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 서울아트가이드1월호]

정종섭 서울대 교수 인사동서 전시

 

[조선일보:이순흥기자]
 
"어떤 학문이든 그 안에만 매몰되면 발전이 없습니다. 새로운 영감을 주는 재료, 저는 그게 '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25일 성탄절 오후 서울 인사동의 한 미술관에서 만난 정종섭(56)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시할 그림들을 배치하느라 분주했다. 이날은 '헌법학자'로 널리 알려진 정 교수가 지난 2년 동안 그려온 그림을 대중에게 처음 선보이는 자리. 30일까지 서울 인사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볼 수 있다.

정 교수는 "전시할 수준인지는 모르겠다"며 쑥스러워하면서도 자신의 그림을 '신(新)문인화'라고 소개했다. '매화(梅花)'를 소재로 한 그림들은 '먹'으로만 그린 기존 문인화와는 달리 아크릴 물감을 사용해 색채가 화려했다. 그는 "'조선시대 문인들이 지금 살고 있다면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면서 "재료는 다르지만 그림이 갖고 있는 의미, 즉 문인들의 지조와 신념만큼은 고스란히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지난 25일 오후 서울 인사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정종섭 교수가 자신이 그린 ‘신문인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수백 년 전 유행했던 문인화가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가질까? 정 교수는 "요즘에는 예술을 하는 학자들이 거의 없지만 조선시대에는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 선생 등 지식인들 대부분이 그림·서예 등 미적 활동도 왕성하게 했다"면서 "그림과 같은 예술 활동을 통해 미적 소양을 기른다면 원래 학문 분야에서 더 큰 가능성, 즉 '영감'을 발휘할 수 있다"고 했다.

정 교수는 40년 이상 서예를 공부하고 최근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효과를 톡톡히 봤다고 말했다. '헌법 개혁' 분야에만 30년 이상 몸담은 그는 "사람들이 나에게 '똑같은 공부 수십 년 하는 게 지겹지 않으냐'고 묻는다"며 "하지만 예술 활동을 통해 얻는 영감들이 내가 연구하는 학문을 더 풍부하고 새롭게 만들어 지겨울 겨를이 없다"며 웃었다.

정 교수는 학생들에게도 미적 활동을 적극 장려한다. 그림이나 서예는 학생들이 당장 시작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는 분야이니, 대신 사진을 찍어보라고 권유한다. 그는 "전공은 법학이지만 제자들과 함께 미학과 관련한 토론도 자주 한다"면서 "이런 과정을 통해 꾸준히 '자극'을 받는 학생들은 기존 틀에서 벗어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갖게 된다"고 말했다.

드로잉의 정의

황재종展 / HWANGJAEJONG / 黃載鍾 / drawing

 2013_1225 ▶ 2013_1230

 

 


황재종_서울역_파스텔_56×76cm_2013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황재종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3_1225_수요일_04: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갤러리 각GALLERY GAC

서울 종로구 관훈동 23번지 원빌딩 4층Tel. +82.2.737.9963,9965

www.gallerygac.com


황재종의 다섯 번째 개인전이 인사동 갤러리각에서 2013년 12월 25일부터 30일까지 열린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2013년 현재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세계의 리더들의 초상화와 캐리커처, 군상 형식의 누드크로키, 생활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구성한 드로잉 작품을 전시한다. ■ 갤러리 각

 


황재종_하행선_붓펜_26×28cm_2012


5분의 미학 ● 그림은 고백이다. 그 사람의 마음의 모습을 도화지 위에 최선을 다해 보여준다. 5분 동안의 발언. 5분에 또 5분의 마음을 더하고 포개고 엮고 이어서 연결 짓는다. 그렇게 두 시간 동안 자기만의 세계를 탐험한다. 그림은 무현금(無絃琴), 줄 없는 거문고다. 글자 없는 시다. 저 낱낱의 알몸은 화가의 영혼을 노래한 시어(詩語)다. 아니다. 차라리 그것은 별이다. 오늘날 미학이 부실한 아득한 오밤중에 반짝이는 북극성보다 더 빛나는 이름을 얻지 않은 별꼴이야. ■ 황재종

 


황재종_잉태 孕胎_파스텔_54.5×36cm_2006


마음으로 빚은 삶의 담화, 우리네 이야기 ● 1. 작가 황재종은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쓴다. 인간사에 당신의 마음을 덧댄 에세이를 한권, 두 권 엮어내기도 한다. 수려하면서도 투박한, 그러나 소박함과 정이 듬뿍 배어 있는 그의 글들은 흥미롭고 재미있으며, 구석구석 알알이 새겨진 그림들은 화제(畵題)와 걸맞은 함의를 덧칠한다. 그야말로 내외의 일치이다. 그의 작업들은 어떤 대상에 대한 예민한 묘사를 넘어 '인간의 속'을 담는다. 현실의 리얼리티를 기저로 역사속 사람들을 당대 정직한 기록과 고유의 색깔로 화폭에 투각하고 평범하나 누군가에겐 소중한 이들의 삶을 옮기며 초상을 통해 자신만의 어법을 만들어 간다. 그런 점에선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드로잉도 같은 등선에 놓인다. ● 수없는 선(線)들이 화면을 헤집고, 자유로운 필선들이 흐트러졌다가 모이길 반복하더니 이내 도드라졌다가 사그라지는 드로잉, 그 한 점에서 생성과 소멸, 복잡함과 단순함, 격정과 고요를 본다. 이는 계산된 게 아니다. 무언가의 힘에 이끌려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맞으며, 의식의 대각선에서 펼쳐내는 진원(삶 이면에 놓여 있으나 보이지 않는, 그러나 존재하는)에 대한 탐구의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이 '신체' 외형의 재현이 아닌, '참사람'을 담아내려는 작가적 의지의 투영이라는 것을 부정하기 힘들다. ● 앞서도 거론했듯 오랜 시간 천착한 '사람'은 황재종 작품의 특징이자 변별력이다. 황재종은 그림이라는 'intermediation'을 통해 우리네 삶을 진득하게 포박하고 있다는 것이 옳다. 때문에 작가 황재종을 말하며 인간에 대한 언급을 회피할 수 없음은 그만큼 자주 소환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러나 주목해야할 부분은 그의 모든 작업을 관통하는 예에서처럼 사람자체는 현상, 즉 표현의 전(前)이라는 점이다. 내부에 갇힌 내면-사상 등을 끄집어내는 것이 후(後)이자 표현의 궁극이다. 물론 그의 작품에서 우러나는 향과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의 모체도 실은 그곳에 있다.

