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이야기사진 설치전이 지난 24일 막을 올렸다.

전시를 여러 차례 해 보았지만, 이번 처럼 힘든 전시는 처음이다.

 

경비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지원금으로 해결할 수 있었으나,

몸이 송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죽더라도 전시는 열어놓고 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주눅들어,

어떻게 준비했는지도 모르겠다.

 

오죽하면 전시장 찾은 손님 받는 게, 상가 문상객 받는 기분이었다.

차라리 그랬다면 대마불사주라도 마음껏 대접할 수 있고,

손님도 두 번 걸음 하지 않아도 될 것인데...

 

여러 사람 고생만 시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불편한 이곳까지 오라는 말도 부담스럽지만, 오셔도 손님 맞을 일이 걱정되었다.

 

음식이야 김선우가 준비했지만, 술을 끊었으니 술 고문을 어떻게 당하느냐도 관건이었다.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이곳에 오는 교통편과 숙박이었다.

 

승용차로 오면 술을 마실 수 없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엔 불편한 점이 너무 많았다,

일만 없다면 역까지 마중 갈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한가롭지 않을 것 같았다.

 

일단 일을 벌였으니 죽을 각오로 최선을 다하기는 했으나, 식구들이 고생 많이 했다.

전 날밤은 김창복, 김선우, 양이현, 김평 등 온 식구가 동원되었는데,

힘들게 길 낸 가마솥에다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안도의 한숨을 쉰 것이다.

 

전시 날자는 기다려주지 않고 어김없이 찾아왔는데,

문 열자마자 세종시에 산다는 오세인씨가 오셨다.

 

이광수씨 페북을 보고 알았다는, 첫 손님의 진지한 관람에 기분이 좋았다.

커피 한 잔 드렸더니, ‘두메산골사람들사진집도 한 권 사주었다.

 

이어 홍유선, 김현아씨가 다녀가고 나니, 소설가 임헌갑씨가 심영태씨와 같이 오셨는데,

지리산 막걸리를 두 박스나 가져오셨다.

 

때맞추어 온 완주의 사진가 김종신씨는 오다 보니 안내 현수막이 없더라며

현수막 두 개를 주문해 주었다.

 

임헌갑씨 일행은 온천장에 숙소를 잡았으나,

김종신씨는 캠핑 카에서 지내기로 하고 술자리를 만들었는데,

모처럼 옛이야기를 안주 삼아 늦은 시간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임헌갑씨는 지난번에 주지 못한 책이라며, 인도로 가는 동안이라는 연작 소설을 한 권 주었다.

 

초대일인 26일에는 마산의 변형주씨가 마산 중리 막걸리를 가져왔다.

유목민전활철씨가 준 '느린마을' 막걸리와 '송명섭' 막걸리 두 박스에다

우리가 준비한 소주와 맥주를 비롯한 대마불사주에 이르기까지 곳곳의 명주가 다 준비되었다.

 

'사람 사는 이야기' 전시가 아니라 사람 사는 주막 같은데, 아무래도 술은 남아돌 것 같았다.

 

이튿날은 화가 신상덕씨와 정복수씨, ‘사진바다곽명우씨,

사진비평가 이광수씨가 연이어 오셔서 전시장 분위기가 한결 무르익었다.

 

정복수씨는 나무화랑에서 진행한 프로젝트인 초상화를 전복하는 초상화 작품집을 선물했다.

역시 고생한 보람이 느껴지는 훌륭한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마운 것은 이광수교수로 부터 받은 따끈따끈한 선물 '따마스' 사진집이었다.

 

무겁게 마음을 휘어잡는 사진에서 '악의 꽃'이 연상되었다.

스토리의 연관성보다, 인간은 악이지만 꽃처럼 아름답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기존의 전시형식에서 벗어난 좋은 사진전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늦게는 뮤아트김상현씨와 기타리스트 김병수씨가 나타났다.

인사 나누기가 무섭게 시작된 두 분의 협연은 가을밤의 정취를 무르익게 했다.

김상현씨의 아코디온 연주에 덧붙인 김병수의 기타 음율은 애간장을 녹였다.

 

그런데, 수술 후 한 번도 불러보지 못했다는 김상현씨가 처음으로 노래를 불렀는데,

예전보다 음색이 훨씬 깊어졌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옛말이 딱 맞았다.

특히 하얀 목련은 듣는이의 심금을 울려 준 절창이라, 우리 식구만 듣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모닥불 앞에서 듣는 협연이라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새벽닭이 울어 시간을 보니, 새벽 네시가 훌쩍 넘었더라.

편치 않은 몸으로 먼 길까지 달려와 준 것만도 고마운데, 너무 고생하셨다.

