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오후6시 무렵, 광화문광장 이순신동상 앞 무대에서 '최저임금 1만원,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노조 할 권리 쟁취' 궐기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리고 광화문역 7번 출구 인근 고공농성장 앞에서도 '비정규직철폐' 구호를 외치고 있었고,

광화문광장 본 무대에서는 ‘지구의 날’ 기념행사가 열렸다.

탐욕의 세상을 쓸어버리겠다는 뜻으로 빗자루 100개를 들고 대학로에서 광화문으로 행진하며,

하청노동자와 청소노동자가 만나 촛불문화제를 개최한 것이다.


이들은 ‘민주주의의 봄이 찾아왔고 촛불의 힘으로 촛불대선이 치러지고 있다"며

"하지만 일하는 사람들, 노동자 서민들의 삶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동자·민중 생존권 쟁취를 위한 투쟁사업장 공동투쟁위원회는 광화문 고공단식농성장에서

선포식을 열며 농성자들을 지지하고 함께 투쟁하기 위한 '한 끼 동조단식'을 진행하였다.


'한 끼 동조단식'은 선포식 이후 30일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사진, 글 / 조문호





























정의당의 심상정 후보등록 기자회견이 지난 15일 광화문광장에서 있었다.


당당하고 당찬 심블리의 모습에 신뢰가 절로 갔다.
나날이 증가하는 그의 지지도가 잘 말해준다.

개혁을 바라던 오랜 꿈이 이제 서서히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그의 자신만만한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라.

“저는 오늘 19대 대통령선거 후보등록을 했습니다.

1,600만 촛불이 타올랐던 이곳 광화문 세월호 약속의 리본 앞에서 국민 여러분께 다짐합니다.

거침없는 개혁으로 내 삶을 바꾸는 대통령 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과 함께 촛불혁명 승리를 반드시 이루어내겠습니다.”

“저는 대통령 하는 것보다 더 큰 꿈이 있습니다. 정권교체보다 더 야무진 욕심이 있습니다.

이 대한민국 노선을 대전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거침없는 개혁을 통해서 돈보다 생명을, 인간존중의 사회를,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를 그리고 생태지속가능성을 중시하는 대한민국,

그런 새로운 대한민국 만들고 싶습니다.”

“이제 과감한 개혁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경쟁만 남았습니다.

첫째도 개혁, 둘째도 개혁, 셋째도 개혁입니다, 여러분. 60년 적폐 과감하게 청산해야 합니다.

저 심상정이 잘하겠습니다. 아니, 기득권체제와 흔들림 없이 맞서온 저 심상정만이 똑바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거침없는 개혁으로 노동이 당당한 나라, 우리 청년들이 다시 사랑할 수 있는 대한민국 만들겠습니다.

내 삶을 바꾸는 대한민국 함께 만들어주십시오.



사진, 글 / 조문호


















‘광화문광장“의 촛불집회에 나가는 게 습관이 되어 토요일만 되면 엉덩이가 들썩인다.

지난 토요일은 집회가 없었지만 나갈 채비를 했는데, 마침 ’눈빛출판사‘의 이규상대표로부터 전화가 왔다.

’류가헌‘ 전시장에서 만나 점심식사나 같이 하자는 것이다.

사실 ’류가헌‘이 옮긴지가 제법 되었지만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더구나 나도 출품한 ’촛불의 구술사‘전이 열리고 있지 않은가.

첫 날 일이 있어 못 들리다 보니 차일피일 미루어 왔던 것이다.

길눈이 어두워 물어물어 찾아 갔는데, 가보니 촛불집회 때마다 들락거린 청와대 가는 청운동이었다.

전시장에는 황규태선생을 비롯하여 이규상, 이규철씨가 나와 계셨고, 뒤이어 석재현, 박진영, 하지권씨도 만났다.

다들 반가웠으나 황규태선생을 뵈니 송구스럽기 그지없었다.

몇 일전까지 ‘류가헌’에서 열었던 황선생님 개인전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사치레가 아니라 좋은 전시를 못 본 건 내 손해인데, 스스로의 게으름을 자책해야 했다.






2관에서는 강제훈씨를 비롯한 13명의 다큐멘터리사진가들이 찍은 ’촛불의 구술사‘전이 열리고 있었고,

1관에서는 사진가 이규철씨가 컬렉션한 ‘我 之 我’전이 열리고 있었다.

