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iature(맥시어쳐)

 

윤성필展 / YUNSUNGFEEL / 尹聖弼 / installation 

2022_0210 ▶ 2022_0308 / 일,공휴일 휴관

 

윤성필_맥시어쳐(maxiature) 20-1_ 레진에 우레탄 도장_36×46×38.5cm_2020

 

초대일시 / 2022_0210_목요일

관람시간 / 10:00am~05:00pm / 일,공휴일 휴관

 

 

표갤러리

PYO GALLERY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5길 18-4

Tel. +82.(0)2.543.7337

www.pyogallery.com

 

공공조형물은 작품일까? ● 조각가 윤성필. 사실 그가, 입주 현장에 납품한 건 작품이다. '원래 건물만 한 작품'을 코끼리만 하게 줄인 '미니어처(Miniature)'이다. 사실 그가, 전시장에 출품한 건 공공조형물이다. '원래 주먹만 한 공공조형물'을 수박만 하게 키운 '맥시어처(Maxiature)'이다. '윤성필의 공공조형물'은 작품이다.

 

윤성필_맥시어쳐(maxiature) 20-2_ 레진에 우레탄 도장_35×25×25cm_2020
윤성필_맥시어쳐(maxiature) 20-3_ 레진에 우레탄 도장_27×43×41cm_2020

큰 곳엔 큰 게 맞잖아 ● 어릴 때 즐겨 보던 '전대물 '은 레퍼토리가 또렷했다. 패한 악당은 분에 떨며 몸집을 키워 거대 괴수로 변신, 절치부심 다시 덤빈다. 웬만한 건물은 허리춤 어깨춤일 만치 우람한 체구에 그냥 맞서다간 주인공들의 합동 장례로 종영할 판. 준비성 하난 알아주는 김박사가 진작 개발한 거대 로봇에 탑승해 지구를 지켰고, 덕분에 필자도 이 글을 남길 수 있다. ● 거대 괴수, 말하자면 그건 악당의 '맥시어처(Maxiature) '이다. 불을 쏘던 악당은 불기둥을 뿜으며 온 동네를 굽고, 날개 달린 악당은 더 큰 날개를 퍼덕이며,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도 고집스레 정체성을 간직했다. 결국 크기만 달랐다. 개과천선 상냥한 괴수로 거듭날 리도 없고, 괜한 재등장에 두 번 왕복으로 얻어터질 뿐 역할은 한결같았다. 그렇게 러닝타임을 배로 불리며 뿌듯이 산화한 괴수들이야말로 콘텐츠의 숨은 주역이었다.

 

윤성필_맥시어쳐(maxiature) 20-4_ 레진에 우레탄 도장_31.5×55×33.5cm_2020
윤성필_맥시어쳐(maxiature) 20-5_ 레진에 우레탄 도장_27×31×31cm_2020

'애초 큰 몸집으로 싸우지, 왜 사서 고생?' ●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 의문이었다. 로봇에 타기 전에 때려잡지 않고? 라디오가 잘 안 들려 설거지에 지장이 막대한 듯, 줄기찬 물음을 싹둑 자르며 대충 뭉개는 엄마. "원래 컸는데, 줄여서 왔어. 그냥 오면 들키잖아?" 돌이켜 보면 일리가 있다. '사람 크기로 줄인' 괴수 옷을 입고 열연할 스턴트맨을 위한 미니어처(Miniature)이기도 하니까. ● 자랑스레 떠벌리고 다닌 건 그때부터였다. '집채만 한 괴수를 줄인 게 악당'이라고. '악당을 부풀리면 거대 괴수'라는 또래의 통론과 으레 맞섰지만 결론은 매한가지였다. '레드 원(센터는 대개 붉은 쫄쫄이 1호의 몫이었다)'은 서로 자기 차례라고. 괴수의 미니어처이든 악당의 '맥시어처'이든, 크기만 다르고 그냥 계속 악당이라고. 그리고 니 차례라고.

 

윤성필_맥시어쳐(maxiature) 20-6_ 레진에 우레탄 도장_41×15.5×17cm_2020
윤성필_맥시어쳐(maxiature) 20-7_ 레진에 우레탄 도장_29×50.5×47cm_2020

(모 빌딩 앞) "아 저거? 공공조형물 아니고요, '원래 건물만 한 내 작품'을 코끼리만 하게 줄였죠. '미니어처'야." (모 전시장에서) "아 이거? 작품 아니고요, '원래 주먹만 한 내 공공조형물'을 수박만 하게 키웠죠. '맥시어처'야." "그럼, 건물 앞은 작품, 화이트큐브엔 공공조형물…이에요??" ● '야외조형물, 옥외조형물, 환경조형물, 공공조형물, 조형예술품, 조형시설물…' 정리하다 만 수많은 명칭이 난립한다. '조형'은 확실한 공통분모인 모양이다. '문화예술진흥법 제9조'는 '건축물에 대한 미술작품의 설치'를 규정한다. 시행령 제12조 4항은 이 '미술작품'을 '조형예술물'과 '공공조형물'로 구분한다. 전자의 예시로 '회화, 조각, 공예, 사진, 서예, 벽화, 미디어아트 등', 후자는 '분수대 등 미술작품으로 인정할 만한 것'을 든다. 즉, 전시회에 출품하는 미술품 일반은 '조형예술물', 건물 곁에 우뚝 선 시설물 형식은 '공공조형물 '이다. ● '공공'은 '대중 혹은 불특정 다수의 사안'에 '광장성'까지 포함한 넓은 의미이다. 공간이든 사람이든 통제되지 않은 주변과의 "티키타카" 상호작용을 고려해, 또한 법령 상 용어를 존중해, 본문에서는 예시 가운데 '공공조형물'로 지칭한다.

 

윤성필_맥시어쳐(maxiature) 20-8_레진에 우레탄 도장_44×43×21.5cm_2020
윤성필_맥시어쳐(maxiature) 20-9_ 레진에 우레탄 도장_39×23×23cm_2020

'시각 공해'라며, 주변과 도무지 합이 맞질 않는 무분별한 공공조형물을 지적하는 기사가 적지 않다. 광장의 얼굴이라면, 작가 특색과 예술성을 지키는 선에서 '시각적 쾌(快)'라는 보편적 미감도 얼마간 채워야 마땅하다. 지역 명물일지 흉물일지는 우선 두 가지에 달렸다. 공공조형에 임하는 예술가 각자의 태도와 양심이 첫째요, 시스템 의 편향 자정과 포용력, 공정/투명성 담보가 둘째이다. 필요성 공감과 절차적 신뢰, 대중의 이해와 지지, 지역사회의 협조 등 사회자본은 공공조형이나 문화예술계를 넘어 시민사회 전 분야의 텃밭이므로, 굳이 셋째로 꼽아 봐야 손가락 낭비이다. ● 그런데 첫손에 꼽은 '태도와 양심'은 예술가들끼리도 말이 갈린다. "공공조형물이 작품이냐?", "작업은 뒷전이요, 돈에 혼을 판다.", "공생을 저버린 기금 사냥꾼이다.", "큰 일꾼일세. 미술계 말고 산업계의.", "예술가는 무슨, 장사꾼이지."… 평온한 게 어쩌면 더 이상하다. 일반 미술품 매매시장과 다른 메커니즘에, 작지 않은 금전적 이해까지 얽혔으니.