 

그들의 뜨거운 음악 사랑과 깊은 인정에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잠깐도 눈을 붙이지 못하고 떠나는 뒷모습에 마음이 아렸다.

 

그다음 일요일에는 일찍부터 유목민의 전활철씨가 술안주를 잔뜩 짊어지고 왔는데,

좀 있으니 사진가 고영준씨는 친구들을 데려 왔고,

우기곤씨 역시 사우 여러 명을 데리고 나타났다.

 

뒤이어 전통무예가 하태웅씨가 지리산에서 오셨고,

시인 이은정, 전태수, 홍대춘, 서정란씨 등의 문인들과 사진가 마동욱, 김영숙 내외,

화가 칡뫼 김구, 함상규, 고선애, 최보현, 박효링, 권현석, 노인자, 송춘애,

박귀옥, 엄근배, 성혜선씨 등 많은 분이 다녀가셨다.

 

오는 1113일부터 26일까지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황무지, 우상의 벌판개인전을 여는

화가 칡뫼 김구는 열차와 택시를 갈아타며 어렵사리 오셨는데, 가제본 된 책을 가져왔다.

 

손님이 한꺼번에 몰려 한 자리에 오래 머물 수도 없었지만,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아무래도 손님 접대가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다들 떠나고 나니 죄송스러운 마음만 남았다.

 

오죽하면 전시 시작한 지 며칠 동안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기는 커녕 들여다볼 틈도 없었다.

 

그 뒤 이틀 동안 오신 분 사진 역시, 정리할 시간이 없어 주말까지 찍은 사진만 올리는 것이다.

끝나는 날까지 마무리하려면 두 번은 더 소개해야 할 것 같았다.

 

빚진 생각에 마음은 무겁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을 어쩌겠는가?

시간이 맞지 않은 분을 위해 주말인 113일까지 연장하기로 했으니,

가을 가기 전에 나들이 한 번 해도 좋을 것 같다..

 

다들 성원해 주셔서 고맙고 고맙습니다.

아무쪼록 깊어가는 현충사의 가을을 오래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 조문호

 

 

다시는 스스로를 내세우는 보여주기식 전시나 인터뷰는 하지 않기로 다짐했건만,

어쩔 수 없이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여러 사람을 힘들게 만든다.

 

며칠 전에는 온 식구가 동원되어 전시 준비 작업에 나섰다.

선우만 가게 일 하느라 동참하지 못했지, 다들 솥을 걸거나 칠을 하는 등 정신없이 바빴다.

김창복씨는 목공 일을, 기웅서씨는 용접일을, 이현이는 조경 일로 다들 고생했다.

용접할 자제가 부족해 마무리는 못했지만, 대략의 가닥은 잡혔다.

 

거지 처지에 남의 돈 까먹는 이 힘든 일을 왜 하는지, 하면서도 고개를 흔들어 댔다.

발단은 김선우가 만들어 준 아산 백암길 사람사진관의 개관식을 겸한 전시도

한번 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정선 집 화재 때 도움 주신 많은 분에게 드리는

보고 형식의 자리도 필요했다.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었는데,

마침 스마트협동조합에서 신청해 준 한국예술인복지재단 ‘2024 예술활동준비지원사업

선정되어 진행하였으나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르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지원금 삼백만원으로 준비하기도 부족하지만,

동자동에서 아산 백암길을 드나들며 준비한다는 것은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그보다 무슨 사진으로 무슨 말을 할지가 관건이었다.

전시 기획안부터 마련되어 추진하는 것이 순서겠으나. 주객이 전도된 셈이다.

 

그래서 삼십 년 전에 찍었으나 제대로 발표하지 못한 신체발언사진을 꺼내

사회적 문제로 꼽히는 미투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로 했는데,

시골인 것도 걸리지만, 사진관을 만들어 준 선우의 입장도 고려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긴 세월 작업해 온 전체 사진에서 주요 사진만 추려내어 그때 말을 되새기는

말한다사진 설치전을 열기로 결정한 것이다.

단지 신체발언사진은 내 사진 한 점만 숲속에 내걸어 당사자 문제를 제기하기로 했다.

 

그러던 중 진안 계남정미소에서 열린 정영신의 진안 그 다정한 풍경

작가와의 대화에 따라갔는데, 그날 밤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 자리에서 오래된 사우 김종신씨를 만나 완주 자택에서 자기로 하고 술을 마셨는데,

술만 마시면 발동하는 성적 발언이나 장난 끼가 도진 것이다.

그것도 여러 사람 있는 자리에서 딸 같은 선우에게 큰 상처를 입히고 말았다.

그 당시는 심각한 상황도 인식하지 못한 채 며칠이 지났는데,

뒤늦게 선우로부터 장문의 이메일을 받아 보며 화들짝 놀란 것이다.

