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식선생의 서거 1주기를 맞은 추모 사진전 ‘북촌’이 지난 19일 ‘갤러리인덱스’에서 개막되었다.

 

‘북촌’은 선생께서 태어나고 자란 서울의 북촌 일대를 기록한, 1978년부터 1990년대 까지의 북촌 풍정이다.

 

선생께서는 생전에 기록사진이야말로 사진의 존재 이유임을 말씀하셨다.

그래서 어린 시절을 보낸 북촌을 기록했는데, 찍을 무렵부터 서울은 변하고 있었다고 한다.

 

기록사진은 된장이나 와인처럼 묵혀야 더 깊은 맛이 난다는 말씀처럼,

30년이 지나서야 ‘북촌’사진집을 펴내며 작품을 발표했다.

 

선생께서 남긴 리얼리즘 사진으로는 ‘북촌’ 외에도 ‘흔적’과 ‘마구간 옆 고속도로‘가 있다.

 

사진의 예술성에 뜻을 두신 선생께서는 '중앙대' 사진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리얼리즘 사진과 결별한다.

 

그 이후부터 법문 같은 ‘고요’라는 정적감 도는 예술사진에 천착하며 일가를 이루었다.

 

그러나 지금도 우리나라 사진사에 주명덕선생의 검은 풍경보다 ‘혼혈아’가 먼저 오르고,

한정식선생의 ‘고요’보다 ‘북촌’이 호출되는 것이 무엇을 말하겠는가?

 

사진의 기록성에 초점을 맞춘 선생의 작품들은 세월에 숙성된 사진이라

보면 볼수록 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켜, 마음이 따뜻해진다.

 

전시된 ’북촌‘사진에는 근대화, 도시화 물결 속에서 차츰 변해가는 거리와 골목,

가지런한 기와, 다소곳한 처마, 고즈넉한 창살,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오롯이 담겼다.

 

“이 ‘북촌’은 내 개인 기록이다.

사진으로 엮은 나의 고향이야기로, 내가 아는 서울, 내가 느끼는 서울,

내 기억 속의 서울이 여기 담겨 있을 뿐이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은 서울의 북촌지역이었다.

그리하여 ‘서울’하면 내게 그것은 그대로 북촌을 뜻한다.

나의 발길이 북촌에만 머문 이유요, 북촌만으로 이 사진집을 엮은 이유이기도 하다.

하기야 서울이라고 하면, 특히 옛 서울은 대개 북촌지역이 중심이었다.

따라서 이 ‘북촌’은 북촌이로되 실은 그대로 나의 서울이야기다”고 사진집 서문에 썼다.

 

한정식 ‘북촌’ -나의 서울-128페이지 230*280mm 서적 40,000원

‘북촌’ 사진집에는 흑백사진 80여 점이 실려있다.

 

추모의 시간을 가진 사진전 개막식에는 생각보다 추모객이 적었다.

 

긴 세월 강단에서 선생의 가르침을 배운 제자들은 다 어디 갔으며,

수시로 불러 모아 인사동에서 정 나누었던 주변 사진가들은 다 어디 갔는가?

‘죽고 나면 명예도, 작품도, 인연도, 아무 소용없다’는 생전의 말씀이 생각나는 시간이었다.

 

그날 개막식에는 ‘갤러리인덱스’ 안미숙 관장을 비롯하여

전민조, 강용석, 이일우, 이기명, 최연하, 김정일, 곽명우, 정영신, 한선영, 김창주씨 등

20여명의 사진가들이 모여 조촐한 추모의 시간을 가졌는데,

공교롭게도 이 전시를 기획한 ‘눈빛’ 이규상 대표마저 늦은 코로나에 걸려 참석하지 못했다.

 

전시는 7월 31일까지 열린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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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식선생께서 고요의 선계에 편안히 잠드셨다.

 

부음 받은 지난 23일 장례식장을 찾아 선생의 명복을 빌었으나,

떠나시는 선생을 배웅하고 싶다는 정동지 채근에 25일 새벽을 서둘러야 했다.

장례식장 변두리를 뒤덮은 호박꽃이 선생님 가신 극락세계 연꽃인양 반기더라.

