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은 젊은이 천국이지만, 길만 건너면 늙은이 낙원이다.

그래서 동네 이름도 낙원동이다.

 

그 곳은 사회와 가정에서 퇴출 당한 늙은이들 아지트다.

평생 몸 바쳐 돈만 벌며 살았으니, 놀 줄도 모른다.

 

식구들 눈치 보여 별 볼일 없이 지하철 탄다.

공짜 전철로 어디든 못 가겠나마는, 맘 편히 소일 할 수 있는 곳은 탑골공원 뿐이다.

 

탑골공원 담장에는 장기판이 줄을 섰고, 골목에는 대폿집과 국밥집이 줄지었다.

장기판에 훈수 들다 목노주점에서 시간 죽인다.

 

국밥 한 그릇에 추억을 되 세기고, 탁배기 한 사발에 왕년의 무용담이 쏟아진다.

 

그들은 우리 경제를 일으킨 주역이 아니던가?

한 때는 월남전에서 피 흘렸고, 독재정권과 싸운 사람들이다.

 

한 가지 이해되지 않는 것은, 늙은이 대부분이 꼴통 보수라는 점이다.

그토록 보수정권을 지지했으나, 늙은이 복지는 항상 찬밥 신세다.

 

'거리두기로 공원 문이 닫혀도 장기판은 돌아 간다성북동 김씨가 하소연 한다.

 

마누라한테 밥 얻어먹는 것도 눈치 보여요.

돈 없고 힘 없으니, 벌레 취급받기 싫어 나오지요,

해장국 삼천원에다 소주 삼천원, 하루 만원이면 찍 싸요.“

 

이제 친구들이 하나둘 떠나는 게 남의 일 같지 않단다.

덧없는 세월 속에 인생 무상을 체감한다.

 

허리우드에 걸린 영화 간판처럼, 모든 건 바람과 함께 사라질 뿐이다.

 

사진, / 조문호

 

 




한민족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선열의 숭고한 정신을 기려야 할 삼일혁명 100주년을 맞은 날에,

태극기부대들은 추념은 커녕 행사를 방해하고 나섰다.

시위를 하더라도 하루만 기다리다 평소처럼 토요일에 할 것이지,

기어이 백주년을 맞는 삼일절에 몰려나와 초를 쳐야 하나?

아마 북미회담이 무산되는 것을 보고 신바람이 난 것 같았다.





토요일마다 서울역광장에서 난리를 피우는 태극기부대를 보며 진저리를 쳤으나,

마음 한 구석은 그들도 똑 같은 사람이라는 연민의 정은 남아 있었다.

나도 늙었지만, 태극기부대 때문에 노년층을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않았고,

태극기 물결에 가슴 일렁이던 그런 감정은 사라진지 오래다.





지난 삼일절을 맞아  인사동으로 나갔는데, 오전 10시가 되었는데도 한적했다.

인파로 붐비던 평소의 인사동과는 너무 대조적인데,

남인사마당 길거리 한 편에 '대한독립만세'란 글이 적혀 있었다.

눈에 익은 글씨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서예가 김기상씨가 나타났다.






자리를 옮긴 파고다공원은 태극기로 뒤 덥혔는데, 대개가 노년층이라 얼핏 보니 태극기부대 같았다.

그러나 진정으로 선열들을 추념하며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한결 같은 분들이었다.






어느 할아버지가 나누어주는 유인물을 받아보니, ‘2019 신 독립선언서’라 적혀 있었다.

‘이 시대 모든 삿된 것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다“라며 시작된 깨알 같은 글씨에는,

민족에 엄청난 해악을 끼쳐 온 친일, 숭미, 반민주, 반민족, 비인간 등

모든 부당한 세력으로 부터의 독립을 선언 한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 대표적인 집단이 바로 태극기부대가 아니던가?

그 내용을 알기라도 하듯 멸공이라 쓴 차량을 공원부근에 세워놓고, 확성기로 왕왕거리기 시작했다.

“박근혜대통령을 석방하고, 빨갱이는 북으로 가라”는 거다.

엄청난 소음을 일으키는 그들을 제지하는 방법은 없을까?





마침, 그 곳에 마임이스트 유진규씨 일행이 만북 울림에 참여하기 위해 분장을 하고 있었다.

얼굴에다 한반도기를 물감으로 그려 넣고 있었는데, 유진규씨가 나더러 한 번 해보라며 권했다.