선우에게 사죄하고, 앞으로 술을 완전히 끊기로 하고 덮었으나, 그냥 넘길 문제는 아니었다.

 

난, 성 개방주의자로 성 문제를 경직시키는 현실에 늘 불만을 가진 사람이다.

술자리에서 좌중을 웃기려고 가끔 성 문제를 거론해 말썽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오래된 술버릇이라 잘 고쳐지지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잘 이해되지 않는 것은, 평상시에는 샌님처럼 말도 잘 하지 않다가

술만 한 잔 들어가면 백팔십도로 바뀌어 버린다는 사실이다.

 

술 취해 돼지 목따는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성을 안주 삼아 별 지랄을 다 한다.

다행히 돈도 권력도 명예도 없어 살아남았지,

아니었다면 벌써 미투에 걸려 매장되었을 것이다.

이번에 크게 깨달은, 뒤늦은 반성으로 평생 즐겨온 술마저 끊었지만,

미력하지만 그 문제를 개선하는데 힘을 보태고 싶다.

 

사회적 문제가 된 미투가 성 의식을 바로잡아 성차별을 없애는 데는 이바지했으나,

정치적이거나 개인적 목적에 의해 생사람 잡는 경우도 많았다.

더 큰 문제는 아름다운 성 문제를 경직시켜 남녀 간의 큰 벽을 만들었다.

사람답게 살자는 바람직한 운동이 남녀 간의 애정을 가로막는 역효과를 낸 것이다.

 

일단 이번 전시에 내 걸기로 한 사내 알몸 사진은 걸지 않기로 했지만,

언젠가 다시 보충 사진을 찍어 제대로 된 전시와 심포지움을 열어,

페미니즘 문제의 가해자로 낱낱이 고백하는 단두대에 서겠다는 것이다.

바라건대, 다시는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만들어,

경직된 남녀 문제에 봄바람을 일으키고 싶다.

 

건강이 그때까지 지탱해 줄지 모르겠으나 돌팔매는 나중에 맞기로 하고,

이번에는 사람 사는 이야기로 전시를 치루게 되었다.

 

평생 작업해 온 사진에서 추려 내 자연 속에 설치하는 전시인데,

전시장에 갇힌 사진에서 야외로 끌어내는 전시다.

동자동 빨래 줄 사진전에서 인사동 담벼락 전시에 이은 야외 전 행보다.

 

청량리에서 몸 팔던 소녀의 이야기에서부터 독재에 저항한 시민이나

살기 어려운 산골 농민이나 장터 사람들의 하소연,

거리에 내몰린 노숙인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그 시절의 인간애를 소환하는 전시다.

 

내 아들을 살려내라는 김세진 어머니의 울부짖음도 있고,

돈 벌어 가족 먹여 살렸다오팔팔김정숙씨의 하소연,

춥고 배 고프다는 노숙인 이덕영씨의 절규도 있다.

허리가 아파 누워 장사한다는 증평장의 정숙현 할머니,

죽도록 고생해도 빚만 남았다는 최덕남씨, ”세상에 믿을 건 두 손 뿐이다

정선의 최종대씨 등 대부분 힘든 서민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다.

그리고 예술은 오기, 무기, 놀기다는 화가 박건씨의 사진이나

막사발로 세계를 제패하고 싶다는 도예가 김용문씨 등

인사동 사람들의 투지가 포함된 30여 점의 사람사진이 자연 속에 설치된다.

 

사람 사는 정이 메말라가는 이 에이아이유령 세상에,

힘든 이야기지만 사람 사는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지나치는 걸음에 들려 차 한잔 드시며 사람 사는 정이나 나누자.

 

가을이 무르익는 24일부터 31일까지 백암길 사람사진관에 술상 차린다.

 

사진, / 조문호

 

 

지난 12일은 이른 아침부터 아산에서 김선우가 올라왔다.

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선우가 강제로 병원에 데리고 가기 위해

병원 두 곳에다 예약까지 해 두고, 나를 꼼짝 못하게 만든 것이다.

얼마 전에는 강제로 한의원에 데리고 가, 복에 없는 한약을 먹게 하는 등

선우의 극성은 정동지도 못 말릴 정도로 지극정성이다.

 

  그날은 '경노의 달'을 맞아 용산구에서 마련한 찾아가는 어르신 문화행사'가

열리는 '갈월종합사회복지관'에 가기로 되어있어 입장이 난처했다.

 

  문화행사 취재보다 병원부터 갈 수 밖에 없었는데, 신사동 이비인후과부터 데려갔다.

한 쪽 귀는 완전히 들리지 않고, 한 쪽마저 청력이 가물가물한 심각한 상태다.

상대방의 입을 보고 말을 알아들을 정도의 귀머거리 행세를 한지가 꽤 오래되었는데,

귀에 문제가 있으면 어지럼증을 동반한다는 말에 보청기라도 구할 작정이었다.

