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김산 사진집 <흐르지 않는 강>

 

'흐르지 않는 강'표지 / 눈빛출판사 / 200쪽 / 값25,000원

 

 

 

우리 국민에게 아까운 국토

지난달 가장 무더운 중복을 맞아 남설악 계곡에서 1박 2일 야영을 했다. 그날 밤, 아름다운 계곡에서 다섯 사람이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가장 연장인 일산에 사는 여아무개 선생은 올해 79 세로 지난 삶의 경력이 다채롭고 화려했다.

그분은 젊은날 공직에 있을 때 이런저런 일로 해외출장을 자주 다녔고, 공직을 떠난 이후에도 해외여행을 많이 다녔다.

그날밤 그 분은 오대양 6대주를 누빈 이야기를 하시면서 결론은 우리나라처럼 산수가 아름답고 아담한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고, 당신의 결론을 다음 한 마디로 요약했다.

"우리 국토는 솔직히 우리 국민에게는 아깝습니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자기가 살고 있는 우물이 넓은지 좁은지 모르고 산다.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이 좋은지 나쁜지 모른 채 살아간다. 나도 그렇게 50여 년을 우물인 개구리로 살았다. 남의 얘기만 듣고 남의 나라가 마냥 좋은 줄로만 알았다.

그러다가 유럽, 미국, 러시아와 이웃 중국과 일본, 동남아 등을 돌아본 후 내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결코, 이 세상에 천혜의 낙원은 없고, 낙원은 거기에 사는 사람이 만든다는 것과 우리나라는 이전에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아름답고 살기 좋은 나라라는 점이다.

그 으뜸 이유는, 우리나라의 산수가 매우 아름답고 기후가 사람 살기에 알맞다는  점이다. 스위스가 아름다워보였지만, 국토 대부분은 산지로 평야가 적은데다가 산세가 험악하고 바다가 없으며, 지하 자원이 빈약했다. 이탈리아의 나폴리, 소렌토가 아름답다고 하지만, 내 보기에는 우리나라의 동해안이나 제주 바다보다 훨씬 못했다.


 


 경북 상주 2009

 

 

 

'금빛 모래의 강'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갈변 살자

이 시는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로, 가수 정훈희씨가 불러 히트한 노래의 가사이기도 하다. 시의 운율이 경쾌한데다가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표현이 잘 어울러 많은 이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아울러 이 시는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을 단적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 

일찍이 영국 왕립지리학회의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영국 성공회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많은 나라를 여행했다. 그는 1894년부터 네 차례에 걸쳐 한국을 방문한 뒤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Korea and Her Neighbours>이라는 책을 펴냈다. 그는 당신의 책에서 서울의 한강을 '금빛 모래의 강'으로 묘사하면서, 그 아름다움이 '천국의 향기와 같았다'고 탄복했다. 이마도 영국의 흐린 템스 강을 보다가 맑은 한강을 보니까, 그런 묘사와 경탄이 나왔으리라.

나는 유소년 시절을 낙동강 강가에서 자랐다. 여름이면 친구들과 소를 몰고 낙동강으로 가서 강둑에서 소를 뜯긴 뒤, 날씨가 무더우면 소년들은 자기가 몰고 온 소를 샛강으로 몰았다. 소들은 헤엄을 곧잘 쳤다. 그러면 소년들은 소꼬리를 잡거나 아니면 소등을 타고 천연의 수상스키를 즐겼다.

우리들은 그 놀이마저도 싫증이 나면 발가벗고 낙동강으로 뛰어들어 피라미를 잡아 자기 고무신에 넣으면서 서로 많이 잡는 시합도 했고, 갯밭의 감자를 서리하여 모래톱에서 구워먹기도 했다. 그 모래들은 금빛으로, 낙동강 역시 '금빛 모래의 강'이었다. 곧 우리나라의 모든 강들은 다 그랬다.

 


 전북 임실 2009

 

 

강은 생명의 젖줄이다

2014년 8월, 눈빛출판사에서 발간한 '증언, 4대강 개발사업 <흐르지 않는 강>'의 책장을 넘기면서 나는 분노했다. 나는 4대강 개발론자에 대한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히고자 책장을 덮고 이튿날 아침 다시 책을 펴고 찬찬히 읽어보았다.