 

윤성필_맥시어쳐(maxiature) 20-10_레진에 철가루 페인트 도장_48×33.5×33.5cm_2020
윤성필_맥시어쳐(maxiature) 20-11_ 레진에 우레탄 도장_58.5×20.5×15cm_2020

작품과 공공조형물을 칼같이 나눌 수도 있다. 다만 각은 살펴 가르마를 타야 한다. '생산을 설계/운용/지속하는 경영자로서의 작가'인지, '창작력 발현 주체로서의 예술가'인지. 경영자로서의 작가는 생산을 꾸리고, 작업을 잇고, 발상을 전략적으로 실현한다. 더 복잡한 절차, 더 가혹한 검증, 더 큰 외부 자본, 더 많은 이해 관여를 무작정 내칠 수 없다. 비율과 모양새의 차이는 있으나, 사실상 모든 작가는 이 두 속성을 아울러 지닌다. 아니면, 본디 예술가가 아니거나, 애초 살아남지 못할 테니. ● 논쟁은 대개, 경영자와 예술가, 가르마를 탄 게 누구의 손인지 서로 불명확한 가운데 번진다. 물론 작품과 공공조형물이 별개인 '예술가'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다만 예술가 윤성필은 단언한다. '다 내 작품'이라고. '크기만 다르다'고. '딱 그 차이'라고. 크고 작은 조각일 뿐이다, 그에겐.

 

윤성필_미니어쳐(miniature) 20-01_레진_38×27×27cm_2020

"야~ 야~ 마감이 이게 뭐야. 작업 안 살잖아. 다시 칠하자. 안 돼 이거." "지진 나도 안 쓰러져? 확실해? …근데, 두 번 나면?" ● 막바지 작업이 한창인 공방. 손바닥만 한 플라스틱 조각을 다듬어도, 수십 장 철판을 대문짝만 하게 오려도 줄곧 "작업 조심해, 작업."이다. 전시장에 갈 작품과 입주 현장에 깔 공공조형물을 막론하고. 크든 작든 일단 착수하면, 될 때까지 온종일 매달린다. 두어 시간 쪽잠에 누렇게 뜬 눈동자를 굴리며 며칠이건 몇 달이건. 시집 장가보낼 때 "보람차다." 대신 "힘들어.", "아까워.", "두 개는 못 해." 곡이 날만 하다. 호부호형에 한 맺힌 홍길동이 부러워 울 만치, 들인 놈 내놓은 놈 적서 차별이 없다. 열 손가락 모두 친자식이다. ● 힘겹게 실린 '작품'이 공방을 나선다. 웅장한 뒤태를 멀거니 바라보는 그를 다독인다. "아까워요?" 머뭇거리다, 고개를 가로젓는다. "큰 곳엔 큰 게 맞잖아." ■ 김영기

 

Vol.20220210a | 윤성필展 / YUNSUNGFEEL / 尹聖弼 / installation

buzzing

 

박소영展 / PARKSOYOUNG / 朴昭映 / sculpture 
2022_0217 ▶ 2022_0312 / 일,월요일 휴관

 

박소영_이명 buzzing_청동, 천, 알루미늄 그물, 혼합재료_240×115×75cm_202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6:00pm / 일,월요일 휴관

 

 

아트스페이스3

ARTSPACE3

서울 종로구 효자로7길 23(통의동 7-33번지) B1

Tel. +82.(0)2.730.5322

artspace3.com

 

 

가장 따뜻한 색, 블루 1) ● "어느 날 귀에서 이명 소리를 들었다." 작가 노트는 이렇게 시작된다. 작가가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쌓인 괴로움은 이명이라는 현상, 실재한 경험으로 드러난다. 급작스러운 전 세계적 전염병의 장기화로 인한 제한적 일상이 만들어 낸 스트레스는 우울감으로 서서히 우리 주변에 자리 잡았고,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박소영 작가는 상징적인 푸른색을 통해 지난 2년 동안의 초현실적 상황 속에서 일으켜진 감정들을 입체 형태로 선보인다.

 

박소영_이명 buzzing_청동, 천, 알루미늄 그물, 혼합재료_240×115×75cm_2021_부분

푸른색으로 물들여진 작품들은 작가가 이전부터 이어온 덩어리와 껍질 작업의 변주로 보인다. 규정 불가한 모호한 형태, 우연적인 형태(이영욱)나 어떤 '상태'로서의 형태(장승연)의 덩어리들은 작가가 말하는 "길들여지지 않은 형태"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형태들은 엉성하게 그려지는 우리들의 감정과 닮아있다. 길들여지지 않는 감정은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의 부재로 인식조차 불가능한 상태로 남는다. 모호함을 제시하는 형태들은 이러한 인식 불가능한 우리 내면의 감정을 건드린다. 말해지지 못하는 것들이 설명되지 않는 그대로 표현되는 조형적 지점에서 우리는 정서적 감응을 이루게 된다.

 

박소영_진혼곡 requiem_클리어 필름_220×90×28cm_2021

작가는 침하하는 우울을 끌어올려 놓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자신이 선택한 재료를 통해 투명하거나 반짝이거나 부드럽거나 섬세한 질감과 디테일을 부여한다. 작품의 표면은 얇은 플라스틱 필름, 스팽글, 패브릭 레이스로 촘촘히 채워진다. 오랜 시간 작게 오려낸 재료를 손에 들고 하나하나 붙여나가는 과정을 작가는 자신 내면의 감정을 꺼내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무겁고 깊은 혹은 투명하고 부유하는 정서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 것인가. 괴테는 저서 『색채론』에서 "청색은 언제나 어두운 것을 내포하고 있다. ... 이 색에서 우리는 자극이자 휴식이라는 그 어떤 모순적인 것을 본다. 2)"라고 적었다. 이번 전시에서 청색은 초록이나 보라색이 섞이기도 하고, 그 농도가 깊어져 검은색이 되기도 한다. 작가는 부정적 감정을 조급하게 지워내려 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것들을 끌어안고 그 상태 그대로 빛나고자 하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박소영_어떤 별 a star_레이스 천, 알루미늄 그물, 스펀지_267×27×30cm_2021

그동안 작품에서 보여지는 박소영 작가의 태도는 '핍진하다' 혹은 '솔직하다'고 언급되었다. 나는 이것이 진심을 다하는 태도에서 비롯한다고 여긴다. 지난한 노동의 과정은 그녀가 작품에 마음을 다하는 과정이다. 진심은 전염병처럼 퍼지고 강력하게 전달된다. 청색으로 물들어 있는 전시장에서 우리는 가장 따듯한 색을 보게 된다. ■ 김지혜

 

* 각주1) 압델라티프 케시시, 영화 『가장 따듯한 색, 블루』, 2013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색채론』, 장희창 역, 서울: 민음사, 2003, p.253.

 

박소영_holding up_레이스 천, 알루미늄 그물, 스틸_가변크기_2022
박소영_holding up_레이스 천, 알루미늄 그물, 스틸_가변크기_2022_부분

무거운 우울 속에서 가볍게 상승하는 것들 ● 필자가 박소영의 작업을 심리적으로 가깝게 느끼게 된 것은 2019년 11월 에이라운지(A-Lounge)에서 열린 그의 지난 개인전 『뿔(BBULL)』을 통해서였다. 이 전시는 그간 필자가 산발적으로 이해해왔던 작가의 여러 작업들을 하나로 엮어주며 그 근간을 통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전시 제목의 의미를 묻는 필자의 질문에 대해 박소영은 곧바로 "화가 나서"라고 단순명쾌하게 답했었다. 그 말이 어쩐지 속 시원하게 느껴지면서 작업에 대한 새로운 흥미가 생겼다. 전시된 작품들의 치밀한 완성도에 의한 미감도 주목할 만했지만, 무엇보다 전시장 전체가 일상에서 느낀 작가의 심리상태를 예술작품으로 전치시킨 하나의 방 혹은 집처럼 느껴졌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작은 비즈를 하나하나 정교하게 채워 만든 글씨 "뿔나다"와 "불끈 불끈"들은 작업의 원천들을 지시하면서, 전시 작품들이 매일매일 쌓아올린 작업의 시간을 통해서 정교하게 응집된 감정의 전이체들임을 느끼게 했다.

