면, 물품을 받기위해 긴 줄을 서야 했다.

여름에는 무더운 땡볕에서 땀을 흘려야 했고, 겨울에는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기다렸다.

다들 한 두 시간 고생하는 것 보다, 굴욕적인 모욕감을 더 못 견뎌했다.

물건을 사기위해 줄을 서는 것과 물건을 얻기 위해 줄을 서는 차이란 하늘과 땅 사이다.

 

 줄 세우는 관행의 역사는 일제강점기에 국민들을 길들이기 위해 시작된 짓이다.

빈민들에게 선행을 베푸는 자랑질의 오래된 관행이 정치적 목적에 이용되거나,

정치인들이 생색내는 도구로 활용되어 온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동자동에 입주한 7년 전부터 주구장창 노래를 부른 일이 줄 세우지 말라는 것이었다.

빈민들의 잃어버린 자존감이나, 가난의 자긍심에 치명적인 독이었다.

 

 수시로 만나는 쪽방상담소 직원들과 얼굴 붉혀가며 개선하라는 글을 올렸으나, ‘쇠귀에 경 읽기였다.

지난 해 12월 중순 무렵에는 동자동 새꿈공원에서 물건을 나누어 주는 과정에서

쪽방상담소 직원과 주민사이에 싸움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그 과정을 지켜보다 서울역쪽방상담소는 갑 질 그만하고 자세를 낮추라는 글을

인사동 사람들블로그와 쪽방타운카페에 올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글을 쪽방상담소 유호연 소장이 읽고 장문의 해명과 원망의 답 글을 올린 것이다.

그 일로 유호연 소장을 만나게 되었는데, 줄 세우지 않고 나누어 줄 수 있는 대안을 물어왔다.

하나하나 설명한 적이 있었는데, 그 안이 현실화된 것이다.

 

 모든 일은 정해진 쉬운 방법보다, 빈민들 입장에서 찾아야 한다.

잘못된 것을 개선할 의지만 있다면 이 세상에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뒤부터 점차 줄 세우는 빈도가 낮아지며, 줄을 세워도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일하는 직원을 늘리거나 간편하게 처리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내어 서서히 바꾸기 시작했다.

지난 6월28일엔 매달 줄 세워 나누어주던 식권을 카드로 바꾸었다.

 

기존에 사용해 온 식권

식권은 줄 세워 나누어주는 일만 아니라, 매일 아침 상담소 직원들이 식당을 돌아다니며,

전 날 사용한 식권을 수거하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바코드를 주민등록증 뒷면에 부착해 사용 여부를 확인하는 기존의 방법처럼,

전산화하라는 요구를 식권 나온 지 일 년 만에 시행한 것이다.

 

새로 바뀐 동행식당카드

 오세훈 서울시장이 작년 여름부터 시작한 아름다운 동행의 식권사업은 빈민 최고의 복지였다.

안정적인 하루 한 끼의 식사 제공이 빈민들 삶의 질을 개선한 것이다.

비좁은 쪽방에서 밥해 먹어야 하는 불편도 덜었지만, 귀찮아 밥 굶던 노인들이 밥을 먹기 위해

하루에 한 번씩은 외출을 한다는 것이다. 이보다 훌륭한 복지사업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자주 찾는 동행식당 '완도집'

 하루 한 끼는 먹고 싶은 음식을 찾아먹는다면, 방에서 혼자 쓸쓸히 죽거나 굶어 죽을 염려는 없는 것이다.

일 년 간의 시행에 따른 호응도에, 이젠 없어서는 안 될 복지사업이 되어버렸다.

 

'완도집'의 차돌된장찌게

서울시에서 쪽방 빈민들에게 한정할 사업이 아니라,

기초생활수급비를 줄여서라도 전국 독거노인에게 확대해야 할 복지사업으로 부상했다.

빈민의 삶은 물론 요식업이나 농민들 까지 두루 혜택을 받을 수 있으니, 도랑치고 게 잡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 뿐 아니라, 줄 세운 가장 큰 이유는 부족한 물량이었다.

