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박영주 기자

 

 

 

김주희(33) SBS 아나운서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 7전시실에서 26일부터 4월3일까지 사진전 ‘인 드림스-리멤버’(In Dreams-remember)를 개최한다.
김주희는 지난해 12월 서울 인사동 공아트스페이스에서 첫 전시회, 올해 1월부터는 한 달간 서울 아트클럽에서 두 번째 전시회를 열었다.

프라하, 체스키크룸로프를 여행하며 만난 잠자는 고양이, 노란 골목 같은 일상의 풍경과 아빠 품에 안긴 아이, 연인의 어깨에 기대어 쉬고 있는 여인 등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 등 42점을 선보인다.

예술의전당 관계자는 “일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김 아나운서의 사진이 보는 이들에게 따스한 감성을 전달해 줄 수 있어 이번 전시를 기획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주희는 “대학(연세대 영어영문) 시절부터 문학적 감성을 키워오던 곳에서 전시회를 하게 돼 영광이며, 많은 분이 바쁜 생활에서 잊고 지낸 작지만 소중한 시선을 만날 수 있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gogogirl@newsis.com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사진, 회화, 조각, 퍼포먼스, 비디오설치 등 다양한 장르를 뒤섞으며 작업하는 스페인 작가 프란체스카 마티(Francesca Marti)의 국내 첫 개인전이 개막됐다.

서울 소월로 표갤러리 서울(대표 표미선)은 ‘The third sense:제 3의 감각’이라는 타이틀로 지난 14일 마티의 서울 전시의 막을 올렸다. 이번 작품전에는 마타가 지난 14년간 작업해온 Fly, Soul, Dreamers, Tears and Scream, Nomad 시리즈가 최초로 공개된다.

마타는 강렬한 색채및 명도 대비를 꾀한 도발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작업으로 유럽및 미국에서 입지를 굳혀가는 작가. 미국, 이탈리아, 독일, 네덜란드, 이집트 등지에서 초대전을 가졌다. 그의 작품은 뉴욕 현대미술관 (MoMA)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전시는 4월 4일까지.

 


 
프란체스카 마티 Sin II, Photograph, 170x125cm, 2000, edition 1/3 [사진제공=표갤러리] 


프란체스카 마티 White Shadow on Blue,Diptychwith video projection,two paintings on canvas,

 200x125 cm(each), projector, 2006 [사진제공=표갤러리]


 프란체스카 마티 Darkness I, Photograph and paintoncanvas,100x100cm,2008 [사진제공=표갤러리]

일본 사진작가 나카자토 카츠히토의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이 오는 3월 14일부터 4월 4일까지 갤러리 온에서 열린다.


 ▲ 용궁
Katsuura,Chiba  


▲ 보소 에치고 터널
kimitsu,Chiba 



▲ 보소 에치고 터널
Tokamachi,Niigata  


나카자토 카츠히토는 일본의 지리적 풍경 (landscape)을 객관적 시선으로 촬영하고 있는 일본의 사진가로 현재 동경(東京) 조형 대학 조형학부 사진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0년부터 도쿄(東京)를 비롯한 주요 도시의 상점, 도시의 공장, 빈 점포, 시장 등과 같은 대안 가능한 공간에서 사진전, 사진 설치, 워크숍을 다수 개최하였다. 이러한 다원적인 전시 방식을 통해 작가는 사진표현을 중심으로 거리나 지역과의 사회적인 소통을 실천하고 있는데 이는 현대 사진의 가장 큰 화두가 되었다.

이번 갤러리 온 전시에서는 그의 「용궁龍宮(Ryu-guu)The ancient landscape on the shore」시리즈와 「보소 에치고 터널(Boso-Echigo Tunnels) 」시리즈를 만날 수 있다.

나카자토는 용궁시리로 흑조 (일본 열도를 따라 태평양을 흐르는 난류)의 밤에 느낄 수 있는 아득한 태고의 시간과 공간을 표현했다. 먼 바다에 있는 또 하나의 다른 세계의 이미지이다. 그 곳엔 조용한 빛과 어둠의 세계가 있다.

보소(房總)(Boso)는 치바현(千葉縣)의 옛 지명이고, 에치고(越後)(Echigo)는 니가타현(新潟縣)의 옛 이름이다. 이곳의 터널들은 약 200여 년 전 사람의 손으로 직접 파서 만든 터널로서, 현재에도 존재하고 있는 낡고, 진귀한 지형 중 하나이다. 이곳의 터널을 빛과 접목해서 촬영한 나카자토는 예술작품으로는 처음으로 보여지는 보소 에치고의 터널들로 하여금 태고의 신비로운 지리적 경관에 현대의 감수성을 더하고 있다.