 


황재종_구구할매_연필_54×38cm_2013


2. 사상의 다른 말은 사실 휴머니즘(humanism)이다. 동시대 절망을 건져내는 유일한 단어는 인간애(humanity)다. 작가 자신의 일상성과 예술을 투영한 질퍼덕한 인간애는 황재종 작업의 종심이요, 그의 글과 그림은 바로 치장되거나 수식되지 않은 이 휴머니티를 각주로 한다. 실제로 작가는 나(Ago)를 인용한 객체지향의 관점에서 현실세계를 이해하고 자신과 같거나 다른 사람들, 또는 인근의 무엇과 구별시켜 주는 특별한 종합의 기반으로 인물이라는 미적 대상을 수용한다. 지금도 운영 중인 '그림패'도 그렇고 '인물화'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들도 그연장이다. 물론 그가 펴낸 책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이들 작품은 현실세계에 대한 인식을 재구성하며 자유로운 심적 평형을 유지하고 있다. 때로 특정 인물만의 고유성과 이미지를 간직하지만 반면 잠잠한, 사유의 틀로도 변형되곤 한다.) ● 조형으로서의 사람, 그 중에서도 인물화는 작은 동작마저 포착하는 섬세한 시선 아래 새 생명을 얻는다. 마치 동양화의 수묵채색과 같은 발색, 역사 속 인물들에서 엿보이던 뛰어난 사실적인 묘사 등, 인물화라는 장르가 안고 있는 특이 사항을 거의 내포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특정인이 지닌 고유의 미와 눈으로 분별하는 미, 인간 내면에서 분출되는 솔직한 감성과 사고의 아름다움에 대한 공감을 끌어내는 미, 정지된 현재와 능동적인 심적 상황이 교묘하게 합일됨은 그의 그림이 지닌 차이를 발견토록 하는 요인으로 자리한다. ● 그의 드로잉은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끼며 살아가는, 삶의 다단한 심상을 복잡함 속 정적으로 치환하는 예술적 도구다. 훌치는 선(線)은 복잡하게 돌아가는 우리네 사회와 닮았고, 그 사이에서 피어난 대상은 그럼에도 질서가 부여되는 현대문명 속 인간사와 흡사하다. 여체가 등장한다하여 요요연연한 것만은 아니다. 그건 차라리 삶에서 느끼는 오만가지 감정을 긍정적으로 애착하는 기나긴 여정의 한 선수(船首)에 해당한다.

 


황재종_누드크로키_수묵_91×61cm_2009


3. 작가가 예술로 어느 지향점을 발견하고 찾아가는 여정은 그리 녹록치 않다. 자신의 관념이 곧 표현이고 그 표현이 다시 그림이라지만, 작가는 예술과 세상사의 교합지점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가 적지 않다. 예술인과 현실인의 괴리, 매 순간의 인생 여정에서 체감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치는 것도 동시대 예술가들에겐 하나의 숙명이다. ● 다만 그 교합지점이 또 다른 어느 지점과 만나 응축-폭발하는 찰나 예술성은 창궐한다. 정확한 이념과 실천력 아래에서만이 향후 과제(課題)는 대비적으로 산화된다. 황재종은 그 키(key)를 인체해부에서 찾는다. 그저 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오감으로 느낀 것을 담는다. 이는 기초적 조형언어의 간극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비시각적 언어마저 끌어들이는 지남철 역할을 한다. ● 지금도 작가는 늘 두어 발 앞서 단발적인 수준에서의 멈춰짐을 꺼려한다. 일련의 만족과 나아감에 대한 욕구가 작가 본연의 미의식과 자아라는 정체성을 움직이고, 내적으로 동시적 관점을 내포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길 희망한다. 그 궁극의 종착지는 우리 사는 세상에선 인간이며 삶이다. 눈과 마음, 글과 그림으로 두루 훑어 토해낸 인간사에 관한 고찰의 성찰이요, 집요한 수련 과정을 통한 언어의 다변화와 확장이다.(이는 지극히 현재적이다) ● 이와 관련해 첨언하자면, 그의 인간에 대한 시각은 한마디로 명쾌하다. 일그러진 역사 속 인물, 자신이 체감한 심상의 이미지를 경쾌하면서도 식격(識格) 있게 드러낸다. 그가 생성하는 인물(역사 속 인물이든「카페열차」로 이름 붙여진 지하철 속에서 우연히 만나 스쳐간 익명의 누군가이든)은 단순한 듯 지나는 것처럼 비춰지지만 해부학연구에 비롯된 예리함을 대리하며, 화폭을 리듬감 있게 채운 드로잉의 미묘한 흐름과 율동, 공간 속에서 변화하는 순간의 양상은 세밀하고 치밀한 표현법을 넘어 거친 자유로움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증명한다.

 


