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은 이른 아침부터 아산에서 김선우가 올라왔다.

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선우가 강제로 병원에 데리고 가기 위해

병원 두 곳에다 예약까지 해 두고, 나를 꼼짝 못하게 만든 것이다.

얼마 전에는 강제로 한의원에 데리고 가, 복에 없는 한약을 먹게 하는 등

선우의 극성은 정동지도 못 말릴 정도로 지극정성이다.

 

  그날은 '경노의 달'을 맞아 용산구에서 마련한 찾아가는 어르신 문화행사'가

열리는 '갈월종합사회복지관'에 가기로 되어있어 입장이 난처했다.

 

  문화행사 취재보다 병원부터 갈 수 밖에 없었는데, 신사동 이비인후과부터 데려갔다.

한 쪽 귀는 완전히 들리지 않고, 한 쪽마저 청력이 가물가물한 심각한 상태다.

상대방의 입을 보고 말을 알아들을 정도의 귀머거리 행세를 한지가 꽤 오래되었는데,

귀에 문제가 있으면 어지럼증을 동반한다는 말에 보청기라도 구할 작정이었다.

 

 의사 앞에  죄인처럼 불려 앉았는데, 왼 쪽 귀는 귀지 덩어리가 막고 있어 귀지 빼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귀지를 녹여 간신히 빼 냈는데, 그 크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들리는 데는 전혀 도움 되지 않아 청력검사를 했더니, 예상대로였다.

 

  그러나 5개월 후에 다시 청력검사를 해도 그대로라면

장애진단을 내려 줄 수 있다는 의사 말에 귀가 번쩍 띄었다.

텅 빈 장애인 주차구역을 보고도 차 댈 곳이 없어 헤매는 어려움은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 겸 점심을 먹은 후 두 번째 예약병원인 '청구성심병원' 으로 갔다.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는 곳이라 별도의 검진 없이 술과 담배를 끊으라는 유의사항만 들었다.

선우와 정동지는 집으로 가고, 난 행사장으로 내달렸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100여명의 노인들이 나와 공연을 즐기고 있었는데,

판소리 수궁가가 장내를 뒤덮었으나, 추임새는 커녕 관람석은 조용했.

 

그런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동자동 쪽방촌에서 온 노인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방에 갇혀 있는 것보다 사람들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다,

선물까지 준다는데 왜 오지 않았을까? 마음의 여유가 없는 듯해 더 짠했다.

 

  노래는 뭐니뭐니해도 신나는 유행가가 최고였다.

두 번째로 등장한 가수의 남행열차노래 가락에 노인들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예쁜 가수가 객석을 돌아다니며 손까지 잡아주니,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이어 퀴즈 게임이 시작되었는데, “어떤 여자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어갔는데,

그 여자를 세 글자로 말해보라는 것이었다.

대답하는 분이 없어 웃기려고 미친년이라고 말했더니 맞단다.

그다음에는 부산에서 서울까지 걸어 온 여자를 네 글자로 말하라는 퀴즈가 나왔는데,

별의 별 답이 다 나왔으나 마지막에 손든 분의 아까 그년이 정답이란다.

 

  오후330분부터 시작된 노인잔치는 한 시간 가량 이어졌는데, 덕분에 건강곡물을 퀴즈상품으로 받았다.

겨울용 상의와 먹거리 등 얻어 온 선물도 한 보따리나 되었다.

 

자랑하러 녹번동부터 달려갔는데, 정동지와 선우는 짐 옮기느라 정신없었다.

계절이 바뀌면 발동하는 정동지의 세간살이 옮기는 병이 도진 것 같았다.

비좁은 집에서 옮겨보았자 거기가 거기건만, 그 무거운 책과 장을 이방에서 저 방으로 옮겨 가며

환경에 변화를 주어야 직성이 풀리는 정동지의 취미생활은 못 말린다.

 

  다른 때는 내가 없을 때 혼자 낑낑거리며 하는데, 이번에는 선우 온 틈을 이용하여 일을 벌인 것 같았다.

선우는 늦게까지 붙잡혀 일하다 밤늦게 아산으로 떠나는 모습이 영 안 서러웠다.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 않는 방법은 건강하게 사는 것뿐인데,

몸이 송장이나 마찬가지니 이를 어쩌겠는가?

 

사진, / 조문호

 

 

 

토종이 맛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나, 식탁에서 사라진 지 꽤 오래되었다.

식량 증산을 위해 새 품종으로 개량했기 때문인데, 크고 매끈한 것만 찾는 소비자의 성향도 한 몫 했다.

'농업진흥청'에서 개량한 종자만 사용하다 보니, 토종이 설 자리를 잃어 씨를 말려 버렸다.