예로부터 강은 생명의 젖줄이라고 했다. 모든 문명은 강에서 비롯되었으며, 강은 흐르며 넘치며 풍요를 기약해 왔다. 이제 그 강은 흐르지 못하는 강이 되어 버렸다. 오랫동안 4대강 개발사진작업을 해 온 작가 김산은 아마 강의 울음을 들은 것 같다. 사진에 나타난 그것은 차라리 절규에 가깝다. 개발독재시대에 잉태된 인간의 욕망은 드디어 자연에까지 미쳐 4대강마저 무참히 할퀴고 찢어 놓았다. 가공할 폭력이며 대재앙이 아닐 수 없다. 김산의 사진은 4대강 사업에 관한 기록이자 증언이다. 수천 년 면면히 흘러온 4대강에 대한 최후의 변론이다.
 - <흐르지 않는 강> 5쪽 '이 책을 펴내며'

작가는 4대강 개발사업 착수 직전인 2009년부터 이 사업이 마무리된 2012년 전후까지 4대강을 촬영해 온 98컷을 이 책에 수록하고 있다. 작가는 무분별한 개발의 기록을 남기고자 4대강 구석구석을 누볐다. 한강 최상류에서 낙동강 하구까지, 산골 작은 개울에서 드넓은 평야까지 그는 곧 사라지게 될 강의 모습을 그는 후세에 남기고자 소명감을 가지고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경기 여주 강천보 2010

 

 

민들은 속았다

이 책 제1부 '흐르던 강'은 개발 이전 '금빛 모래의 강'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예로부터 우리 국토에 면면히 흐르던 자연 그대로의 강이다.

제2부 '수난의 강'은 끊임없는 트럭 행렬, 포클레인, 모래, 준설 등 개발사업으로 찢기고 훼손되어 가는 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죽어가는 강을 위해 작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은 그 과정을 카메라에 담는, 그래서 후일 증언자가 되고, 사료로 남기는 것뿐이었다.

개발론자들은 4대강을 파헤치고자 군사작전처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강에는 불을 밝혔고, 트럭과 포클레인은 물속을 헤집고 다녔다. 그리하여 강변 농경지에는 거대한 모래 산이 수 없이 생겼다. 그러자 사람들은 강가를 떠나야 했고,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도 없었다.

환경운동가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반대하고, 십자가를 세웠고, 목청을 높였건만 강을 죽이는 그 광란만은 막을 수는 없었다. 작가는 개발을 향한 인간의 탐욕에 발기발기 찢겨나가는 강의 끔찍한 모습을 카메라 앵글에 담았다.

 경기 여주 2010

 

제3부 '흐르지 않는 강'은 강의 흐름을 막는 각종 설치물들과 그로 인해 발생한 오염과 녹조 현상을 기록한 사진들로 엮었다. 흐르지 않는 강은 썩게 마련으로, 악취를 풍기는, 날로 번져가는 녹조떼에서  뭔가 하늘의 벌이 스멀스멀 다가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이 완공되면 우리나라는 엄청 발전할 것으로 홍보했다. 홍수도 가뭄도 없어지고 수질문제도 모두 해결될 것이며, 강가에서 수영도 하고 요트도 타면서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되어, 이를 기반으로 선진국에 진입할 것이라고 했다. … 최고 권력자를 비롯한 몇몇 사람의 생각으로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시작되었고, 불과 2년 만에 완공되었다. 그 결과는 지금 눈앞에 보는 그대로이다. 
- <흐르지 않는 강> 5쪽 작가의 말에서

 

▲  경남 합천, 2012

 

 

역천자망(逆天者亡)

사진들을 훑어보다 보니 이 사진들을 찍으며 사진가가 느꼈을 아픔이 전해진다. 반짝이는 백사장을 가진 강둑 위로 나란히 꽂힌 노랗고 빨간 깃발에 쓰인 숫자들, 눈 어두운 나에게는 무의미한 숫자이지만, 그에게는 거기까지 모든 생명체가 물에 잠긴다는 묵시록의 예언으로 보였을 것이다. 너무나 아팠을 텐데 그는 눈을 돌리지 않고 강이 잘리고 잠기고 죽어가는 것을 마지막까지 기록했다.