 

 의사 앞에  죄인처럼 불려 앉았는데, 왼 쪽 귀는 귀지 덩어리가 막고 있어 귀지 빼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귀지를 녹여 간신히 빼 냈는데, 그 크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들리는 데는 전혀 도움 되지 않아 청력검사를 했더니, 예상대로였다.

 

  그러나 5개월 후에 다시 청력검사를 해도 그대로라면

장애진단을 내려 줄 수 있다는 의사 말에 귀가 번쩍 띄었다.

텅 빈 장애인 주차구역을 보고도 차 댈 곳이 없어 헤매는 어려움은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 겸 점심을 먹은 후 두 번째 예약병원인 '청구성심병원' 으로 갔다.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는 곳이라 별도의 검진 없이 술과 담배를 끊으라는 유의사항만 들었다.

선우와 정동지는 집으로 가고, 난 행사장으로 내달렸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100여명의 노인들이 나와 공연을 즐기고 있었는데,

판소리 수궁가가 장내를 뒤덮었으나, 추임새는 커녕 관람석은 조용했.

 

그런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동자동 쪽방촌에서 온 노인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방에 갇혀 있는 것보다 사람들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다,

선물까지 준다는데 왜 오지 않았을까? 마음의 여유가 없는 듯해 더 짠했다.

 

  노래는 뭐니뭐니해도 신나는 유행가가 최고였다.

두 번째로 등장한 가수의 남행열차노래 가락에 노인들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예쁜 가수가 객석을 돌아다니며 손까지 잡아주니,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이어 퀴즈 게임이 시작되었는데, “어떤 여자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어갔는데,

그 여자를 세 글자로 말해보라는 것이었다.

대답하는 분이 없어 웃기려고 미친년이라고 말했더니 맞단다.

그다음에는 부산에서 서울까지 걸어 온 여자를 네 글자로 말하라는 퀴즈가 나왔는데,

별의 별 답이 다 나왔으나 마지막에 손든 분의 아까 그년이 정답이란다.

 

  오후330분부터 시작된 노인잔치는 한 시간 가량 이어졌는데, 덕분에 건강곡물을 퀴즈상품으로 받았다.

겨울용 상의와 먹거리 등 얻어 온 선물도 한 보따리나 되었다.

 

자랑하러 녹번동부터 달려갔는데, 정동지와 선우는 짐 옮기느라 정신없었다.

계절이 바뀌면 발동하는 정동지의 세간살이 옮기는 병이 도진 것 같았다.

비좁은 집에서 옮겨보았자 거기가 거기건만, 그 무거운 책과 장을 이방에서 저 방으로 옮겨 가며

환경에 변화를 주어야 직성이 풀리는 정동지의 취미생활은 못 말린다.

 

  다른 때는 내가 없을 때 혼자 낑낑거리며 하는데, 이번에는 선우 온 틈을 이용하여 일을 벌인 것 같았다.

선우는 늦게까지 붙잡혀 일하다 밤늦게 아산으로 떠나는 모습이 영 안 서러웠다.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 않는 방법은 건강하게 사는 것뿐인데,

몸이 송장이나 마찬가지니 이를 어쩌겠는가?

 

사진, / 조문호

 

 

 

토종이 맛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나, 식탁에서 사라진 지 꽤 오래되었다.

식량 증산을 위해 새 품종으로 개량했기 때문인데, 크고 매끈한 것만 찾는 소비자의 성향도 한 몫 했다.

'농업진흥청'에서 개량한 종자만 사용하다 보니, 토종이 설 자리를 잃어 씨를 말려 버렸다.

 

요즘 나온 과일이나 농산물을 먹다 보면 대개 맛이 없다.

다들 왜 옛날 맛이 나지 않을까?” 궁금해 하지만, 종자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아산의 김창복씨는 유기농으로 토종만 고집하는 농삿꾼이다.

토종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긴 세월 토종 씨앗을 구하러 수소문하고 다녔다.

현재 보유한 종자만 수십 종에 달한단다.

 

수집한 토종 씨앗으로 재배해, 그 농장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농산물은 토종이다.

그러나 수확량도 적지만 때깔이 작고 못생겨 상품화될 수가 없었다.

돈은 못 버는 대신, 식구들은 옛 맛의 진수를 본다.

 

지루한 장마로 지지난 주말엔 봄에실농장에 가지 못했다.

지난 주말에도 장마가 이어진다는 일기예보였으나, 일기예보가 빗나기를 바라며 갔다.

일주일만 가지 않으면 잡초가 농작물을 뒤덮기도 하지만, 자란 야채를 따기 위해서다.

 

아니나 다를까 비는 그치지 않고, 젖은 땅을 쉼 없이 적셨다.