황재종_누드크로키_수묵_107×77cm_2003


4. 오랜 시간 한 장르를 고집해온 황재종 작품이 갖는 표현언어는, 비록 사실주의에 입각한 드러남일지라도 그 이면엔 (원하던 원하지 않던)작가 자신과 그리드 된 기억과 편린, 인간에 대한 아련한 향수가 밑바탕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외형의 프레임을 이탈한다. 인생의 넓이와 깊이, 주위와의 관계에 의해 공간감을 정위(定位)하는 구도법은 표현되어지기 위한 심연의 상태를 함께 어우를 필요성이 있음을 깨닫게 한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2009년 펴낸 책 『꼴값』을 보더라도 인간을 대하는 깊이와 여백이 단순한 감정이상의 무언가를 말하고 있음은 명약관화해진다. ● 그가 직접 집필하고 그린 이 책에는 사실상 해체되고 재구성한 일상의 단상, 지나갈 혹은 지나간 추억들이 숨 쉬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 기억들 속에 누워있는 시간의 이면들이 하나씩 덤덤하게 솟아 드리워져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 추출된 이미지, 반영으로부터 더 한층 나아가 자신의 시공간성을 이입해보려는 노력이 자신을 또는 그 안의 삶을, 그리고 우리네 지층에 각인되어야 할 휴머니즘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 자체는 아결하다.(참고로 『꼴값』에서 엿보이는 해박한 지식과 경험, 특히 정겹게 묻어나는 우리네 이야기는 주목할 만하다. 필자는 그중에서도 '식사', '동춘아제' '함매' 연작을 추천한다. 사람을 보는 작가의 선연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 황재종의 그림들이 모사(재현)의 수법이나 테크닉에 전적으로 의존되고 있음은 아니다. 그의 작화(作畵)는 데생력과 대상에 대한 통찰력의 일출함이 없으면 가능하지가 않다는 점에서 구상력의 완성을 의미하긴 해도, 쉽게 읽히는 감정들을 쏟아 놓는다는 측면에서 어느 한 방향에서 해석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작가의 구상들은 주변의 생명력을 흡입한 채 공간을 가로지르며, 재료 이면에 놓인 대상의 빛과 공기가 재료라는 물질과 호흡하면서 작품을 보다 명미롭게 만드는 묘한 분위기가 존재한다. 이 모든 것들은 정확한 관찰에 의한 데생력이 가미되면서 생성되는 것으로, 그렇게 완성된 하나의 대상이나 피사체들은 농익은 상태로 화면 속에 고스란히 묻어 나온다.

 


황재종_흑묘백묘 黑猫白猫_유채_60.5×90.5cm_2013


5. 작품에서 뿜어져 부유하는 정감이나 기운은 드러남 이상의 리얼리즘을 뒤쫓게 한다. 그러나 황재종이 주로 다루는 모티브들의 특성은 대상에 대한 존재성을 인식한 후 나타나는 모든 여운들이 집약되어 있다는 것에 방점이 있다. 드로잉이든 인물화이든 매한가지이고, 그건 감성적으로 잡아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라는 점에서 외적 재주에 대한 가치만으로 판단하거나 설명할 수만은 없지 않나 싶다. ● 그가 필자에게 전달한 책과 그림, 글을 덮으며 스민 여운은 한마디로 삶의 숨결, 서정적 추상과 함께 인간적인 것들과 자신을 결합시킨 작품들을 지향하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만약 그게 맞는다면 미술의 본질, 순수한 회화성을, 특정한 양식의 그 어떤 미술형식보다 인간 중심의 그 무언가를 담고자 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에선 소박하지만 자유의 공간으로 가기 위한 예술가의 여백이 느껴진다. 형식이 내용을 누르지 않는 전개와 더불어 '무음언어'가 언형(言形)으로 전도되어 미적 개념으로 나아가는 형국을 목도한다. ■ 홍경한

Vol.20131225a | 황재종展 / HWANGJAEJONG / 黃載鍾 / drawing


MODEL2
모델2展

 

2013_1225 ▶ 2013_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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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3_1225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권용무_김소영_김태기_민성진_박지영박창식_배민영_송여진_양혜령_윤석원이혜헌_임지민_정인국_최지현_해련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아트 스페이스GANA ART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19번지Tel. +82.2.734.1333

www.ganaartspace.com


이번 전시는 2012년에 시작된『Model1』展이 필두가 되었으며, 작가로서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고 그 간의 작업을 발표하기 위한 자리로써 마련되었습니다. 『Model2』展은 마주하고 있는 예술 환경에 대한 보편적 접근 방식에 머무르지 않고, 창작의 주체인 작가들이 모여 각자의 프로세스를 공유하고 토론하는 향유의 장이 되었습니다. 그동안의 에너지가 빚어낸『Model2』展은 현대의 예술문화에 대한 질서와 담론을 논의하고, 새로운 시대에 실현될 예술을 조명하는 플랫폼이라 할 수 있습니다. 15명의 작가들이 선보이는 다양한 작업을 통하여 동시대 신진작가들의 감성과 시선, 그리고 그 작품들이 지니고 있는 진정한 의미를 전하고 소통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



권용무_서른개의 움직이는 창_차 후드 조각, 스틸 파이프, 서보모터_20×125×105cm_2012



현대사회에서 생산되어진 기계부속물의 해체와 조합, 확장을 통해 새로운 시각과 의미를 부여한다. ■ 권용무



김소영_It's not that easy to Iron man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112.1×162.2cm_2013


나의 작업은 기능을 중시하는 실제 기계들과는 달리 가상으로 만들어진 입체물에 기계 부품들이나 재질들을 덧입힌다.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용성'이란 단어를 찾아볼 수 없고, 동작조차 할 수 없게 조립되어진 불분명한 형태들이 결과물로 만들어진다. 알 수 없는 기계적 형태들을 보았을 때 낯설고 적응하기 힘들지만 그만큼 정확한 정의를 내릴 수 없기에 다양한 시각적 해석을 이끌어낼 수 있다. ■ 김소영



김태기_Meltdown_캔버스에 유채_116.8×91cm_2013


등한시 되거나 일회성에 그친 이미지들을 회화로 환기시켜 매체의 영속성을 부여한다. 검색창에 입력된 오타들은 불규칙한 이미지로 썸네일화 되고, 선택된 대상들은 원전과도 같이 견고한 밑바탕으로 건축된다. 조합한 화면을 다시 용해하는 과정에서 엉겨 붙은 이미지들이 돌연변이로 탈바꿈하게 되는데 이러한 화면에 귀속된 개체의 희생은 작품의 제목으로 연결되는 Meltdown과 밀접해 있다. ■ 김태기

 


민성진_Telepath_모니터, 스틸, 유리, 실리콘, 우퍼, 증폭기_가변크기_2013


우리가 마주하는 얼굴들은 너무도 많은 소리를 머금고 있지만, 그 표정의 정확한 의미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의사소통에 있어 '말'이라는 전도체를 물질적인 오브제로서 담아내고, 얼굴과 언어의 '메타매세지'적 상호관계를 고찰한다. ■ 민성진

 


박지영_Structure 2_혼합재료_20.5×21.5×37.5cm_2013


나에게 있었던 일들, 내가 느끼는 모든 것, 책과 영화의 이야기 내 주변의 모든 것을 표현하는 재료는 공간이다. ■ 박지영

 