지구의 탄생부터 공존하고 있는 대지에 빛으로 숨을 불어넣고 있는 그는 대학에서 지리학을 전공했다. 그 영향으로 작업의 소재는 지리적 풍경을 기본으로 <꿈>, <밤과 어둠>, <빛>등의 테마로 이어지고 있다.

환경문제가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는 현재,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환경캠페인보다 나카자토 가츠히토의 지난 50억년을 버텨온 우리의 대지가 빛으로 다시 살아나는 사진을 만나는 것이 우리의 가슴을 더욱 울릴 것이다.

자세한 전시관람 안내는 전화(02-733-8295)로 하면 된다.

서울신문/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한 여성과 키스를 나누는 해병의 모습. 미국 시사잡지 ‘라이프’에 실렸던 ‘종전 기념 키스’라는 이름의 유명한 사진이다. 독일 출신의 사진작가 앨프리드 아이젠슈타트가 1945년 8월14일 촬영한 이 사진은 2차 세계대전 종전의 기쁨과 전후의 희망을 담은 상징처럼 여겨졌다. 사진 속 주인공, 해군 참전병사 글렌 맥더피(사진)가 지난 9일 86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고 가족들이 15일(현지시간) 밝혔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캐너폴리스 태생인 맥더피는 2차 대전에 징집됐다가 1945년 종전과 함께 제대했다. 종전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18세였다. 맥더피는 1960년부터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우편배달부와 아마추어 야구선수로 일하며 평범한 일생을 살아왔다.

그가 갑자기 세상의 관심 속에 등장한 것은 2007년이었다. ‘종전 기념 키스’ 사진 속의 남성이 그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사진을 찍은 아이젠슈타트는 1995년 사망할 때까지 사진 속 남성의 이름 등을 공개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주인공의 신원은 베일에 싸여 있었다. 맥더피는 자신이 주인공이라고 여러 차례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휴스턴의 법정 검시의인 로이스 깁슨이 아이젠슈타트가 남긴 100장 넘는 사진을 분석한 뒤 사진 속 인물임을 확인했다.

이 일로 맥더피는 뒤늦게 다시 유명세를 탔다. 맥더피는 2007년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타임스스퀘어로 뛰어나갔다”고 회고했다.

미국 해군 병사 글렌 맥더피가 1945년 8월14일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한 간호사에게 키스하고 있다.

‘종전 기념 키스’라는 이름이 붙은 이 사진은 당시 시사잡지 ‘라이프’에 실려 유명해졌다.



사진 속 키스 상대인 간호사 에디스 셰인과는 그날 우연히 만난 사이였다. 맥더피는 “거리에서 눈빛이 마주치자 간호사가 함박웃음을 지어보였고, 기쁜 마음에 키스를 했다”고 털어놨다. 맥더피의 가족들은 “고인은 뒤늦게나마 자신이 사진 속 주인공이라는 걸 인정받자 몹시 즐거워했다”고 전했다.

맥더피는 텍사스주 포트워스의 국립묘지에 매장된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임채욱씨의 사진은 한마디로 카메라로 그린 산수화였다.

전시를 기획한 박인식씨의 '산은 자연회귀 본능과 영혼의 영역이다’라는 말이 실감났다.

산의 뼈대와 속살을 드러낸 담백한 맛이 마치 단원이나 겸제의 수묵 산수화를 보는 듯 했다. 

지난번에 전시했던 안승일씨의 백두산 사진이 있는 그대로를 찍었다면,

임채욱씨의 사진은 작가의 의도가 사진 깊숙이 개입되었다는 점에서 확연히 달랐다.
임채욱씨는 동양화를 전공한 사람으로 카메라는 하나의 도구로 이용했을 뿐이었다.

작품들을 감상하며 “아! 이렇게도 되는구나!”하는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하였고,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인화지의 출현과 메카니즘의 발전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횡으로 길게 펼쳐진 옅은 능선들과 강한 실루엣으로 드러난 산의 윤곽 등

작가의 창의적 노력이 곳곳에 응축되어 있었다.

 

마치 붓 터치 같은 느낌을 주는 새로운 한지의 매력도 돋보이지만,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보여 준 프린트기술이 수준급이었다.

사진의 계조가 마치 산속으로 파고들 만큼 깊었다.

확 트인 원근법과 여백, 단색조의 깊은 질감, 구름이나 안개에 의한 몽환적 산세,

기존의 틀을 넘어 선 자유로운 프레임은 보는이로 하여금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었다. 

 

처음으로 시도한 입체사진도 눈길을 끌었다.

한지에 프린트한 사진을 주무르고 접어, 평면 사진을 입체적인 산의 형태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영상실에서 보여준 이미지들도 흥미를 더했다.

한지로 산의 형태를 만들어 다양한 이미지를 투과해 계절의 변화와 세월의 흐름을 실감케 했다.