지난 폭우에 언덕길이 무너지는 불상사는 있으나, 큰 피해는 없었단다.

지척에서 울어대는 맹꽁이 소리를 음악 삼아 멍 때리는 한가한 시간이었다.

 

선우는 옥수수를 삶아왔다. 하나같이 어린 애 손처럼 작고 앙증맞았으나, 맛은 달랐다.

마치 늙은이의 치아처럼 생겼는데, 옥수수 알은 빠지거나 엇갈린 것이 더 맛있었다.

그래, 어릴 때 맛본 이 맛이야! 입맛이 변한 게 아니라 종자가 달랐구나

맛있게 하모니카를 불고 있으니, 고양이도 먹고 싶어 창 너머로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김창복씨는 빗방울이 약해지니, 그사이를 못 참고 신발을 거둬 빗물에 씻어 왔다.

참 부지런한 분인데, 게으른 놈은 옆에 있기가 참 민망하다.

 

이현이는 정동지가 갖다 준 옷으로 패션쇼 하느라 바빴다.

이 옷은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한 바퀴 돌고 가더니,

두 번째는 쌕시 모드라며 짧은 바지에 선그라스 까지 끼고 나와 한바탕 웃겼다.

 

비 덕분에 복에 없는 호강을 했다.

토종작물을 특화하여 파는 방법은 없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왔다.

거지의 삼중생활은 고달프지만 즐겁다.

 

사진, / 조문호

 

 
양이현, 셀프 촬영

‘봄에실’은 아산시 인주면에 있는 농장 이름이다.

그곳에는 김창복, 김선우, 양이현, 김평 동지 외에 또 다른 대식구가 있다.

 

고양이 4대가 함께 살며 농장의 파수꾼 노릇을 톡톡히 한다.

갈 때마다 꼬리를 치켜세워 반가운 기색은 하지만, 별다른 행동은 하지 않는다.

항상 거리를 두며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편안한 가족관계를 유지한다.

 

함께 모인 것을 보지 못해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대략 20여 마리 되는 것 같았다.

들쥐나 뱀을 쫓아주는 고마운 일을 하지만, 그들이 먹어 치우는 사료 값이 만만찮다.

 

 4대가 한 가족을 이룬 농장에 유일하게 입양된 갈색 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

다들 야생으로 사는 것이 체질화되었으나, 그 냥이만 방에 살던 미련이 남아,

높은 곳에 올라가 창으로 방안을 내려다 보았다.

안쓰럽지만, 곧 자유로운 야생에 익숙해질 것이다.

 

고양이가 없었을 때는 들쥐가 닭장에 들어가 닭을 잡아가기도 하고

풀밭에 뱀이 도사리고 앉아 일하는 사람을 놀라게도 했으나,

고양이 방위사령부가 지킨 후로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빨라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인데, 주말마다 농장에가니 일주일이 총알같다.

 

문제는 몸이 마음같이 움직여 주지 않는데 있다.

 

더구나 장마철이라 그런지 몸은 쇳덩이처럼 무겁고, 마치 두들겨 맞은 것처럼 욱신거린다.

 

지난 주말에는 김창복씨가 몸보신시켜 준다며 닭을 두 마리나 잡았다.

더운 날 아궁이에 불을 지펴 엄나무와 푹 삶아 놓았더라.

 

그리고 얼마나 부지런한지, 그 넓은 농장의 잡초를 깨끗이 베어내고,

나무 가지치기까지 해 정원을 말끔하게 단장해 놓았다.

 

연못에는 물이 고여 곳곳에 개구리알이 둥지 틀었고,

심어놓은 야채는 싱싱하게 자라, 가지도 고추도 거시기보다 더 컸다.

 

정동지는 백반을 챙겨와 이현이에게 봉숭화 꽃잎으로 손톱에 물들이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잠시도 쉴 틈 없는 김선생께는 발판 겸 책꽂이 하나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냥 판자를 잘라 못질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라인더로 갈고,

선우는 콩기름까지 먹여 발 딛기 민망할 정도로 예쁘게 만들어 주었다.

 

다음날 오찬에는 선우가 연잎밥을 지었는데, 너무 예뻐 먹기 아까웠다.

오래전, 도예가 조상권씨 공방에서 먹어본 후, 두 번째 맛보는 연잎밥이었다.

입안에 번지는 향이 감칠맛이었다.

 

남정네 빰치는 작은 여장부 김선우는 일 솜씨뿐 아니라 음식솜씨도 대단했다.

거기다 양이현의 부지런함이나 인정스러움은 요즘 소녀가 아니다.

듬직한 평이의 재치 역시 부전자전이다.

 

대단한 분이 모여 사는 농장에 얼치기 두 명이 끼었으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도움은커녕 일거리만 만드는 편인데, 갈 때마다 신세만 진다.