 

박소영_서러워 sad_종이에 클리어 필름_56.5×76.5cm_2018
박소영_scorpion_레이스 천, 스팽글, 폴리에스터_94×50×6cm_2021

팬데믹 형국의 지루한 과정을 거쳐 열린 아트스페이스3에서의 이번 개인전에서, 박소영의 작업 동력이 된 것은 그가 최근 느끼고 있는 우울감이다. 지난 개인전에서 감정에 대응하는 색으로 붉은색을 활용했던 박소영은 이번 전시에서는 우울한 감정의 표현을 위해 푸른색을 채택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옅고 창백한 푸른색에서부터 심리적 하강의 깊이를 느끼게 하는 짙은 푸른색, 극적이고 화려한 광택의 푸른색, 사금파리 같은 반짝임을 안겨주는 푸른색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톤과 질감의 푸른색들이 다양한 작품들을 관통하며 하나의 극의 여러 장을 이루듯 펼쳐진다. 드로잉 속의 "서러워"라는 글씨는 이 푸른색들을 탄생시킨 감정을 있는 그대로 지시하며 해석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한편, 이 전시를 크고 작은 우울의 감정들을 조율하고 배치하여 만든 한 편의 시처럼 느끼게도 만든다.

 

박소영_집-손 home-hands_스테인리스 스틸, 폴리에스터_26×136×45cm_2021
박소영_그 별 the star_레이스 천, 알루미늄 그물_32×30×26cm_2021

박소영의 작업에서 색채들은 감정을 표현하는 핵심적 역할을 하지만, 덩어리진 형태들과 만남으로써 역동적 실체감을 부여받는다는 점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본디 무형의 것인 감정들을 만질 수 있는 덩어리로 물질화함으로써 구체적인 현실의 자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의 작업에서 덩어리진 형태는 마치 몸을 구성하는 내장 혹은 유기적 생명체처럼 감정 역시 생동하는 실체임을 전달하며, 그것이 상정하는 무게감을 통해 삶 속에 분명하게 차지하는 자리를 주지시킨다. 이번 전시 제목의 단서가 된 작품 「이명(buzzing)」(2021)은 박소영이 실제로 경험한 심각한 이명과 그로 인한 우울감을 조형화한 것이다. 덩어리 위에 미디움과 본드를 섞어서 만들어진 단단한 피막은 내장처럼 연약하고 유기적이며 흘러내릴 듯한 성질을 고체화함으로써, 덩어리진 물적 실체로서의 구체성을 한층 더 강화시켰다. 이 파란 우울 덩어리는 그 무게를 힘겹게 지탱하듯 긴장감 있게 늘여진 양손으로 인해 더욱 무거워 보이며, 위태롭게 서 있는 모습 때문에 작가가 느꼈을 신경증적 상황을 더욱 예민하게 전달한다. 이처럼 박소영은 무형의 감정 상태를 형태화함으로써,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들을 대상화하여 바라볼 수 있을 객관적 거리를 획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박소영_cassiopeia_종이에 플리어 필름_79×110cm_2016
박소영_돌아버리겠네 going nuts_폴리에스터, 모터_28×10.5×7.5cm_2010/2021

감정 상태의 형태화라 할 수 있는 덩어리에 대한 박소영의 관심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전시 제목부터 『덩어리』였던 2006년 프로젝트 사루비아다방의 개인전에서는 다양한 감정의 상태들에 대응되는 갖가지 모양의 덩어리들이 작가가 스스로 감당해야 할 감정의 무게들을 상징하듯 짐과 같은 손잡이가 달린 채 전시되었다. 2010년 보안여관의 개인전에서 이 감정의 덩어리들은 사람을 연상시키는 형태가 되어 작가의 자화상을 상징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도 보안여관에서 전시되었던 「돌아버리겠네(going nuts)」가 푸른색 캔디도장을 입은 새로운 버전으로 등장했다. 이 작품에서 박소영은 살아있는 한 끊임없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감정들을 대상화하여, 실제로 끝없이 빙빙 도는 모터의 장착, 의도적으로 축소된 크기, 직설적인 제목을 통해 그 무게를 가볍게 희화화해 버렸다. 버거운 감정들이 자신을 무겁게 짓누를 수 없는 유머가 될 수 있게 가볍게 전도시키는 이러한 효과야말로 박소영의 작업이 갖는 묘미라 할 수 있다.

 

박소영_나 지금 갇힌 거니? caged in?_뿔, 오브제, 쇠_58×230×94cm_2022
박소영_나 지금 갇힌 거니? caged in?_뿔, 오브제, 쇠_58×230×94cm_2022_부분

어 전시의 중심축이 된 「Holding up」(2022)에서, 공중에 매달린 코발트블루의 덩어리는 바닥으로 이어지며 치마처럼 넓게 펼쳐지는 구도로 인해 마치 허공에 맺힌 거대한 눈물방울처럼 보인다. 그것은 중력의 작용으로 곧 떨어질 듯한 무게감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그 무게를 견디며 균형과 긴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상태를 상정한다. 주목할 점은 덩어리의 외피에 수공으로 일일이 오려낸 꽃잎 모양의 패턴들이 빈틈없이 균질한 간격으로 부착되었다는 것이다. 매일의 일상을 반복하듯 하나하나 붙여나가며 증식된 이 껍질로 인해서, 거대한 우울의 덩어리는 중력의 영향에서 벗어나 정교하게 감싸진 응결체로서 영구히 지탱되고 있는 듯 느껴진다.

 

박소영_푸른 별 the blue star_스테인리스 스틸_52×120×153cm_2015

박소영의 작업에서 반복되는 세공의 과정은 덩어리를 통해 객관적 대상으로서의 거리가 부여된 감정들을 장식해나감으로써 정제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통제하기 어려운 내면의 소용돌이에서 감정의 덩어리를 건져 올리고 그 외피를 치밀하게 구축해감으로써 감정 상태를 하나의 미적 상태로서 전도시킬 거리를 확보하는 것이다. 집요하리만치 밀도 높은 이 일상적 노동의 과정이야말로 감정의 무게를 감당하고 그것을 정제해나감으로써 삶을 지탱하기 위한 박소영만의 의식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정신적 작업인 동시에 인공적인(artificial) 노동의 기술을 통해 지리멸렬하고 범속한 일상을 '예술(art)'로 만드는 과정이다.

 

박소영_그녀 her_연점토, 알루미늄 와이어, 오브제_31×15×14cm_2020

이러한 노동의 결과 박소영의 작품에서는 흥미롭게도 상승과 하강의 느낌이 동시에 나타난다. 예컨대 「Holding up」에서 덩어리의 외피에 완벽한 질서로 부착된 꽃잎 패턴 안에서 반짝이는 비즈는 감정의 덩어리에 보석 같은 결정체의 인상, 흡사 별처럼 빛나는 상승의 경쾌함을 안겨주면서 흘러내릴 듯한 무게를 제법 견딜만한 것으로 만들어냈다, 「반짝이는 블루(twingkling blue)」(2020-2021) 연작에서 감정 덩어리들은 무게를 느끼게 하는 동시에 그로부터 탈출하여 날아가듯 가벼운 움직임을 얻었다. 그것은 마치 반려생물처럼 일상을 함께 하도록 길들여졌으나, 여전히 완전하게 통제하기는 어려운 짓궂은 역동성을 담지한 것처럼 보인다. 「어떤 별(a star)」(2021)에서는 비극의 여주인공을 연상시키는 검은 눈물의 처연한 흘러내림이 별을 향한 상승의 힘에 의해서 일련의 위트 있는 균형을 갖추었다.

