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진의 사진 읽기]

 

몰입하면 보이는 '낯선' 日常의 모습

피망, 혹은 일그러진 시선 - 에드워드 웨스턴, 피망 No. 30, 1930


우리 모두가 익히 알고 있다시피 즐거움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만들어가는 즐거움의 필요조건은 '몰입'이다.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에 몰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그것을 통해 더 많은 즐거움을 능동적으로 찾아가는 방법을 습득하게 되는 것이다. 몰두할 수 있는 일을 갖는 것은 그 자체로 삶을 풍부하게 하는 경험이며, 몰입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독려해야 한다. 몰입과 이완, 마치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이 둘 간의 균형감을 통해 우리는 평범한 삶을 조금은 특별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에드워드 웨스턴(Edward Weston·1886 ~1958)의 사진은 일상적 장면에서 어떻게 순수한 시각적 몰입의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는지 깨닫게 해준다. 그는 작고 흔한 물건에 오래도록 주목하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이 사진을 완성했다. 그가 대상에 몰입하는 방식은 어떠한 꾸밈도 덧붙이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의 상태로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사진 속 피망은 화면의 중앙에 큰 비중을 차지하도록 배치되었고, 대형 카메라로 클로즈업되어 세밀한 디테일까지 살아있는 듯 묘사되었다. 그리하여 하나의 피망은 그 이상의 무언가가 되었다. 그의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새로운 물건이나 세계를 바라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된다. 누군가는 웅크리고 앉은 사람을 볼 수도 있고 누군가는 깊은 동굴의 서늘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웨스턴의 사진이 주는 즐거움은 누구나 한 번쯤 보았음 직한 평범한 대상을 처음 보는 물건인 양 들여다보게 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그로부터 불러일으켜진 수많은 기억과 상상 속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이다. 웨스턴처럼 담백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만 있다면, 섬세하고 예민한 눈길을 조금만 더 천천히 거둘 수 있다면, 세상은 예기치 못한 신선한 몰입과 이완의 즐거움으로 가득한 보물 상자일 것이다.

신수진 / 사진심리학자

소형 디카처럼 간편하게 찰칵…

DSLR만큼 훌륭한 화질, 당신을 유혹하다

 

'경력 235년' 사진기자 15명의 분석

 

[조선일보 / 채승우기자,  일러스트=김성규 기자]   

 

'미러리스 카메라'. 요즘 잘나가는 카메라 무리를 부르는 이름이다. 영어 mirrorless는 '거울 없는'이라는 말이다. 이상한 이름 짓기다. 거울이란 수동식 카메라 내부의 반사경을 말하는 것이다. 일부러 수동식 카메라와의 관련성을 강조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게다가 거울 없는 카메라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으니, 이 이름은 지금의 카메라들을 완전하게 정의하지도 못한다. 4050 이전 세대들이 어릴 적 나들이 갈 때 사용하던 소형 필름카메라에도 거울은 없었으니까.

정확한 이름은 '미러리스 렌즈교환식 카메라'다. 하지만 모두들 '미러리스'라고 부른다. 누가 먼저 그렇게 불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모두 그 이름에 동의한 듯하다. 어쩌면 사람들은 '미러리스'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이름에는 어떤 주장과 기대가 담겨 있다.



 
다게르가 프랑스 정부로부터 사진의 특허권을 인정받은 1839년을 사진의 시작이라고 부른다. 이때 카메라는 한쪽에는 렌즈가, 한쪽에는 감광판이 놓인 커다란 나무 상자였다. 사진 한 장을 찍을 때마다 감광판을 교체하는 일은 불편했다. 크기와 무게도 부담스러웠다.

1888년 조지 이스트먼이 최초로 롤 필름을 이용한 소형 카메라를 만들었다. 그 이름이 코닥이다. 1920년대 휼륭한 렌즈들의 개발과 함께 소형 카메라의 완성도도 향상됐다. 기본 형태는 소풍 때 들고 다니던 카메라와 같다. 촬영하는 눈(렌즈)과 찍는 사람이 구도를 맞추는 눈(뷰파인더)이 따로 있었다. 눈으로 보는 것과 사진으로 찍히는 것이 완전히 같지 않은 것이 단점이었다.