이 사진들은 누구보다 강을 사랑했던 한 사람이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강을 향해 바친 눈물의 고해성사다. 이 사진들은 또한 고발이다. 눈 밝은 그가 사진으로 남겨놓은 이 증거들은 곧 강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자들과 그들이 이런 짓을 하도록 허용한 우리 모두의 어리석음에 대한 공소장이다. 
- 최승호(뉴스타파 앵커, 전 MBC 피디수첩 피디)

나는 이 책을 덮자 맹자의 한 말씀이 떠올랐다.

천하가 어지러워 질서를 잃으면 소국은 대국의 지배를 받고, 약국은 강국의 지배를 받는다. 자연의 도리를 따르는 자는 유지되고, 이를 어기는 자는 망할 것이다.
- <맹자> '이루장구 상편'에서

그 아름답던 강과 금빛 모래톱이 녹조로 덮이는 강, 흔적도 없이 사라진 모래톱을 보면서 "우리 국토는 솔직히 우리 국민에게는 아깝습니다"는 여 선생의 말씀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왜 그들은 갑작스럽게 천문학적 돈을 퍼부어가며 4대강을 개발해야 했나? 우선 하나의 강만 개발해 본 뒤, 다음 강을 개발하면 안 되는 그 무엇이라도 있었나? 개발책임자를 청문회에라도 불러 그 변이라도 한번 시원하게 들어봤으면 좋겠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른 벌을 하늘은 어떻게 내리는지? 우리 세대, 아니면 다음 세대에게 닥칠 하늘의 재앙이 마냥 두렵기만 하다.


 경기 여주 이포보, 2010

 

[출처: 오마이뉴스 / 박 도 기자]

 

 

 


 

 

 

 

 

 

 

 

 

 

 

 

 

 

 

 

 

 

 


 

 

 

 

 

 

 

 

 

 

 

 

 


[사진가를 만나다]

 

구성수 “‘포토제닉 드로잉’은 디지털 시대 ‘사진의 혁신’”

▲ '포토제닉 드로잉' 앞에 선 구성수 작가 [사진=양문숙 기자]

 

 (뉴스투데이=강이슬 기자)

 

 

색다르다. 기존에 알던 ‘사진’과도 다르고, ‘조각’, 또는 ‘회화’와도 다른 새로운 느낌을 풍긴다. 구성수 사진가의 ‘포토제닉 드로잉(Photogenic drawing)’이다.
 
구성수 작가가 선보이며, 사진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포토제닉 드로잉’은 사진, 회화, 조각 세 가지를 섞어서 새로 만들어진 사진 작품이다. 작업방식은 이렇다. 찰흙으로 만든 바탕 위에 야생화를 올리고, 평평한 판으로 덮어 누른다. 그 뒤 야생화를 떼어내면, 음각이 생기고, 그 위에 다시 석고를 부어 말리면 야생화 모양의 양각이 생긴다. 그 양각에 채색을 입힌 뒤 사진으로 촬영한다. 조각(판)에 채색을 해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이 되는 작품이다.
 
“조각, 회화, 사진 세 가지 매체의 각각 특성들이 묻어나면서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개념의 사진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구성수는 ‘포토제닉 드로잉’ 중 대중들에게 가장 큰 인기를 얻은 ‘야생화’ 연작을 시작으로 ‘낙엽’, ‘청바지’ 연작들을 연달아 발표하며 화제를 모았다.
 

 
▲ 구성수 '야생화' 시리즈 (상단부터 시계방향) Dahlia, Golden coreopsis, Calla, Gloriosa [사진=구성수 제공]

 

그는 어떻게 ‘포토제닉 드로잉’ 시리즈를 시작하게 됐을까. “새로운 사진을 하고 싶었다”는 구성수는 “사진은 항상 예술의 변방에 있었는데, 사진이 예술분야에서 주도 세력이 될 수 있을만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 디지털 시대에 새로운 ‘사진의 혁신’이라고 생각했다”며 시리즈의 의의를 명확히 했다.
 
디지털 시대, 새로운 사진의 혁신을 꿈꾼 구성수는 19세기 사진술 발명가 윌리엄 헨리 폭스 톨벗(William Henry Fox Talbot, 영국)에게서 해답을 찾았다. 19세기 사진의 혁신을 일으킨 톨벗이 발명한 빛으로 그린 그림이란 뜻의 ‘포토제닉 드로잉’에서 아이디어를 착안해 구성수의 ‘포토제닉 드로잉’을 만들어 냈다.
 