박소영_buzzing展_아트스페이스3_2022
박소영_buzzing展_아트스페이스3_2022
박소영_buzzing展_아트스페이스3_2022

이즈음에서 한 번 더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박소영의 작품에서의 덩어리와 껍질의 관계이다. 무게감을 전하는 여타의 작품들과 달리, 잠자리 날개처럼 반투명한 필름으로 만들어진 「진혼곡(requiem)」(2021)은 덩어리가 빠져나간 뒤에 남겨진 껍질 혹은 고치처럼 보인다. 또 다른 차원으로 자유롭게 떠난 존재를 지시하는 이 더할 나위 없는 가벼운 허물은 예술작업을 통해 박소영이 추구하는 궁극의 자유를 지시하는 기표일 것이다. 그러나 박소영의 작업은 이처럼 고치를 벗고 가벼워질 수 있는 상승이 무거운 덩어리를 반드시 전제한다고 얘기해준다. 덩어리가 있기에 껍질이 있고, 우울의 무게가 있기에 상승의 경쾌함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비극과 희극 간의 역학이야말로 박소영의 작업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이다.

 

박소영은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작업을 통해 "우울하고 힘든 감정 속에서 반짝이는 것을 건져내고자 한다"고 언급했다. 결국 그에게 있어서 예술작업이란 삶을 누르는 감정의 무게에 시적 긴장을 부여하여 일련의 반짝임을 얻는 과정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명』에서 커다란 우울 덩어리를 지탱하는 두 손이 흡사 눈물을 닦아주는 치유의 손처럼 보이기도 한다. ■ 이은주

 

 

Vol.20220217e | 박소영展 / PARKSOYOUNG / 朴昭映 / sculpture

Rhizome field – episode Ⅰ

뿌리줄기장(場) The field of rhizomes

 

김대유展 / KIMDAEYOO / 金大裕 / painting 

2022_0216 ▶ 2022_0221

 

김대유_Rhizome field No.001_혼합재료_116.8×91cm_202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김대유 제10회 개인展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41-1 3층 제1특별관

Tel. +82.(0)2.736.1020

www.insaartcenter.com

 

 

1. 전시의 개관 ● 'Rhizome field(뿌리

줄기장)'라는 주제로 제10회 개인전의 서문을 연다. 그동안의 작업에서 『관계』, 『현실의 장(場) 너머』, 『Inter+view : 연동+관점』, 『현실의 장(場) 너머Ⅱ』, 『시각성의 통섭(統攝)』, 『Mindfulness』, 『R.G.B. X R.G.B.』등의 명제를 통해 디지털 이미지의 속성을 중심으로 주변에서 쉽게 포착할 수 있는 다양한 사진 이미지를 콜라주하여 'Visual field(시각장)'라는 주제로 각각의 전시마다 공통분모를 갖는 작품을 선보였다. 5mm 간격의 일정한 격자(grid)는 현실에 존재하나 보이지 않는 사회의 시스템이나 플랫폼을 상징한다. 이러한 격자 위에 무심하거나 반복적인 이미지, 때로는 특정한 형태를 갖는 이미지를 병치하여 시각장에서 벌어지는 이미지의 역동적인 구성과 혼성(hybrid)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김대유_Rhizome field No.002_혼합재료_116.8×91cm_2021

한편, 이번 전시 『Rhizome field – episode Ⅰ: 뿌리줄기의 장(場)』에서는 이전의 작업에서는 볼 수 없었던 오브제(코일 매트)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였고, 전반적인 작품의 주제나 내용, 시각적 구성 등에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였다. 흔히 일상생활에서 '코일 매트'는 이름 그대로 바닥 완충재로 사용된다. 가닥의 숫자를 헤아릴 수 없고, 시작과 끝이 정해지지 않은 수많은 코일 줄기가 서로 뒤엉켜 평면을 덮는다. 작가는 이러한 코일 매트의 형상과 구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특성에 완전히 매료되었다(이전의 Visual field 작업에서 직선 형태의 격자들이 서로 결합하여 보이지 않는 사회의 시스템이나 플랫폼을 상징하며, 질 들뢰즈의 '리좀'개념을 언급하기도 하였다). 기존 작업에 비해서 이번 작품이야말로 리좀적 형상을 보다 더 적합하게 형상화한 작업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대유_Rhizome field No.003_혼합재료_116.8×91cm_2021

코일 매트의 바탕에는 자유롭고 추상적인 흔적들과 뿌리줄기들이 방향을 설정하지 않고 뻗어나가는 것처럼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선형들이 얽혀있다. 작가는 수십 리터에 달하는 아크릴 물감을 코일 매트의 화면에 노즐이 달린 양념통, 플라스틱 막대 등 다양한 도구를 활용하여 드리핑(dripping)하거나, 때로는 거침없이 쏟아부었다. 이러한 작업 과정을 통해 자동기술법적인 형상들과 추상적인 형상들이 생성되었다.

 

김대유_Rhizome field No.004_혼합재료_116.8×91cm_2021

2. 이론적 배경 ● 이미지는 어떤 사물에 대하여 마음에 떠오르는 직관적인 인상(심상)이다. 현실계(界)의 모든 것이 기호이며, 시각장에 펼쳐진 이미지는 기호들의 체계이다. 기호로 작용한다는 말은 다른 사물의 재현인 동시에 시각적인 의사소통을 이루며 의미를 전달한다. 미디어와 매체가 급격히 발달하고 사용자에 의한 콘텐츠가 활성화된 시대에서 단편적인 의미를 담는 이미지는 곧 쓰임을 다하고 버려진다. 그러므로 시각 예술 분야에서 이미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독특하고 생명력 있는 작품 이미지를 구현하고, 내재적 의미를 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대유_Rhizome field No.005_혼합재료_116.8×91cm_2021

작품의 이론적 바탕이 되는 것은 첫째, 들뢰즈(Deleuze)와 가타리(Guattari)의 공저 『천 개의 고원』에 등장하는 '리좀(Rhizome)'개념이다. 이것은 하나가 아니라 다양체이며, 리좀이다. 위계를 이룬 계급이 아니라 무리이다. 이들은 대열의 뒷꼭지만 보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판이라는 진동을 달리 바꾸려 하면서 총체적 흐름의 진행을 강도와 속도를 지니고 진행한다는 점에서 정념과 파동이다. 이런 운동 방식은 항상 자연의 내재성과 끈이 닿아 있다는 점에서 파토스(pathos)의 실행과 닮았다. 게다가 패인 공간에서 선의 운동이 편집증의 징후를 남기는 것과 달리, 파동의 확장에서는 방향이 전혀 다를 수도 있고 비슷한 방향이라도 가지치기(각도)와 전혀 다르게 이어지고(접속) 솟아난다(창발)는 점에서 분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김대유_Rhizome field No.006_혼합재료_116.8×91cm_2021

리좀의 흐름은 다양하다. 패인 공간의 선을 달리기도 하며, 절단이 있고, 층위라는 점에서 파편화의 위험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 다양체로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내재적 욕망과 정념을 지니고 있기에 표면의 길과 배치되는 경우가 달라 때로는 가로지르는 위험도 있다. 게다가 리좀에는 본성적(자연적) 권능의 힘이 항상 현재에 닿아 있어서 권력에 대항하여 흐름을 만드는 탈주선의 길도 있지만, 파시즘에서처럼 단순 파괴로 돌아서서 죽음의 선으로 갈 위험도 있다.

 

김대유_Rhizome field No.008_혼합재료_116.8×91cm_2021

리좀은 하나의 단위처럼 보이지만 다양체로서 총체이며, 다양한 변용태(變容態)들과 다양한 변이들을 생성하고 환경과 영토를 넘어서 새로운 삶의 영역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점에서, 권능의 발현 지역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총체성의 연관 속에서 창발을 실행한다. 지역과 전체 지구 사이의 내재적 연관, 즉 생태적 연관을 공감하며 나아가야 할 것이고, 불연속적인 다양한 변용태와 변이가 내재적으로 연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중략).

