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저널리즘의 전설’ 로버트 카파 탄생 100주년 기념 사진전



1944년 8월, ‘전쟁을 혐오한 전쟁 사진가’ 로버트 카파(1913~1954·사진)는 샤르트르 성당으로 유명한 프랑스 파리 남서쪽 도시인 샤르트르의 거리를 걷고 있었다.

독일군이 점령했던 지역을 연합군이 다시 차지한 직후다. 느닷없이 카파의 귀에 성난 군중들의 외침이 들렸다.

 “창녀, 창녀다. 독일군과 놀아난 부역자를 처단하라.”

한 여인이 공포에 잔뜩 질린 얼굴로 군중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머리를 삭발 당한 그 여인은 어린 아기를 품에 안았다.

독일군 점령 당시 독일 군인과의 사이에 태어난 아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군중들이 모두 “죽여라”를 외쳤다.

그 때 레지스탕스 활동을 한 한 여성이 소리쳤다. “이건 잔인하고 불필요한 짓이다. 저 여인은 그저 군인들의 여자, 내일이면 미군과 잠을 잘 여자일 뿐이다.”

그러나 군중들은 여인을 따라가며 분노를 드러냈다.





카파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겁에 질린 여성을 카메라에 담았다. 유명한 사진 ‘전쟁과 여인’이다.

이 한 컷의 사진은 전쟁이 인간성을 얼마나 어떻게 파괴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유사 이래 끊이지 않은 전쟁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카파는 ‘전쟁과 여인’을 통해 전쟁의 잔인함, 참혹함, 허약하기 그지없는 인간의 본 모습을 생생하게 전한다.

‘포토 저널리즘의 전설’ ‘영원한 종군기자’라 불리는 카파의 사진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 동시에 전쟁에 대한 짙은 혐오가 서려있다.

이는 그를 단순한 저널리즘 사진가를 넘어 포토 저널리즘의 신화, 전설로 만들었다.

카파의 대표작 중 하나인 ‘공화파 병사의 죽음’도 마찬가지다.

‘공화파 병사의 죽음’은 1936년 스페인 내전 당시 코르도바 전선에서 돌격하려던 그의 친구 병사가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지는 찰나를 촬영한 것이다.

피격의 충격으로 순교자처럼 두 팔을 벌린 병사는 두 무릎이 꺾이고, 오른손에 들고 있던 총을 놓치며 땅바닥으로 풀썩 무너져 내린다.

누군가의 아들이고 애인인 한 젊은이가 이 세상과 막 작별하는 순간을 렌즈에 담은 것이다. 그의 사진은 이처럼 비장하다.


‘전쟁과 여인’(1944년, 프랑스)

올해는 ‘카파이즘’이란 용어까지 탄생시킨 로버트 카파의 탄생 100주년이다.

전설적인 사진가 로버트 카파의 사진들이 마침내 한국을 찾아 관객들과 만난다.

경향신문이 주최하고 사진전시기업 디투씨(DtoC)가 주관하는 ‘로버트 카파(Robert Capa) 100주년 사진전’이

8월2일부터 10월28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개최된다.

카파 탄생 100주년과 6·25전쟁 정전 60주년을 기념한 이번 전시회에는 카파 기념재단인

미국 뉴욕의 국제사진센터가 소장한 160여점의 오리지널 프린트가 선보인다.

또 그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상, 다양한 소품도 함께 전시돼 카파의 진면목을 살펴볼 수 있다.

로버트 카파(본명 앙드레 프리드먼)는 1913년 10월22일 헝가리 유대인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1931년 정치적 박해와 반유대주의를 피해 독일 베를린으로 피신한 그는 사진 에이전시 데포트의 암실 조수로 일하면서 사진과 만났다.

그후 스페인 내전부터 노르망디 상륙 작전, 인도차이나 전쟁 등 20세기 현대사의 가장 치열한 전쟁터에서 종군기자로 활약했다.

자기 희생, 죽음을 무릅쓴 기자 정신을 상징하는 ‘카파이즘’은 그의 치열한 작가정신을 대변한다.

카파는 프리랜서 사진작가들의 권익을 위해 평생지기인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데이비드 시모어 등과

‘세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는 취지 아래 다큐멘터리 사진가 그룹 매그넘을 설립, 잠시 경영을 맡기도 했다.

그는 치열했던 삶만큼이나 유명인들과 교류도 활발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어윈 쇼, 존 스타인벡과 함께 전쟁터를 누볐다. 피카소와 마티스 등 화가들과도 깊은 예술적 교감을 나눴다.

카파의 사랑 이야기도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준수한 외모와 예술가의 풍모 등으로 당대 세계적 여배우인 잉그리드 버그만, 비비안 리와 한때 사랑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스페인 내전 당시 탱크에 치여 숨진 첫 사랑 게르다 타로를 평생 잊지 못한 그는 결국 여배우들의 청혼을 뿌리쳤다.

인도차이나 전쟁터에서 사진 촬영 중 타계한 카파는 죽는 순간에도 지갑 속에 게르다 타로의 사진을 간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파의 치열하고 극적인 삶과 작품세계는 영화의 주요 소재가 되기도 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자신의 영화 <라이언 일병구하기>의 초반부에 나오는 전투 장면이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찍은 카파의 사진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최근에는 로버트 카파와 게르다 타로의 애잔한 사랑을 다룬 영화가 제작되고 있다.

영화 <토르>로 잘 알려진 배우 톰 히들스턴이 카파 역으로, 여배우 헤일리 엣웰이 게르다 역으로 출연하는 <카파>(가제)가 그것이다.

 할리우드의 유명 감독 마이클 만 역시 로버트 카파의 삶을 소재로 한 영화 <웨이팅 포 로버트 카파>를 준비하고 있다.

 카파는 마흔 한 살의 나이로 세상과 작별했지만 그의 사진에 대한 철학, 치열한 삶의 자세는 후세에 여전히 생생한 영감을 주는 것이다.

카파는 생전에 자신의 사진 정신, 삶의 태도를 한 마디로 압축했다.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충분히 다가서지 않아서다.”

그가 남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명구는 사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삶에 대한 태도를 이야기하고 있다.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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