카메라의 연구는 눈으로 보는 것과 사진으로 찍히는 것이 같아지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먼저 렌즈를 아래위로 두 개 달고, 위쪽 렌즈 뒤에는 거울을 비스듬하게 배치한 카메라가 나왔다. 카메라 바디 위에서 거울에 비친 상을 보고 구도와 초점을 맞췄다. 보는 것과 찍히는 것이 같도록 만들었다. 이 구조의 단점은 카메라가 무겁다는 점이었다. 렌즈를 하나로 줄여야 했다.

카메라 구조가 개선됐다. 렌즈가 하나로 줄었고, 거울이 더 중요해졌다. 하나의 렌즈에 잡힌 세상을 거울로 반사해 보다가 사진을 찍는 순간 거울이 철컥 접혀 올라가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렌즈가 두 개였던 앞의 카메라를 이안반사식이라고 불렀고, 하나의 렌즈를 사용한 카메라를 일안반사식 카메라라고 불렀다. Single Lens Reflex, 줄여서 SLR이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렌즈 하나에 비친 세상을 거울로 반사해서 보며 찍는 카메라라는 뜻이다.

1990년대 디지털화가 시작됐다. 소형 카메라와 SLR도 변화를 맞았다. 소형 디카는 바디 뒤에 모니터가 생기고, 대신 눈으로 보는 구멍(뷰파인더)은 사라졌다. 모니터의 출현은 또 하나의 작은 혁신이었다. 일안반사식 SLR 카메라와 디지털 센서가 결합해 DSLR(Digital Single Lens Reflex) 카메라가 탄생했다.

디지털시대를 맞아 카메라는 일상의 휴대품이 됐다. 카메라는 더 작고 더 간편할 것, 그리고 더 잘 찍힐 것을 요구받았다. 휴대폰 카메라 때문에 더 그랬다.

그 때 미러리스 카메라가 나타난다. 잡종교배형 카메라다. 렌즈를 교환할 수 있는 소형 디카라 볼 수도 있고, 미러를 없애고 전자식 파인더를 갖춘 DSLR로 볼 수도 있다.

우선 SLR카메라의 거울을 없애버렸다. 거울 위쪽에 붙은 프리즘(거울을 통해 뒤집힌 상을 다시 뒤집어주는 '무거운' 유리덩어리)도 사라졌다. 대신 소형 디카처럼 센서에서 나온 전기 신호를 곧바로 볼 수 있도록 모니터를 만들었다. 그리고 사용자를 편하게 하는 소형 디카의 기능이 대거 탑재됐다.

과연 이 잡종은 진화한 소형 디카일까? DSLR의 변종 일까? '미러리스'라는 이름은 자신이 DSLR로부터 변화된 구조라고 주장한다. 소형 디카가 아니라 DSLR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DSLR만큼 '훌륭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편리한' 카메라라고 말한다.

웬만한 편의 기능은 소형 디카의 것을 다 물려받았으면서, DSLR의 후손임을 주장하려면 화질이 좋아야 한다. 디지털 카메라의 화질은 무엇보다 이미지 센서의 크기에 달려 있다. 현재 미러리스 카메라들이 사용하는 이미지센서는 소형 디카에서 사용하던 것보다 5~8배 정도 크다. 렌즈를 마음대로 바꿔 끼울 수 있다는 점도 DSLR에게서 물려받은 우성 유전자다.

하지만 뭔가가 아쉽다. 이미지 센서의 크기는 전문가용 DSLR에 비교하면 절반에 못 미친다. 정해진 센서 크기에서 화소 수 경쟁을 하다 보니 화질은 오히려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DSLR이 가진 그 모든 훌륭한 렌즈들을 사용할 수 있는가도 따져봐야 한다.