늙은이 주름이라도 가려질 것 같아 얌체 같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렇게 하고는 내 얼굴을 내가 볼 수 없으니 잊어버린 것이다.





파고다공원에서 광화문으로 이동하는 만북 울림 행열과

영산줄다리기를 찍는 등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많은 분들을 만났다.

그 뒤 내 빰에 한반도기가 찍혀 있다는 것을 인식한 것은 딱 한 번 있었다.

사진가 최광호씨가 카메라로 내 빰을 찍기에 생각난 것이다.





속으로야 늙은 게 주책 떤다고 욕 할지 모르지만, 아무도 탓하는 사람은 없었다.

신명난 줄다리기를 끝낸 후, 하형우, 정영신, 유진규, 여현수, 김윤기씨를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진규씨는 술 생각이 있는 듯 했으나, 하형우씨가 술을 못한단다.






‘교보문고’ 앞에서 소란 피우던 태극기부대의 시위도 서서히 끝나가고 있었다.

아쉽지만 헤어지기로 하고, 안국역으로 가는 하형우, 정영신씨를 따라 갔는데,

하형우씨가 시장 끼가 도는지, 어디 가서 밥이라도 먹고 가자는 것이다.

정영신씨가 '종로구청' 인근에 있는 도가니탕 집으로  안내했다.






식당에 들어가니, 태극기부대로 보이는 늙은이들이 가득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그들도 하루 종일 악을 썼으니, 배도 고팠을 게다.

갈비탕 세 그릇을 시켜놓고 옆 자리에 앉은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주 평범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태극기부대는 뭔가 다를 것으로 생각한 스스로가 민망했다. 다 똑같은 사람인데 말이다.






그런데, 지나치는 사람들이 나를 유심히 쳐다보았으나 생긴게 워낙 요상해 쳐다보는 줄 알았다.

마침,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이 시위에 참여한 인원이 십만 명이라며 자랑했는데,

하형우씨가 십만 명은 안 된다는 말을 한 게, 불씨를 지폈다.

안 그래도 내 빰에 찍힌 한반도기에 의심쩍게 본 것 같았는데 말이다. 



 


여기 빨갱이가 있다고 말하니, 사방에서 야유와 욕설이 터져 나왔다.

“늙은 게 머리까지 길러 꼴 값을 한다느니, 어떻게 음식이 목구멍에 넘어 가냐는 등

별에 별 욕설을 다 했다. 대꾸하면 판이 커질 것 같아 아무 말도 안 했다.

난, 한쪽 귀가 안 들려 한 쪽만 막아버리면 좆 통수를 불어도 모른다.






아마 뒷자리에 있던 늙은이가 심한 욕설을 한 것 같았다.

도저히 참지 못한 하형우씨가 일어나 ‘지금 무슨 말씀하시냐?“며 공손하게 따지니,

대뜸 일어나 헤딩으로 얼굴을 박아버린 것이다.

급습을 당한 하형우씨의 안경이 날아가며, 뒤로 휘청하며 넘어질 뻔 했다.





군중심리에 다들 일어나 대들면 죽일 것 같은 험악한 기세였다.

내가 종업원에게 경찰을 부르라고 했더니, 금세 돌변해 언제 폭행했냐는 것이다.

정말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었다. 그들이야 죽으면 그만이지만, 자식들이 불쌍했다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자식들 꼴은 보나 마나기 때문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동 ‘허리우드’로 커피 한 잔 하러갔다.

차를 마시며, 그들을 씹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일제에 부역하며 친일로 온갖 만행을 저 지른 부모에 이어,

자식들은 미국 놈에 붙어 알랑방구 뀌는 것들이 인간이겠는가?. 





정영신씨가 자기도 당한 경험이 있다며, 세월호 마크나 한반도기는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촛불집회가 열리던 2년 전, 태극기부대를 찍다 봉변 당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카메라가방에 달린 세월호 뺏지 때문이라고 한다. 



 


결론적으로, 적폐를 청산하려면 강력하게 밀어부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주의를 싫어하는 놈들은 좋은 말로 해서는 고쳐지지 않는다.

더 이상 미적거리지 말고, 도를 넘는 인간들은 구속시켜라


다들 정신 바짝 차려야 겠다.



사진, 글 / 조문호







삼일절을 맞은 인사동 거리는 태극기물결과 만세소리로 넘쳐났다.

95년 전, 그 날의 흥분과 감격을 실감하며 시민 모두가 애국심으로 하나 될 수 있었다.
서울시가 후원하고 종로문화원이 주관한 제95주년 3.1만세의 날 거리축제는 오전 10시부터 남인사마당에서 열렸다.