 

요즘 나온 과일이나 농산물을 먹다 보면 대개 맛이 없다.

다들 왜 옛날 맛이 나지 않을까?” 궁금해 하지만, 종자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아산의 김창복씨는 유기농으로 토종만 고집하는 농삿꾼이다.

토종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긴 세월 토종 씨앗을 구하러 수소문하고 다녔다.

현재 보유한 종자만 수십 종에 달한단다.

 

수집한 토종 씨앗으로 재배해, 그 농장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농산물은 토종이다.

그러나 수확량도 적지만 때깔이 작고 못생겨 상품화될 수가 없었다.

돈은 못 버는 대신, 식구들은 옛 맛의 진수를 본다.

 

지루한 장마로 지지난 주말엔 봄에실농장에 가지 못했다.

지난 주말에도 장마가 이어진다는 일기예보였으나, 일기예보가 빗나기를 바라며 갔다.

일주일만 가지 않으면 잡초가 농작물을 뒤덮기도 하지만, 자란 야채를 따기 위해서다.

 

아니나 다를까 비는 그치지 않고, 젖은 땅을 쉼 없이 적셨다.

지난 폭우에 언덕길이 무너지는 불상사는 있으나, 큰 피해는 없었단다.

지척에서 울어대는 맹꽁이 소리를 음악 삼아 멍 때리는 한가한 시간이었다.

 

선우는 옥수수를 삶아왔다. 하나같이 어린 애 손처럼 작고 앙증맞았으나, 맛은 달랐다.

마치 늙은이의 치아처럼 생겼는데, 옥수수 알은 빠지거나 엇갈린 것이 더 맛있었다.

그래, 어릴 때 맛본 이 맛이야! 입맛이 변한 게 아니라 종자가 달랐구나

맛있게 하모니카를 불고 있으니, 고양이도 먹고 싶어 창 너머로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김창복씨는 빗방울이 약해지니, 그사이를 못 참고 신발을 거둬 빗물에 씻어 왔다.

참 부지런한 분인데, 게으른 놈은 옆에 있기가 참 민망하다.

 

이현이는 정동지가 갖다 준 옷으로 패션쇼 하느라 바빴다.

이 옷은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한 바퀴 돌고 가더니,

두 번째는 쌕시 모드라며 짧은 바지에 선그라스 까지 끼고 나와 한바탕 웃겼다.

 

비 덕분에 복에 없는 호강을 했다.

토종작물을 특화하여 파는 방법은 없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왔다.

거지의 삼중생활은 고달프지만 즐겁다.

 

사진, / 조문호

 

 
양이현, 셀프 촬영

‘봄에실’은 아산시 인주면에 있는 농장 이름이다.

그곳에는 김창복, 김선우, 양이현, 김평 동지 외에 또 다른 대식구가 있다.

 

고양이 4대가 함께 살며 농장의 파수꾼 노릇을 톡톡히 한다.

갈 때마다 꼬리를 치켜세워 반가운 기색은 하지만, 별다른 행동은 하지 않는다.

항상 거리를 두며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편안한 가족관계를 유지한다.

 

함께 모인 것을 보지 못해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대략 20여 마리 되는 것 같았다.

들쥐나 뱀을 쫓아주는 고마운 일을 하지만, 그들이 먹어 치우는 사료 값이 만만찮다.

 

 4대가 한 가족을 이룬 농장에 유일하게 입양된 갈색 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

다들 야생으로 사는 것이 체질화되었으나, 그 냥이만 방에 살던 미련이 남아,

높은 곳에 올라가 창으로 방안을 내려다 보았다.

안쓰럽지만, 곧 자유로운 야생에 익숙해질 것이다.

 

고양이가 없었을 때는 들쥐가 닭장에 들어가 닭을 잡아가기도 하고

풀밭에 뱀이 도사리고 앉아 일하는 사람을 놀라게도 했으나,

고양이 방위사령부가 지킨 후로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빨라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인데, 주말마다 농장에가니 일주일이 총알같다.

 

문제는 몸이 마음같이 움직여 주지 않는데 있다.

 

더구나 장마철이라 그런지 몸은 쇳덩이처럼 무겁고, 마치 두들겨 맞은 것처럼 욱신거린다.

 

지난 주말에는 김창복씨가 몸보신시켜 준다며 닭을 두 마리나 잡았다.

더운 날 아궁이에 불을 지펴 엄나무와 푹 삶아 놓았더라.

 

그리고 얼마나 부지런한지, 그 넓은 농장의 잡초를 깨끗이 베어내고,

나무 가지치기까지 해 정원을 말끔하게 단장해 놓았다.