매년 한 장씩 20년 동안 모은 작품 20점을 전시하고 있었다.

가난한 사진가가 매년 사진작품을 구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사진가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작품이기에 허턴 작품은 있을 수가 없었다.

이미 잘 알려진 작품도 있었는데, 사진보는 안목이 덜한 분은 믿고 살만한 작품들이었다.

전시된 작품을 판매하는 게 아니라 작가와 연결시켜 주는데, 부담 없는 가격이라 제법 팔렸다고 한다.

또한 사진집을 구입한 분께는 작품사진을 증정하는 이벤트도 열고 있었다.

사진 컬렉션에 다시 한 번 관심 갖게 하는 좋은 사진나눔운동이었다.






이규상, 황규태 선생과 전시장 옆에 있는 떡 만두국 집에서 식사를 하고 ‘광화문광장’까지 걸어왔는데,

경복궁 앞길에는 유난히 한복 입은 아가씨들이 많았다. 그러나 광화문광장은 여느 때와 달리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이순신동상 부근에는 ‘사회를 위한 대학생공동행동’의 집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누가 뒤에서 어깨를 툭 쳤다.

돌아보니 인사동터줏대감 강 민시인과 방동규선생이 계셨고 옆에는 미모의 소설가 김단하씨의 모습도 보였다.

술 한 잔 하자는 강 민선생의 말씀에 간재미집으로 안내했다.

방배추선생의 구수한 옛 이야기 듣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방동규선생 사모님께서 광장에 기다린다는 전갈이 받고야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광화문광장에서는 ‘사드저지 및 세월호 진상규명, 적폐청산의 날‘이란 퇴진행동의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재명 성남시장과 사진가 고 헌씨의 모습도 보였고, 무대에는 장순향교수가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었다.

문제는 눈앞에 닥친 대선에서 이러한 난제를 해결할 의지를 보이는 분은 이재명, 심상정 후보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사드철회는 물론 모든 진상규명과 적폐가 청산될 때까지 촛불을 꺼서는 안 된다.

토요일마다 ‘광화문광장’을 문화예술난장으로 만들어 촛불시민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전진기지로 만들자.


사진, 글 / 조문호













































박근혜는 떠났고, 이제 내 자리로 돌아왔다.

쪽방 사람들과 놀려던 올 겨울 일은 앗아 갔지만,
사그라지는 자긍심에 한 가닥 불을 지펴주었다.

‘광화문광장’의 추웠던 고생도 지나고나니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 나이에 언제 그런 열정을 불태울 수 있었겠는가?

동지들과 어울렸던 아름다운 추억도 그렇지만, 
‘광화문광장’은 성지처럼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이제 ‘촛불역사’전이 끝나는 21일이 지나면,
만지산에 잠드신 울 엄마 무덤가로 봄맞이나 가야지...








지난 18일은 토요일이지만, 그리 서둘 필요 없었다.
오후 두시에 있는 ‘동자동사랑방’ 정기총회에 다녀와
인터뷰 약속 있다는 정영신씨와 전시 지킴이를 교대해 주면 되었다.







그러나 지체되어 한 시간이나 늦어버렸다.
허급지급 달려가니, 시청방면에는 차벽이 쳐져 있었고,
‘광화문광장’은 마지막 축제를 즐기는 시민들의 발길로 분주했다.





다행히 ‘촛불역사’전은 사진가 하형우씨가 대신 지켜주었는데,
국회방송 임원인 정호성, 남성우씨와 추진호씨도 소개시켜 주었다.
전시장엔 관객의 발길이 이어졌고, 핸드폰으로 시진찍는 사람도 많았다.








관객도 많았지만, 사진전에 대한 촛불시민들의 호응도가 뜨거웠다.
사진 속의 주인공이 나타나기도 하고, 다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감회를 달리했다.
어느 전시, 어느 전시장에서 이렇게 많은 관객을 맞을 수 있겠는가?






찻집에서 기다리는 박병문씨 내외와 엄상빈씨를 만나야 했다.
다들 개인전 준비하느라 바쁜 분들인데, 특별히 시간 내어 오신 것 같았다.
잠깐 들린 정덕수 시인을 붙들어 놓고, 일행들과 식사를 했다.





전시장에서 사진가 곽명우, 권양수, 박영환, 권 홍, 박진호씨도 만났다.
곽명우씨는 내일 당번인 박영환씨에게 이것 저것 가리켜 주었다.
내일은 ‘광화문광장’이 마라톤 집결지라 일찍부터 문을 연다고 했다.
