국회의원 정세균씨와 종로구청장 김영종씨 등 500여명의 학생들과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기념식에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인 정암 이종훈선생의 손 이재봉씨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극단 파발극회의 3.1절기념, 인간조각 퍼포먼스와 뮤지컬 갈라쇼 "광복이 오면" 등 다양한 볼거리가 이어졌고, 페이스 페인팅으로 밀납인형처럼 분장한 학생들의 모습들이 시민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기념식 후, 인사동에서 보신각까지 대형태극기를 앞세워 가두행진에 나섰는데, 보신각에는 박원순시장, 임우철씨, 가수 한 돌 등 많은 시민들이 모여, 33차례의 보신각 종을 타종하는 것으로 행사를 마무리 했다.

그리고 쌈지길에서는 45명의 대학생으로 구성한 오케스트라가 인사동 아리랑과 애국가를 연주하며 감동의 시간을 안겨주었고, 거리 곳곳에는 여학생들의 만세 퍼포먼스가 펼쳐지기도 했다. 

이웃한 탑골공원에서 열린 민족대표33인 및 삼일독립운동 희생선열을 위한 추념식은 오후2시부터 열렸다.

한민족단체운동연합회와 민족대표33인 유족회가 주최한 추념식에는 일본의 만행 살풀이와 독립선언문낭독이 이어졌고,

군악대 연주아래 3.1절 기념노래와 만세소리가 탑골공원을 가득 메우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남인사마당 기념식과 시간 차를 두어 두 곳 모두 많은 시민들이 참석할 수 있었고,
이번 추념식은 보훈처에서 후원한 탓인지 초라하고 궁색했던 예년의 행사는 면하고 있었다.

 

일본인들의 만행을 되 세긴 하루였고, 독도 생각을 가장 많이 한 하루였다.

 

 

 

 

 

 

 

 

 

 

 

 

 

 

 

 

 

 

 

 

 

 

 

 

 

 

 

 

 

 

 

 

 

 

 

 

 

 

 

 

 

 

 

 

 

 

 

 

 

 

 



빅시리즈③ 세상에서 가장 싸지만 푸짐한 '낙원동 먹자골목'

 

 

 

 

 

 

 

 

 

 

 

 

 

 

 

 

 

 

 

 

 

 

 

 

 

 

 

 

 

 

 

 

 

 

 

 

 

 

 

 

 

 

 

입동을 사흘 앞둔 4일 서울 종로구의 파고다 공원 주변 음식점 '부자촌'에서 한 할아버지가 3000원짜리 콩나물국밥을 드신다. 기자의 표정을 보고는 "거참, 그런 안쓰런 눈으로 보지 말라니까"하고 꾸짖어 주신다. 그러더니 하시는 말씀 "정말 맛있어, 기자도 한번 먹어볼래?" 백소아 기자 sharp2046@


[아시아경제 김보경 기자, 김민영 기자, 주상돈 기자]

 

순두부찌개 2000원. 콩나물해장국 2000원. 돼지국밥 3000원.

대한민국에 이런 가격이 가능할까 싶지만 이런 가게가 즐비한 곳이 바로 이곳 낙원동입니다. 일명 '먹자골목'으로 통하는 종로 파고다공원 뒤편이죠. 가게마다 1980년대 후반쯤에 멈춘 듯한 정경은 낯설면서도 낯이 익습니다. 이곳에 오면 저렴한 가격표에 한 번 놀라고, 그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할아버지들에 또 한 번 놀랍니다.

이곳에서 3년째 국밥과 해장국을 2000원에 파는 한 식당주인은 "어르신들 상대로 장사하는데 비싸게 받을 순 없지 않느냐"며 "그나마 가격 부담이 없어서 단골손님은 꽤 있다"고 전했습니다. "월세랑 인건비 빼면 남는 게 뭐 있나. 그분들 주머니 사정 뻔히 아는데. 찾아주는 어르신들에게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장사하는 거지" 식당 주인의 말에 사람 냄새가 가득 배어있습니다.