“최초로 복제가 가능한 사진을 만든 톨벗을 존경해왔다. 개념적으로 톨벗을 뛰어넘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사진을 만들고자 했고, 그렇게 ‘포토제닉 드로잉’이 탄생하게 됐다.”
 
시리즈 중 처음으로 작업한 ‘야생화’ 연작도 톨벗이 최초의 작업을 식물을 가지고 했기 때문. 하지만 ‘야생화’를 소재로 선택한 이유가 그뿐 만은 아니라는 구성수는 “야생화를 보고 있으면 우리 사는 것과 닮았다.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고 크기나 모양도 다 다르다”고 설명했다.
 
야생화의 실물을 바로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고, 판에 나타난 양각에 채색을 해 작품을 끝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서도 그 결과물의 마무리를 사진으로 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진만으로는 이런 그림을 만들 수가 없다. 사진은 어느 한 지점에 초점을 맞추면 다른 지점에는 초점이 안 맞게 되기 때문. 전체적으로 다 초점이 맞추면서, 원하는 모양에, 원하는 질감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이 방법뿐이다.” 
 

 

 

 

구성수 [사진=양문숙 기자]

 

 

고등학교 때부터 사진을 배운 구성수는 고등학생 재학 시절에도 친구와 월세를 모아 암실을 얻을 정도로 사진에 대한 열정이 뜨거웠다.
 
구성수는 “20년 이상 사진을 해오면서 물론 힘든 일도 많았지만, 잘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항상 내가 해아할 일들을 해나갔고, 그 일들이 ‘잘 안 될 수 없다’는 마음으로 임했다”며 사진에 대한 열정과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지금까지 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열정적인 성격은 꼭 사진에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닌 듯하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걸리는 액자를 직접 만든다. 그냥 ‘만든다’고 표현하기에는 수준급의 실력을 자랑한다. 몇몇 갤러리 아트숍에서 판매될 정도.
 
무엇이든 관심을 갖게 되면 그렇게 끝을 보는 성격이다. 액자 제작에 이은 요즘 관심사는 인테리어다. 전문가의 현장을 쫓아다니며 배우기도 한다. 최근 구성수는 자신의 취미를 살려 직접 꾸민 작업실 겸 미니 갤러리 오픈을 앞두고 있다. 넓은 공간은 아니라지만 구석구석 그의 손길에서 만들어지는 공간이다. 지인들과 함께 차도 마시고, 담소도 나누는 공간을 위해 만들기 시작했다. 또한 그곳엔 그가 작품으로 내놓지 않았던 B컷들을 걸 계획이다.

 

구성수 작가가 촬영한 작업실 풍경

 

 

갤러리 오픈을 앞둔 구성수는 “차 한 잔 마시러 와서 부담 없이 사갈 수 있도록 작은 사이즈의 B컷들을 전시할 계획이다. 사진을 인화해 본 사람들은 알거다. 아무리 작은 사이즈라도 좋은 프린터로 인화할 경우 가격이 상당히 비싸다. 하지만 그 내 작업실에 프린트까지 다 구비되어 있어, 인화지 사고 프린트 할 돈으로 작품을 구매할 수 있게 하고 싶다”며 “작품의 컬렉션이 일부 계층의 특권이 아닌 일반 대중들도 손쉽게 할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전했다.
 
‘포토제닉 드로잉’으로 디지털 시대에 새로운 사진의 혁신을 꿈꾼 구성수는 다음 작품에 작업에 한창이다. 사진을 배우고 있는 고등학생들의 꿈을 다룬 ‘HERO’ 시리즈다. “이 아이들 중 김연아, 박태환과 같은 미래의 영웅들이 나올 수 있다는 의미에서 제목을 ‘HERO’로 지었다. 아이들은 자신의 꿈을 이야기했고,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촬영은 다 마치고, 후작업을 하고 있다는 구성수의 다음 작품이 또 어떤 기분 좋은 충격을 선사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로버트 프랭크, 영화 시사회, 할리우드, 1955 ~1956 /한미사진미술관 제공