 

'벼룩도 낯짝이 있다'는데, 이 일을 어쩌지?

 

사진, 글 / 조문호

 

양이현, 셀프 촬영

지난 주말에는 아산 인주면 산채에서 바비큐 파티가 있었다.

급히 장항에서 사진 찍을 일이 있다는 정 동지 말에 그곳부터 들려야 했다.

장항선 따라가는 장터 기행 작업하느라 여러 차례 갔으나,

‘등잔 밑이 어둡다’듯이 장항역 사진만 못 찍었다는 것이다.

사진 한 장 찍기 위해 장항까지 간다는 것은 좀 억울했다.

시간 낭비는 차지하고, 길바닥에 쏟는 기름 값과 통행료가 아까워서다.

차라리 사진 원고 대행업체에서 한 컷 빌려 쓰면 좋으련만, 정 동지는 모든 것을 직접 찍어야 직성이 풀린다.

 

장황에서 간단히 촬영한 후 급히 달려갔으나, 다들 파티를 열기위해 우리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여섯시 무렵 도착했으나, 해가 길어 한낮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른 곳은 비가 많이도 내렸으나, 이곳만 피해 갔는지, 파 놓은 연못에 물도 고이지 않았다.

들쥐와 뱀을 쫓는 고양이는 녹음 짙은 산채를 어슬렁거렸다.

 

임금님 기다리던 궁녀가 죽어 꽃이 되었다는 전설의 능소화는 전신주를 타고 올라 하늘 위에 피어 있었다.

 

매번 ‘백암길미술관’에서 머무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본가에다 PC까지 장만한 임시 거처를 만들어 놓았다.

미술관 잠자리가 불편해서 보다, 그곳까지 운전해 가려면 술을 마실 수 없기 때문이다.

 

선우와 이현이는 음식을 나르고, 김창복씨는 모깃불 피울 쑥을 베거나

숯불을 피우는 등 바쁘게 움직였다. 등달아 평이도 신났다.

 

파티 준비를 서둘러 끝낸 후 다 같이 축배부터 들었다.

새 식구를 맞은 동지들의 단합을 위한 축배였다.

 

노릇노릇하게 구운 돼지고기와 자연 속에서 마시는 술맛은 어디에도 비길 바가 아니었다.

 

좋아하는 소주 ‘새로’도 한 박스나 사 두었다.

일 나갔던 기웅서씨는 정동지 좋아하는 흑맥주까지 사왔다.

평소 소주 한 병이 주량이지만, 그날은 두 병을 마셔도 끄떡없었다.

 

술이 들어가면 가무가 따라야 하지 않겠는가?

김창복씨는 주변을 밝힐 조명 설치에 분주하고, 이현이는 무대 장비 챙기느라 바빴다.

평이는 현장감독이라며 안전모까지 쓰고 나왔다.

 

창고에 숨겨 둔 드럼과 북채까지 끄집어냈다.

놀라운 것은 앰프도 없고 노래방 기계도 없지만, 디지털세대인 이현이의 지혜로 모든 것이 해결됐다.

 

마이크에 앰프 성능이 있었고, 유튜브 노래방 음원을 연결한 핸드폰이 노래방 기계로 변신한 것이다.

드디어 산 속 야외무대의 버라이어티 쇼 막이 올랐다.

쑥을 태운 자욱한 모깃불 연기가 마치 무대 연막 같았다.

 

차례대로 노래를 불렀는데, 나가수 뺨치는 노래 실력이었다.

김창복씨의 ‘휘나리’에 이어 ‘다 함께 나가자’에 이르기까지 별의별 노래가 다 나왔다.

 

산채가 떠나갈 듯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니, 울어대던 풀벌레도 기 죽어 잠잠했다.

 

선우와 이현이는 여성해방가로 불리는 ‘딸들아 일어나라’를 합창했다.

일하느라 하루를 다 보내고 자신과 세상에는

한 발도 들여놓지 못하는 여성의 처지를 토로한 노래였다.

 

촌에서 썩기 아깝다며, 중앙무대로 진출하라며 바람을 잡았다.

이현이는 다양한 분장으로 눈길을 끌었으나, 관객이 적어 아쉬웠다.

 

구름 속에 숨은 달빛만 엉큼하게 내려보고 있었다.

 

사진 :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개뿔도 없는 거지가 이렇게 호사를 누려도 되는지 모르겠다.

지난 달부터 일주일에 사흘(월,화,수)은 동자동서 사진 찍느라 바쁘고,

이틀(목,금)은 녹번동에 파출부로 나가고, 나머지 이틀(토,일)은 농장에 농사지으러 다닌다.

나보다 더 바쁜 사람 있으면 어디 한번 나와봐라.