아래 사진들은 지난 11일 열린 20차 촛불집회 사진이다.
이 날은 박근혜가 파면된 다음 날이라 ‘광화문광장’은 축제 분위기 였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6주기의 나비행진이 있었고, 광장 곳곳은 가장행렬로 이어졌다.






‘광화문미술행동’의 축하 화환이 곳곳에 놓여졌고, ‘이게 나라다!’는 서화퍼포먼스도 열었다.
서예가 여태명, 화가 한상진, 김 구, 박방영, 판화가 류연복, 시인 이도윤씨 등
많은 작가들이 ‘바람찬 전시장’에 걸린 천위에 그림과 메시지를 남겼다.





 박방영씨는 신명난 풍물소리에 맞추어 매화나무를 그렸는데, 그 자리는 인증샷 배경막이 되었다.
서예가 여태명씨는 ‘사드가고 평화오라’는 글씨를 썼고, 이도윤 시인은 시국을 풍자하는 시를 남겼다.
김구씨는 물속의 청소부라는 새우를 그려 적폐를 청산하라는 메시지를 던졌고,
판화가 류연복씨가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글을 쓰자
김진하, 송용민, 정덕수씨는 글자 곳곳을 꽃으로 수놓아 광장의 봄을 알렸다.


사진, 글 / 조문호





























































 

'촛불역사'전에 추가한 사진이 많으니 한 번 봐달라는 정영신씨의 문자메시지가 왔다.

모처럼 광화문광장으로 나가보니, 그 뜨거웠던 열기는 오간데없고,

최병수씨의 설치작품들이 늘린 텐트촌 분위기는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관객 몇 명을 앉히고 손병희씨가 노래부르고 있었고, 최병수씨는 또 뭘 만들려는지 자재를 반입하고 있었다.

송경동 촌장이나 신유아씨 등 그 곳에서 일하는 분들은 여전했고, 광장극장에서는 철거를 앞둔 쫑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이해성 극장장이나 춤꾼 장순향 교수의 모습도 보였다.



 


궁핍현대미술광장앞에는 곽명우씨와 정영신씨가 서 있었다. 광장에 사람이 얼마 없었지만,

나온 사람 대부분이 전시장을 찾으니 일반 전시장보다는 관객이 많은 편이었다.


벽에 걸린 사진들을 돌아보니, 너무 많이 걸려 답답해 보였다.

그러나 힘들게 만들어 온 곽명우씨의 성의를 무시할 수도 없지만, 어디부터 손을 대야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좀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한 장이라도 더 보여주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에 그냥 넘어가자고 했다.



 


광화문미술행동의 마지막 전시인 '촛불역사'전은 정영신씨가 맡았으나, 좀 더 치밀하지 못했음을 안타까워 했다.

촛불집회에서 만난 사진가들의 작품을 모았으나급하게 추진된 일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떤 분 사진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보내 와 들죽 날죽 했다.

정영신씨는 작은 전시장이지만, 촛불집회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메인 전시장은 기존 사진가들이 보내 온 기록으로 채우고,

그 옆엔 광화문미술행동'의 기록과 함께 촛불시민이 찍은 사진을 보여주려 한 것이다.

급히 SNS에 올려 다양한 사진을 모았는데, 화가 김진하, 이재민씨의 사진을 받기도 하고

시인 정덕수, 김명지씨 등 시인들을 비롯한 일반인들의 사진을 모았다.

광장에서 노숙하는 정덕수시인은 뜨거운 현장의 열기대신, 그 이면 생활상을 보여 주었




 
그러나 촛불시민들이 보내 온 사진은 핸드폰사진이라 크게 뽑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작은 규격의 사진을 200여장 뽑았던 것이다.

전시장이 작으니 오밀 조밀 재미있겠다 싶었으나, 막상 DP를 해보니  허전했다.


열림식을 치룬 뒤, 몇 장만 다시 크게 뽑기 위해 조율하는 과정에서 사진계 마당발 곽명우씨가 나선 것이다.

곽명우씨는 규격을 바꾸는 사진에 한정하지 않고, 더 다양한 사진들을 보여주고 싶어 

자신의 파일에서 이런 저런 사진들을 골라 내 프린트 업체에 맡겼다고 한다.

 

그 이틀 날 사진을 찾아와 곽명우씨와 빈자리를 채웠으나, 사진이 너무 많았던 모양이다.