새로운 카메라는 언제나 앞선 카메라의 단점을 극복하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해왔다. 과연 미러리스 카메라가 DSLR의 진정한 후계자일지는 더 두고봐야할 듯하다. 미러리스 카메라, 이제 진화의 시작이다.

                                              아이 원츄 카메라 일러스트<br>

 

 

 

전문 다큐도 영화도… DSLR, 너에게 맡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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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카메라' 동영상의 진화

[허영한기자]

불과 5년 전 풀(Full) HD 동영상 촬영이 가능한 DSLR(캐논 EOS 5D MarkⅡ) 카메라가 출시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전문가용 카메라에 왜 이런 쓸데 없는 기능을 집어넣었나"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이 카메라로 촬영된 고품질 영상들이 꾸준히 공개되면서 대중의 반응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영상 촬영의 세계는 기술 개발 속도보다 빠르게 변했다. 그 사이 이 카메라로 촬영한 수많은 다큐멘터리와 영화가 나왔고, 모든 카메라 제작회사에서 후속 기종들을 출시할 때 동영상 기능의 강점을 중요한 부분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지금 출시되는 모든 스틸 카메라에는 당연히, 그것도 가급적이면 HD급(가로 1920 픽셀 이상) 동영상 촬영 기능이 들어 있다. 동영상 촬영 성능은 카메라 구입 동기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스틸 카메라'가 사라진 것이다.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김기덕 감독은 귀국 후 기자회견에서 제작비와 관련한 질문에 "여전히 우리는 '마크 투'로 영화를 찍을 것이고…"라며 필름 값은 걱정 않는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여기서 '마크 투'는 캐논의 EOS 5D MarkⅡ를 말한다. 최근 김 감독은 직접 캐논 매장에 들러 고화질 동영상 기능이 있는 최고급 기종 DSLR 카메라인 1D C를 구입해 갔다는 말도 들린다. 가로 4000픽셀의 고화질 동영상 촬영이 가능한 모델이다. 초당 24프레임이 일반적인 영화를 60프레임까지 촬영할 수 있다. KBS 다큐멘터리 '슈퍼피쉬'는 많은 부분을 캐논의 5D MarkⅡ로 촬영했다. SBS 다큐멘터리 '최후의 제국'은 니콘 D800과 D4로 촬영된 부분이 상당하다.

	KBS 미니시리즈 아이리스2 촬영현장
KBS 미니시리즈 아이리스2 촬영현장. 캐논 EOS 5D MarkⅢ.

	MLB 류현진 투수다큐멘터리 촬영현장.
MLB 류현진 투수다큐멘터리 촬영현장. 니콘 D800.

고급 기종 뿐 아니라 요즘 나오는 보급형 DSLR과 대부분의 미러리스 카메라에도 가로 1920 픽셀의 HD 동영상 촬영 기능이 들어 있다. 캐논의 최신 보급형 DSLR EOS 70D는 듀얼 CMOS 기능을 탑재해 동영상 촬영 도중 자동초점 속도가 월등히 나아졌다. 소니와 삼성전자, 올림푸스, 후지필름 등 미러리스 카메라에 주력하고 있는 업체의 카메라들도 현저히 빨라진 자동초점(AF)과 다양한 촬영모드 등 많은 기능을 탑재했음을 자랑하고 있다.

아직은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데 있어 DSLR 카메라는 보조 역할 수준에 있지만, 이들 카메라로 인해 훨씬 다양한 기법과 시각의 표현이 가능해지고 촬영 장비 부담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촬영기기가 워낙 다양하고 저렴해진 덕분에 촬영 대상과 명확한 아이디어만 있으면 훌륭한 영상 작품을 창조할 수 있다. SNS를 통해 기발하고 반향 큰 영상물들이 넘쳐나는 것도 이 덕분이다.

