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손녀 하랑이를 보게 되었다.
며느리가 넘어져 하랑이 머리를 찧었다는 전화를 받고 부리나케 달려간 것이다.
아들 햇님이가 추석 전부터 밥한 끼 먹자는 연락을 해왔으나,
추석 대목장 찍는 정영신씨와 일정이 맞지 않아 추석 뒤로 미뤘는데,
마치 미룬 것을 탓하는 것 같았다.



 
며느리는 다리에 가벼운 찰과상을 입어 걱정을 덜었으나, 머리가 부딪힌 하랑이가 걱정되었다. 
울다 잠든 하랑이 머리에 외상은 없었으나, 마음 놓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자다 일어난 하랑이의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거침없는 표정에
걱정 같은 건 눈 녹듯 녹아 내렸다. 그래, 넘어지고 깨지면서 자라는 거야. 


 

처음엔 두 늙은이를 낮선 듯 멀뚱거렸으나, 금방 익숙했다.
요상하게 생긴 영감탱이 형색보다 안경이나 카메라 같은 사물에 더 관심이 많았다.
카메라 앵글을 내 눈높이에 맞추면 처다보고, 하랑이 눈높이에 맞추니 바삐 기어왔다.




이제 아랫니가 두 개 나기 시작했는데, 이빨 빠진 나보다 복숭아를 잘 먹었다.
하랑이의 일거 수 일 투족이 얼마나 이쁜지, 온 몸이 부르르 떨렸다.
핏줄은 무서운 것 이었다.




사랑은 마약 인가봐.
한 번 보면 두 번 보고 싶고, 두 번 보면 세 번 보고 싶으니...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주말, 아들 햇님이로 부터 점심식사를 함께하자는 연락이 왔다.
아침 식사를 거른 채 녹번동에 갔더니, 있어야 할 정영신씨가 없었다.
전화를 걸어 보니, 파주장으로 촬영을 떠났다는 것이다.






아뿔사!
운전할 사람 없으면 꼼짝 못한다는 안일한 생각에 미리 연락 못한 불찰이었다.
좀 있으니 손녀 하랑을 대동한 아들과 며느리가 도착했지만, 이미 엎어진 물을 어쩌랴?
이 빠진 것처럼 허전 하지만, 우리끼리 식사하러 갈 수밖에 없었다.
서오능으로 간다는데, 그 것도 정영신씨가 좋아하는 낙지집이란다.






그런데, 낯선 외출이라 그런지, 하랑이의 표정이 편치 않아 보였다.
아무리 얼르도 웃지 않아, 갑자기 옛날 햇님이 얼르던 기억이 떠올랐다.
햇님이 앞에서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펼치며 “까꿍~”하면
까꿍 소리와 함께 나타나는 내 모습에 까르르 웃었다.






백일 무렵에는 대상 연속성이 발달되지 못했기 때문에
내손에 얼굴이 가려져 있다는 것을 미처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마치 마술쇼를 보고 “우와~”하며 반응하는 것처럼,
까꿍 소리와 함께 나타났으니 신기했던 것이다.






그런데, 애기들을 억지로 웃기는 것이 육아 정서발달에 도움이 될까?
어른 들 좋아라고 아기를 억지로 웃기는 것이 좋은지 모르겠다.
아무튼, 웃음이 만복의 근원이라니 해 될 것은 없을 듯하다.






햇님이도 어릴 때 잘 울지 않는 순둥이였는데, 하랑이도 잘 울지 않았다.
애가 자주 우는 것도 피곤하지만, 잘 울지 않는 것도 걱정이다.
많이 울어야 노래도 잘 부른다니까.






손녀 하랑이 때문에, 육아심리에도 관심이 많아졌다.
하랑아! 건강하게 자라다오. 예쁜 인형 사줄게...