박창식_Dusty da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193.9cm_2013


나의 작업은 일상에 내재되어있는 불안감을 표현한다. 우리들의 눈에 익숙한 사물들의 많은 요소들은 사람들에게 안도감을 주는 미장센으로 기능한다. 사물들의 표면을 걷어낸 후에 드러나는 장치들의 즉물성, 혹은 있어야하는 간판, 조경수, 창문, 원근법적으로 보이는 멀리의 풍경 등을 제거함으로써 생기는 부재의 감각은 보는 이로 하여금 당혹감, 불안감을 야기시킨다. 나는 익명의 사물들을 전면으로 드러내어 보이거나, 또는 풍경에서 명시성이 있는 요소들을 제거함으로써 익명의 풍경으로 전환시키는 가감의 방법론을 주된 표현요소로 삼는다. 그러한 행위를 통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현실의 감각을 환기시키는 기회를 제공한다. ■ 박창식

 


배민영_Scenery-on sale_캔버스에 유채_91×91cm_2013


'보여짐'의 욕망은 끝없이 증식하는 매체와 복잡해져가는 사회 관계망 속에서 부각되고 있다. 멋진 배경에 투영되는 사람들의 심리와 그 것을 통하여 대리 만족으로 향하는 욕망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 배민영

 


송여진_판도라 17_종이에 프린트, 나무_420×297cm_2013


현대사회의 광범위한 공간과 범람하는 이미지들 속에서 사람들은 하루하루 일상을 너무나 쉽고 당연한 것으로 흘려보낸다. 하지만 나에게 일상은 익숙한 것이 아닌, 재구성 될 수 있는 가변적이고 특별한 기억의 조합으로 다가왔다. 그렇지만 이것 또한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일상적인 기억이 된다. 이렇게 익숙한 일상이 재구성되어 특별한 순간이 되고, 다시 아무것도 아닌 일상이 되는 순환구조에 집중한다. ■ 송여진

 


윤석원_Lighting_캔버스에 유채_80.3×116.8cm_2013


나는 내가 직/간접으로 접한 다양한 사건들을 작업에서 다룬다. 내가 경험한 개인적/ 사회적 사건과 그 풍경에 대한 기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치 하나의 생명체 처럼 스스로 변해간다. 나는 그리기라는 방법을 통해 머릿속에서 끊임 없이 변해가는 기억의 이미지와 감정의 역학관계를 화면에 담아내는 일로 내 삶의 여러 켜들을 진지하게 바라보고자 한다. ■ 윤석원

 


해련_Stage no.1_캔버스에 유채_30×120cm_2013


이차원적인 평면 도형을 물질구성의 기본원소로 형상화하여 도형의 단순한 집합 재배열이 아닌 표현대상의 본질적 단순화를 통해 복잡한 현실적 이미지를 벗어버린다. 화면에 퍼지는 도형들이 색채와 어울림으로써 공감각적 상상의 여백을 남기며 풍경들을 만들어낸다. 마치 '동산'에 있는 것 처럼... ■ 해련

 


양혜령_Jeju and Gangwon_캔버스에 유채_113×225cm_2012


작가의 경험의 의한 실재적 장소들을 재구성하여 비실재적인 공간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 장소에서 가져온 오브제들로 다시 현실성을 주어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공간으로 재구성 한다. ■ 양혜령

 


이혜헌_연극성 인격장애_디지털 프린트에 수채, 물_130.3×486.6cm_2013


보여주고 들어내며 표출하고 싶었던 것들이 있다면 당당해야한다. 떨림과 부끄러움은 가장 음침한 곳에 숨겨두고 과장과 연출, 조작을 통해 보란 듯이 당당히 연극을 해야 한다. 세상에게, 타인에게 그렇게 비추어 지고 싶지만 실상은 그리 녹록치 않다.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것 들은 물 몇 방울에 녹아내리고 번져버리며 그 나약함을 여실히 들어 낸다. 하지만 바람에 마르고 굳어져 고착된 불완전한 형태와 아롱진 자국들을 바라보며 부족함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지 않음에 오히려 안도감을 느낀다. ■ 이혜헌

 


임지민_The Green room_캔버스에 유채_116.8×80.3cm_2013


곁에 있던 존재의 갑작스런 부재로 인한 상실감, 불안을 앨범에 담긴 단서를 통해 끊임없이 기억을 되새기고 확인하며 그날의 상황을 떠올리려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흐릿해지는 기억은 알 수 없는 의구심으로 변화한다. 사진 속 몇 개의 단서들을 통해 새롭게 조합된 기억은 익숙함 속에서 낯설음을 찾게 하였고, 그것을 캔버스에 담는다. ■ 임지민

 


최지현_Opponent series_스타킹, 삼각대, 마티니잔_가변크기_2013

정인국_初_나무_50×31×38cm_2013


매일 수없이 지나치는 사물들이 갖고 있는 저마다의 물성과 특징은 사물과 사물간의 만남을 통해서 새로운 코드를 생성해 낸다. 그것은 불편한 긴장감을 만들어 내며 새로운 물질로 공간을 구축해 낸다. 이런 작업을 통해 사물들에 대한 무의식을 관철하여 새로운 관계의 정의를 내리도록 한다. ■ 최지현만물은 시간의 흐름 속, 순환구조 내에 귀속된다. 여기에는 인간, 자연, 사회 등등 모두 순환법칙이 포함되고, 이 순환구조의 어느 한 시작지점에 끝이 공존한다. 시간은 선형적 시간과 순환적 시간으로 구분 할 수 있는데, 두 시간의 맥락은 결합된다. 예를 들어 계절의 순환은 연도가 앞으로 흘러나가는 것과 동시에 일어나는 원리이다. 내 작업은 작업과정 하나하나에 이 원칙을 담고 있으며 재료, 형태 모두 이 원칙을 따른다. ■ 정인국

Vol.20131225b | MODEL2 모델2展

300만원 이하 소품
선화랑 100점 전시 


전명자 씨의 ‘자연의 조화’.


연말연시에 그림을 선물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전시회가 마련됐다. 서울 인사동 선화랑이 내달 31일까지 여는 ‘한국 현대미술 스펙트럼’전은 경기 침체로 얼어붙은 마음을 북돋워 주기 위해 마련한 선물기획전이다.