          

 '체중 줄인' 고성능DSLR      

 

고화질에 Full HD 동영상은 기본
크기 줄이고, 가격도 뺐다
DSLR 진화는 현재진행형

 

[허영한기자]                                               
미러리스(Mirrorless) 카메라가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면 DSLR 카메라 시장은 망해가고 있을까? 유명 카메라 회사의 마케팅 전문가들이 내놓은 대답은 이렇다. "미러리스 카메라의 등장으로 DSLR 판매 규모가 위축된 것은 사실이지만, 판매 대수와 금액 모두 여전히 DSLR 카메라의 점유율이 높다."


	캐논 EOS100D.
캐논 EOS100D.
현재 업계에서 보는 국내시장 비율은 대략 55(DSLR)대 45(미러리스) 정도. 다만 고가의 DSLR보다 가벼우면서 기능이 고급형에 뒤지지 않는 보급형 카메라가 압도적으로 많이 팔리고 있다고 한다. 카메라의 수요는 형식(DSLR과 미러리스) 문제가 아니라 가격도 제품 무게도 가벼운 보급형 기종에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러리스 카메라의 인기로 시장 잠식을 당한 제품군은 오히려 '똑딱이'로 불리는 콤팩트 카메라다. 업계에 따르면 콤팩트 카메라 시장은 거의 명맥 유지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지금 두 가지 카메라의 시장은 좀 더 화질 좋고 잘 찍히는 미러리스 카메라와 고급형 카메라에도 없는 기능을 더 탑재한 소형 DSLR 카메라(예컨대 캐논 100D, 니콘 D5200 등)들이 경쟁하는 모양새다.

본체 내부에 거울이 없어서 두께를 줄일 수 있는 미러리스 카메라는 렌즈와 센서 사이의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센서 크기를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 반면 거울이 달린 DSLR 카메라는 센서를 크게 달기에 유리하지만 두께를 줄이는 것이 어렵다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사이즈가 아담한 미러리스 카메라는 '폼' 나면서 화질도 좋은 카메라로도 알려져 있다. 전문 분야가 아닌 실생활에서의 사진은 어느 정도 고화질이 보장되고 휴대하기 편한 미러리스 카메라가 노리는 시장이다. 그러나 좀 더 고화질의 전문 용도로 사진을 촬영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이 여전히 DSLR 카메라를 찾는 추세가 한 동안 계속될 것이다(더구나 일부 기종의 미러리스는 보급형 DSLR보다 무겁기도 하다).


	니콘D5200.
니콘D5200.
그래서 업체마다 시장 전략이 다르다. 많은 카메라 업체들은 DSLR 시장에서 발을 빼고 아예 미러리스 시장에 집중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DSLR 카메라 기술력이 앞선 업체들은 미러리스 카메라보다는 편리하고 성능 좋은 보급형 DSLR에 집중하는 추세다. 업계에서는 한국과 대만에서만 미러리스 카메라가 특이한 강세를 보이고 있고, 유럽이나 미주 시장은 여전히 DSLR 카메라의 점유율이 월등히 우세하다고 이야기한다.

대형 카메라 제조사인 캐논과 니콘, 그리고 소니 만이 꾸준히 새 모델의 DSLR 카메라를 개발 출시하고 있을 뿐, 나머지 업체들은 미러리스 카메라 기술 개발과 판매에 집중하고 있는 듯하다. 국내에 수입되는 DSLR 카메라 양대 업체인 캐논과 니콘은 미러리스 카메라만큼 가벼우면서 고화질 사진과 동영상 촬영이 가능한 DSLR 제품에 주력하고 있다.

 

 


와이파이, 자동으로 일정한 시차를 두고 사진을 계속 촬영해주는 인터벌 촬영 등 소비자들이 원하는 기능이 대거 포함된 새 모델들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출시되고 있다. DSLR 카메라 전성시대는 끝나지 않았다는 이야기. 결국 제작회사는 힘들어도 소비자들은 즐겁다는 말이다.

