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 서울아트가이드 2020년 6월호]

 


이주원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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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동 사람들’ 블로그에 한 번 만나고 싶다는 여파 이주원씨의 댓글이 달려 있었다.
잘 모르는 분이라 궁금했는데, 칡뫼선생과 함께 가겠다는 말에 나만 모르는 주변 분 같았다.




12일 오전엔 김명성씨 따라 장호원에 갈 일이 있어 일찍부터 차를 끌고 나왔다. 
서울로 돌아오니, 약속시간인 다섯시가 임박해 차 돌려 줄 시간의 여유가 없었다.
인사동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이주원씨와 약속한 ‘화인갤러리’로 간 것이다.




그 자리는 옛날 이해림씨가 운영한 술집 ‘평화만들기’ 자리였다.
수안스님 전시 뒷풀이를 비롯한 많은 일들이 생각나는 예사롭지 않은 장소였다.



쌈지 뒷골목은 오랜만에 들어가 보았는데, 이름도 반가운 '정선곤드레쌈밥'집도 생겼더라.



'화인갤러리'로 바뀐 후 첫 걸음인데, 마침 전시작을 철수하고 있었다.
칡뫼 김구, 여파 이주원 선생 등 여러 명이 참여한 단체전이었다.



칡뫼선생이 먼저 와 있었는데, 걷어내기 직전의 출품작 두 점을 볼 수 있었다.
얼마 전에 있었던 개인전을 못 봐 아쉬웠는데, 두 점이라도 봐 천만다행이었다.



뒷골목 밤 풍경을 그렸는데, 작품에 애틋한 그리움이 묻어 있었다,
칡뫼선생 이야기로는 몇 년 전에 한 작업으로, 그 때는 작품도 제법 팔렸다고 한다. 
왜 주제를 바꾸었는지 모르지만, 계속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그리움에 병든 세상이 아니던가?




뒤 이어 여파선생이 나타났는데, 서울이 아니라 천안에서 왔다고 했다.
하기야! 칡뫼선생도 김포서 왔지 않았는가? 서울역 부근에 사는 거지 팔자가 상팔자가 아닌가 싶다.




난, 이주원씨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는데, 그는 우리 집 숟가락이 몇 개인 것 까지 다 알고 있었다.
블로그 ‘인사동 사람들’ 단골손님으로 가끔 정다운 댓글로 위안도 준 분이다.
온라인 인연이 오프라인으로 이어진 몇 안 되는 귀한 인연이었다.




뒤늦게 임경일씨가 나타나 술 마시러 갈 때가 되었는데, 끌고 온 차가 골칫거리였다.



'툇마루'로 가기 위해 골목을 나서는데, 정영신씨가 지나가다 손을 흔들었다.

사진으로 본 정영신씨보다 더 젊어보인다는 여파선생 말에 내가 사진을 잘 못 찍은 것 같았다. 




술 마시려면 차는 어쩔 것인가?  일단 마시고 보자.
‘툇마루’에서 녹두빈대떡 안주로 막걸리 한 사발 마셔버렸다.
이 좋은 날, 술 한 잔 마시지 못한다면 무슨 재미로 살겠는가?




이차로 간곳은 벽치기 골목에 있는 ‘유목민’이었다.
요즘 술 마시러 인사동에 잘 나오지 않아 몇 달 만에 들렸는데, 대개 처음 보는 손님이었다.




화가 여파선생은 사진 작업도 병행한다는데, 그 작업들이 궁금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이인섭선생과 주인장 전활철씨가 나타났다.



술은 땡기지만, 몸에서 그만 마시라는 신호가 왔다.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면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멀리서 온 손님이라 끝까지 자리를 지켜야 했지만, 힘들어 견딜 수가 없었다.




대리운전을 부르라며 여파선생이 따라 나섰지만, 손을 흔들었다.
주차비도 제법 나왔을 텐데, 여파선생이 계산해 버렸다.
차를 끌어 내 ‘아라아트’ 옆 빈자리에 세워두고 지하철 타러 간 것이다.



내일 새벽 다시 나올 생각하면 귀찮지만, 어쩌겠는가?
“성질 마이 죽었다. 음주면허증으로 그 술 마시고 두 번 걸음하다니...”

