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추석이 다가오면 동자동 쪽방 촌에 한마당 어울림 잔치가 벌어진다.

 

그것도 자선단체나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자리가 아니라

주민 스스로 한 푼 두 푼 모은 잔치라 더 의미가 크다.

 

가난하게 살지만 서로 돕는 인정과 신명만큼은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많은 주민이 술 마시며 어울려 놀지만, 한 번도 뒤탈 생긴 적도 없었다.

 

올해로 열두 번째인 동자동주민 한가위 어울림 한마당은 추석을 앞둔 지난 28새꿈공원에서 열렸다.

 

투호, 다트, 윷놀이, 노래자랑 등 민속놀이를 즐기며 음식을 나누는 쪽방촌 최고의 잔치다.

 

동자동 사랑방에서 주관하는 한가위 한마당만은 빠질 수 없어 불편한 몸을 끌고 나갔다.

 

예전 같았으면 빨래줄에 사진을 걸어 두고 찍은 사진도 돌려주었지만,

전시를 그만 둔 요즘은 항상 사진을 갖고 다닐 수 없는 어려움도 따른다.

 

행사장에는 고향을 찾지 못한 분을 위해 차례상도 마련되지만, 찾는 이가 많지 않다.

 

한때는 서울역쪽방상담소도 명절이 되면 차례상을 마련했지만

참여하는 사람이 없어 그만두었는데, 주민들이 차례상을 반기지 않는 이유가 뭘까?

조상을 모실 마음의 여유가 없는지, 아니면 기독교 신자라 그런지 잘 모르겠다.

 

오전 아홉 시부터 오후 두 시까지 열린 한마당 어울림 잔치에서

다들 민속놀이를 즐기고 있었는데, 평소 보이지 않던 반가운 분도 여럿 만났다.

짝을 만나 떠났던 김규수씨도 되돌아왔고, 먼 곳으로 이사 간 강호씨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 날은 김상진, 박희봉씨를 만나 인화해 간 사진을 전해주었는데,

김상진씨는 만족해했으나, 박희봉씨는 컬러사진이 아니라며 시큰둥하여 다시 뽑아주겠다고 다독였다.

초상사진을 갖고 싶어 하는 박갑석, 김봉구, 강 호, 양인숙씨를 찍기도 했다.

 

박갑석씨

민속놀이가 끝나니, 마당에 자리가 펴지며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송편과 묵, 파전 등의 명절 음식에다 돼지 수육까지 한 상 그득했다.

식사하며 반주를 곁들일 수 있는, 공원에서 술이 허락된 유일한 자리인 셈이다.

 

봉사하는 분들은 음식 나르느라 바빴지만, 다들 이웃과 어울려 맛있게 먹었다.

중요한 것은 가난한 쪽방 주민들이 어려운 노숙인과 함께 나눈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좋은 잔치가 어디 있겠는가?

 

반가운 분들을 만나 인사 나누고 사진 찍느라 끼어들 틈도 없었지만,

문제는 아침부터 굶었으나 밥 생각은 물론 술 생각조차 없다는 데 있다.

이쯤 되면 밥숟가락 놓아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즐거운 주연이 끝나자 마지막 순서인 노래자랑이 시작되었다.

최갑일씨 사회로 진행된 노래자랑은 공원을 주름잡던 단골손님들 무대였다.

뭐니 뭐니해도 주민들의 인기 속에 신바람을 일으키는 것은 노래와 춤이었다.

 

다만 천 원씩 내고 노래 부를 수 있는 분이 20명에 한정되어 아쉬웠다,

신청 순서에서 밀려난 주민의 안타까움이 곳곳에 묻어났다.

심지어 순찰하던 경찰관까지 노래를 부르고 싶어 했지만, 거절당했다.

 

대신 노래 부르지 못한 사람은 춤으로 신바람을 일으켰다.

다들 돈이 없어 그렇지 신명 하나는 끝내 주더라.

춤꾼이 한두 사람이 아니었으나, 그중 김봉구씨와 양인숙씨의 엉덩춤이 죽였다.

 

노래자랑이 끝나자 심사 결과가 나왔는데, 추측한 데로 이정애씨가 최고상을 차지하여 상품을 탔다.