근처 다른 식당들도 한 끼 식사가 3000원이 넘는 곳을 찾기 힘듭니다. 점심시간 식당 안에는 플라스틱 테이블마다 나이를 지긋이 먹은 할아버지들이 모여 밥 한 그릇에 반주를 곁들이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한 무리의 동년배들과 밥을 먹던 박정수(73) 할아버지는 "암으로 고생하던 마누라가 4년 전에 세상을 뜨고 나니 막막하더라고. 한동안은 집에서 멍하니 있는 게 전부였지.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취미로 바둑을 해보려고 종로에 오기 시작했어. 여기서 싸게 이발도 하고 사람들이랑 같이 밥 먹으러 자주 들러"라고 입을 뗍니다. 학교 동창이나 동향 사람들끼리 모이는 장소로도 낙원동이 제격이라는 설명입니다. 그러고 보니 인근 식당 간판이 '강원도집', '전주집', '충청도집' 등으로 다들 지역명을 쓰면서 할아버지들의 향수를 달래고 있네요.

옆에서 홀로 국밥을 먹던 장모(78) 할아버지는 주인이 유리잔 가득 담아준 '잔술'을 두툼한 손으로 쥐고 한 모금씩 아껴 마셨습니다. 할아버지는 "혼자 한 병 시킬 순 없잖여. 양도 이게 딱 맞지"라는군요. 이렇게 소주나 막걸리를 우리가 흔하게 보는 맥주컵 하나에 가득 담아 단돈 1000원에 파는 잔술도 낙원동에서 볼 수 있는 '명물'입니다.

명실공히 낙원동 대표 장수 식당인 '유진식당'은 할아버지들의 단골메뉴인 설렁탕, 돼지국밥을 수년째 3000원에 묶어 두고 있습니다. 3대째 이어 온 이 집은 1960년대 후반 인사동에서 국밥장사를 하던 할머니부터 아버지에 이어 지금은 사남매 중 삼남매가 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지난 8월 아버지 문용춘(87)씨가 세상을 떴을 때도 삼남매는 장례를 치르기 무섭게 다음 날 식당 문을 열었습니다. 막내 종현(43)씨는 "오랜만에 들른 단골손님들이 아버지 소식을 듣고 내 일처럼 슬퍼하는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지금도 식당 벽면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아버지 사진을 걸어 놓고 손님들이 아버지를 추억할 수 있게 했습니다. 종현씨는 "단골손님이던 아저씨가 아들을 데리고 오곤 했었는데, 이젠 세월이 흘러 손자까지 같이 오더라"고 전합니다.

그는 "어르신들이 '아들아', '막내야'라고 부르며 친아들처럼 살갑게 대해주셔서 고마울 따름"이라며 "자주 오시던 어르신의 발길이 오랫동안 끊기면 '아, 돌아가셨구나'하고 짐작하곤 슬퍼질 때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막내아들'의 마음을 아시는지, 돼지국밥에 반주로 막걸리 한 잔을 걸쳐 얼굴이 발그레해진 한 할아버지가 종현씨를 말없이 꼭 안아주고 식당을 나섰습니다.


 


'유진식당' 위쪽으로 난 좁은 길을 몇 발짝 걸으면 15년 전통의 '고향집'이 나옵니다. 순두부찌개, 콩나물해장국, 선지해장국 한 그릇 가격이 이곳에선 '무려' 2000원입니다. 할아버지들 틈을 비집고 앉아 순두부찌개를 맛봤습니다. 맑은 국물에 순두부가 두 덩이, 그 위에 계란을 톡 깨뜨려 풀고 김 몇 조각을 찢어 올린 게 전부지만 담백하니 먹을 만합니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배추김치와 함께 뚝딱 한 끼를 해치웠습니다.

그때쯤 혼자 식당 안에 들어선 한 할아버지가 고개를 숙이고 국밥을 떠먹던 백발의 할아버지 맞은편에 앉았습니다. 백발의 할아버지는 그를 한 번 쓱 올려다보더니 개의치 않고 식사를 이어갑니다. 가끔은 이러다 서로 말동무가 되기도 한답니다. 혼자 밥을 먹는 노인들이 많은 낙원동 식당에서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입니다.

손님과 주인은 오랜 친구처럼 스스럼이 없습니다. 저녁 시간을 넘겨 식당에 들른 할아버지에게 주인은 "오늘은 늦게 나오셨네"라며 미소를 주고받습니다. 좀 전에 밥을 먹고 얼큰하게 취해 돌아온 할아버지가 문 앞에서 "여어~"하며 인사를 건네자 그는 "조금만 드셔. 많이 드시면 안 돼"하며 어깨를 다독여 드립니다.