좀 남기고 싶었으나, 빈 틈 없이 다 채워 버려 전시장이 답답해 보인 것이다





사진가의 주관이 개입된 사진도 중요하지만, 보이는 대로 찍은 순수한 사진이 대중에게 더 친숙하겠다며 자위했다.


집회 현장의 텐트전시장이니 만큼, 전시 분위기나 작품성보다 그 날의 현장을 돌아보며

촛불시민으로서의 보람을 되 세기길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자신의 모습이나 반가운 분들의 모습도 만날 수 있으니, 책 보듯 한 장 한 장 살펴보는 재미를 느끼시기 바란다.

    

사진, / 조문호





















 

   






박근혜가 파면된 다음 날인 11일의 ‘광화문 광장’은 한 바탕 신명난 축제가 벌여졌다.
‘광화문미술행동’에서는 ‘이게 나라다!’는 휘날레를 장식하는 예술 난장을 벌였다.

‘바람찬 전시장’에서는 다섯 명의 작가가 시와 그림, 글로 메워가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 이도윤시인은 흰 천위에 시를 적기 시작 했고,
여태명 작가는 ‘사드 가고 평화 오라’는 큰 글을 빗자루 같은 붓으로 휘 갈겼다.
김구 작가는 적폐를 청산하라며 물속의 청소부라는 세우 떼를 그려 나갔고,
한상진 작가는 먹물로 추상화를 그렸다.





류연복 작가는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써 나갔다.
이 얼마나 가슴 후련한 말이던가. 그 밑에 ‘이제 새로운 시작이다’라고 쓰자
송용민, 정덕수, 김진하씨가 꽃으로 장식했다.
박방영 작가는 힘찬 매화 가지와 붉은 꽃망울을 그려 광장을 봄바람으로 휘날렸다.
풍물패들의 풍악소리에 신바람이 절로 나는 봄의 향연이었다.

그런데, 색다른 풍경도 연출되었다.
세종대왕동상 사방으로 개업 집에나 볼 수 있는 축하화환이 즐비하게 세워진 것이다.
‘민미협’회장 이인철씨가 광화문광장에 일일 무허가 꽃집을 차렸는데,
자기 마음대로 화환에 이름을 적어 놓은 것이다.
박근혜 파면 축하 화환을 외상으로 세워 준 모양인데, 김정헌, 신학철,

박재동, 유홍준씨 등 대개 방귀께나 뀌는 작가들 이름은 다 적혀 있었다.





그런데 이 친구 진짜 장사할 줄 모르는 것 같더라.
돈 있는 작가들이야 외상으로 줘도 될지 모르지만,
장경호씨나 나 같은 개털 이름도 많이 보였다.

장사는 아무나 하나...


촌스러운 낭비 문화인 화환도 박근혜와 함께 청산하자는 퍼모먼스 같았다.

그 날 함께한 작가로는 김준권 대표를 비롯하여 류연복, 김남선, 김진하, 장경호, 여태명,
김 구, 한상진, 박방영, 이도윤, 정덕수, 송용민, 이인철, 이철재, 정영신, 이광군, 유대수,
이재민, 김가영씨 등이다. 그리고 백기완, 강 민, 김윤수, 채현국, 신학철선생과 노형석, 최석태,
김사빈, 김명희, 박옥수, 고 헌, 남 준, 강제훈, 성남훈, 조신호, 송명식씨 등 많은 분들을 만났다.






차벽공략 프로젝트로 시작된 '광화문미술행동'은 그동안 열 네 차례에 걸쳐
다양한 전시와 퍼포먼스, 공연 등으로 시민들과 함께 해 왔다.
서예가들이 쓴 글은 시민들의 마음이 담긴 낙서판이 되기도 했고, 작품 앞에서 인증샷을 찍는 등,
작가와 시민이 함께 어울리는 자리가 되었다. 대중과 호흡하는 현장미술이었다.


박근혜 때문에 시작된 고생이었지만, 의미 있는 예술행동이라 작가들에게 보람도 안겨 주었다.
그러나 박근혜는 파면되었지만, 적폐가 청산되는 정의로운 세상은 아직 요원하다.
기득권층의 발악도 만만찮겠지만, 대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꼬락서니를 보니,
죽 쑤어 개주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다들 고생 하셨지만, 마음 단단히 먹어야겠다.