노래 부른 사람만 상을 줄 게 아니라, 흥을 돋 군 춤꾼에게도 인기상 쯤은 줘야할 것 같았다.

 

잘 사는 것이란 결코 돈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욕심 없이 사는 데 있다.

요즘은 서울시에서 실시한 동행 식권으로 밥 굶는 사람은 없으니,

신명 나게 놀고 즐기는 것이 최고가 아닌가 생각된다.

 

내년 추석에도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지만, 그때까지 살아남을지 모르겠다.

다들 행복한 추석 보내며,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사진, / 조문호

 

전시 작품 앞의 윤용주씨

장애 화가 윤용주씨의 ‘쪽방촌의 봄’이 지난 8월5일 충무로 ‘갤러리 꽃피다’에서 열렸다.

 

동자동의 봄, 64.5X54.0 / 80만원

‘쪽방촌의 봄’은 절망의 늪에서 건져 올린 작품이라 보는 이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겨 주고 있다.

 

달빛 비친 가을날, 48.0X47,5 / 50만원

윤용주씨가 동자동 쪽방 촌에 들어 온 지도 어언 20년이 지났다.

그는 30대부터 그림을 그렸으나, 전업작가로 살기가 만만찮은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먹고 살기 위해 건설 하청 업체를 운영했으나, IMF를 맞아 부도를 낸 것이다.

 

동자동의 저녁, 67.5X64.5 / 80만원

어렵게 이어가던 일용직마저 끊기자 술에 빠져 살았다.

노숙과 고시촌, 쪽방 촌을 전전한 체념의 세월은 몸을 보살필 겨를조차 없었다.

천식과 고혈압, 신장질환, 뇌전증, 폐기종, 당뇨 등 온갖 질환에 시달렸는데,

8년 전부터 합병증으로 혈관이 막혀 다리가 썩기 시작한 것이다.

 

고가도로, 64.5X54.0 / 80만원

윤용주씨를 처음 만난 것은 2016년 추석 무렵이었다.

그때만 해도 왼쪽 다리는 남았으나, 점점 썩어 들어가 체념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 그가 술을 끊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한 것은 예술의 힘이었다.

한 사람 눕기도 빠듯한 공간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만난 2016년 9월의 윤용주씨 모습

작업공간도 열악하지만, 20여 년 동안 손을 놓았던 그림이 쉬울 리가 없었다.

포기하지 않고 매달린 결과 서서히 빛을 발하며, 한 가닥 희망이 생겨났다.

 

쪽방에서 그림 그리는 윤용주씨 모습, 2017년 5월,

그림에 옛 솜씨가 살아나며 한의 무게까지 실렸다.

2017년 8월, 제2회 국제장애인미술대전에 출품한 작품이 특선을 수상하며 재기한 것이다.

 

후암동성당에서 열린 첫 개인전을 찾은 동자동 사람들과의 기념촬영. 2017년12월

그해 12월 ‘후암동성당’에서 그의 첫 개인전이 열렸다.

어려운 역경을 딛고 일어선 결실이라 더 아름다웠다.

 

산수유마을 / 128,5X90.7 / 200만원

그가 그려낸 붉은 꽃은 아름답다 못해 처절했다.

그림 한 점 한 점에 다시 일어서려는 결기가 엿보였다.

 

이번에 마련한 ‘쪽방촌의 봄’은 세 번째 열린 개인전이다.

지난 5일 열린 개막식에는 아산농장 가는 주말이라 참석하지 못했다.

 

충무로의 '갤러리 꽃피다'

월요일 오후 무렵 전시장에 들렸는데, 마침 작가가 지키고 있었다.

예전부터 그려 온 산수화나 꽃그림에서 진일보한 삶의 주변풍경도 여러 점 걸렸다.

그림도 좋아졌지만, 군데군데 팔려 나간 빨간딱지가 붙어 더 좋았다.

 

진달래의 꿈 외 / 54,3 X 48.0 / 각 50만원

윤용주씨는 2년 전부터 ‘동자동 사랑방’ 대표를 맡으며, 어려운 노숙인을 돕는 일에도 나서고 있다.

이번 전시도 주민자치단체인 ‘동자동 사랑방’ 기금 마련이 목적이다.