 

연못에는 물이 고여 곳곳에 개구리알이 둥지 틀었고,

심어놓은 야채는 싱싱하게 자라, 가지도 고추도 거시기보다 더 컸다.

 

정동지는 백반을 챙겨와 이현이에게 봉숭화 꽃잎으로 손톱에 물들이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잠시도 쉴 틈 없는 김선생께는 발판 겸 책꽂이 하나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냥 판자를 잘라 못질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라인더로 갈고,

선우는 콩기름까지 먹여 발 딛기 민망할 정도로 예쁘게 만들어 주었다.

 

다음날 오찬에는 선우가 연잎밥을 지었는데, 너무 예뻐 먹기 아까웠다.

오래전, 도예가 조상권씨 공방에서 먹어본 후, 두 번째 맛보는 연잎밥이었다.

입안에 번지는 향이 감칠맛이었다.

 

남정네 빰치는 작은 여장부 김선우는 일 솜씨뿐 아니라 음식솜씨도 대단했다.

거기다 양이현의 부지런함이나 인정스러움은 요즘 소녀가 아니다.

듬직한 평이의 재치 역시 부전자전이다.

 

대단한 분이 모여 사는 농장에 얼치기 두 명이 끼었으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도움은커녕 일거리만 만드는 편인데, 갈 때마다 신세만 진다.

 

'벼룩도 낯짝이 있다'는데, 이 일을 어쩌지?

 

사진, 글 / 조문호

 

양이현, 셀프 촬영

지난 주말에는 아산 인주면 산채에서 바비큐 파티가 있었다.

급히 장항에서 사진 찍을 일이 있다는 정 동지 말에 그곳부터 들려야 했다.

장항선 따라가는 장터 기행 작업하느라 여러 차례 갔으나,

‘등잔 밑이 어둡다’듯이 장항역 사진만 못 찍었다는 것이다.

사진 한 장 찍기 위해 장항까지 간다는 것은 좀 억울했다.

시간 낭비는 차지하고, 길바닥에 쏟는 기름 값과 통행료가 아까워서다.

차라리 사진 원고 대행업체에서 한 컷 빌려 쓰면 좋으련만, 정 동지는 모든 것을 직접 찍어야 직성이 풀린다.

 

장황에서 간단히 촬영한 후 급히 달려갔으나, 다들 파티를 열기위해 우리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여섯시 무렵 도착했으나, 해가 길어 한낮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른 곳은 비가 많이도 내렸으나, 이곳만 피해 갔는지, 파 놓은 연못에 물도 고이지 않았다.

들쥐와 뱀을 쫓는 고양이는 녹음 짙은 산채를 어슬렁거렸다.

 

임금님 기다리던 궁녀가 죽어 꽃이 되었다는 전설의 능소화는 전신주를 타고 올라 하늘 위에 피어 있었다.

 

매번 ‘백암길미술관’에서 머무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본가에다 PC까지 장만한 임시 거처를 만들어 놓았다.

미술관 잠자리가 불편해서 보다, 그곳까지 운전해 가려면 술을 마실 수 없기 때문이다.

 

선우와 이현이는 음식을 나르고, 김창복씨는 모깃불 피울 쑥을 베거나

숯불을 피우는 등 바쁘게 움직였다. 등달아 평이도 신났다.

 

파티 준비를 서둘러 끝낸 후 다 같이 축배부터 들었다.

새 식구를 맞은 동지들의 단합을 위한 축배였다.

 

노릇노릇하게 구운 돼지고기와 자연 속에서 마시는 술맛은 어디에도 비길 바가 아니었다.

 

좋아하는 소주 ‘새로’도 한 박스나 사 두었다.

일 나갔던 기웅서씨는 정동지 좋아하는 흑맥주까지 사왔다.

평소 소주 한 병이 주량이지만, 그날은 두 병을 마셔도 끄떡없었다.

 

술이 들어가면 가무가 따라야 하지 않겠는가?

김창복씨는 주변을 밝힐 조명 설치에 분주하고, 이현이는 무대 장비 챙기느라 바빴다.

평이는 현장감독이라며 안전모까지 쓰고 나왔다.

 

창고에 숨겨 둔 드럼과 북채까지 끄집어냈다.

놀라운 것은 앰프도 없고 노래방 기계도 없지만, 디지털세대인 이현이의 지혜로 모든 것이 해결됐다.

 

마이크에 앰프 성능이 있었고, 유튜브 노래방 음원을 연결한 핸드폰이 노래방 기계로 변신한 것이다.

드디어 산 속 야외무대의 버라이어티 쇼 막이 올랐다.