사진, 글 / 조문호















































































































































































































































박근혜 파면에 따라 ‘광화문미술행동’이 해산하며 보여주는 마무리 기획전 ‘촛불역사’전이

지난14일 오후4시 광화문광장 ‘궁핍현대미술광장’에서 개막되었다.

그동안 광화문광장의 시민혁명을 기록해 온 다큐사진가들과 시인, 화가, 춤꾼을 비롯한

촛불시민들의 생생한 기록들을 한 자리에 모은 것이다. 





그 날 개막식에는 백기완선생을 비롯하여 김준권(광화문미술행동 대표), 송경민(광화문캠핑촌 촌장),

신유아(궁핍현대미술관장), 화가 신학철, 장경호, 류연복, 김진하, 이윤엽, 김 구, 박불똥씨,

시인 정덕수, 양문규, 김이하, 김명지씨, 사진가 하형우, 정영신, 양시영, 박영환, 곽명우, 이정환씨

춤꾼 양혜경씨와 가수 김가영, 홍가혜, 김남선, 차광호씨 등 참여 작가들과 관계인들이 참석하여

간단한 열림식을 가졌는데, 다들 백기완선생과 기념사진 찍느라 바빴다.







그동안 촛불시민들이 광화문광장으로 몰려 나와 박근헤 퇴진을 외쳤고,

예술가들도 다양한 예술행동으로 시민들과 어울리며 새로운 세상을 원했다.


그 위대한 시민혁명을 기록한 열세 명 다큐사진가들의 각기 다른 색깔의 기록에서 부터

화가나 시인 그리고 촛불시민들이 바라 본 순수한 시선들도 흥미롭다.

여러가지 코스프레에서 부터 대머리에 ‘탄핵’이라 쓴 스티커를 붙인 코믹한 사진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기 그지없다.






기록 사진이란 잘 찍는 것 보다 현장성이 더 중요한 건, 그 자리에 없으면 기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광화문광장’ 텐트촌에서 노숙하는 정덕수시인은 다 물러나고 없는 한가한 캠핑촌의 일상을 기록했다.

그 잔잔한 뒷이야기들은 또 다른 재미를 안겨준다. 그리고 수많은 예술가들이 펼친 ‘광화문미술행동’의 기록들도 의미가 크다.

매주 토요일마다 펼쳐온 예술행동 면면의 기록들은 예술이 대중 속에 녹아드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루에 몇 장의 사진을 보며 살까? 신문이나 인터넷을 열면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게 사진이다.

전 국민이 사진기록자이고 증언자이다. 또 다른 눈으로 역사의 현장을 지켜보았던 것이다. 

 

사진가 곽명우, 권 홍, 김문호, 노숙택, 박영환, 양시영, 엄상빈, 정영신, 조문호, 채원희, 하형우, 홍윤하씨를 비롯하여

시인 강 민, 정덕수, 김명지, 김이하, 화가 김진하, 이재민, 최연택, 부은정, 춤꾼 양혜경씨

그리고 촛불시민들이 기록한 사진까지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





전시는 오는 21일까지다. 어렵게 찾아 온 봄 맞으러 광화문 광장으로 나가자.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내일을 준비하자.



사진, 글 / 조문호











































































한 곳에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예술가들이 더러 있지만,
대개 나이가 들수록 기력이 딸리거나 창의성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러한 통념을 단숨에 불식시키는 예술가가 있다.

마임이스트 유진규씨다.
유진규하면 마임이고, 마임하면 유진규로 통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광대다.
대개의 예술가들이 꼴리는 대로 산다지만, 세상이 자유롭게 가만 두지 않는다.
자기도 모르게 돈이나 명성의 노예가 되어 끌려 다니는 것이다.

그는 ‘춘천마임축제’를 세계적축제로 만들어 놓고 뒤로 물러났다.
일이 자유를 구속시켜 뇌종양이 생긴 것이다.
그 후 석 달 동안 세상과 연락을 끊고 산에 들어가 자연인으로 살며 병을 고쳤다고 한다.
한 곳에 안주하지 않으며, 위기를 기회로 삼은 그였다.
곧바로 ‘욕심을 버리자’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 ‘빈 손’을 발표했다.






학창시절엔 자유롭게 살려고 수의학을 택했으나, 시대적 상황의 돌파구로 연극을 시작했단다. 

그러나 팀워크가 중요한 연극은 그의 자유를 막아 이혼해 버렸다.
그 후 마임과 결혼하여, 45년을 오로지 한 곳에 올인 한 것이다.

