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도예 1세대 작가 한봉림, 흙-불 다뤄 물질 상상력 속 조형 시각화

한국현대도예 1세대 작가 한봉림 초대전이 '전북도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한봉림씨는 '영원한 운동’ 작가와의 대화에서

"작가는 쓸 데 없는 것을 만드는 게 예술이고 도예"라고 말했다.

도예는 늘 실용성과 관계지워져 왔기에 현대 도예는 ‘용도’를 벗어나 예술을 추구하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작가는 1979년 공간예술대상전에서 현대 도예로 대상을 수상함으로 두각을 드러냈다.

당시 그의 작품은 두터운 천이 주름잡힌 모양새의 조형성으로

자연스러운 굴곡을 형성하면서도 전통적인 색감과 미감을 곁들여 주목을 끌었다.

그의 시도는 한국 현대 도예의 새로운 장르를 여는 것으로 촉망을 받았다.

 

1974년 원광대학교에 도예과를 창설하면서 내려 온 그는

한국 최고의 도예과로 부상시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가 자비로 1992년부터 개최했던 국제도예캠프는 96년도까지 이어지는데,

이는 제자들과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 주는 것과 동시에 국제적 방향으로

현대 도예의 길을 개척하겠다는 강렬한 의지의 표명이었다.

 

2015년 전북도립미술관 아시아현대미술전 당시 그는 높이 2m 쯤 되는 ‘장승’ 작품을 출품하였다.

그것은 칼라풀하고 불규칙한 크기의 사각 형태를 2개의 수직 기둥으로 쌓아올린 작품이었다.

또한 매우 현대적인 동시에 전통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영원한 운동>, 1986, 조합토, 망간유, 물레 성형, 62&times;130&times;90 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그의 작가 정신은 장르를 초월하는 성향을 갖는다.

그는 현대 도예의 성향을 도예라는 카테고리에 담아두기를 원치 않는다.

 

2017년 전북도립미술관 원로작가전 때에는 20여 개의 대형 평면에

즉흥적으로 뿌린 단청 물감의 흔적을 내보여 흥미를 끌었다.

순간적인 물감의 튀김과 번짐, 흘러내림을 그는 자유로운 예술 행위로 표현하고 있었다.

 

전북의 미술을 각성시키자는 취지로 펼치는 AX 그룹 운동에도 참여하면서

젊은 작가들 못지 않게 새롭고 열정적인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영원한 운동-7>(1986), 47*48*45, 조합토, 판 성형,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윤영필 학예사는 “한 시대를 앞서 간 외국 명문대학은 대부분 지역에 있고 전공에 따른 명문학과 역시 대체로 지역 도시에 존재한다. 한봉림의 열정은 일찍이 원광대에 부임해 도예 명문학과를 만들고 역량 있는 예술가들을 배출했다. 전문가로부터 도예과 하면 거론될 정도로 한강이남 최고의 명문 도예과를 만들었다. 전라도에서 흙을 만지고 도예를 배웠다면 그의 손길을 안 거쳐 간 사람은 없다. 그는 끝없이 갈구하며 도예를 진화시켜 나갔다.”고 설명했다. 도예가 한봉림(韓鳳林)은 홍익대 공예과를 졸업하고 공간대상 도예상(1979)을 받은바 있으며 원광대 미술대학 명예교수이자 한국현대도예 거장이다.

 

이애선 전북도립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그만의 예술적 독창성에도 불구하고 전북과 한국 현대 도예에서 잘 평가되지 않은 작가의 도자 세계와 현대 도예에 대한 관심이 촉발되고, 나아가 한국 도예의 동시대적 의미를 재고하는 계기가 되기를기대한다”고 밝혔다.

 

<무제>(1979), 36*80*36, 조합토, 판 성형, 개인소장

전시 리뷰 대부분을 '전북도민일보'에 게재된 미술평론가 장석원씨의 글을 옮겼는데,

그는  전시 개막식 축사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번 전시는 전북 현대 도예사에서 지울 수 없는 기념비적 족적을 남기는 것이지만,

더 나아가서 한국 현대 도예사에서도 전무후무한 작가 정신을 온전히 보여주는 전시로 기록될 것이다.