중앙 여배우 대신 뒤편 관객에 초점
스스로 중요한 것 선택하는 용기가 젊은 사진가를 전설로 만들어


인생에 진리를 찾아주는 강연이 유행이다. 수년 전부터 다양한 그룹을 대상으로 한 강의가 많이 생겨나더니 이젠 방송에서도 흔한 프로그램이 되었다. 평소에 강의할 일은 많아도 들을 기회는 드문지라 우연하게라도 다른 사람의 강연을 대하면 나도 모르게 집중하게 된다. 세상엔 참 내가 모르는 것도 많고 지혜도 많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런데 정작 내가 강연 방송을 보면서 가장 즐기는 부분은 청중의 반응이다. 어떤 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하고, 또 어떤 이는 딴생각에 빠져드는 것을 숨기려고 애쓴다.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평범함과 특별함 사이에서 고군분투 중인 우리의 초상을 본다.

지혜의 가르침을 찾는 것은 자신의 평범함을 받아들이는 일에서 시작된다. 내가 지금 겪는 어려움이나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누구나 피해갈 수 없어서 누군가는 분명히 그에 대한 답을 찾았으리라고 믿고 싶은 것이다.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그들이 전해주는 지혜를 따라가면 나보다 앞서간 사람들이 오랜 시간 동안 찾아낸 답이 내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자신을 특별하다고 여긴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문제가 아무리 평범하고 하찮은 것이라도 그 앞에서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이유는 그게 바로 하나밖에 없는 '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모르는 인생의 초보자인 것을, 만고의 진리가 무슨 소용이랴. 결국 나를 특별하게 만들려면 나만의 고통을 나만의 방법으로 이겨내는 수밖에 없다.

사진가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 1924~)는 1950년대에 촬영한 '미국인들'이라는 연작(連作)으로 역사에 이름을 새겼다. 스위스 태생의 이민자였던 그는 2년간 미국 전역을 돌며 자신의 눈에 비친 낯선 미국인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지금은 말 그대로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지만 당시 서른을 갓 넘긴 나이였던 그는 이미 슬하에 두 아이를 둔 가장이었고 자신의 미래에 대해 아무런 확신도 가질 수 없는 청년이었다.

평범한 그에게는 고통스러운 현실과 처절하게 싸워야 할 삶이 있었을 뿐이다. 그의 고통은 그의 사진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그가 찍은 사진에서 단시간에 세계의 주인공으로 성장한 미국의 자부심이나 기회의 땅에서 희망을 찾은 미국인들의 성취감은 찾아볼 수 없다. 그 대신 성장과 성공의 이면에 남은 이들의 모습이 담긴 것이다.

할리우드의 영화 시사회장에서 촬영한 이 사진 속 주인공은 영화배우가 아니다. 화면 중앙에 크게 자리 잡은 여배우는 초점이 맞지 않아 흐려졌고 로버트 프랭크의 시선은 저 너머 뒤편 관객들을 향했다. 어찌 보면 그리 대단할 것도 없어 보이는 이 시선에 그를 거장(巨匠)의 반열에 올린 비밀이 숨겨져 있다. 남들이 주인공이라고 여기는 사람을 지나쳐서 다른 곳을 바라보는 눈은 스스로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고 선택하는 용기를 만나서 그만의 특별함을 만들어냈다.

그는 카메라를 들고 여러 곳을 돌아다녔지만, 아마도 세상보다는 자신의 불안한 현재와 소외된 고독감에 더 집중했을 것이다. 그가 단지 세상에만 관심이 있었다면 남들이 보고 싶어 하고 남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찍을 수 없었을 것이다. 철저하게 자신의 고통에 집중함으로써 그 아픔만큼 특별한 '나'를 만든 것이다. 무엇을 바라볼 것인지, 어디에서 답을 찾을 것인지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사진작가 조세현,
아오모리를 거닐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진작가 조세현은 지난 1년에 걸쳐 아오모리에서 사진을 찍었다. 시라카미산지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지정 20주년을 맞아 조세현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아오모리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1. 6월 18일 조세현 작가가 전시 오프닝에 참석한 관객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2,  박재갑 국립의료원 암센터 원장, 조세현 작가, 김문수 경기지사, 한용외 인클로버재단 이사장이 전시 오프닝 행사에 참석했다
3, 약 2600그루의 벚나무에 둘러싸인 히로사키 성.