[신수진의 사진 읽기]

 

 

포크를 볼 것인가, 그림자를 볼 것인가

                                                                               앙드레 케르테츠, 포크, 1928


사소하고 일상적인 장면 속에서 낯선 조합을 찾아냈을 때, 사물이 나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한 물건이 시야에 가득 차 들어올 때, 빛과 그림자처럼 당연하게 여기던 짝들이 서로 밀쳐내듯 독립적 힘을 지닌 것처럼 보일 때, 특정 거리에 있는 대상을 선명하게 보기 위해 주의를 집중하면 주변이 아득하게 몽롱해지는 것을 느낄 때, 우리는 시각 경험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원초적 즐거움에 빠져들곤 한다.

시각 과학자들에 따르면, 일상적 시각 활동의 첫 번째 질문은 '대상이 무엇인가'이다. 전경과 배경을 구분하여 대상의 이름을 파악하고 나에게 유해한지 아닌지를 파악하는 것이 생존과 관련된 시각 활동의 기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은 어떠한가? 시각 예술 작품도 역시 시각 활동을 통해서 감상하는 것이므로, 작품을 접하는 사람들도 같은 첫 질문을 거치기 마련이다. 하지만 거기에 멈춘다면 예술적 체험의 폭은 터무니없이 줄어들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술 경험은 첫 번째 질문, 즉 생존과 관련된 시각의 일차적 목표를 뛰어넘는 과정에서 비로소 의미를 지니게 된다.

사진은 이런 점에서 매우 불리한데, 누구나 한눈에 답을 얻을 수 있는 속성 때문에 오히려 그다음 단계의 감상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 사진에 찍힌 것은 포크이다. 이렇게 답하고 나면 그다음은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 '답'이 아닌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것은 '포크'가 아닌 '그림자'이다. 포크를 넋 놓고 쳐다보는 것은 한심한 일일 수 있겠지만, 그림자를 바라보는 것은 관찰이며 발견이고 감상이다. 그림자는 주인공이 아니며, 그림자는 변화하는 것이고, 그림자는 밝혀진 세상의 뒷모습이기 때문이다.

먹고사는 것에 우선적 가치를 두게 되면 나 자신을 정답이 있는 세계에 가두어야 한다. 먹고사는 일보다는 소비하고 즐기는 일에서 자신만의 생산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적어도 이 사진을 찍은 케르테츠는 그런 사람이었을 것 같다.

오늘도 포크와 그림자가 묻는다. 무엇이 보이느냐고.


     신수진 사진심리학자




오래전 운현궁 마당에서 있었던 채현국선생 따님의 혼례식 장면입니다.
신랑 키가 장대같은데 비해 신부는 너무 아담합니다.
가객으로 소설가 이호철씨와 정치인 이부영씨 등 낯 익은 분들의 모습도 보입니다.


 [신수진의 사진 읽기] 

                                     또 다른 도전을 자극하는 '실험 정신'의 美德

 

                                                                                       맨 레이, 앵그르의 바이올린, 1924.

맨 레이(Man Ray·1890~1976)는 이미 20세기 초에 여러 매체를 넘나드는 작업을 선보였다. 조각, 사진, 회화, 동영상 등이 그의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뒤섞여 자유로운 표현의 도구로 활용되었고, 이러한 방법은 그에게 과거와 미래를 아우르는 힘을 지닐 수 있도록 해주었다. 과거로부터 영감을 받아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것을 시도함으로써 훗날 누구나 따라 하고 싶은 표현 양식을 지닌 작품들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누드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완벽한 형태미를 보여주는 여인의 뒷모습은 매끈하고 결점 없는 뽀얀 피부와 풍만한 여성미를 아름답게 표현했던 신고전주의 회화를 연상시킨다. 이 작품의 모델이 된 여인은 당시 파리 사교계의 여왕이라 칭송받았던 '몽파르나스의 키키'이다. 터번을 쓰고 단순한 배경 앞에 반듯하게 앉아서 살짝 고개를 돌린 얼굴에서 나른한 매력이 흐른다.