 

김대유_Rhizome field No.009_혼합재료_116.8×91cm_2021

둘째, '시지각(Visual perception)'에 대한 관심이며 특히 형태심리학(Gestalt psychology)의 개념을 차용하였다. 형태심리학은 원자론적인 경향에 반하여 '전체는 그 부분들의 합 이상이다.'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본인의 작품에서 전체적인 형태를 구성하는 부분(뿌리줄기)들은 서로 혼합되고 융화되어 관찰자로 하여금 다층적인(multi-layered) 전체의 이미지를 지각하도록 유도한다.

 

김대유_Rhizome field No.011_혼합재료_180×980cm_2021_부분

셋째, 인간의 오감 중'시각의 속성'에 대한 접근이다. 시각은 시각예술을 지각하는 것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관된 능력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대하는 다양한 시각 정보를 인지하도록 하며 무엇인가에 매료되게 하거나 시각적 혼란을 주기도 한다. 우리가 시각 정보를 본다는 것은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시각적 인상은 인간의 인지적 배경을 기본으로 하여 다양한 관점에서 시각예술을 해석하며 의미를 부여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속성에 기반하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오브제(코일 매트)를 작품의 소재로 끌어들여 뿌리줄기의 장을 형상화하고, 관찰자로 하여금 각자의 인지 기반을 통해 작품을 해석하도록 유도하였다.

 

김대유_Rhizome field No.013_혼합재료_180×980cm_2021_부분

3. 오브제(objet)의 탐색과 변용 ● 미술에서 오브제는 일반적으로 '주제'와 대조적으로 사용된다. 현대회화, 특히 세잔 이후 큐비즘(입체파) 등에서는 주제성을 배제하고 물체를 중히 여겼다. 그러나 오브제라는 말이 특수한 용어가 된 것은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에 나타난 이후부터이다. M.뒤샹이 1917년에 기성품 변기를 「샘(泉)」이라는 명제를 붙여 전람회에 출품한 것과 같이 다다이즘 시대에는 기성의 일용품이나 기계부품 등이 반예술 형식의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초현실주의에서는 다시 자연물·수학적인 모형, 미개인의 숭배물 등의 물체를 비합리적인 또는 초(超) 의식적인 인식의 대응물로서 취급하였다. 또 종래의 전통적인 조각형식을 타파한 구성작품(예를 들면 움직이는 조각 모빌 등)을 오브제라고 할 때가 있다. 미술에서의 오브제관(觀)은 흥미 있는 미적 인식 문제를 투입하고 있으나, 오브제는 예술의 재료·형식·기능을 확대하기 위한 외부의 세계를 정복하는 수단이 된다고 볼 수 있다.

 

김대유_Rhizome field No.017_혼합재료_180×980cm_2021_부분

세상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다양한 재료와 사물들이 존재한다. 과학기술 및 공학, 미디어, 재료 관련 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은 예술적인 관점에서도 새로운 시도와 재료적 측면의 다양화를 지원한다. 이러한 현시점에서 예술가들은 더욱 새로운 개념과 생각을 표현할 오브제를 찾고 선택한다. 어쩌면 미술 분야에 국한된 재료는 의미가 없을지 모르겠다. 이제는 선택의 문제이고, 정형화된 미술의 형식을 떠나 융복합의 관점에서 새로운 시각적 결과물을 내놓아야 할 시점이라 생각한다. 물론 조형 작품은 형식적 요소와 주관적 요소의 결합으로 구성되기에 재료뿐만 아니라 내재적 의미 또한 중요하다. 균형을 갖추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조형 세계를 선보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김대유_Rhizome field No.019_혼합재료_180×980cm_2021_부분

4. 작가의 관점 ● 단지 시각 문화(Visual Culture)일 뿐, 우리는 상반된 미술 이론들과 다양한 미술 제작 관례의 홍수 속에 더 이상 미술이 무엇인지 확신하기도 힘든 문화 속에서 살아간다. 어쩌면 미술에 어떤 확신을 가졌다 하더라도 발설하지 말아야 할지도 모른다. 시각 문화를 다루는 이론적인 핵심은 미, 기능, 문화적 목적, 심지어 기술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미술과 관련해서 다루었던 모든 것이 포스트모던 세계에서 의심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미술은 시각적 호기심의 한 형식인 동시에 발현이다. 미술은 어떤 식으로든 항상 우리가 이 세계 안에서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는 방식과 관련이 있다는 뜻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미술가와 미술 이론가들이 한결같이 관심을 쏟고 있는 많은 사상과 작품의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 바로 '호기심의 미학'이다. 앞으로도 'Rhizome fields'에서 끊임없이 생성되고 연결되는 이미지를 통해 본인의 생각과 호기심을 지속적으로 표현해 나가고 싶다. ■ 김대유

 

김대유_Rhizome field No.023_혼합재료_180×980cm_2021_부분
김대유_Rhizome fields_혼합재료_180×980cm_2021

1. Overview of the exhibition ● The 10th solo exhibition opens with the theme of 'Rhizome field'. In the past work-『Relationship』, 『Beyond the field of reality』, 『Inter+view: Interlocking + Perspective』, 『Beyond the field of reality II』, 『Consilience of Visuality』, 『Mindfulness』, 『RGB X RGB』, focusing on the properties of digital images, collages a variety of photographic images that can be easily captured in the surroundings. A regular grid of 5mm intervals symbolizes a system or platform of a society that exists in reality but is invisible. By juxtaposing indifferent or repetitive images, sometimes with specific shapes, on this grid, the dynamic composition and hybridity of images taking place in the visual field was expressed. ● On the other hand, in this exhibition Rhizome field – episode I : The field of rhizomes, an object(coil mat) that had not been seen in previous works was actively used, and new changes were made in the theme, content, and visual composition of the overall work. In everyday life, 'coil mat' is used as a cushioning material for the floor, as its name suggests. Numerous strands of uncountable, undetermined beginnings and ends of coiled stems intertwined with each other to cover the plane. The artist became interested in the shape and structure of such a coil mat, and was completely fascinated by its characteristics(In previous visual field work, linear grids were combined with each other to symbolize an invisible social system or platform, and also referred to Gilles Deleuze's concept of 'rhizome'). Compared to the previous works, I think that this work is a work that embodies the rhizomal shape more appropriately. ● At the base of the coil mat, free and abstract traces and rhizomes are entangled with unknown beginnings and endings, like rhizomes stretching out without setting a direction. The artist dripped tens of liters of acrylic paint onto the screen of the coil mat, using various tools such as a seasoning container with a nozzle and a plastic rod, or pouring it without hesitation. Through this work process, automatic descriptive figures and abstract figures were created.

 

2. Theoretical background ● An image is an intuitive impression that comes to mind about something. Everything in the real world is a sign, and the image spread out in the visual field is a system of signs. The word acting as a sign conveys meaning through visual communication as well as the representation of other objects. In the era of rapid development of media and media and active content by users, images with fragmentary meanings soon run out of use and are thrown away. Therefore, in order to overcome the limitations of images in the field of visual art, I think that it is necessary to realize a unique and lively image of a work and to contain its intrinsic meaning. ● The theoretical basis of the work is first, the concept of 'Rhizome' appearing in 『Mille plateaux : capitalisme et schizophrenie』 by Deleuze and Guattari. It is not one, but a manifold, a rhizome. 위It is not a hierarchical class, but a group. They are passions and waves in that they do not follow only the back of the ranks, but proceed with intensity and speed while trying to change the vibration of the plate differently. This method of movement resembles the practice of pathos in that it is always connected with the immanence of nature. Moreover, unlike the movement of a line in a recessed space, which leaves a sign of paranoia, in the expansion of a wave, the direction may be completely different, and even if the direction is similar, it leads (connection) and emerges (emergence) completely differently from branching (angle). it can be said. The flow of the rhizome is diverse. There is also a risk of fragmentation in terms of running along the line of a hollow space, cutting, and layering. On the other hand, as a multiplicity, it has intrinsic desires and passions that are not revealed on the outside. Moreover, in the rhizome there is a path of escape, where the power of natural (natural) power is always present, which creates a flow against power, but there is also the danger of turning to simple destruction and going to the line of death, as in fascism. ● Although the rhizome looks like a unit, it is a whole as a multiplicity, and in that it can create various forms of transformation and various mutations and create a new area of life beyond the environment and territory, it is limited to the area of expression of power. Rather, it executes emergence in the association of totality. It is important to realize that the intrinsic link between the region and the whole earth, that is, the ecological link, must be empathized with, and that various discontinuous metamorphoses and mutations have inherent continuity (omitted). ● Second, he is interested in 'Visual Perception', and in particular, the concept of Gestalt psychology is borrowed. Contrary to the atomistic tendency, morphological psychology emphasized the point that 'the whole is more than the sum of its parts'. In my work, the parts (rhizomes) that make up the overall shape are mixed and harmonized with each other, leading the viewer to perceive the multi-layered image of the whole. ● Third, it is an approach to the 'property of sight' among the five senses. Vision is the ability most directly related to the perception of visual arts. It allows us to recognize various visual information we encounter in our daily life, and it also makes us fascinated by something or gives us visual confusion. It is not simply that we see visual information. Visual impressions are based on the cognitive background of human beings, and they interpret visual art from various perspectives and give meaning to them. Based on these properties, an object (coil mat) that can be easily found in the vicinity was introduced as the material of the work to shape the field of the rhizome, and the observer was induced to interpret the work through their own cognitive base.