전시 주제는 ‘용기와 희망, 그리고 감동’.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듯 미술품을 고를 수 있는 ‘아트마트’ 형식으로 원로화가 김영재를 비롯해 ‘히말라야 작가’ 최동열, 김재학 전명자 등 30여명의 1~10호 작품 100여점을 50만~300만원에 내놓았다. 미술품은 무조건 비싸고 어렵다고 여겨 거리감을 가진 일반인들을 위해 좋은 작품을 엄선해 싸게 판매함으로써 화랑의 문턱을 낮췄다. 300만원 이하 작품은 손비처리가 가능해 미술 컬렉션에 관심이 있는 기업에도 좋은 기회다.

작가 리스트도 화려하다. 인기 작가 김재학 최동열 정일 외에도 컨템포러리 작가 대부분이 망라됐다. 팔순을 넘긴 원로작가 김영재는 사진이 넘볼 수 없는 장엄한 풍경화 4점을 걸었다. 인디고 블루와 흰색으로 유럽의 산세를 장악한 작품에서는 등산가 못지않게 발품을 팔고 염불하는 마음으로 전력한 열정이 느껴진다.

탄탄한 구상력을 갖춘 김재학은 꽃과 추상적 배경이 함께 어우러져 생동감이 넘치는 작품 3점을 내놓았고, ‘흰색의 마술사’ 정일 역시 사랑과 추억, 향수를 채색한 작품을 들고 나왔다. 사랑하는 여인들의 초현실적인 이미지는 아스라한 기억과 추억의 정취를 건드린다.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오는 듯한 오케스트라의 합주와 가을 들녘의 해바라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전명자의 작품, 시골집과 풍선 등을 소재로 하루하루 일기를 쓰듯이 그린 박현웅의 작품은 시공간을 초월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히말라야를 작업한 최동열의 작품은 쭉쭉 벋은 설봉들을 여인의 시선으로 녹여내 청량감을 더해준다. (02)734-0458

[한국경제 / 김경갑기자]

사진 공유 캠페인… 18~23일 인사동 갤러리 이즈서 진행
수많은 현장서 사진이 활용되는 '공유 문화 확산'이 목적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CCL 사진'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사단법인 크리에이티브커먼즈코리아(이하 CCKOREA)는 18일부터 23일까지 'Photo & Share Festival 함께 나누는 사진' 전시회를 연다.

이번 전시회는 지난달 열린 'Share & Photo 함께 나누는 사진' 캠페인(http://photo.sharehub.kr/)을 통해 응모된 사진 3,000여점 중 네티즌 추천과 전문가 심사로 선정된 100점의 사진으로 구성된다.

'Share & Photo 함께 나누는 사진' 캠페인은 자신이 찍은 사진에 CCL을 붙여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사진 공유 캠페인'이다. 이번 캠페인에 참여한 모든 사진은 사진 출처를 표시하고(BY), 2차적 저작물에 대해서도 동일한 라이선스를 적용(SA)하면 영리, 비영리 구분 없이 자유롭게 변경해 사용할 수 있다.

행사교육ㆍ문화ㆍ출판 분야 등 필요한 현장에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사진을 공유하고, 사진인구의 공유 활동 참여를 활성화 해, 공유 문화가 확산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주 목적이다.

전시회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동시에 진행되며, 온라인 전시회는 '함께 나누는 사진 웹사이트'와 '네이버 포토 갤러리(http://photo.naver.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오프라인으로는 인사동 갤러리 이즈에서 '생활의 발견' '삶의 향기' '사물의 재발견' '자연으로의 초대'라는 4가지 주제로 100점의 사진을 전시한다.

전시회는 CCKOREA가 주관ㆍ주최하고 서울특별시, 한국스마트카드, 네이버, 아트테크, 2013 서울사진축제가 후원한다.

CCKOREA 강현숙 실장은 "자발적인 참여로 모인 사진으로 전시회를 준비했다. 이번 캠페인을 통해 보다 자유로운 사진 콘텐츠 공유를 통한 공유 문화가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주석) CCL(크리에이티브 커먼즈) : 창작자들이 자발적인 공유 표시를 자신의 창작물에 적용해, 다른 사람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전세계적인 공유 운동.

 

 

[한국일보 :김정균기자 kjkim79@hankooki.com]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한겨울 인사동에서 만나는 남천(南天)의 소탈한 사군자

 


지난 6월 75세를 일기로 타계한 남천 송수남(1939~2013) 화백은 1980년대 한국의 수묵화운동을 주도했던 작가다. 그가 보여준 묵직하면서도 담백한 수묵화는 현대 한국화단의 결을 깊게 해주고, 풍성하게 해줬다.

홍익대 미대 교수직을 퇴직한 후 남천 송수남은 뜻밖에도 화려한 꽃그림을 내놓았다. 일각에선 수묵화의 기치를 드높였던 그가 원색의 꽃그림을 내놓자 ‘외도’라며 비판적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내 속에서 그런 그림이 막 쏟아져나오니 그릴 뿐"이라며 화려무쌍한 꽃그림과 나비그림 등을 쏟아냈다.

유유자적하며 자신의 예술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던 남천은 후학들에게 매년 격려금을 말없이 전달하며, 작업을 독려하기도 했다. 예술을, 인간을 끝없이 사랑했던 작가는 작업 틈틈이 동양수묵화의 기본인 사군자 작업도 시행했다. 꽃그림 작업 중간중간 자신의 예술적 고향이기도 했던 매난국죽, 사군자를 치며 마음을 다스리고, 정진했던 것이다.

 

 

 

사군자는 선비 정신의 총아이지만 남천의 사군자는 좀더 자유로운 것이 특징이다.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붓을 그어내려 보다 조촐하고, 질박한 것이 특징이다. 소탈한 남천의 성격이, 그의 웃음이 사군자 작품에 그대로 녹아든 듯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남천이 2000년대에 집중적으로 그린 사군자 작품은이 오는 18일까지 서울 관훈동 노화랑(대표 노승진)에서 전시되고 있다.

미술평론가 오광수 씨(한솔뮤지엄 관장)는 “사군자는 작가의 내면을 가장 솔직히 반영해주는 화목이다. 남천의 사군자는 화려하지 않다. 기술적으로 흥청거리지도 않다. 무심한 듯 하면서 정감이 배어 나온다. 그의 사군자는 혼탁한 현대에 남긴 하나의 메시지다“라고 평했다.