쑥을 태운 자욱한 모깃불 연기가 마치 무대 연막 같았다.

 

차례대로 노래를 불렀는데, 나가수 뺨치는 노래 실력이었다.

김창복씨의 ‘휘나리’에 이어 ‘다 함께 나가자’에 이르기까지 별의별 노래가 다 나왔다.

 

산채가 떠나갈 듯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니, 울어대던 풀벌레도 기 죽어 잠잠했다.

 

선우와 이현이는 여성해방가로 불리는 ‘딸들아 일어나라’를 합창했다.

일하느라 하루를 다 보내고 자신과 세상에는

한 발도 들여놓지 못하는 여성의 처지를 토로한 노래였다.

 

촌에서 썩기 아깝다며, 중앙무대로 진출하라며 바람을 잡았다.

이현이는 다양한 분장으로 눈길을 끌었으나, 관객이 적어 아쉬웠다.

 

구름 속에 숨은 달빛만 엉큼하게 내려보고 있었다.

 

사진 :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개뿔도 없는 거지가 이렇게 호사를 누려도 되는지 모르겠다.

지난 달부터 일주일에 사흘(월,화,수)은 동자동서 사진 찍느라 바쁘고,

이틀(목,금)은 녹번동에 파출부로 나가고, 나머지 이틀(토,일)은 농장에 농사지으러 다닌다.

나보다 더 바쁜 사람 있으면 어디 한번 나와봐라.

 

지난 주말은 아산 농장 가기 전에 들릴 곳이 있었다.

가는 길에 강남 ‘연우갤러리’에서 열리는 오현경씨 “Rain”도 봐야 하고,

용인 ‘갤러리 위’에서 열리는 이익태씨 “Everyone Pierrot”도 봐야 했다.

거리가 멀어 미뤄 둔 전시를 하나 하나 돌아보며 아산시 인주면에 간 것이다.

 

오후 3시 무렵 도착했는데, 이번엔 반기는 식구가 많았다.

김창복, 김선우 동지를 비롯하여 양이현과 막네 김평까지 와 있었다.

평이는 2년 전 아산에서 열린 ‘미얀마 민주시민을 위한 미술행동전’ 개막식에서 보고 처음 만났는데,

얼마나 자랐는지 엄마보다 더 컸다.

 

이현이는 햇살이의 새 이름인데, 예쁜 아가씨가 엄청 부지런하고 일을 잘 하더라.

 

지난주에 부루벨리를 따 왔으나, 다시 주렁주렁 열렸다.

이현이와 평이까지 합세해 부루벨리를 땄는데, 시간이 너무 빨리 갔다.

 

잔뜩 딴 부루벨리를 모두 가져가라는데, 지난 번처럼 배달할 일이 걱정되었다.

 

고민 끝에 나누어 먹을 방법을 찾아냈다.

냉동실에 저장해 두었다가 다음 달에 열릴 정동지의 '장항선 따라가는 장터사진전'때 내놓을 작정이다.

 

선우가 차려 낸 진수성찬으로 배를 불린 후, ‘백암길미술관’에 여장을 풀었다.

미술관에서의 잠자리는 마치 신혼여행 온 기분이다.

 

이튿 날은 잡초를 뽑다보니, 텃밭에 심은 청경채를 벌레가 다 갉아 먹었더라.

농약을 사용치 않아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만, 손으로 벌레를 잡는 수 밖에 없었다.

 

간식으로 먹기 위해 감자를 캐러 갔는데, 자색감자가 포도송이처럼 탐스럽게 달렸다.

그런데, 이현이가 감자밭에서 맹꽁이 한 마리를 발견한 것이다.

 

맹꽁이는 10년 전부터 멸종위기 2급으로 지정된 보호종이 아닌가?

건설 현장에서 맹꽁이 한 마리 나오면 1억 원 날아간다는 말도 있다는데, 이곳에 맹꽁이가 엄청 많다고 한다.

 

비오면 맹꽁이들이 “맹꽁맹꽁” 합창하고, 여름밤엔 반딧불이 산채를 수놓는 보기 드문 청정지역이었다.

이십여 년 동안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유기농을 고집한 김창복씨의 노력과 집념 덕분이다.

 

그리고 포장도로에서 산채까지 가는 팔백 미터가 비포장도로였다.

처음엔 다소 불편하게 느껴졌으나, 이 또한 이곳만의 매력이었다.

요즘 흙길 걸을 수 있는 곳이 어디 있는가? 입구에 주차장만 준비된다면 산책코스로 손색이 없었다.

 

이곳에 갈 때만은 핸드폰도 버리고 아날로그의 삶으로 돌아간다.