근처에 불을 밝힌 선술집 포장마차에선 주인과 손님들이 일행처럼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왁자지껄합니다. 이곳의 안주인 김치찜, 생선구이가 철판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소리가 나면 어르신들의 수다도 정점에 다다릅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저녁이 되자 일대는 정감과 활기가 넘쳐 흐릅니다. 유난히 이곳엔 동네이름에서 따온 '낙원'이라는 이름의 식당 간판이 많은데 넉넉하지는 않아도 어르신들을 정답게 품어주고 보듬어 주는 것이 어쩐지 '낙원'의 모습과 닮아 보입니다.


◆할아버지들이 꼽은 낙원동 맛집


"할아버지, 점심 드시러 자주 가는 집 어디에요?"
말이 떨어지자마자 파고다 나들이 10여년 경력의 '베테랑' 할아버지들의 입이 분주해졌습니다. 지금까지 이 일대에서 먹은 점심만 수백 그릇이 넘을 테니 그럴만합니다. 싸고 맛있는 집을 찾아 나서는 건 어르신들이 누리는 일상의 즐거움이자 한편으론 숙제이기도 합니다. 말로 설명해주는 건 부족했는지 소매를 끌고 손수 이곳저곳 데려다 주십니다. 그렇게 1시간 정도를 누비고 나니 어르신들의 '맛집'이라고 할 만한 10여곳이 추려지네요. 그 중 몇 군데를 소개합니다. 할아버지들만큼이나 나이를 먹어 오랜 기간 손때가 묻은 장소인 것 같습니다.

수련집·부산집
낙원동 파고다 오피스텔 맞은편, 두 사람이 겨우 들어갈 정도의 좁은 골목을 걷다 보면 '수련집'과 '부산집'을 차례로 만날 수 있다. 식당의 간격은 50m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가깝다. '수련집'과 '부산집'의 대표 메뉴는 각각 가정집 백반과 동태백반. 가격은 3000원으로 똑같다. 가게 이름만큼이나 소박하면서 정겨운 분위기를 지닌 두 식당의 음식은 '집밥'과 가장 가깝다는 점이 매력이다. '수련집'은 푸짐한 밥에 국, 여덟 가지 반찬이 소담하게 차려 나오고, '부산집'은 큼지막한 동태살과 얼큰한 국물이 밥맛을 돋운다. 미로 같은 길에 숨어 있는 두 식당은 이제 젊은이들도 입소문을 듣고 찾아올 정도로 유명하다.
 

부자촌
그동안 밀가루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랐지만 파고다 공원 동문 근처에 있는 '부자촌'은 2000원대의 콩국수·냉면·짜장면 등 면요리의 가격을 10년간 단 한 번도 인상하지 않았다. '부자촌'을 운영하는 전영길(66) 할아버지는 "단돈 500원도 크게 느끼는 손님들 때문에 차마 올릴 수가 없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요즘 시내에서 한 끼 가격은 어르신들에게 부담스럽게 느껴질 정도지만 여기선 그 돈이면 친구들한테 한 턱 거하게 낼 수도 있다"며 자랑을 했다. 요즘 전 할아버지는 손님들이 행여 추위를 타진 않을까 싶어 방한 작업에 여념이 없다. '부자촌'은 30여개가 넘는 다양한 식사와 안주가 특징. 최근에는 찜닭이나 전골 등 안주에 술 2병을 곁들인 1만원짜리 세트메뉴를 출시해 손님 모으기에 한창이다.
 

팔도 지명 다 모인 순대국밥집
낙원상가 옆 순대국밥 골목에는 '강원도집', '광주집', '전주집', '충청도집', '호남집' 등 전국 팔도의 지명이 다 있다. 처음 이곳에 국밥집 문을 열었던 주인들의 고향으로, 벌써 40년 전 이야기다. 지금은 새 주인들이 가게를 인수해 장사를 하고 있다. 7년째 '전주집'만 고집한다는 이영옥(66) 할아버지는 이날도 점심으로 국밥 한 그릇과 소주 한 병을 비웠다. 할아버지는 "그동안 주인 바뀌는 것도 다 봐왔지. 그래도 인연이라는 게 있으니까 난 여기만 와" 했다. 골목 초입에서 '허리우드식당'을 운영하는 배영애(67) 할머니는 이 자리에서 30여년간 작은 슈퍼를 하다가 1960년대 후반 극장이 생기고 나서 업종을 변경했다. 가게에는 몇 년 전 TV방송에 출연했던 그의 사진이 상장처럼 붙어있다. 낙원동에서 청춘을 보냈다는 할머니의 얼굴은 그때보다 주름이 꽤 늘어 있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