 

 

 

 




地平_Beyond the Horizon

나형민展 / NAHYOUNGMIN / 羅亨敏 / painting

 

 2013_1211 ▶ 2014_0228

 

나형민_Beyond the Horizon_한지에 채색_135×190cm_2013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01214f | 나형민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3_1211_수요일_06:00pm_공아트스페이스

 

2013_1211 ▶ 2013_1217

관람시간 / 10:00am~07:00pm

 

공아트스페이스GONG ART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8-21번지 1,2층Tel. +82.2.730.1144/735.9938

www.gongartspace.com

 

 

2014_0102 ▶ 2014_0228

관람시간 / 07:00am~09:00pm

호암교수회관 갤러리HOAM FACULTY HOUSE GALLERY

서울 관악구 낙성대동 239-1번지 1,2층Tel. +82.2.880.0300

www.hoam.ac.kr

 

 

지평너머1.빠름이 갑(甲)인 세상. 세상 여기저기서 빠름을 외친다. 빠름이 넘치는 사회. 차분한 호흡으로 세상 둘레를 둘러볼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스스로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승자만이 살아남는, 토너먼트(tournament)를 방불케 하는 무한경쟁시대다. 자기승리와 성취, 만족을 위해 달리는 현대인들의 직진본능이 가히 살벌하다. 쟁취를 향한 광속기류에 편승하려는 시류본능은 주위를 살필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두지 않음은 물론이다. 이타적 인간과 미덕을 찾아보기 힘든, 과연 사나운 현실이다. ● 나형민은 숨가쁘게 돌아가는 세태 속에 자의반 타의반 잊고 살았던 세상 시원(始原)의 문제와 산다는 것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세상 시작으로부터 현재까지 세상이 인간에게 허락한 가능성과 한계를 돌아본다. 결코 다가오지 않을 것 같은 세상 이후의 세상을 그려본다. 나아가 풍요의 시대, 점점 커져만 가는 꿈과 현실의 괴리, 현세를 살아내는 관성적 방식과 태도를 지적한다. 작금의 현실좌표를 반성적으로 돌아보고 현실인식에 따른 인간 사유(思惟)와 삶의 문제를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나형민_I see a new horizon_한지에 채색_135×175cm_2013
 

 

당대현실은 물론, 자신의 현실을 분명하게 직시하려는 자기다짐이요, 곤궁한 현실지평 너머의 가능한 비전과 희망태를 한껏 펼쳐 놓은 열린 인식지평이다. 자기 자신과 주위로 시선을 돌리고 공존과 느림의 미덕을 되찾아나서는 지성적 작업지평이다. 이러한 나형민의 작업은 빠르게 변모하는 역사와 전통에 대한 인식지형과 동시대 삶의 풍경에 대한 현실인식을 총체적으로 환기시키려는 노력으로 이해된다. ● 다소 현세구복적, 계몽적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는 나형민의 작업은 현실적 이상의 실현 불가능함을 경험적으로 반추하면서 또 다른 세상, 이를테면 내세에서 그것을 구하고자 하는 다소 종교적, 초현실적 기운도 담지하고 있다. 현세에서의 상흔을 위로하고 현세 너머 다른 세상으로의 비상과 이탈동기를 장려하기도 한다. 동시에 그러한 꿈과 정한의 세계를 그리는 현대인들의 우울한 상실을 위로하듯 토닥이고 있다. 나아가 다른 세상으로의 무조건적 잍탈과 이탈을 꿈꾸는 현대인의 과도한 욕망구조를 들춰내고 있다. 동시에 각기 다른 내적, 외적 동인에 의해 속앓이를 하고 있는 자연과 인간의 상처를 위로하고 새로운 희망지평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나형민_Lies the Rising Sun_한지에 채색_135×175cm_2013
 

 

2.이렇듯 분명한 당대의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하되 피안의 세계가 가능함을 지향하는 나형민의 인식지평은 개인적인 이슈를 넘어 서사적인 차원의 그것도 건드리고 있다. 충청남도 강경지역에서 만난 초등학교 교사(校舍), 연못에 비친 경회루의 모습, 일제시대에 건립된 건물의 정면을 부분 발췌해서 화면가득 얹어 놓은 작업들은 작금의 우리네 역사인식과 현실인식을 중첩시키고 있다.「Waiting a beautiful day」는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라는 문구가 먼저 떠오르는 참한 조각상이 자리하고 있는 보편적 시골 교사 전경을 담았다. 초등생들의 꿈이 모락모락 피어나던 시절과 당시의 꿈을 강렬한 형광물감을 사용해서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낮이 아닌 밤풍경을 통해 그들의 꿈과 바람, 희망,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를 한층 강조했다. 꿈을 키워나가던 교실, 운동장, 꿈이 영글던 하늘이 대지와 만났다. 지난 시절 이야기, 학교생활과 얽힌 가족사, 사회사, 기억의 총체로서의 자연과 세상풍경을 담았다. 충남 강경지역을 답사하며 운명처럼 만난 장면이다. 소박한 초등학교 건물과 초등학교라는 순수형식과 제도, 대학이라는 냉엄한 사회 시스템에 대한 작가의 현실인식이 뜨겁게 조우했다. 초등학교를 담은 작업 이외에도 일제시대에 지어진 가게건물의 정면표정을 배경으로 한 문화유산적 기운이 배어 있는「Lies the rising sun」도 비슷한 느낌을 전달한다. ●「Good bye to things that bore me」에는 하늘을 나는 슈퍼맨이 등장한다. 비행기부터 허공에 몸을 날린다. 왜곡된 성취동기로 무장한 우리네 슬픈 자화상, 혹은 슈퍼맨을 강요하는 냉정한 사회상이기도 하다. 현실이상(現實理想)의 객기와 인간의 나약한 광기를 과장했다. 한편으론 억압되고 제한된 닫힌 구조로부터 벗어나려는 순수 증후군으로도 읽혀진다. 또는 이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로 이행할 수밖에 없는, 피할 수 없는 선택으로도 보인다. 자연스런 이행이 아니라, 강제이행, 강요된 이행이다. 비행기에 새긴 'G-BYE'(good-bye)처럼, 어쩌면 지긋지긋한 현실을 벗어나 저 멀리 다른 희망세상으로 날아가고 싶은, 뛰어들고 싶은 희망풍경일지도 모른다. 슈퍼맨이 되고 싶은 과도한 욕망구조, 슈퍼맨을 강요하는, 슈퍼맨이 되어야 비로소 벗어날 수 있는 슬픈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Life on the Horizon」에서는 하늘을 배경으로 기암(奇巖)과 대나무를 중첩했다.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꼿꼿한 대나무와 오랜 풍상(風霜)을 겪은 늙은 바위가 만난 단단한 풍경이다. 조선 중기의 화가, 이정(李霆)의 대나무를 떠올리며 그렸다. 하늘과 구름은 지극히 맑고 투명하여 이들은 특히 대나무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주지하다시피 예로부터 대나무는 군자의 절개와 굳은 의지를 상징한다. 세파와 시류에 쉽게 흔들리는, 이른바 학식 있는 자의 부끄러운 처신을 돌아보게 한다.