 

올해 열 두 살인 평이는 유치원은 물론 초등학교도 보내지 않았다.

오로지 가정교육에 의지한 채, 스스로 지식을 깨우쳤으나 모르는 것이 없었다.

획일적이고 일방적인 과도한 지식 습득이 인간성을 상실시키는 교육의 문제점을 간파한

부모 덕분에 공부에 쫓기지 않고 자유롭게 자란 것이다.

 

단 한 가지 문제점은 주변에 친구가 없어 걱정이다.

얼마나 사람이 그리웠으면, 우리가 가는 주말을 손꼽아 기다린단다.

다음에는 바비큐 해 먹자는 평이의 마지막 인사가 마음에 걸린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주말은 정동지와 함께 아산시 인주면에 있는 김선우 산채에 갔다.

봄에 텃밭을 일궈 주어 야채를 심었으나 자주 갈 형편이 못되어,

한번 가면 잡초 뽑느라 카메라 꺼낼 틈조차 없었다.

 

이번 나들이는 일박이일의 일정이라 한결 여유로워 사진도 찍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듯, 지천에 늘린 블루베리 따느라 즐거운 비명을 질러야 했다.

블루베리는 유독 정동지가 좋아하는 과일이지만, 가격이 비싸 사먹을 수 없었다,

그 날 블루베리를 처음 먹어보았는데, 새콤달콤한 맛이 귀가 막혔다.

 

혈압과 암을 비롯한 갖가지 성인병 예방과 노화방지에다 피부까지 좋아지는 약이었다.

더구나 눈의 피로를 풀어주어 시야를 맑게 하는 등 몸에 유익한 열매라,

다 같이 달라붙어 블루베리 따느라 다른 곳은 손댈 겨를이 없었다.

 

  따 모은 블루베리가 한 바가지도 아니고, 큰 대야에 가득한데,

손 큰 선우가 그 많은 블루베리를 모두 차에 실어 주어, 정 동지 입이 찢어졌다.

 

그 날 밤은 정영신의 어머니의 땅이 전시된 백암길185미술관에서 묵기로 했다.

그동안 농장에 여러 차례 갔으나 매번 당일치기라 술 한잔 마실 수 없었는데, 오래된 원을 풀 좋은 기회였다.

처음으로 전시장에 여장을 풀고, 그 곳에서 김창복, 김선우씨와 함께 만찬의 시간을 가진 것이다.

 

  금방 따온 상추에다 맛있게 삶아 낸 수육을 싸 먹었는데, 선우 음식솜씨에 또 한 번 놀랐다.

술 마시며 산채의 환경친화적인 활용방안을 논의하기도 했으나,

술이 들어가니 하지 않아도 될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느라 시간 다 보냈다.

'제 버릇 개 주지 못한다'는 정동지 말처럼, 그 주책은 고칠 수가 없다.

 

  그 이튿날은 잡초 뽑는 일에 매달려야 했.

20여 년 동안 그 넓은 땅에 제초제는 물론 농약과 화학비료 한 번 사용하지 않고,

유기농으로 농사지은 김창복씨와 김선우씨의 집념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그들이 흘린 땀을 모은다면 저수지를 만들고도 남았을 것이다.

덕분에 자연과 땅이 온전히 살아 남은 것이다.

 

  김창복씨는 오래 전부터 한살림에서 유기농을 해 온 영농지도자였다.

씨앗도 토종만 사용할 뿐 아니라 농장에는 없는 작물이 없었다.

뒤늦게 알았지만, 농사 뿐 아니라  '이거 큰일났군' 동화를 펴낸 동화작가이기도 했다.

 

  말이 쉬워 유기농이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처음 정선 갔을 때는 제초제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았으나,

갈 때마다 숲을 이룬 잡초와의 전쟁에, 삼년을 넘기지 못하고 손 들고 말았다.

이십년 동안 제초제를 끼고 살다, 2년 전 살던 집에 불이 나는 통에 그만 둔 것이다.

 

  대신, 아산시 인주면에 있는 선우 산채에 내가 머물 농막을 짓기로 했다,

그 사이 농지법이 바뀌어 농막에서 사람이 잘 수 없게 된데다,

건축규제마저 까다로워, 집 짓는 일은 시작도 못했다.

김창복씨는 산림청 허가를 받아야 되는 산막을 짓기 위해 임야 조성에 매달리고 있었다.

그 과정을 거치려면 올 가을에나 지을 수 있다고 했다.

농막은 6평으로 제한하지만, 산막은 15평까지 된다니 더 잘된 일이었다.