사진, 글 / 조문호






























몽유병에 걸렸나? 인사동 귀신에 홀렸나?




볼 일도 만날 이도 없지만 무작정 인사동 간다.
전화도 멀리하며 몽유병 환자처럼 떠돈다.



병중의 병이지만 나만 걸린 병은 아닌 것 같다.
인사동 나온 사람들이 무슨 볼일 있겠는가?




우크라이나 악사는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연주하고,
또 한 명의 거리 악사는 ‘베사메무초’를 부른다.




향기로운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동산도 없지만
키스할 사람도 없다. 있어도 마스크 걸려 못하겠네.




꼬맹이는 솜사탕을 즐기고 부랑자는 단잠을 즐긴다.
세상살이 길든 사람은 즐길 겨를조차 없다.




길가는 사람은 바람만 날리고, 가게는 파리만 날린다.
있는 놈은 버티겠으나, 없는 놈은 접어야 할 것 같다.




중국 놈들 없어 속은 후련하지만, 장사꾼 마음은 새까맣다.
그래도 새로운 건물은 자꾸만 들어선다.




‘동일빌딩’ 옆에 없던 건물이 떡 버티고 섰네.
눈 감고 다녔는지, 벼락에 콩 볶았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 거리에 그 풍경이나, 카메라 셔터만 날린다.

사진, 글 / 조문호







































‘통인가게’ 관우선생 만나러 인사동에 갔는데, 김이하시인 사진전부터 들리느라 시간이 좀 지체되어 버렸다.




늦었지만 발길을 재촉했는데, ‘상광루’에 있어야 할 관우선생 일행이 인사동 거리에서 내 카메라에 포착된 것이다.
배일동 명창과 권재일 한글학회장, 변작가 등 여러 명이 낙원동 ‘다리밑 집’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었다.




관우선생이 발굴한 단골집 ‘다리밑 집’은 이제 낙원동 명물이 되어버렸다.
다른 집은 손님이 없어도 포차나 다름없는 그 집은 항상 손님이 넘쳐난다.
그 날도 손님이 많아 길가에 자리 잡았는데, 바람은 또 얼마나 시원한지 코로나도 도망칠 것 같았다.




관우선생이 조제한 막맥에다 감자부침, 닭발 등의 일품 안주가 나왔다.
난, 통풍 때문에 한 번도 막맥은 마셔보지 못했지만, 맛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생맥주에 막걸리를 회석하는 막맥은 냉동시켜 차게 만든 생맥주 잔도 한 몫 한다.
결국은 생맥주와 막걸리의 회석 비율이 맛을 좌우하는데, 관우선생의 칵테일 비결은 아무도 따를 자 없다.




관우선생은 ‘통인가게’를 찾는 벗들을 대부분 이곳으로 안내한다.
처음엔 돈 많은 재벌이 코 구멍만 한 가게를 찾아 의아해 하지만,
막맥과 안주를 맛보고는 다들 역시를 연발하며 단골이 되어버린다.




그 날은 얼마 전에 일어났던 웃지 못 할 헤프닝 한 토막을 들려주었다.
패션과 아트, 음악, 그림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울러 독특하고 실험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한
팝아티스 까스텔 바작이 통인가게를 방문하여 이 집으로 안내했단다.
그 역시 막맥의 독특한 맛과 포차 같은 술집 분위기에 반해버린 것이다.
기분이 좋았던 그는 낙원상가 계단 벽에 멋진 벽화를 그렸다고 한다.




그 장소가 아니면 어울 릴 수 없는 대단한 작품이 탄생해 다들 인사동 명물하나 생겼다고 좋아했다는데,
다음 날 가보니 깨끗하게 지워지고 없더라는 것이다.




알아보니, 건물관리인이 고생스럽게 지웠다는데,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명작이 무지한 관리인의 실수로 사라지고 만 것이다.
아무리 몰라도 그렇지, 척 보면 똥인지 된장인지는 분별해야 할 것 아닌가?




작가도 그 때 기분이 아니면 다시 그릴 수 없는 그림이라며 아쉬워했다는데,
직무에 충실했다는 건물 관리인만 탓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 소리를 들은 권재일회장은 그 벽화를 지운 이야기 자체가 예술로 더 오래 회자될 수 있을 것이라며 위안했다.