 


조세현과 아오모리의 조우

사진작가 조세현이 아오모리 사진을 찍게 된 건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됐다. 우리나라 대표 패션 사진작가인 조세현은 2010년부터 아오모리를 배경으로 여러 차례 패션 화보를 진행했다.

그의 작품을 본 아오모리 현의 미무라 신고 지사가 그의 사진에 감명을 받아 이번 시라카미산지의 세계자연유산 지정 20주년 기념 사진전을 조세현에게 의뢰하게 되었다.

일본 네 개의 섬 중 혼슈 북단에 있는 아오모리는 우리나라의 백두산과 위도가 비슷해 사계절이 뚜렷하다. 게다가 다양한 지리적 특성이 있어 벚꽃, 단풍, 설경이 비할 데 없이 아름답다.

조세현 작가는 지난 일 년 동안 아오모리를 6~7회 방문하면서 자연을 렌즈에 담았다.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에서 열린 이번 전시는 조세현의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일본의 아오모리 관계자들에게 또다시 감동을 주었다.

조세현과 아오모리를 이어준 건 어찌 보면 아오모리 명예 지사인 배우 이서진이다. 아오모리의 겨울을 배경으로 이서진을 촬영한 사진을 모아 사진집 『Dream of Aomori』를 출간했고, 동시에 아오모리 현립미술관에서 사진전도 열었다. 반응은 뜨거웠다.

특히 아오모리 현의 미무라 신고 지사에게 남다른 영감을 주었고, 그는 조세현에게 아오모리의 사계절을 카메라에 담아달라고 요청을 했다. 이번 전시는 그간 조세현 작가의 사진들과는 다른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주로 인물 사진을 찍던 그에게 아오모리의 사계절을 표현한 이번 전시는 색다른 도전이다. "제가 워낙 자연을 좋아해서 이런 제안이 들어왔을 때 무척 반가웠어요. 이번 사진전은 저에게도 의미가 깊어요. 저는 원래 인물 작가예요. 이 프로젝트에선 주로 자연의 모습을 담았죠. 잠시 외도를 한 거죠."

이번 사진전은 그뿐 아니라 모두에게 뜻깊다. 아오모리 현의 입장에선 지역을 알릴 기회가 되었고, 관람객들은 그의 새로운 작품 세계를 만나볼 수 있는 기회였다.


 

4, 네부타 축제가 열리는 동안 현민들은 전통 춤과 음악을 준비하고, 마차와 함께 거리를 활보한다.
5, 히로사키 성에선 망루와 성을 둘러싼 수천 그루의 벚나무를 볼 수 있다.
6, 일본의 3대 축제 중 하나인 아오모리 현의 네부타 축제. 매년 8월 초에 열린다.
7, 네부타 축제를 준비하는 시민들

8, 깨끗한 물이 유명한 핫코다의 설경이 티 없이 맑다.

 

자연, 그 거대함 앞에서 셔터를 누르다

아오모리는 일본 네 개의 섬 중 혼슈 최북단에 홋카이도와 근접해 있는데 우리나라의 백두산과 같은 위도에 위치한다. "고려 시대에 백두산이 폭발한 적이 있어요. 그때 화산재가 날아와 이곳에 쌓이게 되었죠. 이곳의 환경은 백두산과 흡사해요. 비슷한 토질에 비슷한 날씨와 환경을 가졌어요. 촬영 때문에 백두산을 몇 번 방문한 적 있었는데 느낌이 비슷해요. 만약 백두산의 정취를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아오모리를 방문해도 좋을 거 같아요." 조세현 작가의 말처럼 이곳은 가장 동양적인 자연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히로사키 성은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벚꽃 명소로 약 2600그루의 벚나무가 성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도와다 호수는 산 위에 있는 이중식 칼데라 호로 가을의 단풍과 함께 유람선을 즐길 수 있다. 산간 지역인 핫코다는 습원과 고산 식물의 보고이다. 겨울철에는 수빙을 관찰할 수 있다.

아오모리가 가장 빛나는 계절은 여름이다. 수백 년 전통의 축제가 곳곳에서 열린다. 8월 초에 열리는 아오모리 '네부타 축제'는 일본을 대표하는 3대 축제 중 하나로 아오모리의 여름을 역동적으로 만든다.