그가 시도해 왔던 현대 도예로서의 창의적 정신은

예술이 우리 가슴에 살아 있는 한 지속적으로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도예가 한봉림

이 전시는 2023년 3월 5일까지 열린다.

 


출처 : 전북도민일보,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금천뉴스, 시대일보, 뉴스1

 

 

도예가 황예숙씨의 ‘노랑 드레스 입은 도자의자’ 초대전이

지난 9일 인사동 '마루아트센터'에서 개막되었다.

 

황예숙씨는 실용적 속성을 바탕으로 조형적 유희를 담아내는 도예가다.

정해진 기법에 따라 반복하는 그렇고 그런 도예가가 아니라,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작가다.

 

그는 홍익대학교에서 회화와 도예를 전공하고 홍익대학원에서 도자조각을 공부했다.

세계 각국에서 스물 여덟차례의 개인전을 가진바 있는 역량 있는 작가다.

그동안 건축물의 도자조각과 환경조형물 같은 대작들을 많이 제작해 왔다,

 

지금은 여주에서 ‘후후아트조형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여주국제도예협회장’으로 한국도예를 세계에 알리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도예계 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일반인들에게 덜 알려진 이유는

고인이 된 남편 박권수 화백의 유명세에 가린 탓도 있다.

그동안 자신의 작품을 알리는 일보다 남편의 유작을 펼쳐 보이는데, 온 힘을 쏟아왔다.

 

며칠 전, 황예숙씨로 부터 전시를 연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요즘은 가급적 전시 보러 가는 일은 자제하지만, 안갈 수가 없었다.

작가를 알게 된지가 숱한 세월이 흘렀는데,

여지 것 사진으로만 작품을 보았지 실제 작품은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번 전시는 인사동에서 열리는 전시가 아니던가.

 

지난 9일 정영신씨와 손님 몰리는 개막식을 피해 이른 시간에 전시장을 찾았다.

황예숙씨는 작품을 옮기는 과정에 문제가 생겼다며 보완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 내놓은 작품들은 도자의자에 집중하고 있었다.

전시장에 의자만 놓여 있으니, 앉아 쉬기도 좋았다.

 

고난도의 제작과정과 소성과정을 거쳐야하는 돌덩이 같은 도자 의자를

연약한 여성의 힘으로 어떻게 구워냈는지 모르겠다.

온 몸을 불사르는 치열한 작가정신이 돋보였다.

 

그의 작품들은 투박하면서도 간결했다.

대담한 구성으로 만들어진 의자들은 세련된 조형미를 자랑했다.

자칫 차갑게 느껴지기 쉬운 도자의자를 포근하게 이끈 색깔 또한 매혹적이었다.

몸체에 입힌 유약이 원하는 색상이 나올 때까지 4번 이상 소성해 완성했다고 한다.

 

작품이 도발적이고 육감적이지만, 어머니 몸처럼 포근하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실용성은 물론 장식성까지 두루 갖춘 작품에는 정겨운 여성의 감성이 물씬 묻어났다.

모양이 다르고 삐딱해도 안정감을 주는 의자 다리,

거칠어 보이면서도 섬세한 조형감각도 돋보였다.

 

쪽방에 사는 나로서는 엄두도 낼 수 없지만,

거실이 넓은 집에 옮겨 놓으면 집안의 격이 달라질 것 같았다.

즉, 작품의 예술성 뿐 아니라 상업성도 겸비했다는 말이다.

 

소설가 박인식씨는 서문 말미에 이렇게 적고있다.

 

"황예숙의 의자는 신통하다.

생각하는 사람을 앉혀 사랑에 미친 짐승으로 바꿔 놓을만하다.

이 의자는 한글 자음의 'ㄴ'이다. 여기 시가 앉아 신이 된다.

우리는 여기서 여태 보지 못했던 사랑의 형상 Shape of love를 본다.

 

누가 황예숙의 의자에 시를 앉히는가

당신은 어떤 사랑의 형상으로 그 의자에 시로써 앉겠는가"

 

인사동 '마루아트센터' 전시는 오는 15일까지지만,

여주 '경기세계생활도자관'전시는 16일부터 27일까지 이어진다.

