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이혁발-
사람들이 목욕탕에서는 스스럼 없어도, 누드 이야기만 나오면 색안경을 끼고 본다.
이십여 년 동안 남성의 신체를 찍어오며 부딪치는 가장 어려운 문제가 상대방의 알몸에 대한 편견을 바꾸는 일이었다.
어눌한 논리지만 집요하게 설득해보지만 그 편견의 철옹성을 깨는데 십중팔구는 실패했다.
그래서 20여 년동안 눈을 씻고 찾아 보아도 겨우 20여명 촬영하는데 그쳤다.
그 것도 그 방면에서는 좀 깨어있다는 예술가들이 대부분이다.
어차피 인간은 자연에서 왔다가 자연으로 돌아 갈 뿐이다.
그 편안한 자연 속에서 거추장스런 껍데기 한 번 벗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그 프로젝트에 동참한 후배 한 명이 얼마 전 내게 다가와 귓속말로 이런 이야기를 했다.
“형! 그 전에 찍은 누드사진 발표하지 마세요. 지금은 지방화단에서의 위치도 있고 해서...”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런 생각이라면 그 전시에 함께 할 자격상실이다.
몇 일전 ‘가족찍기’ 프레젝트의 일환으로 아내와 내가 서로의 모습을 기록한 사진50장씩을 내 놓았다.
그 중 아내가 찍은 나의 알몸 사진 한 장이 공개되었는데, 그 사진들을 본 지인들의 전화 내용도 각양각색이었다.
어떤 이는 “죽이는 포즈지만 쪽 팔리지 않느냐?”는 친구도 있고, 어떤 이는 사진적 리얼리티에 찬사를 보내는
양반도 있었지만 누가 뭐라던 내 생각은 아무도 바꿀 수 없다.
아내와의 알몸사진에 대한 의견충돌을 이야기를 하려다 사설이 너무 길었다.
아내 정영신씨와는 십년 넘게 함께 사진을 찍어 왔으나 단 한 차례의 의견충돌도 없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내가 찍은 아내의 알몸사진 발표에 따른 의견충돌만 삼 년을 끌어 오고 있다.
그도 하잘 것 없는 누드사진이라면 신경 쓸 필요도 없지만, 3년 전 장대비가 쏟아지는 만지산에서 찍은
아내의 그 사진은 다시 만날 수 없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내가 찍은 내 몸은 공개해도 되고, 내가 찍은 아내의 알몸사진은 공개해서 안 된다는
이런 불평등도 속이 터진다. 그 대목에서는 자기가 찍은 알몸사진도 내려주겠다고 대응하지만,
내리고 올리고가 문제가 아니라 사진가로서의 자세를 탓하고 싶은 것이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일 수도 있겠거니 생각하며 매번 물러나지만, 그 생각만 하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오래전에는 사진가 최광호씨가 자기의 어머니 알몸을 찍기 위해 숱한 설득을 해도 통하지 않자
“엄마 알 몸을 찍으면 내가 유명해진다”는 말에 옷을 벗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아내한테 유명해진다는 거짓말이라도 한 번 해볼까? 여러 가지 고민이 많다.
2013. 6.24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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