전 주민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량이라면 언제든지 줄 수 있겠으나,

물량이 부족한 것은 선착순으로 줄을 세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대안으로 소량의 물품은 관할 푸드 마켓으로 보내, 필요한 사람이 순차적으로 가져가면 좋겠다고 했는데,

후암로 57길에 동행 스토어’를 차려 그곳에서 생수와 식료품을 가져가도록 만들었다.

여름이 되면 매주 수요일마다 공원에 줄 세워 생수를 나누어 주었는데,

이젠 본인이 필요할 때 일주일에 한 번씩 동행 스토어에 들려 가져갈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동행스토어'에 생수 받으러 온 주민

 잘못된 관행을 이처럼 바꾸어 가려면 관계기관이나 직원들의 협력도 따라야 하지만,

개선하려는 책임자의 의지가 중요한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 의지를 엿볼 수 있었던 것은 지난 7월 6한국가스공사한국에너지공단에서

보내 온 여름나기 물품 나누기에서 재확인한 것이다.

주는 시간을 정해 두었으나, 그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오는 데로 나누어주니 줄 설 필요가 없었다.

그 오랜 줄 세우기 관행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지난7월 6일 나누어 준, '한국가스공사'와 '한국에너지공단'에서 보내 온 여름나기 지원품

 어제는 유호연 소장께 고맙다는 인사하러 서울역쪽방상담소를 찾아갔다.

또 무슨 일을 문제 삼을지 걱정한 직원이 이유부터 꼬치꼬치 캐묻고 만나게 해주었는데,

고마워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서울역쪽방상담소' 유호연소장

 유호연(59)소장은 청소년 쉼터에서 17년 동안 일하다 작년 10월 '서울역쪽방상담소에 부임했다고 한다.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갑 질하지 말라는 내 글을 읽었으니, 얼마나 속이 상했겠는가?

주변에서 도와주거나 여건이 맞아 하나하나 바꿀 수 있었다고 겸손해 하지만,

오래된 관행을 바꾸려는 책임자의 확고한 의지가 없었다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정수현소장과 김갑록소장을 거치는 동안 아무도 못했던 일이었다.

 

앞으로 소량으로 들어오는 지원품은 동행스토어로 보내어, 정해둔 상당의 금액만큼

필요한 주민들이 한 달에 한 번씩 가져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들려주며,

빈민들 삶의 질을 개선하는데 최선을 다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지난 329일 고장 나 중단된 이불빨래 세탁기를 재가동하기 위해

서울시 지원을 다시 요청해 달라는 부탁도 드렸다.

서울시에서 수리할 예산이 없어 여태 방치했다는 것은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빈민의 어려운 마음을 헤아려 준 유호연 소장께 다시 한 번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다.

그리고, 서울특별시의 아름다운 동행사업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사진, / 조문호

 

어버이 날이 되면 쪽방촌 어르신을 위한 잔치가 동자동 '새꿈공원’에서 열린다.

 

해마다 ‘동자동 사랑방’에서 마련하는 잔치지만, 코로나에 발목잡혀 3년 만에 열려 더 반가웠다.

 

동자동 쪽방 촌에 사는 분은 대부분 가족과 연락이 끊겼거나,

있어도 찾아오지 않아 어버이날이 되면 외로움을 더 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텅빈 가슴에 꽃 한송이 달아드리며 술과 음식을 나누니, 이보다 좋은 날이 어디 있겠는가?

 

조화에 불과한 카네이션이지만, 삶에 찌든 어두운 그늘을 지우고 모처럼 활짝 웃는 모습을 보였다.

 

잔치도 자선단체에서 지원한 것이 아니라, 주민들 스스로 음식을 장만한 자리라 더 의미 있다.

 

‘서울역쪽방상담소’의 나눔과 또 다른 것은 줄 세우지 않는데 있다.

주민들에게 음식을 차려줄 뿐 아니라, 이날만은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술도 한 잔 마실 수 있다.

 

머릿 고기에다 각종 부침개, 떡과 소주, 음료수 등을 사랑방 식구들이 부지런히 날랐고,

동네 어르신들은 깔아놓은 자리에서 이웃과 정겹게 술잔을 주고 받았다.