 

 

 

 

나형민_Waiting a Beautiful Day_한지에 채색_130×320cm_2013
 

 

대나무에 이어 나형민의 하늘 그림에는 민들레 등 잡다한 풀과 나무가 등장한다. 화면 속 대나무가 그냥 대나무가 아니듯 풀은 단순 풀이 아니요, 하늘 또한 그냥 하늘이 아니다. 땅도 그러하다. 나형민은 자연과 사회의 현상 이면에 잠복되어 있는 깊은 울림과 상처를 읽어낸다. 수도권 외곽으로 이사한 후, 빠르게 변모하는 세상 풍경을 보다 가까이 목도할 수 있었다. 자연에 대한 기존 인식과 태도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보는 눈이 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졌다. 변함없는 푸르름, 대나무, 민들레, 묵묵한 대지 등은 더 이상 단순 자연이 아니었다. 자연의 논리와 분명하게 대비되는 세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 답사 등의 이유로 자주 찾았던 강화들녘은 나형민의 시선을 강하게 잡아맸다. 잡초들이 세파에 굴하지 않고 꼿꼿하게 버티고 있었다. 황금물결이 사라진 스산한 강화들녘을 지키고 있는 보잘 것 없는 풀과 잡초, 민들레, 질경이 등은 민초들이 살아남은 힘과 증거에 다름 아니었다. 힘 있게 버티고 있는 모습은 마른대지의 내적 일렁임과 귀를 간질이는 속삭임, 그 속에 잠복되어 있는 존재의 아우성으로 다가왔다. 마른대지 이면의 촉촉한 내면풍경, 그것은 희망풍경이었다. 강화들녘은 또 다른 모색으로서의 회화의 가능성을 곱씹는 계기가 되었다. ● 들불이 일고 있는 작업,「Rebirth」는 세상이 창조될 당시의 느낌을 담으려한 것으로 보인다. 탄생과 창조의 느낌, 역사적 인류시원의 기운을 감각적으로 포치했다. 전통적으로 화면 속 '불'은 소멸, 생성, 창조의 기운, 흐름, 울림의 동인이자 탄생의 동인이다. 상단의 벌거벗은 여성과 함께 탄생, 생명의 순수기운, 종교적, 신화적, 설화적 시원을 강조하고 나타내보려는 나형민의 새로운 회화적 시도로 이해된다.

 

 

 

나형민_I see a new horizon_한지에 채색_135×175cm_2013
 

 

나형민의 풍경은 한쪽으로 쏠려 있는 대나무나 풀 너머에 어떤 사건이 있을 것 같은 심리풍경이다. 풍경은 풍경인데 사실 눈에 들어오는 대부분의 것을 지시하는 서양의 '랜드 스케이프(Landscape)'로서의 풍경이 아니라, 우리만이 공감하는 전래적, 정서적 무엇으로서의 풍경, 이를테면 '마인드 스케이프(Mindscape)라 하겠다. 잦은 붓질로 뭉치듯 중첩해낸 그의 색면은 하늘의 투명함과 대지의 견고함을 강조하기에 충분하다. 또한 그 속에서 수많은 날들을 살아낸 민초들 의지의 견고함과 튼튼함을 상기시키기에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실제로 지지체인 장지를 배접한 화판도 제법 단단하고 튼튼한 것으로, 또 하나의 대지이자 마음을 의지하는 든든한 지지체로 존재한다. ● 멀리도 필요 없다. 도심의 산이던 외곽의 산이던, 산을 찾을 때면 흡사 낙원(樂園)을 연상시키는 절경을 만나곤 한다. 산세와 비경을 자랑하는 산의 속살, 혹은 비류직하의 험준한 암벽 등과 같이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곳에는 사람이 약속이라도 한 듯 등장한다.「Irony」는 세상 속 낙원과 피안(彼岸)을 꿈꾸면서도 사람이 기필코 자리하는 아이러니컬한 현세태를 꼬집었다. 낙원을 바라면서도 결코 낙원을 허락하지 않는 모순된 현실. 편익시설 공사라든가, 건강을 빙자해서 자연을 기필코 정복하려는 일그러진 욕망, 자연의 자연스런 질서에 개입하여 그들 고유의 존재율을 뒤흔드는 부끄러운 현실을 지적했다. ● 이렇듯 나형민의 작업은 하늘을 주된 배경으로 비롯한다. 지난 하늘이 꽉꽉 채워져 있었다면, 이번 전시에서 그가 주목하고 보여주는 것은 결과적으로 덜어내고 버리는 것이다. 무언가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비워내는 것이다. 전시에 출품된 작품의 제작과정을 스톱모션애니메이션으로 만든「공(空)」은 나형민의 작업지향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모든 욕망은 공허하고 덧없는 것임을, 비어있는 충만함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 지난 작업이 무언가를 화면 위에 물리적으로 잔뜩 담아내려 했다면, 이번 신작들은 그들을 화면 너머로 던져 버리는 동시에 보는 이의 심상구조에 맡겨두고 있다. 하늘이 시원스레 자리하고 있는 이유다. 셀룰리안 블루(Cerulean Blue)와 라이트 블루(Light Blue)가 빚어낸 경쾌하고 상쾌한 화면이다. 물리적으로 차지하는 면적은 적지만, 단단하고 깊은 맛을 주는 대지의 지지를 받아 화면 상단에 가득 자리하고 있다. 신작 대부분이 세로형 화면이나 화면의 판형을 구분하지 않고 하늘이 가득하다. 새로울 것도 없는 그러나 요즘 보기 드문 하늘 그림이다. 보는 이의 시선은 하늘을 쫓아 올라가거나 땅과 풀을 따라 들고 나기를 반복할 것이다. 누군가는 개인적인 그리움을 따라 몸과 마음을 놀릴 것이다.