이차를 가자는 관우선생 말에 다들 일어났다.
잘 가던 ‘유진식당’ 가는 줄 알았는데, 경운동 방향으로 이끌었다.
흥선대원군 집터 골목으로 한 참 끌고 가서는 허름한 식당으로 안내했는데,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싸고 맛있는 집만 찾아다닌다.




그런데, 이차로 간 음식점에서 아쉽게도 음식 맛을 보지 못했다.
전 날 밤 컴퓨터와 노느라 날밤을 깠는데, 취기가 오르니 졸음이 쏟아졌던 것이다.




배일동 명창이 부르는 ‘사철가’ 소리에 화들짝 잠을 깬 것이다.
관우선생이 술만 한 잔 들어가면, 이산 저산 찾는 노래가 아니던가.
폭포가 쏟아지는 것 같은 우람한 소리와 애간장 녹이는 절절한 소리에 귀가 번쩍 뜨인 것이다.




언제 이런 술집에서 대명창 소리를 들을 수 있겠는가?
까스텔 바작의 벽화는 하루라도 버텼지만, 배명창 소리는 그 자리서 날아갔다.
어차피 예술이나 인생이나 사라지는 것은 매일반이니, 어디 한 번 멋지게 놀아 보자구나.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드라
나도 어제 청춘이러니
오날 백발 한심허구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왔다 갈 줄 아는 봄을
반겨 헌들 쓸 데 있나
봄아 왔다가 가려거든
가거라 네가 가고
여름이 오면 녹음방초
승화시라 옛부터 일러있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돌아오면 한로상풍 요란해도
제 절개를 굽히지 않는
황국단풍도 어떠헌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돌아오면 낙목 한천 찬 바람에
백설만 펄펄 휘날려
은세계가 되고 보면
월백 설백 천지백하니
모두가 백발의 벗이로구나“

사진, 글 / 조문호


































코로나19 방역, 한국 사람들 자신감 확인


[스크랩] 브레이크뉴스 / 문일석


▲4월11일 오후 인사동 거리. ©브레이크뉴스

▲ 4월11일 오후, 인사동 거리. ©브레이크뉴스
 
 
4월11일 오후 3시, 인사동에 들렀습니다. 기자로서, 희망을 전달합니다!
종로구 인사동 거리 인파가 코로나19 이전과 비교, 80%쯤 돌아왔네요.

아주 좋은 소식입니다!
코로나19, 방역에 대해 한국사람들 자신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생 끝, 새희망 시작...인사동에서 거리 풍광을 사진으로 긴급하게 전달합니다!

이제, 안심하십시오 ! 새로운 세상이 시작됐습니다. 우리의 새 세상이 열렸습니다





얼마 전 'DESIGNERSPARTY' facebook에 올라 온 사진을 보니,
고 임인식 선생께서 1954년도에 찍은 인사동사진이 한 장 올라와 있었다.
너무 친근하면서도 낯선 장면이었다.



그 당시는 시골서 살던 꼬맹이 시절이라 인사동은 커녕 서울도 와보지 못한 때였다.




일단, 그 사진과 가까워 보이는 장소를 찾아 인사동에 나가 보았다.
월 말이 되면 다음 달 전시소식 나오는 안내 책을 구할 일도 있었다.




코로나 여파로 인사동은 마스크로 가린 사람들이 가끔 오갈 뿐, 한산했다.
돌 턱에 웅크려 자는 여인이, 오늘의 현실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봄 냄새 풍기는 울긋불긋한 여인네 옷들도 진열되었으나 구경꾼은 없었다.
모처럼 할머니 따라 구경나온 어린이들만 신났다.




50년대 인사동 사진 속 장소는 아무래도 옛날 엠비시 사옥 자리인 '덕원빌딩' 터가 아닌 가 싶다
‘통인가게’ 관우선생이 그 무렵 살았으니, 한 번 확인해 봐야겠다.




인사동 관광 안내소에서 ‘서울아트가이드’4월호 한 권을 구했는데,
책 두께가 예년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그 만큼 전시가 없다는 이야기다.



