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둥지 턴지 20년 만에 강원도 환쟁이들과 처음으로 질펀하게 놀았다.
강원도의 정체성을 보여주려는 전시 의도나 출품작들도 좋았으나,
같은 생각을 하는 꾼들과 함께하는 만남 자체가 더 좋았다.

그런데 전시가 시작되는 날, 아침부터 뭔가 꼬이기 시작했다.
같이 가기로 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사정이 생기기 시작했고,
사람 만나는 과정에서 헤매고, 뭔가 차질이 생기고 있었다.

시간은 늦었는데, 이놈의 지하철은 왜 그렇게 늦게 가는지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결국 한 시간 반이나 늦었는데, 모두들 뒤풀이 집으로 옮겨 가고 있었다.
대개 고루하게 진행되는 개막식 자체는 좋아하지 않으나, 기록을 못해 안타까웠다.

아내와 전시장을 둘러보니, 조명이 설치되지 않은 어제 느낌보다 훨씬 좋았다.
이 강원도의 산울림을 서울까지 끌고 가고픈 생각이 충동질 했으나,
남아 있는 작가들과 뒤풀이 집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반가웠다!

세 번째 술자리지만, 기획자인 최형순씨를 비롯하여 황효창, 황재형, 신대엽, 서숙희,

백중기, 김용철, 김대영, 길종갑, 권용택씨 등 참여 작가 전부가 모인 것은 처음이었다.

'강원문화재단'의 오제환씨, '강원국제미술전람회' 팀장 김윤기씨, '김수근미술관'의 엄선미씨,

피리쟁이 함태근씨 등 많은 분들과 어울려 여흥을 즐겼다.
 
오전의 일들은 다 잊어버린채 즐겁게 술을 마셨는데, 술이 너무 달았다.

주는대로 쪼록 쪼록 마셨더니, 슬슬 객기가 도지기 시작했다.
송상욱선생의 십팔번 ‘부용산’을 황재형씨가 구성지게 불러 분위기를 돋구었고,

황효창선생께서 ‘세노야’를 부르는 등 노래판이 슬슬 벌어지기 시작했다.

백중기씨의 곡을 바꾼 동요에 춤까지 추며 난리법석을 떨어댔다.

난, 내가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 건, 평소에는 꾸어다 놓은 보리쌀자루처럼 앉아 있다가도
술만 한잔 들어가면 백팔십도로 변해 망나니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평소 잘 난 채하는 꼴이 싫어 그런지, 자신을 비하하는 막말도 예사로 해댄다.
그런데 지만 망가지면 되지, 죄 없는 마누라까지 끌어들여 늘 말썽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 날도 결정적인 실구를 두 번이나 날렸다는 것이다.
돌아오며 아무 말 없는 아내의 표정을 쳐다보니, 심각했다.
얼마 전에도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싹싹 빌었는데, 큰일 났다.
집에 도착해서도, 잠을 자면서도, 일체의 말이 없었다.

다음 날 술이 깨니 속이 쓰려 죽을 지경이나 내색도 못하고 전전긍긍했는데,
아침 겸 점심을 먹고는, 말없이 휙 나가버리는 것이었다.
애라 모르겠다. 방바닥에 자빠져 낑낑대다 다시 잠들어버렸다.
눈을 떠보니 오후 아홉시가 넘었는데, 아내가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이다.

아내와의 소통이 끊겼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고문이었다.
이건 립스비스로 될 일이 아니라, 변화에 대한 진정성 있는 믿음을 줘야하는데,
문제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술을 마시지 말던지 벙어리가 되던지 두 가지 뿐인데,
이 더러운 세상 술 없이 산다는 것은 어렵고, 차라리 벙어리 되는 게 낳겠다.