 

 

 

나형민_Life on the Horizon_한지에 채색_135×190cm_2013
 

 

3. 나형민의 푸른 하늘과 검초록의 대지는 시대의 희망과 우울을 반영하고 있다. 희망을 강조하고 우울을 위로한다. 암울한 현실과 시대의 우울을 극복하려는 노력이다. 그의 지평작업은 만나지 않을 것 같은, 끝이 없을 대립과 반목의 평행선, 저마다의 극명한 입장 차이와 대립양상을 약화, 무화시키거나 유연한 접점을 마련하고자 하는 회화적 바람으로 보인다. 화면에는 실로 수많은 터치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작가가 가슴으로 받아들인 허공과 대지를 울리는 수많은 사연들의 충돌과 메아리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들은 서로의 존재를 증명이라도 하듯 공명과 울림으로 화면 도처에서 진동하고 있다. 대립과 갈등을 넘어 화합과 희망의 세상을 펼쳐 보이려는 애절한 몸짓으로 보인다. 반목과 대립을 지양하고 다른 차원의 생산적 가능성과 활동을 지향하려는 것이다. 별로 웃을 일 없는 세태에 하늘과 땅을 바라보며 현실 너머의 희망태를 생각하고 그것을 마음 속에 담아내는 기회를 부여하려는 것일까. 나형민은 그것이 그리 멀거나, 불가능하거나, 전혀 다른 차원의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 나형민의 이번 작업은 하늘과 땅이 만나는 지평을 통해 현실너머의 지평, 지평너머의 또다른 세상지평을 말하고자 한 것으로 이해된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상과 현실지평의 다양한 물리적 지형과 긴장의 기운을 회화적으로 담아내기 보다는 지평너머의 희망기운을 담고자 했다. 지평너머의 기운을 불러내고자 했다. 지평너머 기운의 존재를 환기시키고자 했다. 또한 이 땅에 살다 하늘로 사라진 누군가의 울림에 귀 기울이고자 했다. 지평과 그 경계를 진동하는 이들 존재의 기운과 울림을 담아내고자 했다.「독야청청도(獨也靑靑圖)」등과 같은 대가의 작품에서 만났던 기운과 이미지를 부분 발췌해서 하늘과 결합시키기도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년 사계(四季)를 관통하며 피어나는 전통과 삶의 살아 숨 쉬는 기운을 오늘에 되새기고 이렇듯 모든 이에게 전하려는 것이다.   ● 나형민의 작업은 일거에 뒤집을 수 없는 자연에서의 변혁기운을 존중하되 자연과 전통에 대한 관습적 담론, 일방적인 기성의 전래가치, 습관적으로 따라가는 일상의 궤적, 유예된 현재로서의 미래인식을 시나브로 뒤집어보자는 권면(勸勉)이다. 스스로의 사고지평과 영역을 확대하려는 노력과 타율, 혹은 일방적으로 정해진 것, 기성의 왜곡된 가치에 대한 인식 전환을 확대해나가는 개혁의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 현재로서의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인식의 주체적, 미래적 지평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와 전통, 현실과 현재, 개발과 보존 등의 현실갈등과 인식의 충돌을 시각적으로 고발하기보다는 이들의 차이와 다름에 대한 상대적 인식지평의 열림과 열린 구조로서의 인식의 개방성을 하늘과 땅이 공존하고 있는 형식으로 풀어낸 것으로 보인다. 그의 회화는 경직된, 부동의 대지와 하늘이 아니라 그것이 병존하고 있는 현실, 공존의 가능태를 제시하고 있는 유동적인 공간으로 현재의 지평에서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보인다.

 

 

 

나형민_Rebirth_한지에 채색_135×190cm_2013
 

 

나형민의 지평은 나무, 하늘, 풀 등이 대립하듯 어우러져 있으나, 칼칼하면서도 자유롭고 유기적인 느낌이 살아 있는 시원한 화면이다. 세상 모두를 향해 열려 있음이다. 화면의 대부분을 하늘중심으로 넉넉히 주조하고 그 위에 구름과 표지판, 대보름달, 기암괴석 등을 포치시켰다. 특히 화면 하단부에 작은 부분이지만 일정한 대지를 부여하고 그 위에 이런저런 풀, 나무, 건물 등을 적절하게 조율했다. 채우기보다는 비워내듯 소수의 색으로 주조했다. 다채롭고 현란한 세상의 삼라만상을 가능한 모든 색으로 너저분하게 풀어 놓기보다는 몇몇 색으로 함축했다. 형상이 덜어지고 색이 덜해진 그의 화면은 그리기보다는 비워내고 있다. 참을성 많은 자연과 욕심 많은 인간 상호관계의 허와 실을 돌아보게 한다. ● 도심외곽, 이른바 수도권 지역엔 어김없이 대규모 단위의 아파트들이 경쟁적으로 들어서고 있다. 풍광이 좋은 곳은 더욱 그러하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일방적 개발에 밀려 들녘은 시뻘건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삶이 부딪히며 빚어낸 살가운 표정들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나형민은 버려진 풍경, 밀려나는 풍경을 잡아두려는 듯 특유의 방식으로 비워내고 담아내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자연스런 지형과 풍경, 자연그대로의 느낌을 과연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들이 공존하는 해법은 없는 것일까. 변화와 빠름을 앞 다투어 강조하고 서구적, 일방적 개발 논리가 지배하는 현실 풍경 속에서 세파와 풍상을 겪으며 이어져온 자연스런 동양적 느낌의 풍속, 풍경을 언제까지 끄집어 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박천남

 

     

Vol.20131211c | 나형민展 / NAHYOUNGMIN / 羅亨敏 /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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