 

3. Exploration and transformation of objects ● In art, an object is usually used in contrast to a 'subject'. Modern paintings, especially Cubism (Cubism) after Cézanne, excluded subjectivity and valued objects. However, the term object became a special term after it appeared in Dadaism and Surrealism. Just as M. Duchamp exhibited a ready-made toilet at an exhibition in 1917 with the title of 「fountain」, ready-made daily necessities and mechanical parts were used for the purpose of counter-arts in the Dada era. In Surrealism, objects such as natural objects, mathematical models, and cults of the savage were treated as counterparts of irrational or superconscious awareness. Also, compositional works (eg, moving sculptural mobiles) that break the traditional sculptural form are sometimes referred to as objects. Although the object hall in art introduces an interesting problem of aesthetic recognition, the object can be seen as a means of conquering the outside world to expand the materials, forms, and functions of art. ● There are countless different materials and objects in the world. The rapid development of science and technology, engineering, media, and materials-related industries supports new attempts and diversification of material aspects from an artistic point of view. At this point in time, artists find and select objects to express newer concepts and ideas. Maybe materials limited to the field of art are meaningless. Now, it is a matter of choice, and I think it is time to leave the standardized art form and present a new visual result from the perspective of convergence. Of course, since a plastic work is composed of a combination of formal and subjective elements, not only the material but also the intrinsic meaning is important. Wouldn't it be great if you could present your own unique world of modeling while maintaining balance? I think that.

 

4. Author's point of view ● It is just a visual culture, and we live in a culture where it is difficult to be sure what art is anymore amid a flood of conflicting art theories and various art production practices. Perhaps even if you have certain convictions about art, you may not have to say it. The theoretical core of dealing with visual culture is that everything we dealt with with art—beauty, function, cultural purpose, and even technology—has come under suspicion in the postmodern world. Art is a form and manifestation of visual curiosity. I mean, art has always to do with the way we see ourselves and others in this world in some way or another. It is the 'aesthetics of curiosity' that underlies the many ideas and works that artists and art theorists have been interested in from the past to the present. I want to continue to express my thoughts and curiosity through images that are constantly created and connected in 'Rhizome fields'. ■ kim, dae yoo

 

 

Vol.20220216a | 김대유展 / KIMDAEYOO / 金大裕 / painting

'남겨진 정물'

 

이영화展 / LEEYOUNGHWA / 李榮華 / photography 

2022_0209 ▶ 2022_0215

 

이영화_동전지갑과 덧버선_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_60×90cm_202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주최 / 미학적 사진학교

 

 

갤러리 이즈

GALLERY IS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2-1(관훈동 100-5번지) 1층

Tel. +82.(0)2.736.6669/737.6669

www.galleryis.com

 

어머니 ● 내 친정어머니는 97세이다 고향을 , 부모님을 , 형제를 이북에 두고 ,남편과 두 아들과 함께 남한으로 내려오셨다. 그 후 내리 5명의 딸들을 낳으셨다. 그래도 아버지께서는 외로운 우리 형편에 괜찮다 하셨단다. 의지할 곳 없이 사신 두 분의 삶이 얼마나 고단하셨을 까? 내 어릴 적 가끔 하시던 내 어머니의 "내가 살아온 길을 글로 써서 책으로 낸다면 12권도 모자라" 하시던 말씀은 그때는 그 뜻을 알 길 없었지만 지금은 가슴을 저며온다. ● 내 시어머니는 살아계시다면 87세이시다. 70세 생신을 맞으시고, 봄 꽃이 피려고 하는 4월에 우리 곁을 떠나셨다. 다정한 음성, 아름다운 미모의 현대식 시어머니셨다. 입 크게 벌려 왕만두 드시다 눈이 마주쳐 웃으시던 모습이 선하다. 어머니! 꿈에 본 듯 한 번 다녀가시 길… 저도 이제 흰머리가 새치가 아닌 나이가 되어갑니다. ● 나의 또 다른 어머니는 대학 은사님 이시기도 하며 대모님이시다. 대학교에서 정년 퇴직하신 전공분야의 존경받는 학자이시기도 하다. 초록색을 좋아하는, 감성은 소녀이지만 현실은 여느 어머니들과 마찬가지로 강하고, 인내하는 우리네 어머니이시다. 잘 찾아 뵙기는 커녕 안부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사니, 죄송하기 짝이 없다. 대부, 대모님 건강하시길 마음으로만 기도하는 불효녀이다.

 

이영화_어머니의 방석위의 신발_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_90×60cm_2021
이영화_어머니의 버스토큰_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_50×40.8cm_2021
이영화_어머니의 연필_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_50×40.8cm_2021
이영화_엄마의 브로치_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_30×45cm_2021
이영화_엄마의 재봉틀_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_30×45cm_2021
이영화_시어머니 반지_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_30×45cm_2021
이영화_시어머니 상자에서 나온 단추들_ 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_45×30cm_2021
이영화_할머니의 호롱불_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_90×60cm_2021

촬영하면서 ● 장롱 깊이, 어떤 것은 가까이에, 박스 안, 창고에 있던 그것들을 찾아내는 것은 나의 추억과 기억이 필요했다. ● 즐비하게 늘어놓았다. 한 곳으로 모았다. 하나 하나 만지면서, 조명을 비추면서 셔터를 누르면서… 이런 행동을 반복하며 난 그 때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기억의 끝을 잡고 그 순간으로 떠나는 시간들이었다. 떨림도 있었다. 주고 받는 시선은 애달프고, 희미해진 기억의 물결이 일었다.