사진: 정영신,조문호 / 글: 조문호




 






































































화가의 자궁
정복수展 / JUNGBOCSU / 丁卜洙 / painting


2015_1105 ▶ 2015_1201 / 월요일 휴관



정복수_화가의 자궁-번식_캔버스에 유채_193.9×259.1cm_2012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41015c | 정복수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트렁크갤러리TRUNK GALLERY

서울 종로구 북촌로5길 66(소격동 128-3번지)

Tel. +82.2.3210.1233

www.trunkgallery.com



정복수의 손-자궁 ● 70년대 후반부터 '기괴한' 혹은 '기이한' 몸을 그려왔던 정복수는 최근 매우 다른 몸을 그리고 있다. 보는 이들을 당혹하게 만들던 그의 저 '벌거벗은 신체'들은 매우 우아하고 아름다운 형태로 자족하고 있다. '보기에 좋구나, 더불어 노닐고 싶다' 웅얼거릴 정도다. 부분기관으로 종횡무진 날아다니거나, 종으로서의 인간 증식을 위해 외롭고 숙명적인 계열체의 한 사슬로 존재하던 이 신체들은 이제 온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뱀들과 교감하며 부드럽게 유영하고 있다. 어떤 첫 탄생의 순결과 평화, 온유함이 은은하게 번진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지?


정복수_뱀과의 하루 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11


정복수_뱀과의 하루 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11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이 변화가 그렇게 급작스럽거나 이상한 건 또 아니다. 80년대의 소위 '검은 그림'을 거쳐 90년대에 그가 끊임없는 변주로 그려 보인 신체들을 떠올려보자. 입/혀에서 성기로, 입/혀에서 항문으로, 또는 입/혀에서 발로 이어지는 내선들만으로 이루어진 그의 기관 없는 신체-인간들은 즉물적이고 원초적인 동물성이나 최소한도로 축소된 사회성을 가리키기보다는 오히려 유기체로 이해되는 신체 '너머', 그 신체를 특정 방식으로 조립하고 규정하는 이데올로기적 사유 '너머'의 해방과 자유를 증명한다. 그가 그린 무수한 부분 신체들은 또 어떠한가. 평자들은 부분신체로 존재하는 그의 인간 이미지들을 주로 '절단'이라는 말로 포착했지만, 절단의 부정성보다는 오히려 '분절'의 해방과 향락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꽤나 많았다. 그렇다, 예를 들어 ♀를 찾아 (신체 없이) 저 홀로 붕붕 날아다니는 ♂는 흥미롭게도 페니스 파시즘의 경쾌한 자기 조롱이고 자기 해체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런 ♂는 전체주의적 폭력과 억압의 남근이성중심주의를 짊어질 수 없으며, ♀ 또한 모멸을 견디는 수동적인 신체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분절된 팔이나 목에서 내뿜어지는 저 힘찬 줄기는, 사람들이 말하듯 절단과 훼손의 핏줄기가 아니라 해방의 내파가 진행 중임을 알리는 에너지 줄기다. 하늘로 비상할 때 우주선 꽁무니에서 내뿜어지는 에너지가 연상되는 기운이다. 슝~~ 어디론가 날아간다. 어디로? 안 알랴 주징~~. 이렇게 정복수는 고통스런 종의 규범적 생존 연대기에 장난기 많고 제멋대로인 욕망의 풍경을 잇댄다. 이제 신체에 새겨진 것이 아니라 아예 신체가 된 기억들은 더 이상 일그러진 억압의 풍경으로 정박되길 거부한다. 남근의 폭력적인 권력을 주장하는 ♂들의 허망한 즉물적 성욕을 폭로하던 80년대의 검은 짐승-신체인간은 서서히 타자를 품고 이야기를 만들어간 시간의 기억으로 변태한다. 이 부분신체들 혹은 기관 없는 신체들은 더 이상 제도와 규범의 강제 위에서 자기동일성을 구축하는 주체가 아니다.


정복수_몸의 초상#4_패널에 색연필_170.5×44.5cm_2015

이러한 변화는 2000년대에 들어와 더 한층 발랄한 기운을 품게 된다. 아마도 이 시기는 화가 정복수가 아버지가 되는 시기가 아니었을까. 「인간의 기쁨」 4개, 「혀의 추억」, 「기쁨의 원형」 4개, 「생의 일기」는 그의 그림 전부를 통틀어 무엇보다 밝고 희망에 차고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이 이미지들에서 이빨은 물어뜯기 위함이 아니고, 혀는 독설을 내뿜기 위함이 아니다. 길게 입 밖으로 뻗어 나와 날름거리는 붉은 혀는 기쁨을 노래하기 위해 저 스스로 소리를 내는 풀피리 같다. 몸통도 팔도 잘렸지만 그 부분 신체로 이 인간들은 웃음 속에서 행복 하느라 여념이 없다. 혀들은 상대방을 향해 쏘아댄 폭력적 판단의 독화살 말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가능케 했던 사랑의 밀어를 추억한다. 이렇게 그의 신체 이미지는 다양한 느낌을 담으며 다양한 몸의 지도, 인간의 구조, 마음의 지도, 인생의 일기를 펼친다. 일관되게 더 밝고 더 긍정적이며 더 아름다운 삶을 향해 전진한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러나 그의 인간들은 암컷을 향해 달려드는 수컷에서, 단지 수컷 단지 암컷에서, 뉘앙스가 있는 짐승-사람으로 조금씩 나아갔다.