 

장례식장에는 유족들과 이일우씨만 발인을 서두르고 있었고,

조문객으로는 강용석, 곽명우씨 등 서너 명의 사진가만 보였다.

뒤이어 '사진예술' 발행인 이기명씨 등 제자 몇 명이 찾아와 운구에 힘을 실었지만,

한국 사진 교육계 거목이 떠나는 상여길 치고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타 예술단체에 비해 사진인들의 선배에 대한 존경심이나 예의가 소홀한 것은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수많은 제자를 배출한 선생의 장례식이 이럴진데,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는가?

 

먼 길 떠나는 원로사진가 영전에 잠시 모여 추모사로 위업을 되새기거나,

떠나시는 선생을 위해 살풀이라도 한 번 추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이번 장례식에는 제자 이일우씨가 시종 차고 앉아 사진인을 맞았지만, 가족들은 인사도 안 했다.

선생께서 그동안 말씀은 안 하셔도 마음고생 많이 했겠더라.

아들 셋보다 딸 하나가 더 좋은 세상을... 

 

요즘 사진판에 짚고 넘어가야 할 심각한  문제는 가족들의 사진에 대한 무관심이다.

돈 되지 않는 사진에 메 달려 온 선친에 대한 원망스러움은, 사진이란 말조차 듣기 싫은 것이다.

그러니 당사자가 돌아가시면 사진에 관한 모든 자료들이 쓰레기로 사라진다.

 

사진이고 뭐고 죽고 나면 다 부질없는 짓이라는 선생의 평소 말씀에 공감 하지만,

그래도 살아 남은자의 도리는 지켜야 하지 않겠나?

 

사진, / 조문호

 

이 사진은 홍순태선생 마지막 전시회에서 찍은 원로사진가들의 기념사진인데,

 이제 살아계신 분보다 돌아가신 분이 더 많군요, 

좌로부터 주명덕, 강운구. 이완교, 황규태, 홍순태, 김한용, 한정식선생

 




인사동의 정취가 사라지며, 인사동을 고향처럼 여겼던 많은 사람들이 뿔뿔이 헤어졌다.
가끔 전시 오프닝에서 만나는 사람도 있지만 한꺼번에 만나기란 쉽지가 않다.

한 때는 여러 모임에서 자주 만날 기회가 있었으나,
구심점이 사라지며 모임들이 점차 사라진 것이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조준영 시인이 나서 가끔 자리를 만들긴 하지만,
나오는 이가 예전처럼 그리 많지 않다.

지난 4일 저녁 무렵, 인사동 ‘유목민’에서 술자리가 만들어졌다.
조준영씨를 비롯하여 강찬모, 이명희, 유진오, 김기영, 강용석,
윤강욱, 공윤희씨 등 모인 사람이 겨우 열 명에 불과했다.
이마저 머지않아 사라질지도 모르지만...

반기는 사람 없는 삭막한 인사동 골목을 기웃거릴 날도 멀지않았다.
살아 있는 동안은 오랜 인사동의 추억을 되 세기며
그 때 그 사람들을 그리워할 것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아래사진은 열흘 전에 유목민에서 만난 분들이다.

모처럼 바우 손병주씨가 인사동에 등장하여

화가 장경호씨와 유목민주인장 전활철씨와 어울려 한 잔했다.

    










새해 첫 날, 제주에 귀향 갔던 변 사또로 부터 전화가 왔다.
“형! 내일 서울 올라가니 얼굴 좀 봅시다”
반갑기는 하지만, 년 초부터 술에 젖을 생각하니 아찔했다.

지난 2일 오후7시가 지나서야 인사동에 있는 ‘유목민’으로 나갔다.
‘유목민’ 입구에는 변순우씨와  조해인 거사, 보훈처에서 일하는 나재문씨,

별나라로 간 강용대의 동생 강용석씨가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인사동에서 유일하게 담배 피울 수 있었던 ‘유목민’마저 이제 금연령이 내렸나보다.
하기야 새해부터 업소에서 담배 피우다 걸리면, 업주도 상당한 벌금을 문다니

그냥 내 버려 둘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그동안 국산담배를 피워왔으나, 새해 첫날부터 오르지 않은 양담배를 어렵게 샀다.