 

구례의 봄 (좌측) 97.5X 67,7 / 100만원

그리고 윤용주씨가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은 사진가 김 원씨 덕이다.

화구를 사주며 재기의 불을 지핀 것도 그였지만, 세 차례의 전시를 열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이보다 더한 자선이 어디 있겠는가?

 

동자동에 살다 보면 여기저기 먹거리를 갖다 주거나 빈민을 돕는 자선가들이 더러 있지만,

지속적으로 지켜보며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런 자선은 흔치 않아, 귀감이 될만하다.

 

월하(왼쪽 첫째) 70,0X63,8 / 80만원

26점이 전시된 ‘쪽방촌의 봄’은 오는 17일까지 열린다.

많은 관람과 성원을 부탁드린다.

사진, 글 / 조문호

 

‘사랑방마을협동회 김정호(62세)이사장이 지난 6월 10일 새벽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

6월27일 오전10시 30분 ’서울시립승화원‘ 그리다 추모공간‘에서

광진구 김혜연씨 유해와 무연고자 합동장례를 치루었다.

 

백제 서울시립승화원에서 서울성남교회 박종화 목사 집례로 장례예배도 보았다.

 

동자동 사랑방마을에서는 호상 김호태씨를 비롯하여 양정애, 선동수, 오희섭, 전도영, 조인형, 정대철, 김영자, 차재설,

박희봉, 백광헌, 박승민, 김영봉씨 등 이십 여명이 오전8시 무렵, 백제 서울시립승화원으로 출발해 고인을 추모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사진, 글 / 조문호

 

언젠가 한 번은 가야 할 길이지만, 한평생 사람답게 살아보지도 못하고,

혼자 살다 고통스럽게 돌아가셔서 더 가슴 아프다.

 

지난 달에는 동자동 공원 지킴이처럼, 오랜 세월 주변 청소를 하며

사신 황옥선(83세)씨가 세상을 떠나 놀라게 하더니,

며칠 전에는 ‘사랑방마을협동회’ 이사장인 김정호(62세)씨가 황옥선씨 뒤를 이었다.

 

돌아가신 김정호이사장은 빈민의 자립을 위해 싸운 전사였다.

두 분 모두 약방의 감초처럼 동자동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분들인데,

약속이나 한 듯 연이어 세상을 떠나, 삶의 무상함을 실감한다.

 

황옥선씨는 연세라도 많지만, 김정호씨는 앞으로 할 일이 많은 분이라 더 안타깝다.

한 달 전에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을 촉구하는 '주거권 행진’ 기자회견 전에 만나지 않았던가?

주거권 행진 출발에 앞서 편치 않은 몸으로 새꿈공원까지 나와,

기자회견과 거리 행진을 잘하라며 주민들을 격려했다.

 

황옥선씨가 돌아가신 줄은 알았지만, 김정호씨가 돌아가신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지난 13일 우연히 사랑방 앞을 지나치는데, '謹弔'라는 글이 문 앞에 붙어있었다.

사랑방 사무실에 김정호씨 빈소가 마련되어 깜짝 놀란 것이다.

 

빈소에는 호상인 김호태씨와 선동수 간사장, 정대철이사 등 몇몇 분이 지켰는데, 영문도 모른체 문상했다.

지난 6월 10일 새벽 무렵 폐암으로 돌아가셨으나, 아직 연고자를 못 찾아 장례 날도 못 잡고 있었다.

 

대신 황옥선씨 장례는 연고자를 기다리는 시한인 30일이 지나,

6월 14일 오전 10시 무렵, 벽제 ‘서울시립승화원’에서 화장했다.

 

동자동에서 오전 9시 직전에 출발한 승합차에 선동수간사장을 비롯하여

조인형, 정대철, 박희봉, 김영국, 정재은씨 등 아홉 명이 갔다.

 

 

화장에 앞서 백제 서울시립승화원에 마련된

‘그리다’ 추모 공간에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간단한 장례를 치루었다.

 

공영장례장인 ‘그리다’는 연고 없이 돌아가신 무연고 사망자와

장례를 치루지 못하는 빈민들을 위해 박원순 시장 때 마련했던 고마운 자리다.

 

추모 공간에는 황옥선씨와 노병천씨, 두 분의 위패가 안치되었다.