사람 모형을 그려 넣은 장식 수레가 길거리를 활보하고 전통 음악과 춤이 한데 어우러진다. 사계절 중 어느 한 순간도 놓칠 수 없는 곳이지만, 조세현 작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따로 있다.

"아무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핫코다의 '수빙'이에요. 이걸 보려고 해발 1500m정도 되는 곳에 10번도 더 갔어요. '수빙'은 핫코다에서만 볼 수 명물이에요." 수빙은 공기 중 수분이 얼어붙어 만들어진 천연 조각이다.

"저 얼음 속에 나무가 있어요. 이것들은 단지 춥다고 만들어지지 않아요. 적당한 습도와 온도가 있어야 하죠. 저 사진을 보면 마치 사람 같다는 기분이 들지 않나요? 짐을 짊어진 사람 같기도 하고, 어디론가 끌려가는 노예 같기도 해요. 저는 원래 인물 작가잖아요. 나도 모르게 자연 속에서 사람을 찾고 있더라고요. 사진을 찍으면서 많은 것을 느꼈어요. 마음에 가장 크게 와 닿았던 생각은 사람은 자연을 떠나 살 수 없다는 거죠. 자연 안에도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한 게 많아요. 여전히 저에겐 사람이 중요해요."

원래 이 기획의 취지대로 조세현 작가는 많은 풍경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을수록 자신은 인물 사진작가라는 것을 더욱 깨달았다. 자연 속에서도 자신도 모르게 사람의 형상을 찾고 있었고,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솔직히 말하면 영혼을 담아내는 인물 사진이 더 좋아요. 그 촬영 현장에 있는 것이 좋아요. 하지만 풍경 사진도 다른 매력이 있어요. 찍은 사진을 보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어요. 사진을 찍을 때, 공간 안에 제가 있잖아요. 그 상황을 기억하고, 다시 저를 되돌아보는 거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포토그래퍼지만 대자연 앞에서 그는 겸손하다. 이번 작업을 통해 많은 걸 보고 느꼈다는 말과 함께 한 발짝 뒤로 물러선다.

기획_이석창(프리랜서) 사진_아이콘스튜디오 제공
여성중앙 2014 7월호



이명동선생께서는 “사진하려면 독해야 한다”는 말씀을 늘 하시지만,
천성 때문인지 그게 잘 안 된다.

지난 22일 맛있는 삼계탕을 먹자는 전갈을 받고 아내와 함께 선생님 자택이 있는 약수동으로 갔다.

서둘렀으나 선생님께서 먼저 나와 약수역 3번 출구에서 기다려 송구스러웠지만 어쩌겠는가. 

생애 처음으로 사진전을 가져 장안의 화제를 만들었던, 지난 전시 후 처음 뵙는 자리인지라

그 때 찍은 기념사진 몇 장을 드렸더니, 선생님의 드라마틱한 삶이 실린 ‘신동아’ 9월호를 보여주셨다.

그 잡지에 몰랐던 사실이 실려 여쭈었더니, 당시의 숱한 이야기보따리를 꺼 내셨다.

재미있는 일화로는 맛 선도 보지 않고 결혼한 삼일 째 되던 날 아내의 누드를 찍겠다고 방을 스튜디오로 꾸몄단다. 누드 찍는다는 생뚱맞은 이야기에 승강이를 벌이다 촬영용 램프가 바닥으로 떨어져 박살났다는 것이다. 호랑이 만난 사슴같이 놀란 신부가 맨발로 뛰쳐나가 시어머니를 찾았는데, 한걸음에 달려온 어머니가 “미친놈”이라며 꾸짖어, 유일하게 미수로 끝난 사건이 되고 말았단다.

치열한 삶을 살아오며 선생님이 이룬 업적들은 너무 많았다.

1960년 4월19일 경무대 앞의 발포사진은 유일하게 사진으로 남은 ‘혁명최전선’의 기록이 되었다.

유지광을 비롯한 정치깡패들을 찍어 그들을 체포하게 했던 장충단공원집회 사진도,

개표할 때 정전시켜 표를 바꿔치기하는 장면을 찍은 특종사진도 모두 선생님의 작품이었다.