돈 있는 사람들이야 몸 생각해 안 피우는 사람이 많겠지만,

대부분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서민들이 마지 못해 피우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런 담배에다 세금 폭탄을 내리다니,... 

국민건강을 위해 담배 값을 올렸다지만, 개가 들어도 웃을 소리다.
피울 사람은 한 갑에 만원씩 해도 피운다.
올해부터는 아예 담배 농사지어 만들어 피울 생각이다.

괜히 정초부터 담배 때문에 열 올렸나보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변순우씨의 패션이 눈에 띄었다.
마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란 영화에 나오는 할아버지 패션을 연상시킨다.
빨간 자켓에 도리꾸찌 모자를 눌러 쓴 것 까지는 좋았는데, 이가 빠져 말이 샌다.

뒷자리에는 유진오씨가 노랗게 구운 두부안주를 시켜놓고 혼자 고독을 씹고 있었다.
뒤늦게 노광래씨가 합류하였지만, 년 초라 그런지 ‘유목민’도 한가했다.
제주에 귀향 간 변순우씨는 장기간 자동차를 방치한 죄로 벌금을 물게 되었단다.
그 사건을 해결하러 서울까지 어려운 걸음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적당한 취기로 어깨가 펴진 이들의 이야기가 펄펄 날아다니고, 감정도 달아 올랐다.
그러나 담배 없는  술자리는 앙코 없는 찐빵이나 마찬가지다.
담배 피울 수 있는 ‘사랑방 모텔’로 옮겨 한 잔 더 하자지만, 그냥 줄행랑쳤다.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 김명성씨가 더욱 그리운, 그런 하루였다.

 

사진,글 / 조문호

 

 

 

 

 

 

 

 

 

 

 

 

 

 



지뢰 피해자 통해 한국전쟁의 후유증과 아픔 다뤄 

여수신문 / 박성태 기자 | yeosunews@hanmail.net

 

 

                                올해의 온빛사진상 임재홍(왼쪽)사진가와 올해의 온빛사진가상 이상엽 사진가./photo by 곽명우

올해의 ‘2014온빛사진상금지된 땅, 영식이의 하루를 발표한 임재홍 사진가가 선정됐다.

온빛사진상은 국내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주는 다큐멘터리 사진가 상으로 올해 4회째를 맞고 있다.

 

2
일 온빛 다큐멘터리 운영위원회는 지뢰 피해자로 살아가는 한 인간을 통해 한국 전쟁의 참담함과 전쟁의 후유증을 휴머니즘적 시각으로 기록한 임재홍(36) 작가를 최종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심사는 최종
1차 심사를 통과한 11명의 발표와 프린트 형태의 포트폴리오 소개 등을 통해 이규상(눈빛 출판사 대표), 박이찬(포토닷 발행인), 강제훈(한겨레 사진기자), 강용석(백제대학교 교수), 조대연(광주대학교 교수) 등 심사위원들이 수상작을 결정했다.

 

이규상 대표는
개인의 굴절된 삶을 통해 분단의 아픔을 사진적으로 잘 표현했다제주도 소나무 벌목 현장이나 우편배달부를 다룬 휼륭한 작품들과 함께 고민한 끝에 좀 더 사회적 이슈를 폭넓게 다룬 임 작가의 사진이 최종 선정됐다고 수상 배경을 설명했다.

 

임 작가는
198014살의 영식이라는 소년이 플라스틱 폭탄(M-14 발목지뢰)를 장난감으로 알고 쥐었다가 양손과 왼쪽 눈을 잃고 살아가는 모습을 밀착 취재해 끝나지 않은 전쟁의 후유증을 사진으로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임 작가는 동경 일본대학교 예술학부에서 사진학과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을 전공하고
<끝나지 않은 전쟁의 비극>, <eko국제사진전-유토피아>, <지뢰피해자>,<time space> 등의 개인전을 일본, 스위스,뉴욕 등에서 열고 현재 서울에서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한편 온빛 올해의 사진가상에는 최근 사진집
최후의 언어와 개인전 변경을 연 이상엽 사진가에게 돌아갔다.
 

 

 

임재홍 금지된 땅

 

임재홍 금지된 땅

 

임재홍 금지된 땅

 

임재홍 금지된 땅

 

임재홍 금지된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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