노병천씨는 영정사진도 없는 데다, 실무자 뿐인 것으로 보아 노숙한 분 같았다.

 

동자동 추모객 중 정재은씨의 안타까움과 슬픔이 가장 절절한 것 같았다.

누구보다 황옥선씨와 쌓은 인연이 깊기 때문이다.

 

차례대로 술잔을 올린 후 먼 길 떠나는 고인을 배웅했다.

살아남은 자는 슬프지만, 세상을 떠난 자는 편할 것 같다.

부디 편히 잠드시길....

 

사진, 글 / 조문호

 

동자동 새꿈공원 지킴이, 황옥선(83)씨가 세상을 떠난지 얼마되지 않아

 사랑방마을협동회이사장인 김정호(62)씨도 운명하셨다.

두 분 다 약방의 감초처럼 동자동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분들인데,

약속이나 한 듯 연이어 세상을 떠나 너무 허망하다.

 

황옥선씨는 연세라도 많지만, 김정호씨는 할 일이 많은 분이라 더 답답하다.

고인은 한 달 전 '주거권 행진기자회견 직전에 만나지 않았던가?

주거권 행진 출발에 앞서 편치 않은 몸으로 새꿈공원까지 나와,

기자회견과 거리 행진을 잘하라며 주민들을 격려했다.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이 추진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떠나 더 안타깝다.

 

두 분의 지난 사진을 돌아보며,  고인을 추모하며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사진, 글 / 조문호

 

황옥선씨는 사진찍기를 싫어하시어 사진이 몇 장 되지 않습니다.

 

 

 

 

윤석렬 정부 취임 1주년을 맞았지만, 동자동 공공개발은 한 치의 진전도 없이 아예 손을 놓고 있다.

 

지난 해  5월 대통령직인수위는 국정과제의 열 번째로 촘촘하고 든든한 주거복지 지원 안을 내 놓으며,

취약계층에 대한 안정적 주거환경 보장을 발표했다.

 

그리고 국토부는 연 초 보도자료를 통해 ’쪽방촌은 현재 추진 중인 사업 속도를 높이고,

쪽방촌 정비사업과 공공임대 이주지원은 조속히 추진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라 발표했으나.

모두 입에 발린 소리라 하나도 실행에 옮긴 것은 없다.

 

공공주택을 기다리다 지친 빈민들이 힘을 모았다.

‘동자동공공주택사업추진주민모임‘,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동자동사랑방’ 등 여러 모임에서

반 빈곤 사회운동 시민단체가 모인 ‘홈리스행동’과 연대하여 거리로 몰려나왔다.

 

윤석렬 대통령 취임 1년을 맞은 지난 16일 오후2시, 용산 전쟁기념관 상징탑 앞에서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추진을 촉구하는 '주거권 행진’ 기자회견을 열어,

“약자 주거복지 빵점!”이라며 정부를 규탄하고,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의 신속한 추진을 촉구했다.

 

동자동 재개발을 발표한 후로 주민들의 주거 상태는 더욱 열악해져 사람 살 곳이 아니다.

죽어 나가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는 현실이라, 하루속히 주거권을 보장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자동 공공주택 사업추진 위원회’ 김영국 위원장은 “국토부는 2021년 2월 서울역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주택 및 도시재생사업 추진계획을 통해 공공주택 임대 1250호,

분양 200호와 민간분양주택 960호를 건설함과 동시에 임시 거주지를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사업 시행을 위한 첫 단계인 ‘공공주택지구의 지정’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동자동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최갑일 이사는 “동자동 쪽방 주민은 1년에 약 50명이 죽어 가고 있는데,

최근 일부 쪽방 건물주들이 보수공사를 이유로 주민에게 퇴거를 요구하는 일도 빈번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2021년 말 동자동 주민 수가 1063명에서 지난해 말 886명으로 약 17% 감소했다며,

서울시에서 조사한 실태조사를 근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이처럼 공공주택사업이 ‘멈춰진 시간’은 쪽방에서 주민들을 하나 둘 내모는 ‘퇴거의 시간’이 되고 있다.

 

이들은 국토부가 3년 전 내건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 약속을 하나도 지킨 것이 없다며,

공공주택 사업 추진이 지연되는 사이 주민들은 보수도 해주지 않는 열악한 쪽방에서 ‘희망고문’을 당한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이 끝난 후, 동자동 공공주택 사업의 ‘첫삽’을 뜨라는 ‘첫 삽’ 증정식 퍼포먼스를 열었다.