이렇게 화기애애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날도 어버이날과 추석뿐이다.

 

예전에는 잔칫날이 되면 그동안 찍은 사진을 빨랫줄에 걸어 나누어 주기도 했으나,

그마저 마땅찮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 그만 두었는데, 어딜 가나 시기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이후로는 찍힌 분을 언제 만날지 몰라 가방에 넣고 다녀야 하는 불편은 따르지만, 그 또한 내가 짊어져야 할 업이다.

 

잔칫날이 되면 평소 잘 보이지 않는 분도 더러 뵐 수 있는데,

이날은 한 때 동네 사발통문처럼 쏘다니며 도시락을 전해주던 원용희씨를 만났다.

 

얼굴이 반쪽이 되어, 그동안 어디 아팠냐고 물었더니 죽다 살아났단다.

멀지않은 해방촌으로 이사를 갔다는데, 어버이 잔칫날이라 찾아 왔으나 술은 끊었다고 한다.

 

공원에는 술에 취해 여기저기 드러눕는 사람도 생겨났으나, 아무도 탓하는 이가 없다.

기력이 없으니 조금만 마셔도 쓰러지는 것이다.

 

하기야! 답답한 쪽방에 눕는 것보다 시원한 공원에 드러눕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이날 잔치에는 ‘동자동사랑방’ 윤용주 회장과 김호태씨가 주민들께 인사드리며 어르신들의 건강을 기원했다.

 

잔치가 끝난 뒤, 교회 봉사단체에서 나와 도시락을 나누어 주었으나, 다른 때와 달리 남아 돌았다.

요즘은 도시락 인기가 무료식권에 밀려나 예전같지 않다.

 

뒤 따라 쪽방상담소에서도 마스크와 꽃을 나누어 준다며 줄을 세우기 시작했다.

오는 대로 주면 될 텐데, 시간을 정해놓고 기다리게 하니 줄을 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줄 세워 거지 취급하는 나눔은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아무리 희망 없는 나날을 보내지만, 하루를 살더라도 재미있게 즐기며 살자.

 

대개 기초생활 수급자라 술과 담배만 즐기지 않는다면, 살아가는데는 별 지장이 없다.

문제는 돈을 쓰지 않고 이불밑에 넣어 두다 남 좋은 일 시키는데 있다.

 

돈을 아끼고 저축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것도 가난한 독거노인은 해당되지 않는다.

평생 고생하다 죽을 날도 얼마 남지않았는데, 누굴 위해 저축한단 말인가?

 

문제는 수급비를 받는 대부분의 독거노인들이 돈 쓸 줄도 모르고 놀 줄도 모른다는데 있다.

돈도 쓰 본 사람이 잘 쓰지, 돈이 없어 쓰 보지를 못했으니 돈 쓸 줄을 모른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삶의 질을 개선하려면 돈 쓰는 방법부터 가르쳐야 할 것 같다.

정말 돈 쓸 곳이 없다면 수급비도 받지 못하는 노숙인에게 적선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죽고 나면 돈도 명예도 아무 소용없는 쓰레기나 마찬가지다.

 

부디 내년에도 건강하게 어버이날을 맞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사진, 글 / 조문호

 

[2023,5,10작성]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운영하는 ‘돌다릿골 빨래터’에서 이불세탁을 받지 않은지가 한참되었다.

겨울 내내 찌든 이불을 세탁하려고 줄을 잇는 봄철에 한 달 가까이 이불세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냥 두고 볼 일이 아니다.

세탁기를 수리중 이라 말했다가, 서울시의 예산이 없다는 등 말도 되지 않는 변명만 늘어 놓는데, 이건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지난 3월29일 이불을 가져가 헛걸음 친후, 그 뒤 몇 차례나 찾았으나 똑 같은 대답만 돌아왔다.

영업용 세탁소라면 이렇게 오랫동안 방치할 수 있겠는가?