작품들을 살펴보다 이건 사진이 아니라 종합예술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산의 형상을 재현한 사진에다 신비로움으로 이끌어 간 미술적 터치, 입체사진의

조형성을 보여준 조각가적 기질, 미디어 아트 등 예술의 전 부문을 아우르고 있었다.

 

전시작들은 한지전문회사 천양과 함께 개발한 새로운 한지로 프린트했다고 한다.

필자도 ‘인사동 사람들’ 전시 때 한지를 활용한 적 있으나 한지의 거친 결이

기계의 노즐을 막아 애를 많이 먹었는데, 그 문제점도 해결되었단다.

 

 

임채욱씨의 'inside mountains'은 꼭 한 번 봐야 할 전시로 판단된다.

설산, 능선, 구름, 나무, 바위, 인왕산 등 여섯 파트로 나누어진 작품들이 

견지동 '아라아트'전시장의 1층에서부터 지하4층까지 전시되고 있다.

3월28일까지 이어진다.


박인식씨가 전시기획 의도를 밝히고 있다.

입체 작품들

 

 

작가 임채욱씨가 작품설명을 하고 있다.

 

영상설치물

지하1층에서 내려다 본 전시장 풍경

 

전시발문 등 상세한 전시작품들을 감상하려면 본 블로그, 인사동 전시가이드의

'임채욱의 'inside mountains'展, 아라아트에서..'를 참고하십시요.

 

 

 

 

 

강원도 태백에 정영신씨만 나타나면 어김없이 폭설이 쏟아 졌다.

지난 5일, 태백 통리장을 촬영하려는 삼척MBC 황지웅PD와의 약속으로 정선에 갔으나, 또 눈이 내리고 있었다.
2월 중순부터 시작된 일정이 눈 때문에 무려 세 차례나 헛걸음을 해 이번에 못 찍으면 그만 둘 작정이었다.

그러나 '걱정도 팔자'였다.
못 찍는 것은 나중 문제고, 일단은 백설이 휘날리는 만지산 설경에 푹 빠질 수 있어 좋았다.
얼마나 많이 쏟아지는지, 눈송이에 가려 카메라 화인더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 무렵 황PD가 도착해 “작가님은 눈을 몰고 다닙니까?”라고 물었다.

 

예정된 통리장은 다른 장터와 달리 10일만에 서는 장이라 더 이상 지체할 수도 없었다.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통리장에 할머니들은 나오지도 않았고,

장돌뱅이 몇 사람 나와 눈보라 휘날리는 난장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것 저 것 사진도 찍고 인터뷰는 했으나 아무래도 이야기가 안 될 것 같았다. 

 

아침 겸 점심 먹으러 간 장터국밥집에서 황PD가 말을 꺼냈다.
“작가님 강원도에 찍지 않은 장터는 없습니까?”
“태백 철암장, 딱 한 곳 남았다”라고 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출연료를 2회분으로 주겠다며

오는 10일, 한 번만 걸음을 더해 달라는 것이었다. 차마 거절할 수가 없어 '한국의 장터'

책 소개나 제대로 해달라며 다시 일정을 짜야 했다.

 

"할 일은 많은데, 왜 일이 자꾸 꼬이는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리며

돌아오는 길은 언제 눈이 왔느냐는 듯 따스한 햇살이 내려 비치고 있었다.
중간 중간 차에서 내려 눈 내린 산세를 감상하는 것으로 위안해야만 했다.

 

 

 

 

 

 

 

 



 

 

 

 

사진하는 사람으로 이명동선생 모르면 간첩 소리 듣는다.
한국사진계에 끼친 영향력도 워낙 크지만 보도사진가로서의 기자정신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기 때문이다

4,19때 총탄이 쏟아지는 경무대 앞에서 찍은 사진과 육군교도소에 수감된 서민호선생을 찍기 위해 위장한 사건 등으로 사진계에 전설을 일구어 냈다.

그는 경북 성주에서 태어나, 올해로 95세를 맞은 원로 사진가다.
어린 시절, 소 판돈 들고 나와 카메라를 구입해 사진의 길로 나선 것이다.

종군기자로 시작된 사진인생은 육군본부에서 주최한 전투사진콘테스트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막을 열었고,

화랑무공훈장을 무려 3개나 받았다.
동아일보 인촌선생께서 돌아가셨을 때는 장례식장을 지켜, 갑자기 조문 온 이승만대통령을 찍어 특종 하였는데,

그 것이 계기가 되어 동아일보 사진기자로 입사했다. 여지껏 사진기자 출신으로 부국장 반열에 오른 사람도 없거니와, 

일하는 동안 몸 아끼지 않는 그만의 기지로 많은 특종을 만들어 냈다.