 

지난 주말은 아산 농장 가기 전에 들릴 곳이 있었다.

가는 길에 강남 ‘연우갤러리’에서 열리는 오현경씨 “Rain”도 봐야 하고,

용인 ‘갤러리 위’에서 열리는 이익태씨 “Everyone Pierrot”도 봐야 했다.

거리가 멀어 미뤄 둔 전시를 하나 하나 돌아보며 아산시 인주면에 간 것이다.

 

오후 3시 무렵 도착했는데, 이번엔 반기는 식구가 많았다.

김창복, 김선우 동지를 비롯하여 양이현과 막네 김평까지 와 있었다.

평이는 2년 전 아산에서 열린 ‘미얀마 민주시민을 위한 미술행동전’ 개막식에서 보고 처음 만났는데,

얼마나 자랐는지 엄마보다 더 컸다.

 

이현이는 햇살이의 새 이름인데, 예쁜 아가씨가 엄청 부지런하고 일을 잘 하더라.

 

지난주에 부루벨리를 따 왔으나, 다시 주렁주렁 열렸다.

이현이와 평이까지 합세해 부루벨리를 땄는데, 시간이 너무 빨리 갔다.

 

잔뜩 딴 부루벨리를 모두 가져가라는데, 지난 번처럼 배달할 일이 걱정되었다.

 

고민 끝에 나누어 먹을 방법을 찾아냈다.

냉동실에 저장해 두었다가 다음 달에 열릴 정동지의 '장항선 따라가는 장터사진전'때 내놓을 작정이다.

 

선우가 차려 낸 진수성찬으로 배를 불린 후, ‘백암길미술관’에 여장을 풀었다.

미술관에서의 잠자리는 마치 신혼여행 온 기분이다.

 

이튿 날은 잡초를 뽑다보니, 텃밭에 심은 청경채를 벌레가 다 갉아 먹었더라.

농약을 사용치 않아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만, 손으로 벌레를 잡는 수 밖에 없었다.

 

간식으로 먹기 위해 감자를 캐러 갔는데, 자색감자가 포도송이처럼 탐스럽게 달렸다.

그런데, 이현이가 감자밭에서 맹꽁이 한 마리를 발견한 것이다.

 

맹꽁이는 10년 전부터 멸종위기 2급으로 지정된 보호종이 아닌가?

건설 현장에서 맹꽁이 한 마리 나오면 1억 원 날아간다는 말도 있다는데, 이곳에 맹꽁이가 엄청 많다고 한다.

 

비오면 맹꽁이들이 “맹꽁맹꽁” 합창하고, 여름밤엔 반딧불이 산채를 수놓는 보기 드문 청정지역이었다.

이십여 년 동안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유기농을 고집한 김창복씨의 노력과 집념 덕분이다.

 

그리고 포장도로에서 산채까지 가는 팔백 미터가 비포장도로였다.

처음엔 다소 불편하게 느껴졌으나, 이 또한 이곳만의 매력이었다.

요즘 흙길 걸을 수 있는 곳이 어디 있는가? 입구에 주차장만 준비된다면 산책코스로 손색이 없었다.

 

이곳에 갈 때만은 핸드폰도 버리고 아날로그의 삶으로 돌아간다.

 

올해 열 두 살인 평이는 유치원은 물론 초등학교도 보내지 않았다.

오로지 가정교육에 의지한 채, 스스로 지식을 깨우쳤으나 모르는 것이 없었다.

획일적이고 일방적인 과도한 지식 습득이 인간성을 상실시키는 교육의 문제점을 간파한

부모 덕분에 공부에 쫓기지 않고 자유롭게 자란 것이다.

 

단 한 가지 문제점은 주변에 친구가 없어 걱정이다.

얼마나 사람이 그리웠으면, 우리가 가는 주말을 손꼽아 기다린단다.

다음에는 바비큐 해 먹자는 평이의 마지막 인사가 마음에 걸린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주말은 정동지와 함께 아산시 인주면에 있는 김선우 산채에 갔다.

봄에 텃밭을 일궈 주어 야채를 심었으나 자주 갈 형편이 못되어,

한번 가면 잡초 뽑느라 카메라 꺼낼 틈조차 없었다.

 

이번 나들이는 일박이일의 일정이라 한결 여유로워 사진도 찍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듯, 지천에 늘린 블루베리 따느라 즐거운 비명을 질러야 했다.

블루베리는 유독 정동지가 좋아하는 과일이지만, 가격이 비싸 사먹을 수 없었다,

그 날 블루베리를 처음 먹어보았는데, 새콤달콤한 맛이 귀가 막혔다.

 

혈압과 암을 비롯한 갖가지 성인병 예방과 노화방지에다 피부까지 좋아지는 약이었다.