정복수_얼굴_패널넬에 색연필_28×22.5cm_2015


정복수_손_패널에 색연필_40.5×74cm_2015

이번 전시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인간들은 밝고 은은하고 평화로운 기운 속에서 뱀과 함께 어떤 시작을 알리고 있다. 뱀은 신화와 종교, 정신분석의 세계에서 지혜와 사악함 (즉 선악의 분별과 그것에 따른 판단), 부활과 치유, 그리고 여성의 (유혹하는) 섹슈얼리티와 남성의 (욕망하는) 섹슈얼리티를 가리켰다. 그리고 정복수가 이제까지 보여준 신체 그림에서 입/혀에서 성기로, 입/혀에서 항문으로, 또는 입/혀에서 발로 이어지는 내선들은 저 모든 의미로서의 뱀이었다. 이 뱀이 밖으로 나온 것이다. 첫 생성과 창조의 시공간을 연상시키는 그림에서 (더 이상 성별을 구별할 수 없는) 보살을 닮은 사람이 뱀과, 뱀이 사람과, 또 뱀이 뱀과 이야기를 나누며 유유자적 공존한다. 기관 없는 신체에서 이제 아예 내부가 없는, 아니 내부를 외부로 지닌 신체가 등장한 것이다. 새로운 말 걸기다. 다시 시작해보자는 것이다. 폭력 아닌 말 걸기로, 사악한 판단 아닌 지혜로운 인식으로,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상서로운 잇기로 새롭게 탄생시켜 보자는 것이다. 무엇을? 그건 중요하지 않다. 유기체적 신체-삶의 목표는 이미 버린 지 오래고, 목적은 여정이기 때문이다. 부드러운 '날름거림'으로 진행되는 이 탄생의 여정이 어떤 경이로운 미의 세계로 우리를 데려갈지, 정복수의 손-자궁이 어떤 형상들을 잉태할지, 참으로 궁금하다. ■ 김영옥



Vol.20151105b | 정복수展 / JUNGBOCSU / 丁卜洙 / painting






삼청동 총리공관 안가에서 한 방 먹고 졸도한 후, 이인철, 박 건, 장경호 잔당에 납치되어 ’조선인민공화국‘ 안가에 실려 갔다.
그 곳에는 이중섭상 받은 강요배 내외를 비롯하여 주재환, 손장섭, 최석태, 박홍순, 이종률 등 빨지산 끼리 모여 술에 취해 흥얼대고 있었다.


소주 고문실에서 생맥주 고문실로 옮긴 것 까지는 좋았는데, 특유의 흐느적거리는 강요배 옆으로 손장섭 지도자 동지께서 파고든 게 발단 되었다. 나는 박홍순 고문관에게 당하는 사이라 시선을 돌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총성 두발이 터진 것이다.

급작스러운 사태라 미처 대응 사격할 틈도 없었는데, 손장섭 동지께서 쏜 것이다. 키만 컸지 비실비실한 강요배 뼘에다 왕복으로 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총을 쏜 동지의 표정에 전혀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유 없이 총 맞은 강요배의 찌그러진 표정은 말 할 것도 없지만, 옆구리를 맞대고 앉았던 부인 표정을 보니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이어 벌어진 지도자 동지의 다둑거림으로 무마되어, 다시 술 고문이 재개되었지만, 총질 한 이유가 궁금했다.


그 다음부터 나름대로 사태를 파악하느라, 고문을 당해도 취하지를 않았다.


“왜 쏘았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오늘 전시된 강요배 작품에 대한 불만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후배의 더 자랑스러운 작품을 보고 싶었는데, 아마 성에 차지 않았나싶다. 이제 강요배가 분발하여 더 좋은 작품 그려 입성할 날만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판단되니 갑자기 코끝이 찡해졌다.


“난 왜 저토록 뜨겁게 아껴주는 선배가 없을까?”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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