그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4,19 유공자로 지정되고, 종군기자 시절의 공적으로 화랑무공훈장을 두 개나 받았다.

물론 보상을 위해 한 일은 아니지만, 병든 아내를 보살피는 원로사진가의

삶이 너무 안타까워하는 말이다.

 

정부에서 주는 보조비라고는 모두 합쳐 한 달에 36만원 밖에 되지 않고,

왠 만한 노인들에게 다 주는 기초노령연금도 받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노인 연금 20만원인 너 보다는 내가 많으니 내가 밥을 산다”며 지갑을 여신다.

놀란 아내가 계산대에 달려 나가니 “다시 보지 않으려면 계산하라”며 어름장을 놓으시는 것이다.

선생님! 사 주신 삼계탕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부디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십시오.

 

 

 

 

 

 

 

 

 

 

 



 

 

점심을 얻어먹은 노숙자가 신발을 단정하게 벗어놓고 단잠에 빠졌다.
비치파라솔 기둥을 얼싸안은 새우잠으로 햇볕을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있었다.
자면서 입술을 꼼지락거리는 것을 보니 분명 꿈을 꾸는 듯 했다.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복권에 당첨된 꿈을 꿀까? 아니면 돈 많은 과부라도 만나고 있을까?
아니야! 헤어진 가족들을 만나고 있겠지,
꿈에서 깨어나면 그 허무함은 또 어쩔까...

인사동거리에서

사진,글 / 조문호


 

인사동 길을 걷다보면 낯선 사람과 어깨를 부딪히기도 하고 눈길을 마주칠 경우가 많다.
무더운 여름날 사람들과 부딪히는 게 짜증스럽긴 하지만 마음먹기 따라 즐거울 수도 있고,

좋은 인연으로 이어질 기회도 된다.

바보처럼 실실 웃어가며 만나는 사람들과 아무 말이나 건네 보자.
누가 뭐래도 자신이 즐겁고 보람을 느끼면 그만이다.

인사동거리에서 사진을 찍다보면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친다.
사진을 찍기 전에 “한 번 찍어도 될까요?”라며 허락부터 받는다면 찬스는 영영 놓치고 만다.

스냅은 느낌이 오면 무조건 셔터부터 누르고, 웃으며 상대방의 눈길을 맞이한다.
외국인들은 대부분 사진을 찍은 후 눈길이 마주치면 반갑게 웃어준다.

때로는 말이 통하지 않아도 몸짓으로 친근하게 다가온다.

우리나라의 중년이나 노년층들은 어떠한가?
대부분 정 반대의 반응을 보인다. 무슨 적이라도 만난 듯 싸늘한 눈길로 쳐다본다.

행여 시비라도 걸지 않으면 다행이다. 오랜 세월 외세에 당하고, 정치적으로 억눌려 온 기성세대 인지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피해의식이 몸에 배여 견제부터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은 많이 달려졌다. 오히려 손가락으로 V자를 그려가며 적극적이다.
이젠 우리나라의 기성세대들도 바뀌어야 한다. 꼰대소리 듣지 않으려면...

주말이 아닌 평일의 인사동거리는 내국인 보다 외국인이 더 많다.

아마 피부색이 같은 동양인들을 감안한다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이제 인사동은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꼭 한 번 들려가는 관광코스처럼 되어버렸다.
그러나 그 많은 외국인들이 인사동에서 과연 무엇을 느끼고 갈지 그게 걱정스럽다.
싸구려 중국산 관광 상품들은 차지하고, 따뜻한 인정이라도 느끼게 하자.

 

아래사진들은 지난 8월12일, 인사동거리에서 만난 외국인들의 모습이다.

 

 

 

 

 

 

 

 

 

 

 

 

 

 

 

 

 

 

 

 

 



 

 

체면이나 시선 따윈 사치일 뿐이다. 
가진 것 없는 서러운 인생,
빈손에 눈물만 고인다.

어느 누군들 사연 없는 인생없다.
길거리에 뒹구는 나뭇잎도
속내 깊은 이야기는 숨어 있다.

살아가는 모습은 다를지라도 
절절한 아픔들 가슴에 묻고 살기에

덧없는 인생, 자꾸 눈물이 난다.  

 

 

2014. 8. 6 인사동거리에서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