더구나 눈의 피로를 풀어주어 시야를 맑게 하는 등 몸에 유익한 열매라,

다 같이 달라붙어 블루베리 따느라 다른 곳은 손댈 겨를이 없었다.

 

  따 모은 블루베리가 한 바가지도 아니고, 큰 대야에 가득한데,

손 큰 선우가 그 많은 블루베리를 모두 차에 실어 주어, 정 동지 입이 찢어졌다.

 

그 날 밤은 정영신의 어머니의 땅이 전시된 백암길185미술관에서 묵기로 했다.

그동안 농장에 여러 차례 갔으나 매번 당일치기라 술 한잔 마실 수 없었는데, 오래된 원을 풀 좋은 기회였다.

처음으로 전시장에 여장을 풀고, 그 곳에서 김창복, 김선우씨와 함께 만찬의 시간을 가진 것이다.

 

  금방 따온 상추에다 맛있게 삶아 낸 수육을 싸 먹었는데, 선우 음식솜씨에 또 한 번 놀랐다.

술 마시며 산채의 환경친화적인 활용방안을 논의하기도 했으나,

술이 들어가니 하지 않아도 될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느라 시간 다 보냈다.

'제 버릇 개 주지 못한다'는 정동지 말처럼, 그 주책은 고칠 수가 없다.

 

  그 이튿날은 잡초 뽑는 일에 매달려야 했.

20여 년 동안 그 넓은 땅에 제초제는 물론 농약과 화학비료 한 번 사용하지 않고,

유기농으로 농사지은 김창복씨와 김선우씨의 집념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그들이 흘린 땀을 모은다면 저수지를 만들고도 남았을 것이다.

덕분에 자연과 땅이 온전히 살아 남은 것이다.

 

  김창복씨는 오래 전부터 한살림에서 유기농을 해 온 영농지도자였다.

씨앗도 토종만 사용할 뿐 아니라 농장에는 없는 작물이 없었다.

뒤늦게 알았지만, 농사 뿐 아니라  '이거 큰일났군' 동화를 펴낸 동화작가이기도 했다.

 

  말이 쉬워 유기농이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처음 정선 갔을 때는 제초제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았으나,

갈 때마다 숲을 이룬 잡초와의 전쟁에, 삼년을 넘기지 못하고 손 들고 말았다.

이십년 동안 제초제를 끼고 살다, 2년 전 살던 집에 불이 나는 통에 그만 둔 것이다.

 

  대신, 아산시 인주면에 있는 선우 산채에 내가 머물 농막을 짓기로 했다,

그 사이 농지법이 바뀌어 농막에서 사람이 잘 수 없게 된데다,

건축규제마저 까다로워, 집 짓는 일은 시작도 못했다.

김창복씨는 산림청 허가를 받아야 되는 산막을 짓기 위해 임야 조성에 매달리고 있었다.

그 과정을 거치려면 올 가을에나 지을 수 있다고 했다.

농막은 6평으로 제한하지만, 산막은 15평까지 된다니 더 잘된 일이었다.

 

다른 곳은 손 댈 엄두도 내지 못하지만, 내가 일구는 텃밭과 집터라도 잡초를 뽑아야 하지 않겠는가?

정동지와 선우는 다른 곳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른 체, 아침부터 잡초와 씨름했다.

한 나절에는 너무 더워 숨이 턱턱 막혔으나, 참고 견뎌야 했다.

선우가 그만 두라고 몇 번이나 찾아왔으나 알았다는 말만하고 일어서지 않으니, 정동지를 보내 재촉했.

 

여기만, 여기만. 하다 일어나니 어지러웠다.

선우가 타 준 시원한 얼음커피에 한 숨 돌렸으나, 아무래도 더위 먹은 것 같았다.

읍내에서 양햇살양을 만난 후 맛있는 냉면까지 사 주었으나, 먹는 것까지 귀찮았다.

어지럽고 머리가 아파, 어떻게 서울까지 운전해 왔는지 모르겠다.

 

다행히 자고 일어나니 한결 나아졌으나, 정동지의 극성은 못 말린다.

정선에서 농사지을 때는 두릅이나 옥수수를 따 지인들에게 나누어주는 것도 일이었는데.

이번에는 블루베리를 배달해야 한다며 봉지, 봉지 싸 놓은 것이다.

하기야! 장에 나가 파는 것보다 나누어 먹는 것이 좋지 않은가?

 

그나저나, 아산에서 농사 지어려면 매주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동안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동자동에서 지내고, 금요일부터 주말까지

녹번동 정동지 일을 도왔는데, 아무래도 주말은 인주면 산채에 가야 할 것 같았다.

이중생활에서 삼중생활이 된 셈인데, 개뿔도 없는 주제에 혼자 바쁘게 생겼다.

 

사진,/ 조문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