이젠 부피가 큰 이불은 받지 않겠다는 말로 들리는데, 더 이상 주민들을 무작정 기다리게 하지 말고,

세탁기를 가동하지 못하는 분명한 사유를 밝히고 대책을 강구하라.

 

동자동 쪽방촌의 ‘돌다릿골 빨래터’는 2018년 여름, 서울시에서 KT의 세탁기 후원을 받아 동자동 새꿈공원 맞은편에 설치한 것이다.

당시 서울 시장이었던 박원순씨에 의해 성사된 일로, 빈민들의 오랜 숙원사업을 해결해 주어 주민들로 부터 고마움을 한 몸에 샀다.

 

쪽방에 살려면 빨래가 제일 골칫거리였으나, 덕분에 한시름 놓게 된 것이다.

박원순씨는 옥탑 방에 직접 살아 보는 등 빈민들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 많은 개선을 이루어내었으나,

더러운 세상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비운의 정치인이다.

서울 시장이 누구냐에 따라 빈민들의 삶이 곤두박질 하니,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한 때는 세탁에 의한 소음으로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도 했으나,

지금의 ‘서울역쪽방상담소’건물이 완공됨에 따라 같이 옮겨 운영하는 것이다.

 

비좁은 쪽방은 이불장이 없어 항상 이불을 바닥에 펴놓고 살아 불결하기 짝이 없다.

작은 세탁물이라면 쪽방 화장실에서라도 세탁할 수 있겠으나, 덩치가 큰 이불은 어쩔 도리가 없다.

예전에는 때에 찌들어 시커먼 이불이 행여 얼굴에라도 닿을까 노심초사 했으나, 지금은 죽었으면 죽었지 그렇게는 살지 못한다.

 

서울시와 서울역 쪽방상담소는 하루속히 '돌다릿골 빨래터'를 정상화하라.

 

사진, 글 / 조문호

 

 

쪽방촌에도 어김없이 봄은 왔다.

 

봄의 화사함도 가난의 그림자는 지울 수 없었다. 

 

목련 아래는 끼니 때우러 나온 사람이 줄을 섰고.

바닥에 자리 깐 노숙인은 꽃비 맞으며 누워있다.

 

불공평한 세상도 봄은 공평하게 나누어주었다.

 

그날이 4월분 식권 나누어 주는 날이라 '서울역쪽방상담소' 앞에도 사람이 몰렸다.

'아름다운 동행' 식권 사업에 힘 실려 사우나 무료목욕권까지 붙여주었다.

 

고맙기 그지없는 일이나, 다른 지역 독거 노인은 받지 못하니 이 또한 불공평이 아닌가?

빈민과 상인은 물론 농민까지 덕 보는 식권 나눔을 전국으로 확대하라.

 

임백수씨를 만나 며칠 전에 찍은 초상 사진을 꺼내 주었더니, 반색을 했다.

잠깐 기다리라 해 놓고는 담배 두 갑을 사온 것이다.

 

주머니에 슬쩍 찔러주는데, 이거 뇌물죄에 걸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담배를 얻은 고마움보다 의기소침한 초상작업에 힘을 실어 주었다.

 

초상사진으로 자존감 지키려는 첫 사람인 셈인데, 나중에 만난 황병윤씨도 좋아했다.

더 좋은 사진 나오도록 다시 찍겠다는 다짐도 했다.

 

봄바람에 희망이 실려온다.

 

사진, / 조문호

 

 

마음이 급해 서둘다 방문에 걸어야 할 자물통을 주머니에 넣고 와버렸다.

그 날은 '서울역 쪽방상담소'에서 식권 타는 날로,

 김명성시인이 해 바뀌기 전에 술 한잔 하자는 시간과

한 시간 차이라 마음이 조급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서울시에서 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실시한

아름다운 동행식권 사업이 주민들의 호응으로 내년에도 이어진다는 것이다.

2023년 1월분 식권을 27일 오후 2시부터 준다는 벽보가 나 붙었는데,

세시까지 가려면 늦을 것 같아 30분 일찍 나섰.