 

다른 곳은 손 댈 엄두도 내지 못하지만, 내가 일구는 텃밭과 집터라도 잡초를 뽑아야 하지 않겠는가?

정동지와 선우는 다른 곳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른 체, 아침부터 잡초와 씨름했다.

한 나절에는 너무 더워 숨이 턱턱 막혔으나, 참고 견뎌야 했다.

선우가 그만 두라고 몇 번이나 찾아왔으나 알았다는 말만하고 일어서지 않으니, 정동지를 보내 재촉했.

 

여기만, 여기만. 하다 일어나니 어지러웠다.

선우가 타 준 시원한 얼음커피에 한 숨 돌렸으나, 아무래도 더위 먹은 것 같았다.

읍내에서 양햇살양을 만난 후 맛있는 냉면까지 사 주었으나, 먹는 것까지 귀찮았다.

어지럽고 머리가 아파, 어떻게 서울까지 운전해 왔는지 모르겠다.

 

다행히 자고 일어나니 한결 나아졌으나, 정동지의 극성은 못 말린다.

정선에서 농사지을 때는 두릅이나 옥수수를 따 지인들에게 나누어주는 것도 일이었는데.

이번에는 블루베리를 배달해야 한다며 봉지, 봉지 싸 놓은 것이다.

하기야! 장에 나가 파는 것보다 나누어 먹는 것이 좋지 않은가?

 

그나저나, 아산에서 농사 지어려면 매주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동안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동자동에서 지내고, 금요일부터 주말까지

녹번동 정동지 일을 도왔는데, 아무래도 주말은 인주면 산채에 가야 할 것 같았다.

이중생활에서 삼중생활이 된 셈인데, 개뿔도 없는 주제에 혼자 바쁘게 생겼다.

 

사진,/ 조문호

 

동자동에서 인사동, 인사동에서 녹번동으로 다람쥐 체바퀴 돌 듯 살았지만,

가끔은 서울을 벗어나 한적한 산골 정취에 빠지는 시간도 누렸다.

 

그동안 만지산 중턱에 텃밭을 가꾸었으나

20여년 살아 온 만지산 집이 잿더미가 되는 통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지가 2년이 가깝다.

 

다행히 아산의 김선우가 소유한 야산에 묏자리가 아니라,

집 자리를 내 주어 집 지을 채비를 서두른다.

그 방향으로 가는 촬영 길을 일부러 만들어가며 들렸으나, 이번엔 오랜만에 들렸.

 

선우가 가을걷이를 가져가라는 연락도 왔다지만,

나 역시 다른 집에서 내다 버린 나무 의자를 두 개 주워,

그곳으로 실어 날라야 할 일이 생긴 것이다.

 

디데이로 잡은 지난 토요일 오후에 정동지와 떠났는데,

너무 일찍 왔는지 집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여기 저기 고양이만 집을 지켰다.

 

할 일 없이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는데,

연못 위에 언덕 길을 만들어 휴식처를 만들어 놓았더라.

부지런한 김창복선생의  조경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헛간이나 비닐하우스 구석구석에 토속적인

기와나 멍석, 돌절구통 등 갖가지 생활용품이 쌓여 있었다.

 

이 지역을 예술과 자연이 숨 쉬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오래전부터 차근차근 준비해 온 것 같았다.

 

아산에서 '공유공간 마임'을 운영하는 김선우는 덩치는 작지만 여장부다.

부지런하기도 하지만 밀어붙이는 추진력이 웬만한 사내 뺨친다.

 

선우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선우가 나타났다.

정동지가 부탁한 신품종 사과를 구하러 갔다 온 모양이다.

 

조그만 비닐하우스에서 차 한잔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바닥의 흙냄새가 그렇게 정겹고 포근할 수 없었다.

 

흙도 다져진 땅이나 야외에서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비닐하우스 안 인데다 바닥의 흙까지 파헤쳐 놓아 그런지,

오랜만에 진한 흙냄새의 아늑한 향수를 맛 본 것이다.

 

같이 저녁 식사만 하고 헤어지기로 했는데,

저장고에 넣어 둔 농산물을 바리바리 차에 실어 주었다.

마치 친정 엄마가 딸자식 챙겨 주듯...

 

이곳만 오면 삽교천 회센타로 끌고 와 부담스럽다.

정동지가 좋아하는 참게도 포장하고 갖가지 회를 시켰는데,

때마침 이가 아파 아무것도 씹지 못할 지경이 된 것이다. 먹을 복도 지지리도 없지...

정동지는 잘 먹었으나, 선우는 내가 걱정되는지 잘 먹지도 않더라.