그는 공연장이고 거리고 관계없이 관객만 있으면 몸짓으로 말해왔다.
지인의 전시 개막식이나 모임에서 조차 거리낌 없었다.

그의 몸짓은 담백하면서도 강열한 독보적 에너지가 발산된다.
그 강한 흡인력은 관객의 시선을 꼼짝 못하게 묶어 버리는 것이다.
자신의 기를 통째로 마임에 불어넣고 있으니, 어느 간 큰 관객이 눈길을 거둘 수 있겠는가.






이제 그의 나이 육십 중반에 들어 선 할아버지다.
그러나 관객만 있으면 청춘으로 돌변해 버리는, 타고 난 사람이다.
자신의 예술 행위에만 급급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불의도 두고 보지 못한다.
지난 해 11월 ‘광화문광장’ 블랙리스트 기자회견장에서 시작된
유진규의 마임 저항은 현재 진행형이다

주류아닌 예술가들의 시국퍼포먼스 ‘옳’이라는 기치를 내 걸고,
지난 해 12월7일 촛불집회에서 보여 준 “옳지 않은 놈들 꾸짓기 퍼포먼스를 비롯하여
3월4일 가진 ‘봄은 이미 와 있다.’에 이르기 까지 열 세번의 퍼포먼스를 펼쳐왔다.
“눈떠”, “닭쳐”, ‘양파, 까도까도 끝이 없다“등 매번 기발한 주제를 내세워
신명난 굿판으로 광화문광장을 들썩인 것이다.






물론, 혼자 벌이는 퍼포먼스가 아니기에 더 힘든 것이다.
깃발부대와 나팔부대는 차지하고라도 김기상, 문성식, 박미루, 전형근, 이정훈, 최문성,

안현정, 최현중씨 등 많은 후배들이 동참하는데, 그 퍼포먼스 경비는 어떻게 충당하는지,

젊은 후배들과의 견해 차이는 어떻게 푸는지 걱정스러운 게 한 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뒤풀이에 따라가 실상을 들여다보니 기우에 불과했다.

밥값에 이르기 까지 모든 비용은 각출되었고, 다음 기획을 준비하는 회의도 기획자의 일방적인

지시가 아니라 토론에 의해 민주적으로 진행했다. 세대 간의 격차가 발붙일 겨를이 없었다.

그는 촛불집회 때마다 신명난 굿판을 벌여왔으나, 한 장소에서 퍼포먼스를 끝내지 않았다.

철판을 등에 짊어진 채, 헌법재판소와 청와대로 행진하는 거리 퍼포먼스로 이어졌다.

나도 두 차례 행진에 따라 나선 적이 있는데, 갈 때마다 파김치가 되어버렸다.

더구나 지난 보름날 진행한 ‘부럼깨듯’에서는 여의도에서 광화문까지 거리 행진을 벌인 그다.





그리고 지난 3일 광장극장 블랙텐트에서 막을 올린 세월호 퍼포먼스 ‘33한 날에 돌아와요“는

장장 일곱 시간동안 공연을 펼친, 기록적인 강행군이었다.

그 긴 시간을 지킬 자신이 없어 한 두 시간 정도만 감상하려던 계획조차 공연날자를 잘 못 알아 놓쳐버렸다.

그 대단원의 작품을 놓친 아쉬움도 있었지만, 생사의 갈림길에서 몸부림 친 일곱 시간 한을 외면한 자책이 더 컸다.

더 놀라운 것은 밤늦게 공연을 끝낸 그 이틀 날, 다시 광화문광장에서 열세 번째 ‘옳‘퍼포먼스를 진행했다는 것이다.

몸도 몸이지만, 정신이 강철이었다. ‘봄은 이미 와 있다. 탄핵은 인용되고, 박근혜는 구속 된다’라는 주제로 가진,
그 날의 퍼포먼스는 봄을 상징하는 초록으로 얼굴을 잔뜩 물들이고 광란의 굿판을 벌였다.
광화문에서 헌재로, 헌재에서 인사동으로 이어지는 거리 행진도 따랐다.

정의와 예술혼에 온 몸을 불사르는 그의 강인한 투지가 정말 존경스럽다.
그는 이 시대가 낳은 영원한 광대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4일의 열 세번째 퍼포먼스를 앞두고, 광화문광장에서 외손자와 함께한 유진규씨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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