 

한 시간이 넘어서야 차례가 돌아왔는데,

지켜 보고 있던 상담소 전실장이 소장이 찾는다며 날더러 가자는 것이다.

식권 받고 가겠다는데도, 일분도 안걸릴 시간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소장부터 만났으나,

대개 주민들과의 마찰도 이런 사소한 일에서 비롯된다.

 

상담소 소장이 나를 찾는 이유는 대충 짐작되었다.

블로그에 올린 ‘쪽방상담소는 갑질 그만하고 자세를 낮추라는 글에

상담소 소장이 올린 장문의 해명 댓글을 보았기 때문이다.

 

유소장과는 첫 대면으로, 소장이 바뀐 것도 댓글을 보고서야 알았다.

줄을 세울 수밖에 없는 사정을 구구절절 설명하며, 그 해결 방법을 물어왔다.

다소 불공평한 점은 있으나, 번호순으로 돌아가며 받도록 해야 한다.

소량 물품은 푸드마켓과 연계하여 나누어주는 등 자정의 노력이 요구된다.

 

특정인을 거명하는 것은 자제해 달라는 부탁은 수용했다.

그리고 식권사업은 사용한 식권을 매일 회수하는 일도 힘들지만,

싼 가격으로 뒷거래를 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단다.

 

그 문제는 매달 식권을 나누어 줄 것이 아니라 전 주민을 대상으로 전산화 해야 된다.

지금 쪽방상담소에서 주민등록증에 붙여 확인하는 바코드처럼

주민등록증 한쪽에 별도의 식권 바코드를 붙여 관리하면 될 것 아닌가?

해당 식당에 별도의 단말기를 비치하는 불편이야 따르지만..

 

식권은 모두에게 줄 수 있는 량인데, 왜 시간을 정하냐고 물었더니,

안 그러면 하루 종일 지키고 있어야 한단다.

이 말은 주민들 입장보다 업무의 편의성이 먼저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동사무소처럼 업무시간에 언제나 받을 수 있도록, 담당자 한 명만 있으면 될것이다.

 

뒤늦게 식권을 받아 나왔으나, 이미 세시가 가까웠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문도 잠그지 않고 왔겠나?

주머니에 자물통이 있다는 것을 알아 차렸을 때는 응암역, 내릴 무렵이었다.

요즘들어 잊어버리는 일이 잦기는 하지만, 자물통을 가지고 나온 적은 처음이었다.

 

나이들어 잦아지는 치매증상이야 어쩔 수 없어나, 습관이란 게 무서웠다.

아무것도 가져갈 것 없는 쪽방 문 열어두고 온 것에 왜 그리 신경 쓰였는지 모르겠다.

 

누구처럼 이불 밑에 감추어 둔 돈이 있나, 가져 갈 것이라고는 고물 컴퓨터 뿐인데 말이다.

혹시 배고픈 사람이 책상에 놓인 식권이라도 가져간다면, 그건 적선이 아니겠는가?

여태 신발 도둑 맞았다는 소리는 들어도 방에 도둑들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약속장소인 응암동 '풍천장어'집에 갔더니, 김명성, 조해인시인과 정동지도 왔더라.

과분한 술 상 앞에 모여앉아 한 해 못다한 아쉬움을 달랬다.

꾸물대는 장어처럼 등 달아 꾸물댈까 걱정되었다.

 

그런데, 김명성씨가 귀가 번쩍 뜨이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김신용 시인이 아파트를 샀다는 것이다.

한 달 전만해도 인사동 ‘유목민’에 나와 디카 시를 쓴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 사이 홍제동 셋집에서 충주 아파트로 이사 간 것이다.

 

지난 달 인사동에서 만난 김신용시인

가난한 시인이 집을 샀다는 자체만도 뉴스가 아니겠는가?

시만 쓰는 시인이 아파트를 샀다는 거짓말같은 사실 말이다.

누구처럼 칠억짜리가 아니라, 칠천만원에 불과하지만...

 

내년에는 몸이 아픈 친구들도 찾아보기로 했다.