 

‘공공주택 첫 삽 떠라’는 문구가 적힌 모형 삽을 윤석렬 대통령에게 전달하기 위해 대통령실로 향했으나

경찰이 제지하며 대신 전달해 주기로 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후 지하철 삼각지역과 한강대교를 지나, 동작구 본동에 위치한

원희룡 국토부 장관 자택까지 향하는 ‘쪽방 주민 주거권 행진’이 시작되었다.

“헌집 새집 손수레”와 손 피켓이나 현수막을 펼쳐들고 거리 행진에 나선 것이다.

 

선두에는 종이로 만든 쪽방 모형을 앞 세웠는데, 국토부장관에게 쪽방을 전달하는 퍼포먼스였다.

 

그러나 연세가 많은 주민들이 많은데다, 그날따라 날씨마저 더워 사고라도 날까 걱정했으나,

악에 받쳐 그런지 쓰러지는 분은 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다.

 

국토부장관 자택이 있는 노들역 주변의 아파트 앞에서 행진을 마무리하고,

결의대회를 열어 국토부의 공공주택지구 지정을 재차 촉구했다.

 

동자동 주민들이 차례대로 나와, 사람 살기 어려운 여건이나 연대발언과 투쟁 결의문도 낭독했다.

 

마지막으로 ‘헌집 새집 손수레’를 국토부장관에게 전달하는 퍼포먼스가 진행되었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를 바꾸어 ’희룡아 희룡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를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내 나이가 어때서’ 노래가사를 아래처럼 바꾸어 불렀다.

 

“야-야-야- 공공주택 어때서

발표하고 나몰라라 하-나-요

사람은 하나요. 우리도 국민인데

공공주택 약속 왜 안지키나요

눈물이 나네요, 나몰라라 하니까

공공주택사업 딱 좋은 계획인데

원희룡 장관님 집은 정말 좋군요

우리 집은 쪽방 단 한 칸, 건물주야 비켜라

우-리가 주민이다. 내 주거권 내가 지킨다“

 

아래는 그날 낭독한 투쟁결의문이다.

(투쟁결의문)

지난 5월10일, 윤석렬 정부는 취임 1년을 맞았다. 취임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110대 국정과제의 열 번째로 “촘촘하고 든든한 주거복지 지원”을 내세우며 “취약계층에 대한 안정적 주거환경 보장”을 공언하였다. 그러나 우리 동자동 쪽방 주민들의 주거 상태는 더욱 더 바닥으로 치닫고 있다. 오늘, 국토교통부 장관은 취임 1년을 맞는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초 보도 자료를 내 “쪽방촌은 현재 추진 중인 사업 속도를 높이고, 쪽방촌 정비사업, 공공 임대 이주지원 등은 조속히 추진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라 하였으나, 동자동 쪽방 공공주택사업은 단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고 있다.

 

만 2년이 지난 2021년 2월5일, 국토교통부는 “서울역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주택 및 도시재생사업 추진계획”을 통해 동자동에 공공임대주택 1,250호를 건설함은 물론, 공사기간 중에 머물 임시 거주지를 제공하기로 했다. 당시 발표한 일정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공공주택 건설이 시작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국토교통부는 소유주들의 반발을 핑계 삼을 뿐, 사업 시행의 첫 단계인 ‘공공주택지구의 지정’조차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일하기를 멈춘 사이, 동자동 주민들은 낡아만 가는 쪽방에서 위태로운 삶을 부여잡고 ‘희망고문’을 당하고 있다. 한 해에 수십 명의 주민들이 가난과 취약한 주거환경 속에서 세상을 등지고 있다. 서울시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1,083명, 2021년 1,063명이던 주민은 2022년 886명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최근에는 일부 쪽방 건물주들이 건물 공사 등을 빌미로 주민들에게 재계약 거부와 퇴거를 요구하고 있다. 주민들을 내몰고 부동산 개발이윤을 쌓는 일, 이것이 건물주들이 하겠다는 “아름다운 민간개발”의 본질이다.