특히 국내 최초로 시작된 동아사진콘테스트와 동아국제살롱사진, 사진단체 창설 등 사진사에 남을 중요한 일들은 모두 선생께서 주도하셨다. 대학에서 보도사진을 강의해 후학들을 양성하기도 했지만, 선생의 날카로운 사진비평은  황무지나 마찬가지였던 사진계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정년퇴임 후에는 '한국화보'와 '서울화보'를 발간하여 우리문화를 세계에 알렸으며, 그 이후 '사진예술'을 창간하여 낙후한 국내사진잡지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렸다.   

그동안 사진문화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현대사진문화상, 제비꽃 특별사진가상, 옥관문화훈장, 건국포장, 언론부문의 인촌상 등을 받아 온 이명동선생은 한국사진계의 전설이자 산 증인임에 틀림없다.

지난 2월 24일 아침 무렵, 전화벨이 울렸다.
생각지도 않은 이명동선생의 전화를 받아 어리둥절했는데,

자택이 있는 약수동에서 맛있는 점심을 사주겠다는 말씀이셨다.

선생님을 만나뵙고 갈비탕과 차를 들며 즐거운시간을 가졌지만,

계산을 먼저 해 민망하게 만들었다. 
사시는 모습을 기록하려 찾은 자택에는 사모님 혼자 계셨는데,
거동이 불편한 사모님을 위해 직접 밥을 지어 차려주고 나오셨다는 것이다.
연로하신 선생님께서 시장보아 음식 만들고, 간병까지 한다니 기가 막혔다.  

 

"아! 이게 인생이구나"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많은 공적과 화려한 명성도 세월 앞에는 다 부질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었던 것이다.
좁은 방에서 장모님 간병하는 아내가 안타까워 투정했던 자신이 갑자기 부끄러워 졌다.  

선생님께서 마지막까지 한 수 가르쳐 주신 것이다.
갑자기 전화주신 것도 내 처지를 아셨던 모양인데, 이것이 말없는 교육이었다.
떠나올 때, 장모님 맛있는 음식 사드리라며 주머니에 강제로 찔러 넣어 준,
꼬기 꼬기 접은 오만원권 지폐 두 장이 결국 나를 울렸다.    

 

 

 

 

 

 

서슬 퍼런 군사정권 시절 7년간의 옥살이로 고초를 겪는 등 민주 투사로서 활동해온 박노해 시인의 사진전 <다른 길>이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다. 티베트에서 인디아까지 온갖 외지를 돌며 찍어온 7만 여 컷 중 엄선된 120여 장의 사진들이 선보인다. 사진은 시인의 따듯한 시선으로 흑백 필름 카메라에 포착된 아시아 변방의 전경들은 그의 고뇌와 환희의 감정들을 여과 없이 투사한다. 그야말로 박노해 시인의 정수를 한 자리에 압축한 전시다.

흑백 필름이 담긴 낡은 카메라 하나를 들고 14년간 외지를 방랑한 시인의 진정성은 사진과 하나의 소실점을 이루며 더욱 깊은 울림을 관람객들에게 전달한다. 또한 우리네 잃어버린 삶을 연상시키며 시간의 흔적을 반추하는 빛바랜 사진은 관객의 발길을 처연히 붙잡는다. 농담이 또렷한 시인의 흑백사진은 고요한 풍경 속에 자리한 인물들에게 더욱 포커스를 부각하며 ‘삶’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들을 짙게 건넨다.


 박노해. 노래하는 다리_Lake Inle, Nyaung Shwe, Burma. 2011 ⓒ박노해


하지만 한편에선 시인의 사진이 글로칼리제이션(Glocalization)의 시대적 트렌드에 영합하는 프레임적 시각과 다름없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보기에 따라 그럴 수도 있다. 허나 그의 작품들은 우리 삶에 무척 중요한 이야기를 함축한다. 그곳엔 하루하루 정신없이 흘러가는 우리네 삶에 반성적 성찰을 가능케 하는 기제이자, 삶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묵묵히 농사를 짓고, 씨 뿌려 거둔 밀을 빻고, 물 항아리를 이고 집으로 향하는 정서가 담겨 있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녹아 있다.



박노해. 인디고 블루 하우스_Gafa village, Rajasthan, India. 2013 ⓒ박노해


일례로 시인이 찍은 인레호수 마을과 고산족 마을을 이어주는 <노래하는 다리>는 우기마다 무너지지만 매년 소수민족들의 화합으로 그 자리에 다시 세워진다고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고 요구되는 것 또한 이렇게 서로의 불신된 마음을 이어주는 ‘노래하는 다리’가 아닐까.

박노해의 <다른 길> 사진전은 시인의 이러한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오는 3월 3일까지.

경향아티클 문정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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