 

사진, 글 / 조문호

 

 


변승훈(도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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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막사발 미출관' 관장인 도예가 김용문씨



세계막사발 미술관터키로 옮겨야 할 처지가 되고 말았다.

완주군의 폐관 통보로 오갈 때 없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지 한 참인데,

그 사실을 알게 된 터키 하제테페대학교 측에서 옮겨 가겠다고 한단다.

 

세계막사발미술관은 폐역이 된 삼례역사를 보수하여 2011년 개관되었다.

괴산에 있던 세계막사발미술관을 어렵사리 옮겨 운영해 왔는데,

완주군에서 느닷없는 폐관을 결정한 것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밷는 정형적인 관료의 횡포다.

 

지자체에서 예술가들을 이용해 먹고, 내 팽개치는 짓이 한 두번이 아니다.

청도군에서 세운 철가방극장과 화천군의 감성테마문학공원이 대표적이다.

성공적으로 자리 잡도록 한 전유성씨는 쫓겨났고, 이외수씨는 쫓겨날 처지에 있다.

이건 해도 너무하다. 예술가들이 무슨 공무원들의 밥인가?

 

도예가 김용문씨는 오로지 막사발을 고집해 온 가히 전설적인 장인이다.

나는 막사발이다라는 책을 펴낼 정도로 반 평생을 막사발에 전념해 왔기에,

김용문 하면 막사발이 떠오르고, 막사발 하면 상투를 튼 김용문이 연상될 정도다.

 

그는 홍대미대 공예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후,

전통 옹기에 빠져 다양한 옹기 작품을 탄생시켰고, 막사발에 승부를 건지는 30여년이 되었다,

 

경기도 오산, 충청도 괴산, 전라도 삼례 등지로 세계 막사발 미술관을 옮겨가며

세계막사발축제36년 동안 이끌어 왔다.

또한 세계막사발심포지엄 19, 국내외의 개인전도 45회나 개최했다.

지금은 터키 국립 하제테페대학교 도예과 초빙교수로 터키와 삼례를 오간지 9년째다.

 

그의 예술세계는 막사발에 한정되지 않고, 퍼포먼스와 글과 그림까지 전방위 작가다.

그러한 다양한 작업들도 막사발을 위한 부대작업에 불과했다.

그동안 막사발 실크로드라는 이름으로 중국 산동성과 터키 앙카라를 떠돌며 막사발 세계화에 온 힘을 쏟아왔다.

그런 노력의 성과를 어떻게 하루 아침에 물거품이 되도록 만들 수 있겠는가?

 

우리의 막사발이 일본에서 최고의 찻 사발로 떠받들어 진지가 400여년이 넘었다.

옛날 한국적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불리는 달항아리가 관요에서 만들어진 반면

막사발은 지방의 민간가마에서 구워졌기에 더 친숙하게 다가온다.

 

대개 막사발을 천한 그릇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많아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는데,

국어사전조차 막사발을 품질이 나쁜 그릇으로 표기하고 있으니, 한심할 뿐이다.

그러한 서러움을 무릅쓰며 투박한 질감의 우리 막사발에 목을 매고 살았는데,

갑작스런 폐관 통보에 어찌할 바 몰라 손을 놓고 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터키 하제테페대학교 측에서 세계막사발박물관을 건립하여 옮겨 가겠다지만,

김용문씨의 생각은 달랐다. 막사발 본가는  우리나라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막사발이 우리민족의 유산이지 터키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 역시, ‘세계막사발미술관을 어떻게 해서라도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지자체에서 수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맥을 이을 해결 방안은 없는지, 많은 분들의 관심과 조언을 바란다.

 

사진, / 조문호

 

 

 

 

 

 

 




최범홍 (도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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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도예가 한봉림씨 작업실에서 벌인 난장 퍼포먼스로 뒷말이 많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는 부정적인 시선도 있었으나,
그 행위 자체에 대리 쾌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았다.
더구나 그 난장판에 법이 개입되지 않았다는 것도 의아해 했다.