 

우리는 오늘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취임1년을 맞아 장관의 집을 찾았다.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이 집이 보금자리이듯, 우리에게 동자동 쪽방과 그곳에서 일군 이웃들과의 관계들 역시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것임을 말하기 위해서다. 대통령과 국토교통부 장관 취임 1년, 우리 쪽방 주민들에게는 기념할 것 없는 배제와 설움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생명과도 같은 우리의 주거권을, 부동산 개발 이익을 위한 건물주들의 탐욕에 결코 헌납하지 않겠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약자 주거복지 빵점 1년을 속죄하고, 동자동 쪽방 주민의 주거권 보장을 위한 공공주택 사업에 당장 나서라.

 

쪽방 주민 주거권 보장, 공공주택사업으로 응답하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공공주택사업 시행하라!

2023년 5월16일

“쪽방주민 주거권 행진” 참가자 일동

사진, 글 / 조문호

 

[2023.5.23작성]

어버이 날이 되면 쪽방촌 어르신을 위한 잔치가 동자동 '새꿈공원’에서 열린다.

 

해마다 ‘동자동 사랑방’에서 마련하는 잔치지만, 코로나에 발목잡혀 3년 만에 열려 더 반가웠다.

 

동자동 쪽방 촌에 사는 분은 대부분 가족과 연락이 끊겼거나,

있어도 찾아오지 않아 어버이날이 되면 외로움을 더 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텅빈 가슴에 꽃 한송이 달아드리며 술과 음식을 나누니, 이보다 좋은 날이 어디 있겠는가?

 

조화에 불과한 카네이션이지만, 삶에 찌든 어두운 그늘을 지우고 모처럼 활짝 웃는 모습을 보였다.

 

잔치도 자선단체에서 지원한 것이 아니라, 주민들 스스로 음식을 장만한 자리라 더 의미 있다.

 

‘서울역쪽방상담소’의 나눔과 또 다른 것은 줄 세우지 않는데 있다.

주민들에게 음식을 차려줄 뿐 아니라, 이날만은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술도 한 잔 마실 수 있다.

 

머릿 고기에다 각종 부침개, 떡과 소주, 음료수 등을 사랑방 식구들이 부지런히 날랐고,

동네 어르신들은 깔아놓은 자리에서 이웃과 정겹게 술잔을 주고 받았다.

이렇게 화기애애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날도 어버이날과 추석뿐이다.

 

예전에는 잔칫날이 되면 그동안 찍은 사진을 빨랫줄에 걸어 나누어 주기도 했으나,

그마저 마땅찮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 그만 두었는데, 어딜 가나 시기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이후로는 찍힌 분을 언제 만날지 몰라 가방에 넣고 다녀야 하는 불편은 따르지만, 그 또한 내가 짊어져야 할 업이다.

 

잔칫날이 되면 평소 잘 보이지 않는 분도 더러 뵐 수 있는데,

이날은 한 때 동네 사발통문처럼 쏘다니며 도시락을 전해주던 원용희씨를 만났다.

 

얼굴이 반쪽이 되어, 그동안 어디 아팠냐고 물었더니 죽다 살아났단다.

멀지않은 해방촌으로 이사를 갔다는데, 어버이 잔칫날이라 찾아 왔으나 술은 끊었다고 한다.

 

공원에는 술에 취해 여기저기 드러눕는 사람도 생겨났으나, 아무도 탓하는 이가 없다.

기력이 없으니 조금만 마셔도 쓰러지는 것이다.

 

하기야! 답답한 쪽방에 눕는 것보다 시원한 공원에 드러눕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이날 잔치에는 ‘동자동사랑방’ 윤용주 회장과 김호태씨가 주민들께 인사드리며 어르신들의 건강을 기원했다.

 

잔치가 끝난 뒤, 교회 봉사단체에서 나와 도시락을 나누어 주었으나, 다른 때와 달리 남아 돌았다.

요즘은 도시락 인기가 무료식권에 밀려나 예전같지 않다.

 

뒤 따라 쪽방상담소에서도 마스크와 꽃을 나누어 준다며 줄을 세우기 시작했다.

오는 대로 주면 될 텐데, 시간을 정해놓고 기다리게 하니 줄을 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줄 세워 거지 취급하는 나눔은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아무리 희망 없는 나날을 보내지만, 하루를 살더라도 재미있게 즐기며 살자.