이 작품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누드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완벽한 형태미를 보여주는 여인의 뒷모습은 매끈하고 결점 없는 뽀얀 피부와 풍만한 여성미를 아름답게 표현했던 신고전주의 회화를 연상시킨다. 이 작품의 모델이 된 여인은 당시 파리 사교계의 여왕이라 칭송받았던 '몽파르나스의 키키'이다. 터번을 쓰고 단순한 배경 앞에 반듯하게 앉아서 살짝 고개를 돌린 얼굴에서 나른한 매력이 흐른다. 하지만 앵그르와 키키만으로 이 작품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여인의 뒷모습 사진 위에 현악기 전면에 있는 에프(f) 모양의 그림을 그려 넣은 후 다시 사진을 찍음으로써 전통적인 누드와는 거리가 먼 혁신적인 변형을 만들어냈다. 단순한 붓질을 더했을 뿐인데 키키의 몸은 악기를 연상시키게 되었고 카메라 앞에 놓여 있던 현실은 상상의 세계로 던져졌다. 덕분에 우리는 그의 작품을 보며 가벼운 미소를 지을 수도 있고 오묘한 울림이 있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게 되었다.

예술가들의 실험적 도전이 지니는 가장 큰 미덕은 그가 남긴 작품이 후세 수많은 사람의 또 다른 도전을 자극하는 것이다. 맨 레이의 이 작품은 지금도 수많은 모작과 차용이 이루어지고 있을 만큼 인류 역사에 각인된 작품이 되었다. 평생을 실험 정신으로 무장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하겠지만, 영감을 주고받는 일이야말로 진정 예술적인 것이다.


     




오래전 충청도 산골에서 만난 장면입니다.
호상이라 그런지 달구질하는 회다지꾼들의 소리에 맞추어
상주가 너울너울 춤을 추었습니다.

 


 

 

 

 

 

 

 


 

 

 

 

 

 

 

 

 

 

 

[신수진의 사진 읽기]

 

 

                                               빛을 향해 한걸음, '희망 본능'

 

                                                                                 유진 스미스, 낙원으로 가는 길, 1946

 

거부하기 힘든 매력으로 사랑받는 사진이 있다. 이 작품은 1955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처음 기획된 후 전 세계 순회 전시로 기록적인 성공을 거둔 인간 가족(The Family of Man)전의 마지막 사진이다. 안락하고 평화로운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의 이면에는 고통과 좌절 속에 웅크렸던 작가가 있었다.

자부심 넘치는 원칙주의자였던 유진 스미스(Eugene Smith·1918~1978)는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향해 부단히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사진가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십대에 이미 자신의 사진을 팔기 시작했던 그는 사진이야말로 시대와 인간을 증언하는 도구라는 신념으로 무장하고 수많은 역작을 남겼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중에 '라이프(LIFE)' 소속으로 미군을 따라 일본 등지에서 취재했던 사진들은 그를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러던 중 치명적 부상을 입게 된다. 2년간 지속된 수술과 요양으로 완전히 활동을 멈추고 있던 어느 날 아이들에게 이끌려 집 근처를 산책하던 중 그는 우연처럼 손에 들려 있던 카메라의 셔터를 누른다. 그에게 익숙한 치열함의 현장과는 거리가 먼 일상적 장면에서 또 하나의 전설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죽을 만큼 힘들고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좌절을 느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그런 고통은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 사진이 주는 위로는 아이들의 걸음걸이가 의지에 가득 찬 전진이라기보다는 그저 빛을 향해 본능적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힘겹고 지칠 땐 목표를 향해 억지로 힘겹게 내딛는 대신 잠시 멈춰 서서 자연스럽게 때가 이르기를 기다려도 될 것 같다. 빛이 인도하는 곳으로 향하기만 해도 그 너머에 낙원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우리의 마음을 다독인다.

신수진 / 사진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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