이럴 때 일수록 작가들이 하던 일을 평소처럼 이어 갔으면 좋겠다.
오프닝 파티 없이 쉬엄쉬엄 들리는 풍토로 바꾸고, 때에 따라 대관료도 활인받자.




나온 김에 ‘나무화랑’에서 열리는 김주호씨 ‘태평천하’를 보러갔다.
요지경 속의 풍속을 펼쳐놓고, 오늘의 현실을 비판하며 풍자하고 있었다.
우습지만, 슬픈 것은 우리들의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요즘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코로나가 잘 증명해 주고 있다.
진심으로 정 부칠 수 있는 그런 인사동이 되었으면 좋겠다.

사진, 글 / 조문호









고영민 시인

(사)천상병시인기념사업회와 천상병시상운영위원회는 3월초 천상병시상 심사위원회(위원장 고형렬·시인)를 열어 ‘제22회 천상병詩문학상’ 수상자로 시인 고영민(50)을 선정했다. 수상작은 시집 『봄의 정치』(창비2019)다.

천상병시상심사위원회는 2019년 2월부터 2020년 2월까지 출간된 시집 가운데 데뷔 10년 이상된 시인을 대상으로 역대 천상병시상 수상자를 비롯해 추천위원들의 추천을 통해 모두 20여 권의 시집을 추천하였다. 1차 예심을 통해 다수 추천을 받은 6권의 시집으로 압축하였고, 3월초 본상 심사위원회를 열어 객관적이고 공정한 심사 끝에 고영민 시인의 『봄의 정치』를 최종 선정하였다.

고영민 시인의 작품은 시인 특유의 사물에 대한 겸허하고 곡진한 마음으로 ‘온기(溫氣)’를 불어넣으며 평범한 일상을 비 일상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다고 의견을 모았다. 인간과 사물 그리고 자연에 대한 불경(不敬)의 태도가 미만한 시절에 고영민 시의 미덕이 여기에 있다고 보았다. 표제작 「봄의 정치」에서 “봄이 오는 걸 보면/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노래하고, “손을 빌려준다/ 따뜻한 피가 도는”(「조약돌」)라는 표현에서 시인의 시적 지향을 잘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시집에서 은유적 상상력의 만개(滿開)가 유감없이 발휘된다는 것도 중요한 시적 특징이다.

시인은 『봄의 정치』에서 ‘죽음’과 ‘상실’이라는 주제를 집요하게 다룬다. 특히 어머니(아버지)의 부재(不在)를 다루는 시의 행간에는 그리움의 정동과 더불어 자기 앞의 인생을 ‘산다는 것’에 대한 깊은 사유의 힘이 느껴진다. 어머니의 부재를 다룬 시들, 예를 들어 「망(望)」 「만두꽃」 「입속의 물고기」 「톱밥 꽃게」 같은 시들이 그러하다. 예를 들어 “톱밥 속의 꽃게”의 모습에서 “톱밥 속의 어머니”를 떠올리며, “배 속에 가득 차 있는 것은/ 암이 아닌/ 알일까”(「톱밥 꽃게」)라고 읊조리는 시의 행간을 보라. 이런 태도는 「철심」에서 “영영 타지 않고 남는 게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라고 자문하는 시적 태도와도 잘 통한다.

시의 언어가 절제되어 있고, 시행 또한 간소하다는 점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이러한 시적 특징은 언어를 최대한 ‘가난하게’ 구사했던 천상병 시의 시정신과도 잘 부합한다. 고영민 시인이 “가난은 나의 삶 자체”(「가난의 증명」)라는 시적 스탠스를 잊지 않으며, “구수한 불 냄새”(「불 냄새」)나는 “촌놈” 시인으로서 사물의 근본을 생각하게 하는 시를 쓰고 있다는 점에서 3명의 심의위원들은 전원일치로 천상병시상 수상자로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고영민 시인은 1968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 2002년 『문학사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악어』 『공손한 손』 『사슴공원에서』 『구구』가 있다. 지리산문학상, 박재삼문학상을 수상했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천상병예술제가 취소되어 제22회 천상병詩문학상 시상식은 따로 열리지 않으며 별도의 자리에서 상패를 전달할 예정이다.

데일리경제 / 최세영기자 (http://www.kdpre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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