 

대개 기초생활 수급자라 술과 담배만 즐기지 않는다면, 살아가는데는 별 지장이 없다.

문제는 돈을 쓰지 않고 이불밑에 넣어 두다 남 좋은 일 시키는데 있다.

 

돈을 아끼고 저축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것도 가난한 독거노인은 해당되지 않는다.

평생 고생하다 죽을 날도 얼마 남지않았는데, 누굴 위해 저축한단 말인가?

 

문제는 수급비를 받는 대부분의 독거노인들이 돈 쓸 줄도 모르고 놀 줄도 모른다는데 있다.

돈도 쓰 본 사람이 잘 쓰지, 돈이 없어 쓰 보지를 못했으니 돈 쓸 줄을 모른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삶의 질을 개선하려면 돈 쓰는 방법부터 가르쳐야 할 것 같다.

정말 돈 쓸 곳이 없다면 수급비도 받지 못하는 노숙인에게 적선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죽고 나면 돈도 명예도 아무 소용없는 쓰레기나 마찬가지다.

 

부디 내년에도 건강하게 어버이날을 맞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사진, 글 / 조문호

 

[2023,5,10작성]

 

 

 

마을공동체 ‘동자동사랑방’의 2023년 제14차 정기총회가 

지난 15일 오후2시부터 동자동 ‘성민교회’에서 열렸다. 

 

2008년 결성된 ‘동자동사랑방’은 지난 15년 동안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다양한 복지사업을 펼쳐, 

삭막한 세상에 한 가닥 희망을 안겨주는 없어서는 안 될 마을공동체다. 

 

동자동 주민들은 대부분 가족과 연락이 끊기다 보니, 서로 도와 병원에 함께 가기도 하고, 노숙인들의 쪽방촌 안착을 돕기도 한다.

중요 활동으로는 밥상공동체인 ‘식도락’을 운영하며, 한가위나 어버이날에는 마을 잔치를 벌여 주민들을 위안한다.

이밖에도 비좁은 방에 선반을 달아주거나 정기적으로 마을 청소도 하고, 주민들에게 법률상담을 주선하기도 한다. 

그리고 쪽방에서 돌아가신 어르신을 위해 마을 장례를 치러주기도 한다. 가난하고 외롭게 살다간 망자를 기리며, 

살아 남은자의 권리를 위해 반 빈곤 연대활동을 펼치는 등 평등한 세상을 지향하는 주민모임이다.

 

다만 참여하는 주민이 일부에 불과해 안타까움을 더해 주는데,

이것은 희망을 잃은 주민과 희망을 가진 주민으로 나누어진 동자동의 뼈아픈 현실이기도 하다.

온 종일 방에서 외부와의 소통을 단절한 채, 죽을 날만 기다리는 주민들이 많다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사랑방이라도 들락거리며 활동하는 분들은 건강에 좋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여러 사람과 소통하므로 외로움의 고통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정기총회도 참석 회원보다 위임회원이 더 많은 것은 시간이 없어서라기보다 매사에 의욕을 잃어가는 것이라 더 안타깝다.

 

정기총회에는 윤동주 공동대표의 인사에 이어

박승민간사의 22년 정기총회 결과보고와 활동보고 및 재정보고가 이어졌다.

 

이어 김호규 감사의 2022년 감사보고가 상세하게 보고되었다.

예산집행이나 영수증수취와 보관이 완벽하게 처리되었음을 밝혔고,

더 많은 주민들의 참여를 통해 사랑방의 미래를 함께 꿈꾸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표선출 안은 양정애, 윤용주 공동대표가 연임되었고,

2023년 예산안은 수입 지출 공히 65,500,000원으로 상정 가결되었으며,

선동수간사장의 총회기록보고에 이어 이원영씨 등 외부인사 소개와 인사도 이어졌다.

 

눈에 띄는 사업계획으로는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치루지 못한 마을장례를 재개하여 주민들의

조문을 받을 수 있게 하거나, 공공주택사업 추진을 위한 대외활동에 더 힘을 모을 것을 다짐했다.

 

‘동자동 사랑방’의 발전과 주민들의 밝은 앞날을 위해 힘찬 박수를 보낸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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