 

얼큰한 매운탕에 말아  한 술 떴는데, 매운탕 맛을 보니 소주 생각났다.

운전할 놈이 술 생각하는 걸 보니, 아직 덜 아픈 모양이다.

선우 덕분에 모처럼 흙냄새 맡으며 한가한 하루를 누렸다.

 

그 이튿날은 일찍부터 유목민’의 전활철씨가 녹번동으로 처들어 왔다.

 

주말에 녹번동 있다는 걸 알아, 장 보러 가는 길에 들려 가끔 낮술에 취하기도 한다.

 

사 온 소주가 바닥나 숨겨 둔 상황버섯주까지 꺼내 마셨는데,

어제 주입하지 못한 알콜, 아침부터 넘치도록 주입한 것이다.

 

낮술에 취하면 부모도 못 알아본다지만,

돌아가신 부모님이 나타날리야 없지 않겠느냐?

 

사진, / 조문호

 

 

 

 

 "이놈의 고물차가 사람 놀라게 하네"

별 탈 없이 잘 굴러다니다 갑자기 문제가 생겨 버렸다.

이차는 올 2월에 190만 원에 산 투싼’으로, 아산에 있는 선우가 소개해 준 차다.

다른 곳은 문제가 없으나 하체가 부식되어 비포장 이나 도로 턱만 조심하면 된다기에 산 것이다.

 

일 년 육개월 타고 폐차한 크루즈300만원에 샀는데, 그 차에 비하면 공짜로 얻은 차나 마찬가지다.

인수하여 8개월 동안 정비소 한 번 가지 않고 잘 끌고 다녔으나,

얼마 전부터 노면이 고르지 못한 곳만 지나면 뭔가 심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혹시 짐칸에서 나는 소리로 착각해 짐을 비우기도 했으나, 마찬가지였다.

 

지난 9월 14일, 황명걸선생 문상 때, 함께 움직이자는 김명성씨 연락으로 

마음에 걸렸던 자동차 점검부터 한 것이다.

정비소에서 차를 올려놓고 하체를 들여다보니, 귀가 막혔다.

부식된 철판이 떨어져 나가 큰 구멍이 생겼는데,

그 철판에 고정된 지지대가 떨어져 철판을 두들긴 것이다.

정비소 주인은 수리 자체가 안 된다며 폐차하라고 했는데,

잘못하면 차가 내려앉을 수도 있다며 겁까지 주었다.

 

진짜 문제는 차를 바꿀 돈이 없어 큰 일이었다.

, 자동차가 없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등산은 물론 일 킬로만 걸어도 하루종일 드러누워, 차가 휠체어나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기초생활수급자는 자동차를 가질 수 없어, 정동지를 차주로 모셨을까?

수급비의 대부분이 차 밑에 들어가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정동지가 아산 선우한데 전화하여 자초지종을 이야기한 모양인데,

선우는 일단 평택 월드카 라이프로 끌고 오라는 것이다. 그 차에 대해 잘 아는 정비소니까..

그곳을 운영하는 송계석씨는 자동차공장에서 퇴직하여 정비소를 차린 분인데,

자동차 구조는 물론 차가 움직이는 원리까지 상세하게 설명해 주는 전문가다.

마음까지 좋아 왠 만한 수리비는 받질 않으니, 그게 마음에 걸리지만...

 

그동안 불안하여 차주는 못 타게 하고 혼자 끌고 다니다, 지난 28일에서야 평택 정비소에 간 것이다.

마침 정동지가 그 쪽 지역에 촬영할 일이 있어 일박이일의 일정으로 겸사겸사 떠났다.

 

정오무렵, 평택 월드카 라이프에 도착하니, 선우도 시간 맞추어 왔더라.

송계석씨가 시운전을 해보고 차를 들어 올리더니, 덜거덕거리는 지지대를 없애버리자는 것이다.

그 지지대는 뒷좌석의 안정감을 잡아주는 것으로, 운행에는 전혀 지장이 없단다.

내년 쯤에는 조기 폐차에 해당되어 폐차보조금 삼백만원도 받을 수 있다며,

그때 차를 바꾸는 것이 좋겠다기에, '얼씨구나!' 했다.

 

단지 앞바퀴가 너무 마모되어 중고타이어로 교체하라기에 12만원을 투자했다.

차를 타보니 승차감이 달라졌다. 타이어가 중요하다는 걸 다시 실감했다.

정비사는 물론 의사나 법관이나 무슨 일을 하던지 사람을 잘 만나야한다.

 

선우와 국수집에서 식사를 한 후, 저녁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요즘 정동지가 장항선 따라가는 장터기행 책을 만들기 위해 현장을 찾아다니는데,

당일치기로 떠나는 기차여행의 답사기라 혼자 다니고 있다.