김명성씨가 며칠 후 이청운화백 문병 가자는 이야기를 꺼냈는데,

 '뮤아트' 김상현씨도 몸쓸 병으로 여러차례 수술받아,

그 통증을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한다.

 

오래 전의 이청운화백, 입원했을 때다

새해에는 이청운화백도 만나고, ‘뮤아트’ 에서 김상현씨의 쉰 듯 절절한 노래도 들어보자.

모두의 건강한 한 해를 위해...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달 아픈 몸을 이끌고 양평 황명걸시인 추모제에 참석한 김상현씨가 아코디온을 연주하고 있다

 

살을 도려내는 혹한의 추위가 기승을 부린 날, 김치 얻으러 쪽방상담소를 찾았다. 

200명 선착순으로 김치와 라면을  준다는 벽보에, 이른 시간부터 비좁은 골목은 발 디딜 틈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식료품이 아니라 보약을 준다해도 줄서기는 싫다.

길들이기의 잔재인 쪽방촌 줄 세우기는 얻어먹는 비굴함과 묘멸감을 느끼게 해

나붙은 벽보만 보면 반갑기보다 걱정이 앞선다.

쪽방촌에 들어온 6년동안 주구장창 노래 부른 것이 줄 세우지 말고 시간 날 때 찾아가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줄 세우기는 외면해야 되지만,

빈민의 삶을 지켜보며 기록하는 본능에 앞서, 당해 봐야 서러움을 뼈 속 깊이 느껴 개선을 요구할 것 아닌가? 

벽보는 대부분 나누어주기 하루나 이틀전에 붙어, 잘 살피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칠 때도 많다.

그러나 벽보를 본 이상은 먼저 가서 기다리거나 뒤늦게 기다리며 걸리는 시간까지 체크해 왔다.

 

본인임을 확인하는 시간은 예전보다 많이 줄어 들었으나,

업무의 편의성보다 주민 입장을 먼저 생각해, 줄 세우는 자체를 없애야한다.

만약 업체에서 보내 온 물품 량이 부족하다면, 전체 주민을 번호순으로 정해 차례대로 지급하라.

순번에서 끊긴 사람이 다음에 첫 번째가 되는 릴레이식으로 말이다.

물론 줄 때마다 내용물이 달라 불공평한 점은 있으나, 어쩔 수 없다.

구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후원을 상품에서 돈으로 바꾸어야 한다.

 

정동지는 추운 날은 줄서지 말라지만, 추운 날은 밥도 안 먹나?’며 능청을 떨었다.

정해진 오전10시쯤 갔는데, 이미 긴 줄은 골목골목을 돌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골목으로 몰아치는 칼바람으로 얼굴을 내밀 수도 없으나, 줄서기를 포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먹고 산다는 게 이렇게 비참한 것이던가?

 

봉사원이 건네주는 차 한 잔에 몸을 데워야 했다.

정확하게 한 시간을 떨고서야 차례가 돌아왔는데, 김치와 라면 세 봉지를 받았다.

고생 끝에 받아 그런지, 서러움이 북받혔다.

 

오후에는 공원에 갔더니, 용산구청에서 떨어 진 낙엽을 청소하느라 분주했다.

한쪽에서는 ‘엘림교회’의 성탄절기념 찬양대회가 열렸다.

 

이 추운 날씨에 주민을 불러 모으려면 미끼가 필요한지,

쌓아둔 선물 꾸러미에 끌려 한 사람 한 사람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청소하는 기계소음 때문에 기도는 물론 찬송도 부를 수 없었다.

 

마침 찬양대회에 온 정재은씨가 고함쳤다.

“씨발넘들아! 예수님 태어나시는데, 좀 조용히 해라”

욕설을 해도 소귀에 경 읽기였다.

 

추워도 청소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준기씨가 전동휠체어를 타고 나타났다.

여태 의족을 끼고도 표 나지 않게 다녔으나, 나이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자가용 구입 기념사진 찍어달라며, 선그라스까지 쓰고 폼을 잡았다.

 

‘추워 보인다며 옷 좀 두껍게 입고 다니라는 준기씨의 염려가 추위를 녹여준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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