한봉림씨는 그 난장판을 치우고 정리하느라 사흘이 걸렸다지만,
가족의 원망 받아가며 부글부글 끓인 속은 보나 마나다.
문제는 작품을 망가트리고, 기물을 부순 경제적 손실에 앞서,
퍼포먼스를 폭력으로 이끈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가 없다는 점이다.

차마 두려워서 전화조차 할 수 없었다고 변명할지 모르지만,
어린애도 아닌 사람이 여지 것 아무런 대꾸가 없다는 것은
잘 못을 시인하지 못한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지난 25일 복구 현장을 찍은 몇 장의 사진을 보내며,
껄껄 웃는 한봉림씨 전화에 뱃심 좋은 그의 기질을 다시 한 번 보았다.
“어이~ 친구! 그 친구가 멋진 작품 하나 만들었어.
뻥 뚫린 구멍으로 울분을 날려 버린 멋진 작품이야!”
“작품제목은 뭔데?”라고 물었더니. 대뜸 ‘미지랄’이란다. 즉 미친놈 지랄이란 뜻이다.

겹 유리창이라 가능했지만, 깨진 유리를 그대로 둔 채, 
사방을 검게 칠해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시킨 것이다.
그리고 구멍 뚫린 그림도 보수했다지만, 흔적은 조금 남았단다.

그림의 훈장으로...

그동안 속 끓인 사정을 생각하면 나 역시 마음이 편치 않았으나, 
파괴 현장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며 마음의 울화까지 날려버린 호탕함에 속이 후련해진다.
오늘, 서예가 여태명씨가 위로 차 작업실에 들렸다가 그 작품을 보더니.
‘이 보다 더 박진감 넘치는 작품은 없다’며 좋아 했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깨진 거울에 그림을 그리는 이발소 그림이란 게 있었지만,
그 것이 감추기 위한 그림이었다면, 이건 드러내기 위한 현장 작업이었다.
이 보다 더 힘 있는 현장감을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이 작품은 떼어 낼 수도 없으니, 구입하려면 집채 사야할 대작이다.

이제 더 이상 가해자에게도 사과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냥 둔다면, 평생 멍에로 짊어져야할 무거운 짐일 테니까...

사진: 한봉림 / 글: 조문호



한봉림의 '포말 퍼포먼스' 일화를 모른다면 아래를 클릭하면 된다.


http://blog.daum.net/mun6144/4601

 

터키의 무틀루 바스카야 도예전이 지난 1일 오후5시 인사동 ‘통인화랑’에서 개막되었다.

 

개막식에서 전시작가를 비롯하여 이계선 통인관장, 도예가 김용문, 명지혜씨, 서양화가 정순겸씨,

사업가 서홍석, 김성인씨 등 많은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중요한 것은 전시 첫 날부터 작품이 몇점 팔렸다는 점이다. 

 

 

 

 

 

 

 

 

 

 

 

 

 

 

 

 

 

 

 

 

 

 

 

 

 

 

 

 

 

 

 

 

 

 

 

 

 

 

 

 

 

 

 

 

 

 




 

 

완주시 소양면 대흥리 474번지 소재의 종남산 자락에 자리잡은
현대도예가 한봉림선생의 도예 작업실에  새로 단장한 한옥 팬션이 문을 열었다.

 

이곳은 주변 자연경관도 절경이지만, 넓은 마당 곳곳에 선생의 도예작품들이 널려있어,
"님도 보고 뽕도 따고", "도랑치고 게 잡는" 일거양득의 환상의 휴식공간이다.

그리고 군불 때는 온돌식 한옥에다 서양식 화장실과 주방까지 있어
한옥의 정겨움과 양옥의 편리함을 두루 갖춘 팬션이기도 하다.

한봉림선생은 원광대 미술대학 학장과 중국 경덕진 도자대학의 고문교수로 계셨던,
전주 문화계 맹주로서 "상대를 찾지 못해 주먹을 볼 때마다 미안하다"고 하는 호걸이시다.

이곳 팬션에 가면 평생을 일궈 온 한봉림 선생의 예술세계를 두루 접할 수 있는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직접 작가를 만나, 한 수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도 얻게 된다.

숙박비를 비롯한 자세한 내용은 다시 알려드리겠으나, 직접 문의해도 된다.

[한봉림 선생 연락처 : 010-3673-7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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