사진, 글 / 조문호










하랑아! 고맙다.
너를 만나는 순간 꿈은 이루어 질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천사 같이 잠든 너의 모습을 보니, 온 마음에 평화가 가득했고.
빤작이는 눈동자에서 새로운 희망이 솟구쳤으며,
환하게 웃는 해맑은 표정에서는 세상 시름이 눈 녹듯 녹아내리는 구나.






이 할아비는 평생을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해 본 벙어리란다.
사랑이란 가슴속에 간직하고 입에 뱉어서는 안 된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칠십이 넘도록 고치지 못한 바보다.






너를 만나는 순간, 안아 보고 싶고 사랑한다는 말도 하고 싶었지만,
기어이 아무 말도 못한 채, 카메라 화인더 속에 숨어 너를 훔쳐보기만 했구나.
긴 세월 살아온 네 할미는 물론, 네 아비에게도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했지만,
너를 낳느라 고생한 네 어미에게도 등 다독이는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구나.






살다보니 이심전심이 되었지만, 왜 그리 애정 표현에 인색했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리고 네 아비를 키우며 착하게만 자라 달라고 빌었던 것이 때로는 후회스럽기도 했다.
착한 사람이 못 사는 세상이지만, 너에게도 영악하게 살아달라는 말은 차마 못하겠구나.






네 아비와 어미도 좋은 세상을 위해 싸우는 전사로 나섰지만,
나 역시 착한 사람이 잘 사는 세상을 위해 이 한 몸 바칠 작정이다.
그리고 하랑(嘏烺)이란 이름이 ‘크고 장대한 빛이 환하다’란 뜻을 가졌지만,
하나로 어우러지는 세상에 너의 이름이 불러졌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하랑아! 부디 건강하고 착하게 자라다오.

-바보 할아비가 보냄-






지난 주말 사진후배 성유나씨가 손녀 하랑이 보러가자는 반가운 연락이 왔다.
하랑이가 태어 난지 오래지만, 참고 참아 백일이 될 때를 기다리지 않았던가.
목도 제대로 못 가누는 아이를 데리고 치루는 백일잔치를 탐탁찮게 생각해 왔는데,
다행히도 백일잔치는 생략한다기에 먼저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백일이 되는 날은 비좁은 집에 늙은이 까지 끼어들어 번잡스럽게 만들기도 싫지만,
하루라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다.




 


정오 무렵 들려 함께 식사하기로 했으나, 아침부터 마음이 들떴다.
손녀에게 줄 선물이 걱정 되어 잠을 설쳤는데, 정영신씨가 준비해 두었다기에 한시름 놓은 것이다.
그러나 결혼한 후로 신혼 방은 어떻게 마련하였는지 걱정 되었지만, 차마 물어보지도 못했다.

애비가 도와줄 형편이 되지 못하니 무슨 면목이 있겠는가? 



 



염체불구하고 찾아갔으나, 짐을 옮긴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어수선했다.
손녀 하랑이는 천사처럼 새근대며 잠들어 있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평화로운지, 기쁨을 억누를 수가 없더구나..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지는 것을 보니, 아! 이래서 손주바보가 되는갑더라.
친구들이 손주재롱에 빠져 외출도 삼가며 히히덕거릴 때는 손가락질하였지만,
이제사 이해가 되었다.






모든 아이들이 다 그렇겠지만, 하랑이의 천진난만한 웃음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아들 햇님이가 태어났을 때의 기쁨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구나.
잠에서 깨었을 때만 한 번 울었지, 시종일관 생글거리는 모습을 보니, 참 순하고 착했다.
카메라를 치켜든 요상하게 생긴 늙은이가 이상한지 눈을 동그랗게 치켜 뜬 모습은 또 얼마나 귀여운지,

남은 생은 몰래 숨어 다니며 하랑이만 찍어대는 파파라치가 되고 싶어졌다.






이제 담배 값을 줄여서라도 하랑이 선물 사줄 돈을 꼬불쳐 두기로 작심했다.
세상에 둘도 없는 하랑이의 행복만을 빌어야겠다.



사진, 글 / 조문호




성유나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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