 

이영화_가방과 타자기_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_30×45cm_2021
이영화_가위와 골무_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_60×90cm_2021
이영화_목줄시계와 성냥_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_30×45cm_2021
이영화_단추와 브로치_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_50×40.8cm_2021
이영화_국그릇_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_45×45cm_2021
이영화_놋주걱_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_30×45cm_2021
이영화_주발과 대접-1_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_50×90cm_2021
이영화_주발과 대접-2_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_45×45cm_2021
이영화_테이블위 LP_아카이벌 잉크젯 프린트_30×45cm_2021

가슴을 스치고 지나가다 ● 딸이란, 며느리란, 엄마란, 여자란 이 단어들은 떠 오르기만 해도 가슴이 저며오며 눈물이 핑 돈다. ● 인생이란 시간을 켜켜이 쌓아가는 것 기억 말고는 그 쌓아놓은 시간을 보여주는 손 때묻은 늘 곁에 있던 물건들이 아닐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깊은 시간, 다 느낄 수도 없는 그들의 순간들! 무슨 말을,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을 까? 유심히 살펴보는 데 우선 그 분들의 옅은 미소가 먼저 떠오른다. 옥 반지 꺼내어 이 손가락 저 손가락 끼워보기를 하다가 겨우 새끼 손가락에 끼우면서 그때로 잠시 돌아가 본다. ● 이번 사진들은 이 세상에 나를 남겨놓은 그분들을 위한 나의 사랑이다. 시간을 기억을 더듬어 촬영하면서 잊고 있었던 다른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재미지기도 하다. 째깍째깍 초침소리와 함께 옛 생각에 묻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흩날린다. 하지만 갑자기 눈물이 나는 건 기억이란 사랑보다 슬플 때도 있는 것 같다. ● 나는 이 세상을 마치고 갈 때 무엇을 남기게 될까? 나도 이제 나의 손때 묻은 물건들이 뭐가 있나 주변을 살펴본다. 내 아이들이 그것을 보며 나를, 나의 시간을 함께 할 그것들을 … ■ 이영화

 

 

Vol.20220209b | 이영화展 / LEEYOUNGHWA / 李榮華 / photography

-이달에 볼만한 전시-

 

길종갑전 “화전” / 2022.2.4- 2022.2.23 / 금보성아트센터

박재동 ‘시사만평전’ / 2022, 2, 7- 2022.2.26 / 갤러리 산촌

안창홍전 ‘유령패션’ / 2022.2.23-2022.5.29 / 사비나미술관

한정식전 ‘고요_존재는 고요하다’ /2022,1.19- 2022.3.3 / KP갤러리

용해숙전 '유토피아 삼경'-강룡사 / 2022. 2. 4 - 2022. 2. 17 / 나무아트

가나문화재단 신소장품전(2020-2021)/ 2022,1,21- 2022,2.20 / 인사아트센터 본전시관

정남선 한국화전 / 2022,1,5-2022,2,5 / 장은선갤러리​

완상의 벽전 / 2022,1,13-2022,2,26 / oci미술관

김선우전 ‘PARADiSE' / 2022.1.27-2022.2.27 / 가나아트센터

금보성전 '한글민화 의자' /2022.1.26-2022.2, 7 / 콩세유갤러리(마루아트)

테레사 프레이타스 사진전 / 2022.1.29-2022.4.24 / THE HYUNDAI SEOUL ALT,1

노정란전 ‘Colors Play by jungran Noh'/ 2022.3.11-2022.4,9 / 표갤러리

이건희컬렉션 한국미술명작전 / 2021년7월21일-3월13일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어느 도시학자가 꿈 꾼 서울전 / 2021,10,29-2022,3,6 / 서울역사박물관

김상진,방정아,오민,최찬숙‘올해의작가상’/2021.10.20.-3.20 / 국립현대미술관

박수근전 / 2021.11.11.- 2022. 3.1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정영신전 '장날' / 2021.11.16-2022,2.6 / 돈화문박물관마을, 작가갤러리1-2관

고궁연화(경복궁 발굴. 복원 30주년 기념전)/ 2021,12,1-2022,2,27 / 국립고궁박물관

송상희전 / 2021,12,16-2022,2,27 /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분관

게티이미지사진전 ‘세상을 연결하다’ / 2021.12.22-2022.3.27 /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앙리 마티스전 / 2021.12.21-2022.4.10 /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러시아 아방가르드:혁명의 예술전 / 2021.12.31.- 2022.4.17. /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스크랩 : 서울아트가이드 2022년 2월호]

완상의 벽(玩賞​의 癖)

 

2022 소장품 특별展 

2022_0113 ▶ 2022_0305 / 일,월,설연휴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이 전시는 2017년 한국 OCI 미술관에서 개최된 『그 집』을토대로 재구성되었으며,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의「트래블링 코리안 아츠 Traveling Korean Arts」사업 지원으로 기획되었습니다.

 

주관 / 주오사카한국문화원기획 / OCI 미술관후원 / 문화체육관광부_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월,설연휴 휴관▶ 전시관람 사전예약

 

 

OCI 미술관

OCI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45-14(수송동 46-15번지) 1,2층 전시실

Tel. +82.(0)2.734.0440www.ocimuseum.org

 

OCI 미술관은 2022년을 맞아 소장품 특별전 『완상의 벽』전시를 개최한다. 한국의 우수 문화를 해외에 소개하는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의 '트래블링 코리안 아츠(Traveling Korean Arts)'사업 일환으로 주오사카한국문화원이 주관하고 OCI 미술관이 기획을 맡았다. 앞선 2019년 같은 사업을 통해 일본과 중국에서 개최한 『그 집』(2017)전시의 후속 전시이며, 당시 한국 미술에 대한 해외 관람객들의 높은 관심에 호응하고자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OCI 미술관의 소장품들을 추가하여 전시한다. ● 『완상의 벽』은 한국의 도자기와 회화를 통해 우리 선조들의 완상문화를 소개하는 전시이다. '완상玩賞'이란 '어떤 대상을 취미로 즐기며 구경한다'는 뜻으로 '감상鑑賞'과는 달리 '취미로 즐긴다'는 조건이 충족된 행위를 칭하는 단어이다. 완상의 대상은 저마다 가지각색이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받은 대표적인 것 중 하나는 '그릇'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릇은 오래 전부터 완상의 대상이었다. 과거 우리의 선조들은 '완물상지玩物喪志'라 하여 어떤 물건에 지나치게 심취하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일상 속의 그릇과 문방구 등을 통해 문인의 신념을 지키면서 완상하는 고아한 완상문화를 만들어냈다. ● 1부 『완상의 시대: 서가에 든 그릇들』은 실용기를 넘어 예술품이 된 한국의 대표적인 도자기를 선보인다. 전시작은 고려 10세기 「청자완」부터 조선 19세기 「백자청화운현명만자문병」에 이르기까지 한국 도자기의 역사를 연대순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OCI 미술관의 대표소장품인 「백자청화운현명만자문병」은 병의 형태를 따라 사방으로 연속하여 퍼지는 독창적인 만자문卍字文이 시문되어 조선 후기 청화백자의 수준 높은 미의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역사성, 조형성, 잔존상태 등을 인정받아 2016년 서울시유형문화재 제 384호로 지정되었다.

백자청화운현명만자문병_31.5×19.5cm_조선시대 19세기
청자상감국화문유개사이호_44×28.5cm_고려시대 13세기
도기과형매병_33.7×18.5cm_고려시대 13~4세기
백자청화복자문화형탁잔_5.2×6.7cm(잔), 3.1×13.4cm(잔대)_조선시대 19세기
오관진_포도항아리_종이에 혼합재료_161×130cm_2009

이외에 도자기와 관련된 근현대회화 소장품을 함께 소개한다. 근현대회화 중 백자를 소재로 한 최영림의 「정물」은 '조선적인 향토성'을 찾기 위한 화가들의 노력과 당시 성행한 골동품 수집열을 확인할 수 있다.

