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준씨는 내가 처음 서울로 올라와  만난 사진가들 중 어느 누구보다 가장 절친했던 사우다.

80년대 초반, 그가 한국사진작가협회에서 일 할 때였다.

 

쥐꼬리만 월급으로 사는 주제에 내가 회사에 면접보러 간다니까 "옷이 그래가지고는 않된다"며

자기 카드로 양복을 사주었던 그런 인정많은 친구다. 

 

그 당시 인사동의 '꽃나라'흑백 암실에 드나들던 사진인 모임이었던 '진우회'(일명:진로회) 맴버로 시작하여  

'한국환경사가회'와 충무로에 있었던 '한국현대사진가회'까지 오랜 세월 같이 일해 왔다.

지금도 사진을 전업으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은데, 그 당시는 여유있는 사람 아니면 버텨내기 힘든 시절이었다.

 

10여년 전 느닷없이 태국으로 돈 벌러 간다며 자기가 아껴 입던 옷가지를 골라 와 내게 전해 주었다.

그 곳은 더운 나라이기에 정장이 필요없다지만, 그 속 깊은 마음을 모를리가 없었다.

이 친구, 처음에도 옷을 사 주더니 떠나면서 까지 옷을 주어, 영원한 작별인사가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는 가끔 한국에 다니러 올 때 만났는데, 태국에서 벌인 사업이 궤도에 올라 돈 걱정없이 산다기에 천만다행이다 싶었다.

 

몇일 전 아내의 핸드폰으로 그가 한국에 왔다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요즘은 장터 촬영으로 바쁜 나 날을 보내기에, 지난 일요일에서야 그를 인사동에서  만날 수 있었다.

지난 번 서울대학병원에서 심장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데,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정기검진 때문에 왔다고 했다.

 

그 좋아하는 술을 끊은지는 오래지만, 심장수술로 담배마저 끊고 이제 목숨 끊는 일만 남았다며 실없이 웃었다.

사동집에서 술 한 잔 없는 만두전골로 재미없는 식사를 하고, 허리우드에서 커피 한 잔 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자판기 스타일의 커피를 주문했는데, 비슷하다며 가져 온 이름도 모르는 커피는 맛보다 크림 문양이 일품이었다.

 

 그동안 살아 온 이야기들을 주고 받다, 태국에서 사진은 찍지않고 골프치는데 소일 한다는 그의 말에

실망을 금치 못했다. 물론 사람들과의 유대관계도 무시할 수 없을지 모르나 그건 아니다 싶었다.

언젠가 틈을 내어 그의 주변 상황을 살펴 본 후, 다시 카메라를 잡도록 설득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는 선배 사진가들의 안부로 화제를 바꾸었고, 선배들이 찍어두었던 사진 활용에 대한 이야기로 연결되었다.

특히 사회 구석 구석을 돌아다니며 사회 생활상의 단면을 찍어 온 다큐멘터리사진들이야 말로

지금은 세월의 무게에 그 가치가 날로 높아가지만 스스로 과소평가하거나, 생활고에 쫓겨 거뜰 떠 볼 겨를이 없다는 것이다.

 

사회에 전혀 주목받지 못한 채 사장되어가는 들의 원고를 찿아내야 한다는데 생각이 모아졌다.

이 사진들을 발굴하려면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전문가들의 도움은 물론,

그 원고들을 검토하여 고르는 것에서 부터 옛 필름들을 스캔하고 수정하는 일들이 간단치가 않다.

결국은 돈이 필요했다. 본인들이 세상을 떠나면 사장되기 쉬운 한국사의 중요한 기록물 수집은

정부에서 발 벗고 나서야 하는데, 누가 그들의 목에 방울을 달 것인지 그것이 문제였다.

 

요즘 이사장 선거로 바람 잘 날이 없다는 '한국사진작가협회'는 도대체 무엇하는 단체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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