내가 동자동 있는 동안 일을 많이 해 두었는데,

너무 빠듯한 일정이라 놓친 장면을 하나하나 찾아 간다는 것이다.

갈대가 흔들리는 서해안 포구를 찾아 찍기도 하고, 추수가 끝난 들판의 건초더미도 찍었다.

그런데, 농로를 따라 찍기 좋은 위치를 찾다 운전석 바퀴가 농로 밖으로 빠지는 일이 생겼다.

 

보험회사에 긴급출동을 불렀으나, 황량한 논이라 정확한 위치를 알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급히 선우를 찾아 주변 상황을 이야기했더니, 자기가 아는 곳 같다며 기다리라고 했다.

마치, 석양 무렵의 건초더미를 찍기위해 기다리게 한 것 같았다.

선우가 먼저 도착하여 위치를 일러주어 견인차가 오도록 만든 것이다.

 

간단히 차를 끌어낸 후 선우 따라 집에 갔더니, 이미 어둠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곳에서 일하던 김창복씨도 만났는데, 그동안 공사에 많은 진척을 보였다.

연못 공사는 물론 곳곳에 산길까지 닦아 놓았다.

김창복씨는 "요즘 일하다 보면 금방 해가 진다"며 짧은 시간을 아쉬워했지만,

적은 연세가 아닌지라 골병 던다며 몸을 아끼라 했다.

며칠 전에도 말뚝 박다 함마로 손을 내려쳐 고생하지 않았던가?

 

저녁 식사하러 가자며, 또 삽교천 횟집으로 데리고 갔다.

이번에는 술을 마실 수 있어,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무슨 회인지도 모르는 놈이, 홀짝홀짝 마시는 소주에 젖어갔다.

문제는 술이 취하면 그 다음부터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데 있다.

기분 좋게 마시고는 아산 온천에 있는 만인장으로 들어갔는데,

열 명도 잘 수 있는 큰 방의 방값이 삼만원이라 말에 깜짝 놀랐.

더 놀라운 것은 우연히 체널 돌리다 나온 '프레이 보이' 화면?

 

온천탕에서 편히 쉰 것까지는 좋았으나, 차를 술자리에 두고 와 또 선우에게 불편을 끼쳤다.

새벽 일찍부터 선우가 여관으로 찾아와, 그 차로 옮겨 간 것이다.

주말에 집에서 쉬어야 할 사람을, 일찍부터 나오게 해 미안스러웠다.

 

인주면에 있는 충무공 유적 '게바위'도 들리고, 공세리성당도 들렸다.

공세리 성당은 32분의 순교자를 모신 성지였다. 

정동지가 선우 차를 타, 선우 차 꽁무니만 졸졸 따라 다닌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어디 가는지도 모르고 따라가다 차를 놓쳐버린 것이다.

차를 놓친 것을 안 것도 한 시간이 훨씬 지나서 였다.

열심히 따라가다 천안휴게소로 들어가기에 따라가 보니, 다른 사람 차였다.

차종과 색갈만 같은 엉뚱한 차를 한시간 넘게 따라 다닌 것이다.

그때사 전화해보니, 아산 외암민속마을에 있다는 것이다.

내 휴대폰은 네비전용이라 전화를 받지않아 몰랐는데, 전화도 여러차례 와 있었다.

너무 멀리 와 버렸지만, 다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정동지와 선우는 외암리 민속마을을 다 둘러본 후,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다.

점심때가 늦도록 아침 식사도 못했으니, 얼마나 가슴 태웠겠는가?

정동지 말로는 선우가 내비 주소를 찍어주지 못한 것을 후회하여, 가슴이 새까맣게 타버렸단다.

 

민속마을의 '코다리랑 낙지집'에 들어가 식사부터 했는데,

정신을 놓아 그런지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더라.

온양장터를 비롯하여 가볼 곳은 많지만, 일정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그날 오후 네시부터 양평에서 열리는 황명걸시인 추모제에 들리기로 한 것이다.

촬영 일정이 있어 못 간다고는 했으나, 늘 마음에 걸렸던 일이다.

 

선우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양평으로 떠났는데,

이번 여행은 자동차로 인한 문제가 많아 이래저래 촬영이 지연되었다.

차만 고물이 아니라 기사까지 고물이라  어쩔 수 없었다.

 

그동안 차를 구할 때마다 같이 세상을 떠나기로 다짐에 다짐을 하건만,

차만 먼저 떠나보낸 지가 벌써 몇 번째던가?

이제 자동차 장례 치루는 일도 지긋지긋하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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