 

최영림_정물_캔버스에 유채_56.2×39cm_1958

2부 『문방청완의 향수: 그릇을 그리다』에서는 조선시대 문방청완 취미의 확산과 함께 유행한 '기명절지도'와 '책가도'를 소개한다. 기명절지도는 진귀한 옛 그릇과 화초, 과일, 채소류를 소재로 그린 그림으로 조선 말기 장승업부터 전승되어 20세기 중반까지 활발하게 그려졌다. 전시되는 기명절지도는 장승업의 「기명절지도」부터 서화미술회의 안중식, 이도영, 교남시서화회의 서동균, 평안남도 전통자수인 안주수安州繡를 사용한 「자수기명절지도」까지 우리 기명절지도의 시기별‧지역별 경향을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장승업_기명절지도 10폭 병풍_비단에 채색_105×29cm×10_조선시대 19세기
이도영_운창청공_종이에 채색_32.5×122.8cm_1929
자수기명절지도 6폭 병풍_비단에 자수_129×32cm×6_조선시대

책가도冊架圖는 책장과 서책을 중심으로 하여 각종 문방구와 골동품, 화훼, 기물 등을 그린 그림이다. 정조正祖(재위: 1776~1800)는 어좌御座 뒤를 장식한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를 '책가도'로 교체할 정도로 관심을 두고 좋아하였으며, 책가도를 통해 일상생활 속에서도 학문에 정진하는 자세를 유지하기를 바랐다. 우리나라의 책가도는 서가書架에 책과 다양한 기물을 그린 형태와 서가 없이 책과 각종 물건을 그린 형태가 있다. 전시되는 「책가도 8폭 병풍」과 「책가도 10폭 병풍」은 서가의 유무에 따라 나뉘는 책가도의 대표적인 두 가지 경향을 확인 할 수 있다. 이외에 이당 김은호의 「의암 유인석 초상」은 전통초상화 안에 책가도 속에서 그려지던 기물을 조화시켜 20세기 전반 전통한국화의 새로운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이다.

 

책가도 8폭 병풍_종이에 채색_86.5×50cm×8_조선시대
책가도 10폭 병풍_종이에 채색_129×39cm×10_19~20세기

전시는 서울 수송동 OCI 미술관 본관에서 1월 13일부터 3월 5일까지 진행되며 3월 중 주오사카한국문화원의 주관으로 온라인 전시를 통해 일본 시민들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또한 한-일 양국 전문가가 함께한 부대행사 등을 통해 좀 더 심도 깊은 한국의 문화예술을 세계를 소개한다. ■ OCI 미술관

 

 

Vol.20220113h | 완상의 벽(玩賞​의 癖)展

abstract impression 50x60&

 

이상선展 / LEESANGSUN / 李尙宣 / painting 

2022_0112 ▶ 2022_0122 / 월요일 휴관

 

이상선_abstract impression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시멘트_100×100cm_202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30am~06:30pm / 월요일 휴관

 

 

아트비트 갤러리

ARTBIT GALLERY

서울 종로구 율곡로3길 74-13(화동 132번지)

Tel. +82.(0)2.738.5511

www.artbit.kr

 

난 조금 이상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211102 ● 더웠던 어느 날인가 그림 위에 그어진 선들과 푸른 색면이 수평선과 방파제로 보였다. 그 엉뚱한 상상은 '고향 가는 길'이 되었고 그렇게 시작되었다. 내게 영감과 상상력을 깨워주는 바000, 키00, 호00 선생들께 특별히 감사드린다. 211202 ● 그냥 가만히 들여다보고 싶은 그림 하나를 그린다. 210927 ● 회화에 진심이다. 그리기에 충실해 본다. 형태는 세잔의 법칙을 따르고 있으나 자유로운 상상을 자극하고, 색은 15가지 기본색에서 채도와 명도를 조절한다. 터치는 각각의 색면을 미세하게 분석하여 섬세하게 조절한다. 그래서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화면을 만든다. 조금 거친 베이스를 사용해 질감을 살리고 물감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밑색과 화면에서 병치 혼합되게 한다. 이야기는 나의 기억과 의도에 의해 섞이고 재조합 되어 왜곡된다. 210830

 

이상선_abstract impressio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시멘트_50×60cm_2021
이상선_abstract impressio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시멘트_60×50cm_2021
이상선_abstract impressio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시멘트_50×65cm_2021
이상선_abstract impressio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시멘트_65×53cm_2021

작업에 원칙을 정하지 않는다. 안되라는 것은 없다. 모든 강박을 버린다. 단 나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것에 솔직하면 되겠다. 210728 ● 그림다운 그림은 형태나 이미지에도 편견을 버려야 된다. 210528 ● 1단계 드로잉과 2단계 초벌칠의 느낌을 최대한 살려본다. 그림은 그림 같아야 된다는 명제에서 출발한다. 그림이 실제 같지 않고 그림 같은 상황. 익숙한 형태나 이미지들을 색분할로 산란시켜 표현한다. 내 작업의 출발선인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에서 포착한 나의 의도성들을 하나씩 더 제거한다. 터치는 느리며 좀 더 섬세하게. 색의 농도는 좀 더 신중하게 조절한다. 그래서 형태와 이미지들을 살릴것인지 더 분할할 것인지 조절한다. 그것은 마치 모자이크 처리된 이미지 같은 무언가 있는데 잘 분간되지 않는 상태이다. 210513 ● 뭔가 거창하고 심오하고 어려운 이야기를 담으려고 하지 않는다. 210428 ● 언젠가는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를 알고 싶다. 210418 ● 색과 빛의 흐름에 따라간다. 형태에 연연하지 마라. 인식된 빛은 의식하지 않는 색의 터치에서 자연스러워 진다. 어느 순간 그림이 그림을 그린다. 210309

 

이상선_abstract impression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시멘트_100×100cm_2021
이상선_abstract impressio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시멘트_50×60cm_2021
이상선_abstract impression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시멘트_91×117cm_2021

날 규정하려 하지말자. 타인의 욕망에 흔들리지 말고 어떤 틀에도 규정지어 지는걸 거부한다. 210305 ● 무언가를 그려야 된다는 의무감으로 작업하지 않기를.. 무언가를 그려야 된다면 기존의 것과 다른 새로운 거를 해야 된다. 보여줄 것이 없다면 차라리 침묵하는 것도 방법이다. 새로운 것이 떠오를때까지 느긋하게 생각하고 연습한다. 새로움이란 익숙한 것이라도 인식되고 의식하지 않는 낯선 시선이다. 210110 ● 아이콘을 만들지 않는다. 특정 지어지는 것을 거부한다. 그래서 고유명사로 남지 않는다. 알파벳 소문자로 쓴다. 200806 ● 인위적으로 선택된 색깔의 표출이 아니라 선택되어 제각각 산란하는 자연스런 색감의 발현이다. 그래서 형태는 흐트러지고 모호해져 점점 추상적으로 된다. 그건 눈이 점점 나빠져서 실제로 세상이 그렇게 보이는것 일수도 있다. 200531 ● 세상 모든 것에는 색이 있다. 그건 고유색이 아니라 빛에 의한 착색이다. 빛의 산란과 번짐에 의해 같은 면에서도 재각각의 다른 색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세밀하게 관찰하면 익숙한것들이 낯설게 보이게 되고 그 지점에서 추상성을 발견한다. 그래서 표현된 이미지는 형태가 아닌 느낌으로 받아드려진다. 그래서 추상적인 인상이다. 200511

 

이상선_abstract impressio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시멘트_73×91cm_2021
이상선_abstract impressio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시멘트_73×61cm_2021
이상선_abstract impression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시멘트_100×100cm_2021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이 내 작품의 출발선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를 나만의 방식으로 작품에 담아낸다. 사회적인 실제 사건이나 현상에 상상을 첨가하여 리얼한 상황을 만든다. 그건 가장 추상적이다. 드로잉하고 계획하고 설계한다. 그것이 작업의 시작이자 끝이다. 완성된 작품은 빙산의 일각이다.빙산의 아래에는 더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있다. 200211 ● 내 그림들은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 의도를 가진 게 아니라, 감상자에게 서로 다른 느낌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를 가진 것이다. 사실 느낌이라는 것은 너무 분명하고 수명이 짧은 것이기 때문에 그런 의도조차도 있다고 하기 힘들다. 나는 그냥 좀 더 원초적이고, 더 깊고, 더 섬세하고 오래가는 것을 찾고 있다. 190712 ● 나에 대해 상상하고 예측 가능한 작업을 하지 않는다. 190306 ■ 이상선

 

Vol.20220112a | 이상선展 / LEESANGSUN / 李尙宣 /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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